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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주일 특집] 생태적 생활양식 실천하는 농민·도시생활자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0-07-14 수정일 2010-07-14 발행일 2010-07-18 제 2706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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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촌 살리는 ‘생태적 생활양식’ 실천해야
열다섯 번째 농민주일(7월 18일)이 다가왔지만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매년 2만 헥타르의 농지가 산업 용지나 주거단지로 바뀌고 있으며, 최근에는 농지가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서울 여의도 면적 31배나 되는 농지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살 곳을 잃고 삶의 터전인 농촌을 떠나야 하는 농민들은 깊은 시름에 빠질 수밖에 없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담화에서 힘겨워진 농민과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생태적 생활양식’을 선택해야한다고 호소했다.

농민주일을 맞아, 농촌과 도심에서 생태적 생활을 살아가는 농민과 도시 생활자를 소개하고, 그들의 모습을 통해 생명과 농촌을 살리기 위해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해야만 하는지 고민해 본다.

■ 친환경농법 농사 짓는 남원식 원주교구 농민회 이사

"농약에 지친 소비자·땅 보호하고 싶어"

지난해 처음으로 무농약농법으로 사과를 재배한 남원식씨.
“우리 농산물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똑같은 모양의 공산품이 아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먹을거리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

원주교구 영춘공소 회장이자 교구 농민회 이사인 남원식(비오·63) 씨는 ‘생명을 일구는 농민’이다. 그는 벌써 2년째 무농약농법으로 사과를 재배하고 있다.

농약을 치지 않으면 쉽게 벌레가 생겨버리는 사과 재배 특성상 무농약농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무농약농법으로 인증받은 사과재배 농가가 많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다.

남씨는 10년 간 과수원을 운영해 오면서 지난해처럼 어려웠던 적도 없었다. 과수원을 시작하면서부터 친환경농법을 염두에 두고 저농약농법을 시도했다. 20번 뿌리던 농약을 12번, 9번, 7번, 5번으로 줄였다. 그리고 지난해 처음으로 화학농약을 치지 않으려고 하니 힘든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자료가 너무나 부족했다. 남씨는 직접 문헌을 찾아보고, 무농약농업을 잘한다는 곳이 있으면 찾아가고, 좋다는 교육도 다 들었다.

그 결과 자신만의 방법을 찾게 됐다. 한약초를 달이거나 생즙을 내기도 하고, 인근 산에서 자라는 토착식물을 발효시켜 땅에 묻기도 했다.

벌레도 죽이기보다는 야간등을 켜서 쫓아내고, 잡초도 뽑아내지 않았다. 친환경농법은 말 그대로 농산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화학농약은 재배력 표본이 정해져 있는데 반해서, 무농약의 경우에는 땅에 실험해보면서 그 표본을 만들어야 했어요. 게다가 무농약은 방제력도 정해져 있지 않아 불안해서 자꾸 하게 되더라고요.”

화학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만큼 땅은 그의 손을 더욱 필요로 했다. 힘이 들기는 하지만 남씨가 ‘친환경 농법’을 고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소비자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또한 화학농약 때문에 오염되어가는 땅을 지키고자 했다.

“화학농약에는 별 게 다 있어요. 색을 진하게 하는 농약, 모양을 예쁘게 하는 농약 등을 20회 이상 뿌려야 예쁜 사과가 돼요. 물론 겉모습은 예쁘지만 그것들은 농약을 뿌리는 농민들과 먹는 소비자들에게 좋은 먹을거리는 아니죠. 또 우리가 살아가야 할 땅에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고요.”

다행히 올해는 지난해의 경험을 바탕으로해서인지 농사가 잘 되어가고 있다. 농약을 전혀 치지 않아 모양이 좋지 않았던 탓에 이번에는 사과봉투로 감싸보았다. 그는 아직 결과물에 대한 성과를 판단할 수 없지만 점차 안정되어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친환경농사는 옛날로 돌아가는 거예요. 땅에서 얻은 것을 땅으로 다시 환원한다는 선조들의 생각을 이어받아서 농사를 계속하고 싶어요. 노력하다보면 인식이 바뀌어서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건강한 사과를 찾을지도 모르잖아요.”

■ ‘즐거운 불편’ 실천하는 도시생활자 오윤경씨

“생활 속 작은 실천, 환경 살리는 첫 걸음”

오윤경씨는 “아이들이 살아갈 터전이니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인식을 바꿔야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에서만 평생을 살아온 오윤경(가브리엘라·43·서울 홍제동본당)씨에게 ‘환경’은 먼 이야기였다. 물론 중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도심에서 느낄 수 있는 환경문제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이하 우리농)는 환경과 먹을거리에 대한 인식을 많이 깨우칠 수 있게 도와줬다. 처음에는 우리농의 설립 취지가 좋아 농산물을 구입해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다. 그러던 중 본당에 ‘하늘땅물벗’ 매장이 생기면서 봉사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농에서 하는 교육을 매년 접할 수 있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까지도 깨닫게 됐어요. 도시 생활자들의 환경인식이 절실하게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까지요.”

최근에는 우리농 홍보지에 ‘즐거운 불편’을 주제로 한 칼럼을 쓸 정도로 열혈 활동가가 됐다. 자연스럽게 그의 생활도 즐거운 불편의 연속이다. 종이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제지 산업이 정유 산업만큼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는 이면지를 사용하고, 재활용품도 다양한 마크가 있다는 것을 배우면서는 분리수거를 할 때도 신경을 쓰게 됐다.

또한 하늘땅물벗 매장에 비닐봉지를 없애고, 책을 사기보다는 도서관을 이용한다. 아이들 등하교도 차를 이용하기보다는 걸어다니는 편을 택했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생활 속 실천이 오히려 크게 느껴졌다.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 실천이 부족해요. 오히려 제가 많이 배우고 신경쓰게 되죠. 즐거운 불편이 결코 어려운 게 아니에요. 있어서 편하지만 없어도 되는 것들을 포기해 나가면 그것도 곧 익숙해지거든요.”

그가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유치원생 딸 때문이다. 첫째 아이는 자신을 ‘환경 지킴이’라고 지칭하면서 크면 환경운동가가 되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특히나 둘째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과제로 내준 ‘즐거운 불편’ 덕에 몰랐던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이 결국에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곳이잖아요. 지금이라도 아이들을 위해서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바꿔줘야 한다면 바꿔주는 게 부모의 역할인 거 같아요. 결코 늦지 않았으니까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시부모도 오씨의 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손자들을 생각하며 어렵다는 친환경농법으로 전환한 시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농산물에 서려있는 농민들의 수많은 노고를 느낄 수 있었다. 서울 우리농에서 실시하고 있는 ‘가족농 사랑기금’에 적지만 기금을 지원한 것도 이런 마음이 바탕이 됐다.

“수입품을 사먹으면 왠지 농민들에게 죄송한데, 우리 농산물을 먹으면 뿌듯해졌어요. 농민들은 우리 생존을 쥐고 계신 권력자세요. 뭐든지 ‘생명’이 첫 째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도시생활자들의 인식을 바꿔나가야 할 때인 것 같아요.”

■ 가농·우리농과 함께하는 생태적 삶

생태적 삶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먼저 가톨릭농민회와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

농촌과 농민의 권익보호에 앞장 서온 가농은 1990년부터 20여 년 간 생명농업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농은 도농교류를 통해 생명농업을 확산시키고자 설립됐다.

두 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면, 우선적으로 우리 땅에서 자라난 신선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믿고 구입할 수 있다.

또한 회비가 생명공동체운동과 우리농촌살리기운동로 사용되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낼 수 있다. 회원 가입은 인터넷과 가까운 매장에서 가능하다.

www.ccfm.or.kr 가톨릭농민회

www.wrn.or.kr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www.woorinong.net 수원교구

www.wefarm.or.kr 대전교구

www.canong.or.kr 광주대교구

www.dcwrn.or.kr 대구대교구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