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송 작전?’…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로 보는 대중문화 속 신앙의 언어

최근 SF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관객 수 250만 명을 돌파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평범한 과학교사가 ‘종말 위기의 지구를 구하라’는 임무를 받아 고군분투하는 여정을 그린다. 지구와 인류를 살릴 마지막 희망이 된 주인공은 우주로 떠나고, 뜻밖의 동료를 만나 함께 최후의 임무를 수행한다. 영화의 제목 ‘헤일메리’를 단순한 작전명으로 알기 쉽지만, 이는 ‘성모송’을 뜻한다. 성모송이 라틴어로 ‘아베 마리아’(Ave Maria)라면, 영어로는 ‘헤일메리’(Hail Mary)다. 성모송이 영화 제목이 된 이유는 미국의 인기 스포츠 미식축구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마지막 순간 던지는 장거리 패스’를 가리키는 ‘헤일메리 패스’다. 1975년 12월 28일 미국프로풋볼(NFL) 플레이오프전, 상대팀에게 4점 차로 뒤지고 있던 댈러스 카우보이스 소속 쿼터백 로저 스타우바흐는 경기 종료 직전 전방으로 힘껏 공을 던졌다. 그의 패스를 받은 동료 선수는 터치다운으로 16-14 역전에 성공했고, 이어진 추가 득점까지 성공하며 팀은 17-14로 승리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스타우바흐는 경기 종료 후 기자들에게 “성모송을 바치는 심정으로 패스했다”고 설명했다. 절박한 상황에서 기적적인 희망을 바라며 최후의 승부수로 던진 패스는 이후 대중문화의 한 언어로 자리 잡게 됐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즐기는 대중문화에는 신앙의 언어가 숨겨진 경우가 많다. 많은 작곡가가 음악으로 남긴 <아베 마리아>는 다양한 영화, 드라마 등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된다. 특히 2022년 개봉해 전 세계에서 7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낸 영화 <더 배트맨>은 그 대표 사례다. 영화에서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가 악당의 심리를 대변하는 모티프 음악으로 반복된다. 이 곡은 본래 전례용으로 작곡된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성모송의 라틴어 가사와 결합해 널리 불린다. 성모 마리아를 향한 기도는 영화 속에서 불안의 선율로 변주되고, 왜곡된 심판 의식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구단 ‘샌디에이고 파드리스’(Padres)는 지역의 가톨릭 선교 역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1769년 프란치스코회 신부 후니페로 세라는 현재 샌디에이고 지역에 캘리포니아 첫 선교지를 세웠다. 이 선교지는 스페인 알칼라의 성 디에고를 주보성인으로 삼았고, 훗날 샌디에이고라는 도시 이름의 배경이 됐다. 또한 ‘Padre’는 스페인어로 아버지 또는 신부, 수도자를 의미한다. 구단명 자체가 캘리포니아 첫 선교지를 세운 프란치스코회 신부들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단 마스코트 역시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수도자 모습을 띠고 있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성당이 신앙의 공간을 넘어 ‘거룩하고 특별한 순간’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2025년 화제작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주인공이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이 방영됐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긴 회랑, 제대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이미지는 전례 공간인 성당을 순백의 결혼식과 인생의 전환점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소로 만들었다.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14면

김상유 작가 탄생 100주년 기념전 ‘쉽게 닳지 않는 사람’ 열려

한국 동판화의 선구자 김상유(요한 사도·1926~2002)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서울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4월 1일부터 작가의 예술 세계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쉽게 닳지 않는 사람’ 전시회를 열고 있다.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작가는 연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30대 중반에 독학으로 화가가 됐다. 1960년대 초 국내에서 최초로 동판화를 시도하며 한국 판화의 지평을 열었다. 독자적 실험과 성과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목판화와 유화로 영역을 확장하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했다. 생전 배우자 고(故) 곽영옥(요안나) 씨와 함께 서울대교구 여의도동본당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 15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는 대규모 전시다. 총 6개 장으로 이어지는 전시는 작가의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구성해 그의 삶과 예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동판화를 비롯해 목판화, 유화도 포함됐다. 작품과 함께 작가가 사용한 예술 도구와 유품, 전시 도록, 기사 등도 선보인다. 동판화와 목판화 제작 과정도 소개돼, 작가가 어떻게 자신만의 판화 세계를 구축해 나갔는지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전시에는 그룹 BTS의 RM이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소개하며 화제를 모은 작가의 <대산루> 시리즈도 공개됐다. 작품은 작가가 직접 전국의 오래된 건축물을 찾아다니며 만난 한국의 시간을 담고 있다. 고요하면서도 깊이 있는 화면 구성은 작가 특유의 사유와 미학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은 화려함보다 비움의 길을 택한다. 화면은 절제되고 단순하며, 선과 면은 그 안에서 반복된다. 이는 평생 외부와 고립된 채 자기만의 리듬을 유지하며 작업해 온 작가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작가는 실명의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칼과 붓을 내려놓지 않았다. 전시에서는 황창연 신부(베네딕토·수원교구 성필립보생태마을 관장)와 나태주 시인, 조희숙 셰프 등 종교·문화계 인사들이 ‘쉽게 닳지 않는 삶’을 주제로 남긴 글도 함께 소개된다. 작가의 삶과 작품은 수많은 정보와 콘텐츠로 가득 찬 오늘날을 살아가는 관객에게 조용한 사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쉽게 닳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전시는 8월 17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는 2만 원. 매주 월·화요일은 휴관한다.

발행일 2026-05-03 제3489호 14면

‘최종태전시관’ 대전서 개관…“나고 자란 고향 땅에 모인 거장의 작품”

“신이 있는가, 어떻게 생겼는가. 아름다움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한국 교회미술과 현대조각의 거장 최종태(요셉·94) 작가의 질문들이다. 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집약한 ‘최종태전시관’이 대전광역시 중구 은행동 161에 문을 열었다. 대전시립미술관 분관인 최종태전시관은 4월 1일 옛 대전창작센터 건물(국가등록문화재 제100호)에 개관했다. 대전시가 지역 출신 작가를 통해 지역미술의 예술사적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추진한 주요 문화예술사업의 하나다. 현재 전시관에서는 개관 기념전 ‘최종태의 질문 - 아름다움의 발견, 그리고 창조를 위한 기록’이 7월 12일까지 열리고 있다. 동일한 부제가 붙은 작가의 저서 「형태를 찾아서」(1990)에서 가져온 제목으로, 그가 평생에 걸쳐 지속해 온 조형적 탐구를 환기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올해 대전시에 기증한 작품 100여 점 가운데 60여 점을 공개한다. 그의 예술을 상징하는 조각 작품뿐 아니라 파스텔화와 판화 등도 포함됐다. 전시관은 2개 층으로 구성됐다. ‘생각과 말’을 주제로 한 1층은 그의 예술관(藝術觀)이 완성되기 이전의 시간에 주목한다. 선과 메모, 스케치가 겹쳐지며 작가의 사유가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1층이 생각과 말이 발화되는 공간이라면 2층은 작가의 탐구와 집중의 시간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2층은 1~3전시실로 꾸며졌다. 1전시실 ‘집’에서부터 시작해 3전시실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안정과 머묾에서 출발한 사유는 점차 위로 확장되고, 그사이에 놓인 2전시실은 작업실에서 이뤄진 내면의 탐구를 선보인다. 전시관 곳곳에는 <성모상>과 <성모자상> 등의 작품들이 배치됐다. 교회 조각의 토착화를 이끈 작가에게 성상 조각은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응축한 작업이다. 동시에 한국적 가치와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자신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이 외에도 그가 평생을 소재 삼아 작업한 <손>, <소녀>, <여인>, <얼굴>, <두 사람>, <서 있는 사람> 등도 놓였다. 특히 3전시실 창 너머로는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이 바라다보인다. 작가가 이남규(1931~1993)와 함께 작업한 성당 전면의 12사도 부조를 전시관 안에서 함께 조망할 수 있다는 점도 의미를 더한다. 작가는 1932년 대전 오정동에서 태어나 대전사범학교에서 서양화가 이동훈(1903~1984)의 지도로 미술에 입문했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에서 김종영(프란치스코, 1915~1982)과 장욱진(1917~1990)에게 사사했다. 졸업 후 대전·충남 지역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대흥동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혼배미사를 올렸다. 특히 대흥동성당은 1960년대 초 대전 예술의 중심지로서 존재했다. 당시 주임이었던 오기선 신부(요셉·1907~1990)는 매주 수요일 젊은 예술가들과 수요문화모임을 개최했다. 이는 지역 문화의 토양이 됐으며, 작가 역시 이곳에서 예술적 성장을 이뤄냈다. 작가는 “인생의 절반을 보낸 고향에서 전시관을 열게 돼 기쁘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개관을 준비하며 기존 작품들의 재료와 크기, 연대를 염두에 두고 새롭게 작업을 추가했다”면서 “작품을 통해 많은 관객을 전시장에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6-04-26 제3488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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