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물 위의 순례길

한 주 내내 이어진 장마로 주말에 예정된 순례길이 걱정되는 시간 속에 순례당일 2023년 6월 4일, 비는 멈추었으나 내리쬐는 불볕더위에 순례자들은 꽁꽁 얼려온 얼음물로 갈증을 해소하며 걸어야만 했다. 출발지 미리내성지에 도착 후 성지 해설사님의 해설을 듣고 미사 봉헌 후 순례는 시작됐다. 녹음이 우거진 미산저수지 둘레길 중 적절한 공간에서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이미 모내기를 마치고 제법 자리를 잡고 파릇파릇 자라고 있는 새싹 벼들과 눈맞춤하며 발걸음을 이어갔다. 6월의 강렬한 햇살은 때로는 힘들게도 하지만 순례 내내 시원한 바람을 솔솔 보내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묵주기도로 각자의 지향을 두며 걸어갔다. 얼마쯤 걸었을 때 진위천 하상도로에 도착했다. 이번 주중에 내린 장마로 도로의 20미터 정도가 물에 잠겨 있어서 난감했으며 다른 곳으로 우회할 도로는 없었다. 고민 끝에 우리는 물 위를 걸어서 건너가기로 결정했다. 동행하신 두 분 수녀님을 비롯하여 각자 양말과 등산화를 벗어 손에 들고, 또 한 손에는 등산 스틱을 들고, 바지는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맨발로 물 위를 걸었다.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으나 물속에 발을 넣고 걷다 보니 어느새 더위는 사라지고 서로는 얼굴을 마주보며 이 신비로운 경험에 웃음소리만 가득했다.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마태 14, 29~30)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보면 한 명, 한 명 다 하나같이 부족하다. 우리 인간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는 베드로 같은 인물을 장으로 세워 놓으면 정말 큰일 난다. 다혈질에 겁쟁이이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제자들 가운데 으뜸으로 세우셨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하느님은 완벽한 도구를 만들어 두고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도구들을 가지고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우리 순례자들에게 진위천 하상도로는 깊지 않은 얕은 강물이었고 폭염 속에 24.9km의 장거리 구간이라 더 힘들었지만, 순례 중 맨발로 물 위를 걸었던 이 코스도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자 했으며 주님께서는 순례자 모두에게 잊지 못할 소중한 체험으로 간직하게 해주셨다. 지속적인 체험으로 진행되는 도보순례길, 등대 빛을 발견하고 등대를 향해 방향을 전환했다 해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등대에 가까이 도달하기 위한 항해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순례길, 성스런 의미가 깃들여 있는 성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순례에 단순히 목적지에 도달함 자체보다는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주님과 함께한다. 글 _ 박수희 아녜스(수원교구 디딤길팀 책임봉사자)

2024-04-21

[밀알 하나] 이주민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준비(2) 이주민 가정의 아이들

인간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지닌 고유한 신념과 가치관, 그리고 규범을 학습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사회화’라고 하는데, 인간의 사회화는 생애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게 됩니다. 사회화를 위한 학습은 성인이 된 후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유아·청소년기에 가정과 학교에서 이뤄집니다. 특히 가정은 사회화 교육의 출발점입니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양육되고 훈육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정서를 키워갑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와 대화들은 어떠한 책에서 읽은 것보다도 기억에 오래 남고, 성인이 된 후에도 친구들 또는 자신의 자녀들과의 대화에서 재현됩니다. 자녀는 부모를 통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배웁니다. 그런데 요즘은 맞벌이 부부 가정이 일반화되면서, 자녀들의 사회화 교육을 위한 부모의 역할에도 변화가 있는 듯합니다.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주로 정보를 얻고, SNS를 통해 또래친구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부모님과의 대화시간보다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또래문화가 사회화학습의 중심이 됩니다. 세대 간의 소통의 어려움, 가치관의 차이, 갈등이 예전보다 심해졌음은, 이처럼 가정의 사회화 교육 역할이 제한되고 축소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다문화 가정을 포함해 외국인 부모 가정, 난민신청 가정 등 국내에 거주하는 다양한 이주민 가정의 아이들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더해 사회화 교육에 있어서 더 열악한 상황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살아가거나 혹은 모국으로 돌아가 살아가기 위해 사회화 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기의 아이들이지만, 공교육으로부터는 소외되고, 가정에서는 사회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가정에서의 사회화 교육 부족 문제’만을 한정해 말하자면, 근로자인 부모님이 경제활동으로 바쁜 것도 한 가지 이유이고, 또 다른 이유는 ‘언어 소통의 문제’입니다. 언어학습에 있어서 중요한 유아 시기에 이들은 부모님과의 대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해서 언어발달이 다소 늦습니다. 그리고 한국어를 주 언어로 인식해 사용하게 될 시점이 되면, 이젠 상대적으로 한국어 사용이 미숙한 부모님과의 대화에 답답함을 느껴 부모님과의 대화가 단절됩니다. 이는 곧 또 다른 정서적 문제(우울증, 정체성 혼란, 대인 기피증)를 겪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들의 사회화에 누구보다도 도움을 줘야 할 사람은 부모님이지만, 이주민의 삶 안에서 부모 역할을 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국적과 문화를 불문하고, 아이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올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그들이 속한 사회의 책임과 역할입니다. 하지만, 이주민 가정 아이들에 대한 사회화 교육의 문제는 여전히 관심 밖 사각지대에 남겨져 있습니다. 이주민들과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이 문제는 우리 모두가 관심과 노력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글 _ 이상협 그레고리오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2024-04-21

[신앙에세이] 천진암성지 디딤길

서학에 관심을 가진 지식인들 중 18세기 후반에 성호학파 녹암 권철신이 이끄는 신진 학자들이 주어사와 천진암에서 강학모임을 가졌고, 이 모임은 조선에 천주교 신앙공동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자 한국 천주교회 설립을 위한 선행적 바탕이 됐다. 지난해 부활 4주간 토요일이었던 2023년 5월 6일 디딤길의 예정된 순례는 7-1코스로, 천진암 성지에서 앵자봉(667m) 정상을 넘어 산북성당에 도착해 마무리되는 코스였다. 순례 전날부터 이미 많은 비가 내렸고 순례 당일 주말 아침에도 강풍과 함께 쏟아지는 빗줄기 소리는 요란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망설임 없이 순례길에 나섰다. 순례는 천진암성지 입구에 있는 광암성당에서 12시 미사 봉헌으로 시작됐다. 미사 시작 전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창립선조 5위 묘역(이벽,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정약종)에 먼저 올랐다. 1979년에 처음 이벽의 묘가 이장되었고, 1981년에는 정약종,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의 묘가 이장되면서 1982년 창립선조 5위 묘비가 건립된 곳이다. 5위 묘역에 주모경을 바친 후 세계평화의 성모상 앞에서 환희의 신비 1단부터 5단까지 바쳤다. 묵주기도 후 천진암성지 입구에 있는 광암성당으로 다시 내려와 12시 미사 봉헌 후 시작기도와 함께 본격적인 순례가 시작됐다. 가르멜 수녀원을 지나면서 천진암 계곡에 다다랐다. 전날과 당일 쏟아진 폭우로 계곡마다 흘러넘치는 우렁찬 물줄기 소리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5월의 싱그러움을 가득 담은 초록의 계절을 느끼며 땀방울을 식혔다. 20여 년 전 직장 산악회에서 등산을 목적으로 걸었던 앵자봉이었다. 하산 길에 멧돼지를 만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던 그 길을, 우리는 우비를 입었고 한 손에는 우산을 받쳐 들고 등에는 배낭을 메고 앵자봉 정상을 향해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계속 퍼붓는 비였지만 우리의 발걸음 기도를 멈추게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약간의 불편함이 있을 뿐이었다. 낙엽이 촉촉이 젖어 오히려 말랐을 때보다 겸손되이 납작 엎드려 걷기에는 훨씬 나았다. 드디어 앵자봉 정상 해발 667m에 도착했고 오월의 연분홍 새색시 산철쭉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줬다. 마치 이벽의 열정이 한밤중에 주어사에서 천진암으로 향하였듯이 우리의 순례도 주님께서 열정으로 인도하시는 게 아닐까? “곧 하늘에서 비와 열매를 맺는 절기를 내려 주시고 여러분을 양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 주셨습니다.”(사도행전 14,17) 최종 도착지 산북성당까지 우중 순례였으나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에 무사하게 잘 마쳤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피정의 순례길을 우리는 늘 기다린다. 글 _ 박수희 아녜스(수원교구 디딤길팀 책임봉사자)

2024-04-14

[밀알하나] 이주민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준비(1)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대다수의 이주민들은 노동자들입니다. 사실상 이민정책이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할 때, 내국인의 관점에서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잠시 한국에 머물다 떠나갈 사람들’로 간주되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이미 그들은 한국사회에서 단지 머물고 있는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분 상태 때문에 한국사회 안에서 드러나지 않게 숨어 지내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들끼리 모여 거주하면서 내국인들과 교류하는 것도 경계하고, 건강과 생명, 인권침해와 관련된 문제에도 목소리를 내길 주저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체류한지 10년이 넘었음에도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주민들을 만날 때 ‘아, 이 사람들은 한국어를 배울 마음이 없구나’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토록 오래 한국에서 살면서도 소통을 위한 수단인 언어마저도 배울 열의조차 없는 것 같아 보여 한편으로는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미디어 매체를 통해 들은 바로는 K팝과 K드라마의 열풍으로 너도나도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한다는데, 제가 만난 2000여 명의 이주민들 중 한국어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니 의아한 일이었습니다. 현재 교구에는 11개의 엠마우스(신앙공동체)가 있는데, 필리핀, 베트남, 동티모르,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각자 자기 국가와 대륙을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자기나라 언어를 사용합니다. 한국 땅에서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들을 서로 연결하고 통합하는 것에 한국어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속상한 일입니다. 그들을 사목하기 위해 대안으로 그들에게 마찬가지로 외국어인 영어를 사용하는 것도 우스운 현실입니다. 이처럼 그들의 한국어가 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이주민 정책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사실상 결혼 이민자 외에는 영주권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이주민들을 나와 함께 지낼 이웃으로 받아들일 생각이 아직은 없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고용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언제라도 등 떠밀려 본국으로 쫓겨날 걱정을 안고 사는 이주민들은, 한국어를 배울 동기도 갖기 힘들고, 한국어로 소통할 만한 한국인 친구들도 없습니다. 그들이 한국에 대한 애착이 없어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은 한국의 문화와 정돈된 사회를 좋아하고, 한국 사람들의 호의와 친절에 감사하고 있으며 한국사회에 대해 더욱 더 알기를 원합니다. 한국은 외국인들에게 참으로 매력적인 나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길 내심 기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우리와 함께 지내며 우리의 문화와 사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정책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한국어를 배우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가오는 미래에는 국내의 저출산과 인구감소로 인해 더욱 더 많은 이주민들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한국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안정된 신분을 보장받으면서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활동하는 이주민들이 많아지길 기도합니다. 글 _ 이상협 그레고리오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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