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사도 1,1∼11 (예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다)
제2독서 에페 1,17∼23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하늘 나라에 불러 올리셔서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복 음 마르 16,15∼20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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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승천 사건은 우리의 믿음에 큰 희망과 기쁨을 안겨 줍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승천으로 우리도 승천할 수 있고 또한 승천하게 되는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목적은 부활 승천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보다 값지게 살아서 아버지의 나라를 차지하는 것이 우리가 진정 바라는 소망입니다. 여기서 승천이란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 가는 것을 말합니다. 승천은 결코 하늘로 올라가는 물리적인 현상만은 아닙니다.
옛날 사람들이 생각할 때 하늘은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곳이요 땅은 인간의 자리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지상의 임무를 마치고 승천하셨다는 것은 구름을 뚫고 우주의 저 먼곳으로 가셨다는 사건이 아니며 아버지의 그 영광의 자리에 다시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의 길을 인간들에게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승천은 그래서 주님의 기쁨이며 동시의 우리 자신의 기쁨입니다.
시골에 사는 어떤 부부 교사가 있는데 남편이 해외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부가 서로 떨어져 있을 것을 생각하니 아내는 막막했습니다. 남편이 잠시라도 없는 세상은 도저히 못 살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말하기를 자기가 먼저 가서 자리를 마련하고 그리고 아내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래서 2년 동안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어서 부인도 남편이 있는 곳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학업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승천은 바로 이런 만남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상에 40일 동안 머무셨다는 것은 시간적인 의미보다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대로, 하실 수 있는 최고의 기간을 통해서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교회 창립을 준비하 셨다는 뜻이 됩니다(40이라는 숫자는 충만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처럼 각별한 신경을 써 주셨고 능력과 지혜와 신앙이 부족한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승천의 이별은 성령으로 만남의 기쁨을 보상해 줍니다.
주님이 안 계신 세상은 두렵고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제자들은 그래서 서운함과 불안함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했습니다. 그들은 학식도 부족했고 대중 설교를 할 만한 수준도 아니었으며 또한 정치 세력이나 유대교의 보수적인 수구 세력들 앞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두 천사가 나타나서 위로를 해 줍니다. "그분은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주님은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먼 미래의 세상 종말에 다시 오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외롭고 쓸쓸할 때 다시 오십니다. 또한 실패와 좌절 속에서 몸부림치고 죄와 미움에서 괴롭게 헤맬 때 그분은 오십니다. 분명히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안에서 그분을 체험하는 것이 일종의 승천이요 그것이 또한 승천 대축일을 지내는 뜻이 있습니다.
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잘 아는 어떤 형제를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본래 술 담배로 찌들어서 몸이 많이 상해 있었고 표정도 늘 어두웠습니다. 그런데 왠지 얼굴 전체가 개운하게 보일 정도로 맑아 있었고 표정도 크게 밝아 있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새 사람이었습니다. 뭔 일이냐 했더니 술 담배를 끊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본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또한 일종의 승천입니다.
우리는 어찌 보면 탕자의 비유(루가15,11∼32)에 나오는 작은 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서 불성실한 삶으로 자신의 가치를 내던져 버린 불행한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내 고집대로 살면 거기에 행복이 있고 참 기쁨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많은 실패가 있었고 허위와 기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자신의 모순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이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 다. 바로 거기서 주님을 믿고 매달리는 신앙에 이르게 됩니다. 이와 같은 만남이 또한 승천이 주는 의미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나날이 우리가 죄에서 용서받으며 또한 함께 동행하시는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기쁨이 승천에서 완성이 됩니다. 참고 기다렸던 보람, 사랑하고 용서했던 숱한 아픔들이 바로 거기에서 보상을 받습니다. 승천은 그래서 분명한 보상입니다. 그리고 보상은 자기가 행한 대로 되돌려 받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