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과 만나면 의례히 하는 질문이 있다.
“아이가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하고 있고 머리도 그렇게 나쁜 것 같지 않은데 왜 성적은 오르지 않나요?”
생각해 보면 정말 답답할 일이다. 공부만 하면 성적이 눈에 띄게 쑥쑥 올라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니 말이다. 어려서부터 학원에 쏟아 분 돈은 얼마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에 참석하지 않았을 만큼 많은 시간을 공부했는데, 성적은 조금도 오르지 않으니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를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로버트 가네(Robert M. Gagne)는 학습 자질을 제외하고 성적의 개인차가 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선수학습의 결손 여부, 학생이 갖고 있는 정의적 출발점 행동의 차이, 수업의 질과 수준이 그것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두 번째로 지적한 정의적 출발점 행동 수준이 성적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가를 살피고 싶다.
자녀가 국어 95점, 사회 90점, 생물 70점, 수학 30점인 성적표를 받아왔다고 치면,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성적표 가장 오른 쪽에 시선이 머물 것이다. 거기에 석차가 적혀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연구한 보고서가 있다. 77%의 부모들은 가장 먼저 눈이 가고 또 가장 오래 대화할 수밖에 없는 과목으로 성적이 좋지 않은 수학을 선택했다.
반면에 최고점을 받은 국어의 성적에 주목한 부모는 단 6%에 불과했다. 77%의 부모는 자기 자녀의 약점을 보완해야 성적이 올라가고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녀가 실수한 수학을 선택하여 충고한 것이다. 반면에 6%의 부모는 자녀의 장점을 살려 다른 과목에도 전이시키고자 하는 긍정적인 모습을 자녀에게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 결과 77%의 충고 쪽 부모보다 6%의 부모가 자녀들과의 관계가 훨씬 원만했던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일은 자녀가 긍정적인 자기 개념을 지니고 있고, 자신의 목표를 이룩하겠다는 성취동기가 강할 때 능력보다 훨씬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양육되고 있는 아이들은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것임을 외치고 싶다.
어떤 엄마가 아이를 최고의 강사진으로 구성된 과외팀에 참여시켜 준다는 권유를 받고 최고의 대학에 합격하는 꿈으로 부풀어 이 문제를 당사자인 아이와 상의했다. 그런데 뜻밖에 아이는 엄마의 권고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자신은 혼자 집에서 공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말로 거절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래서 그동안 그런 성적을 받았니? 이런 기회를 노치면 안돼!”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아이와 사랑과 일치의 관계가 성적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아이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더 나가 주일미사 참례를 권했고, 매일 함께 기도하면서 아이가 무엇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지를 귀기울여 들었다.
그 결과 아이는 자신이 부모님께 사랑받을 뿐 아니라 존중받고 있으며, 자신의 안에서 전능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공부하고계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공부하여 최고의 대학에 합격했다. 길에서 친구의 엄마를 만나게 되면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힘들이지 않고 최고의 대학에 진학했으니!”라고 말하는 데 그 엄마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술회한다.
“아이가 좀 느슨하게 공부하는 것 같이 생각될 때 잔소리하고, 개입하고 싶은 것을 내려놓느라. 내 가슴이 얼마나 새까맣게 탔는지 당신들은 모를 것입니다.”
엄마는 말한다. “그때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을 수 있도록 도움의 은총을 주시고 아이와 나 사이에 일치를 건설할 수 있도록 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릴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