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에게 절대 없는 것

누군가 내게 물은 적이 있었다. “모든 면에서 우리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마귀가 가지지 못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하느님은 그걸 우리 인간에게 주셨어. 그걸 아니?”하고. 나는 별생각 없이 “사랑 아닐까?”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다. “가끔 마귀도 자식 정도는 사랑하지 않을까? 그것에 ‘참’ 자가 붙는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시큰둥하게 듣고 있었는데, 그가 말했다. “정말로 마귀가 가지지 못한 것은 바로 ‘희생’이야. 네가 어떤 사람이 악한지 선한지 살펴보려고 할 때 이 부분을 유의해. 그가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지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시키는지.” 나는 이 땅에 여성으로 살면서 오랜 세월 희생이라는 것에 대해 민감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내 또래 중에서도 똑똑하고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이 오빠나 남동생을 위해 진학을 포기하는 것도 여러 번 보았으며, 경제력 없는 어머니가 남편에게 맞고 살면서도 아이를 위해 헤어지지 못하는 것도 숱하게 보았다. 이에 열거한 사례들에 대해 반항심 가득한 내가 반감을 품었음은 물론이며, 나는 희생이라는 말이 가지는 폭력성이 싫어 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회심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명제를 묵상하면서 오래전 들었던 마귀의 일화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린 소녀들에게 강요되었던 희생, 힘없는 아기 엄마에게 강요되었던 희생, 더 나아가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이들이나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소녀들에게 강요되었던 것을 우리는 희생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희생은 선로에 떨어진 할머니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청년에게 걸맞은 단어이다. 신장이 망가진 늙은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신장 하나를 떼어주는 큰딸의 의지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사건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까 건강하고 강한 자가 약자에게 하는 행위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희생이라기보다 그냥 폭력일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런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보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달라 보였다. 자신의 미각을 위해 신자 전체에게 다른 음식을 강요하는 사제부터, 자신의 범죄가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런 희생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뻔뻔함은 전염병처럼 더 무섭게 번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교도소 봉사를 오래 한 법륜 스님의 말 중 하나는 그 정곡을 찌른다. “처음에 나는 교도소에 가서 그들을 위해 여러 가지로 애썼어요. ‘희망을 가지셔야 한다’고도 했고,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인생을 사시라’고도 했죠. 별 소용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죠. ‘여러분 다들 억울하시죠?’ 그 순간 엄청나게 힘찬 합창이 들려왔어요 ‘예!!’ 하고. 교도소에는 억울하다는 사람이 이미 만원입니다.” 사순 기간 동안 나는 십자가를 바라본다. 거기에는 세 분의 희생이 수놓아져 있다. 하나뿐인 외아들을 내놓으신 하느님, 자신을 오롯이 희생하신 성자 예수님, 그리고 하나뿐인 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침묵으로 견디신 성모님. 그래서 십자가에는 악을 물리치는 힘이 있나 보다. 우리보다 만 배는 머리가 좋고 능력이 뛰어나다는 마귀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못하는 그것, 유다인들에게는 수치이자 어리석음으로만 보였다는 그것, 십자가의 희생. “그러니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떤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 6,14)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22면

사랑이 밥 먹여 준다

아주 오래된 어느 날, 그러니까 지금은 마흔이 다 되어가는 우리 딸이 고3이었던 날, 나는 당시 수원교구의 성당에 다니고 있었다. 새벽 미사에 다녀온 딸이 아침을 먹으며 호들갑스럽게 내게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오늘 우리 본당 신부님 어디 가셨는지 다른 신부님이 오셨어. 이탈리아 사람이래. 그분은 성남시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밥 나눔을 하고 계신다고 자신을 소개하셨어. 그러더니 어눌한 한국어로 강론을 짧게 하시는 거야. 이렇게. ‘여러분 사람들은 노숙자들에게 묻습니다. 왜 술 먹습니까? 왜 일하지 않습니까? 왜 희망 안 가집니까? 하고요. 그러나 나도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건 꼭 그들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일까요?” 나는 이십여 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도 그 강론을 기억한다. 내가 들은 – 실은 딸이 들은 - 강론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게 감동적인 말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분이 운영하시는 곳이 ‘안나의 집’이었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신부님은 30세 때 한국에 오셔서 성남시의 노숙인들에게 밥을 제공하시는 일을 40년이 다 되도록 지금도 하고 계신다. 그 후로 바로 서울로 이사를 가느라 안나의 집에 찾아가지 못했지만, 특별한 날이 오면 나는 그분과 노숙자들을 기억했고 그곳에 약간의 봉헌을 했다. 그리고 딸과 그분 이야기를 더 나눌 일은 없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나가고 딸은 유럽으로 성지 순례를 떠났다. 다녀와 그녀가 말했다. “엄마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뜨자마자 미친 듯이 흔들렸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나도 너무 무서웠어. 이러다가 죽는 거구나 싶어 기도했어. ‘하느님 제가 지금 죽는다면 죽으면서 받는 이 고통을 안나의 집과 그 이탈리아 출신 김하종 신부님께 봉헌하니 받으세요’ 그랬는데, 그 순간 비행기가 흔들림을 딱 멈췄어. 이거 진짜야.” 딸은 내 얼굴이 영 마뜩잖아 보였는지, 진짜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순간 몇 가지 생각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만일 죽는 일이 있다면 나도 몇 번 봉헌하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아이들, 우리나라의 평화, 북한의 해방 같은 말들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대학을 막 졸업한 젊은이인 딸이 자신의 목숨이 죽는다 치고 그걸 안나의 집을 위해 봉헌한다니 그게 더 놀라웠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아니야 믿어. 집채만 한 비행기가 흔들림을 멈출 만해. 네 착한 마음에 하느님이 감동받으셨을 것 같아. 너무나 대견하구나” 하고…. 그리고 이상하게도 힘들거나 희망이 사라진다고 느낄 때,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아니면 그냥 속상해서 술을 한 잔 마실 때 이상하게 내가 바로 옆에서 들은 듯이 그분의 말이 생각났다. “왜 술 먹습니까? 왜 일하지 않습니까? 왜 희망 가지지 않습니까?” 신비했다. 이즈음 뒤숭숭하다 못해 황당한 시국 때문에 나는 거의 글을 못 쓰고 있었다. 책들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나라가 집채만 한 비행기처럼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필이면 이런 때 김하종 신부님과 안나의 집 생각이 났다. 찾아보니 다행히 그분의 저서가 있었다. 「사랑이 밥 먹여준다」였다. 상한 음식만 먹고 있다가 모처럼 신선한 채소를 섭취한 것처럼, 내 영혼은 책 속으로 바로 빨려 들어갔다. 집채만 한 비행기처럼 난기류를 만나 흔들리고 있는 이 나라를 위해 나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하느님, 우리가 받는 이 고통을 가난하고 희망 없는 사람들, 그분들을 위해 애쓰시는 안나의 집 여러분을 위해 봉헌합니다”하고…. 그러고 보니 또한 신비였다. 사제 한 사람의 짧은 강론이 엄중하다는 것이.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3-23 제3434호 22면

우도를 기림

고향 서울을 떠나 남쪽에 내려와 산 지도 벌써 7년이 되어간다.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내가 23년째 해 오고 있는 서울 구치소를 방문하는 일이다. 아침(?) 두 시 반에 일어나 전날 준비해 놓은 5~6인분의 도시락을 싸고 5시쯤 길을 나선다. 9시 반쯤 서울 구치소에 도착하여 수속을 밟고 안으로 들어가면 한 달에 한 번 있는 나의 봉사가 시작된다. 그사이 부쩍 노쇠해진 내 몸은 오래전부터 ‘이건 무리야’라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기도를 시작했다. ‘서울 말고 이곳에서 다른 봉사로 당신을 돕고 싶다’고. ‘이건 모른척하지 마시고 꼭 응답을 주셔야 한다’고. 힘겹게 두 시 반에 일어나 서울로 갈 채비를 차리면서 내 마음은 몇 번이나 이별의 말들을 준비하고 있었고, 실제로 지난 몇 달 동안 몇 번 말을 꺼냈기도 했다. 신부님도 난감해하셨다. 교육받은 봉사자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에도 오늘은 이 말을 꺼내리라 맘먹고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나와 만나게 되는 한 사형수가 – 봉사자는 네 팀으로 돌아가고 사형수들은 현재 다섯 명이기에 우리는 몇 달씩 못 만나기도 한다 - 미사에 나왔다. 그는 얼굴이 몰라보게 환했다. 복음이 낭독되고 나눔을 하는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지난번 마리아 자매님께 약속드린 대로 하루에 묵주기도를 최소 75단씩 했어요. 많이 하는 날은 120단까지 했어요. 몇 단 했는지 잊어버릴까 봐 바둑돌을 얻어다 작은 종지에 옮겨가며 했어요.” ‘나 이번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만 오려고 해요’라고, 말하려던 나의 입술은 멈추어졌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지난여름 더위와 절망에 지친 그에게 내가 위로를 건넸었다. “예수님 오른쪽에 있었던 죄수를 생각해 봐요. 그의 죄가 형제님보다 가볍지는 않았겠지요. 그도 사형수였으니까요. 그러나 그가 회개하자 예수님은 단 한마디도 묻지 않으시고 인류 최초로 천국 문 티켓의 구매 확정을 해주셨어요.” 그 무렵 나는 하루에 묵주기도 100단을 하고 있었는데 나눔 중에 그 말을 듣던 그가 머뭇거리더니 자신은 5단도 겨우 한다면서 100단은 안 된다고 하기에, ‘그럼 50단은요?’ ‘조금만 더 하자, 60단은요?’ 뭐 이러다가 어찌 된 일인지 75라는 숫자에서 흥정(?)이 멈추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이 조용하지 않은, 이 분노와 소음으로 가득 찬 곳에서 그걸 해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목이 콱 메어왔고 눈물이 고였다. 돌아오는 길에 마음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 꼭 매달 오기가 힘들면 그냥 쉬어가면서 그래도 … 계속하면 안 되겠니?” 대체 나의 하느님은 왜 이렇게 눈물 그렁한 목소리로 속삭이시는지, 나는 가끔 의아하곤 했다. 많이 받은 내가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 거고, 퉁명하게 명령하셔도 나는 순종해야 할 것 아닌가. 감동을 받는 것은 받는 것이고 왕복 10시간을 운전하는 나의 몸은 파김치가 되어가는데, 집으로 돌아오자 요즘 몇 달 만나지 못한 다른 사형수에게 편지가 와 있었다. “마리아 자매님 잘 지내시죠. 시골에서 올라오시는 거 많이 힘들어하신다는 말을 신부님께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기도했어요. … 그래도 … ‘꼭 매달 오기가 힘들면 그냥 쉬어가면서 그래도 … 계속하면 안 되겠나요?’ 하고….” 온몸으로 소름이 후루룩 돋았다. 이 말은 내가 돌아오며 하느님께 받은 마음속의 응답 그대로가 아닌가. 하느님은 다른 사형수가 보낸 편지의 말들을 내게 먼저 전해 주셨다. 맙소사. 이런 걸 기적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게는 요나처럼 도망칠 고래 배 속도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열어젖히시는 희년의 문중에서 ‘갇힌 자들을 위한 문’이 활짝 열리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핑계를 대겠습니까?”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발행일 2025-03-16 제3433호 22면

메일린의 기적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날 나는 알았다.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사랑이시며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우주와 이 세상, 내 몸과 주변이 모두 사랑으로 운행되고 있음을 믿는다는 것을. 엄마가 아픈 예방주사 바늘을 들이대도 원망하지 않는 아이처럼, 그토록 좋아하는 사탕을 하나만 주어도 원망하지 않는 아이처럼, 상처에 더 아픈 소독약을 붓는 사랑으로 이해하는 아이처럼 말이다. 그러니 믿음이란 내가 상상하지도 못할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하느님이 그것을 보고 계시며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을. 이렇게 쉽고도 어려운 일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을. 3살 아기 메일린은 집안의 작은 파티장에서 혼자 소시지를 먹다가 질식해 뇌사상태에 빠진다. 책과 다큐로 나온 <메일린의 기적>은 교황청이 가장 최근에 공식 인정한 그녀와 가족이 함께한 기적의 보고서들이다. 다른 장기들과는 달리 뇌는 3분 이상 산소공급이 중지되면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을 입는다. 뇌사는 의학적으로 이미 사망한 상태이므로 의료진은 수일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레 부모에게 산소와 영양공급을 중단할 것을 권한다. 그때 메일린의 부모는 묻는다. “애가 배고파서 죽는 거 아닙니까?” 이 구절은 의료진과 독자인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부모는 고집스레 메일린을 지킨다. 이때 메일린의 아버지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예수로 추정되는 빛을 보고 뚜렷하게 “내가 그 아이를 살릴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그는 신자가 아니었다. 메일린의 외조부모가 가톨릭신자였을 뿐이었다. 부모는 메일린을 극진하게 돌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신자이든 아니든 기도도 시작된다. 소식을 들은 프랑스 리옹의 사람들은 가경자 폴린 자리코에게 전구를 청하며 9일 기도를 시작한다. 의사들이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메일린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후일 인터뷰에서 메일린의 아버지는 말한다. “꼭 기적을 바란 건 아니었어요, ‘낫게 해 주시면 감사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당신이 데려가시면 그녀를 더 사랑해 주시겠지요’ 하고 기도했어요.” 그리고 또 그는 말한다. “처음에 기도할 때 너무나 외로웠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수억 명이 나와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했어요. 너무나 놀라웠지요.” 과거의 어떤 날에 나는 꼬박 보름을 거의 못 자고 내 아이를 위해 기도한 일이 있었다. 내가 바라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때 나는 외쳤었다. “맘대로 하세요. 어차피 기도해도 안 들어주실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네가 하는 행위는 어쩌면 기도가 아닌지도 몰라 그건 그냥 집착일지도 몰라. 메일린의 부모는 집착하지 않았다. 신자가 아니어도 기도했다. “혹시 데려가시면 당신이 그 애를 더 사랑해 주시겠지요” 하고. 우리 지구는 시속 1670km로 돌고 있다. 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14분 만에 갈 수 있는 속도이다. 또 우리 지구는 그렇게 뺑뺑 돌면서 초속 29.8Km로 태양을 돌고 있다. 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14초 만에 갈 수 있는 속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지럽지도 않고 비틀거리지도 않는다. 지으시고 나서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은 이미 그 자체로 기적이다. 그런데 하느님과 착한 부모 그리고 이웃의 사랑은 그 기적마저 비집고 다시금 기적을 만들어 냈다. 아름다운 메일린과 그 가족 그리고 이웃들을 위해 기도한다. 아프시다는 우리 교황님을 위해서도. 하느님은 사랑이시니.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3-09 제3432호 22면

누가 길을 아는가

디즈니의 영화 <이집트 왕자 2>(Joseph King of Dreams)에는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압니다>(You know better than I)라는 요셉의 노래가 나온다. 처음, 이 노래를 듣고 엄청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요즘도 가끔 힘들 때 이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아직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내 안에 있는 교만들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는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간 요셉이 지하 감옥에서 부른 노래이며, 그의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부른 노래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꿈을 해석해 주었고, 그중 하나는 복직되고 하나는 처형 되었으나 복직된 이는 요셉을 잊었다. 아마도 푸르른 청춘이었을 요셉은 이제 자신의 젊은 시절은 물론 평생을 지하 감옥에서 썩어갈 신세가 될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이제 내게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고 생각했으리라. 어쩌다 자신이 이리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로서는 알 수가 없었으리라. 지하 감옥, 잊혀짐 그리고 홀로 죽어감…. 그때 이 노래가 나온다. “나는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가장 확실한 길을 선택했다고 믿었는데 그 길이 날 여기 데려다 놓았어요.” 나더러 번역하라면 아마도 “네가 생각한 대로 산 결과가 딱 이 꼴이야!” 이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를 더 아프게 했던 구절들이 흘러나온다. “나는 저항했죠. 이것이 시험이라면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요, 그런데 모든 걸 포기했을 때 진실이 확연해졌어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것을 아는 게, 이걸 헤쳐 나가는 길이겠지요.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을 놓아버렸어요. 왜냐고 묻는 그 마음을요.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아니까요.” 한때 이 세상과 내 인생에 대해 ‘왜죠? 왜죠?’ 하고 물었던 때가 생각났다. 대체 ‘왜 나입니까?’ 하고도 물었고, ‘내가 뭘 잘못했기에 내게 이러시는 건가요?’ 하고 물었던 것도 기억났다. 밤마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소주병과 잔을 두 개 가져다 하나는 십자가 아래 놓고 하나는 내가 마시며 –두 잔 다 내가 마셨다- 원망과 주정을 하던 때도 있었다. (이건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아직도 권한다. 괜히 친구 괴롭히지 말고, 집에서 검약하게 이런 방법을 쓰라고.) 그때 가장 많이 물었던 단어가 ‘왜?’였던 것 같다. 오래도록 “당신이 어떻게 내게 그러실 수 있어요?” 하고 외쳤는데, 하도 오래 외치다 보니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내 주정이 “당신이 어떻게 내게…. 뭐 그러실 수도 있겠네요” 하고 바뀌는 날이 있었다. 기적 같은 변화였다. 팽팽하던 분노와 긴장이 일순간에 풀어져 내렸고 엷은 해방감 같은 것이 찾아왔다. 그리고 깨달음들이 왔었다. ‘날이 왜 이렇게 추워?’라든가 ‘웬 비가 이리 많이 내려?’라든가, ‘왜 이렇게 비가 오지 않는 거야?’라든가 하는 말이 얼마나 교만한 말인지 알게 된 것이다. 가끔 내 친구가 이런 말을 하면 나는 농담처럼 묻곤 했다. “네가 몸소 날씨 플랜을 하늘에 제출하고 왔어?” 나는 아직도 기도한다. “요래 요래 해 주시고요, 조래 조래 마시고요, 쟤는 좀 혼내주시고요. 쟤에게는 돈을 좀 주시면 좋겠어요!” 뭐 이렇게…. 이런 기도가 전혀 잘못은 아니겠지만, 그 후에 덧붙이는 것을 잊곤 한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는 가장 중요한 말이다. “하늘에 한 조각 구름이 떠 있었는데 나는 그게 하늘인 줄 알았어요.” 노래의 2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전히 그것이 내 이야기인가 싶다. 그래서 다시 기도한다. “하느님 뜻대로 하시고 제게는 그것을 받아들일 은총을 주십시오. 어느 게 더 좋은지 저보다 잘 아시는 분이시니.”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3-02 제3431호 22면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내가 살고 있는 하동은 전국의 어떤 지역보다 고양이가 많은 곳이다. 집마다 고양이 밥그릇이 있고, 차가 다니는 길거리에 고양이들이 누워 있는 풍경도 흔하다. 할머니들이 모이면, 며느리 흉보다가 손주 자랑하다가 종국에는 올봄에 자기네 헛간에서 새끼들을 낳은 고양이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이 당연할 정도이다. 아무래도 80만 평에 달하는 넓은 평사리 들판에서 쌀이 생산되고, 그것을 보존하는 과정에서 쥐가 들끓으니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고양이를 우대하는 풍습이 생겼나 싶다. 지금은 우리 집 강아지가 고양이를 싫어하여 못하고 있지만, 처음에 집을 지을 때 정원 구석에 고양이 급식소를 따로 지어 사료를 준 적이 있었다. 예쁜 고양이가 새끼를 일곱 마리나 낳았고, 나는 그 한 마리 한 마리를 구별하여 이름을 지어 주었다. 가끔 들르는 수컷 고양이들에게도 이름을 붙였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들을 모두 구별하는 것보다는 쉬웠다. 비슷하게 노랑 노랑하고 검정과 흰색뿐인 고양이들을 구별하여 이름을 외우자, 뜻밖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들의 변화 하나하나를 감지하게 되었고, 집에서 키우면 15년도 사는 고양이들이 야생 상태에서는 2~3년 만에 죽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끔 이유를 알 수 없이 급식소 옆에서 죽어 버린 고양이도 있었고, 상처가 가득한 채로 나날이 죽음으로 다가가는 수고양이들도 보았다. 통조림을 좀 마련해서 수고양이에게 먹이려고 하면 어디선가 그의 자손들일 새끼 고양이와 어미 고양이가 달려들고 수고양이는 비켜나 그 먹이를 양보했다. ‘너희가 사람보다 낫구나’ 싶을 때도 많았다. 장맛비 쏟아지는 날 첫 배로 새끼를 낳은 고양이가 오길래, 통조림을 주었더니 입안 가득 물고 빗속을 뛰어가는 것도 보았다. 그 장대비에 통조림의 고기가 떨어져 나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새끼들과 내 급식소를 왕복하는 것이었다. 사람들과 떨어져 살던 나는 그들의 이름을 불렀고 그들은 나를 의식하고 응답했다. 참으로 야생과 하나 되는 기쁨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초입이 되자 얼마 전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까지 내리는 날이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리산에 흔하지 않은 눈이 와도 기쁘지 않았다. 고양이들 걱정, 그리고 비바람 몰아치는 엉성한 집에서 일 미터 남짓한 줄에 묶여 평생을 뛰어보지 못한 가여운 강아지들 때문에 그랬다. 새로 나타난 고양이에게 새 이름을 붙여주고 그 고양이가 더 이상 오지 않으면 죽었는지 짐작했고, 나는 더 이상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였다. 이 가슴 아픔은 뜻밖에도 내게 불신앙까지 불러들이는 듯싶었다. ‘대체 저 피조물들을 저렇게 지어만 놓으시고, 이렇게 아무렇게나 놓아두시면 저들은 괴로워하며 죽기밖에 더 합니까?’ 하며 눈물이 나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곳을 마련해주신 데 대한 감사로 넘쳐나던 아침은 불평으로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다. 여기서 빠져나오는 데는 한 참이 걸렸다. 어느 순간, ‘네가 이 모든 것들의 하느님이 될 작정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나머지는 주님께 맡기는 것, 그분이 이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심을 아는 것, 이걸 잊어버렸던 것이다. ‘내가 길고양이들을 사랑하는데 당연히 나는 옳지’,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버렸던 것이다. 그 옛날 공장으로 위장 취업을 떠나며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일하러 가는 길이니, 미사는 좀 빠져도 되죠? 하는 생각이 18년의 냉담을 불러왔듯이 말이다. “이렇게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창세 2,20)를 읽으며 든 생각이었다. ‘사람이 이름을 붙여주었으니, 아담은 그들을 사랑했으리라' 나는 짐작한다. 잡아먹고 괴롭히고 이용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2-23 제3430호 22면

거짓의 사람들

긴 냉담을 거쳐 다시 교회로 돌아온 내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은, ‘왜 사춘기 시절 내가 그렇게 열심히 교리 공부를 했을 때, 본당에서 마귀의 존재와 활동에 관해 이야기해 주지 않았을까’라는 점이었다. 지옥의 존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야 그것이 우리 선조 신앙인들이 중세와 그 이후에 걸쳐 저지른 신앙의 오용 때문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알게 되었지만, 이 두 가지가 빠진 교리는 그 자체로 엉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하느님이 우리 개개인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절절하게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으니, 나를 비롯한 수많은 청소년이 인생의 어떤 모퉁이에서 쉽사리 교회로부터 이탈하는 이유를 그래서 나는 이제는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교회의 교리에는 ‘가슴’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빛과 그림자도 없고, 분노와 눈물도 없고, 그저 맹숭한 경건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겨우 사제들과 교리교사와 동료들의 인간적 온정과 그 불완전한 사랑에 기대어 있었던 것이다. 이 악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건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이후에 예수님이 마귀를 쫓아내시고 그들을 ‘거짓의 아비’라고 단순하게 정의하셨던 것을 떠올렸다. 또한 이 세상에 ‘하얀 거짓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그저 거짓과 진실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얀 거짓말이라는 단어처럼 자기 기만적인 교만이 또 있을까. 언젠가 내가 참으로 순수하게 하느님께 의탁하며 살던 한 시절, 나는 그 하얀 거짓말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고, 그러고 나서 마음속에 작은 모래 폭풍 같은 것이 심하게 일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지금도 내 갈등의 가장 큰 부분은 내가 자꾸만 ‘하얗다’라고 나 혼자 주장하는, 하얗고 노랗고 검은 거짓말들을 일상에서 자꾸 하게 된다는 것임은 물론이다. 지난번 글에서 영국 A6 도로에서의 살인범이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들 앞에서 했던 그 거짓말을 보면 짐작이 될지도 모르겠다. 「거짓의 사람들」에 나오는 수많은 예시 중 가장 압권은 역시 그가 가톨릭 사제들과 함께 정신과 의사 자격으로 구마에 참여하는 부분일 것이다. 피구마자 속의 마귀는 처음 자신의 존재가 없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이 이 몸에서 나가면 구마자(저자 스캇 펙) 의 가족에게 들어갈 것이라고 겁을 준다. 그때 섬뜩해졌던 그는 악이 결국 거짓의 아비라는 생각을 하며 겨우 그 공포의 협박에서 빠져나온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소녀 속에 들어있던 마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애처로운 소녀의 슬픔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그때 단호하던 구마자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나르시시스트를 연구하는 의사들이 하는 말, ‘나르시시스트의 마지막 말은 늘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것이 이와 상통한다. 스캇 펙 역시 악을 일종의 나르시시즘으로 정의했다. 나는 가끔 성모님께서 파티마에 발현하셨을 때, 그 어린아이들에게 지옥을 보여주셨던 것을 생각한다. 지금으로 치면 아동 학대에 해당할 만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성모님은 하셨다. 그것이 진실이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옥은 지옥 같은 것은 없다고 믿었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악이 하는 가장 큰 거짓말은 악 같은 것은 없다고 하는 말이니까. 그리고 이 어려운 시대의 복판에 서서 온갖 인간적인 고뇌들로 시달리며 이제 나는 겨우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유혹은 여자도 남자도 돈도 학력도 명예도 아니고, 하느님은 없으며 기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력한 것이라는 속삭임, 네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이 세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한 자가 결국 승리한다는 속삭임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주님의 기도 중에 늘 빌어 본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악에서 구하소서. 부디 아멘.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발행일 2025-02-16 제3429호 22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이 문장은 스웨덴의 다국적 기업 임원이었던 젊은 저자 린데블라드가 모든 것을 버리고 태국 숲속의 사원에 들어갔을 때 겪은 일을 회고한 책의 제목이다. 린데블라드는 현자로 알려진 스승의 말씀을 듣는다. “여러분이 삶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다음 세 가지를 기억하면 모든 일이 풀릴 것입니다. 첫째,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둘째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며 셋째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기막힌 사건들이 가끔 있는데 그중 압권은 1961년 영국에서 일어났던 A6 도로 살인사건일 것이다. 데이트하던 남녀 중 남자는 살해되고 여자는 강간당한 후 총에 맞았다. 7발이나 맞은 여자 발레리는 하반신과 상반신 일부가 마비된 채로 살아나 범인을 지목한다. 제임스 헨레티. 그는 전과가 없는 평범한 청년이었고 범행을 부인한다. 검찰에는 강력한 증거가 없는 상황. 그러나 배심원단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헨레티는 감옥에서도 끈질기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수많은 언론들이 그의 죄 유무를 두고 이 전쟁에 참여했고 인권활동가들이 여기에 가세해 헨레티를 응원한다,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 부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수많은 정황 증거들이 속속 보도된다. 아직 과학수사가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 경찰의 부실한 수사도 도마에 올랐다. 영국 사회는 그로 인해 둘로 나누어 연일 공방을 계속했다. 피해자 여성인 발레리는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 불륜녀(둘은 부적절한 관계였다)로 비난받는다. 그녀는 하반신이 여전히 마비된 채 거의 외출도 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있었다. 얼마 후 영국 법무부는 헨레티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다. 형 집행 전날 가족 면회에서 그는 가족에게 마지막 말을 전한다. “내 소원은 단 하나 내가 죽고 나서라도 나의 무죄가 밝혀지는 것.”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더욱 분노했으며. 피해 여성 발레리에 대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인권활동가와 가족의 끈질긴 요구로 영국 법원은 40년 후인 2001년 드디어 보관되어 있던 강간범의 DNA를 다시 검사할 것을 명령한다. 검사 결과, 발레리에게 나온 정액은 헨레티의 것이라고 확정된다. 잘못될 확률은 1900만분의 일. 우리의 예상대로 이 결과에 승복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바라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설마 사람이 죽기 직전에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던 나도 이 사건을 보고 알게 되었다. 사람은 죽기 직전에도 시치미를 떼며 거짓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지식인들이 나서서 아니라고 하면 그 사실은 아닌 것이 될까. 20세기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북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할 때 ‘순수한’ 서구의 지식인들이 부르던 공산주의 찬양가는 한 번도 정식으로 사과된 적이 없다, 미국의 지원을 받던 남미에서 독재에 학살당한 사람들에 대해 침묵하던 모든 지식인들의 사과도 들은 적이 없다. 겸손이란 무엇일까. 그중에서도 그리스도인의 겸손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이리라. 완전한 분은 하느님 한 분뿐이시라는 것을 잊지 않는 일이리라. 이 혼란한 시대, 나는 한 가지 책만을 읽고, 한 종류의 방송만을 듣고 내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외침이 두렵다. 다시 돌아봐도 과거 내 자신의 모습이 새삼 두렵듯이.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발행일 2025-02-09 제3428호 22면

기도에 대한 사소하고 사소한 기억들 2

2011년 일본 동해에서 일어난 대지진은 일본 열도를 동쪽으로 2.6미터 옮기고, 지구 자전축을 16.5cm 이동시킬 만큼 큰 것이었다. 밀려온 쓰나미로 2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됐고, 부상자는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그 피해가 컸다. 세계의 모든 뉴스는 이 소식으로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다시 해저 지진이 일어났고 쓰나미가 발생했음을 알리는 뉴스가 전 세계로 타전됐다. 늦은 오후였다고 기억하는데, 일본 기상청에서는 이 쓰나미가 오후 6시가 넘은 시간 일본 동해안으로 상륙할 것을 예고하며 피난을 당부하고 있었다. ‘내 기도 - 별로 잘 살지도 못하는 내가 드리는, 그리 길지도 않은 기도 - 가 과연 이 거대한 자연 현상 앞에 – 심지어 이미 일어났다고 하는 -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견고하고 오래된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나는 기도했다. 차마 없애 달라고는 못 하고 – 에너지 보존 법칙에 의해 절대 없어지지는 못할 거니까 - 피해가 적게 해달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기다리다가 불안한 마음으로 오후 6시부터 매시간 뉴스를 찾아보았는데, 새로운 쓰나미에 대한 기사는 없었다. 그런데 밤 10시가 넘었을까, 뉴스에서 간단한 공지가 있었다. “오늘 저녁 일본 동해안에 당도할 것으로 예측되던 쓰나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소멸하였습니다.” 이 짧은 구절 하나가 나를 건드렸다. 뉴스는 다른 뉴스들로 덮이고 시간이 세월이 되도록, 나는 그때의 충격과 의문을 간직하며 물었다. ‘왜지?’ 하고…. 그러나 그 질문과 함께 대답도 이미 내 마음속에 있었다. “왜냐하면 너와 온 세상이 한마음으로 함께 기도했기 때문이지.” 그 후부터 기도는 내게 “미안하다 기도밖에 해줄 수 없다”가 아니라, 거대한 행위가 되었다. 절망하는 친구를 붙들고 쓰나미 이야기를 해주며 말했다. “잊지 마. 기도는 쓰나미도 멈추게 한다는 것을…. 피해가 적게 해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심지어 소멸해 버렸다는 것을….” 내 말에 무슨 근거와 권위가 있을 리가 없지만, 친구들은 희한하게도 내 말을 믿었다. 그들이 믿고 용기를 내는 것을 보고 나도 더 용기가 났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기도할 때마다 나는 막연히 느끼기 시작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얼마나 기다리시는지.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졌나? 내 작은 경험을 하나 더 나누면 이렇다. 서울에서 평일 미사를 갈 무렵, 나는 친구와 처음으로 본당 교우가 되었다. 그 친구는 미사 시작 전 항상 성체조배실에서 조배를 하고 나오곤 했었다. 미사 때마다 맘이 울컥울컥해 눈물보다 많이 나오는 콧물 때문에 휴지나 손수건이 꼭 필요했던 나는 그날 성당에 가자마자 내가 둘 다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할지 망설이다가, - 울지 않는 날도 있으므로 – 그냥 기도 했다. “하느님, 아녜스에게, 올 때 휴지 좀 가져오라고 해주시겠어요?” 내가 이 기도를 믿음으로 했을까? 모르겠다. 반쯤은 그랬다. 그날따라 친구 아녜스는 입당 성가가 시작되도록 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서 있는데 성가가 2절로 접어들 즈음, 아녜스가 내 옆자리로 오더니 제일 먼저 휴지를 내밀었다. 이걸 다시 이야기하고 있는 나도 웃음이 난다. 이걸 몇 명이나 믿을까? 미사는 시작되고 ‘어떻게 된 거야?’하고 물을 시간이 없었다가 미사가 끝나고 내가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네가 문자 보내지 않았어?” 물론 아니었다. 그녀와 나는 잠시 서로 마주 보다가 웃었다. 우리는 한때 이야기했었다. 화살기도는 문자메시지, 긴 기도는 편지, 그리고 미사는 만남. ‘무슨 소용이 있을까’하는 엄청난 유혹을 물리치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두 손을 모은다. 우리나라, 북한, LA 산불,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 시리아와 중국을 위해. 주님은 우리의 희망을 부끄럽게 하시지 않을 것이기에.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발행일 2025-01-26 제3427호 22면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시골에 살면서 많이 일어난 변화중 하나가 미사참례에 대한 것이다. 내가 살던 서울에서 나는 매일 새벽 미사에 참례했었다. 그런데 시골로 오니 우선 새벽 미사는 인근 50킬로 반경 내에 하나도 없고 –이 부분이 가장 이해가 안 가고 또 안타깝다- 평일 오전 미사도 아주 적거나 신부님 사정에 따라 없기가 일쑤였다. 나는 인근 성당의 미사 시간을 다 알아놓고 차로 한 시간 이상 달려가 평일 미사 참례를 하고 있다. 그래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참례가 힘들다. 그러던 어느 날 인근 성당에 미사가 없어 좀 먼 성당으로 평일 오전 미사를 드리러 갔다. 성당 정문에 이런 게 걸려있었다 ‘우리는 희망한다 윤석열 파면을’, 지난번에 왔을 때도 ‘우리는 국민에게 총 쏘는 대통령 필요없다’라는 플래카드를 걸어놓았던 것이 떠올랐다. 대림 기간이었던 것 같은데, 그날 강론 시간에 한 야당 정치인을 이사야 예언자 같다고 말씀하셔서 내 귀를 의심했던 기억이 났다. 사춘기 시절, 우리 본당 신부님은 정의구현사제단이셨다. 내가 고2였던 유신 말기 어느 날, 신부님은 우리들 앞에서 사복 경찰에 체포되어 가셨다. 당시 안동가톨릭농민회 수배자를 은닉해 준 혐의라고 들었다. 신부님은 미사 시간에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으셨었다. 대신 우리들 가슴에 ‘가난한 이웃’이라는 말을 새겨 주셨었다. 내 인생은 아마도 그때 반 이상 형성되었던 것이 틀림없다고 지금도 기억한다. 이 세상에 없는 것이 성당에 가면 있었다. 봉사라든가, 고통의 의미, 희생과 거룩함 혹은 생명. 가난한 이웃에 대한 숭고한 사랑 같은 거…. 그리고 또 있었다, 독재하에서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그 단어, 정의. 그때에도 고액 과외는 있었고, 그때에도 학력 우선주의는 있었으며, 부동산 투기는 노골적으로 만연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경멸할 수 있을 정도로 성당은 멋진 곳이었다. 성당에 와서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면 비로소 나는 내가 인간인 것이 허무하지 않았고, 산다는 것의 의미가 죽음보다 귀하게 여겨졌다. 나는 학교를 싫어했지만, 성당은 좋았다. 내가 존재해야 할 의미를 가르쳐주는 곳이었으니까. 그리고 50년이 지났다. TV만 틀면, 핸드폰을 켜면 온 세상이 둘로 나뉘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보거나 듣지 않아도 나는 그들의 말들을 10자 내외로 요약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쟤 탓이고 쟤를 죽여야 내가 산다.” 미사 시간에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내 탓이요’ 하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운동권으로 살면서 민주를 외칠 때, 나와 내 동료들은 비민주적이었다. 민주주의를 위한다고 거리로 나섰을 때, 우리 가족에게 나는 독재자였다. 내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외칠 때, 내 가슴은 전쟁터보다 시끄러웠었다. 토마스 머튼은 히틀러를 두고 “우리 모두의 악이 그에게 가서 열매를 맺었다”라고 했다. 독재 시절의 어린 시절을 보내고 독재자 밑에서 청년 시절도 보내고 어쩌면 내 마음속에도 독재자가 산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세대가 나이 들어 다 사라져야 비로소 입이 아니라 몸으로 민주주의를 살 수 있는 세대들이 오는 것이 아닐까?’하고 친구와 자조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돌아서 나오는 길, 성당 한쪽에 근처의 사찰에서 보낸 성탄 축하 플래카드가 그제야 눈에 띄었다.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주려고 아기 예수님 오셨음을 축하합니다!’ 희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기를 빈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1-19 제342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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