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의 벗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지 5개월 만에 다시 아시아를 찾았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세월호 참사 등으로 고통과 절망에 빠져 있던 한국민들과 한국교회를 위로하고 희망을 던져 준 교황은 이번에는 수십 년간의 내전이 빚은 상처로 국민들이 갈라져 있는 스리랑카와 빈번한 자연재해와 빈곤으로 시달리는 필리핀을 방문했다. 이번 순방에서도 교황은 한국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가난과 상처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과 희망을 일깨웠다.
필리핀- 가난한 이들과 가정의 보호 당부
【외신종합】순방 마지막 행사인 1월 18일 마닐라만 인근 리잘공원에서 교황이 집전한 옥외미사에는 무려 700만 명이 운집, 지난 1995년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당시의 500만 명 기록을 깼다. 필리핀의 전통적인 대중 신심인 ‘산토 니뇨’(Santo Nino, Holy Child, 아기 예수) 축a제일인 이날 교황은 일주일간의 아시아 순방을 마무리하듯 가난한 이들과 가정을 보호해야 하는 소명을 강조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미셨는데, 인간이 이를 파괴하고 빈곤, 무지와 부패를 영속화하는 불의한 사회구조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임을 잊지 말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어 교황은 ‘산토 니뇨’(아기 예수)는 우리 가정들, 더 큰 가정인 교회, 그리고 인류 가족인 세상이라는 가정을 보호할 것을 당부한다며, “사악한 악마는 이른바 ‘세련미’, ‘현대적’, ‘다른 사람들처럼’ 등의 말로 가장해 우리에게 덫을 놓는다”고 말해 혼인과 가정, 성 등에 대한 세속적 가치에 휩쓸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교황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은 17일 타클로반 방문에서 절정을 이뤘다. 이곳은 2013년 태풍 하이옌으로 인해 7000명이 사망하고 100만 채의 가옥이 파괴된 피해지역이다. 교황은 “재난 소식을 듣고 이곳을 방문하기로 결심했다”며 “여러분이 재산을 잃고 가족을 잃을 때,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박히신채 그 자리에 계셨다”고 위로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강조는 순방 내내 이어졌다. 당초 마닐라로 향한 비행기 안에서 교황은 “이번 순방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말했고, 15일 오후 성직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가난한 이들은 복음의 핵심이고 심장이기에, 복음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뺀다면 그리스도의 모든 메시지를 알아들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15일 대통령궁에서 정치인들을 만나서도 교황은 만연한 부패의 척결과 동시에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요청했다. 필리핀교회는 올해를 ‘가난한 이들의 해’로 지내고 있다.
16일 오후 교황은 마닐라 아시아 경기장 ‘가정들과의 만남’에서는 피임, 동성애 결합 등으로 ‘가정을 파괴하려는 이념적 식민지화’에 저항할 것을 당부해 전통적인 혼인과 가정의 수호를 강조했다. 이날 오전 ‘원죄없는 잉태 대성당’에서 거행된 미사에서도 교황은 동성애 결합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시했다.
스리랑카- 내전 후 화해와 용서 호소
【외신종합】필리핀에서의 메시지가 가난한 이들과 가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한편, 스리랑카 방문에서는 화해와 평화의 회복이 강조됐다. 26년 동안 불교를 믿는 싱할라족과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힌두교도 중심 타밀족의 내전은, 2009년 정부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인종과 종교는 사회를 둘로 갈랐다. 가톨릭은 인구의 7%가량으로 양쪽 부족을 모두 포함한다.
교황은 내전의 상처를 안고 있는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 도착, 환영식에서 “치유의 과정은 진실 규명을 요구하지만 이는 묵은 상처를 덧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치유, 일치의 증진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특히 이 과정에서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 등 종교인들이 ‘사회 전체의 도덕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 방문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인 조셉 바즈 신부의 시성식이 14일 오전 50만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시성식은 스리랑카의 문화적 다양성을 잘 드러냈다.
스리랑카의 첫 성인이자 16~17세기 선교사인 성 조셉 바즈 신부는 천연두 희생자들을 돌봄으로써 불교도인 왕의 신임을 얻어 선교 자유를 얻었다. 교황은 이를 빗대어 전체 인구의 7%에 불과한 스리랑카 가톨릭교회가 자선 활동에 헌신하고 있음을 치하했다.
같은 날 오후 교황은 콜롬보에서 헬리콥터로 160마일을 날아가 도착한 정글 도시 마두(Madhu)의 로사리오의 성모성당에서 하느님의 자비가 스리랑카 국민들을 ‘더욱 위대한 화해’로 이끌어주기를 기원했다. 이 성당 안에는 16세기 이래 스리랑카인들에게 공경을 받아온 성모상이 있는데, 이 때문에 수십 년의 내전 기간 중에도 수천 명의 난민들이 피신한 이 성당 주위는 비무장지대로 인정을 받아 내전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