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 희생, 봉사. 수도자들의 노동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다. 사도직을 수행하는 여성 수도자들은 학교에서, 병원에서, 어린이집에서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수행한다. 수도자들은 자신의 노동, 그리고 함께 일하는 평신도 동료들의 노동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위원장 정수용 신부)는 사도직을 수행하는 여성 수도자들의 노동 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수도자 노동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5월 11일 오후 2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발표했다.
설문조사는 2인 이상의 여성 수도자가 일하는 사회복지시설, 병원, 교육기관, 교회기관에 종사하는 여성 수도자 전원을 대상으로 진행했고 462명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설문 내용은 ‘노동과 노동조합 인식’, ‘노동, 가족, 여성의 관계에 대한 인식’, ‘노동 현장의 보수 관행 인식’, ‘가톨릭 노동에 대한 인식’ 등으로 구성했다.
조사 결과 여성 수도자들은 자신의 노동은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한국의 노동은 부정적인 인식을 기반에 둔 ‘소외된 노동’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성의 노동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교회가 전통적으로 강조해온 여성관, 가정관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박문수(프란치스코) 박사(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 소장)는 “수도자들의 노동인식은 노동자들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수도자들이 일상적으로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는 “변화된 노동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정적 문제들을 수도자들이 부담하다보니 직원들의 권리를 지켜주느라 정작 자신들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사목적 제안을 발표한 정수용 신부는 수도자의 노동자성에 대해 “수도자는 직업이 아닌 신분이라는 점에서 노동자일 수 없다”고 정의하면서 “수도자의 생활을 근로기준법에 맞춰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수도 생활 안에 담긴 다양한 의미와 풍성한 가치를 무시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동시에 “수도자 역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며 “수도자이기에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는 것이 정당해질 수 없다”고 말했다. “수도자의 노동 역시 법의 보호 아래 있는 노동자의 그것과 다르게 대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오늘날의 수도자들은 교회의 여러 사업장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책임자의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상기할 때 수도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교육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를 위해 각 수도원에서 이뤄지는 양성과정에 노동교육 과정이 포함되는 방안, 각 교구 노동사목위원회와 장상연합회가 프로그램을 공동 기획해 수도자들을 교육하는 방안이 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