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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극(七克)과 함께하는 사순] 복오(伏傲) : 제1주, 요셉의원 의무원장 신완식 박사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2-02-21 수정일 2012-02-21 발행일 2012-02-26 제 278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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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오(伏傲): 오만은 사자처럼 사나우니 ‘겸손’으로써 눌러야 한다.
감사·겸손의 마음 일깨워 준 요셉의원 환자들은 ‘선물’
서울 영등포 요셉의원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이들을 위한 무료병원, 일상의 ‘사순’을 사는 곳. 선우경식 원장의 선종 4주기를 눈앞에 둔 지금, 그곳은 누구와 함께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열차는 어느새 영등포역에 다다랐다.

▨ 요셉의원에 온 이유

“노숙인과 노숙인이 서로를 부를 때, 호칭을 어떻게 쓰는지 알고 계시나요?”

요셉의원 의무원장 신완식(루카) 박사의 첫 질문이다. 답은 ‘선생님’. 한 번에 맞히는 이가 별로 없다. 질문을 던지는 까닭은 일반적으로 ‘노숙인’이라고 하면 나와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처한 환경만 다를 뿐 다른 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란다.

선우경식(요셉) 초대원장의 선종 이후, 2009년부터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을 위한 요셉의원을 맡아 그들을 끌어안았던 신완식 원장. 그는 기자에게 질문을 받을 때마다 조용히 하늘을 바라봤다.

“난 인터뷰 같은 거 쑥스러워요. 오른 손 하는 일, 왼손 모르게 하라는 말도 있는데. (이문주)원장 신부님은 높은 데서 초를 비추는 이유를 생각하라고 하시고.”

얼마 전 일간지와의 인터뷰 후 아내에게 들은 한마디, ‘당신, 즐기는 거 아니야?’. 정말로 그랬던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을 거듭했다. ‘가톨릭 언론’이므로 내어준 시간에 감사를 표하며, 신완식 원장과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부모님이 어릴 적부터 의대에 가라고 해서 갔고, 교수가 되라고 해서 됐고. 그런데 왜 지금 요셉의원에 있냐고 하시면, 가장 하기 좋은 이야기 있잖아요. ‘소명’. 그런 것 같아요. 하느님이 그렇게 부르셨겠지요.”

요셉의원 신완식 의무원장이 진찰실에서 웃음 짓고 있다.
서울 영등포 쪽방촌 골목 한가운데 놓여진 3층짜리 붉은 건물 요셉의원. 얼마 전만해도 그를 수식했던 감염내과 분야 최고권위자, 가톨릭의대 교수, 여의도성모병원 내과과장 등의 화려한 이력을 내려놓고, 무료병원인 요셉병원으로 들어온 것에는 ‘이유’가 없었다.

진찰이 계속됐다. 끊임없이 환자들이 신 원장을 찾는다. 남루해 보이는 환자의 뒷모습 사이로 사랑의 잔소리를 날리는 그의 목소리만이 들린다.

“쪽방 살아요? 만화방? 피시방? 왜 자꾸 술 먹어요? 다음 주 금요일에 꼭 오세요. 혈압약 떨어지셨죠? 내가 평상시에 혈압이 더 중요하다고 했잖아요.”

▨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염내과 분야 최고 권위자였던 신 원장이 요셉의원으로 오면, 그 의술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다른 이들에게는 오히려 역차별이 아닐까. 그 질문에 그는 또 한참 하늘을 바라봤다.

“내 제자들이 공부를 엄청 잘해요. 지금 다른 똑똑한 이들이 그곳을 채우고 있는데요 뭘. 틀림없이 잘 해낼 거라 믿어요. 나는 그냥 여기서 또 다른 것을 배우고 있어요. ‘감사하는 마음’.”

요셉의원 입구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 선우경식 원장의 부조와 함께 생전 그가 남긴 말이 적혀 있다. 그는 그 말을 곱씹으며 감사의 마음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요셉의원 환자들은 내게 선물이나 다름없다. 의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환자야말로 의사가 필요한 환자가 아닌가. 이렇게 귀한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감사하고, 이런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고 선우경식 초대원장의 부조와 생전 남긴 어록.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청소하시는 분들을 시작으로 식사 담당하는 봉사자, 간식 봉사자, 의료진들 모두에게 감사하죠.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으면 유지가 안 되는 곳이니 눈 뜨면 ‘감사’할 수밖에요.”

긴 세월 봉사를 실천해왔던 수많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나면 그에게는 오직 ‘부끄러움’만이 남는다. 몇 년째 몸을 씻지 않아 냄새가 진동하는 노숙인의 발에 입을 맞춘 봉사자에게도, 구개열과 입술갈림증을 앓던 환자가 수술 후 평생 처음 내뱉는 감사의 환호성에도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는 교수로서 한 번 불살라 보았어요. 여러 직위에서도 일을 해보았지만 익숙하지를 않아요. 내 태생이 그런가 보아요.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이렇게 귀한 일을 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죠.”

요셉의원을 찾은 환자를 진찰하고 있는 신완식 원장.

▨ 선물 받은 겸손의 귀한 시간

요셉의원은 짧은 기간, 신 원장에게 많은 선물을 가져다 줬다. 선우 원장이 말한 그 ‘선물’이다. 자녀들의 졸업식에 한 번 참석도 못 했던 시절, 기도하는 것도 잊을 정도로 바빴던 그 시절의 한쪽 귀퉁이를 접어놓고, 의술과 사랑이 가져오는 놀라운 기적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곧 ‘사순’을 맞아 계획을 물었다.

“악순환의 고리에서 끊어줘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 생활의 고리를 끊는 것이 무척 힘드네요. ‘사순에 무엇을 해봐야지’하고 마음먹은 것은 없어요. 그 정도의 사람이 못 되어서 미안합니다.”

고마움의 표시로 사탕과 초콜릿 한 알을 가져다주는 노숙인들, ‘술 먹지 말라’는 잔소리마저 반가워하는 알코올 중독자들, 예쁜 머리핀을 꽂고 온 가난한 할머니. 의료차트의 기록보다 몇 배 소중한 신 원장의 컴퓨터에 기록된 아름다운 만남들. 요셉의원과 신 원장에게 매일의 사순은 ‘선물’이다.

서울 영등포 요셉의원 건물에 달린 작은 간판.

◎ 칠극과 함께하는 사순

칠극, 제1편 ‘복오’는 선(善)을 천주에게 돌리고, 육신의 행복 때문에 오만해지는 것과, 자신을 남과 다르게 여기기를 좋아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이른다. 명예를 좋아하는 것을 경계하고 겸손의 덕을 논하라고 가르친다. 하느님께서 주신 선한 일을 할 재능의 토대 가운데 겸손보다 단단한 것은 없다.

오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