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대전으로 중세학문 집대성”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의 절대적 근원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도구로 행동”
-창조의 자율성, 고유 활동들을 지니고 있는 다양한 피조물들, 자연의 질서와 아름다움으로 인도하고,
-인간 인격의 수용력, 독립성, 책임감으로 인도하며,
-창조에서 드러나고 예수에 의해서 계시되는 하느님의 깊이로 이끌고,
-삶과 활동의 절정으로, 그리고 행복이라는 그들의 목표로 인도하며,
-삼위일체의 지혜와 사랑에 참여하도록 불림을 받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생명원리를 부여받은 인류에게로 인도한다.
이상은 학자들이 밝히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적 특성들이다.
그의 사상은 어떠한 「새로움」에 압도적 인상을 받았던 동 시대인들에 의해 일부가 이단으로 취급받기도 했으나 결국 아우구스티노를 기원으로 하는 「교부사상」 「아리스토텔레스」 「신 플라톤철학」 「이슬람」 「유다사상」 등의 풍부한 유산을 계승하면서 「아퀴나스적 총체」로 불리는 독창적 사상체계를 확립했다.
또한 그는 신앙과 이성, 신학과 철학의 통일성을 추구하였으나 이것은 한편 「학」(學)으로서의 신학 정립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율적 학문으로서의 철학적 기초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신학대전
토마스 아퀴나스의 업적을 얘기할 때 많은 부분을 언급할 수 있지만 학자들은 『무엇보다 토마스는 마지막까지 대학의 위대한 스승으로 남는다』고 들려준다.
즉 토마스는 「가르친다」는 것을 가장 숭고한 정신적 삶의 형태라 보았고 진정한 스승은 신입생 입장에서 생각하고 학생 스스로 가지고 있는 진리를 이끌어 낸다고 여겼다. 「신학대전」을 비롯한 그의 역작들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의 과정에서 태어날 수 있었다.
「신학대전」(Summa theological)은 토마스가 7년이라는 시간을 저작에 바쳤으면서도 완성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미완의 책이면서도 신학대전은 「대작」(opus magnum)으로 평가받는다.
3천 개의 논항을 포함하고 있는 신학대전은 흔히 고딕대성당으로 비유되는데 그것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라 다양한 여러 부분이 상호 질서와 조화를 유지하면서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한점을 향해 수렴한다는 공통적인 근본 구조 때문이다.
신 창조론, 윤리론, 그리스도 성사 등 전 3부로 구성된 신학대전은 신학적 관점에서 「중세 학문의 집대성」이라 불리며 내용은 1) 존재로서의 하느님, 2) 선으로서의 하느님, 3) 구원받기 위하여, 강생한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타락한 상태의 인류가 하느님에게 도달하는 길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서술 양식도 독특한데 중세 대학 특유의 「토론」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를테면 2669개 항목 모두 「…인가?」라는 의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상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느님」을 모든 피조물들의 절대적 근원으로서 「필연적 존재」로 보았다.
하느님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현실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창조주이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분이 있는 모든 것의 원인이시라는 것이다. 이밖에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은 이러 저러한 분이 「될 수 없다」는 것 뿐 이라고 밝혔다.
또 「영원성」이란 하느님에게만 속한 것으로 하느님의 전능이란 당신이 뜻하는 바를 무엇이든 발생시킬 수 있다는 뜻으로 설명했다.
피조물에 대해서는 「자율성」을 주장했는데 그러한 의견은 신학 안에서의 인간 이성의 위치, 인간의 자유와 하느님의 전능, 정치 사회에 관한 그의 사상을 결정하는 주요 맥락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토마스는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에게서 독립적이기 때문에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자율적이라고 밝혔고 창조주의 활동은 피조물의 활동에 제한을 가함으로써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조물들이 자율적으로 존재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피조물이 자유로운 것은 하느님의 활동에도 불구하고도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활동 때문에 자유로운 것이라는 사고를 폈다. 즉 자유로운 행동들은 결국 하느님에 의해 일어나는 피조물들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자유란 하느님과의 어떤 거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원인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 하느님 능력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하느님의 존재를 인지한다는 것은 곧 우주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구별들을 함께 초월하는 것을 인지한다는 것으로 주장했고 모든 피조물들은 하느님의 도구로서 행동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피조물을 서로 대조적인 두 개의 것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며 어떠한 피조물도 하느님에 필적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는 육체로 하여금 인간 육체의 작용을 하는 인간 육체를 만드는 일 그 이상의 일을 가지고 있으며 육체를 초월하면서, 또 그러한 활동들의 원리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체가 되더라도 영혼은 존재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 그 자체로 인간이 아니며 부활이라는 계시 교리가 없다면 인간에게 있어 죽은 자의 소생이란 말할 수 없다」는 바를 명백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