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겸재 화첩 최초 공개…교회사 희귀 자료도 다수

우세민 기자
입력일 2009-09-22 수정일 2009-09-22 발행일 2009-09-27 제 2666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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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출 100년사 한 눈에” 

구룡폭. 먹으로 그린 것으로 29.6㎝×23.3㎝ 크기다. 외금강에 속한 것으로, 절경이라 이름나 여러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압구정. 비단에 엷은 색을 칠한 것으로 29.5㎝×23.4㎝ 크기다. 세조 때 한명회가 세운 별서로 중국 사신이 왔을 때나 관료들이 연회를 이곳에서 벌일 정도로 자연풍광이 수려하였다.
행단고슬. 비단에 엷게 채색한 것으로 29.8㎝×23.3㎝ 크기다. 공자의 고사를 소재로 한 인물화로, 공자가 벼슬하려 하지 않고 매일 행단에서 제자들과 음악을 연주하며 즐겼다고 한 고사를 그린 것이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수도원장 이형우 아빠스)이 9월 20일 최초 공개한 겸재(謙齎) 정선(1676~1759년)의 화첩 원본은 수도회의 한국 진출 100년을 되새기는 계기와 함께 해외에 반출된 문화재를 의미 있게 반환하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가치를 더한다. 또 왜관수도원이 한국 진출 100주년을 기념해 개막한 기념관에는 겸재 작품 이외에도 100년 역사를 되돌아보는 자료도 함께 공개됐다.

화첩 형태로 처음 선보인 겸재의 희귀 작품 21점은 금강산 구룡폭포를 그린 ‘구룡폭’, 조선 태조 이성계가 머물렀던 함경도 함흥의 궁궐과 주변 소나무를 그린 ‘함흥본궁송’(咸興本宮松) 등 풍경화와 중국의 고사를 소재로 한 작품 등이다.

겸재 정선은 조선 후기 ‘진경산수’(풍경을 직접 보고 그리는 것에 주력하는 방법)라는 독자적 화풍을 일군 작가로 한국 회화사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이번에 공개된 작품들은 겸재의 후기작들로, 진경산수를 넘은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다.

이들 작품은 1925년 한국을 방문했던 당시 성 오텔리엔 수도원장 노르베르트 베버 아빠스(1870~1956년)가 수집해 간 것으로, 2005년 10월 분도출판사 사장 선지훈 신부가 오틸리엔 수도원장 예레미아스 슈뢰더 아빠스를 직접 방문해 돌려받은 것이다.

성 오틸리엔 수도원 측은 선교 100주년을 기념해 영구 임대 형식의 반환을 결정했다. 슈뢰더 아빠스는 2006년 국내 모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국인과 한국 역사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반환을 결정했다”며, “한국은 수도원 역사의 중요한 일부로, 우리가 얼마나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번 반환을 통해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겸재의 작품 이 외에도 1909년 독일 성 오틸리엔 수도원 선교사가 한국에 첫 발을 내디딘 후 100년간의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사진·역사유물 등 다양한 자료도 함께 공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최초의 한국어 미사 경본(1936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년) 이후에야 라틴어 대신 자국어로 미사를 봉헌했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성 베네딕도회에서는 이미 1930년대부터 당시 덕원수도원 루치오 로트(1890~1950년) 원장 신부 주도 하에 한국어 미사 경본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는 증거 자료다.

그 외에도 소실됐던 한국 교회 최초의 공식 성가집(1923년)의 제2판, 진출 초기 두 차례 한국을 방문했던 오틸리엔 수도원장 베버 아빠스의 사진 자료 및 「조용한 아침의 나라」, 「금강산 여행기」 등 저서,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등 조선 순교자의 유해임을 증명하는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의 서명?직인이 들어간 문서(1931년) 등 수도회 뿐 아니라 한국 교회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희귀자료들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9월 20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100주년 기념관 개막식에서 관람객들이 겸재 정선의 화첩 및 한국교회사 희귀자료들을 둘러보고 있다.

우세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