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에도 ‘버럭’… 참아봐요 남 벌하려는 무질서 상태 더 격해지기 전에 돌봐야 정의 위한 분노 ‘악’ 아냐
“아이x! 뭐야?”
하루에도 몇 번씩 ‘욱’한다. 크게 화 낼 일도 아닌데…. 찾는 물건이 없거나 휴대전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조차 ‘버럭’, ‘버럭’. 버릇이 될 지경이다. 더구나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쉽게 가라앉히질 못한다. 아예 분노가 생기지 않도록 하고 싶지만 조절이 잘 안 된다. 이른바 ‘분노 사회’라는 말을 유행처럼 옮겨가며 정당화하는 경우도 많다. 교회 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내 탓’을 하기보다 ‘남 탓’을 하며 삼삼오오 모여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분노하기 바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교회는 언성을 높이는 행동은 물론 불평불만, 모욕, 욕설, 폭행 등을 초래하는 분노를 악(惡)이자 죄라고 가르친다. 또한 분노를 타인을 벌하고자 하는 무질서로 정의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욕구와 함께 싫어하는 감정을 무절제하게 터뜨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분노는 ‘원수를 갚으려는 것’으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판토하 신부는 저서 「칠극」을 통해 “성냄을 쌓으면 사람을 죄에 빠뜨린다”고 경고하고 “분노는 타오르는 불과 같으니 이 불을 참음으로 꺼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이 나는 것 자체는 인간의 감정이지만, 이 감정이 더 큰 분노를 불러 죄를 짓기 전에 빨리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바오로 성인도 분노를 없애는 방법으로 원수를 사랑하라고 강조, “악함으로써 악함을 갚지 말고 원수가 굶주리고 있으면 오히려 그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당부했다.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모든 분노가 악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는 분노가 정의의 실천을 위한 강렬한 감정일 경우, 악이 아니라 중립적이라고 말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의와 인간 존엄성을 위해 적극 투신하고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을 위해 싸우라”고 촉구했다. 사순 시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언제 분노해야 하는지 또한 분노를 참아야 할 때는 언제인지 돌아볼 수 있는 좋은 때다. 남의 허물이 아니라 나의 허물을 돌아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다.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