‘나’ 중심 삶 버리고 ‘겸손’의 덕 쌓자 우리 삶의 주인은 하느님 더 높은 자리 앉길 원하고 모든 공적 차지해선 안 돼 자기 죄와 부족함 인정해야
“얼마나 많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순간의 쾌락, 하찮은 이득, 가상의 존재를 참 행복으로 잘못 알고 그것에 사로잡혀 있는지요!”(프란치스코 교황 2018년 사순 시기 담화 중)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는 그 자체가 죄이면서 또 다른 죄와 악습을 만드는 죄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일곱 가지 죄종을 경계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회개하고 죄를 끊어버리겠다고 더욱 노력하는 사순 시기. 특별히 우리 안에 있는 칠죄종을 극복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약자를 무시하고 괴롭히는 크고 작은 ‘갑질’에서부터 전 국민을 기만한 국정농단에 이르기까지 최근 뉴스를 보면 ‘교만’에서 비롯된 사건을 자주 마주할 수 있다. 교회 안에서도 ‘교만’에 뿌리를 둔 행동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본당 사도직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 베드로(가명)씨는 요즘 위화감을 많이 느낀다. 사도직단체 활동이 사도직보다는 회원들의 친목위주로 돌아가고, 새로운 회원은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텃세’도 느끼기 때문이다. 서로 파를 가르고 회장 자리를 두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엔 저절로 한숨이 지어진다. 김씨는 “끼리끼리 모여 대우받으려하고 더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한다면, 그게 정말 하느님을 섬기는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교만’이란 단순히 남을 경멸하고 무시하거나 갖지도 않은 것을 자랑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여러 종류의 교만에 관해 설명하면서 먼저 ‘선(善)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고 자신의 공적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앙인에게는 하느님을 중심으로 삼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이 세상의, 삶의 주인이라 여기는 것이 가장 큰 교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만을 이겨낼 수 있을까. 우리 신앙선조들이 심신수양서로 적극 활용했던 「칠극」을 쓴 판토하 신부(예수회)는 ‘겸손으로 교만을 눌러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교만이 깊어질수록 더욱더 자신에게 겸손한 마음이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욕을 즐거이 여기고 모욕당하길 바라는 것을 겸손의 최상의 경지라고 설명했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겸손의 덕을 쌓는 방법으로 “자신을 알면 겸손이 생겨나는데, 이것은 모든 선의 시작”이라 가르쳤다. 자신이 죄인이며 보잘 것 없음을 깨닫고 인정하면 자연히 교만의 반대, 즉 겸손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겸손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보며 걷는 것이 아니라”면서 “모욕과 냉대 없는 참된 겸손은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번 사순시기, 겸손으로 교만을 억누르기 위해 자원봉사를 실천해보면 어떨까. 봉사는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뿐 아니라 가장 낮은 이를 섬기며 겸손의 참 뜻을 체득할 수 있는 기회다.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