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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누구인가?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0-08-26 수정일 2010-08-26 발행일 1999-06-27 제 2157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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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후계자로 전체 교회 중심
10억 가톨릭의 아버지

전세계 10억 가톨릭 신자들의 영적 아버지로서 교황을 가리키는 파파 「Papa」는 말 그대로 「아버지」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 말은 원래 주교, 대수도원장, 총주교 등 지역교회 최고 장상을 지칭했으나 8세기부터 로마의 주교를 의미했고 그레고리오 7세 교황(1073~1085)부터는 온전히 교황에게만 사용되기 시작했다.

교황을 부르는 칭호는 여러가지가 있다. 로마교회의 주교, 베드로의 후계자, 주교단의 으뜸이며 바티칸 시국의 국가 원수이기도 하다. 이들 명칭들은 각기 독특한 지위와 책임을 표시한다.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교황의 지위는 예수가 구체적인 공동체로 당신의 사도들을 선택하고 파견함에서 비롯된다. 예수는 이들 사도들에게 교회를 지도할 권한을 주었으며 그중 시몬을 「베드로(반석)」라 개명해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운 것이다. 교황의 수위권은 바로 이러한 성사상의 서술에서 잘 드러난다. 교황은 아울러 「세계 주교단의 단장」으로서 실제적으로 현세교회의 최고 사목자이다.

예언직, 사제직, 왕직의 직무

교황의 직무는 진리를 가르치는 예언직과 이에 상응하는 교도권, 인간을 성화하는 사제직과 신품권, 교회를 다스리는 왕직과 통치권으로 나눌 수 있다.

교도권은 주교들이 통상 권위로 가르치는 것을 통상 교도권, 세계 공의회나 교황 직위를 발동해 가르치는 것을 장엄 교도권이라 한다. 장엄 교도권으로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최종 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절대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신앙이다.

교황의 신품권은 다른 주교들의 신품권과 같다 통치권은 그 수위권 때문에 모든 성직자들의 통치권을 능가하고 포괄한다. 교황의 통치권은 주교를 포함한 모든 신자에게 미치고 교회의 사명 수행에 직접 관련되는 모든 사항에 해당한다. 현대 국가의 삼권분립은 교황에게 해당되지 않으며 입법, 사법, 행정의 삼중 통치권의 최종 결정권자는 교황이다.

교황직의 역사

초대교회부터 로마 주교는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위치로 전체 교회의 중심 인무리었다. 칼체돈 공의회(451)때 교황 수위권이 확립됐고 서로마제국 멸망 당시 서유럽의 정치적 혼란에 즈음해 교황은 교회뿐 아니라 서유럽의 수호자로 등장했다. 하지만 6~7세기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들이 수위권에 도전함으로써 결국 동서 양교회의 분리 소지가 마련됐다.

7세기부터 10세기, 교황들의 수위권 행사가 어려워졋고 11세기에 이르면서 서유럽 사회와 교회가 혼란에 빠지면서 동방교회는 해묵은 수위권 문제를 제기, 1054년 로마교회와 관계를 단절했다. 이후 교황의 권위는 서방에 국한됐다.

문예부흥사조와 지리상의 발견, 종교개혁을 겪으면서 교황의 위치는 결정적으로 흔들렸다.

트리엔트 공의회로 개혁기를 맞은 교회는 활력을 되찾았으나 17,18세기에 정교분리사상의 대두로 세속사에 대한 교황의 영향력은 크게 약화됐다. 프랑스대혁명과 나폴레옹의 승리, 19세기에는 근 천년간 유지된 교황령이 이칼리아에 합병돼 교황의 속권은 영구히 무산됐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는 속권에서 벗어난 교권을 확고히 확립했고 이후 현대의 사회문제에도 훌륭한 지침을 제시한 위대한 교황들이 탄생했다. 세계는 더욱 탈그리스도교화했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황은 교회 안팎에서 정신적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교황의 상징물

◐교황관…「삼중관(tiara)」이라고 불리우는 교황관은 초대교회 때부터 교황이 새로 선출될 때 대관식에서 사용한 관이다. 원래 일층이었으나 1295년 이중관이 됐고 14세기에 이르러 교황의 세 직무, 즉 통치권, 신품권, 교도권을 뜻하는 삼중관이 됐다.

◐교황문장…교황문장은 교황관을 쓴 금열쇠와 은열쇠로 구성돼 있는데 하나는 오른쪽, 다른 하나는 왼쪽으로 경사지게 놓여 서로 교차되어 있다. 교차하는 두 열쇠는 하늘과 땅에서 묶인 죄를 푸는 교황의 영적 권능을 상징한다.

◐교황기…바티칸시국의 국기인 교황기는 수직으로 이등분된 흰색과 황색으로 구성돼있다. 백색부분에는 교황문장이 그려져 있다. 이 기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 때 공식 승인된 것으로 이는 1342년 아비뇽에서 교황 베네딕또 12세가 채택했던 것과 같은 모양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