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 신앙인들의 승천 예시다. 즉 우리도 때가되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게된다는 증표가 된다. 승천은 예수님과 우리, 우리와 하느님 나라와의 관계에 어떤 변화를 주는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과 세상의 관계를 새롭게 한 사건이다. 예수님은 승천하심으로써 이 세상을 등지고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과의 관계에 있어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게 되신 것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20)고 약속하신 예수님은, 이제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신앙인의 마음 속과 기도하는 교회안에 현존하시며 특히 성체성사안에 현존하신다.
마르코 복음에는 『주님이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다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셨다』(16, 19)라고 기록돼 있다. 「성부 오른편에 앉으셨다」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느님으로서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에 참여하고 우리의 주님으로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여 성부 오른편에 앉으신 예수님은 세상의 유한성과 하늘 나라의 영원성 사이를 넘나드는 분, 곧 지상과 천상을 하나로 묶는 분이 되신 것이다.
유래
초대교회는 부활대축일후 50일 동안을 부활을 경축하는 기간으로 지냈다. 이는 유다인들이 출애급을 상기하며 누룩없는 빵을 먹은 뒤 50일간 축제를 지내던 관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50일 동안을 「파스카 축제」기간으로 지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는 파스카 사건을 여러 사건으로 나눠 기념하기 시작했고, 4세기 말에 주님승천대축일과 성령강림대축일이 생겨났다. 주님승천대축일은 부활대축일 이후 다가오는 여섯 번째 목요일, 즉 40일째 되는 날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사목적 이유로 이 축일을 부활 제7주일로 옮겨 지내고 있다.
신앙인의 자세
승천하신 예수님은 이제 영적인 존재로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됐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예수님으로 인해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모세가 십계판을 받으러 시나이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동안 유다인들이 보이지 않는 신을 찾기보다는 보이는 신을 원하며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실수를 우리는 범해선 안될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속에 내재해있는 이기, 욕심, 교만, 불신 등을 걷어낼 때 영적인 눈이 뜨이게 되는 것이다.
이와함께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며, 그분의 명령을 따라 사랑을 증언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나보다 남을 우선하는 삶을 살 때, 나의 말과 행동이 타인의 모범이 될 때, 현세적 쾌락과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기 보다 천상복락을 추구하는 삶이 곧 그리스도인의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럴 때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된다.
또한 이러한 삶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모두 다 내 제자로 삼을 수 있도록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그분의 유언을 실천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죽고 부활하여 승천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의 삶도 영원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을 향해 사는 사람답게 살아야 할 것이며 어떠한 시련과 유혹속에서도 자신을 지키고 성장시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