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문화를 건설하자

한국교회는 매년 5월 첫 주일을 생명 주일로 지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가르치시며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피조물인 인간이 참된 진리를 깨닫고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이처럼 은총으로 내어주신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깨닫고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도록 불리웠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과연 생명의 존엄성을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 의문이다. 가장 무기력한 존재인 태아의 생명권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낙태죄가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졌지만 여전히 관련 법이 제정되지 못했다. 안락사를 허용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어 관련 법이 논의되고 있기도 하다. 서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 사회적 현실 속에서 만연한 혼인과 출산 기피 현상은 우리 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새로운 생명의 못자리인 가정은 오늘날 그 보금자리로서의 의미가 퇴색되어가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가 초고령화 사회로 나아가는 가운데 노인들에 대한 돌봄과 보살핌의 필요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보장 제도는 미미하다. 참담한 비극으로 기록된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는 경제적인 이익을 최우선시하고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도외시하는 왜곡되고 비뚤어진 인식의 결과다. 이미 오랫 동안 교회는 우리 사회 안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를 크게 안타까워하면서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해 왔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그 뿌리를 되짚어 보면 결국 생명의 소중함을 소홀히 여긴 탓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는 일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가장 크고 긴급한 소명이다.

2024-05-05

통계 곳곳 ‘빨간불’, 근본적 사목 대안 고민할 때

「한국천주교회 통계 2023」는 팬데믹으로 타격을 받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엔데믹 선언과 함께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2022년 11.8%였던 주일 미사 참례율은 1.7% 포인트 오른 13.5%를 기록했고, 영세자도 전년보다 1만 명 가까이 늘었다. 견진·병자·고해 등 성사 건수도 완만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팬데믹 이전으로의 온전한 회복은 더디다. 감염병 전후의 기준점으로 여겨지는 2019년 통계와 비교하면 주일미사 참례는 74.5% 수준. 견진·고해 등 여타 성사 활동도 60~80% 회복에 그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주일미사를 충실히 참례했던 신자 4명 중 아직 돌아오지 않은 1명을 성당 울타리 안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사목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65세 이상 비율이 26.1%라는 통계가 보여 주는 신자 고령화는 교회가 맞닥뜨린 또 다른 과제다. 향후 5년 내 65세 이상 연령대에 접어들 60~64세 신자가 58만여 명으로 전체 신자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면 고령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사목자들의 연령 지표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새 신부는 10년간 가장 적고 신학생 수는 줄어든 반면, 원로사목자 비중은 크게 늘고 있다. 사제 부족 현상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가시화되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친 저출생 고령화는 교회에 더욱 빨리 찾아왔다. 사실 이 문제는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이 같은 현상이 예견됐다. 상황은 더 어려워지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은 찾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단순히 실버대학 몇 개 늘리고, 원로사목자 숙소를 짓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일이 아니다. 더 본격적이고 근본적인 사목 대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2024-05-05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 위한 현양운동에 박차를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가 4월 16~21일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에 나섰다. 위원회는 순례길에서 그가 조선대목구장에 임명된 뒤 사목지인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거쳐 간 여정과 유해 이송로를 따라가며 조선 복음화를 간절하게 기원했던 그의 정신을 되새겼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시복은 지난해 10월 12일 서울대교구가 교황청 시성부로부터 ‘장애 없음’(Nihil obstat)을 승인받음으로써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시복 추진에 요구되는 외부 검증 절차, 즉 지역 주교회의와 교황청 시성부의 검증을 거친 결과다. 이로써 서울대교구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시복 추진을 하기 위한 사전 절차를 마쳤다. 이제 복잡하고 엄격하게 이뤄지는 시복 재판을 위해 서울대교구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영웅적 덕행과 성덕의 명성을 증거할 수 있는 자료들을 수집하는데 힘쓰게 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교회의 하느님 백성들이 함께 참여하는 현양운동이다. 하느님 백성들 사이에 그의 영웅적 덕행과 성덕의 명성이 널리 퍼진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면 그것이야말로 복자, 나아가 성인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울대교구와 한국교회 전체에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현양을 위해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바치는 기도와 현양의 움직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시복시성은 사실 그 대상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의 신앙 성숙과 영혼의 구원을 위한 일이다. 신앙 선조들의 삶과 굳건한 신앙을 본받으려는 일상의 실천과 현양의 노력이야말로 시복 추진의 핵심이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이다.

2024-04-28

모든 노동자들의 인간존엄을 위해 노력하자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른다. 이날은 노동자들이 겪는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제정됐다. 노동절은 1886년 5월 1일 미국에서 노동자와 가족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보장받기 위해 벌인 파업 집회에서 비롯됐다. 이후 1889년부터 전 세계 각국은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절 제정 이후 134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자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여전히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또 노동자들 사이를 차별하는 법과 제도가 있다.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별, 국적에 따른 차별,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른 차별 등이 바로 그 예다. 이러한 차별과 불의에 대항해 교회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서고 노동자들과 끊임없이 연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불의한 법 제정과 집행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자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선태 주교는 올해 노동절 담화 제목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로 정했다. 김 주교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일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고 모든 종류의 착취에서 인간을 막아주는 것이 안식일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가르치는 안식일의 근본 정신에 따라 모든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 동등한 존엄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그들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힘쓰는 모든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이들과 연대해야 할 것이다.

2024-04-28

신자 당선자들에게 기대한다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우리는 유례없는 아픔과 어려운 과제들에 직면해 있다. 전 세계는 가까스로 팬데믹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지만 전쟁과 폭력으로 고통받고 있고, 인간이 오염시킨 지구는 기후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에서는 어려운 나라 살림에 가난한 이들은 더 곤궁해졌다. 연이은 사회적 참사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하고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계와 정부는 환자를 볼모로 대치를 이어간다. 그 와중에 정치인들은 당리당략과 개인적 영달 추구에 여념이 없고, 표를 얻기 위해 국민들을 갈라치기한다. 제22대 총선을 지켜본 국민들은 때로는 절망, 때로는 분노로 가득 찼다.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정부와 여당을 심판하자는 것이 유일한 구호였다. 국민들은 지혜로웠다. 실망과 혐오에도 불구하고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고, 모두에 대한 기대와 경고를 담은 결과를 선사했다. 모든 당선자들이 이제는 공동선을 위해 일하기를 호소한다. 특별히 신자 당선자들에게 기대한다. 우리나라에서 천주교 신자는 국민 10명 중 1명꼴이지만 신자 국회의원은 4명 중 1명꼴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치가 ‘사랑의 가장 고결한 형태’라며 “사회 상황과 국민과 가난한 이들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정치인들을 더 많이 보내 주시도록 기도한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205항)고 말했다. 신자 당선자들은 고결한 사랑을 실천하고 공동선에 봉사하도록 불린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정치 활동을 신앙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주님은 이들이 정치 활동에서도 하느님과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새로 선출된 22대 국회의 신자 당선자들이 하느님 뜻에 충실하기를 간절하게 기대한다.

2024-04-21

각자의 성소 찾으며 희망의 순례 나서자

올해로 제61차 성소 주일을 맞이했다. 교회는 매년 부활 제4주일을 성소 주일로 기념한다. 성소 주일은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아버지께 거룩한 성소의 선물을 청하며 기도하는 날이다. 한국교회는 특별히 사제·수도 성소 증진에 보다 집중하며 성소 주일을 지낸다. 갈수록 사제·수도 성소가 감소하는 현실에서 이는 중요하고도 꼭 필요한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하느님 백성의 일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은사에 따라 고유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성소 주일 담화를 통해 밝히고 있듯, 우리 모두는 “다양한 생활 신분 안에서 복음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교황은 특별히 2025년 희년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강조하며 ‘희망의 순례자’, ‘평화의 건설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당부하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전쟁과 갈등,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고향 땅을 떠나는 많은 이주민과 난민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이 시대를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서 희망의 순례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요청을 되새기자. “저마다 교회와 세상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성소를 찾고 희망의 순례자이며 평화의 건설자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일에 투신합시다.” 우리 각자가 용기를 낼 때 ‘우리 모두는 고유한 생활 신분에서 나름대로 작은 방식으로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희망과 평화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

2024-04-21

과거 아픔 넘어 함께 연대해야

지난 4월 2일 광주에 제주 4·3 희생자를 기억하는 ‘4월걸상’이 놓였다. 제주 외 지역 최초의 4·3 조형물이며, 아픈 과거를 안은 두 지역의 연대를 드러낸 조형물로 의미가 깊다. 제막식에는 광주대교구와 제주교구장을 지낸 김희중 대주교와 강우일 주교가 참석해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는 걸상이 인간 존중과 평화의 연대를 강화하는 상징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4월과 5월은 우리에게는 민족의 아픈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때다. 제주의 4·3, 광주의 5·18이 그렇고 가까이는 참사 10주기를 맞은 세월호의 슬픔이 고통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상징하는 총구 모양의 걸상을 일상 공간에 놓은 것은 여전히 고통 받는 피해자 곁에 함께하는 이들이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하기 위함이다. 강우일 주교가 4월걸상 제막식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가 어제와 오늘을 기억함으로써 내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폭 1.1m의 걸상은 두 사람이 몸을 부대껴야만 겨우 앉을 수 있다. 의자 받침은 거칠고 큰 바위가 바다에 이르기까지 구르고 굴러 둥글고 매끈한 모습으로 탈바꿈한 제주 몽돌의 형상이다. 역사 안에 깊숙이 자리한 아픔의 매듭을 풀기 위해서 우리는 의자에 부대껴 앉아야 한다. 거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기보다는 만남으로 부대끼고 폭력이 아닌 대화로 다가서야 한다. 그럼으로써 날 선 오해를 몽돌의 부드러움으로 바꿔가야 한다. 4월걸상이 끊임없이 이어져 온 폭력의 반복을 끊고, 광주와 제주를 넘어 한민족이 하나로 마음을 모으는 연대의 주춧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4-04-14

기억은 힘이 세다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는 날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이들의 고통까지 망각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고통과 연민, 공감과 연대를 잊을 때 불합리한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실제로 기억과 교훈이 힘을 잃을 때 스텔라 데이지호 침몰사고, 10·29 이태원 참사, 오송지하차도 참사가 이어졌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들은 수수방관을 넘어선 방해를 일삼았다. 많은 이들이 참사에 대한 피로감을 빌미로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조롱하고 비난했다. 당사자의 고통, 더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깊은 책임감을, 보상금을 더 받으려는 파렴치한 이들의 행태로 몰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거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무능했을 뿐만 아니라 거짓으로 일관했던 국가는 철저한 진상 규명보다는 억압과 모욕과 무시로 희생자들을 대함으로써 기억을 덮으려고만 했다. 세 차례의 공식 조사 기구 활동이 있었지만 여전히 진실은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참사를 기억하면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기 위한 노력은 온갖 어려움에도 계속됐다. 희생자들은 서로 위로하고 연대해 다시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인간 생명이 최고 가치임을 잊지 않도록 노력했다. 선의의 시민들은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보냄으로써 고통에 동참했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하지만 기억은 힘이 세다. 우리가 고통을 기억하는 한 진실은 밝혀지고 잘못한 이들은 책임을 질 것이며, 더 안전한 사회를 향한 의지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2024-04-14

하느님의 자비를 온 세상에

교회는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0년 4월 30일 폴란드의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면서 세상에 하느님 자비가 얼마나 절실하게 요청되는지를 일깨웠다. 이 시대는 자비를 요청한다. 끊임없는 국가간 분쟁과 내전, 억압과 차별 등 불의와 죽음, 폭력의 문화가 여전히 만연해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은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물질 중심의 가치는 지구와 생태계를 파괴해 공멸의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올해 예수님의 부활을 맞은 인류는 자비가 결여된 세상의 참상을 안타깝게 목격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님 부활 대축일인 3월 31일 중동과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전쟁의 현장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하면서 평화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용서로써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서로를 수용하고 용납하지 않는 극단적 대립으로 점철돼 있다. 여야는 공동선에 헌신하기보다는 서로 비난하는 권력 다툼에 빠져 있고 정부와 의료계는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대치하고 있다. 그 와중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망은 갈수록 허술해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자비의 모범을 따라 살아야 한다. 갈라진 이들이 서로에 대한 자비로운 사랑을 회복하도록 ‘자비의 관리자이며 분배자’가 돼야 한다. 때마침 우리는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구하려는 다툼의 행위로 여겨져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선거는 공동선의 실현에 헌신하고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구체적인 사랑과 자비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2024-04-07

총선 후보자, 교회 가르침으로 식별하자

주교회의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정책 질의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 사회 현안들에 대한 주요 정당의 정책과 공약을 들어본 각 정당 답변은 우리가 어떤 후보자를 국회의원으로 선택할지 식별하는 지침이 될 것이다. 8개 분야 총 43개 문항으로 이뤄진 질의에 대해 각 정당이 내놓은 답변은 공통적인 부분이 있는 반면 많은 영역에서 첨예하게 갈리기도 한다. 예컨대 사형제도 폐지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과 녹색정의당은 동의한 반면 국민의힘은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탈핵과 관련, 더불어민주당과 녹색정의당은 신규 핵발전소 건설 반대에 ‘매우 동의’했으나 국민의힘은 동의하지 않았다. 이러한 입장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저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그 외에도 ‘노란봉투법’ 입법 재추진,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 제정, 재생에너지 확대, ‘탈석탄법’ 제정,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 ‘생명안전기본법’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등에 대해서도 정당 간의 의견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는 민주시민의 의무이자 권리인 정치 참여를 구현하는 신성한 기회다. 아울러 가톨릭신자인 우리는 교회가 전하는 복음적 가르침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선거를 앞두고 중요한 사회적 현안들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무엇인지를 배우고, 어느 정당과 어느 후보자가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을지 뿐만 아니라, 복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할지를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개인적 이해를 극복하고 공동선과 복음적 가치에 바탕을 둔 선택이 선거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돼야 한다.

20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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