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충만하신 『하느님께서 영(靈)이시고』(요한 4,24) 성령으로 충만 되시어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이 되셨듯이』(고린 1, 15, 45) 우리도 성령으로 충만 되어 『그리스도와 하나의 영이 된다』(고린 1, 6, 17). 이리하여 같은 「영」이 됨으로써 우리는 「영」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고, 「영」이신 예수의 형제가 되어, 그 결과「크리스찬」이 된 것이다. 성령은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 만드시고, 예수의 형제로 만드신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와 예수를 묶으신 「사랑의 끈」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어 이제 예수의 형제가 된 우리를 아버지와 묶어 주시는 「사랑의 끈」이 되셨다. 그러기 위해 성령은 우리를 아버지와 예수와 같은 「영」으로 만드신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 되어 「영」이 된 우리는 성령의 「은혜」와「열매」와「특성」으로 충만 된다. 성령의 7가지 은혜, 「지혜, 깨달음, 의견, 지식, 굳셈, 효성, 두려워함」을 가득히 받으며, 성령의 9가지 열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갈라 5,22)를 풍부히 맺게 된다. 그 결과, 성령의 11가지 특성, 「생명, 빛, 힘, 열성, 자유, 순수, 단일, 단순, 투명, 쇄신, 평온」(성령의 마리아 가르멜과 수녀)으로 충족된다. 「영성생활」은 성령과 성령의「은혜」와「열매」와「특성」으로 채워지면서 더욱「영적 인간」이 되어가는 여정인 것이다.
사람은 어떤 것으로든 간에 채워져야 한다. 성령의「영」으로 채워지지 못하면, 「육」으로 채워진다. 7가지「은혜」로 채워지지 못하면, 7가지의 「죄원(罪源)」, 「교만, 간린, 질투, 분노, 탐식, 색욕, 해태」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성령의 9가지 「열매」로 치워지지 못하면「육」이 빚어내는 15가지의 열매, 「음행, 추행, 방탕, 우상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갈라 5, 19, 21)으로 채워지게 된다.
성령의 11가지의「특성」으로 채워지지 못하면「육」의 12가지의「특성」, 「죽음, 어둠, 슬픔, 부자유, 불안, 불순, 복잡, 간사, 무기력, 흐림, 타성, 미지근함」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바로 이 7가지「죄원」과「육」의 15가지「열매」와 11가지「특성」으로 채워진 인간이다.
우리의 삶은 무엇으로 채워지느냐에 달려 있다. 「영」으로 채워지면「영적 인간」이 되고, 「육」으로 채워지면 「육적 인간」이 된다. 「영」으로 채워지면「육」이 들어올 여지가 없어서, 「영」의「평화, 기쁨, 생명, 힘, 자유, 사랑」등으로 감싸여, 「육」의「불안, 두려움, 슬픔, 부자유, 무기력, 죽음」등이 침입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영」으로 채워지지 못하면 반드시「육」이 들어와, 「육」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육」으로 채워지면「영」이 들어 올 여지가 없어서 더욱 더「육」의 결과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육」이 들어오기 전에 미리「영」으로 자신을 채우고 무장해야 한다.
평소의 나의 생각, 관심, 흥미는「영적인 일」에 있는가? 「육적인 일」에 있는가? 나의 행동은「영적인 동기와 목적」으로 이루어지는가? 「육적인 동기와 목적」으로 이루어지는가? 나의 마음은「영」으로 채워져 있는가? 「육」으로 채워져 있는가? -허전하고 외롭고 욕구불만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상태는 자신을「영」으로 채우지 못한 결과로 일어난 것이다. 감정과 기분에 흐르고 생각이 산만하고 행동이 무질서한 것은 이미「육」이 들어왔으며, 「육」으로 채워지기 쉬운 상태이다. 그러한 상태가 되기 전에 자신을 「영」으로 채워야 한다. 끊임없이 채워가야 한다.
「영」으로 채워지고 영적인 기쁨과 보람을 누리는 삶은 복되고 보람찬 삶이요. 「육」으로 채워지고 육적인 재미와 만족만을 찾아 챙기는 삶은 비참하고 불행한 삶이다. 「영적 삶」은 평화와 기쁨과 생명을 가져다주고「육적 삶」은 불안과 슬픔과 죽음을 가져다준다.
영적 평화와 기쁨과 보람을 맛보고 누리는 것은 영성 생활에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