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들 하느님 현존 확신
가톨릭 성령쇄신 운동의 발단
성령기도회에 참석하는 회원들은 ‘기도회의 참석으로 영성적으로 두드러진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49%가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응답했고, 21%가 성서묵상의 시간이 많아졌다고 응답했다.<도표참조>
성령쇄신 운동이 개인의 영성 생활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본당의 성령기도회는 여전히 교회 사목의 저변(低邊)에 놓여 있는 실정임을 인지해야 하며 그러기에 더욱 성령쇄신 운동의 영적 가치는 재조명되어야 하고 또한 그 가치는 공유되어야 한다.
맥도넬과 몬타그(Kilian McDonnell and George Montague) 가 저술한 ‘성령 안에서의 크리스천 입문과 세례’라는 책에서 저자는 “바오로 서간들과 사도행전에 따르면 은사는 신자들의 삶을 증거 하는 일반적인 수단”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또한 “초세기에 ‘성령세례’는 규범적인 것이었다”고 덧붙인다. 그들은 성령의 힘이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의 한 부분이며 다양한 은사를 통해 명백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도록 도와준다. 이제 ‘예’라고 응답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 성령세례를 택하는 것은 “교회에 속하는 크리스천 입문 성사의 충만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한 방법이다. 은사와 성령의 삶은 우리 가톨릭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슨 관련이 있을까?
미국에서 조직적 운동으로 자리 잡은 성령쇄신 운동의 시작은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 있는 듀케인 대학교의 몇 명의 대학생 그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1967년 피정 중에 성령이 그들 안에 넘치는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70년대 중반까지 3만 5000명의 전 연령의 가톨릭 신자들이 성령을 찬미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성령의 능력, 무결성(無缺性), 힘을 구하기 위해 노틀담 대학의 전국 집회에 모였다. 역사적으로도 파도가 절정에 달한 것 같은 순간들, 하느님께서 성령의 돌풍으로 인간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셨던 그러한 순간들이 많았다.
20세기도 그러한 시대 중 하나이다. 결정적인 순간들을 예로 들어보면, 교황 레오 13세가 신자들에게 보낸 ‘Divinum Illud Munus’라 불리는 성령에 관한 회칙(1897)을 말할 수 있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1963~1965) 성공을 위해 거룩한 교황 요한 23세는 새로운 성령강림을 청하면서 “새로운 성령강림에 따라 우리의 일상을 당신의 경이로움으로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함으로써 최근의 성령쇄신을 만든 초석을 놓았다.
1975년 제9회 성령쇄신에 관한 로마의 국제회의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회와 세계는 성령강림의 기적이 역사상 계속되기를 어느 때보다 더 바라고 있습니다. 갈수록 급속도로 세속화되어가는 이 세계에 성령이 일으키는 ‘영적 쇄신’을 증거 하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이 ‘영적 쇄신’이 교회와 세계에 ‘하나의 기회’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라는 인사로 그들을 맞았다.
마르코의 복음16장 15절에서 18절 부분은 그리스도의 사목이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확대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어느 시기에 은사로서의 교회가 끝이 났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만약 그리스도인의 과업이 그리스도와 똑같이 선교를 수행한다면 이 사명의 중요한 요소들을 되찾는 것은 중요하다.
1971년 한국에 들어온 성령쇄신은 1974년 첫 성령세미나를 개최하였고, 이 후 많은 교구와 본당에서 성령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으며, 2006년 현재 서울대교구 총 215개 본당 중 147개 본당이 성령기도회를 운영하고 있다.
문종원 신부(서울대교구 성령쇄신 봉사회 지도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