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받아들고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왠지 느낌이 좋았다. ‘희망’이라는 단어에 기대와 설렘이 일었고. 또 책장을 넘기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읽어 갈수록 이 책은 가벼이 할 수 없는 무거움 즉 아름다운 사제의 삶이 곳곳에 녹아있었다.
신부님은 주변의 사물을 단순하게 넘기지 않고 심안(心眼)으로 보면서 깊은 묵상의 사색으로 예수님의 삶을 우리 생활과 접목했다. 놀이기구에 불과한 시소에서 ‘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다’라는 보편타당한 말을 시소원리를 들어 가르침을 전했고, 꽃을 보면서는 우리 마음속에 아름다운 꽃님으로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또 얼굴에 생긴 주름은 ‘사랑’이라는 보톡스로 없애자는 재치 있는 비유로 사랑실천을 강조하셨고, 목욕탕에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면서 고해성사의 은혜를 끌어내셨다.
아울러 신부님은 늘 곁에 계시는 주님을 만나면서 살고 있는지 자문하며 희망이신 주님을 기필코 만나야겠다는 각오도 대단했다. 이런 신부님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몇 년 전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를 잃어버린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그날 밤새 강아지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며 찾아다녔다. 온갖 불안한 생각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한낱 강아지를 찾기 위해서도 밤새 찾아 헤매면서도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밤새 주님 이름을 불러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애타게 부르면 만날 수 있는 주님인데도 몇 번 부르다가 단지 응답이 없다는 이유로 원망만 하지 않았나 반성했다. 부르기만 해도 희망으로 내게 오실 주님, 불러주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다 먼저 다가오시는 주님이건만 말이다.
이 책의 맨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는 ‘자신에게 쓰는 편지’는 신선했다. 자신에게 쓰는 편지는 자신을 마주 대하지 않고는 결코 쓸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부님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세례자 요한처럼 아마추어의 삶, 주님을 부르며 주님을 찾아 나서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또 신부님은 이 책을 펴냄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살아가겠습니다’라고 공표하신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신부님이 세상 다하는 끝날까지 의롭고 아름다운 사제로 살아가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