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 멈추었을 때

저는 참 부족한 사람입니다. 예민하고 짜증도 많은 데다 게으르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면 참을성도 부족해서 화가 날 때도 많습니다. 몇 년 전 평창에 있는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운전할 일이 많았습니다. 별생각 없이 운전하다 빨간 불에 아슬아슬하게 멈춰 서면 목적지에 늦는 것도 아닌데 짜증이 났었습니다. 이런 제 부족한 마음을 하느님께서 아시고는 제게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방울토마토를 수확할 때였습니다. 간단한 작업을 끝없이 반복하던 중 방울토마토의 색들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파란색,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방울토마토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마치 신호등 같았습니다. 파란 방울토마토는 지나가고, 노란 방울토마토는 고민하고, 빨간 방울토마토는 담아갑니다. 빨간 방울토마토를 담기 위해 멈추었을 때, 저는 빨강 신호등 앞에 멈춰 짜증내는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멈춰야만 알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저는 멈춤을 무서워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빨간 방울토마토를 심각하게 바라보며 제 내면을 성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너무나 부족한 사람인지라 여기까지도 간신히 왔는데 멈춰 버리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제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내면에 있던 어리숙한 그 마음을 인지하니 유독 짜증났던 멈춤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돌이켜보니 멈추었다고 큰일은 일어나지도 않았고, 저는 여전히 사랑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멈춘 그 시간 안에서 저는 제가 놓치고 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멈춰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산뜻해진 마음으로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던 방울토마토를 소매에 쓱 닦아 먹었더니 정말 맛있었습니다. 저의 부족함이든 예기치 못한 상황 때문이든 멈춤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달콤한 열매일 수도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순간,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함께 해주셨고 가장 필요한 것을 제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랑으로 전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저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 같습니다. 기도하는 시간도 사실 멈춤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각, 나의 신념, 나의 목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묵상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머무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 힘들고 지칠 때, 화나고 짜증날 때, 두렵고 불안할 때, 그곳에서 하느님과 머무른다면 우리는 나에게 가장 필요한 열매를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과 나만을 위한 그 소중한 시간을 우리 모두 더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멈춤을 하느님과 함께 할 때면 그 시간은 더 이상 상실이 아닌 풍요로움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글 _ 김영복 리카르도 신부(2027 WYD 수원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 부국장)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3면

[신앙에세이]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꿈을 품고 나아가다

어린 시절 저는 가난과 장애라는 무거운 현실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소아마비를 앓아 절뚝이며 걷는 저를 친구들은 따돌렸고,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외로움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 순희는 저보다 더 심한 장애를 지녀 집 밖조차 나가지 못했는데 결국 초등학교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친구의 죽음은 제게 깊은 슬픔을 주었고, 저는 다짐했습니다. ‘나는 반드시 살아남아 세상을 넓게 바라보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삶을 살아가겠다.’ 어릴 적 단 한 번도 세상 밖으로 나가본 적 없었기에 저는 세계 일주 배낭여행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시골에서 서울조차 가보지 못한 제가 외국에 간다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그저 허황된 망상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그 꿈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한 걸음이었지만, 용기 하나만으로 길을 열어갔습니다. 세계를 여행하며 저는 가난과 장애로 인해 꿈조차 꾸지 못하는 아이들을 마주했습니다. 배움의 기회조차 없는 그들을 보며 저는 더 큰 사명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국제구호기구 ‘사단법인 꿈나눔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꿈나눔재단을 통해 진로 수업, 장학금 전달, 학용품 지원, 교사 월급 후원, 컴퓨터 교육, 한국 문화 보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인도와 네팔 등 여러 나라의 산골 학교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상진 신부님(바오로·수원교구 광교1동본당 주임)의 헌신적인 기부로 네팔 최초의 기술학교가 건립됐습니다. 바오로직업기술학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기술을 배울 기회조차 없던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곳입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기술 교육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성장한 이들이 결국 또 다른 이들을 돕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어릴 적 꿈을 좇아가는 과정 속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감당할 만큼의 시련을 주시며, 그 시련은 더 큰 사랑과 나눔의 길로 인도합니다. 가난과 장애가 제게 허락되었기에, 저는 더욱 많은 이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삶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생생하게 꿈꾸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명을 끝까지 완수할 때까지, 저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글 _ 신원건 대건 안드레아(사단법인 꿈나눔재단 이사장)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3면

[밀알 하나] ‘진심’으로 걷는 길

평창에 있는 성필립보생태마을에 있을 때, 둥그렇고 포근한 모양새가 매력적인 산을 멀리서만 바라보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산자락에 발을 내디딘 적이 있었습니다. 험난한 산길에 멀리서 보았을 때의 포근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제 발길은 어느새 다시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이 제 삶에 또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너무나 따듯하고 매력적이어서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예비 신학생 기간 6년, 신학생으로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예수님이라는 존재가 너무나 포근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져 꼭 한 번 그 뒤를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되새기곤 했습니다. 기어코 그날이 왔습니다. 예수님의 포근함에 감추어진 험난한 그 길에 올라설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그날에 저는 훈련병처럼 큰 소리로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응답해 버렸습니다. 둥글둥글한 산과는 다르게 여기는 하산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바다에 던져진 느낌이었습니다. 미사를 봉헌할 때는 이게 맞는 것인지 의구심이 생길 때도 있었고, 잠깐의 분심에 미사 경문을 잘못 읽었을 때에는 식은땀이 줄줄 났습니다. 강론은 제 삶과 다르게 너무나 거룩해서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해야 할 기도는 왜 이렇게 많고 귀찮은지 의무감에 꾸역꾸역 바칠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감동받았다고 저를 치켜세워주시는 신자분들을 만날 때면 낯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럭저럭 적응이 될 무렵 다가오는 인사이동은 저를 항상 미궁에 몰아넣는 것 같았습니다. 말도 느리고 행동도 느린 저로서는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이 참 고역이었습니다. 이제야 적응이 된 것 같은데, 새로운 곳에서 내가 복음을 잘 전할 수는 있는지, 새로운 곳에서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을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매번 걱정, 또 걱정했습니다.(신부님마다 다릅니다.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만약 부르심의 길이 등산이었다면, 저는 진작에 하산했을 것입니다. 이런 저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저를 너무나 아껴주시는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과 제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는 마음이 진심이면 되지 않을까요?’ 정답을 주려 하지 말고 진심을 주는 것, 이것이 사제에게 필요한 마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주님께 나아가는 길에서 마음을 다하는 것만큼 중요한 자세도 없는데 저는 그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 내가 한 걸음을 걷더라도 진심을 다해 걷는다면, 주님께는 충분한 봉헌 제물일 것입니다. 느리더라도 진중한 한 걸음, 그 순간이 저에게 가장 필요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우리 모두 대단한 것을 이루려는 마음보다 진심으로 한 걸음씩 내디디는 성실한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루카 13,33) 글 _ 김영복 리카르도 신부(2027 WYD 수원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 부국장)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3면

[신앙에세이] 하느님께서 열어주신 길

신앙은 때때로 우리의 삶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끕니다. 저는 충남 금산의 시골 마을에서 소아마비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의사의 꿈을 키웠지만, 집안 형편으로 대전의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했습니다. 낯선 도시와 환경 속에서 불량배들의 괴롭힘을 받으며 하루하루가 힘겨웠습니다. 삶의 벽 앞에서 답답함과 절망이 밀려왔던 어느 날, 저는 산꼭대기에 올라 눈물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멀리 붉게 빛나는 십자가를 발견했습니다. 그 빛은 한 줄기 희망처럼 다가왔고, 저는 용기를 내어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를 괴롭히던 불량배들이 이미 그 교회의 신도였습니다. 당황스럽고 두려웠지만, 예배당의 문을 열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저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이 경험은 제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만난 신앙은 제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선사했습니다. 더욱 깊어진 신앙 속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여건으로 다른 길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신앙을 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앙은 더욱 제 안에서 단단히 뿌리내렸고, 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다시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후 저는 또 다른 중요한 사명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교도소 봉사였습니다. 재소자들과 함께하며 그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26년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제 삶의 모든 순간은 하느님께서 열어주신 길이었습니다. 불확실하고 힘겨운 시간을 겪으면서 신앙 안에서 진정한 위로를 얻었고, 삶의 참된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시골 작은 본당에서 신앙을 지키며, 하느님의 섭리 속에서 모든 여정을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큰 축복이 있었습니다. 국제구호기구 (사)꿈나눔재단의 설립입니다. 공익법인을 통해 체계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자 꿈나눔재단을 설립하였고, 그 재단은 나눔의 손길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제게 축복이었습니다. 이제 그 축복을 나누며, 방황하는 이들에게 작은 빛이 되고자 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더라도,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는 모든 순간이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길 위에서 우리는 더 큰 사랑을 배우며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글 _ 신원건 대건 안드레아(사단법인 꿈나눔재단 이사장)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3면

[밀알 하나] 죽음의 열매

길에 떨어진 벚꽃잎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나무 위에서는 보송보송한 느낌과 새하얀 그 색감이 아름다웠다면, 바닥에서는 켜켜이 쌓여 농축된 색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떨어진 그 잎들은 썩어 없어지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하늘을 보지 않는 이들에게 하늘을 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땅에 떨어져도 이쁜데, 떨어지기 전에 더 많이 구경할걸 그랬네….’ 벚꽃은 두 번 피는 것 같습니다. 인간으로서 숭고하게 살아온 이들은 살아생전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인간다움을 피워내고, 남긴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의 삶에 흔적을 남겨 또 다른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존경받아 마땅한 이들은 죽음 이후 그의 말과 행적이 재조명되고 그에 대한 향수가 더해져 많은 이들에게 끊임없는 영향력을 미칩니다. 정말로 훌륭한 이들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 용기와 열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숭고한 가치를 몸소 실천한 이들은 죽어서도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완벽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희망을 놓지 않았을 때, 헛된 욕망에서 죽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열매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회칙 「복음의 기쁨」 마지막에서 이런 기도를 바치십니다. “부활의 새로운 열정을 저희에게 주시어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복음을 모든 이에게 전하게 하시고 새로운 길을 찾는 거룩한 용기를 주시어 결코 사라지지 않을 아름다움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다다를 수 있게 하소서.”(288항) 교황님은 자신이 했던 수많은 말들에 갇히지 않고 실천으로 그 말들을 세상에 심어주셨습니다. 이 기도문처럼 교황님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아름다움의 은총을 죽음 이후에도 전해주고 계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남긴 메시지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해묵은 논쟁에서 벗어나 이 세상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도록 가난한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고, 그곳에서 온몸으로 사랑과 평화, 위로와 치유를 전했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그 어떤 지도자, 높은 사람도 보여주지 못한 일치와 평화를 온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지나간 자리들을 다시 살펴보며 그분의 행적이 나의 삶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사랑과 평화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고민만 하다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지 않기 위해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가난한 이들이 있는 곳으로 향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류에게 복음의 열정을 불러일으킨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글 _ 김영복 리카르도 신부(2027 WYD 수원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 부국장)

발행일 2025-05-04 제3440호 3면

[신앙에세이]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에 대하여 짧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이 주제는 짤막하게 다루기에는 나에게 너무나 크고 무거운 거대 담론이었다. 주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할수록 간단치 않을 뿐 아니라, 이를 실천하고 결실을 보는 것은 너무 어려워 보여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핵심 본질을 피해서 사랑을 말할 수는 없으니 어렵지만 솔직한 고백을 해보기로 하였고, 주님의 말씀 안에서 그 해답을 찾아봤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한 14,15)라고 하시면서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코린토 13,4-7) 또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오 5,44) 우리는 사랑의 실천을 쉽게 자주 언급하며 주님의 말씀을 이야기하지만, 과연 이와 같은 새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일상의 기도 속에서도 습관처럼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해주세요’라고 청하지만, 진지함이 부족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 어찌하여 이렇게도 가혹한 계명을 선포하셨나이까!” 무력감이 몰려오는 순간이다. 사랑! 그것은 우리가 가깝게 두기엔 너무나 어렵고 감내해야 할 고통 그 자체로만 느껴진다. 주님의 명령에 ‘못하겠습니다’라고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순명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무거운 마음으로 묵상하던 중 다시 힘을 내라는 주님의 말씀을 보게 됐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고 하신 말씀이 눈에 들어왔고, 우리와 함께하실 것임을 약속하신 그 말씀은 나에게 위로와 희망이 됐다. 지금은 비록 사랑의 계명이 어렵게만 느껴지겠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힘이 되어주신다면 그 길은 고통만이 아닌 참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그렇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말을 존중하고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또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그가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희망과 편안함을 주어야 함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다시 배우게 된다. 또한, 가장 큰 사랑은 하느님을 아는 것이며, 하느님을 알 때 내가 그분 안에 머물고, 그 분께서 내 안에 머무르시며 그 사랑이 완성된다는 진리를 함께 깨닫게 된다.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다시 평온을 찾으며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주님, 저는 지금 위대하지도 않고, 과감한 희생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언제나 주님이 약속하신 사랑의 깃발을 보고 향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그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늘 기도하며 깨어있게 하소서!” 글 _ 장지원 막달레나(수원가톨릭오르가니스트협회 회장)

발행일 2025-05-04 제344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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