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한 조각

로마에서 동쪽으로 달리다가,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드리아해 쪽으로 가다 보면 란치아노라는 도시가 나온다. 이탈리아에서 성체의 기적이 일어난 다섯 군데의 도시 볼세나, 시에나, 페라라, 알라트리 중의 한 도시다. 하지만 그중 란치아노는 가장 유명하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이 사시던 산 조반니 로톤도로 가는 길에 있다.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200년 전 한 사제가 미사를 드리다가 성찬의 전례 중 불현듯, ‘정말 그럴까’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밀떡이 살로 변하고 포도주는 피로 변하여 응고되며,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졌다고 했다. 신부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오 나의 주님이시며, 내 하느님이십니다” 하고 부르짖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다. 12세기가 지난 지금도 살 모양으로 변한 성체는 불그스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성혈은 불규칙한 다섯 개의 형상을 한 한 핏덩이로 보존되어 전시되어 있다. 1970년 아레초 병원의 교수이자 수석 의사인 리놀리가 이 성체 조직을 떼어 과학적 조사를 하는데, 밝혀진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이 살과 피는 동일한 AB형이며, 살과 피는 인간의 것이다. 살은 심장 근육이다. 이 살과 피에 방부제를 사용한 흔적은 전혀 없다.” 이런 사실 자체가 우리를 얼마나 감동하게 할까 싶었다. 누가 모르나 말이다. 세례받을 때 이미 들은 말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성체 성혈이 현시된 곳으로 다가가는데 가슴이 뛰었다. 뭐랄까 어떤 전혀 다른 자장의 동심원 속으로 들어서는 듯 다른 느낌으로 변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파도바 성 안토니오 대성당에 들어서 성인의 혀가 보존된 곳으로 다가서며 수다를 떨던 나와 후배가 어느 순간부터 서로 동시에 입을 다물고 말았던, 그 사건과 비슷했다. 그리고 막상 그 성체 앞에 섰을 때 내 심장이 그 심장에 반응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통증과 아픔이 전해져 왔던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벗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예수는 말씀하셨지만, 나는 이 지상에서 그런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 다만 내 아이들을 두고, 만일 내 목숨을 내어주어 아이들의 영혼과 육신이 산다면 그건 기꺼이 ‘그러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해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생각과 실천은 아마도 다를지도 모른다. 그 성당 지하에서 영광스럽게도 우리는 미사를 봉헌했다.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 “죄를 용서하여 주려고 너희를 위하여 흘린 내 피”라는 말에 더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그걸 몰라서가 아니리라. 그걸 눈으로 봐야 깨닫는 어리석은 나였기 때문이리라. 얼마나 사랑했으면 심장의 조각을 찢어 내줄 수 있는 걸까. 언젠가 세계 최빈국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내 가방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흰 광목 보따리가 컨베이어 벨트에 끝도 없이 실려 나오는 걸 본 일이 있었다. 새까맣고 쭈글쭈글한 얼굴의 노인들이 그 보따리를 짊어지고 공항을 떠나고 있었다. 알고 보니 평생 돈을 모아 메카와 메디나 순례를 다녀온 회교도 들이라고 했다. 그보다 백만 배는 더 잘사는 우리는 어떤 순례를 떠나고 있을까. 언제나 여행이나 순례를 떠나려고 돈을 모으면, 꼭 그만큼 쓸 일이 생기곤 했다. 내 생애 언제 다시 희년이 올까 싶어 대녀를 꼬드겨 함께 떠난 순례, 떠나오길 참 잘했다 싶었다. 아마도 그 후로 나의 기도는 약간 바뀐 듯했다. 심장을 내어준 분한테 뭘 더 달라고 할 수 있을까. 희년이 한 달쯤 남았다. 더 늦기 전에 떠나시길 권한다. 물론 국내에도 순례지가 많으니.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12-14 제3470호 22면

누구를 무엇을 믿어요?

내가 아끼는 한 후배는 요즘 많이 우울해했다. 믿었던 한 사람에게 큰 배신을 당해서였다. 그가 내게 물었다. 바오로 사도의 그 아름다운 구절,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를 들어 말이다. “감사하고 기도하는 건 그런대로 노력할 수 있어요. 그런데 기쁨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선배는 기뻐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기쁘다. 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떠오르는 찬란한 해에 가슴이 뛰고 펼쳐지는 모든 구름에 가끔은 감동에 겨워 멍하니 서 있곤 했다. 이탈리아 순례 중 수많은 명품을 보았는데, 집에 돌아오자 11월 정원에 장미들이 몇 송이 새로 피어나 있었다. 그 장미들을 화병에 꽂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어떤 명품이 나를 이토록 감동시킬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수억 원의 명품 이래봤자 인간이 만든 것이고 장미는 신의 작품이었다. 내 손에 신의 작품을 무상으로 쥐어 드는 일을 하다니! 후배는 요즘 들어 믿었던 어떤 사람에게 실망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인간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야. 인간은 긍휼의 대상이고 사랑의 대상이래.” 가끔 정치인의 부정부패 비리와 성추문에 달리는 댓글들을 본다. “저는 믿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믿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생살여탈권을 쥔 정치인들을 믿다니, … ‘하고싶은대로 하세요’라니. 정치인들은 감시의 대상일 뿐이다. 그들은 무엇보다 인간인 데다가 우리가 쥐여준 칼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토록 정치인의 성적·도덕적 결백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자기 자식에게는 거짓말 말라고 다그친다. 나에게 와서 자신은 이성적인 사람이라 하느님을 믿지는 못하겠다고 점잖게 말한다. 나는 후배에게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기쁨이란 굉장히 귀하고 소중한 감정이야. 이 세상에서 기쁨을 느끼는 때는 정말 많지 않아. 로또가 당첨되었다 해도 좋기는 하겠지. 그런데 좋은 것과 기쁜 건 다른 거야. 돌아보니 내가 정말 기뻤던 날은 내가 믿음을 찾은 날이었어. 내가 회심하고 하느님을 받아들인 날이었어. 진리를 알았을 때, 그러니까 하느님을 알았을 때 나는 몇 달 동안 이런 것이 바로 기쁨이라는 감정이구나 하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진실로 나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했을 때 그리하여 수많은 눈물을 흘리고 용서를 빌었을 때. 이상하지만 그래 정말이야. 그때 나는 기뻤어. 마음 깊은 곳에서 맑은 샘물이 새로이 솟아나는 것 같았지. 그리고 세 번째 내가 아주 약간 남에게 도움을 주었는데 그리고 가끔 기도 해주었는데 그 남이 정말로 수렁에서 벗어나 잘 되었을 때 그때 정말로 기뻤어. 이 세 가지 외에 우리에게 지속되는 기쁨은… 난 아직 모르겠어.” 나는 안다. 기쁨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기뻐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한가지는 안다. 인간을 믿을 때 반드시 비참해지고 만다는 것을. 인간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인간이 만든 모든 것도, 그러니까 그중의 대표 주자인 돈 같은 것도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만일 우리가 허방을 짚으면 무너져 내리고 무너져 내리면 반드시 그 허방과 함께 낙하를 맛보기 때문이리라. 우리의 기쁨은 무너져 내리지 않을 것을 쥔 상대에게 두어야 한다. 사도의 말대로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사라져 갈 것이기 때문에.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12-07 제3469호 22면

영원을 아십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그리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었다. 벌써 나이가 96세셨고, 몇 년 전부터 병고로 힘들어하셨기 때문에 아버지도 온 가족도 어서 주님께 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그런데 나는 휘청이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아버지는 가셔야 할 길을 가셨다’ 생각했지만, 툭하면 눈물이 나왔고, 삶이 허망했다. 정말 아버지는 완전히 사라진 걸까 나에게는 이토록 믿음이 없었던 걸까. ‘너는 내세를 믿느냐’라는 질문에 나는 대답했었다.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느님이 계시고 내세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만으로도, 이 생이 훨씬 더 의미 있고 기뻤어요.” 그것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는 예수의 생애를 믿고, 예수의 죽음을 믿고,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리라는 것도 믿는다. 그런데 그걸 다 믿으면서, 왜 나는 아버지가 이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 하늘나라에 가셨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 이것이 너무도 괴로웠다. 최근 이탈리아 순례를 떠나기로 한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이었다. 묻고 싶었다. “하느님 저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죽음 너머 세상에 대해 확신이 아니더라도, 약간의 빛이라도 주십시오.” 아시시는 다른 곳으로 변해 있었다.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이 이제 거기 계시기 때문이었다. 시신이 안치된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 다다랐을 때는, 전 세계에서 온 순례객들로, 입장을 위해 대기하는 줄이 너무도 길었다. 나는 유튜브에서 그의 어머니 안토니오의 인터뷰를 들었다. 아쿠티스 성인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꿈속에 나타났다고 했다. 그는 죽을 때 모습 그대로 너무도 환한 빛 속에서 밝게 웃고 있었다고. 그리고 물었다고 했다. “어머니 영원에 대해서 아세요? 영원 말이에요.” 그리고 성인은 거기서 중요한 예언을 두 가지 했다. “저는 곧 성인품에 오를 것이고, 어머니는 아이들을 가지게 될 거예요.” 어머니는 놀랐다고 했다. 성인품에 오르는 것은 길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인데, 이제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게다가 여러 번 노력했지만, 의사는 이미 그녀에게 불임 판정을 내린 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이 두 예언은 곧 이루어졌다. 그는 성인품에 올랐고, 그녀는 나이 만 45세에 임신한다. 아기들은 아쿠티스가 죽은 날로부터 4년 후에 정확히 같은 날 태어났다. 나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 유리관 속의 성인을 보았다. 죽은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성인의 육신은 곧 눈을 뜰 듯 생생했다. 나는 리지외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육신과 기적의 메달을 만드는 소명을 받았던 가타리나 라부레 성녀의 육신, 오상의 성 비오 신부님 육신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차원이 다른 놀라움이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고서야, 죽음의 너머 세상이 있지 않고서야, 20년 전에 죽은 젊은이의 몸이 곧 뒤척이며 뛰어날 듯 누워 있다니! 그저 눈물을 흘리며 나는 그곳을 나왔다. 성인이 꿈속에서 했다는 질문이 내게도 던져졌다. “영원을 아시나요? 영원 말입니다.”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발행일 2025-11-30 제3468호 22면

어둠의 심리학

한때 어떤 친구가 내게 늘 하던 말이 있었다. “네가 그러면 사람들이 너 싫어해”,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하더라고.” 그러고는 덧붙이곤 했다. “이런 말 너한테 해주는 사람이 나밖에 더 있니.” 그 친구는 이런 말로 나를 파괴하고 움츠러들게 하는 것 외에 모든 좋은 일을 내게 해주었다. 계절별로 좋은 곳에 여행 가자고 해주기, 생일날 케이크를 들고 찾아와 주기, 내가 글을 쓰느라 얼마간 연락을 끊고 있으면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보고 싶다는 말을 앞세워 우리 집에 큰 선물을 들고 찾아오곤 했다. 다만 그녀는 늘 날 대신하고 싶어 했다. 모든 협상, 모든 섭외 등등. 나는 그 친구를 고마워했고, ‘날 나쁘게 만들어서 그 친구가 좋을 게 뭐 있겠나’라는 얄팍한 계산기를 한 번 돌려본 후 후회 없이 그를 믿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내 비밀 아닌 비밀들을 모두 세상에 발설한 것도 그였고, 있지도 않은 말들을 퍼뜨린 것도 그였으며, 결국 내가 없어진 뒤에서 조금씩 나를 파괴하고 있던 것도 그녀였다. 그 사실을 알기 위해, 나는 그녀가 전해주는 말을 다 믿는 척하며 처음으로 그녀의 말을 녹음했고, 그리고 나를 흉보고 다닌다는 사람들에게 그 말을 전했다. 그들은 놀라워하며 그런 말을 자신들에게 전해준 것은 바로 그녀였다고 내게 증언했다. 치사했지만, 그것을 다 녹음해서 어느 날 드디어 그 녹음을 그녀 앞에서 틀었다. 그때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녀는 종잇장처럼 굳어진 얼굴로 내 눈을 피하며 슬프고 피해를 많이 본 아이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영아. … 나 이런 말들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나.” 그녀는 어쩌면 쉬운 상대였다. 나중에, 나는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 지지자의 집단이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어떤 유튜브를 시청하게 되었는데, 말하자면 이런 식이었다. “아시죠? 문단에서 공지영이라는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며 킥킥 웃었다. 소송하려고 했지만, 그 모호함은 그런 빌미도 주지 않았다. 계산된 것이었다. 그러면 댓글이 주르르 달렸다. “그 유명 작가의 문란함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내 친구가 문단에 있어 그러는데, 착한 일 한 것도 다 위선이라고. 실상은 그렇게 더럽다고 하더라고요.” 이것이 현대의 악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방법이다. 모호하게 몇 마디 던지면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 시기심과 어둠이 스스로 알아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는다. 이것이 두려운 것은 그것이 공격당하는 자들 자신을 자학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어린 연예인들이 죽어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내 기사 밑에 달리던 그 끔찍한 악플들 때문에 한때 나 역시 공포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었다. 그 익명성 때문이었다. 그게 우리 집에 오시는 세탁소 아저씨인지, 아이의 친구 엄마인지, 내 사촌인지 알 수 없어 그게 끔찍했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현대 어둠의 세력은 이렇기로 작정하고, 단지 만 명의 알바생만 구하면 나라를 ‘먹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파헤친 책이 「다크 심리학」이다. 문득 집어 들고 읽다가, 모든 과거가 떠올라와 한동안 우울해졌다. 그때 하느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무렵 힘겹게 살아가던 내게 절친했던 후배 둘이 입교를 신청했다. 그들이 말했다. “나는 아직 다 믿지는 않지만, 언니를 보니 뭐가 있긴 있는 것 같아.” 모든 것을 합쳐 선을 이루시는 하느님, 이 가을 하늘만큼 푸르게 찬미 받으소서!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11-23 제3467호 22면

영혼의 성장판

존경하는 최진석 교수님의 책이나 강의 중 ‘건너가는 자’ 시리즈를 가장 좋아한다. 유튜브에 올라온 강의로 먼저 들었는데, 하도 좋아서 다섯 번쯤 듣고 나중에는 눈물을 흘렸다. 후에 책이 나왔길래, 사서 읽었는데 이 또한 다른 방식으로 좋았다. 이 강의는 불교의 경전 중 대승 불교, 그중에서도 핵심인 ‘공’ 사상을 설파하고 있는 ‘반야심경’ 강의다. 연식이 있으신 분들은 기억하실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제목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 이 경의 첫 구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 아제”라는 말의 산스크리트어는 “Gate Gate Paragate”인데, 원어를 읽다가 ‘Gate’라는 단어의 영어 뜻, ‘문 혹은 관문’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손색이 없어서 약간 놀라기도 했다. 아무튼 이 뜻은 “가자 또 가자 저 건너편으로! 깨달았도다” 정도로 해석된다 하겠다. 그리하여 여기서 이 강의와 책의 핵심 단어 ‘건너가자’가 나온다. 건너간다는 것의 의미를 철학자 최진석은 ‘익숙함에서 낯선 것으로, 진부에서 창조로 간다’는 것으로 설명했다. 만일 게으르고 쉬운 길을 간다면, 결국 남의 행복에 기여할 뿐 자기 자신을 잃고 방황하며 불행할 것이라는 경고로 채우고 있다. 이 책에는 내가 요즘 기도 생활에서 괴로웠던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심도 있는 해답을 주고 있다. 먼저 건너가기 위해 인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수행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아침마다 같은 성무 일도를 이십여 년 하다 보니 -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은 사람들과 비켜있어 - 큰 감동들은 사라지고 거의 외우게 된 구절들 때문에 약간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그는 깨달음이란 바로 ‘누가 단순한 행위를 오랫동안 반복하느냐의 문제’라고 일갈한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베네딕토 성인의 규칙서가 떠올랐다. 얼핏 보면 그 지루한 반복들, 그러나 새벽부터 밤까지 시간에 맞추어 같은 시편을 노래할 때 흐르던 눈물의 기억도 떠올랐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들이 ‘왜 행복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한다. “소명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여기서 그는 소명이 외부의 부름이 아니라 내면의 깨달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들은 안다. 소명, 부르심이라는 것의 의미를 말이다. 이는 빅터 프랭클이 ‘로고테라피’에서 설파한 “의미를 잃어버린 자는 삶을 잃어버린다”라는 말과도 결국 통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일견 지루하게 보이는 반복되는 수행을 통해 인간은 점차로 자신도 모르게 ‘건너가게 되는데’, 그때 “더 귀한 것을 얻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정확히 보기 위해 상을 짓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려준다. 여기서 상이란, 일찍이 에픽테토스가 말하고 안셀름 그륀 신부님이 강조하셨던 “가난이, 질병이, 죽음이 두려운 것은 그 실체 때문이 아니라 네가 지어놓은 상, 그러니까 이미지 때문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중에서 나를 가장 긴장시켰던 말은 그런 것이었다. “궁금해하지 않는 자, 질문을 잊은 자는 이미 영혼의 성장판이 닫힌 자이다”라는 것. “인간이 원래 그래”라는 말로 나의 상처를 감추려 했던 마음을 들킨 기분이라고 할까. 다만 한가지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면, 나는 아직도 이 지구상의 70%나 되는 물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다. 그러니 아직 내 영혼의 성장판을 닫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 가을에 책 한 권을 권한다. 「건너가는 자」 이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11-16 제3466호 22면

하느님의 언어

돌아보니 벌써 이십육 년이나 세월이 지나 있긴 하지만, 내가 처음 회심했을 때 뜻밖에도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가장 죄스러웠던 대목이 떠오른다. 왜 그게 떠오르냐면, 하고 많은 잘못 중에 ‘내가?’, ‘이런 걸 다?’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내가 냉담 중에 무당을 찾아다니며 점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저질러 왔던 그 수많은 죄 중에 지금도, ‘왜 하필 그 대목이 그렇게나 걸렸을까’라는 건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내 죄가 한두 개가 아닐진대 말이다. 당시에도 그게 좀 이상해서, ‘어린 시절에 아무래도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가톨릭 교육을 받아서 그럴 것’이라고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정말 가슴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죄송함이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구약에 나온 대로, ‘바람을 피우다 돌아온 아내의 심정’ 같은 것이라 할까. 돈도 날리고 욕도 하고 폭력도 쓰고 집을 나간 아내 혹은 약혼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제일 미안한 것이 아마 그런 점이 아닐까 싶으니까 말이다. 당시에 만났던 신부님께 바로 이런 점을 두고 많이 울었는데, 그때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괜찮아요. 하느님께서는 그것조차도 은총과 선으로 바꾸어 주실 겁니다”라고. 그때에는 “신앙이 깊은 사람들은 말도 참 예쁘게 하는구나”라고 그저 감동했었는데, 살다 보니 그 말이 문자 그대로 정말 옳았다. 제일 먼저 그 경험이 나를 도운 것은 당시 나를 유혹하던, - 지금은 이단으로 확정된 - 그룹의 유혹이었다.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병이 치유되었고’라는 화려한 수사들이 내게는 하나도 유혹이 되지 않았다. 이미 나는 얼마간 샤먼들에게서 그것을 보아왔었기 때문이었다. 파라오가 거느리는 술사들도 어느 정도의 이적을 일으키지 않는가 말이다. 오히려 내게 분별을 주었던 것은 그 언어들이었다. 나중에 성령의 은사를 받은 수녀님 몇 분에게 기도를 받게 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중 한 언어는 이랬다. ”꽃이 자기가 얼마나 아름다운 꽃인 줄도 모르고, 새가 자기가 얼마나 아름답게 노래하는지도 모르고.“ 아직도 나를 울게 하는 이 구절은 당시 한 수녀님께서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전해 주시던 하느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 하나에 세 시간이 넘도록 통곡하던 나를 아직도 기억한다. 인간에 집착하며 칠 년이 넘도록 글도 쓰지 못하고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나 자신을 온전히 잃어버렸던 그 상황을 이 구절은 한마디로 전해주었다. 칼보다 더 아팠고, 어떤 면도날보다도 쓰라렸었다. 이 구절 하나로 단편을 하나 써도 될 만큼 수많은 생각이 쏟아져 내렸고, 내 잘못이 진정 무엇인지 알게 해주신 것이었다. 그 말씀에는 심지어 그것을 곁에서 듣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있었다. 죄 많은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말씀을 들을 때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단어들이 배열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단의 언어, 샤먼의 언어는 다르다. 우선 단어의 선택이 천박하고 누군가를 비난하면서 자신을 추켜세우는 것 같다는 나름의 감도 잡게 되었다. 내게 얼마만큼의 분별의 은사가 내려졌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주변에 일어나는 약간의 이적들이 나를 흔들지는 못한다. 주변의 거짓 예언자들은 성직자들도 모르게 많이 퍼져 있다. 심지어 돈이나 물건을 받는 이들도 경험해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언어는 남을 찌른다. 수치를 느끼게 한다. 하느님은 이 모든 것도 다시 선으로 이끄실 수는 있겠으나, 그냥저냥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수치심으로가 아니라 회개로 이끄시는.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11-09 제3465호 22면

우주, 코스모스, 사랑의 다른 말

시골에 집을 지은 엄청난 이점 중의 하나는, 내 침대에 누워 밤하늘의 별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일에 지치고 모든 인간에게 엄청난 피로가 느껴질 때, 나는 우주를 생각한다. 요즘 나는 자주 하늘을 올려다본다. 좋은 앱들도 많이 있어 그중 몇 개를 무료로 내려받으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어떤 별자리의 무슨 별인지도 쉽게 알 수가 있다. 한때 많은 상처를 받은 날 밤, 설핏 잠에서 깨어났는데, 유독 밝은 별이 내 창 너머에 떠 있었다. 한밤중 일어나 앱을 작동시켜 바라보니 ‘시리우스’ 별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구상에서 인간의 맨눈으로 알아보는 가장 밝은 별이라고 했다. 그때 맑은 별빛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위로해 줄 수 있는지 아는 행운도 얻었었다. 마치 하느님의 따사로운 눈빛과도 같았으니까. 어젯밤 누워 바라본 별들은 ‘작은곰자리’였다. 작은곰자리의 대표별 북극성은 여전히 그 영롱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맑은 밤하늘의 별자리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내 창문가로 사라지곤 했다. 우리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얼마나 빠른지 실감하는 순간이 그것인지도 모른다. 지구의 자전 속도로 서울에서 부산에 가면 14분 36초, 공전 속도로 가면 11초 만에 부산으로 갈 수 있다. 놀랍지 않은가. 놀라운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무심히 외우곤 했던 태양계의 행성들 ‘수금지화목토천해’(마지막의 명인 명왕성은 오래전 행성의 지위를 잃었다)의 배치를 보면 더 그렇다. 다들 아시겠지만, 지구보다 오래된 달은 이 우주를 떠돌다가 먼저 지구 곁으로 와서 마치 시중을 들 듯이 지구의 위성으로 자리 잡았다. 이 달로 인해 지구의 자전축이 안정되어 기후가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놀랍다. 게다가 달은 밀물과 썰물을 일으켜서 해류를 움직이게 하고 열을 골고루 분배하는데도 기여한다고 한다. 달은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목성과 토성은? 놀랍게도 어쩌면 쓸데없이 크기만 하게 보였던 이 덩치 큰 행성은 그 엄청난 인력으로 우주로부터 끊임없이 날아오는 소행성들의 충돌을 흡수해 주고 있으며, 지구의 공전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칼 세이건은 그의 명저 「코스모스」에서, ‘이 우주라는 거대한 곳의 변두리 중 변두리에 있는 창백한 푸른 점인 지구에 있을 뿐인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 없는가?’라고 했지만, 나는 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우주를 생각하면서 집안의 구석진 조용한 침실, 작은 서랍 속에 마치 내가 가보로 물려받은 소중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보존하듯이 인간을 창조하여 소중하게 보존하시는 하느님의 세심한 손길을 생각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지침과도 같이 과학을 탐구하는 것, 우주를 알아가는 것, 신체의 비밀을 연구하는 것 모두 사실은 하느님을 읽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과학을 많이 사랑한다. 하지만 한가지 풀리지 않는 문제도 있다. 파티마 발현 때도 그렇고, ‘기적의 메달’이라 불린 파리에서의 발현 때도 그랬다고 하고, 그리고 메주고리예에서도 그랬다는데, 머리에 열두 개의 별이 후광처럼 빛나던 성모님(요한 계시록에서도 마찬가지다)께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다. 그 별이 별처럼 생긴 멋진 헤어핀인지 아니면 정말 별인지. (개인적으로 여러 번 생각했는데 성모님처럼 진실하신 분이 가짜 별을 달고 오실 리가 없지 않을까.) 내게는 가능성이 없겠지만 혹자가 성모님을 뵙게 되거든 꼭 물어봐 주시기를 이 자리를 빌려 부탁드린다. 가을이 깊어 간다. 물빛과 더불어 밤하늘 빛도 더 맑고 깊어진다. 오늘 밤도 별을 봐야지 싶으니, 어둠은 더 이상 내게 어둠이나 두려움은 아니지 싶다.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발행일 2025-11-02 제3464호 22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십자가

지난주 오랜만에 일본 도쿄에 다녀오게 되었다. 릿쿄대학교에서 오랜 기간 추진해 왔던 윤동주의 시비가, 갖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세워진다는 소식이었다.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동시통역을 위해 강연 초안을 요청받았다. 이 행사에는 연세대 총장을 비롯한 다수의 내빈이 참석했고, 서울의 정치인들도 온다고 했다. 또 그가 머물렀던 교토의 도시샤대학교 관계자들을 포함해서 그가 죽은 후쿠오카의 ‘윤동주를 사랑하는 모임’ 사람들도 참여한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다못해 시인으로 데뷔를 한 것도 아니었다. 자비로라도 책을 출판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가 죽은 지 거의 100년이 다 되도록 사람들은 그를 잊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다 쳐도, 일본에서는 또 ‘왜?’ 이토록 그가 걸어간 짧은 자취마다, 시비가 건립되는 사람은 한국의 유명 시인들조차도 얻지 못하는 월계관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그의 시집을 사 들고 그것을 읽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소녀가 좋아할 만한 취향의 시들이었다. 아름다웠고 부드러웠고 선했다. 그 뒤에는 그의 짧은 생애가 수록되어 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그가 사상 불량자로 후쿠오카 감옥에 갇히자 그를 면회 간 가족의 회상이 있었다. 그는 안경조차 빼앗겨 더듬거리며 면회실로 나와 말했다고 했다.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있어.” 그가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당시 나는 일제의 만행에 대해 알고 있었다. 특히 생체 실험 같은 것들에 대해서. 이미 근시여서 안경이 없을 때의 고통에 대해 알고 있었던 나는, 일기에 그렇게 썼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다 치자, 그래도 시인에게는 그래서는 안돼. 안경은 빼앗으면 안 돼. 아아 너희는 그러면 안 되었어.” 그렇게 윤동주는 죽었다. 이 두 개의 극명한 사실의 충돌. 생각해 보면 하늘과 바람을 노래한 시인은 많았다. 식민지의 한복판에서 제국에 대항하다 죽은 시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 둘을 동시에 겸비한 시인은 없었다. 그의 시에서 죽는 날까지 그는 단 한마디의 증오도 내비치지 않았다. 일제의 만행과 세계적 규모의 악행에 대해 친구들과 토론했고 저항했던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만일 그의 곁에 있었다면, 나는 말했을지도 모른다. “네 시가 좋긴 한데, 속이 터져.” 그러나 그는 그 속 터지는 짓을 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처럼 / 십자가가 허락’되자,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가는 하늘밑에 / 조용히’ 흘리며 죽었다. 그리하여 모든 열혈한 저항 시인과 모든 서정 시인이 다 잊혀 가는 중에, 홀로 조용히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대못을 박았다. 그의 생애와 글이 한데 모여 시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진정 그리스도인이었고, 그리하여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예수의 제자가 되어 드디어 적지의 한복판, 아직도 극우 인사가 국회에 당선되는 이케부쿠로역 근처에 아름다운 시의 대못을 박아 넣었다. 나는 다음 말로 강연을 마쳤다. “그렇습니다. 왜 윤동주인가?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메시지는 예수가 남긴 마지막 말과 같아요. 그것은 ‘평화!’입니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10-26 제3463호 22면

누가 목자인가

나의 아버지는 인생의 말년 약 2년간, 서울을 떠나 대전교구로 교적을 옮기셨었다. 병원과 간병 문제였다. 형제들과 의논 후 우리는 아버지의 장례는 당신의 고향인 서울에서 치르기로 했고, 아버지도 임종 전 이 소식에 기뻐하셨다. 그런데 막상 서울의 한 가톨릭계 병원에 빈소를 마련하니, 장례미사가 문제였다. 대전에서 신부님이 오실 사정이 안 되었고, 이전 본당의 신부님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셨기 때문이었다. 가톨릭계 병원이니, 원목 사제가 두세 분 계시다는걸 알고 사무실로 가서 미사를 부탁드렸다. 아버지의 장지가 충북으로 정해졌고, 이동 시간 등을 고려할 때 될 수 있는 대로 이른 시간에 미사를 마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사무실로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미사 신청을 하려니까 장례미사가 오전 10시 반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거였다. 원목 신부님들께서 그 시간에 출근하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례차가 떠날 때, 서울의 교통 체증도 피해야 하고, 장지가 멀고’ 등의 사정을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망연해 있는 내게 사무처 직원이 말했다 “오후에 장례미사를 봉헌하시고, 하루 더 주무시든지 아니면 장례 전날 오후에 하세요." 내가 “이 병원 사정 때문에 입관이 내일 저녁인데, 그럼 입관도 안 하고 장례미사를 하라는 건가요? 게다가 미사 때문에 하루를 더 보내라구요?“ 하자 사무처 직원은 “할 수 없죠. 입관 없이 그냥 하세요. 미사가 중요하잖아요”라고 했다. 한번 보내드릴 아버지의, 그들 말마따나 중요한 장례미사를 그런 식으로 할 단 하나의 이유는, ‘신부님들이 그때 출근하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을 당한 자식의 입장에서 효과는 좀 있었다. 눈물이 쏙 들어가고 속이 부글거리면서 슬픔이 많이 가시는 그런…. 하는 수 없이 일찍 일어나실(?) 신부님을 수소문해서 겨우 모셨다. 다행이었다. 일찍 미사 주례해 주실 신부님이 계셔서…. (막상 당일 새벽 평소 존경하던 신부님 세 분이 더 와주셨다.) 그렇게 결정하고 겨우 맘을 추스르며 앉았는데, 존경하던 신부님 중 한 분이 빗속에서 찾아오셨다. 뜻밖이어서 정말 반갑고 감사했다.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지리산에 있다고 하자, 사정을 물으셨다. 나는 시골 작은 본당에서 숨어있는 보석들과도 같은 신부님들을 만나는 기쁨을 말씀드렸다. ‘솔직히 서울에서 교적 신자 2만 명의 본당에 다니다가, 200명 남짓의 시골, 게다가 거의 노인들뿐인 성당에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그 놀라움과 경외는 매우 컸다’라고. ”본당 신부님이 어찌나 훌륭하신지, 주일미사 강론 때는 감동이 되어 눈물까지 흘려요. 신자가 별로 없으니 부끄러워 눈물을 참느라고 애쓰죠. 신자 스무 명도 안 나오는 매일 미사 강론까지 너무나 좋아요. 멀리서도 그분을 지켜주십사 꼭 기도하거든요.“ 듣던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난 이런 소리 처음 들어. 신자가 이토록 본당 신부를 칭찬하는 소리!” 내가 대답했다. “저도 처음 해봐요.” 우리는 함께 웃었다. 배웅해 드리며,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하다”라고 말하자, 신부님은 무심히 대답하셨다. “우리 하는 일이 원래 이런 거야.” 왜 그때 그 말이 그리도 울컥했는지. 목자란 무엇이고 또 누구일까.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발행일 2025-10-19 제3462호 22면

내 인생의 가장 큰 은총과 행운

20년 전, 당시 75살이었던 나의 아버지는 암 수술을 받는다는 것을 자식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내가 그 사실을 안 날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학회에 떠나기 전날이었다. 놀라서 전화했더니, 아버지가 태연하게 말했다. “걱정할까 봐 알리지 않았다. 당장 죽어도 무슨 여한이 있겠니? 아빠는 참 재미있게 잘 살았어.” 내가 “아무래도 나 내일 캐나다행 포기할까 봐요”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소리니. 너는 젊고 너의 일을 해야 해. 우리 지난 주말에 만나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지? 그걸로 충분해. 아빠는 늙었으니, 아빠의 길을 가고, 너는 젊었으니, 너의 길을 가야 한다. 다시 만나게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절대로 후회하거나 슬퍼하지 말거라.” 전화를 다 마치지 못하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아버지와 헤어질 수 있다는 슬픔이 처음으로 실감 나서였지만,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던 우리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품격을 잃지 않으시는 것에 대한 감동도 있었다. ‘나도 죽음의 자리에서 자식들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꼭 그래야지’라는 생각이 동시에 났다. 학회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암 수술을 잘 마치시고 그로부터 20여 년을 더 사신다. 그리하여 엄마의 회심에 따라 세례를 받으셨고, 두 분은 저녁마다 함께 앉아 묵주기도를 바치셨다. 아버지를 존경하던 후배 7쌍이 아무런 의문도 없이 같이 가톨릭에 입교하는 기적도 일어났다. 건강해지신 아버지는 아빠가 없는 우리 아이들의 생일마다 꼭 찾아오셨다. 완전한 정장을 입으시고, 아이들의 생일 케이크를 함께 자르신 아버지는 어느 날 말했다. “미카엘라, 가브리엘, 라파엘, 기억하거라. 할아버지가 너희들 생일을 위해서 넥타이를 매고 좋은 옷을 입고 왔었다는 것을.” 아버지는 지난주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는 유언으로 아직 입교하지 않은 외아들인 오빠에게 말했다. “네가 나 죽은 후에 신자가 되면 미사를 봉헌해다오. 하지만 신자가 되지 않으면, 그냥 ‘아베 마리아’ 음악을 틀어 내 기일을 기려다오.” 아버지는 평생 그랬듯, 자식들에게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으셨던 거다. 내가 큰일을 겪을 때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이혼하는 게 정말 싫다. 하지만 네가 불행한 건 더 싫어.” 임종 자리에서 나는 아버지의 식어가는 손을 붙들고 말했다. “하느님이 내 인생에서 베풀어주신 가장 큰 은총이자 행운은, 날 아빠 딸로 만드신 거야.”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아버지는 엷게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묵주와 작은 십자가를 쥔 채로 세상을 떠나가셨다. 후배 하나가 전화 통화 중에 말했다. “언니는 좋겠다. 그런 아버지가 있어서. 우리 아버지는 주로 내 자존심을 짓밟는 역할을 하고 가셨지.” 나는 말했다. “그래서 내가 은총이고 행운이라 했잖아. 우리 아버지도 그런 아빠가 없었어. 하지만 그런 아빠가 되었잖아. 그러니 너도 그런 아빠 그런 엄마가 되면 되지. 그것도 힘들면, 우선 너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돼. 그것도 행운이야.” 나에게는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을까. 이 남은 시간들, 나도 다른 이들에게 행운이 되고 싶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10-05 제3461호 22면
기사 더보기더보기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