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기도 이야기] 노래하며 춤추며 온 백성이 함께 바치는 기도(탈출기 15장)

“나의 힘, 나의 노래이신 주님!” 가수 고(故) 김광석씨는 ‘나의 노래’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흥겨운 리듬과 희망찬 가사를 담고 있는 이 노래에서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이라는 후렴이 반복되는데, 이는 가수가 가지고 있는 삶의 정수를 담고 있는 듯합니다. 아기가 엄마 뱃속을 나오면 울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갈대 바다를 빠져나오면서 이와 비슷한 체험을 합니다. 자유를 얻은 백성은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이 노래는 성경에 나오는 첫 노래이자 함께 바치는 기도입니다. 바빌론의 패망에(묵시 18장 참조) 대한 하늘에 있는 무리의 환호와(묵시 19장 참조) 같이, 이 노래는 이집트로부터의 탈출이라는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 앞에서 터져 나오는 인간의 응답입니다. 백성은 주님과 그분의 종인 모세를 마음으로 믿는(탈출 14,31 참조) 데에 그치지 않고 마음과 입을 열어 찬양 노래를 부릅니다. “나의 힘, 나의 노래(성경 번역은 ‘굳셈’)이신 야(훼)!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다”(2절; 이사 12,2: 시편 118,14 참조)는 대목이 노래 전체를 요약합니다. 여기서 힘과 노래라는 조합은 주님의 권능뿐만 아니라 그분의 멋짐을 드러냅니다.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 사건을 전하는 기도문의 수준 높은 시상이 ‘노래’의 속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전쟁의 용사’와 ‘오른손’ 및 그분께 맞서는 이들은 거센 물속에 가라앉은 납덩이처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표현이 그분의 탁월한 ‘힘’을 보여줍니다. 주님이라고 번역된 원문은 ‘야’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이름인 ‘야훼’의 줄임말로 이스라엘 백성이 여기서 그분을 얼마나 친밀히 여기는지를 보여줍니다. “누가 당신과 같겠습니까?”(탈출 11절)는 노래의 중심이자 그 전환점입니다. 이 질문에서 어떤 신들과도 비길 수 없는 주님의 탁월함이, 또 그분이 일으키시는 기적의 뛰어남이 드러납니다. 그분에 맞설 이나 비길 이는 아무도 없고 그분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3~10절의 노래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찬양하고 12~18절은 미래를 지향합니다. 지금까지 선사된 것이 감사의 이유이지만 또한 앞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 이미 찬양에 포함됩니다. ‘힘과 노래’는 주님의 권능 드러내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한 기도문과 비유로 그분의 탁월한 힘 보여줘 하느님은 시간을 뛰어넘어 존재해 함께 부르는 노래로 고백받아야 이와 같이 기도 안에 과거와 미래가 함께 들어섭니다. “땅이 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16절)는 민수기 16장의 반역을 암시하고,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필리스티아, 에돔, 모압, 가난안 민족들을 거쳐 약속된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당신께서 살려고 만드신 곳’(17절)은 후에 솔로몬이 세우게 될 성전을 가리킵니다.(1열왕 8,49; 2역대6,39) “주님께서는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신다.”(18절)는 마지막 구절은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여 언제나 도와주시고 이끄시는 하느님을 고백합니다. 노래 전체는 점차 확장됩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남성)이 “나는 노래하리라”(1절)로 시작하지만 미리얌과 여자들은 “너희는 노래하여라”(20절)라는 추임새를 넣고 남성과 여성이 마주하여 웅장한 이중의 합창을 하는 듯합니다. 게다가 여자들은 손북을 치고 춤을 추며 노래를 동반합니다.(판관 11,6-8; 1사무 18,6-8; 예레 31,4 참조) 합창단과 관현악단과 무용단이 모두 함께 신나는 음악을 엮듯이 찬양의 기도는 모든 이들을 포괄합니다. 누구보다 위대하신 하느님은 시간을 넘어 변함없이 우리를 도우시고 이끄십니다. 나의 노래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함께 부르는 노래로 찬양받으셔야 할 분이십니다. 글 _ 신정훈 미카엘 신부(서울대교구 해외선교)

2024-07-21

[성경 속 기도 이야기] 짝을 찾으며 바치는 기도

“아내를 얻은 이는 행복을 얻었고 주님에게서 호의를 입었다.”(잠언 18,22)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은 뒤 이사악의 부인감을 자기 고향에서 얻어 오도록 자신의 가장 나이 많은 종을 파견합니다. 아브라함은 과거에 함께해 주시고 자기에게 미래를 약속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천사를(창세 24,7 참조) 그에 앞서 보내시리라 믿습니다. 자신의 짝을 찾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남의 짝을 찾는다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자신의 사명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종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제 주인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신 주님, 오늘 일이 잘되게 해 주십시오. 제 주인 아브라함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제 제가 샘물 곁에 서 있으면, 성읍 주민의 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것입니다. 제가 ‘그대의 물동이를 기울여서, 내가 물을 마시게 해 주오.’ 하고 청할 때, ‘드십시오. 낙타들에게도 제가 물을 먹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바로 그 소녀가, 당신께서 당신의 종 이사악을 위하여 정하신 여자이게 해 주십시오. 그것으로 당신께서 제 주인에게 자애를 베푸신 줄 알겠습니다.”(창세 24,12-14) 여기서 자기에게도, 또 달리 말하지 않아도 낙타에게도 물을 주는 소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러한 소녀는 친절하고, 다른 이를 돌보고, 나그네를 맞아들이며,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까지 배려하는 부지런한, 훌륭한 여인의 덕을 갖춘 이를 의미합니다. 목마른 낙타 한 마리가 70리터의 물을 마시니 그가 데려온 열 마리 낙타에게 주저함 없이 물을 샘에서 길어 먹이는 소녀는 배려심과 수행 능력을 겸비한 아름답고 뛰어난 여인으로서 이사악의 아내, 아브라함의 며느리가 되기에 손색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종의 행위와 하느님의 도우심이 복합되면서 하느님이 누구를 이사악의 아내로 정하셨는지가 드러납니다. 종의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창세 24,15 참조) 레베카가 등장하고 자신이 기도한 대로 그녀가 행동하자 종은 무릎을 꿇어 주님께 경배합니다. “나의 주인에게 당신 자애와 신의를 거절하지 않으셨으니,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창세 24,27) 그는 주님께서 그를 바른길로 인도해 주셨음을 깨닫습니다. 이어 그는 주인의 아우 집안인 레베카의 집에 들어가고 그 가족들에게 자기가 바친 기도와 그 기도가 하느님께 받아들여졌음을 증언합니다. 이로써 그의 말을 듣는 가족들은 이 일에 분명히 하느님께서 함께하고 계시고, 하느님께서 몸소 이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깨닫고 이사악과 레베카의 결혼을 승낙합니다.(창세 24,50 참조) 이에 다시 한번 종은 땅에 엎드려 하느님을 경배합니다(창세 24,52 참조). 평생의 반려자를 찾는 것은, 또 그와 함께 인생의 길을 걷기로 결정하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 매우 어렵습니다. 결혼 문제만이 아닙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에 부딪힐 때, 더 이상 자신의 힘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거대한 과제 앞에서는 언제나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많은 종은 그런 자세의 모범입니다. 그는 사건 전체에서 하느님께서 도움을 주신다는 것을 믿으며 다섯 번이나(24,12-14;26-27;42-44;48;52) 기도합니다. 누구에게나 미래를 향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기도에서 보이듯 우리의 미래는 우리에게만 달린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이끌어 주셨고 앞으로도 우리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누구나 혼자 길을 걷지 않고 그분과 함께 갑니다. 그분의 도움을 믿고 그분과 함께 내리는 결정에 큰 축복이 함께 할 것입니다. 글 _ 신정훈 미카엘 신부(서울대교구 해외선교)

2024-07-14

[성경 속 기도 이야기] 이사(移徙)하면서 바치는 기도

올 연말까지 기도에 대해 여러분과 생각을 나눌 신정훈 미카엘입니다. 언젠가 어느 신자분이 “어떤 기도가 올바른 기도입니까?”하며 여러 번 제게 물어보셨습니다. 끝까지 저는 그분에게 시원한 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분은 어려운 문제를 안고 계셨고, 올바른 기도를 드리면 그 문제가 즉시 풀어지리라 여기셨던 듯싶습니다. 명의의 한 수에 깊은 병이 씻은 듯이 나는 것처럼 기도를 문제의 해결 도구로 삼고자 하는 생각은 우리 마음속에 깊이 자리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사람은 그분을 찾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은총입니다. 기도하는 사람 안에 이미 하느님의 부르심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기쁜 일, 또 슬프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기도하면서 하느님께서 자기 안에 활동하시도록 합니다. 기도에서 각 사람이 처한 상황과 그가 하느님과 맺고 있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기도의 구체적인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기에 우리는 성경을 따라가면서 기도를 배우고자 합니다. 칼 라너 신부님은 어떤 이에게서 하느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넘쳐나는 것이 곧 기도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하느님과 가까워질 것입니다. 제 글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의견 주시면(shinmichael@hanmail.net) 짧고 부족하지만, 여건이 허락하는 한 답을 드리겠습니다. 나이 마흔의 야곱은 형 에사우를 피해 부모 집을 떠나 먼 고장으로 가면서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저에게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며,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주님께서는 저의 하느님이 되시고,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께서 주시는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창세 28,20-22) 야곱의 기도는 여러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아직 하느님과의 관계가 깊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야곱은 하느님을 ‘당신’으로 표현하면서 그분과 친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야곱은 되돌아오는 길에 형이 장정 사백 명과 온다는 소식에 겁을 먹고 하느님을 찾습니다. “저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 저의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 ‘너의 고향으로, 너의 친족에게 돌아가거라. 내가 너에게 잘해 주겠다.’ 하고 저에게 약속하신 주님! 당신 종에게 베푸신 그 모든 자애와 신의가 저에게는 과분합니다. 사실 저는 지팡이 하나만 짚고 이 요르단강을 건넜습니다만, 이제 이렇게 두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제 형의 손에서, 에사우의 손에서 부디 저를 구해 주십시오. 그가 들이닥쳐서 어미 자식 할 것 없이 저희 모두를 치지나 않을까 저는 두렵습니다. 당신께서는 ‘내가 너에게 잘해 주고, 네 후손을 너무 많아 셀 수 없는 바다의 모래처럼 만들어 주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의 이 두 번째 기도는 하느님의 약속 말씀으로 시작하고 맺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야곱은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기도를 시작하고 그 안에서 위안과 도움을 찾는 야곱은 이전에 비해서 훨씬 더 하느님과 친해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로 이 기도가 야곱에게 힘을 줍니다. 학교나 일자리 등 많은 이유에서 우리는 삶의 터전을 옮깁니다. 낯선 환경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그분에게 솔직한 마음을 열어 보이고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는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은 우리에게 힘을 주고 우리를 그분께 가까이 이끕니다. 글 _ 신정훈 미카엘 신부(서울대교구 해외선교) 2001년 서울대교구 사제로 서품됐으며, 뮌헨대학교에서 교의신학을 전공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강의했으며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부 자문 위원이다. 2020년부터 독일 뮌헨 상트 막시밀리안 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역서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신학 주석」 시리즈, 「그리스도교 신앙」(공역) 등이 있다. 기획 ‘성경 속 기도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전 교수인 서울대교구 신정훈(미카엘) 신부가 성경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기도를 바로 알고 행할 수 있도록 돕는 자리입니다.

2024-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