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형의 클래식순례] 필립 글래스 <성모 영보>

사순 시기가 한창인 지금, 눈에 띄는 축일이 하루 있습니다. 바로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예전에는 성모 영보 대축일이라고 불렀던 걸로 기억하는데, 루카 복음서 말씀대로 성모님 앞에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가 아들을 잉태하여 낳으리라고 말하고, 성모님이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고대부터 동서방 교회 모두 중히 여기는 대축일이자, 묵주기도의 첫 신비이고, 로마의 카타콤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이콘을 필두로 지금까지 수많은 예술가가 음악과 미술로 즐겨 묘사한 소재입니다. 오늘은 교회음악이 아니라 조금 독특한 기악 작품을 소개합니다. 미국 현대 작곡가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성모 영보>(Annunciation)입니다. 글래스는 스티브 라이히, 마이클 나이만 등과 더불어 이른바 ‘미니멀리즘’(Minimalism)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꼽힙니다. 건축이나 미술에서 시작된 미니멀리즘이 음악에서 구현된 미니멀리즘 음악은 작곡가마다 다르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그렇게 불리는 걸 거부하므로 간단하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단어 그대로 단순하고 반복적인 음악, 혹은 음악으로 건축물을 쌓거나 드라마를 구축하는 형식에 반대하는 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점점 복잡하고 전위적으로 변해가는 아방가르드 음악에 반발하면서 단순함에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이라고나 할까요. 글래스의 음악은 마치 맥박이 뛰는 듯 반복되는 음악 패턴과 변화하는 레이어가 특징적인데, 언뜻 단순하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선율과 강렬한 리듬, 독특한 화성 진행을 듣다 보면 조금씩 그가 만든 음향의 세계에 빠져든다는 느낌입니다. 2018년에 초연된 <성모 영보>는 피아노에 현악 4중주가 붙은 피아노 5중주 편성으로,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위한 비잔틴 성가 선율에 바탕을 둔 작품입니다.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신비스러운 단성가는 미니멀리즘 음악과 잘 어울리기에 존 태브너, 아르보 패르트 등 여러 작곡가가 그레고리오 성가와 비잔틴 성가에서 영감을 받은 교회음악을 썼는데, 글래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단성가를 자신의 음악에 접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곡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1부 서두에 명상적이고 반음계적인 화성 진행이 등장한 뒤, 피아노가 성가 선율(가사는 시편 132편에 나오는 ‘정녕 주님께서는 시온을 선택하시고 당신 처소로 원하셨네’입니다)을 제시하고 다른 악기들이 가세하면서 거의 낭만적으로 들리는 아름다운 음악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2부는 앞서 들은 성가 선율에 대한 작곡가의 음악적 명상이라고 할 고요한 음악이 흐른 뒤 점점 더 감정이 고양되며 끝납니다. 물결치듯 이어지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8분음표 위로 치솟는 피아노는 성모님의 마음을 묘사한 것일까요? 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

발행일 2025-03-23 제3434호 14면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신소장품전 ‘조화’…성미술 대표 작가 12명 작품 한 자리에

김기창, 김세중, 조영동, 최종태 등 국내 성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12인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 내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관장 원종현 야고보 신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신소장품전 ‘조화’(Harmony)는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이 10여 년간 수집해 온 작품들을 모아 선보이는 자리로, 우리 마음속 신앙을 일깨워 주기 위해 마련됐다. 김교만(아우구스티노), 김기창(베드로), 김세중(프란치스코), 유영교(라우렌시오), 이동표(요한 세례자), 이춘만(크리스티나), 장동호(프란치스코), 조숙의(베티), 조영동(루도비코), 최종태(요셉), 추원교(요셉), 하귀분(로사)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성미술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해 온 이들의 회화, 조각 등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에 놓인 김기창 작가의 <예수의 생애_성모영보>, 김세중 작가의 <은혜의 성모>, 이동표 작가의 <아기를 위한 기도>, 이춘만 작가의 <촛대>, 장동호 작가의 <성가정>, 조영동 작가의 <돌아온 아들>, 최종태 작가의 <소녀의 기도>, 하귀분 작가의 <빛으로 오시는 주님 3> 등의 작품은 개인적 경험을 녹인 독자적인 조형과 색채로 관객들을 고요한 묵상의 세계로 이끈다. 박물관 관장 원종현 신부는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교회 미술은 성미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신앙을 일깨워 주는 모든 작품일 것”이라며 “여러 작가가 저마다의 방법과 색채로 표현한 작품들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영원’을 향한다는 같은 마음을 담고 있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고 말했다. 이어 “전시를 통해 조화로움 속에서 구할 수 있는 소통과 화합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해 새로운 힘을 얻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지하 1층 특별기획전시실에서 마련되며, 4월 20일까지 이어진다. ※ 문의 02-3142-4504

발행일 2025-03-23 제3434호 14면

봄 맞이 클래식 음악 공연 ‘풍성’

관람객의 봄을 음악으로 가득 채울 클래식 축제들이 찾아온다. 3월 28일~4월 6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와 4월 1~20일 이어지는 서울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의 주요 공연들을 살펴봤다. ‘내면으로의 여행’이라는 주제를 내세운 통영국제음악제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에릭)이 전면에 나선다. 28일 개막 공연에는 임윤찬이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함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등을 연주하며, 30일 리사이틀 공연에서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등을 들려준다. 4월 2일에는 고음악 거장 르네 야콥스와 B'ROCK 오케스트라가 헨델의 첫 번째 오라트리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가 이어지며, 4월 6일에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으로 폐막공연을 장식한다. 올해로 37회를 맞은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는 ‘The New Beginning’을 주제로 삼았다. 지난해 10월 ‘막스 로스탈 콩쿠르’에서 우승한 비올리스트 신경식은 19일 청주시립교향악단과 마르티누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랩소디 협주곡>,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악장으로 활동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은 11일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신자 음악가들의 연주도 이어진다. 피아니스트 윤홍천(시몬)은 5일 강릉시립교향악단과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교향곡 2번>을,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율리안나)은 12일 대전시립교향악단과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을 연주한다.

발행일 2025-03-23 제3434호 14면

사순에 만나는 ‘기쁨과 희망’의 주님…갤러리 보고재 전시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 참조) 갤러리 보고재(관장 홍수원 젬마)가 3월 27일부터 5월 9일까지 희년 기념 특별전 ‘Laetare-기쁨을 만나다’를 연다. 사순 제4주일 기쁨 주일을 앞둔 때부터 부활 제3주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로, 희년의 기쁨과 희망을 주제로 한 각 작품은 희망의 정기 희년을 맞은 현재 어떤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 관객들에게 묻는다. 전시에는 김영훈(바오로)·박정석(미카엘)·선종훈(프라 안젤리코)·염동국(루카·의정부교구 가좌동본당 주임)·홍덕희(아녜스)·홍수원(젬마) 작가 6인이 참여해 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들 작가는 영상, 스테인드글라스, 회화, 조각, 사진, 공예 등 각기 다른 장르의 성미술을 통해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난 기쁨과 희망의 예수님을 표현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갤러리에 작은 성전을 구현하는 콘셉트로 준비됐다. 성수대와 십자가는 염동국 작가의 조각, 고해소는 홍수원 작가의 공예, 십자가의 길은 선종훈 작가의 회화 작품 등으로 꾸며진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는 ‘작가를 만나다’가 4월 12일 열린다. 선종훈 작가의 작품 <십자가의 길> 제작 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홍수원 관장은 “엄격한 희생과 절제를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참여하며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이 고통이 아닌 기쁨을 회복하는 기간이 되길 바라며 전시를 마련했다”며 “우리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과 참되고 인격적 만남을 갖는 2025년 희년에 부활의 빛을 가장 행복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갤러리 보고재는 2013년 현대공예갤러리로 개관한 이후 성미술 발전을 위해 지난 2021년 성물 갤러리로 재단장했다. 2015년부터 전시 수익금 전액을 소외 계층에 전하고 있으며 이번 전시 수익금도 소외된 이웃을 위해 기부할 계획이다.

발행일 2025-03-16 제3433호 14면

서울가톨릭연극협회, 울릉도에서 <여걸 강완숙 골룸바> 공연

“이미 천주교를 배웠고 스스로 ‘죽으면 즐거운 세상, 천당으로 돌아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형벌을 받아 죽을지라도, 신앙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을 고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복자 강완숙(골룸바)의 신앙과 삶을 조명한 서울가톨릭연극협회(회장 최주봉 요셉, 지도 유환민 마르첼리노 신부)의 음악극 <여걸 강완숙 골룸바>가 3월 26일 울릉도 도동성당을 찾는다. <여걸 강완숙 골룸바>는 예수님을 증거하다 신유박해 당시 41세 나이로 순교한 강완숙의 이야기다. 1760년 충청 예산에서 태어나 고난을 겪다 하느님을 만나면서 변화하고, 초대 여성회장으로서 초기 한국교회를 이끄는 모습 등을 담아냈다. 서울가톨릭연극협회의 ‘찾아가는 연극 공연’ 일환으로 추진된 이번 공연은 전국 가톨릭 신자들의 후원금으로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2023년 5월 <여걸 강완숙 골룸바>를 처음 선보인 후 지금까지 전국 수도회, 본당 등에서 80여 차례 순회공연을 연 서울가톨릭연극협회는 우리나라 최동단이자 문화 소외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울릉도에서의 공연을 위해 지난해부터 후원금을 모아 왔다. 또한 출연·연출진은 울릉도 공연을 마친 후 독도로 이동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를 올릴 예정이다. 연출을 맡은 방은미(요한 보스코) 감독은 “전국 신자 분들의 마음 덕분에 간절히 바라던 울릉도 공연을 이룰 수 있게 돼 기쁘다”면서 “매순간 주님께 봉헌하는 삶을 살았던 강완숙 골룸바를 잘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과 함께 열심히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공연이 울릉도 신자들에게 일상 속 신앙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5-03-16 제3433호 14면

발레로 만나는 안중근 의사…<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광복 80주년을 맞아 안중근(토마스) 의사의 일대기가 창작 발레로 무대에 오른다. 사단법인 안중근의사숭모회·안중근의사기념관이 주최하고, M발레단이 주관하는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이 3월 15~16일 서울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펼쳐진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까지 들려오면 나는 기꺼이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오”라는 안중근 의사의 유언을 바탕으로 기획된 이 작품은 1910년 2월, 안중근 의사가 중국 뤼순감옥에서 사형을 언도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남성군무를 통한 독립군과 여성군무를 통한 평화로운 천국에서의 모습이 서로 대조를 이루며 영웅인 동시에 연약한 인간이기도 했던 그의 짧은 생을 극적으로 그려 나간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무용창작산실 우수 작품 제작지원 선정작으로 초연된 이후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발레리노 이동탁과 윤전일이 안중근 의사로 분하며, 발레리나 김리회와 장윤서가 부인 김아려 역, 김순정이 어머니 조마리아 역을 맡았다. 양영은 M발레단장은 “무용수들의 몸짓으로만 다가오는 감동이 있다”며 “말로 다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정을 많은 분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발행일 2025-03-16 제3433호 14면

갤러리1898, 김유경·김정자·김성희 개인전

김유경(가브리엘라)·김정자(안나)·김성희(요안나) 작가의 개인전이 3월 14~23일 서울 명동 갤러리1898(관장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에서 열린다. 김유경 작가는 제1전시실에서 ‘영영’(永永)을 주제로 전각, 회화 등 30여 점을 선보인다. ‘영영’은 ‘언제까지나 영원히’라는 뜻의 한자어로, 작가는 작품을 통해 언제나 영원한 희망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가는 “어둠에서 헤맬 때라도 희망은 우리 마음에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며 “자신 안에 내재된 희망을 찾아 마음의 평화를 향해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2전시실에서는 김정자 작가가 ‘하느님을 만난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연다. 작가는 ‘왜 하나뿐인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신앙을 지켰을까’라는 물음에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우리 신앙의 뿌리가 된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작품 25점을 전시한다. 김성희 작가는 천연염색 직물로 십자가를 형상화한 ‘천연염색 2025: 복된 희망’을 마련했다. 작가는 “모든 것이 예수님을 통해 생겨났듯 자연색 또한 창조물”이라며 “예수님이 우리에게 선물한 미묘한 자연의 빛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김성희 작가의 전시는 제3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발행일 2025-03-16 제3433호 14면

“사람들과 편히 나눌 수 있는 음악 들려주고 싶어”

첼리스트 이호찬(34·요한 사도)이 최근 음반 ‘이른 봄에(In Early Spring)’를 발매했다. 그리그,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말러 등의 가곡을 아름다운 첼로 선율로 들려준다. 이번 음반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안식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무엇보다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반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화려한 기악곡이 아닌 가곡들을 고르게 됐죠. 추운 겨울을 보내고 새싹을 틔우는 봄에 어울리는 따뜻한 곡들로요. 마지막 곡인 슈베르트의 <그대는 나의 안식(DubistdieRuh)>은 사랑하는 사람과 기쁨과 슬픔 등 모든 것을 공유하고 그로부터 평화와 안식을 찾는 노래로 특히 추천하고 싶어요. 또 이번 음반은 친한 친구이자 작곡가인 손일훈(마르첼리노) 씨와 함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어요.” ‘사람들과 편히, 나눌 수 있는 음악’. 초등학교 1학년 무렵 첼로를 시작해 예원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독일 함부르크 유학을 거쳐 그가 계속해서 달려온 이유다. 최근에는 다양한 앙상블 활동으로 후배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무대에 집중하고 있다. “혼자서 빛나는 연주도 좋지만 동료들과 함께 소리를 만드는 기쁨도 대단히 커요. 지금까지 선생님과 선배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이제 그 고마움을 동료와 후배들에게 나누려는 거죠. 다양한 연주자에게 기회가 돌아가야 클래식 시장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 테니까요. 서로 알지 못했던 연주자들이 저로 인해 접점이 생기고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요.” 여러 연주 일정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이지만 사회적 소외 계층을 위한 연주에도 적극 참여한다. 오래전, 긴 시간 동안 병원에 지내며 만난 아이들은 그의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20대 시절 큰 수술을 네 차례나 받았어요. 친구들을 보면 목표를 향해 쭉쭉 달려 나가는데, 혼자만 정체된 듯해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병원에 있으면서 우연히 로비에서 열린 연주회를 봤어요. 형언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죠. 그래서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가서 연주하고 싶어요. 아주 가까이 있는 관객들과 눈빛을 주고받을 때 큰 감동과 마음에 평화가 찾아와요. 저 스스로를 위한 연주이기도 하죠.” 연주자로서 음악에 치유를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음악으로 인해 지치는 날도 있다. 또한 세상일이 그렇듯, 좋은 의도를 지녔다고 해서 모두가 그대로 이해하고 알아주지는 않는다. 자신의 뜻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들이 상처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주저앉지 않고 일어선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결국에는 이 고난이 저를 더 단단히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할머니를 따라 모태 신앙으로 성당을 다녔는데 제게 신앙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넘어지는 순간에 의지할 버팀목이 있으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죠.” 그의 바람은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연주자로 계속 성장하는 것. 예전에는 ‘실수하지 말아야지’, ‘잘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올랐다면, 지금은 더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 “음악에 더 빠져들어 좋은 음악을 완성시키고 싶어요. 더 나아가 관객들에게 감동을 드리고 싶은 것이 유일한 희망사항이죠. 나누고 싶은 음악이 많아요. 좋았던 시간들, 힘들었던 시간들이 모두 차곡차곡 쌓여서 제 안에서 음악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음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발행일 2025-03-09 제3432호 14면

[이준형의 클래식순례] 프랑수아 쿠프랭 <르송 드 테네브르>

오늘은 사순 시기의 첫 주일입니다.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면서 세례를 기억하고 참회하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시간이지요. 교회력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인 만큼, 고대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곡가가 사순 시기, 특히 성주간(Hebdomada Sancta)을 위한 음악을 썼습니다. 그 방대한 분량도 놀랍지만, 시대와 지역에 따라 펼쳐지는 다채로운 음악에 더욱 놀라게 됩니다. 사실 사순 시기의 무거운 분위기와 절제된 생활, 엄격한 전례가 성주간에 절정에 달한 후 갑자기 기쁨이 넘치는 주님 부활 대축일에 돌입하는 여정은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놀랍도록 극적입니다. 오늘은 성주간 전례에서 빼놓을 수 없는 테네브레(tenebrae), 그중에서도 프랑수아 쿠프랭(François Couperin)의 <르송 드 테네브르>(Leçons de ténèbres)를 소개할까 합니다. 테네브레는 라틴어로 ‘어둠’이라는 뜻으로, 성목요일·성금요일·성토요일을 위한 시간 전례 중 새벽기도(Matins)와 아침기도(Lauds)를 뜻합니다. 이 유서 깊은 전례 전통은 열네 편의 시편 낭송(낭독)이 끝날 때마다 촛불을 하나씩 끄는데, 마지막에 하나 남은 촛불을 숨기고 완전한 어둠이 되기 때문에 ‘테네브레’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본래 새벽기도는 새벽 2시 무렵, 아침기도는 동이 트는 새벽에 거행하지만, 중세 시대부터 20세기 중반까지는 편의상 그 전날 오후나 저녁에 앞당겨서 행했기에 테네브레도 수요일부터 금요일 저녁에 거행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전례가 바뀌면서 지금은 형태가 다소 달라졌지만, 전통적으로 테네브레는 응답 송가(안티폰), 시편, 낭송(낭독), 응송(레스폰소리움)을 반복하고 마지막에 ‘미세레레’(Miserere)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레고리오 성가 이후 현대의 아르보 패르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곡가가 이 전례문의 일부 혹은 전부를 작곡했지요. 프랑스는 특히 르네상스 시대부터 바로크 시대에 이르기까지 테네브레 전통이 큰 사랑을 받은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성당이나 수도원뿐만 아니라 개인 저택에서도 예식을 거행했고, 그래서인지 웅장한 작품부터 작고 내밀한 작품까지 다양한 테네브레가 만들어졌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테네브레 중 ‘애가’ 부분을 골라서 쓴 작품을 ‘르송 드 테네브르’라고 불렀는데, 여러 작곡가가 아름다운 작품을 썼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역시 쿠프랭의 것입니다. 쿠프랭은 성삼일을 위한 ‘르송’을 모두 썼다고 밝혔지만 수요일(목요일)을 위한 곡만 출판했고, 그래서 아쉽게도 이 곡만 전해집니다. 파리 서쪽 불로뉴 숲에 있는 롱샹 수녀원을 위해 쓴 이 작품은 두 명의 독창자(두 곡의 독창과 한 곡의 이중창)와 콘티누오 악기를 위한 편성으로, 지극히 내밀한 아름다움과 절제된 슬픔이 흐릅니다. 독창자가 애가의 매 절을 히브리어 알파벳 ‘알레프’, ‘베트’, ‘기멜’로 시작하며 우아한 멜리스마(melisma)를 노래하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감동을 줍니다. 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

발행일 2025-03-09 제3432호 14면

영화 <콘클라베> 개봉…교황 선거로 들여다본 인간 욕망

새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 <콘클라베>가 3월 5일 개봉했다. 라틴어로 ‘콘 클라비스’(Con Clavis), 즉 ‘열쇠로 잠근 방’을 뜻하는 <콘클라베>는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비밀 투표를 치르는 추기경단의 모습에 집중한다. 극중 주인공 로렌스 추기경은 교황의 선종 이후 선거를 총괄할 단장 임무를 맡는다. 선거권을 가진 118명 추기경이 교황청으로 모여들고, 영화는 로렌스의 시선을 통해 인물들을 추적해 나간다. 투표를 거치며 교황 선출을 향한 음모와 대립이 드러나고 콘클라베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또한 성추문과 이혼 등 교회 내 민감한 주제들을 통해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영화는 교회를 사실 그대로 나타낸 것보다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본성과 욕망 등을 비춘 정치·심리 스릴러물에 가깝다. 영화 속 시스티나 경당, 성녀 마르타의 집 등의 배경과 추기경들의 의상 역시 실제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해 완성시켰다. 다만 콘클라베 투표 과정만큼은 실제에 가깝게 재현됐다고 알려졌다. 투표용지를 실에 매달거나, 투표용지를 세어 본 후 구멍을 뚫어 보존하는 등의 장면은 가톨릭 전례에 기반한 것이다. 정치 칼럼니스트 출신 영국 작가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에드워드 버거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레이프 파인스, 스탠리 투시, 이사벨라 로셀리니 등이 출연한다. 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 8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각본상, 78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등을 받았다.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 시간 120분.

발행일 2025-03-09 제3432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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