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어농성지 이야기

가을의 숨결이 짙게 느껴지는 10월, 대전교구 당진본당 ‘늘푸른 성서대학’ 48명의 어르신은 원장 수녀님과 함께 수원교구 어농성지를 순례했다. 떠나긴 전 김경식 미카엘 주임 신부님께서 “오늘 성지에 가셔서 하느님의 은총과 젊은이의 기운을 많이 받고 오시기를 바란다”며 순례객에게 강복을 주셨다. 오전 8시30분 출발해 두 시간여를 달려 성지에 도착하자, 앞에 펼쳐진 넓은 잔디밭과 그곳에 모셔진 예수님상이 두 팔 벌려 순례객들을 반겼다. 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고 화려한 건물보다는 자연 속에서 기도하고 묵상하며 순교자들과 영성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조용하고 소박한 곳이었다. 우리 삶은, 하느님께 이르는 길 위의 순례와 같다. 모든 길은 십자가 길의 일부이며, 그 길을 걸음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뒤를 끊임없이 따르며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걷는다. ‘누죽걸산’이라는 말이 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의 줄임말이다. 세월의 무게로 허리가 굽어지고 무릎이 몹시 아픈 연세 많은 자매님이 빠짐없이 참여하는 모습도 희생을 나누는 영성일 것이다. 어농성지를 찾은 순례객이 많은 관계로, 성당에서 떨어진 순교자 묘역 앞 야외제대에서 오전 11시에 미사가 봉헌되었다. 성지 전담 윤석희 미카엘 신부님은 강론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성지에는 1795년 을묘박해로 순교한 최초의 밀사 윤유일(바오로)의 동상과 200주년 순교 기념 현양비가 있고,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주문모(야고보) 신부 등 순교자 17명의 묘가 자리하고 있어 그분들의 행적과 놀라운 용기에 감탄을 자아내어 머리 숙여 깊이 인사하곤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세상에 우여곡절과 어려움이 많으실 겁니다.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순교자들의 신앙이 여러분을 보호하실 겁니다. 순교자들의 도움을 믿으시고 기도와 힘을 받고 가시기 바랍니다.” 미사가 끝난 후 성당으로 이동하여 순교자들에 관한 영상을 관람하였다. 영상은 군중들이 “그리스도를 모독하여라!”, “저 사람을 배반하여라!”라고 외칠 때, 순교 직전 복자 윤유일이 “천만번 죽을지라도 저 십자가 형틀에 묶이신 분을 모독할 수 없소”라고 외친 마지막 신앙 고백을 담고 있었다. 점심 식사 후 십자가 동산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기도하였다. 푸른 동산에 모셔진 환하게 웃으시는 성모님의 동상 앞에서 즐거운 게임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일정을 마무리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6) 글 _ 김윤구 미카엘(대전교구 당진본당)

발행일 2025-11-16 제3466호 22면

[독자마당] 우리가 선택하기 전부터 주신 하느님 사랑

나의 아버지는 불교 신자였다. 어린 시절 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아시고는 “예수님은 부활하신 것이 아니고 쌍둥이셨단다”라고 하시며 감정이 고조되어 말씀하시곤 하셨다. 당시 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는 무어라 내 생각을 말씀드릴 수가 없었고 “그거 아니에요” 정도로 조심스럽게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서 나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 시절, 나의 삶은 쉽지 않았다. 중증 장애가 있는 몸으로 대학 생활을 이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단했다. 강의실을 찾아다니는 일조차 매번 도전이었고,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소소한 일상은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방학 때면 시골집에 머물렀는데 대문 밖에도 나가기가 어려웠던 나는 골방에서 새벽까지 불을 켜놓고 깨어 있었고, 낮에도 방 안에 머무는 날이 많았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늦은 밤까지 택시 운전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조용히 내 방문을 여시더니 책 한 권을 놓고 가셨다. 천주교 서적이었다. 손님으로 알게 된 교수님이 주셨다고 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예수님 얘기만 나오면 화 아닌 화를 내시던 아버지셨는데…. 그날은 아무 말씀 없이 책만 놓고 가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의 신념을 잠시 내려놓게 했구나’ 싶었다. 혹은 ‘하느님께서 나의 장애를 통해 아버지가 하느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기존 종교 사람들과의 인연을 놓지 않으셨지만, 세례를 받은 우리에게 예전처럼 아버지의 종교를 강요하시지는 않으셨다. 아버지 마음속에 이미 성령님께서 오셨던 것은 아닐까. 비록 머물던 자리를 완전히 바꾸시지는 못하셨지만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금도 종종 아버지께서 주시는 사랑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께서 천국에 가셨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과 함께 계심을 느끼고 있다. 글 _ 최은영 소피아(대구대교구 사수본당)

발행일 2025-11-02 제3464호 22면

[독자마당] 가을밤 ‘은빛소리’

마산교구 주교좌 양덕동본당 설립 50주년을 앞두고 기념 음악회가 열렸다. 특히 새롭게 탄생한 시니어 합창단 ‘은빛소리’도 그 자리에서 한몫했다. 단원은 60대 후반에서 80대 후반까지 50명이었다. 전문 합창단이 아니었기에 첫걸음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네 곡을 소화하는데 악보를 익히고 노랫말을 외우며, 뻣뻣한 몸으로 율동까지 더해진 연습은 단순한 노래 이상의 도전이었다. 게다가 노랫말 곳곳에 경상도 사투리가 복병처럼 등장했다. ‘쓸쓸한’을 ‘설설한’으로, ‘사슴처럼’을 ‘사섬처럼’, ‘모든 것이 은혜’를 ‘모든긋이 언혜’로 부르는 등 발음 교정이 급선무였다. 3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 10시 미사 후, 연습실에서 시작기도를 바친 뒤 1시간 동안 지휘자의 지도 아래 마음을 모아 연습했다. 무더위도, 나이도 이들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출석률은 높아졌고, 음악회가 가까워질수록 설렘과 긴장이 교차했다. 50명의 단원을 위해, 음악회가 무사히 마무리되기를 함께 기도했다. “주님께서 힘을 주시고 저희와 함께해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그리고 마침내 음악회 날! 내가 이 성전에서 무대에 선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있었던가. 성전은 빈자리 없이 신자들로 가득 찼고, 음악회에는 약 100명이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빛났던 순간은 교구장 이성효(리노) 주교님의 색소폰 연주였다. 앙코르곡까지 포함해 총 3곡을 선사해 주셨고, 그 연주는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우리만 연습한 것이 아니었음을, 주교님 역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하셨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동안 기쁜 마음으로 봉사해 주신 지휘자님, 반주자님, 단장님과 총무님 모두에게 두 손 모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이 모든 순간을 은혜로 이끌어 주신 주님께서는 영원히 찬미 받으소서. 아멘. 글 _ 박정옥 비비안나(마산교구 양덕동본당)

발행일 2025-10-26 제3463호 22면

[독자마당] 부산교구 온천본당 소년 쁘레시디움 창단!

9월 27일 부산교구 온천성당에서 미래 교회의 희망을 꽃피우는 뜻깊은 역사가 새롭게 기록되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린이 레지오 마리애 ‘샛별’ 쁘레시디움(단원 10명)과 ‘기쁨의 샘’ 쁘레시디움(단원 13명) 두 단체가 공식적으로 창단된 것입니다. 총 23명의 단원들은 설렘과 굳건한 신앙심으로 ‘성모님의 군대’로서 첫 발걸음을 내디뎠으며, 이 창단식은 본당 공동체에 큰 기쁨과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샛별’과 ‘기쁨의 샘’이라는 이름처럼, 이 아이들이 본당과 세상에 새로운 빛이 되고, 마르지 않는 은총의 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신부님께서는 이날 참석한 어린이 단원들과 신자들에게 깊은 축복을 전하시며, “어린이 레지오 마리애는 우리 아이들이 성모님의 정신을 닮아 봉사하고 기도하며, 신앙 안에서 성장하는 소중한 배움터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 “어린이 단원들이 성모님의 뜻을 따르는 굳건한 군사로 본당과 이웃을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어른 단원들과 신자 여러분께서도 적극적인 기도와 따뜻한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하셨습니다. 또한 신부님께서는 레지오 마리애의 활동이 단순한 모임을 넘어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장 가난하고 외로운 이웃을 돕는 실질적인 사도직임을 강조하며, 이번 창단이 세대 간 신앙을 이어주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전했습니다. 이번 창단은 본당이 어른들의 신앙을 다음 세대인 어린이들에게 아름답게 이어주며, 세대 간 신앙의 연결고리를 단단히 이어가는 뜻깊은 실천이 되었고,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교회의 사도직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건강한 가톨릭 신앙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레지오 마리애는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하는 신심단체로, 단원들의 성화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특히 어린이 레지오 마리애는 아이들이 성모 마리아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닮아 봉사와 기도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신앙의 뿌리를 깊게 내릴 소중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어린이 단원들이 성모님의 사랑과 섬김의 정신을 본받아 교회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글 _ 정인옥 아가다(부산교구 온천본당)

발행일 2025-10-19 제3462호 22면

[독자마당] 미리내라는 친구

한여름 그믐 밤하늘 수천억 별들 한데 어우러져 어깨를 겯고 은빛 강물결로 넘실대며 흐르네 들리는가 별들의 머언 속삭임이 내 잠을 흔들어 깨워 풀벌레 소리에 귀를 세우고 하늘 한 번 땅 한 번 우러르게 했던 그 은하수 보고 싶어 떠난 몽골의 초원 밤 11시, 테를지 국립공원의 밤 별들의 초대에 응했네 고흐와 윤동주의 별들이 잠시 얼굴을 내밀다 가고 까마득한 기억의 저편 내 짝꿍이던 경순이, 별들 속에서 유독 손짓하며 반짝이네 두 손 흔들며 맞잡고 어깨동무 한 채 저 강에 하늘 쪽배 띄워 함께 건너도 좋을 그 눈망울 선하네 집집의 호롱 불빛이 밤 별빛과 한데 어우러져 시냇물에 비낀 은하수 같다 해서 미리내 용, 미르가 승천해서 살 시내라는 그곳은 은하수의 별명으로 반짝이며 흐르네 병오박해 때 순교한 사제 김대건 업고 뛰던 청년 이민식 낮 동안은 남몰래 깊은 숲속에서 으름과 보리수 이파리와 말간 시냇물로 연명하고 밤에는 풀벌레 소리 동무 삼아 일주일을 걷고 또 걸었네 그가 묻힌 안성 미리내성지는 이 고난의 일을 별들은 소곤소곤 쏙닥쏙닥거리며 별 흐르는 강이 환하게 내려오는 음력 사오일은 꺼이꺼이 목 놓아 울어도 좋을 백오십 리의 밤하늘에 눈시울 그렁그렁한 미리내도 함께 흐르네 갤럭시폰*을 차고 있으면 미리내의 수많은 정감을 마음에 팔짱 낀 것만 같네 테를지 초원 위로 무수히 쏟아지던 눈빛들 잃어가는 것들 새삼 똥기며 내 가슴에 스며드네 *갤럭시: 은하수 글 _ 방소영 세레나(인천교구 김포 운양동본당)

발행일 2025-10-05 제3461호 22면

[독자마당] 청년을 낚는 교회 말고 청년의 마음을 얻는 교회로

2025년 여름, ‘젊은이의 희년’에 참가한 청년들은 교회의 주인공으로서 로마 시내를 열정과 생명력으로 가득 채웠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초대에 응답해 세계 각국에서 모인 이들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청년의 존재와 가능성을 힘 있게 증언했다. 그 체험은 순간에 그치지 않았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청년들은 감사미사를 위해 다시 모였고, 그 자리에서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봉사 신청서’를 작성해 봉헌했다. 봉사를 권유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 깊은 신앙 체험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실천을 요구받는 분위기는 감동을 충분히 누릴 틈을 주지 않는 듯했다. 물론 그 감동을 봉사로 이어가는 것은 하느님 체험의 또 다른 모습이며, 개인과 교회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일이지만 말이다. 왜 그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는지 곰곰이 떠올려보니, 교회 안에서 청년들이 늘 ‘당연한 일꾼’처럼 인식되어 왔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본당 행사에서는 청년들의 노동력이 자연스럽게 기대되었고,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구유를 철거하는 일에는 으레 청년들이 먼저 호출되었다. “청년들도 공동체의 일원이니 참여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청년들의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존중받고 반영되기까지는 긴 시간과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나 역시 중고등부 교리교사로 활동하던 시절이 있었다. 교사 간의 호흡도 좋았고, 아이들과 더 즐겁게 지내기 위해 활동을 기획하고 교안을 준비했다. 아이들도 성당에 오는 걸 즐거워했고, 고3 학생 중에는 대학에 진학하면 교리교사를 하고 싶다며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교리교사가 부족하다는 걱정과 달리, 잘되는 공동체에서는 청년들이 소속감을 느끼고 신앙 안에서 기쁨을 경험할 때 자연스럽게 봉사로 이어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한 한 친구는 피아노 반주도 훌륭해 성당 행사마다 환영받았다. 음악회가 열리면 몇 달 전부터 오케스트라 연습에 참여했고, 성음악분과의 봉사에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빠짐없이 참여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 친구가 학비를 벌기 위해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개신교회에서 연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성당에서는 차비조차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르바이트와 전공 연습 사이에서 시간을 쪼개 봉사까지 감당하던 그는 어느 날 “오늘도 억지 봉사에 간다”고 하소연했다. 나의 청년 시절 성당 활동은 분명 내 삶의 자양분이 되었지만, 20년 전 속상했던 일이 지금은 반복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봉사를 권유하는 방식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 청년의 시선에서 왜 봉사가 의미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공감으로 설득하는 접근이 요구된다. 청년을 단순한 인력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청년대회의 주인공이자 주체로 인정하며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꾸준하고 인내 어린 노력이 필요하다. 청년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교회는 더 끈기 있게, 더 따뜻하게 다가가야 한다. 사람을 낚는 어부란 단번에 기술로 낚는 이가 아니라, 소통과 나눔의 시간을 통해 마음을 얻는 사람이다. 교회 역시 당장의 성과를 따지기보다, 관계에 기꺼이 투자할 수 있는 여유와 인내를 지녀야 한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는 오늘날 청년 사목의 과제를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 그 여정 속에서 오래된 상처가 드러나고, 오랫동안 묻혀 있던 문제들이 터져 나올 수도 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바로 그 시간이야말로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성찰의 시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더 많은 청년이 교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이 여정은 아픔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시간이자, 새로운 희망을 틔우는 시작이 될 것이다. 글 _ 박효정 체칠리아(수원교구 능평본당)

발행일 2025-09-28 제3460호 22면

[독자마당] 모래웅덩이와 바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하려 고요한 바닷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의 생각은 하늘에 머물고 그의 가슴은 답을 찾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조개껍데기를 들고 바닷물을 모래웅덩이에 옮기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 아이는 대답했습니다 "이 바닷물을 이 웅덩이에 다 담으려 해요“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 순간 멈춰 섰습니다 그 아이의 말이 하느님의 음성처럼 들렸습니다 지성으로 신비를 다 담으려 한 자신의 교만을 바다의 깊이 앞에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 저도 그 아이처럼 작은 조개껍데기를 든 채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한 방울의 말씀이라도 한 줌의 자비라도 제 안에 담고 싶어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의심의 파도가 밀려와도 사도신경의 한 마디도 물음표 없이 새기려는 이유는 당신께 머무르고 싶기 때문입니다 당신 안에서 살아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비록 바닷물을 다 옮기지 못해도 저는 매일 그 일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모래알 같은 하루 속에서도 저의 웅덩이는 점점 깊어지기를 당신의 신비로 조금씩 채워지기를 오늘도 조개껍데기를 손에 쥐고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 아이들을 축복하여 주소서 아멘 글 _ 허두환 경일시메온(대구대교구 가창본당)

발행일 2025-09-21 제3459호 22면

[독자마당] 레오 14세 교황님께 드리는 간절한 요청

존경하올 레오 14세 교황님께 저는 지극히 작은 신자로서, 지금 세상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전쟁의 포성 앞에 깊은 슬픔과 무력감을 느끼며 이 글을 올립니다. 특히 가자지구에서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굶주림과 폭격 속에 매일 쓰러져 가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의 많은 지도자가 이 비극을 알면서도 이해관계에 묶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야말로 교황님께서 지니신 도덕적 권위와 신앙적 양심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역사 속에서 교황님들의 목소리는 전쟁을 늦추고, 학살을 멈추고, 억눌린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 왔습니다. 지금도 그 목소리를 세상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이미 여러 차례 집단적 처벌과 강제 이주, 무차별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더 나아가 청원 드립니다. 1. 전쟁의 즉각적 중지를 촉구해 주십시오. 무기가 침묵할 때만이 대화의 길이 열립니다. 2. 굶주림과 기근의 해결을 위하여, 국제사회와 교회를 향해 안전한 인도적 통로 보장을 호소해 주십시오. 아이들이 빵 한 조각과 약 한 알조차 얻지 못해 죽어가는 현실은 더 이상 방치될 수 없습니다. 3. 평화의 중재자로서 직접 나서 주십시오. 정치 지도자들이 외면할 때, 교황님의 한마디가 그들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교황께서 전쟁을 직접 멈추실 군사적 힘을 지니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황님의 목소리는 인류의 양심을 일깨우는 힘이며, 그리스도의 평화를 세상에 드러내는 등불입니다. 교황님께서 움직이실 때,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한 수많은 이들이 함께 일어나 “전쟁은 안 된다”는 하나의 함성으로 모일 것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이는 복되다,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인류의 아버지로서 다시금 평화의 사명을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청원드립니다. 작은 신자의 목소리를 들어주심에 감사드리며, 교황님의 건강과 지혜 위에 주님의 은총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의 평화 안에서. 글 _ 안재홍 베다(한국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단체협의회 회장)

발행일 2025-09-14 제3458호 22면

[독자마당] 천진암성지

오래도록 가고 싶었던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우산리 500번지, 해발 620m 앵자봉 자락에 있는 한국천주교회 발상지 천진암성지를 순례했다. 성지 내 광암성당을 지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100년 계획을 세운 ‘천진암 대성당 터’가 있다. 대성당 터 오른쪽 위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거기서 10분 정도 올라가면 다양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위쪽에는 이벽 성조 독서처 터와 아래쪽에는 천진암 강학당 터(天眞庵 講學堂址) 표지석이 있다. 이곳은 정약전, 정약용, 이승훈 등 젊은 선비 학자들이 천주학을 연구하던 곳이다. 온갖 새들이 울어대고 있다. 흔적은 아득하지만 그 시절을 생각해 본다. 18세기 조선 사회는 성리학의 변질로 인해 개혁의 목소리가 높았던 변동기였고, 성리학의 한계를 넘어 현실적으로 개혁하려는 실학사상이 탄생하게 되었다. 박제가, 이덕무, 박지원 등 실학자들이 현실을 개혁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청나라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다. 북학론을 펼친 것이다. 한편 이벽, 권철신, 정약전, 이승훈 등 젊은 선비들은 이곳 천진암 강학당에서 천주학 교리와 실학을 연구했다. 천주님께서는 세례받은 사람들을 하느님 자녀로 거룩하게 하시고, 떳떳한 자유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셨다. 육신의 욕망에서 해방되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경전에서 천주님을 만날 수 있었으며 이 땅에 평화와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학문과 문화도 알게 되었다. 유교의 한계, 적대적 법도에 닫힌 그 시대에 벽을 깬 것이다. 학문적 수준에 머물던 천주학을 종교적 차원으로 발전, 승화시켜 나갔다. 이들은 북학론에서 더 나아가 청나라 문화를 뛰어넘어 시야를 온 세상으로 넓힐 것을 주장한 선각자들이다. 나는 생각을 멈추고 바람에 흔들리는 숲속 가파른 오솔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더 올라갔다. 그러자 한국천주교회 창립 5위 이벽을 중심으로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정약종 성현들의 이장된 묘소가 나란히 있었다. 위대한 성현들을 뒤로하고 돌계단을 걸어서 50m 정도 내려오면 빙천수 샘이 있다. 오랜 세월 속에서 모든 것이 없어지고 옛사람들은 모두 떠나 사라졌어도, 빙천수 샘물은 쉬지 않고 바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물소리만이 변함이 없고 깊은 산속 정적을 깨며 옛일을 다시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각 지방에서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천진암에 온 젊은 선비 학자들은 강학회 천주학 학술세미나에 참석해 아침, 저녁으로 이 샘물을 마시거나 세수를 했을 것이다. 빙천수를 둘러싼 바위처럼, 한결같이 솟구쳐 흐르는 빙천수처럼, 그들은 곧 순교자였고, 이 땅에 그리스도교 뿌리를 굳건히 내린 이들이었다. 강학회에서 진사 이승훈 베드로를 중국 베이징으로 보내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게 했고, 그는 돌아와 천진암에서 한양 수표동(광암 이벽 자택)으로 본부를 옮겨 최초의 세례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명례방 김범우 집(현 명동성당)에서 발족한 천주교회 신앙공동체는 1784년 한국천주교회 창립으로 이어졌고, 여기에서 출발한 젊은 선비 학자들의 신앙 단체는 순교의 피를 뿌리며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켜냈다. 이들은 한국천주교회 탄생의 주역이었다. 앵자봉은 높고 험한 산으로 풀과 나무가 무성하다. 첩첩이 싸인 산은 울창하고 짙푸른 녹음이 석양빛을 희롱하고 있다. 천진암에 새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하느님의 숨결을 느끼면서 한국천주교회 창립 성현들의 발자취와 신앙을 되새겨 본 성지순례였다. 글 _ 한문석 요셉(의정부교구 중산본당)

발행일 2025-09-07 제3457호 22면

[독자마당] 하느님의 섭리가 맡기시는 학생들

저는 대학 강사입니다. 학생들과의 만남은 분명 설레는 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수업 중 오가는 학생들의 반응은 제 강의의 내용과 수준을 돌아보게 만드는 엄한 잣대가 되기도 하고, 때론 그들의 기대와 요구가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일을 단순한 직업 곧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버리고 싶은 유혹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던 중, 언젠가 이런 제 마음에 콕 와닿는 말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가 맡기시는 청소년들….” 요한 보스코 성인께서 말년에 살레시오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에 담긴 구절입니다. 그 말씀을 접하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제가 만나는 학생들 또한 하느님의 섭리가 저에게 맡기시는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을 성인의 말씀을 통해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다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강의실은 저 자신을 하느님 사랑의 도구로 봉헌하는 거룩한 제단이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강의실로 향하는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그 후부터 강의실 앞에서 잠시 기도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주님, 학생들이 저를 통해 당신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기도의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게 느껴졌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학생들도 저를 편안하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주고받는 따뜻한 눈빛과 말 한마디가 쌓여, 우정이 싹트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체험을 잊지 않고, 앞으로 만나는 학생들과도 우정을 쌓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나아가 이 마음가짐을 저의 삶 전체로 확장해 보고자 합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을 하느님의 섭리가 저에게 맡기시는 이들로 받아들이려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깨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일상 전체가 하느님께 저 자신을 봉헌하는 거룩한 제단으로 변화될 수 있으리라 소망해 봅니다. 글 _ 김선필 베드로(제주교구 노형본당)

발행일 2025-08-31 제3456호 22면

[독자마당] “함께 울고, 함께 걸어주신 목자-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님께”

뵌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언론을 통해, 스치듯 마주한 모습 속에서 저는 한 목자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선종 소식을 접하고, 저는 조용히 명동성당을 찾았습니다. 한 시간 넘는 땡볕 아래 줄을 서며, 마음속엔 단 하나의 바람만 있었습니다. 한 번이라도, 그분 앞에 잠시라도 머물고 싶다는 바람.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그 마지막 모습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었고, 인간적인 슬픔을 누르기엔 너무나 아까운, 너무나 귀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겸손의 덕을 삶으로 살아내신 분이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그마저도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며 묵묵히 감당해 가셨던 사람. 주교직이라는 무게 앞에서도 그 무게를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겸허히, 조용히, 오히려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눈물 흘리셨고, 억울한 이들의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셨고, 작은 민초들의 삶에 다가가 무료 급식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일용할 양식을 날라 주셨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분의 삶은 말보다 기도가 먼저였고, 기도보다 실천이 앞섰습니다. 복음의 본질을 꿰뚫는 깊고 단순한 강론, 군더더기 하나 없이 삶과 연결된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그분이 바라보는 사목의 눈길입니다. 2009년 용산 철거민 참사, 2014년 세월호의 비극, 2022년 이태원 참사, 고공 농성 중인 노동자들의 외로운 싸움. 그 어떤 위기와 고통의 현장에도 주교님은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철탑 위로 올라가셨고, 때로는 기도와 눈물로 함께하셨으며, 늘 침묵 가운데 기도로 그 곁을 지켜주셨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파격’이라 불렀지만, 그분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길이었습니다. 주교복을 담은 가방을 들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하느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한가운데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셨던 분. 그분은 우리가 무너질 때도, 희망을 잃을 때도. 늘 우리와 함께 계셨던 분. 그래서 그분은, 단지 ‘주교님’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목자셨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지금, 세상은 다시 혼란스럽고 고통의 현장은 여전히 많지만 그분의 걸음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세속의 명예보다 섬김을 택하시고, 권위보다 기도를 앞세우셨으며, 자신보다 하느님과 이웃을 더 깊이 바라보셨던 분. 그분의 삶은 이 시대가 다시 배워야 할 목자의 본모습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참 목자의 여정을 마치고,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실 것입니다. 수많은 양을 만나기 위해 낡은 프라이드 경차를 손수 운전하셨던 그분의 진정한 청빈과 겸손, 마지막 유언조차 “더 오래,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들 곁에서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그분의 고백은 이 땅 위 어떤 말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그분의 온 삶을 관통한 성덕의 증언인 마지막 말씀을 기억하며 슬픔 대신 기도드립니다. 주교님, 부디 평안히 쉬소서. 글 _ 노강 아가타(시인, 서울대교구 한강본당)

발행일 2025-08-24 제345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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