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상식 팩트 체크] 스카풀라는 원래 옷이다?

스카풀라를 아시나요? 성물방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데요. 보통 성모님 그림이나 글귀가 적힌 두 개의 작은 천이 긴 끈으로 연결된 형태의 물건입니다. 스카풀라는 생김새 때문에 ‘목걸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실 스카풀라는 목걸이가 아니라 옷입니다. 수녀님들이나 수사님들이 꼭 앞치마 비슷하게 몸 앞뒤로 길게 걸쳐 입고 있는 옷을 보신 적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옷이 바로 스카풀라입니다. 스카풀라(scapula)는 라틴어로 ‘어깨’라는 뜻입니다. 어깨너비의 천을 몸 앞뒤로 길게 늘어뜨려 입는 소매 없는 겉옷이기에 이런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스카풀라는 초기에는 수도자들이 일할 때 수도복 위에 걸쳐 입는 옷이었는데요. 점차 어깨에 지는 십자가와 멍에를 상징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각 수도회의 영성을 따르고자 하는 평신도들도 13세기경부터 스카풀라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16세기부터 점차 간소화되고 작아지면서 오늘날 우리가 착용하는 스카풀라의 모습이 됐습니다. 특별히 스카풀라 하면 ‘성모님’이 떠오릅니다. 성물방에서 파는 스카풀라들도 성모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곤 하지요. 스카풀라와 성모신심이 깊은 연관을 지니게 된 것은 1251년 가르멜수도회 성 시몬 스톡 신부님께 성모님이 발현하시면서부터입니다. 성모님은 스톡 신부님께 갈색 스카풀라를 보여 주면서 “이 스카풀라를 죽는 순간까지 착용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특권을 누릴 것이며, 그가 죽은 후 첫 번째 토요일에 성모 마리아의 도움을 받아 천국에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스톡 신부님께 나타난 성모님만 스카풀라를 언급하셨던 것은 아닙니다. 1917년 10월 13일 포르투갈 파티마에 나타난 성모님은 묵주와 함께 스카풀라를 들고 계셨다고 합니다. 파티마 성모님을 목격한 가경자 루치아 산토스 수녀님은 이것이 “모든 사람이 스카풀라를 착용하도록 하려는 까닭”이라면서 “스카풀라는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대한 봉헌의 표시이며 스카풀라와 묵주는 분리될 수 없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보통 스카풀라라고 하면 갈색을 떠올립니다. 수도복에서 온 것이니 갈색이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녹색 스카풀라도 있습니다. 1840년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쥐스틴 비스케뷔뤼(Justine Bisqueyburu) 수녀님에게 나타난 성모님은 녹색 스카풀라를 보급할 것을 당부하셨다고 합니다. 성모님은 “믿음을 지니고 (녹색) 스카풀라를 착용하고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신앙이 없는 이들과 냉담한 이들을 회개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카풀라는 언제까지나 옷일 뿐입니다. 스카풀라가 아니라 스카풀라를 착용한 사람의 신앙생활이 더 중요하겠지요. 가르멜 수도회 윤주현(베네딕토) 신부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착용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 부적처럼 여긴다면 왜곡된 신심에 빠질 수 있다”면서 “성모님의 마음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삶을 스카풀라를 통해 늘 상기시키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024-04-21

[교회 상식 팩트 체크] (15) 부활삼종기도는 원래 성모찬송이다?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1년 중 50일 동안 바치는 기도가 있지요. 바로 부활의 기쁨을 가득 담은, 마치 노래와도 같은 기도, 부활삼종기도입니다. 부활삼종기도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는 말씀처럼, 부활의 기쁨과 즐거움이 담겨 있기에, 예전에는 희락삼종경(喜樂三鐘經)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삼종기도는 무릎을 꿇고 바치는 기도지만, 기쁨을 드러내는 이 기도는 늘 일어서서 바쳐야 합니다. 아무래도 삼종기도(안젤루스) 대신 바치다보니 부활삼종기도는 삼종기도 중 하나라 여기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부활삼종기도는 교회의 오랜 역사 안에서 기도해온 성모찬송 중 하나입니다. 찬송은 라틴어 안티포나(Antiphona)를 번역한 말입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느님을 찬미하는 교회의 공적기도인 시간전례, 즉 성무일도 중 시편과 찬가 전후에 바치는 짧은 노래 선율과 그 기도문을 말합니다. 중세의 수도자들은 성무일도의 끝기도를 바친 후에 성모님을 위해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이것이 성모찬송이 됐습니다. 오늘날 「성무일도」 책에는 5가지의 성모찬송이 실려 있습니다. 끝기도 후에는 성모찬송 중에서 선택해서 바칠 수 있는데요. 주로 전례시기에 따라 성모찬송을 바치게 됩니다. 대림·성탄 시기에는 ‘알마 레템토리스 마테르’(Alma Redemptoris Mater)를, 성탄 이후부터 재의 수요일까지는 ‘아베 레지나 첼로룸’(Ave Regina Caelorum)을, 부활 시기에는 ‘레지나 첼리’(Regina Caeli)를, 연중시기에는 ‘살베 레지나’(Salve Regina)를 바칩니다. 그리고 ‘숩 투움’(Sub Tuum)을 바칠 수도 있습니다. 성모찬송은 「성무일도」에만 실려 있는 기도는 아닙니다. 한국교회 공인 기도서인 「가톨릭 기도서」에도 여러 성모찬송이 실려 있습니다. 특별히 ‘살베 레지나’는 신자들에게 성모찬송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기도인데요. 많은 신자분들이 묵주기도의 마지막에 바치는 성모찬송이며, 「가톨릭 기도서」에도 ‘성월 기도’ 중 ‘묵주기도 성월’에 분류돼 있습니다. 그리고 ‘숩 투움’(Sub Tuum)은 ‘일을 마치고 바치는 기도’(성모님께 보호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성무일도」에는 1971년에 추가된 성모찬송이지만, 실은 이미 3~4세기경부터 신자들이 바쳐온, 오래된 기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활삼종기도’로 바치는 성모찬송이 ‘레지나 첼리’입니다. 레지나 첼리는 10~11세기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1742년 베네딕토 14세 교황님이 부활 시기 동안에는 삼종기도 대신 레지나 첼리를 바치자고 정하면서 ‘부활삼종기도’가 됐습니다. 교황청 경신성사부는 「대중 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원칙과 지침」을 통해 “(부활삼종기도는) 말씀의 강생 신비와 파스카 사건을 적절하게 결합시키고 있다”면서 “교회 공동체는 성자의 부활을 기념해 이 기도를 성모님께 바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2024-04-14

[교회 상식 팩트 체크] (14) 묵주로 바치는 또 다른 기도가 있다?

성당에 가면 묵주를 들고 기도하시는 분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묵주알을 넘기는 속도가 남다르신 분들을 볼 수 있는데요. 성모송을 아무리 빠르게 외워도 그렇게 빨리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기도를 하시는 걸까요? 어쩌면 그분은 묵주기도가 아니라 ‘하느님 자비를 구하는 기도(이하 자비의 기도)’를 바치고 계시는 걸지도 모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0년 성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M. Faustyna Kowalska, 1905~1938) 수녀님을 시성하면서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선포하셨는데요. 파우스티나 수녀님의 환시 속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하느님의 자비에 관해 가르치셨고, 또 이 신심을 널리 퍼뜨릴 것을 당부하면서 자비의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물론 묵주는 전통적으로 묵주기도(로사리오기도)를 바치는 도구입니다. 파우스티나 성녀도 묵주기도를 많이 바치셨고요. 자비의 기도는 묵주기도와는 다른 기도입니다만, 하느님께 자비를 구하고자 한다면 묵주를 사용해서 자비의 기도도 바칠 수 있습니다. 자비의 기도를 바칠 때는 성호경으로 기도를 시작하고 먼저 주님의 기도, 성모송, 사도신경 1번씩 바칩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에 해당하는 1개의 묵주알에서 “영원하신 아버지, 저희가 지은 죄와 온 세상의 죄를 보속하는 마음으로, 사랑하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을 바치나이다”라고, ‘성모송’에 해당하는 10개의 묵주알에서 각각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묵주기도처럼 1개와 10개의 묵주알이 넘어가면 1단이 됩니다. 자비의 기도는 모두 5단을 바치게 되는데요. 5단을 마친 후에는 “거룩하신 하느님, 거룩하신 용사님, 거룩하신 불사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를 3번, “오, 예수 성심, 저희를 위하여 피와 물을 흘리신 자비의 샘이신 주님, 저는 주님께 의탁하나이다”를 1번 바치고 기도를 마무리하면 됩니다. 주교회의는 2022년 춘계 정기총회에서 ‘하느님 자비를 구하는 기도’의 통일된 변역문을 승인했습니다. 예수님은 파우스티나 수녀님을 통해서 “마음이 완고한 죄인이라도 이 기도를 한 번만 바치면 그는 나의 무한한 자비로부터 은총을 받을 것”이라면서 “나는 온 세상이 나의 무한한 자비를 알게 되기를 갈망한다”고 전하셨습니다. 특별히 자비의 기도를 바친 사람이 임종할 때, 또 임종하는 영혼을 위해 기도해 줄 때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자비의 기도는 특별히 오후 3시에 바치면 좋은 기도입니다. 오후 3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 수녀님에게 “오후 3시에 나의 자비 속으로 잠겨들라”고 명하시면서 “이 순간에 나의 자비는 모든 영혼들을 위해서 넓게 열려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하느님 자비 신심을 전하는 천주교사도직회(팔로티회) 한국지부장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는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 수녀님을 통해서 자비의 기도를 널리 전하라 가르치시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약속을 해주셨다”며 자비의 기도의 중요성을 설명하셨습니다.

2024-04-07

[교회 상식 팩트 체크] (13) 부활 ‘전야’ 미사는 없다?

전례주년의 절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주님 부활 대축일이 왔습니다. 우리는 주일이 되기 전날 어두운 밤, 미사를 통해 부활초에 불을 밝히는데요. 바로 파스카 성야 미사입니다. 부활 전날 밤에 드리는 미사다보니, 많은 분들이 이 미사를 ‘부활 전야 미사’라고 부르시곤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미사, 부활 전야 미사가 아닙니다. 전야(前夜)라고 하면 전날 밤인데, 어째서 전날 밤에 드리는 파스카 성야 미사가 어째서 ‘전야’ 미사가 아닌 것일까요? 그렇다면 일단 파스카 성야 미사가 어떤 미사인지를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파스카 성야 미사는 크게 4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먼저 제1부 빛의 예식이 있습니다. 이어 제2부 말씀 전례가 거행되는데, 독서를 무려 9번이나 합니다. 사목적 이유가 있으면 구약 독서를 줄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어느 미사보다 독서 개수가 가장 많습니다. 제3부는 세례 전례입니다. 영세자가 없더라도 세례 서약 갱신 예식을 하지요. 그런 후에야 성찬 전례가 거행되는 장엄하고 성대한 예식입니다. 예식이 많다 보니 미사 시간이 참 깁니다. 왜 이렇게 길까요? 그 이유는 파스카 성야 미사가 원래 주님 부활 대축일 전날 밤부터 시작해서 주일 동틀 무렵까지 이어지는 미사였기 때문입니다. 어둠을 물리치고 빛으로 오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맞이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다 보니 파스카 성야 미사는 “모든 밤샘 전례의 어머니”라고도 불리고요. 무엇보다 교회는 파스카 성야 미사를 “모든 장엄한 예식 가운데 가장 드높고 존귀하다”고 말합니다.(「로마 미사 경본」 파스카 성야 2항 참조) 이쯤 설명하면 눈치를 채신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실은 파스카 성야 미사가 곧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입니다. 밤샘 전례를 하던 시절에는 주님 부활 대축일인 주일에는 전례를 따로 거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축일 미사를 대축일 ‘전야’ 미사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주님 성탄 대축일을 생각해 보면 또 궁금증이 생깁니다. 성탄 전례에는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인 ‘밤 미사’도 있고, 또 ‘전야 미사’도 있는데, 부활 전례에는 없는 걸까요? 이는 우리가 ‘부활’만을 따로 떼어 기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탄은 예수님의 탄생만을 기념하지만, 우리는 파스카 성삼일이라는 연결된 전례를 통해서 “주님의 복된 수난과 함께 이 부활 축제를 가장 장엄하게 지내고” 있습니다.(「전례헌장」 102항) 파스카 성야 미사는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일의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라는 또 다른 전례로 부활 축제를 이어갑니다. 그러다 보니 “성야 미사를 드렸다면, 낮 미사는 참례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요?”라는 질문도 있는데요. 이 답은 어느 신부님의 말씀을 빌리고 싶습니다. “파스카 성야 미사를 드리면 좋은 일이고, 낮 미사도 드리면 더 좋은 일입니다.” 좋은 일과 더 좋은 일 중 선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2024-03-31

[교회상식 팩트체크] (12) 성지는 무슨 나무일까?

주님 수난 성지 주일하면 빠질 수 없는 예식이 있습니다. 바로 성지(聖枝) 예식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당시 유다인들이 나뭇가지를 들고 환호하던 모습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이 예식은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의 전통입니다. 신자들은 4세기 무렵부터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맞던 유다인들처럼 나뭇가지를 들고 행렬하는 예식을 했다고 합니다. 사제가 이 나뭇가지를 축복하면, 우리는 이 나뭇가지를 ‘성지’라고 부르면서 한 해 동안 자기 집의 십자가 근처에 두고 지냅니다. 이를 통해 우리 구세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이지요. 또 이 성지를 다음 사순 시기 전에 수거해, 불에 태워서 ‘재의 수요일’에 사용할 재를 만듭니다. 흔히 ‘성지가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성지의 ‘지(枝)’가 ‘가지’을 의미하는 한자라서 ‘성지가지’는 동어반복으로 잘못된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이 성지는 무슨 나무로 만들까요? 아무래도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 당시를 기념하는 만큼, 유다인들이 사용한 나뭇가지를 사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나뭇가지인지는 성경에 기록돼 있는데요. 요한복음 사가는 유다인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갔다”고 전합니다.(요한 12, 13) 종려나무는 성경에 ‘야자나무’, ‘대추야자나무’라고도 등장합니다. ‘팔마(palma)나무’라고도 하지요. 종려나무는 키가 크고 줄기가 곧은 상록수입니다. 게다가 척박한 이스라엘의 광야에서도 잘 자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소중한 과실나무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예로부터 머리, 곧 수장, 임금을 나타내고, 의인을 상징하는 나무였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초막절에 종려나무 가지를 썼고(즈카 14, 16), 솔로몬이 성전에 종려나무를 새겼다(1열왕 6, 29)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종려나무는 임금이신 하느님을 나타내는 나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성수를 뿌려 축복한 성지는 영원한 생명과 승리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종려나무가 자라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종려나무와 마찬가지로 상록수 중 하나인 편백나무를 성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편백나무도 따듯한 지역에서 자라기 때문에 성지로 사용하는 편백나무의 가지들도 대부분 남부지방, 특히 제주도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제주교구에서는 10여 개 본당 신자들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앞두고 전국 각지에 나뭇가지를 보낼 준비로 구슬땀을 흘린다고 합니다. 나뭇가지 숫자만 100만 개 이상이라고 합니다. 판매기금은 각 본당의 복음화 사업에 사용됩니다. 제주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오충윤(야고보) 위원장님은 “우리나라에서 선교하던 에밀 타케 신부님도 식물을 판매한 돈으로 선교에 활용하셨는데, 지금도 식물을 팔아 복음화 사업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아! 혹시 성지 예식을 위해 나무들이 희생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가지치기를 해야 할 편백나무에서 가지를 치면서 나오는 나뭇가지들을 활용하기 때문에, 생태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하네요.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2024-03-24

[교회 상식 팩트 체크] (11) 성유는 어떻게 만들까?

수원교구 성유 축성 미사 중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가 축성 성유에 발삼을 섞고 있다. 축성 성유에 향료를 섞는 것은 기름 바를 때에 성령의 현존을 암시한다는 의미가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세례성사 혹은 견진성사를 거행하는 모습을 기억하는 분이라면 이마와 목에 기름을 바르는 예식을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바로 거룩한 기름, 성유를 바르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성사 중에 신부님이 세례수를 축복하는 모습은 봤지만, 성유를 축성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습니다. 성유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성사 중에 성유를 바르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점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히브리어로 메시아라고 부르는 이 말은 하느님의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이’를 뜻하는 말입니다. 기름 부음의 중요성 때문에 성령과 기름 부음이 동의어로 쓰일 정도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죽음을 이긴 당신 인성 안에 충만히 ‘그리스도’로 세워지신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넘치게 부어 주시어, 그들이 하느님 아들의 인성과 결합하여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에페 4,13) 하신다”고 가르칩니다.(695항) 성유에는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바로 ‘예비 신자 성유’, ‘병자 성유’ 그리고 크리스마 성유라고도 부르는 ‘축성 성유’입니다. 세례수를 만들려면 물이 있어야 하듯, 성유를 만들려면 기름이 있어야겠죠? 성유의 재료는 주로 올리브기름입니다. 올리브기름은 예수님께서 살던 이스라엘을 비롯한 지중해 연안에서 많이 사용한 기름입니다. 올리브기름을 구할 수 없다면 다른 식물에서 짜낸 기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기름은 풍요와 기쁨의 표징이었습니다. 기름은 정화와 치유를, 그리고 아름다움과 건강, 힘을 주는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성사 안에서도 이런 의미들을 찾을 수 있는데요. 세례 전에 예비 신자에게 ‘예비 신자 성유’를 바르는 의식은 정화와 강화를 뜻하고, 병자성사 때 바르는 ‘병자 성유’는 치유와 위안을 의미합니다. ‘예비 신자 성유’와 ‘병자 성유’는 순수하게 기름만을 사용하는 반면,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품성사 때 사용하는 축성 성유는 기름에 발삼을 섞어 만듭니다. 발삼은 침엽수에서 분비되는 끈적한 액체로 만드는 향료의 일종입니다. 이렇게 축성 성유에 향료를 섞는 것은 기름 바를 때에 성령의 현존을 암시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축성 성유를 바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과 그분이 가득히 지니신 성령의 충만에 더 깊이 참여함으로써, 삶 전체에서 “그리스도의 향기”(2코린 2,15)를 풍기게 해줍니다. 재료가 준비됐다면 축성을 해야겠죠? 성유는 보통 1년 중 한 번, 성 목요일 아침에 거행되는 ‘성유 축성 미사’에서 주교님이 축성합니다. 한 교구에서 1년 동안 사용할 성유를 이 자리에서 한 번에 축성하는 것이죠. 이날 미사가 끝나면 신부님들은 기름을 나눠 받아 각자 본당에서 사용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성유는 주교님만 축성할 수 있는데요. 다만 미리 준비할 수 있는 다른 성사와는 달리 위급하게 앓고 있는 신자를 위한 병자성사를 위해 필요하다면 어느 신부님이든지 병자 성유를 축성할 수 있습니다.(교회법 제999조 2항 참조)

2024-03-17

[교회 상식 팩트 체크] (10) 신부님도 가끔 ‘핑크’를 입는다?

2019년 모로코 사목방문 당시 장미색 제의를 입고 사순 제4주일 미사를 집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 신부님하면 어떤 색이 떠오르시나요? 평소에는 수단의 검은색이 떠오르고 미사 중에는 전례시기에 따른 여러 색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핑크’를 입을 때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전례에서 색깔은 전례의 의미를 한눈에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제는 전례에 따라서 다른 색깔의 전례복을 착용해서 신자들에게 그날 전례의 의미를 알려주고, 전례에 더 깊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은 “거룩한 옷에 여러 가지 색깔을 쓰는 것은 거행하는 신앙의 신비의 특성과 전례주년에 따라 진행되는 그리스도교 삶의 의미를 겉으로도 더욱 효과 있게 드러내려는 것”이라고 그 의미를 설명합니다.(345항) 전례복의 색깔을 활용한 것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12세기 인노첸시오 3세 교황님은 전례 축일과 각 시기에 따라 전례복의 색상을 사용하도록 규정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전례 안에서 활용했습니다. 이후 비오 5세 교황님이 이 규정을 「로마 미사 경본」에 반영했습니다. 교회는 오랜 전통에 따라 각각 전례를 나타내는 색깔을 지정하고 있습니다. 먼저 흰색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와 부활한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하면서 영광, 결백, 기쁨을 드러냅니다. 주로 부활·성탄 시기나 주님과 성모님, 성인들의 축일에 사용합니다. 뜨거운 사랑과 피와 불을 상징하는 빨간색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성령 강림 대축일, 주님의 수난 행사, 순교자들의 축일 등에 사용합니다. 초록색은 신자들의 생활과 소망을 의미하며, 연중 주일과 연중 평일에 쓰입니다. 보라색은 죄에 대한 뉘우침과 속죄, 그리고 고행과 금식을 나타냅니다. 사순·대림 시기나 위령미사에 사용합니다. 이 밖에도 성대한 전례 중에는 황금색을, 장례·위령미사 때는 검은색을 쓰기도 합니다. 또 각 주교회의가 사도좌에 제안해 각 지역교회에 필요한 전례색을 쓰기도 하는데요. 한국 교구들에서는 특별히 성대하고 기쁜 전례 예식 때는 황금색을, 죽은 이를 위한 미사와 시간 전례에서는 흰색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1년에 딱 2번 입을 수 있는 색이 있습니다. 바로 장미색이라고도 부르는 분홍색입니다. 장미색 제의는 오늘 사순 제4주일과 대림 제3주일에 입습니다. 이날들은 장미색 제의를 입는 주일이라 해서, ‘장미주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두 주일은 각각 즐거워하여라 주일(Gaudate, 사순 제4주일), 기뻐하여라 주일(Laetare, 대림 제3주일)이라고 부릅니다. 각각 그날 주일미사 입당송의 첫 단어에서 따온 말입니다. 사순과 대림은 각각 참회와 절제를 통해 부활과 성탄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만, 곧 다가올 부활과 성탄을 희망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반드시 장미색 제의를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장미색 제의를 사용하지 않는 본당도 있습니다. 혹시 오늘 ‘핑크’ 옷을 입은 신부님을 보지 못하더라도, 장미주일의 의미를 기억하면서 다가오는 예수님의 부활을 장밋빛처럼 환한 마음으로 기다리면 어떨까 합니다.

2024-03-10

[교회 상식 팩트 체크] (9) 주님 부활 대축일은 양력일까? 음력일까?

바티칸 시스티나경당의 프레스코화 ‘325년의 니케아공의회’. 「거룩한 부활절에 대한 거룩한 니케아공의회 교령」을 통해 춘분 뒤 보름달 다음 주일에 주님 부활 대축일을 지낼 수 있도록 정해졌다. 주님 성탄 대축일은 12월 25일입니다. 그럼 주님 부활 대축일은 몇 월 며칠일까요? 대충 4월쯤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날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올해 주님 부활 대축일은 3월 31일입니다. 그런데 지난해는 4월 9일이었고, 지지난해는 4월 17일이었습니다. 설·추석을 음력으로 쇠는 우리로서는 양력 날짜가 들쑥날쑥한 것이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어쩐지 음력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주님 부활 대축일의 음력 날짜를 보니 올해는 2월 22일, 지난해는 2월 19일, 지지난해는 3월 17일입니다. 양력도 음력도 딱 들어맞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주님 부활 대축일은 어떻게 정할까요? 주님 부활 대축일은 춘분 뒤 보름달이 뜬 후에 오는 주일로 정합니다. 춘분은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입니다. 태양이 기준이다 보니, 보통 양력으로 세는 날이지요. 양력으로 평년에는 3월 21일이, 윤년에는 3월 20일이 춘분입니다. 그런데 ‘보름달이 뜨는 날’은 음력 15일입니다. 그리고 다시 ‘주일’은 양력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주님 부활 대축일은 양력과 음력을 모두 사용해서 정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이런 복잡한 계산법이 나왔을까요? 주님 부활 대축일은 그리스도인 예수님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한 날, 곧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구약의 파스카 축제와 연결되는 날이다 보니 초기 유다인 신자들은 유다력으로 파스카 축제일인 니산(nisan)달 14일에 성찬례를 지내며 주님 부활 대축일을 기념했습니다. 유다력은 우리 음력처럼 달의 삭망을 기준으로 하는 역법입니다. 그러면서도 춘분이 있는 달을 한 해의 첫 달인 ‘니산’달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지역의 신자들은 유다력의 파스카 축제일이 아니라 그 다음에 오는 주일에 주님 부활 대축일을 기념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 다음날, 바로 주간 첫날인 ‘주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당시 유럽에서 사용하던 율리우스력과 유다력, 이집트 지역 등이 정한 춘분 날짜가 달라 각 지역마다 주님 부활 대축일 날짜가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같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어느 곳에서는 단식과 참회를 하고, 어느 곳에서는 부활 축제를 벌이는 웃지 못할 풍경이 벌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325년 니케아공의회 교부들은 「거룩한 부활절에 대한 거룩한 니케아공의회 교령」을 통해 춘분 후 보름달 다음 주일에 온 교회가 함께 주님 부활 대축일을 지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주님 부활 대축일의 일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16세기 기존 율리우스력의 오차를 수정·보완한 그레고리오력이 도입됐지만, 동방 정교회는 기존 율리우스력을 따르면서 ‘춘분’ 날짜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동방정교회의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는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양측 대표가 주님 부활 대축일 날짜를 통일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며 “주님 부활 대축일 통일은 2025년 희년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2025년은 니케아공의회 1700주년이라 주님 부활 대축일의 통일이 더 기대됩니다.

2024-03-03

[교회 상식 팩트 체크] (8) 우리나라에는 성지가 없다?

이스라엘 주님 눈물 성당. 성지(聖地)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 생활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한 땅인 팔레스티나를 가리키는 용어’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겨울의 추운 기운이 물러나고 봄이 다가오면서 많은 분들이 성지순례를 다녀오셨거나 계획하고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사순 시기인 요즘은 성지순례 중 십자가의 길을 바치기 참 좋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은 우리나라에는 성지(聖地)가 없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주교회의 순교자현양과 성지순례사목 위원회가 펴낸 「한국 천주교 성지 순례」에는 전국 곳곳의 성지가 167곳이나 있습니다. 또 이 책에는 모두 실리지 않았지만, 각 교구에서 성지로 부르는 곳들도 더 있습니다. 그런데 “성지가 없다”니 이상하게만 들립니다. 먼저 성지(聖地, terra sancta, holy land)라는 말의 의미를 찾아봐야겠습니다. 「한국 가톨릭 대사전」은 성지를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 생활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한 땅인 팔레스티나를 가리키는 용어’라고 정의합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우리나라에 오신 적이 없으니 우리나라에 성지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성지’라고 부르는 곳들은 어떤 곳들일까요.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순교자들이 순교한 곳, 순교지를 ‘치명 터’라 불러왔습니다. 순교지를 성지라고 부르게 된 것은 1956년 세웠던 새남터 순교 기념탑이 계기가 됐습니다. 새남터 순교 기념탑에는 순교지인 새남터를 성지(聖址), 바로 ‘거룩한 터’라고 표기했습니다. 거룩한 땅이라는 의미의 성지(聖地)와도 구분되면서 ‘치명 터’의 의미도 담은 용어였습니다. 그래서 전국 각지에서도 성지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이지요. 보편교회에서도 예수님의 삶과 수난을 상기시키는 장소, 성인들의 순교지나 묘소, 성모발현지 등을 거룩한 장소(loci sancti, holy place)라고 성지(聖地)와 구분해 불러왔습니다. 우리말로는 발자취, 자리, 터라는 뜻의 지(趾)를 사용해, 성지(聖趾) 혹은 성역(聖域)이라고 표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글의 전용화로 성지를 한글로만 표기하면서 거룩한 땅을 뜻하는 성지(聖地)와 치명 터를 일컫는 성지(聖址)를 혼용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순교지가 아닌 곳들도 성지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성지’라고 부르는 곳들은 교회법적으로 ‘순례지’(Sanctuariis)에 해당합니다. 교회는 신심 때문에 빈번히 순례하는 성당이나 그 밖의 거룩한 장소를 교구 직권자의 승인을 통해 순례지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교회법 제1230조) 국가 순례지의 경우 주교회의가, 국제 순례지의 경우 교황청이 승인하게 됩니다. 주교회의 순교자현양과 성지순례사목 위원회는 우리나라의 성지를 크게 3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성인·복자·하느님의 종이 순교한 곳이나 무덤이 있는 곳 중 지속적으로 전례가 이뤄지는 곳은 ‘성지’(聖趾), 국내 순교자들과 연관 있는 장소들은 ‘순교사적지’, 순교자들과 관련이 없지만 신앙선조들의 삶과 영성이 담긴 곳, 또는 교구 직권자가 순례지로 지정한 곳은 ‘순례지’입니다. 그냥 떠나는 성지순례도 좋지만, 내가 가는 곳이 어떤 의미를 지닌 성지인지 알아보고 순례한다면 성지순례에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2024-02-25

[교회 상식 팩트 체크] (7) 사순 시기는 40일이 아니다?

모레토 다 브레시아 ‘광야에서의 그리스도’.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가 왔습니다. 사순(四旬)은 40일이라는 뜻입니다. 라틴어로도 40을 의미하는 ‘콰드라제시마’(Quadragesima)라고 부릅니다. 워낙 40이라는 말로 부르다 보니 당연하게도 사순 시기가 40일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달력의 일수를 세어보시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들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일단 사순 시기가 며칠인지 알고 싶으면 정확히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순 시기가 주님 부활 대축일 전이라고 생각해서 부활 전날까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사순 시기는 파스카 성삼일을 준비하는 때입니다. 성목요일 주님 만찬 저녁 미사부터 주님 부활 대축일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떼어 놓지 않고 함께 기념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재의 수요일부터 성목요일 주님 만찬 저녁 미사까지를 세어보면 되겠습니다. 올해는 2월 14일부터 3월 28일까지가 되겠네요. 세어보니 44일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순 시기가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325년 열린 니케아공의회 즈음에는 부활 전에 40일 동안 준비기간을 지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사순 시기라는 말이 나온 것이지요. 성경에는 40이라는 숫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노아의 홍수 기간은 40일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기까지 걸린 기간이 40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전에 40일 동안 단식했고, 엘리야는 하느님의 산 호렙을 향하기 위해 40일을 밤낮으로 걸었습니다. 이렇듯 성경에서 40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거치는 정화의 기간을 상징합니다. 무엇보다 40일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단식하고 유혹을 당하신 일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예수님께서 이 40일의 단식 동안 겪으신 유혹을 설명하면서 “교회는 해마다 40일간의 사순 시기를 통해 광야의 예수님 신비와 결합한다”고 밝힙니다. 성삼일부터 40일을 거슬러 올라가면, 딱 사순 제1주일이 됩니다. 그런데 왜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 시기를 지내게 된 것일까요? 5~6세기경 신자들은 사순 시기에 ‘단식’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은 기쁨의 날이라 단식하면 안 됐습니다. 사순 시기 중 6일은 단식할 수 없는 날인 것인데, 신자들은 예수님처럼 40일 동안 단식하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사순 제1주일 전 수요일, 지금의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 시기를 위한 단식을 시작하는 관습이 생겼고, 이날이 사순 시기의 시작일로 정착됐습니다.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은 단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재의 수요일부터 주일을 빼고 단식하면 부활 대축일 전까지 40일 단식을 맞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사순 시기는 정확하게 40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순 시기를 40일이라 부르고, 또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40일이라는 날수에 우리가 받은 세례를 기억하고, 참회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한다는 사순 시기의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202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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