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다큐 ‘한국인 최양업’ 제작 에피소드(3)

최양업 신부님의 다큐멘터리 배경으로 고택이 필요했다. 어느 날 이태종 신부님을 만나기 위해 감곡 가는 길에 ‘김주태 고택’의 이정표가 보였다. 신부님께 말씀드리니 “그런 곳은 본 적이 없다” 하셨다. 분명 우리는 봤는데…. 다시 가보니 찾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꾸불꾸불한 논둑길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한 뒤에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조선 후기의 고택은 잠겨 있었고 마을에는 인적이 드물어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포기를 하자니 아쉬움이 남았지만,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 넉넉지 않았다. 감곡은 복숭아의 고장이니 복숭아나 사가면 좋겠다 하여 아무 밭이나 들어가 주인을 불렀다. 난생 처음 보는 커다란 복숭아를 맛보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다가 고택 이야기가 나왔고 다큐 촬영을 위해 “고택에 들어가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고 하니 복숭아밭 주인이 바로 고택을 관리하시는 분일 줄이야. 고택의 대문이 열리는 장면은 서학이 들어오는 과정과 접목시키고, 굳게 닫힌 방문은 조선시대 여성들이 마음대로 외출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묘사하기로 했다. 잘 관리된 고택에는 그 당시 양반들을 위해 만들어진 돌 세숫대야까지 놓여 있었다. 하인은 양반을 위해 매일 아침 물을 몇 번이나 길러 날랐을까. 조선시대 양반제도의 실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고택의 정취에 젖어 열심히 촬영하는 중 카톡의 메시지가 왔다. ‘사명’ 노래 작곡가인 이권희씨가 ‘사랑, 그 곳에’라는 새로운 곡을 보내오셨다. ‘사랑 그곳에 물과 피의 희생이, 생명 그곳에 하늘의 사랑있네.’ ‘십자가 그곳에 나를 향한 사랑이, 예수 그곳에 영원한 생명있네.’ 최양업 신부님의 여정에는 희생이 있었고 생명이 있었고 십자가가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사랑, 그 곳에’ 우리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 있으리라. 이 노랫말을 다큐에 사용하기 위해 바로 작곡가에게 저작권 허락을 받았다. 긴 시간 헤매며 고택을 찾고 음악까지 얻게 되는 귀중한 오후를 잊지 못하는 것은 힘들었기 때문이고 어떻게든지 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 아닐까. 십자가 없는 사랑이 과연 얼마나 오래 남을 수 있을까? 최양업 신부님의 ‘사랑의 길’에도 분명 십자가는 아주 많았을 것이다. 지금 나의 길은 어떤가? 십자가만 보인다면 당연히 피하고 싶다. 그러나 그 속에 사랑을 잉태하고 있다면?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글 _ 박정미 체칠리아(다큐멘터리 ‘한국인 최양업’ 감독)

2024-07-28

[밀알 하나] ‘예’와 ‘아니요’

미국에 H. D. 소로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하버드대를 나온 수재로 약 2년간을 도시를 떠나 홀로 숲속 생활을 하면서 흔치 않은 느낌을 하나씩 모아놓은 ‘월든’이라는 책을 썼다. 법정 스님이 열반에 들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책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잡다한 세상을 벗어나 제 홀로 고요한 침묵과 묵상의 삶을 살면서 느낀 점들을 풀어놓은 것이어서 그리스도인들도 한 번쯤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소로는 “말이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하여 있는 것 같다”(6. ‘방문객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어쩌면 말이란 사람과의 소통 정도면 충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소로는 다른 책에서 이런 말도 했다. “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시민의 불복종’) 멋진 표현이다. 우리는 참으로 말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말 때문에 실수하고 상처받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성경 속 예수님도 사람들의 말 때문에 속깨나 끓이셨다. 뻑 하면 오해하고, 본질이 아닌 것을 가지고 시험하는 통에 말문이 막힐 정도였으니. 그래서 언젠가부턴 아예 비유로만 말씀하셨다. 결국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여라.”(마태 5,37)라고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왜 자꾸 거짓을 말할까. 뭔가 켕기는 게 있거나 꿍꿍이가 있어서일 것이다. 때론 사실이 아닌 변명만 늘어놓아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때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참에 확실히 정리하셨다.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여라!” 사실만을 말하고, 구차한 변명을 하지 말라신다. 그러면 어떤 이들은 말할 것이다. 할 말 못 할 말 다 하면서 사는 게 우리네 삶인데, 어떻게 할 말만 하면서 사느냐고. 요컨대 하나 마나 한 얘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지, 서로 소통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너무 말이 없어도 답답하긴 하다. 예수님의 의도는 아무 의미 없는 말, 제 자랑하듯 하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괜히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죄를 짓느니, 당장엔 답답할지라도 침묵이 더 웅변적일 때가 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앞에 나선 사람은 스스로에게 ‘무다언(毋多言) 무폭노(毋暴怒)’ 해야 한다고 했다. ‘말을 많이 하거나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며, 화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2. 율기) 예수님 생각과 결코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육적인 언어보다 영적인 언어가 더 잘 어울리는 것은 왜일까.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은 좋은 일이며 배워야 할 습관이다. 물론 일상에서 ‘예’와 ‘아니요’만을 말하기에는 삶이 복잡하고 녹록지 않은 점도 있다. 다만 굳이 거짓을 말하지 않으려는 뜻에서 그리고 자신의 주장만을 관철하려는 부당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쉽고 간명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 글 _ 유희석 안드레아 신부(수원교구 구성본당 주임)

2024-07-28

[밀알 하나] 사막에 비가 오면

사막에 비가 왔다. 그리고 며칠 뒤에 그 사막에서 갑자기 수많은 꽃들이 피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국 뉴스에는 해외토픽으로 이런 신기한 뉴스를 소개했다. 사막에 비가 온 것도 신기하고, 그 비에 오랫동안 숨어 있던 씨앗이 싹을 틔우고, 말라있던 줄기가 싱싱해져 꽃까지 피우다니. 정말 ‘비만 오면 사막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겠구나’ 싶다. 그런데 뉴스에서 다루지 않은 숨은 현실이 있다. 그날은 비가 많이 온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막은 그 적은 비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너무 메마른 토지는 적은 양의 물도 머금을 수 없었다. 결국 수많은 토사가 골짜기를 만들어 낮은 곳으로 흘러갔고 마을을 덮치고, 수많은 집과 사람과 기물을 쓸어 가버렸다.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 숲이 울창한 산 하나가 180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수많은 댐보다 나무가 우거진 산을 잘 가꾸고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데 이것을 ‘녹색댐 효과’라고 한다. 그런데 나무도 풀도 없는 사막에서는 이런 효과를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사막 도시들에서 엄청난 비 피해를 겪는 뉴스를 칠레에서 보게 된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분명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큰 시련이 닥쳐온다. 마치 비바람,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같이 말이다. 어떤 이들은 그런 시기가 와도 꿋꿋이 이겨내고 성장하고 마침내 큰 열매를 맺어낸다. 그들의 영혼이 푸른 숲을 품은 산처럼 건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작은 일에도 쉽게 쓰러지고 좌절한다.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마음과 영혼에도 분명 숲과 산이 필요하다. 언제 닥쳐올지 모를 시련과 고통 앞에서도 평화와 미소를 잃지 않고 또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영혼에 숲과 산을 가꾸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지만 노력하지 않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건강한 신앙생활과 그 신앙을 끊임없이 지탱해 주는 기도와 착한 삶이다. 신앙을 통해서 우리는 삶의 참된 의미 보고, 위로와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어떠한 것도 우리를 주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것을 알게 된 이들은 기도와 선행으로 끊임없이 주님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니 그들은 하느님 외에 두려운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아는 말이지만 참으로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또 가만히 있기엔 우리의 삶이 참으로 고되다. 그러니 언제 나를 덮쳐올지 모를 수많은 세상의 시련과 도전 속에서 의연하고 씩씩하게 이겨내고 또 주어진 하루를 감사히 살아가기 위해서 이제는 우리 영혼의 숲과 산을 잘 가꾸어 보자. 글 _ 문석훈 베드로 신부(교구 비서실장)

2024-07-21

[신앙에세이] 다큐 ‘한국인 최양업’ 제작 에피소드(2)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님이 가지셨던 희망과 자비관은 서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님의 자비심에 희망을 가지고’(서한3), ‘우리의 모든 희망은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있고’(서한4) 등 하느님의 자비에 희망을 두었다. 그리고 그 희망이 산산이 무너졌을 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직도 낙담하지 않으며 여전히 자비를 바라고 있습니다.’(서한5) 불평 한마디 없이 여전히 겸손하신 모습이다. 우리 역시 어려움에 빠졌을 때는 어김없이 잘 되길 바라는 희망으로 자비를 청한다. 남편의 보이지 않았던 눈은 문경 기도굴을 다녀온 뒤 기적처럼 깨끗해졌다. 눈 암인 것 같다던 의사도 2주 후의 결과에 너무나 놀란 표정으로 이런 예는 없었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당연히 기적으로 받아들여서 의료기록을 요청하려고 하니 그 뒤 두세 달 경과를 지켜봐야겠다고 했다.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최양업 신부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는지.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비밀을 유지하며 하루하루를 기쁘게 지내다 다음 촬영지인 배론성지로 떠났다. 금경축을 맞이하신 후손 최기식 신부님(베네딕토·원주교구 원로사목)의 인터뷰가 최양업 신부님 묘소에서 있었다. 50년 사제 생활을 하며 노력은 했지만, 그 근처도 닿지 않았다며 울먹이는 노사제의 말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또 “삶이 내 맘대로 돼요? 돈이 맘대로 벌려요? 건강하고 싶은데 맘대로 돼요? 자식이 맘대로 돼요?”라며 거침없이 쏟아내시는 배은하 신부님(타대오·원주교구 원로사목)의 말씀에 저절로 숙연해지기도 했다. 두 분의 말씀은 그만큼 강렬했다. 순식간에 다큐멘터리의 구성이 짜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이어 맘대로 안 되는 인생길을 최양업 신부님은 어떻게 걸어가셨나.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그 여운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며칠 후 안과를 간 남편은 다른 쪽 눈이 다시 보이지 않으면서 며칠 동안의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래 맘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지. 주님의 자비를 청하면서, 최양업 신부님의 전구를 청하면서 간절히 기도했던 남편을 어떻게 위로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 남편 안드레아는 ‘주님의 뜻이 있을 거야’라며 도리어 나를 위로해 줬다. 최양업 신부님의 서한을 탐독한 남편은 모든 것을 따라 하는 것처럼 실망했을 때도 어김없이 주님의 뜻이 있으리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있었다. 주님의 뜻! 희망했다가 좌절하는 순간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직도 낙담하지 않으며 여전히 자비를 바라고 있습니다’란 말 속에는 분명 ‘주님의 뜻’을 찾기 위한 최양업 신부님의 처절한 기도가 바탕이 됐을 것이다.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글 _ 박정미 체칠리아(다큐멘터리 ‘한국인 최양업’ 감독)

2024-07-21

[밀알 하나] 익숙함이 주는 위험함

칠레에 있을 때 살았던 본당들은 안전한 동네가 아니었다. 밤낮없이 마리화나 냄새를 어렵지 않게 맡을 수 있었고, 뉴스에서 여러 강도 사건으로 자주 이름이 등장하는 그런 동네였다. 길거리는 늘 더러웠고, 어두웠다. 그런데 또 막상 살다보면 그런 동네인지 모르고 살게 된다. 동네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공소에 다니기도 했다. 선교를 시작하고 첫 3년은 산티아고의 ‘푸엔테 알토’라는 구역에 살았다. 당시 집에는 경차 한 대밖에 없었기 때문에 걸어 다니는 일이 많았다. 살던 집에서 본당이나 공소를 가거나 혹은 집 축복이 있을 때면 대부분 걸어 다녔다. 그럴 때면 공소회장 내외가 늘 잔소리를 한다. 위험한데 왜 걸어 다니냐고 말이다. 자기들도 혼자 걸어다니지 않는데 될 수 있으면 차를 타고 다니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큰 위험을 느끼지 못했고 여전히 걸어 다니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두 번째 살았던 ‘마이포’라는 동네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퇴근 시간이라 지하철이 복잡했고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가는 버스를 갈아탈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우버를 잡아탔다. 우버 기사는 이라크에서 전쟁을 피해 이민을 온 사람이었고, 이미 20년째 가족들과 함께 칠레에서 살고 있던 우리 아버지뻘 되는 나이 지긋한 분이었다. 내가 지정한 목적지인 마이포의 본당으로 이동하면서 그분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진다. 고속도로를 나와 집에 다다르는 골목길로 접어들면서 기사분이 참았다는 듯 나에게 묻는다. “총각, 진짜 여기서 살아?” 내가 그렇다고 하니까 너무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빨리 이사가는 게 좋을 거야. 여긴 정말 무서운 동네야. 뉴스에 맨날 나오잖아”라고 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잽싸게 줄행랑을 친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자전거를 타고 공소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성당 옆 공터에서 종종 보던 청년들이 그날도 앉아있었고 그들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있었다. 그렇게 한 무리의 청년들이 권총을 장전하고 건너편 동네로 몰려가는 모습을 봤다. 익숙함 때문에 현실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지만 다시 보니 위험한 곳에 내가 있었던 것이다. 종종 우리가 겪는 일들도 이와 비슷하다. 내가 매일 생각 없이 죄를 짓고 있고, 또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나와 비슷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도 있고, 지금 내가 죄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서서히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내가 위험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익숙함은 그렇게 위험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현실을 살펴보고 빨리 변화할 수 있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익숙함과 편함에 잠식되지 않고, 깨어 살필 수 있는 신앙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3)” 글 _ 문석훈 베드로 신부(교구 비서실장)

202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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