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본당 우리농매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 / 김민수 신부

김민수 신부 (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입력일 2018-09-04 수정일 2018-09-04 발행일 2018-09-09 제 311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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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생활을 하다 보면 전통적으로 해오던 기존사목을 꾸준히 이어가기도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사목을 본당에 접목할 필요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우리농매장’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목하던 본당에 우리농매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 본당에는 매장이 별도로 없고 주일에만 좌판을 열어 신자들에게 판매하는 정도여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음 본당으로 옮겼을 땐 휴게실 옆에 우리농매장을 개설해 본격적으로 운영했다. 자원봉사자를 뽑고, 교육을 지원하고, 안동교구에 있는 한 분회와 자매결연을 하고, 더 나아가 일 년에 최소한 두 번 이상 버스로 신자들과 함께 자매결연한 분회로 내려가 함께 미사도 봉헌하고 농촌 일을 잠시나마 도우면서 올라올 때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양손에 양파나 대파 등 농작물이 가득 담긴 봉지를 선물로 받아들고 오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본당을 옮길 때마다 가장 먼저 살펴보는 일 중의 하나는 우리농매장이 있는가 없는가 이다. 실망스럽지만 대부분 없거나, 있다고 해도 진열대 하나 있을 정도다. 작년에 부임한 이곳 청담동본당에서도 마찬가지로, 매달 마지막 주일에 사목회 환경생명분과 위원들이 마당에 좌판을 마련해 우리농산물을 판매해왔다.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본당에 우리농매장을 마련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성당이 크고 공간은 많지만 이미 사용 중에 있어 남는 공간이 없었다. 일 년 이상 고민한 결과 마침내 오랫동안 창고로 써오던 꽤 넓은 장소를 깨끗하게 정리해 일부만 창고로 쓰고 그 나머지 공간을 우리농매장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대변신이었다. 오랫동안 지저분한 창고로만 인식된 장소가 쇼윈도를 갖춘 환한 우리농매장으로 탈바꿈했다. 신자들도 미사를 마치고 지나가다 들러 먹을거리를 고르고 자원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의 장소가 됐다.

“우리 몸은 먹는 대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귀중한 자신의 생명,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먹을거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먹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우리 몸, 우리 생명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농약, 중금속, 방사능, GMO 등으로 오염된 먹을거리가 우리 몸을 해치고 병들게 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우리 생명을 위협하는 먹을거리에 노출된 우리 중에 특히 어린이들, 청소년들과 환자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일반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 먹기가 꺼려지고 두렵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먹을거리가 오염된 채 농촌에서 생산되는, 얼굴 없는 농산물을 도시에서 대량으로 소비되는 실정이다. 오염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먹을거리는 없을까?

가톨릭농민회에서는 일찍이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펼쳐오면서 하느님 창조 질서를 보전하고 생명의 먹을거리를 제대로 나누는 생태적인 신앙 활동을 해왔다. 농촌과 도시의 상생을 모토로 농업, 농촌, 그리고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생명공동체’가 유기농 농산물을 책임생산하고, ‘도시생활공동체’는 이를 책임소비를 하는 것이다. “얼굴이 있는 농산물”을 위한 도시와 농촌 간 교류와 연대의 매개체가 바로 우리농매장이다. 특히 도시생활공동체의 주역은 교회, 즉 본당 공동체가 그 역할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본당 공동체가 사목의 하나로 우리농매장을 운영할 때 따르는 이점은, 신자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유기농으로 생산할 수 있으며, 분회와의 자매결연으로 얼굴이 있는 직거래와 본당신자들의 농촌체험이 가능하고, 본당 지역주민과의 교류로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간접선교에도 한몫을 한다는데 있다.

우리농매장은 생명, 생태, 영성, 신앙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당에서 우리농매장을 운영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목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농매장을 갖추고 있는 본당은 그리 많지 않다. 서울대교구만 해도 전체 본당 중에 16% 정도라 너무 미약하다. 더 많은 본당에서 우리농매장을 만들어 운영한다면 농민도 본당 신자도 서로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교회의 밥상이 바뀌면 세상의 밥상이 바뀐다.” 이 말을 귀에 담으며 사제관부터 우리농산물로 식탁을 꾸려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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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신부 (서울 청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