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사도 2,1∼11 (모든 신도들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제2독서 Ⅰ고린 12,3b∼7.12∼13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복 음 요한 20,19∼23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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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 대축일을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오순절은 구약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이 말은 '펜테코스테 (Pentecoste)'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50'이라는 숫자를 말합니다. 구약에서의 오순절은 과월절부터 시작하여 50일째 날에 거행되었는데 성령 강림도 구약의 오순절 날에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때가 부활부터 시작하여 50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성령 강림이 구약의 오순절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의 오순절은 본래 농경 축제로서 그 해의 첫 곡식을 하느님께 감사의 뜻으로 봉헌했던 것을 기념하는데 과월절, 초막절과 더불어 유대인의 3대 축제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뀜에 따라 농경 축제는 계약 사상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즉 이스라엘이 에집트를 탈출하여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받고 계약을 맺은 것이 꼭 50일째 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은 뒤에 율법에 따라 생활했다면, 신약의 백성들은 성령 강림 사건 뒤에 성령에 따라 살게 됩니다. 실제로 주님의 제자들이 이 사건을 통해서 얼마나 크게 변화되었는지 모릅니다. 겁쟁이요, 바보요, 무식했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얼마나 능력있고 지혜로우며 담대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 제자들이 본격적인 전도 사업에 들어갔다 해서 이 날을 교회 창립일로 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선 일찍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제 당신이 입으셨던 육신을 감추시고 새로운 모습으로 제자들 곁에 계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육신이 보이진 않아도 주님이 계실 때와 같은 하느님의 능력으로 살기 위해선 성령이 오셔야 했습니다. 마치 육을 가지고 오신 사건이 성탄이라면 영으로 새롭게 찾아오신 사건이 성령 강림입니다.
성령은 누구십니까?
언젠가 모 성당의 임원들에게 성령에 대해서 물어 본 적이 있었 습니다. 성부가 아버지요 성자가 아들 예수님이라면 성령은 그럼 누 구시냐고 물었더니 서로 눈치만 보며 대답을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까지는 아는데 성령이라는 개념은 머리에 잘 잡히지 않는가 봅니다.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입니다.
성령은 사실 이해하기가 애매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똑같은 위격을 가지신 독립된 존재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하나로 어우러지는 단일체입니다. 그런데 그 성령이 다름 아니고 바로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함께 뿜어 나오는 기운이요 영입니다. 또는 사랑이나 능력이라 말할 수도 있으며 힘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을 하느님답게 하는 힘, 아들을 아들답게 하는 능력이 성령입니다. 따라서 성부와 성자에게서 성령을 빼면 하느님은 빈 껍데기가 됩니다. 마치 기름없는 자동차와도 같습니다.
믿는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믿는 우리에게서 성령을 빼 버리면 우리는 마치 허수아비 신자에 불과합니다. 겉은 번지르르하니 그럴 듯하지만 속은 알맹이가 없는 빈 깡통과도 같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하고 봉사를 한다고 하지만 마치 깨진 독에 물 붓는 격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그런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어떤 분은 성령 세미나를 통해서 은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상한 언어도 하고 치유의 은사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환자 방문과 철 야기도, 또는 교회 봉사에 앞장을 서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독선이 심하고 아집에 묶여 있으며 남을 험하게 판단하는지 모릅니다. 한번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용서가 없습니다. 어느 땐 신부님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위 은 혜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자기 지혜에 걸려 쓰러졌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주 은사에 집착합니다. 그것은 마치 꽃처럼 아름답고 근사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근하게 드러나는 열매가 더 중요합니다. 사랑이니 절제니 친절이니 온유니 하는 것들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소중하게 요청되는지 모릅니다.
오늘 제자들에게 강림하신 성령께서는 여러분에게도 머무시기를 진정 원하십니다. 그것은 또 예수님의 약속이면서 동시에 그분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깊은 믿음과 진실한 회개로써 그분의 사랑을 충만하게 받도록 합시다.
"오소서 성령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