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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복음살이] 4대강 사업으로 삶의 터전 잃는 농민들

권선형 기자
입력일 2011-07-13 수정일 2011-07-13 발행일 2011-07-17 제 2755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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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신문에 비친 세상
개발·물질주의에 짓밟힌 생명의 터전
4대강 공사로 7800만여 ㎡ 농지 사라지거나 강제 수용
수십 년 간 농사지어도 보상 못 받고 내몰리는 경우 많아
농민 아픔 함께 나눌 때 ‘우리의 고향’ 농촌 지킬 수 있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두물머리 강변. 4대강 사업에 두물머리 유기농지가 포함되면서 이곳 농민들은 땅을 잃고 내몰릴 처지가 됐다.
■ 농지를 떠나는 농민들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서규섭씨는 최근 2년여 간 농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농사짓고 있는 두물머리 유기농지가 4대강 사업에 포함되면서 땅을 잃고 내몰릴 처지가 됐다. 함께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정부의 회유와 협박으로 더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씩 떠나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처음 농지와 농업을 지키기 위해 함께했던 농민들은 80여 명이었으나 이제 남은 농민은 4개 농가 5명뿐이다.

서씨는 “유기 순환적인 생명농업을 하고 있는 농민들에게 정부는 그동안 삶의 터전이자 일터였던 두물머리를 떠나라고 갖은 회유와 협박을 일삼아 왔다”며 “이는 생명보다는 개발, 편의주의, 물질주의에 빠져 생명의 근원인 농업, 농촌을 너무 하찮게 보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했다.

개발지상주의 늪에 빠진 4대강 사업으로 농민들이 ‘농지’를 잃고 있다.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될 농민들은 4대강의 하천 둔치에서 농사를 지어온 전국 2만4763명. 4대강 사업에 따라 사라지거나 강제 수용되는 농지만 7868만㎡(2380만 평)에 이른다.

최근 조정식 의원(민주당)이 국토해양부에서 입수한 ‘지자체 하천점용 경작지 현황·사업구간 내 사유지’ 자료에 따르면, 점용허가를 받은 전국의 농민 2만1930명이 농사짓는 하천 둔치 농지 5286만㎡(1599만 평)이 4대강 사업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점용허가를 받지 않은 2833명이 농사짓는 919만 ㎡(278만 평)의 농지 역시 사라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적으로 2만4763명의 농민들이 농사짓는 6205만㎡(1877만 평)의 하천 둔치 농지가 사라질 예정이다. 이 농지들은 4대강 사업 과정에서 파헤쳐져 물에 잠기거나 둔치공원, 자전거 도로, 산책로 등으로 바뀌게 된다.

산딸기가 국내에서 가장 먼저 출하되는 것으로 유명한 경남 김해시 상동면 포산, 매리마을에 사는 70여 가구 200여 명의 농민들도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마을을 떠나야 할 형편에 놓여 있다. 또 전남 나주시 노안면 학산리 59가구 주민 200여 명도 영산강 승촌보 인근에 36만8000㎡ 규모의 생태호수공원이 들어서면서 생태 터전을 잃게 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33만2000㎡의 토지에서 돌미나리를 생산해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어 높은 소득을 올려왔다. 하지만 마을 앞을 흐르는 영산강에 승촌보가 건설되면서 인근 돌미나리 경작지가 공원 터로 편입돼 삶의 터전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하천부지 점용허가를 받지 않고 수십년 간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은 보상도 받지 못하고 농지를 잃게 됐다. 경북 고령군 낙동강 둔치에서 농사를 짓던 400여 농가 농민들은 4대강 사업으로 하루아침에 한 푼 못 받고 농지에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 자본주의의 폐단, 토지수탈

4대강 사업으로 인한 토지수탈은 생명의 토대인 농지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현대사회 물질만능주의의 폐단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진행하며 4대강 하천 둔치의 농경지를 둔치공원, 자전거도로, 산책로로 바꿀 예정이다. 농업, 농지를 어떻게 보호하고 장려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보다는 단순한 상품으로 인식하고 4대강 사업을 강행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러한 모습은 신자유주의에 영향을 받아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토지수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도 동부의 오리사주 주민들은 포스코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철광산 개발과 철강공장 건설에 따라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있으며, 우루과이 프라이벤토스시의 주민들 또한 심각한 강물 오염을 야기할 핀란드의 거대 제지공장 건설에 따라 토지로부터 추방될 위험에 놓여 있다. 소농들의 가족과 공동체를 위한 토지 소유는 점점 더 어려워져가는 데 반해 정부, 다국적기업, 개인투자자들의 투기자본에 의한 소유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 같은 우리나라의 4대강 사업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토지수탈 문제에 대해 국제가톨릭농민운동연맹은 지난 4월 8일 벨기에에서 열린 회의에서 “토지는 직간접적으로 정부와 투자자, 금융기관과 심지어 세계은행과 IMF에 의해 그들의 시장지향적 정책과 프로그램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정책은 특히 남반구 나라들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데,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와 유럽 정부들은 토지의 사유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결과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힘에 의해 경제적인 상품을 생산하는 것에만 토지가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가톨릭농민운동연맹 정기환(베네딕토) 회장은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인한 토지수탈 또한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신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비롯된 편의주의와 개발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라며 “생명의 근원인 농업과 농지에 대한 가치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농촌은 우리의 고향

농촌과 농업이 경시되는 현대사회…. 제16회 농민주일을 맞아 지난 1993년 당시 김수환 추기경이 나라를 위한 특별기도회 미사 강론에서 언급했던 말을 다시 되새겨볼 만하다.

“농촌은 참으로 우리의 고향입니다. 반만년 우리 민족의 생존을 지켜온 터전이요, 우리의 얼이 담긴 곳이요, 우리 문화의 모태입니다. 농촌을 잃으면 곧 우리는 고향을 잃습니다. 농촌이 망하면 우리 자신이 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농민들의 아픔을 우리 자신의 아픔과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의 근심걱정을 우리 모두 함께 나누고자 하는 뜻을 굳게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국민의 뜻이 모아지면, 그리고 서로 힘을 합하면 우리는 우리의 농촌을 참으로 다시 살릴 수 있을 것이고, 다시 아름다운 우리 고향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6월, 두물머리 유기농지에서 봉헌된 생명평화미사에서 팔달공동대책위 서규섭 집행위원장이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에게 정부의 부당한 처사를 알리고 있다. 정부는 두물머리 농지 하천점용허가 취소 처분은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농지에 대한 강제 수용에 나서 논란을 빚고 있다.

▶ 농민을 위한 기도

○ 세상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하느님 아버지, 우주에 질서와 조화를 주시고 햇빛과 바람과 비를 주시어 온갖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섭리해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 농업이 경시되는 상황에서도 땀 흘려 농사짓는 농민들이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함께하고 있음을 깨달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농사일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 날이 갈수록 생명이 죽어가고 공동체가 파괴되어 가는 오늘날에도 모든 이가 마음의 고향인 농촌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고 온갖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는데 앞장서게 하소서.

● 그리하여 사랑과 일치와 신뢰가 싹트게 하시고 농촌과 도시가 하나로 이어져 온 누리에 생명이 살아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권선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