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존재의 위안

어머니를 잃었다. 5년이 넘는 투병 기간, 그 마지막 3개월은 나 자신을 준비시키고 훈련도 해보았지만, 막상 어머니가 떠나신 후에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소음처럼 다가왔다. 왜였을까?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따뜻하고 선한 사람, 어머니가 힘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 때문이었을까? 병간호로 잠시 멈추었던 내 직업적 성취와 시간이 응답받지 못했다는 분노였을까? 알 수 없었다. 장례식날 이모님들이 위령미사를 봉헌하길 권하셨다. 하, 나는 교적상 냉담자가 아닌가…. 하지만, 많은 딸이 그러하듯, 나 역시 어머니를 위해 무어라도 하고 싶었다. 그렇게 50일 위령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다. 매일 미사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주로 저녁에 있었지만, 새벽에만 있거나 행사 때는 시간이 이동되기도 했다. 겨울 그 추운 새벽,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다소 용기가 필요하기도 했다. ‘이렇게 눈까지 오는데, 그 큰 성당에 나만 있으면 어쩌지?’라는 대단한 고민과 함께…. 이런 생각은 성당에 들어선 순간 언제나 나를 멋쩍게 했다. 입구부터 깨끗이 치워져 있는 눈, 따뜻해져 있는 성당, 기도하고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 깜깜한 새벽 택시에서 내리는 교우들. 헛웃음과 함께 고마움이, 또 왠지 모를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모두가 나처럼 위령미사를 위해 나오는 것은 아닐 텐데,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이런 궁금증은 ‘왜 나는 저러한 열정적인 신앙심을 가지지 못할까?’, ‘하느님은 왜 이리도 과묵하실까?’라는 나의 오랜 화두에서,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면 어머니 상황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묻기와 원망이 반복되는 동안, 다시 익숙한 침묵과 만났다. 그러면서도 무엇 때문인지 매일 미사 안에서, 절실히 기도하는 교우들의 모습에서, 묵묵히 전례를 준비하는 신자들과 성직자들에게서 그리고 성당 그 자체에서 내가 힘을 얻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시간이 준 자연스러운 회복 과정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상투적이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그 끝없는 침묵도 주님 표현의 한 방식임을, 위령미사를 핑계로 나는 매일 기대고 쉴 곳을 찾아갔음을, 그리고 때로는 가장 필요했던 위로와 평화를 성당이라는 공간과 그 안 사람들의 존재 자체를 통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고. 이제 나는 어디에 있든 주일미사를 우선순위에 둔다. 그리고 내 신앙은 여전히 덤덤하다. 어느 영화 속 대사에서 “신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라고 했다. 무겁고 때로는 두렵고 답답하기까지 한 그 침묵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또한 성당 어딘가에 자리 잡고 앉아 ‘응답하라…’를 되뇌는 내 모습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안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글 _ 익명 ※ 독자마당은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따뜻한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일상 속 은총의 순간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미담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A4 ⅔장 이내) 보내실 곳서울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2층 이메일jebo@catimes.kr

발행일 2026-10-11 제3510호 22면

[독자마당] 주님께서 이끌어주신 산티아고 순례

가톨릭신문 8월 16일자 지면에서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WYD 홍보단’이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잠자리’ 같은 춤사위를 펼치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산티아고 대성당 오브라도이로 광장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감동과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산티아고를 홍보 장소로 선택한 서울대교구의 지혜가 주님의 이끄심이라 생각하며 감사 기도를 드렸다. 10여 년 전, 아버지와 아들이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온 기사를 보고 참 부러웠다. 하지만 당시 남편은 뇌졸중 후유증을 앓고 있었고, 나는 허리 협착증과 무릎 수술을 받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슴 속에 꿈만 키우던 중 코로나19가 찾아왔고, 남편은 암과 신장 투석까지 겹쳤다. 그 시절 cpbc 가톨릭평화방송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보며 전 구간 주요 거리를 기록하고 사진도 찍어 2년 동안 미리 공부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하느님께서 남편을 불러가시고 나는 건강이 더 안 좋아졌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100일이 지난 2023년 10월부터 다시 순례를 준비했다. 홀로 사는 70대 중반의 나이와 건강 문제로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쓰고 순례단에 합류했다. 2024년 주님 부활 대축일이 지나고, 마침내 형제‧자매 14명과 함께 40일간의 도보 순례를 떠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나의 바람대로 이루어진 것은 하느님께서 나의 마음을 온전히 듣고 이끌어주신 큰 은총이었다. 5월 1일, 프랑스 생장에서 순례자 여권을 받고 난도가 가장 높은 피레네산맥을 넘었다. 전날부터 내린 눈으로 새하얗게 덮인 설경이 마치 천국 같았다. 잿빛 하늘과 세찬 바람, 거침없는 눈발에 발은 푹푹 빠졌지만, 추위도 못 느끼고 아름다운 설경 사진을 찍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순례 성당으로 천년의 역사를 담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향해 걷는 길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성찰하며 겸손과 은총으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예수님의 수난, 성모님의 칠고, 야고보 성인의 복음 전도 여정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하루 한 끼만 먹으며 극기로 40일 만이라도 온전히 봉헌하기로 다짐했다. 새벽마다 여명을 따라 걸으며 하느님과 성모님, 야고보 성인께 그날의 길을 의탁했다. 각국 순례자들과 “부엔 카미노!”라고 인사를 주고받고 사랑과 친교를 나누었다.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과 밀밭, 평화로이 풀을 뜯는 소와 양 떼는 지친 몸과 마음에 여유를 주었다. 광야의 태양이 친히 기울며 지상의 모든 것이 붉게 물들 때면 때때로 북받치는 연민에 성모님 앞에서 참았던 지난날의 아픔을 쏟아내며 실컷 울었다. 진통제를 밥 먹듯 먹고 걷고 또 걸었다. 오이와 당근을 그렇게 맛있게 먹었다. 시작부터 기뻐서 울고 감사함에 울고, 허리는 굽고 발바닥 물집은 두 번이나 잡혀서 통증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10여 년 만에 그렇게 오고 싶었던 순례이기에 죽을 때까지 기억하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연장자로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홀로 걸었다. 그 덕에 주님과 온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마침내 ‘몬테 도 고소’ 순례자상 언덕에서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을 보았다. 마지막 힘을 다해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무릎을 꿇고 40일간의 나날을 생각했다. 환희의 눈물을 쏟으며 주 제단 위 야고보 성인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마리아야 잘 왔구나. 내 손을 잡아라” 하시며 손을 내미는 것 같았다. “순례 시작부터 다시는 오지 못할 저의 마지막 산티아고 순례길을 허락해 주신 주님께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죽을 때까지 기쁘게 살아가게 하소서. 사도이며 순례자이신 야고보 성인과 함께 저의 남은 삶의 카미노에서 영원한 집을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가게 하소서. 아멘.” 글 _ 정순임 마리아(광주대교구 여수 문수동본당)

발행일 2026-10-04 제3509호 22면

[독자마당] 그날의 우리, 지금의 우리

얼마 전, 본당에서 함께 활동했던 청년의 청첩장 모임이 있어 오랜만에 그때 그 얼굴들을 만났다.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니,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느라 뜸했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그날 우리가 나눈 대화는 마치 어제 만난 사이처럼 술술 이어졌다. 14년 전, 당시 갓 사제품을 받고 첫 본당으로 부임해 모든 일에 열정이 넘치셨던 보좌신부님, 치열하고 바쁜 직장 생활을 이어가던 형과 누나들 그리고 그저 막내라는 이유로 좋은 것만 듬뿍 받던 나. 우리는 각자 다른 위치에 서 있었지만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만나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가족처럼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며 아무런 조건 없이 위안이 되어준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함께 봉사하고, 함께 웃고, 때로는 서로의 고민을 나누며 보낸 그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참 따뜻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열정 가득했던 새 신부님은 신학대학의 교수 신부님이 되어 사제를 양성하고 계시고, 형과 누나들은 어느덧 한 가정의 아기 엄마·아빠가 되었으며, 나는 본당 청년회의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 각자 삶의 무게도, 짊어진 역할도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좀처럼 만나기 어려워진 요즘이지만,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할 때면 그 어떤 모임보다 반갑고 따뜻하다. 서로를 걱정하고 챙기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형·누나들과 신부님이 나에게 내어주었던 관심과 사랑은, 지금 내가 본당 청년들을 대하는 마음의 밑거름이 되었다. 본당에서 청년 활동을 하면서 예전에 내가 조건 없이 받았던 그 따뜻한 환대와 사랑을 이제는 후배 청년들에게 조금이나마 되돌려주고 나눠주고 싶다. 그렇게 신앙 안에서 맺어진 귀한 인연은 세대와 세대를 넘어 계속 이어지는 것 같다. 내가 겪고 느낀 ‘교회 공동체’는 서로를 위해주고 아껴주는 그런 존재였다. 한때 함께했던 이들을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도, 오랜만이어도 늘 반갑고 위로가 되는 곳.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앞둔 지금, 많은 본당 청년도 나와 같은 마음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글 _ 김지헌 다니엘(서울대교구 동작동본당) ※ 독자마당은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따뜻한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일상 속 은총의 순간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미담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 (A4 ⅔장 이내) 보내실 곳 서울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2층 이메일 jebo@catimes.kr

발행일 2026-09-20 제3508호 22면

[독자마당] 베이징 시스쿠성당(北堂)에 성 김대건 신부님이!

필자는 8월 17일부터 20일까지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천주교 교구연혁사」와 「중국천주교사 연구」 저자인 허난성 안양사범대학 류즈칭 교수의 초청으로 허베이성 한단(邯鄲)교구를 방문해 특강을 하고, 베이징교구 주교좌성당인 시스쿠성당, 이른바 북당(北堂)을 둘러보았다. 이번 방문에서는 최근 중국천주교가 강조하는 ‘중국화’를 필자가 말하는 ‘현지화’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무엇보다 북당에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 성해(聖骸)가 모셔지게 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대대적인 내부 수리를 마친 북당에서는 변화의 흔적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제대 위치였다. 과거 북쪽 끝에 있던 제대가 성당 중앙으로 내려와 있었다. 성당 관계자는 신자들 가운데에서 전례를 거행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북당을 상징하는 ‘만유진원(萬有眞原)’ 편액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제대를 바라볼 때 왼쪽에는 유럽 천주교 역사가, 오른쪽에는 중국천주교 역사와 문화가 표현돼 있었다. 서양에서 전래된 천주교가 중국의 역사와 문화 속에 자리 잡아 온 과정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필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은 성당 뒤편이었다. 돔 형태의 여러 공간 가운데 하나가 앞으로 김대건 신부님 경당으로 활용될 것 같았다. 오른쪽 창에는 김대건 신부님, 왼쪽 창에는 주문모 신부님이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돼 있었다. 창문 앞 돌 제단 위에는 김대건 신부님 성해(聖骸)를 모실 수 있는 나무 성해 틀이 마련돼 있었고, 그 앞에는 장궤틀도 설치돼 있었다. 장궤틀 윗면의 동판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생몰연대와 가경자·복자·성인으로 시성된 이력이 한글과 중국어로 기록돼 있었다. 북당 관계자는 김대건 신부님 성해가 이미 베이징교구에 도착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성해 안치식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사실은 한국천주교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의 북당은 1784년 하느님의 종 이승훈(베드로)이 세례를 받은 찬츠커우교당(蠶池口敎堂)이 1888년 현재의 시스쿠로 옮겨온 것이다. 따라서 북당은 한국천주교 신앙의 출발과 깊은 역사적 관계를 갖는다. 바로 그곳에 중국에서 서품받아 한국인 최초의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님의 성해가 모셔진다는 것은 한·중 천주교 역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이는 중국천주교가 강조하는 중국화 또는 현지화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서양에서 전래된 천주교가 중국의 역사와 문화 속에 뿌리내리고, 그 공간에 한국천주교의 역사와 인물까지 함께 담아내는 모습은 천주교가 동아시아에서 걸어온 긴 역사를 보여 준다. 김대건 신부님의 성해가 정식으로 모셔져 경당이 완성되는 날을 기다려 본다. 언젠가 그곳에서 한국어 미사가 봉헌되고 김대건 신부님의 신앙을 기억하는 기도가 울려 퍼지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날은 한 성인을 기리는 것을 넘어 한국과 중국천주교가 공유해 온 역사적 기억을 다시 확인하는 뜻깊은 순간이 될 것이다. 글 _ 신의식 멜키올(아시아천주교사연구회 회장·충북보건과학대학교 교수) ※ 독자마당은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따뜻한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일상 속 은총의 순간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미담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 (A4 ⅔장 이내) 보내실 곳 서울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2층 이메일 jebo@catimes.kr

발행일 2026-09-13 제3507호 22면

[독자마당] 자살 예방,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가장 시급한 현안입니다

저는 경북 구미 미래로병원에서 약 6년 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입원 치료 중인 청소년들을 상담하고 있습니다. 가정폭력과 학교폭력, 성적 비관과 같은 문제로 인해 자해와 자살 시도를 하는 등 정신과적 문제를 겪게 된 이분들을 만나면서, 성적 위주 교육의 문제점과 또래집단에서의 왕따, 가족들의 무관심이나 가족의 붕괴 등을 마주하게 됩니다. 또한 친구를 잘못 사귀거나 그와 관련된 폭력적 SNS, 심지어 자살을 부추기는 인터넷 사이트와 같은 참으로 다양한 사회적 병폐와 어두운 문제들이 우리 청소년들의 심신을 갉아 먹고 마침내 자해와 자살 시도로 이끌고 있음에 너무나 놀랍고 가슴이 아픕니다. 9월 10일은 자살 예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생명 존중의 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세계 자살예방의 날’입니다. 생명 자체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각자가 자신만의 재능을 타고 태어나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지만 우리 모두는 개개인이 고유한 생명으로서 존재 자체가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는 앞서가고 어떤 이는 뒤따르며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기도 하겠지만, 서로 격려하고 기다려 주며 사랑을 받고 자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분들을 상담해 오면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 잘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노래나 운동, 요리, 글짓기 등 각자 자신이 관심을 가지거나 잘하는 것들을 얘기할 때 눈빛과 표정이 밝아짐을 보게 됩니다. 나중에 자신들이 적은 시나 산문 등을 가져와서 보여주는 분들께는 칭찬을 하고 안아주면 너무나 좋아하고 고마워하며 새로운 용기를 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고 부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이분들에게 ‘우리는 모두 존재 자체가 귀한 선물’이라고 늘 말씀드리곤 합니다. 때로 종교가 없는 분들에게는 묵주팔찌를 선물하면서, 이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남과 비교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실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은총을 구하며 상담하고 있습니다. 제가 상담했던 한 고등학생의 <옥상>이라는 시를 소개하며 자살예방에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노력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주님, 벼랑 끝에 몰렸다고 비관하는 청소년들이 용기를 내어 일어설 수 있도록 은총 주시어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글 _ 이춘자 수녀(아녜스·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경북 구미 미래로병원 심리상담)

발행일 2026-09-06 제3506호 22면

[독자마당] 당신은 성당에서 ‘친교’를 하나요, ‘사교’를 하나요?

‘친교: 친밀하게 사귐 또는 그런 교분’ ‘사교: 여러 사람이 모여 서로 사귐’ 친교와 사교, 두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은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친교에는 ‘친밀하게’라는 의미가 더해져 있다. 30여 년을 살아오고, 세례를 받고 10여 년을 천주교 신자로 지냈지만 나는 얼마 전에서야 이 두 단어의 차이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그 시작은 성당 공동체 안에서 품게 된 ‘작은 의문’이었다. 올해 청년회장을 맡으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은 ‘어떻게 하면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받은 은총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을까’였다. 고충을 털어놓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함께 기도하고 말씀에 비춰보는 공동체를 원했다. 물론 같이 밥을 먹고 취미와 일상을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도 필요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안에는 질문 하나가 계속 남았다. ‘성당에서 맺는 친교는 세상에서 사람들과 나누는 친교와 무엇이 다를까.’ 그러던 중 누군가로부터 “함께 술자리를 갖는 것도 친교”라는 말을 들었다. 이에 또 다른 질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성당 공동체는 단지 성당 내 단체이기에 신앙 공동체가 되는 것일까.’ 답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미사 중,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 내가 품고 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성당 공동체에서 친교를 맺는다면 세상에서 이뤄지는 것은 사교다. 그런데 만약 세상에서의 사교를 그대로 성당 공동체 안으로 가져온다면, 그것 역시 사교에 머물게 된다. 친교란 무엇일까. 서로 일상의 한가운데에서 주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는지, 서로 주님께서 건네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서로 그 작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지였다. 함께 매일미사를 드리며 하루를 주님께 봉헌하고, 누군가의 아픔을 들었을 때 먼저 기도를 떠올리고 때로는 아무런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함께 기도하자”고 말해줄 수 있는 관계. 나는 그것이 신앙 공동체가 맺는 친교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1코린 1,9) 하느님께선 먼저 우리를 부르시어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게 하셨고, 우리는 그 친교 안에서 서로를 만났다. 즉 사교와 달리 친교는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보여주신 관계의 모습이다. 이 지점에서 친교와 사교의 차이가 더욱 분명해진다. 사교가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넓히고 가까워지는 것이라면, 친교는 서로의 관계 안에서 함께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이제 공동체 안에서 좋은 관계를 맺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주님을 향해 걸어가는 관계를 더 바란다. 얼마나 자주 만났는가보다 매일 함께 미사를 진심으로 드렸는가. 얼마나 즐거웠는가보다 헤어진 뒤 서로를 위해 한 번이라도 기도했는가. 그것이 이제 내가 생각하는 성당 공동체의 모습이다. 어쩌면 친교는 청년회에만 필요하지 않다. 성당 내 모든 공동체와 만남에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물을 때다. ‘나는 오늘 누군가와 함께한 자리에 주님을 모셨는가?’ 어쩌면 친교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 _ 정소영 에스텔(의정부교구 구리 인창동본당) ※ 독자마당은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따뜻한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일상 속 은총의 순간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미담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 (A4 ⅔장 이내) 보내실 곳서울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2층 이메일jebo@catimes.kr

발행일 2026-08-30 제3505호 22면

[독자마당] 십자가의 빛과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지난 7월 29일 오후 8시, 수원교구 성라자로마을에서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D-365를 기념하는 묵주기도 운동 ‘로프업’ 행사가 있었다.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동산까지 가는 길엔 점점 어둠이 짙게 내리고 온몸은 땀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다 함께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로 마음만은 잔잔한 감동으로 가득 차올랐다. 성모동산에는 성인 세 분의 유해가 제대에 모셔져 있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 가롤로(카를로) 아쿠티스의 유해 앞에서 봉헌된 미사는 1년 뒤 열릴 WYD를 위해 수원교구의 각 성당과 성지로 순례를 향하는 첫걸음이었다. 묵주기도를 바치고 미사를 봉헌하며 우리는 청년들의 믿음과 평화, 그리고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집으로 돌아온 늦은 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다가 우연히 달빛 사이로 십자가를 연상시키는 빛의 모습을 보게 됐다. 그것이 자연현상이었는지, 빛의 굴절이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놀라운 현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그 순간 내게는 하루 동안의 기도가 다시 떠오르며, 하느님께서 “함께 걸어가자”고 초대하시는 듯한 깊은 평화를 느꼈다. 십자가의 빛은 10초 정도 짙어지다가 사라지기를 대여섯 차례 반복했다. WYD는 일반적 국제 행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젊은이들이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 희망을 나누는 순례이며, 교회가 다음 세대와 함께 미래를 열어 가는 신앙의 여정이다. 올해 3월 25일부터 4월 22일까지 수원교구에서 이어졌던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 순례에 이어 이번 성인 유해 순례 역시 성인들의 삶을 따라 우리 자신의 삶의 여정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나는 빛을 기록하지만 신앙은 그 빛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다. 신앙 안에서 바라보는 빛은 단순한 밝음이 아니라 우리를 하느님께 이끄는 희망의 표지이기도 하다. 그날 밤 달빛과 함께 보여주신 십자가는 앞으로의 여정을 기도로 준비하며 그리스도의 빛을 따라 걷는 순례자가 되라는 하느님의 조용한 초대로 다가왔고, 나는 그 초대를 가슴 깊이 새기며 내게 주어진 순례의 걸음을 힘차게 다시 내딛기로 했다. 글 _ 김경은 율리아나(수원교구 성남 서판교본당) ※ 독자마당은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따뜻한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일상 속 은총의 순간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미담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A4 ⅔장 이내) 보내실 곳 서울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2층 이메일 jebo@catimes.kr

발행일 2026-08-23 제3504호 22면

[독자마당] 하느님께 감사

굿거리장단에 맞춰 장구 소리가 우렁차게 흥을 돋우고, 성가대가 신명 나게 소리를 내자 어깨가 절로 덩실덩실 들썩인다. “모든 천사 성인들 마중 나오고 아들 예수님 양팔 벌려 어머니 맞으시네.”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어머니 하늘로 오르셨다. 민요 소리를 흥겹게 흉내 내며 어깨춤을 추던 그날이 떠오른다. 한복도 입지 않은 채 치맛자락을 살포시 잡고, 발끝은 버선코처럼 허공으로 내밀곤 했다. 발뒤꿈치로 사뿐히 바닥을 디뎌 앞으로 발을 내디디면, 어느새 엄마도 자리에서 일어나 흥겨워 내 뒤를 따르셨다. 생전 엄마가 그토록 즐거워하셨던 놀이였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엄마는 나를 알아보았지만, 기억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존재와 존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그것만은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당신이 이 세상에 낳은 자식들의 이름을 묻고 또 물었다. 살아생전 엄마에게는 가족이 전부였다. 나는 모질게 엄마로부터 그것을 앗아 버렸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요양원으로 보내져야 했던 당신은 직립을 포기하셨다. 직립을 포기하면 집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으로 내몰렸을 때 나는 세상의 잇속이 우선이었다. 더구나 사회에서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내려놓을 용기가 없었다. 인간의 육신은 영혼이 머물기 위한 매개체에 불과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어떻게 돌아보느냐에 주의하시오. 썩어 가는 것을 생각하지 마시오. 뚫어지게 보시오. 당신은 사랑하는 고인의 살아 있는 빛을 하늘 속에서 볼 수 있을 것이오.” <레 미제라블>의 말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나를 사멸 속으로 잠식시켰다. 나는 무덤을 떠올리며 육신에 집착해 갔다. 엄마가 겪은 육신의 고통에 매몰되어, 어느새 그 고통과 치매를 앓았던 정신까지 닮아가는 것 같았다. 고통을 덜기 위해 무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무덤은 자연으로 돌아간 육신의 자리이다. 하이데거가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정의했던가. 나에게도 언젠가 그날이 올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죽음으로 나아가는 시간의 길이다. 그래서 지금의 삶이 충실하기를 바란다. 이제 별을 바라보며 하늘의 별 속에서 엄마를 찾을 수 있겠다. 이사 오기 전 본당 성령기도회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찾던 이들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감정을 쏟아냈다. 작은 흐느낌으로 시작된 소리는 어느새 깊은 통곡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울부짖음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소리가 크게 느껴졌다. 나 역시 고통 속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신음하는 이들의 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 귀가 몇 배나 열려 그들의 신음이 마치 대형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다가왔다. 신음하고 있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제물이 되신다. 골고타 언덕을 걸어가시는 예수님, 그 고통의 십자가 지심은 곧 내 어머니의 고통이었다. 그 고통으로 몰고 간 이는 바로 무지한 나였다. 우리의 고통은 결국 서로를 향해 얽혀 있지만, 그 고통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사랑임을 우리는 안다. 지난날 성체를 영하는 일이 습관에 불과했다면 오늘의 영성체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인류 구원을 위해 강생하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이 잔치를 통해, 어머니의 삶의 역사를 깊이 기릴 수 있게 되었다. 약해져만 가던 사랑을 일깨워주고 북돋아 주는 성체를 오늘도 감사히 모신다. “우리 어머니, 푸른 옷고름 날리며 하늘로 오르시네 하늘로 오르시네.” 글 _ 이경순 그라시아(대구대교구 다사본당) ※ 독자마당은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따뜻한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일상 속 은총의 순간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미담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A4 ⅔장 이내) ※ 보내실 곳 서울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2층 이메일 jebo@catimes.kr

발행일 2026-08-16 제3503호 22면

[독자마당] 늦은 깨달음

나는 10여 년 전 개종하고 세례를 받은 천주교인이다. 지금 이곳은 세상과 단절되어 간간이 접하는 신문, TV 말고는 바깥소식을 잘 모른다. 2주에 한 번 있는 종교 집회 시간이 너무 기다려지고 설렌다. 봉사자님들과는 눈길 한 번 마음 편히 주고받을 수 없는 거리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분들과 신부님을 뵙는 시간은 나에게 세상 그 무엇보다 반갑고 소중한 순간이다. 이곳에서의 첫 미사는 내 평생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볼까 봐 정말 가슴을 졸이며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그날 밤에 ‘내가 왜 그렇게 주체할 수 없이 계속 눈물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회개와 반성,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비로소 주님을 만났다는 내 신앙의 첫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내 신앙심은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다가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이인 것이다. 그동안은 흉내에 불과했던 하느님의 자녀된 삶이 이곳에서나마 늦은 출생을 한 건 아닌가 생각한다. 난 매일 아침 어설픈 묵주기도를 바친다. 묵주를 굴릴 때마다 지난날의 그릇된 믿음으로 하느님 뜻에 어긋나게만 살아왔던 시간을 눈물로 반성한다. 이렇게 매일매일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는 나약한 사람이란 것을 이제 깨닫는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계획하셨다. 나의 남은 삶은 이제부터 모두 주님의 계획 안에 놓여있다. 어두울 때 더 찾기가 쉬운 빛을 나는 이제야 찾았다. 지금 되찾은 나의 신앙심이 변하지 않도록 매일 기도하며 성경도 천천히 정독해 본다. 하느님의 사랑은 절대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는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어 내 믿음은 더욱 굳건해질 것도 믿는다. “주여! 제가 육신의 몸으로 견딜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없사오나, 그리움이란 고통은 너무도 얄팍하나이다. 저에게 굳건한 믿음과 지혜를 주시어 가족을 지키고 잘못된 모든 일을 올바로 되돌릴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시옵소서. 제 남은 생을 모두 주님 뜻에 맡기옵니다.” 글 _ 익명의 독자 ※ 독자마당은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따뜻한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일상 속 은총의 순간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미담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 (A4 ⅔장 이내) 보내실곳 서울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2층 이메일 jebo@catimes.kr

발행일 2026-08-02 제3502호 22면

[독자마당] 봉헌도 신앙처럼 자라고 있습니까

인터넷에 떠도는 씁쓸한 농담이 있습니다. “신천지가 천주교 신자 포교는 잘 안 한다더라. 천주교 신자들은 천 원만 내니까.” 웃자고 하는 말 같지만, 결코 가벼운 농담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뼈아픈 이야기입니다. 현실에서도 “성당에서 봉사하다 보면 헌금 봉투에 천 원짜리 한 장만 덜렁 들어있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는 말이 신자 공동체 어디서나 공공연하게 나오곤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민낯입니다. 요즘 천 원짜리 지폐는 일상에서 거의 사라진 돈입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려 해도,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려 해도 1000원으로는 부족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봉헌 바구니에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결론은 하나뿐입니다. 미사를 위해 ‘일부러’ 준비해 온 것입니다. 1000원을… 하느님께 드리기 위해, 수고스럽게 챙겨 온 셈입니다. 처음 제대 앞으로 나아가 봉헌 바구니에 손을 넣던 날을 기억하십니까. 제가 첫영성체를 하던 시절, 주일 봉헌금은 100원, 200원이었습니다. 학교 담벼락 떡볶이 포장마차에서 100원이면 떡을 열 개 집어 먹던 시절, 그 귀한 돈을 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용돈을 아껴 1000원을 냈습니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값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봉헌했던 1000원은 지금 가치로 1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신앙의 나이는 차곡차곡 쌓였는데, 하느님을 향한 봉헌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셈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무언가를 얻기 위해 계획하고 저축합니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적금을 붓고, 결혼, 여행, 자녀 학비, 건강검진 등을 위해 돈을 모읍니다.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기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아껴서 기어이 손에 넣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위해서는 어떻습니까. 일주일에 1만 원, 하루에 1000원, 2000원.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해 그 작은 돈조차 따로 모아본 적이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을 위해서는 내 소득의 가장 큰 부분을 할애하면서도 주님을 위한 몫은 남고 남은 자투리 돈으로 채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미사 끝나고 지인들과 마시는 커피 값 7~8000원, 배달 앱을 열어 음식을 시킬 때는 기본 3~4만 원을 주저 없이 씁니다. 명절에 만난 자녀들의 용돈과 손주 생일 앞에서는 기꺼이 지갑을 활짝 엽니다. 그런데 유독 봉헌만큼은, 30~40년 전 그 포장마차 앞을 서성이던 어린 시절보다 못한 자리에 멈춰 서 있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하느님께 드리는 일에,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는 ‘가장 나중에, 가장 적게’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한 달 동안 기꺼이 지갑을 열었던 순간들 가운데 과연 하느님을 위한 자리는 몇 번이나 있었습니까? 성당에서의 봉헌은 단순히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운영비나 세금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마음의 지향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내가 삶에서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하느님 앞에 고스란히 꺼내 보이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만약 하느님을 향한 그 사랑의 표현이 30~40년째 같은 자리에 있다면, 오늘부터 아주 작은 것부터 조금 다르게 표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글 _ 현진희 아타나시아(의정부교구 고양 가좌동본당) ※ 독자마당은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따뜻한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일상 속 은총의 순간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미담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A4 ⅔장 이내) ※ 보내실 곳 서울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2층 이메일 jebo@catimes.kr

발행일 2026-07-26 제3501호 22면
기사 더보기더보기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