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드 교회’ 실현 속도 낸다…주교회의·각 교구에 ‘시노드 팀’ 구성

‘한국 가톨릭 매스컴대상’ 명칭 ‘가톨릭 미디어 콘텐츠 대상’으로 변경 ‘한국 천주교회 주일학교 교리교사 양성 지침’, '방송 미사에 관한 지침’ 승인 교구대회 원활한 준비 위해 모든 교구에 ‘교구대회 조직위원회’ 구성 주교회의·각 교구, 산불 피해 주민 돕기 위한 긴급 구호금 지원 한국교회가 ‘시노드 교회’ 실현에 속도를 낸다. 주교회의와 각 교구에 ‘시노드 팀’을 만들고, 평신도·수도자·성직자가 함께하는 교구별 시노드 모임을 열어 친교와 참여, 사명의 시노드 정신 확산의 기폭제로 삼는다. 본당 사제들을 ‘시노달리타스 선교사’로 양성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한다. 주교회의(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는 3월 24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2025년 춘계 정기총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주교회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승인으로 올해부터 2028년까지 이어질 시노드 이행 단계 동반과 평가 과정에 대해 논의하고, 교구별 시노드 팀과 주교회의 시노드 팀을 각각 구성하기로 했다. 시노드 관련 주교회의 대표 주교는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가 맡는다. 아울러 평신도·수도자·성직자가 함께 참여하는 시노드 모임은 교구 차원에서 우선 진행하기로 했다. 전국 단위 시노드 모임은 ‘시노드 교회를 위한 본당 사제 모임’에서 양성한 사제들로 교구 차원 모임이 활성화된 후 추진할 예정이다. 올해 ‘시노드 교회를 위한 본당 사제 모임’은 6월 17일부터 2박3일간 ‘관계와 소통’을 주제로 개최한다.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최종 문서」는 단행본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이용훈 주교는 26일 열린 교계 기자단 간담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시노드 교회 실현이 교회의 미래를 결정지을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계신다”며 “누구보다 본당 사제들이 신자분들과 함께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경청하며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주교회의는 아울러 이번 정기총회에서 사회홍보위원회가 주관하는 ‘한국 가톨릭 매스컴대상’의 명칭을 올해부터 ‘가톨릭 미디어 콘텐츠 대상’으로 바꾸기로 했다. 신문·방송 등 언론뿐 아니라 뉴미디어와 공연예술 등 대중문화 전반의 우수한 작품을 발굴하고 격려하기 위해, 시상 부문도 ▲방송영화(TV, 라디오, 영화) ▲뉴미디어(인터넷 및 모바일 콘텐츠) ▲신문잡지출판(신문, 잡지, 출판 등) ▲공연예술(연극, 뮤지컬, 공연 등) 등으로 확대했다. 교리교육위원회가 제출한 ‘한국 천주교회 주일학교 교리교사 양성 지침’도 승인했다. 교리교육위원회는 교회의 현재이자 미래인 주일학교 학생들의 복음화와 그들의 신앙 여정을 동반하는 교리교사의 역할이 요구되는 상황에 발맞춰, 보편교회가 제시하는 교리교사 양성에 기초해 한국교회가 공통된 지향과 기준에 따라 양성에 나설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각 교구 청소년국의 교리교사 양성 실태를 조사해 지침을 마련했다. 44쪽 분량의 지침은 올해 8월경 출판될 예정이다. 미디어 종사자들과 전례 담당자들이 방송 미사를 제작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신자들이 방송 미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한 ‘방송 미사에 관한 지침’도 정기총회에서 승인됐다. 주교회의는 이밖에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이하 WYD) 교구대회의 원활한 준비를 위해 모든 교구가 ‘교구대회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현재 수원, 인천, 청주, 제주교구 등이 조직위원회를 발족하고 교구대회 준비에 본격 나서고 있다. 올해 11월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열리는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복음화위원회 주최 ‘제2회 아시아 선교 대회’에는 정신철(요한 세례자) 주교, 손삼석(요셉) 주교, 문창우(비오) 주교, 김주영(시몬) 주교, 김종강(시몬) 주교, 서상범(티토) 주교, 장신호(요한 보스코) 주교가 사제·수도자·평신도들과 함께 한국 대표단으로 참석하기로 했다. 2028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제54차 세계성체대회 한국 대표에는 정신철 주교가 선출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정한 ‘콜카타의 성녀 데레사 동정 선택 기념일’(9월 25일) 전례문의 우리말 번역문을 승인하고 사도좌에 추인을 요청하기로 했다. 경상권을 중심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안동교구와 마산교구 성당과 신자들의 피해가 속속 보고되는 가운데, 3월 26일 ‘산불 피해 주민들에게 드리는 위로문’을 발표하고 “피해 복구와 재건을 위해 적극 연대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밝힌 주교회의는 정기총회에서 주교회의와 각 교구가 산불 피해 주민들을 돕기 위해 긴급 구호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빌렘 신부 편지로 알아보는 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토마스. 1879~1910)는 독립운동가이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을 지킨 가톨릭신자이기도 하다. 파리 외방 전교회 빌렘 신부(Nicolas Joseph Marie Wilhelm, 1860~1938)는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중국 뤼순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후의 행적을 다수의 편지에 남겨 놓았다. 빌렘 신부의 편지 내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독립운동가이자 신앙인으로서 안 의사의 면모를 자세히 알 수 있다. 안 의사와 관련해 빌렘 신부가 쓴 편지들(연례 보고서 포함)은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 이하 연구소)가 2020년에 펴낸 「빌렘 신부, 안중근을 기록하다」에 1896년 12월 6일자부터 1914년 2월 12일자까지 날짜순으로 모두 26통이 수록돼 있다. 또한 아직 정식으로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빌렘 신부가 1910년 6월 24일자, 1910년 9월 28일자로 작성한 편지 등도 연구소가 초벌 번역해 놓은 상태여서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연구소가 번역한 빌렘 신부의 편지들은 안 의사가 가톨릭 신앙을 키운 장소인 황해도 청계동본당에서의 신앙활동, 아버지 안태훈(베드로) 등 안 의사 가문의 사람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전 안 의사의 독립운동, 거사 후 순국을 앞둔 시점에서 빌렘 신부와 안 의사의 만남, 안 의사 순국 후의 상황 등을 자세히 전해준다. 빌렘 신부 편지들 중 안 의사의 행적을 직접적으로 기록한 것으로는 1906년 2월 23일자를 우선 꼽을 수 있다. 이 편지에서 빌렘 신부는 안 의사가 1905년 반일운동을 위해 갑자기 중국 상하이로 떠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빌렘 신부가 작성해 조선대목구장이던 뮈텔 주교에게 보낸 1910~1911년 연례 보고서에서는 “제가 어느 사형수에게 목자의 의무를 이행하러 갔다는 이유로 주교님께서 내리신 60일간의 성무 집행 정지 처분에 대해 저는 작년 보고서에서는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았습니다”라고 기록했다. 이것은 빌렘 신부가 뮈텔 주교 허락 없이 1910년 3월 9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안 의사에게 고해성사를 집전해 징계를 받은 사실을 가리킨다. 빌렘 신부는 같은 보고서에서 “주교님께서 이 사형수에게 하신 터무니없고 가혹하며 교회 법규에 반하는 말도 안 되는 그 성사 거절에 대해 변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안 의사에게 고해성사를 집전한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항변하고 있다. 안 의사가 순국한 이후인 1912년 3월 19일 작성한 편지에서는 1910년 3월 8일부터 11일까지 안 의사를 면회하던 상황을 기록했다. 이 편지에는 안 의사가 같은 해 2월 17일 빌렘 신부에게 전보를 보내 “사형선고 받음. 급히 오십시오”라고 요청한 사실, 빌렘 신부가 뤼순까지 가는 시간을 배려해 사형 집행 당국에서 사형 집행일을 본래 2월 26일에서 그해 성 금요일인 3월 25일로 연기한 사실도 적혀 있다. 안 의사는 3월 26일 순국했다. 편지를 보면, 빌렘 신부는 3월 8일 안 의사를 면회하기 위해 처음 대면할 때 “아, 가엾은 토마스, 자네를 여기서 만나다니!”라고 탄식했다. 같은 날짜 편지에는 안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의연하게 교수형 집행을 당하던 장면도 묘사돼 있다. 아직 정식 출판되지 않은 1910년 9월 28일자 편지를 통해서도 안중근 의사에게 성사 집전을 허락하지 않은 뮈텔 주교에 대한 빌렘 신부의 비난, 안 의사 가족들이 빌렘 신부에게 급히 뤼순으로 와달라고 간청했던 사실, 안 의사가 어머니의 말에 따라 1심 판결에 항소하기를 거부했던 강직함을 읽을 수 있다.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6면

대구대교구 생태환경위원회, 공사 강행 달성습지에서 생명평화미사 봉헌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을 맞아 대구대교구 생태환경위원회(위원장 임성호 베네딕토 신부)는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 빚은 자연습지인 대구 달성습지에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했다. 미사가 봉헌된 현장은 대구시가 문화관광 거점 조성을 목적으로 강정보 디아크(The ARC·4대강 사업 홍보 건축물)와 달성습지를 교량으로 연결하는 ‘디아크 문화관광 활성화사업’ 공사를 강행하는 곳이다. 달성습지 하류는 생태자연도 1등급지가 포함돼 있으며, 겨울이면 흰죽지, 흰비오리뿐 아니라 큰고니나 큰기러기 같은 멸종위기종 조류도 찾는 곳이다. 그러나 대구시는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교량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강정보로 인해 이곳은 매년 여름마다 녹조 독성물질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되고 있다. 임성호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흐르지 않는 강은 생명력을 잃게 되고, 강물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생명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며 “그 허물과 죄악의 시작은 인간의 교만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임 신부는 이어 “크고 단단한 콘크리트처럼 우뚝 서 있는 그 힘이 우리에게는 힘에 부치지만, 하느님께 강이 원래대로 잘 흘러갈 수 있도록, 인간의 개입이 줄어들 수 있도록 함께 바라고 기도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등 지역 시민·환경단체는 지속적으로 ‘수문 개방’을 요청하면서, 교량 건설도 반대가 아닌 ‘공사위치 조정’을 제안하고 있다. 금호대교 상류는 이미 개발된 영역이니 여기에 교량을 설치하고, 야생 영역인 달성습지는 보존하자는 취지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프란치스코) 사무처장은 “강은 우리가 마실 물을 생산하는 원천”이라며 “보를 막아놓으니 녹조가 발생하고, 강물과 농작물에서 녹조 독성물질이 검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6면

광주전남김대중재단, 평전 「대주교 윤공희」 헌정

“사제로 살아온 75년 동안 버림받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한 것 같아 축하받기보다는 스스로 반성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남은 하루하루도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살아가겠습니다.” 광주전남김대중재단은 3월 20일 광주 라마다충장호텔에서 이날 사제 서품 75주년을 맞은 전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빅토리노·100)의 평전 「대주교 윤공희」(김형수 지음/592쪽/3만5000원/대중의책방) 헌정식을 개최했다. 윤 대주교는 광주전남김대중재단 최경주 대표와 저자 김형수 작가에게서 평전을 헌정 받은 뒤 “말은 날아가고 글은 머물러 남는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살아온 날들도 글이 되어 남아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됐다”고 소감을 덧붙였다. 「대주교 윤공희」는 식민지와 전쟁, 분단과 독재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평화를 지켜온 윤 대주교의 생애를 60여 장의 사진과 함께 지면에 담았다. 특히 윤 대주교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을 보호하고 진실을 알렸으며, 전두환을 만나 사형 판결을 받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의 감형을 끌어냈다. 최경주 대표는 “이번 평전은 한국 현대사와 한국 교회사의 역사적 대기록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좌표를 제시해 준 책이다”라고 말했다. 김형수 작가는 “윤 대주교님의 성품에 2000년 가톨릭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느끼고 그것을 책에 녹여내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은 축사를 통해 “북한에서 태어난 윤 대주교님은 여러 사건을 통해 현재 우리 삶에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느끼셨기 때문에 그에 평생을 몸 바쳐 살아오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전했다. 헌정식에는 특히 전현직 광주대교구장 4명이 한자리에 모여 눈길을 끌었다. 이어진 축사에 나선 광주대교구장 옥현진(시몬) 대주교는 “윤 대교주님은 고(故) 지학순 주교님과 함께 생사를 넘어 월남했고, 북한군 포로수용소에서 사목했으며, 로마 유학 시절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도 참여했다”며 “윤 대주교님은 우리 곁에서 오늘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계시다”고 덧붙였다. 제9대 광주대교구장 김희중(히지노) 대주교는 헌정식 시작 기도에서 “윤 대주교는 70~80년대 우리나라가 독재적 억압의 어둠 속에서 절망할 때 생명의 존엄과 인간의 가치를 수호했다”며 “무엇보다도 1980년 5·18민주화운동 후의 한복판에서 시민들을 보호하며 진실을 알리고 정의와 평화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낸 주님의 착한 목자”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8대 광주대교구장 최창무(안드레아) 대주교는 건배 제의를 하며 “윤 대주교님은 항상 나에게 저 높이, 저 멀리 있는 등대이셨다”며 “늘 지금처럼 건강하게 지지 않는 별로 우리 교구에 남아 계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3면

원주교구, 설정 60주년 맞아 “하나 되는 교회” 다짐

원주교구는 3월 22일 배론성지 최양업 신부 기념 대성당에서 교구장 조규만(바실리오) 주교 주례로 교구 설정 6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지난 60년을 회고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60년에는 ‘하나 되는 교회, 기도하는 교회’가 될 것을 다짐했다. 이날 미사는 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 광주대교구장 옥현진(시몬) 대주교, 전 광주대교구장 최창무(안드레아) 대주교, 전 주네덜란드 교황대사 장인남(바오로) 대주교, 안동교구장 권혁주(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마산교구장 이성효(리노) 주교, 전 청주교구장 장봉훈(가브리엘) 주교 등 주교단과 원주교구 사제단이 공동집전했다. 미사에는 원주교구 각 본당 신자들과 지역 정관계 인사 등 1500여 명이 참례해 원주교구 60주년을 축하했다. 조규만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원주교구의 초석을 놓은 초대 교구장 고(故) 지학순(다니엘) 주교와 제2대 교구장 김지석(야고보) 주교의 사목활동을 돌아봤다. 조 주교는 “지학순 주교께서는 낙후된 원주교구 지역에 신용협동조합과 진광중고등학교, 원주가톨릭병원 등을 설립했을 뿐만 아니라 유신에 반대하며 민주주의 실현에 앞장섰고, 강물처럼 흐르는 정의를 원하는 애국자이기도 하셨다”고 말했다. 김지석 주교에 대해서는 “25년 가까이 이발소를 가지 않고 스스로 머리를 깎을 정도로 검소 그 자체이신 분”이라면서 “가난을 고스란히 견디면서도 기쁨을 잃지 않으셨다”고 청빈한 면모를 강조했다. 조 주교는 “원주교구는 작은 교구가 아니고, 하느님 앞에서는 크고 작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하나 되는 교회, 기도하는 교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동안 원주교구 발전을 위해 힘을 모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 공소 터와 성당 터를 기증해 주신 신자들의 헌신에 감사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미사 중에는 지학순 주교와 김지석 주교, 조규만 주교의 문장과 「강물처럼 바위처럼 천주교 원주교구 60주년 기념 화보집」이 봉정됐다. 「원주교구 60주년 기념 화보집」은 교구 문화영성연구소 소장 신우식(토마스) 신부가 편찬 책임을 맡았으며 모두 560쪽 분량에 역대 교구장 사목교서에 따른 사목활동, 교구의 영성을 표현하는 신앙 행사와 성지, 본당과 공소 사진 등을 수록했다. 원주교구 설립 초창기부터 교구 발전에 이바지한 정인재(스테파노) 씨는 조 주교로부터 유공자 공로패를 받았다. 염 추기경은 축사에서 “작은 것도 귀하게 여기시는 하느님께서 60년 전 농어촌, 탄광촌인 이곳에 원주교구를 설정하셨다”며 “새 60년을 향해 도약하는 원주교구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원주교구는 1965년 3월 22일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칙서 발표로 설정됐다. 교구 설정 당시 본당 13개, 신자 1만3390명, 사제 20명이었지만 현재는 본당 54개, 신자 8만1096명, 사제 129명으로 성장했다.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3면

청주교구, 장인남 대주교 퇴임 감사미사 봉헌

“여러분 사랑합니다~” 3월 20일 청주 내덕동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된 자신의 퇴임 감사미사에서 장인남(바오로) 대주교는 청주교구 사제와 신자들에게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뒀던 말을 전했다. 1976년 청주교구에서 사제품을 받고 1985년부터 교황청 외교관으로 전 세계에서 활동하다 4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장 대주교는 “이제는 청주에 터를 잡고 여러분들과 더 자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에는 사제와 신자 750여 명이 참례해 자리를 빛냈다. 청주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김경환 회장(가브리엘)은 축사를 통해 “장인남 대주교님은 한국교회가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셨고, 현장에서 이를 묵묵히 실천하셨던 분이셨다”며 “이제 교황대사라는 소임은 마치셨지만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건강하시고 교우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시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청주교구장 김종강(시몬) 주교는 “그동안 기쁘게 헌신하신 대주교님의 삶에 좋으신 주님의 축복을 기도하며 교구민 모두를 대표해서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올린다”며 “이제 청주교구라는 또 다른 정원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동료 사제들과 어울리며 못다 한 교구에서의 젊은 사제로, 건강하고 형제애를 나누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장 대주교는 “주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사랑으로 저를 교회의 일꾼으로 불러주셨고 죄인인 저를 교회 사제로, 또 주교로 불러주셨다”며 “주님은 놀라운 일을 하시는 분이시기에 제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말했다. 이어 “주님 부르실 때 ‘제가 여기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며 “청주교구민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전했다. 1949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장 대주교는 1976년 사제품을 받았다. 교현동본당 보좌로 사목한 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차장을 거쳐 1985년부터 1994년까지 엘살바도르와 에티오피아, 시리아 교황 대사관 서기관으로 활동했다. 1994년부터는 프랑스와 그리스, 벨기에 교황 대사관 참사관으로, 2002년부터 방글라데시와 우간다,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네덜란드 교황대사로 활동하다 지난 2월 13일 퇴임했다.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3면

사순 시기 하루도 빠짐없이 십자가의 길 기도

“아침밥을 먹으면 하루가 든든한 것처럼, 사순 시기에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리면 1년 신앙생활이 참 든든합니다.” 사순 2주를 보내고 있는 3월 21일 오후 1시, 대전교구 당진본당(주임 김경식 미카엘 신부) 삼봉공소에서는 십자가의 길을 함께하는 기도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순 시기면 어느 본당에서나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지만 삼봉공소의 기도는 조금 특별하다. 1995년부터 30년 동안 사순 시기면 하루도 빠짐없이 공소에서 십자가의 길을 바쳤기 때문이다. 많을 때는 몇십 명, 적게는 1명이라도 꼭 공소에서 기도를 했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함께하게 된 계기는 어렵고 힘들어하는 신자에게 힘을 모아주기 위해서 였다고 한기섭(요셉) 공소회장은 회고했다. “공소 신자 중에 젊은 새댁이 있었는데 오랫동안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서 항상 열심히 기도를 했어요. 마침 사순 시기가 돌아와서 신자들이 함께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해보자는 말이 나왔죠. 예수님의 고통을 묵상하며 함께 기도하는 시간 동안 그 새댁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주고 싶었어요. 신기하게도 기도를 시작한 그해에 아이가 들어서서 벌써 서른 살이 됐답니다.” 기도 때문에 아이가 생긴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함께한 기도는 삼봉공소 신자들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계기가 됐다. 예수님이 고통과 죽음을 이겨내고 부활하셨듯이, 각자의 삶에서 찾아오는 어려움을 기도를 통해 견뎌낸다면 밝은 빛을 맞이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 잡은 것이다. 이날 십자가의 길 기도에는 9명이 모였다. 가족처럼 지내는 사이이다 보니 한 회장은 가는 길에 마주친 신자에게 “십자가의 길 하러 가야지”라며 함께 차를 타고 공소로 향했다. 멀게는 차로 20~30분 걸리는 곳에 사는 신자를 위해 레지오 단장 김성신(마리아) 씨는 매일 자신의 차로 신자들을 태워와 함께 기도하고 돌아간다. 멀리서 어렵게 모인 신자들이 바치는 기도 시간은 20분가량. 짧은 시간이지만 기도를 마치고 공소를 나오는 신자들의 표정에서는 마음 가득히 기도를 했다는 든든함이 묻어났다. 이미라(엘리사벳) 씨는 “우연한 계기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함께하는 전통이 생겼지만, 매년 기도를 하면서 마음이 편하고 뿌듯해진 덕분에 우리 공소 신자들의 신앙이 더욱 깊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병숙(마리아) 씨도 “하루에 20분, 어떻게 보면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가 한마음으로 기도를 한다는 돈독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다”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고 나면 밥을 먹은 것처럼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5면

안동교구, 깔래 신부 서한 68통 전달 받아

병인박해(1866~1871) 당시 조선에서 사목한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 깔래 신부(Nicolas adolphe Calais, 1833~1884)의 친필 서한 68통이 후손들에 의해 안동교구에 전해졌다. 이로써 교구는 지난해 한국을 찾은 후손들이 기증했던 서한 2통을 합쳐 깔래 신부가 고향에 보낸 편지 70통 전체를 소장하게 됐다. 안동교구 마원성지 담당 정도영(베드로) 신부는 지난 2월 프랑스에서 깔래 신부의 형 도미니크 씨의 외증손인 앙드레 투브낭 씨로부터 깔래 신부의 서한 68통을 기증받았다. 이 편지들은 깔래 신부가 1865년 프랑스 낭시교구 대신학생 시절부터 선종 직전까지 작성한 것이다. 당시 조선의 종교 박해상과 함께 선교사들과 선조 신앙인들의 순교 정신을 고스란히 담은 중요한 자료다. 정 신부는 “편지를 통해 깔래 신부의 생애 전반을 돌아볼 수 있으며, 특히 한국에서 선교했던 사제들의 영성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편지를 모두 한국어로 번역해 서한집을 출간하고, 교구 역사관과 마원성지에 설립하게 될 기념관에도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깔래 신부는 병인박해 당시 안동교구 제2 주보인 박상근(마티아, 1837~1867) 복자와 신분·국적을 초월한 영성으로 깊은 우정을 나눴다. 지난해 5월 29일 깔래 신부의 후손들이 안동교구 마원성지를 찾아 ‘복자 박상근 마티아 순교자 기념미사’에 참례하고 깔래 신부의 서한과 유품을 교구에 전달한 바 있다.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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