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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16세 탄생 특집]역사 속 교황들

주정아
입력일 2005-04-25 수정일 200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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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6세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제2회기를 시작하며 기도하고 있다.
세계평화·인류구원에 노력한 교회의 목자

초세기 이단에 맞서 교회 기틀 다져

20세기 국제 사회문제 지도에 한몫

교회의 통괄적 최고 사목자인 「교황」은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세계 역사 안에서 그 어떤 종교지도자나 국가수반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영향력과 잠재력을 펼쳐왔다. 특히 근대 이후 교황들은 고고한 권위를 누리는 지도자라기보다 소외된 이웃을 찾아나서는 친구로서의 모습을 보이며 비신자들에게도 친숙한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종교와 국경을 훌쩍 뛰어넘어 복음화를 실현해온 역대 교황의 활동과 업적 등을 간략히 살펴본다.

■ 초세기 교황

세계사 안에서 가장 오래된 제도 중 하나가 「교황제도」이다. 교황의 역사는 사도 성 베드로(~64)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뒤를 이어 총 264대 교황이 재임했으나 베네딕토 9세가 퇴위와 복위를 되풀이해 실제 교황직을 거친 이는 요한 바오로 2세까지 262명이다.

이들은 역사 안에서 종교지도자일 뿐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문화예술 후원자로서의 역할도 동시에 해오곤 했다.

초세기 교황들은 이단과 싸우며 교회의 기틀을 다지고 발전시키는데 큰 힘을 쏟아왔다.

성베드로의 첫 번째 후계자는 리노(64~79) 교황이다. 그러나 초기교회 때에는 로마 권력층의 종교박해가 교황들에게까지 미쳐 고르넬리오(251∼253), 루치오 1세(253~254), 식스토2세(257~258) 등은 유배되거나 처형됐다. 이러한 박해는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국교화하고 적극 장려함으로써 일단락되긴 했다.

교황의 수위권을 적극 주장하고 이단을 강하게 배척한 교황으로는 성 다마소 1세(366~384)와 성 레오1세 (440~461), 성 그레고리오 1세(590~604) 등을 꼽을 수 있다.

성 레오1세는 역사상 베드로좌에 등극한 최초의 실세교황으로 평가받은 이로서 교황을 현세 교회의 통괄적 최고 사목자로 안착시키는데 큰 힘을 쏟았다.

■ 중세기 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590~604)는 옛 로마 제국의 멸망에도 불구하고 서유럽 교회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그는 영국을 개종시키고 로마주교에 대한 동로마 황제의 압력을 물리쳐 중세유럽의 중심에 섰다. 특히 중세 전 중세기 동안 사제양성의 기초가 된 「사목규정」을 저술하고 미사를 개혁했으며 미사 전문을 오늘날의 형식으로 만든 업적 등으로 유명하다.

7~10세기의 교황들은 정권의 비호와 간섭을 받으면서 수위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10~11세기에는 정권의 동요와 경제불황 등으로 사회혼란을 겪었으며, 교황권이 약화되면서 성직자 기강이 문란해지고, 성직 서임권을 놓고 왕권과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880~1046년까지는 이렇게 「암흑의 시기」라고 불리는 교회사가 이어진다. 이 160여년 동안에는 48명의 교황이 제위하는 혼란한 양상을 보인다.

또 1054년에는 해묵은 수위권의 시비로 동방교회는 로마교회와 관계를 단절하게 됐다.

그레고리오 7세(1073~1085)는 왕권으로부터 교권을 해방하고 가톨릭교회의 영성적 권위를 다짐으로써 이러한 상황을 종결시켰다. 그는 수도원의 도움을 받아 교회 각층의 개혁을 단행했고 교회가 교황을 통해 쇄신될 수 있음을 드러냈다. 이후 12~13세기 교황들은 공의회를 여러번 열어 교회개혁과 동서방교회의 재일치를 시도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특히 이 시기의 교황들은 십자군 전쟁이라는 과오를 적극 지지했으며 인노첸시오 3세(1198~1216)는 공의회를 통해 십자군 원정을 결의하기도 했다. 또 교황에 대한 여러 유언비어가 난립하고 교황직을 독재자가 좌지우지해 권능이 훼손되거나 교황직이 격하되기도 했다. 1305년 교황권이 프랑스 세력하에 놓이고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져 이후 로마와 아비뇽에 각각 교황이 있는 「교회의 대분열」과 서구 대이교 사태(1378~1417)가 발발한다. 이때에도 여러 「대립 교황」들이 출연했으며 교황의 위신은 크게 떨어졌다.

보니파시오 9세(1389~1404)는 성직 매매와 면죄부 판매 등으로 악평을 받고 교황의 명성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이렇듯 혼란한 상황을 반영하듯 14~15세기 교황 중에는 성인으로 시성된 교황이 한명도 없었다.

■ 근세기 교황

종교개혁 후 교황권은 약화됐으나 바오로 3세(1534~1549)는 1545년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교회를 체계화하고 교회생활의 모든 분야를 쇄신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비오 5세(1566~1572), 그레고리오 13세(1572~1585), 식스토 5세(1585~1590) 등은 교회 개혁과 쇄신에 힘을 기울여 교회를 부흥하는데 힘썼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서유럽 열강들의 압박으로 교황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1870년에는 천년 동안 유지돼온 교황령이 이탈리아에 합병됨으로써 교황의 세속권을 놓게 됐다.

19~20세기의 교황들은 산업혁명과 세계대전, 공산주의, 매스미디어를 통한 물질주의의 파급 등 더욱 심각한 도전들을 받아왔지만 군주로서의 교황보다는 「목자」로서의 교황의 모습을 의연히 지키며 세계평화와 인류구원을 위한 노력에 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비오 9세(1846~1878)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해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지권을 신조로 선언한 교황이다.

■ 20세기 교황

20세기의 교황들은 특히 초국가적 입장에서 국제문제를 비롯한 각종 윤리.사회문제를 지도해왔으며 세계평화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레오 13세(1878~1903)는 민주주의를 승인하고 노동문제 해결에 힘썼으며 비오 10세(1903~1914)는 전례운동을 촉진, 베네딕토 15세(1914~1922)는 교회법을 개혁했다.

비오 11세(1922~1939)는 공산주의를 단죄하고 사회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는 한편 세계 선교사업을 크게 촉진하고 바티칸시국의 독립을 달성했다. 이어 비오 12세(1939~1958)는 성모승천교리를 선포한다.

현대교회의 새로운 미래를 향한 길을 열어놓은 역사적 교황으로는 요한 23세(1958~1963)가 꼽힌다. 그는 「착하신 교황 요한」이라는 별칭에서도 드러나듯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받은 교황이었다. 최초로 로마에서 시노드를 열어 사목과 신앙생활에 새로운 자극을 제공하려고 노력했고, 교회법을 새로 편찬했다. 특히 교회쇄신과 세상을 향해 열린 교회를 선언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열었다.

뒤이어 바오로 6세(1963~1978)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으며 교리와 교회활동 지침과 규범들을 명확히하고 성체성사에 관한 교리를 설명했다. 또 세계 각국의 분쟁해결을 위해서도 큰 힘을 쏟았다. 그는 김수환 추기경을 서임했으며 병인박해 순교자 24명을 시복하기도 했다.

요한 바오로 1세(1978)는 안타깝게도 서임 33일만에 선종했다.

지난 4월 3일(한국시간) 선종한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는 공산주의 붕괴 등 세계평화와 동서교회 일치, 종교간 대화에 큰 역할을 한 「평화의 사도」로 일컬어진다. 사회정의와 윤리를 다지는 교회 가르침을 다수 발표했고 특히 대희년을 기점으로 지난날 교회가 저지른 과오를 사과하는 역사적인 의미깊은 업적을 남겼다. 또 현재까지 해외순방을 가장 많이 실현했으며 가장 많은 성인을 시성한 교황으로 남았다.

■-교황 2000년사 기록들-

역대 교황들 중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이는 78명이었으며 8명은 시복됐다. 교회 최고 존칭인 「대교황」의 칭호를 받은 교황은 성 레오1세와 성 그레고리오 1세 단 두명이다.

또 모든 교황이 종신직으로 직무를 수행했던 것은 아니었다. 베네딕토 9세 이전엔 7명의 교황이 자리를 내놓았고 이후에도 5명의 교황이 다양한 이유로 퇴위했다. 21명의 교황이 순교했으며 6명은 살해되기도 했다.

최장수 교황은 성 베드로로 34년간 교회를 이끌었다. 우르반 7세(1590)는 말라리아에 걸려 즉위식도 갖지 못한 최단기 재임 교황으로 알려져있다. 사임을 한 교황도 있었다. 사임한 첫 교황은 폰시아노(230~235)로 기록돼 있다. 그는 로마 박해로 인해 추방당해 로마의 후계자를 정하기 위해 자진 사임했다.

레오 8세(963~965)는 역사상 첫 평신도 출신 교황이었다. 그는 교황 즉위 전 주교임명을 먼저 받아야했다.

역대 교황 263명중 210명은 이탈리아인이었고 프랑스인 16명, 고대 그리스권 출신 12명, 중동출신 9명, 독일 6명 등이다.

교황 명칭 중 가장 많이 선택된 것은 「요한」이다. 23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그레고리오」가 16명, 「베네딕토」가 16명 있으며 「클레멘스」와 「레오」 「인노첸시오」 「비오」도 많이 선택됐다. 「베드로」는 초대 교황만을 위해 쓰도록 정해져있다. 교황 중 처음으로 개명한 이는 요한 2세(533~535)로 이교도 신인 「메르쿠리우스」라는 이름을 바꿨다.

한편 대립교황은 교회법에 따라 선출된 교황에 대립해 부당하게 교황위를 주장하거나 행사한 성직자를 말한다. 역사상 총 37명의 대립교황이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다.

주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