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제12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자 공선옥씨

곽승한 기자
입력일 2009-04-08 수정일 2009-04-08 발행일 2009-04-12 제 2643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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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문학과 리얼리즘의 새로운 모델 제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이야기 그려내
지난 2004년 늦깎이 세례를 받고 질곡어린 인생의 아픔과 상처를 온몸으로 겪으며 신앙인으로 거듭난 공선옥 씨는 좋은 작품으로 받은 상을 되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김주영(소설가·심사위원)
수상작 '명랑한 밤길'
발랄하고 유쾌했다. ‘인기 소설가’라는 거창한 직함보다는 아이 셋을 둔 평범한 가정주부에 더 가까워 보였다. 3월의 끝자락. 제12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자 공선옥(마리아 막달레나?46)씨를 만난 느낌은 그랬다. 수상 통보를 받고 ‘부끄러워서 도저히 그 상을 받을 용기가 나질 않는다’던 그를 경기도 일산의 자택에서 만났다.

“하느님 보시기에 한없이 부족하고, 또 신앙적으로도 미흡한 제가 ‘한국가톨릭문학상’을 받게 돼 더욱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과연 이런 과분한 상을 받을 자격이나 될까요? 가톨릭 신자로서, 그리고 문인으로서 앞으로도 문학을 사랑하고 열심히 작품 활동하라는 하느님의 선물이겠죠?”

모더니즘 일색의 2000년대 한국 문단에서 ‘공선옥’이란 이름 석 자는 ‘민중문학’과 ‘리얼리즘’의 새로운 모델로 통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씨는 등단 이후 줄기차게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이야기를 다뤄왔다. 그의 시선은 늘 우리 사회의 ‘응달’을 향해 있었고, 어떤 ‘비유’나 ‘풍자’도 없이 냉엄한 현실의 모습을 핍진하게 그려냈다.

이번 수상작 「명랑한 밤길」(창비/292쪽/9800원)도 한결같이 ‘상처입고 소외된’ 이웃들의 삶에 주목한다. 그들의 아픔을 따뜻하게 보듬는 작가의 손길도 여전하다.

공씨는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처절하고 불행해 보이지만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며 “비록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대접받는 것도 원치 않고, 그들 역시 자신들만이 부를 수 있는 작고 고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공씨는 1991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한 이후, 그간 장편소설과 산문집 등을 꾸준히 펴냈다. 특히 그가 처음 소설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제가 어렸을 때 그림을 꽤 잘 그렸어요. 언젠가 농촌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호남예술제’에서 1등을 했는데, 시상식장에서 글을 잘 써서 수상하는 어떤 친구하고 부상이 바뀐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는 글 잘 써서 ‘팔레트’ 받고, 저는 그림 잘 그려서 ‘삼국지’ 책을 받은 웃지 못 할 일이 일어난 거죠.”

공씨는 “당시 시골에서는 읽을 책이 그것밖에 없어 한문 섞인 어려운 삼국지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며 “그때부터 어렴풋이 작가로서의 장래희망을 꿈꾸게 된 것 같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당시 선물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멋진 화가가 돼있을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공씨는 지난 2004년 12월 24일 성탄 전야에 춘천 죽림동성당에서 늦깎이 세례를 받고 가톨릭에 귀의했다. 삶이 너무 힘들어 믿음을 갖고 의롭게 살면 하느님이 예뻐해 주실 거란 생각에서였다. 질곡어린 인생의 아픔과 상처를 온몸으로 겪으며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하느님께선 ‘불량 신자’인 제게 ‘한국가톨릭문학상’이란 큰 상을 주셨습니다. 상을 받았으니, 저도 누군가에게 ‘좋은 작품’으로 상을 드려야겠죠. 더욱 겸손한 마음과 안주하지 않는 열정으로 작품 활동에 노력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소외된 이들에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 전달

■ 심사평 / 김주영(소설가·심사위원)

공선옥의 소설집「명랑한 밤길」은 가진 것 없고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 우리 주변의 소외계층들, 벼랑 끝에 서 있는 서민들의 고통스럽고 힘겨운 삶을 작가 특유의 입담과 활달한 필체로 보여준다.

결코 자랑할 수 없는 현실, 어디 하나 녹록치 않은 비루한 현실이지만「명랑한 밤길」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거나 상처에 함몰 당하지 않고 오히려 상처를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새기고 나아가 이웃의 아픔에도 따뜻하게 손을 내밀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다. 작가는 사회의 어두운 면, 혹은 불편한 진실을 들춰내면서도 결코 꼬이지 않은 시선으로 이들을 따뜻하게 감싼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향한 애정으로 확장되며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가는 그동안 일관된 주제의식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그들의 힘겨운 삶을 생동감 넘치는 활달한 문체로 핍진하게 그려내 왔다. 리얼리즘 소설이 점차 인기를 잃어 가는 추세지만, 곳곳에 작가의 체험을 녹여낸 사실적이면서도 진솔함을 잃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과 역동성은 조밀하면서도 구수한 표현력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도 작가 공선옥의 문학적 성과가 돋보인다.

특히 모성과 자연적 생명력이 돋보이는 공선옥의 소설은 세련된 기교에 기댄 현란한 수식이 아닌, 오로지 솔직함과 정직함을 근간하며 이전에 비해 더욱 원숙하고 넓어진 관용의 정신을 엿보게 한다.

무엇보다 그의 소설에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푸쉬킨의 저 유명한 시처럼 소외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위로가 있어 감동적이다.

■ 소설가 공선옥은

1963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했다.

1991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단편 「씨앗불」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내 생의 알리바이」 「멋진 한 세상」, 장편소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시절들」 「수수밭으로 오세요」, 연작소설 「유랑가족」, 장편동화 「상수리 나무집 사람들」, 산문집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등이 있다.

‘여성신문학상’(1992), ‘제13회 신동엽창작기금’(1995), ‘제36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4), ‘제2회 올해의 예술상 문학부문’(2005) 등을 수상했다.

■ 수상작 「명랑한 밤길」은

소설가 공선옥씨가 지난 2002년 「멋진 한 세상」 이후 여러 문예지에 발표했던 작품을 묶어 5년 만에 내놓은 자신의 네 번째 소설집. 지난해 ‘제1회 백신애문학상’을 수상했고, 표제작 「명랑한 밤길」은 2006년 ‘작가가 선정한 올해의 소설’에서 최우수작품으로 선정된 바 있다.

‘상처받은 이웃 보듬고 껴안기’라는 점에서 이 작품집도 여지없는 ‘공선옥표 소설’이다.

표제작 「명랑한 밤길」은 치매에 걸린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간호조무사가 병원을 찾은 남자에게 이끌려 꿈같은 연애를 하지만, 결국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버림받는다는 내용. 이밖에도 미혼모의 슬픔을 다룬 「79년의 아이」, 무책임한 가장과 가부장제의 모순을 고발한 「별이 총총한 언덕」, 남편의 부도로 이혼하고 아픔을 겪는 여자의 이야기 「도넛과 토마토」 등 모두 12편의 작품이 실렸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평범한 삶조차도 허락받지 못하며, 여기저기서 상처를 받고 비루한 일상을 꾸려나간다. 그러나 이들은 상처를 숨기지 않고 타인에게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불행과 화해하고, 삶의 희망과 가능성을 발견한다.

문학평론가 백지연씨는 “공선옥 소설에서 볼 수 있듯, 제도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현실은 타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소중한 매개체가 된다”며 “유머러스하고도 생생한 화법으로 전달되는 이들의 이야기는 ‘낯익은 슬픈 풍경’ 속에 숨은 삶의 뜻을 새롭게 건져 올리게 한다”고 평했다.

곽승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