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해가 세 번 바뀌었다. 그간 여덟 계절이 지나갔다. 지난 2013년부터 탈핵희망 국토도보순례단을 이끌고 있는 성원기(토마스 모어·59·원주교구 삼척 성내동본당) 교수(강원대 전자정보통신공학부).
“저희들의 순례는 생명에 대해 둔감해져만 가는 세상 속에 조그만 희망의 길을 내는 일입니다.”
처음 탈핵희망 순례에 나선 지난 2013년, 6월 6일 부산 고리에서 출발해 4차례에 걸쳐 1609㎞에 이르는 길을 걸었다. 지난해에는 6월30일부터 8월15일까지 부산 고리핵발전소에서 대전 유성 월드컵경기장까지 367㎞를 걸었다. 마지막 날에는 십자가를 지고 유성에 도착한 세월호 유가족들과 뜨겁게 두 손을 맞잡았다.
성 교수가 핵발전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도보순례에 나서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일지 모른다. 아니, 그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굳게 믿는다.
지난 2011년 안식년 때였다. 제주 올레길 전 구간 400㎞를 걸은데 이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를 도보로 순례했다. 내처 해남 땅끝마을에서 출발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한 해 동안 2000㎞ 가까운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러고 나자 이듬해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우리 모두 하느님 자녀잖아요. 그러면 하느님 나라 상속자가 아닙니까. 하느님 자녀라는 신원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들자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삼척이 신규 핵발전소 후보지로 선정되면서 자연스럽게 삼척시장 소환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후 그의 삶은 달라졌다.
이제 다시 지난해 순례의 종착지였던 대전을 출발해 세종, 청주, 천안, 평택, 오산, 수원, 경기도를 거쳐 서울 광화문까지 17일간 280Km 순례길에 나섰다.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죽음으로 내모는 핵발전의 위험을 알리고자 나선 길입니다.”
이번 도보순례에는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예수회 사회사도직위원회를 필두로 삼척핵발전소 반대투쟁위원회, 초록교육연대, 탈핵에너지교수모임,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등이 함께하고 있다.
순례의 시작과 끝은 늘 기도와 함께다. 순례 중에는 묵주가 손에서 떠나지 않는다. 여정이 이어지면서 많은 이들이 그의 길에 동참해왔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며칠씩 동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가장 오래된 고리1호기 반경 30Km 내에 340만 명이 살고 있다. 만약 사고가 나면 동시에 340만 명이 피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힌 성 교수는 “고리, 월성, 울진, 영광 중 어느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하든 반경 300Km 안에 있어 우리나라 국토의 대부분이 방사능 오염지역이 되고 만다. 우리 국민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이 핵사고 피해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고 지적했다.
이번 순례는 그동안 이어온 2256㎞ 대장정의 마무리가 될 예정이다. 핵발전소가 몰려있는 바닷가 주변 지역에 이어 충청·경기·서울 등 내륙에 사는 이들에게 탈핵의 중요성을 알려온 순례도 대단원을 향해 가고 있다. 길 위에서 주님께 기도한 날도 꼭 137일을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순례를 멈출 생각이 없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탈핵 그날까지 걸어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