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팔레스트리나 <노인이 아기를 안았네>

지난 2월 2일은 주님 봉헌 축일이었다. 이날 교회는 성탄에서 주님 공현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마무리하고, 아기 예수님이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에 의해 성전에 봉헌되심을 기념했다. 복음 역시 시메온과 예언자 한나가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찬미하는 장면을 중심에 뒀다.(루카 2,22–38 참조) 의롭고 독실했던 시메온이 그리스도를 품에 안고,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감격하는 대목은 언제나 가슴을 울린다. 이를 노래한 그레고리오 성가 〈노인이 아기를 안았네(Senex puerum portabat)〉 또한 인상적이다. 전통적으로 주님 봉헌 축일의 성무일도 ‘안티폰’(후렴)이나 미사 중 알렐루야로 사용되는데, 가사 내용은 이렇다. “노인이 아기를 안았네(Senex puerum portabat). 그러나 아기는 노인을 다스리니(puer autem senem regebat). 그분을 동정녀가 낳았고(quem virgo peperit), 출산 후에도 동정녀로 남았으며(et post partum virgo permansit), 자신이 낳은 그분을 흠숭하였네(ipsum quem genuit, adoravit).” 르네상스의 거장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1525~1594)는 이 텍스트를 5성부 모테트로 확장했다. 초입 “아기는 노인을 다스리니” 구절은, 만물의 통치자 그리스도(Pantokrator)를 음악으로 형상화한다. ‘다스린다(regebat)’라는 구절이 상행하는 선율과 성부 간 모방으로 이전 음형을 ‘지배’하듯 진행되기 때문이다. 시메온의 품에 안긴 연약한 아기가, 실은 세상을 다스리는 강력한 주권자라는 역설이다. 마지막 절 “그분을 흠숭하였네”에서 팔레스트리나의 천재성은 더욱 뚜렷해진다. 모든 성부가 한 호흡으로 합치되듯, ‘흠숭하였다(adoravit)’로 귀결될 때, 듣는 이들은 성모와 시메온, 한나와 함께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듯한 공통된 신앙 체험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전례가 요구하는 것은 결국 참여이며, 노래는 이 동참을 생생히 경험하게 한다.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 부분 역시 팔레스트리나 특유의 투명하고 순차적인 진행으로 부드럽게 이어진다. 텍스트는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자로서, 교회 공동체와 신앙을 이끄는 어머니임을 선언한다. 이 전례적·음악적 의미는 오늘날 교회가 말하는 마리아의 역할과도 맞닿는다. 2025년 11월 발표된 교황청 신앙교리부 공지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Mater Populi Fidelis)」는 성모 마리아를 ‘공동 구속자’로 보는 입장과 분명히 거리를 둔다. 문헌이 강조하는 마리아의 순명, 고통의 동참, 신앙인의 모범, 교회의 어머니 역할은 “자신이 낳으신 이를 흠숭하는 자” 가사와도 조화를 이룬다. 복음은 감동과 희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메온은 예언한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참조) 때문에 주님 봉헌 축일의 초 봉헌과 행렬은 그저 환희의 빛이 아니었다. 고난의 그림자를 동반한 촛불이며, 기쁨과 통회가 공존하는 촛불이다. 축일은 그리스도의 봉헌을 넘어 훗날 수난과 십자가형, 이를 통한 인류 전체의 구속(救贖)을 예고한다. 시메온의 팔에 안긴 아기 예수의 장면을 통해 찬란한 빛을 보았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수난을 거쳐, 우리를 밝히고 살리는 구원의 빛. 글 _ 박찬이 율리아나 (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16면

광주가톨릭박물관, 양계남 작가 기념전 ‘지상, 파라디소’ 선보여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 모두 / 그분의 길을 걷는 이 모두!”(시편 128,1) 광주가톨릭박물관이 1월 23일 고(故) 양계남 작가(크리스티나·1945~2023) 기념전 ‘지상, 파라디소(Terra e Paradiso)’를 개막하고 8월 31일까지 전시를 이어간다. 이번 전시는 ‘전통이라는 자신만의 별’을 지키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의 유족이 박물관에 작품을 기증함에 따라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1945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양계남 작가는 조선시대 산수화의 거장 허백련과 구철우, 양수아를 사사하며 한국화와 서예, 데생 등을 익혔다.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동양화 학·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1974년 광주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나섰다. 국내는 물론 유럽 각지에서 전시를 열며 창작에 매진한 작가는 초기에는 묵(墨)에 숨겨진 다양한 색과 여백의 깊이를 탐구했다. 이후 채색화를 통해 화사한 색채와 세필 묘사, 한국적 정서를 결합한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했다. 자연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 일상의 풍경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다. 1991년 주님 성탄 대축일에 세례받은 이후, 작가의 작품 세계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았다. 스승에게서 배운 ‘삼애 사상(애천·애토·애인)’에 ‘복음적 사랑’을 더하며, 인간의 유한한 사랑을 넘어서는 초월적 사랑과 구원의 의미를 화폭에 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전통미와 서양의 추상미, 종교적 숭고미를 아우르는 예술관은 이 시기에 완성됐다. 깊은 묵상을 바탕으로 인간의 유한한 사랑을 넘어서는 초월적 사랑을 화폭에 담으며, “함께함으로써 즐거워지고 행복해지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자신의 예술적 지향을 실천해 나갔다. 전시는 지상에서 천상으로 이어지는 사유와 고뇌의 여정을 ‘지상’, ‘여정’ 등의 주제로 구성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심미적으로 풀어낸 <구름이 쉬어 가는 곳>을 비롯해 대표작 40여 점이 공개된다. 특히 <그 분이 가시는 길 - 십자가의 길>은 이승과 저승, 고통과 승화가 교차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여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성스러운 새와 포도나무, 붉은색과 보라색의 배경 속 중앙에 놓인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구원 여정을 더욱 또렷이 드러낸다. 전시 기간에는 나비에 이름을 붙여 채색하는 ‘나비에 생명을’, 전통 먹을 직접 갈아 수묵화로 표현하는 ‘오만 가지 묵색 속 나의 별 찾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운영 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일·공휴일 휴관. 입장료 무료.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14면

[성미술 산책] 조르주 루오 <꽃다발,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알프스 자락에 아시 평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20세기 초중반 결핵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고지대의 신선한 공기가 폐에 좋다고 하여 결핵 요양원들이 들어섰고, 환자와 신자들을 위한 안식과 위로의 공간인 ‘아시성당’이 지어졌습니다. 이 작은 산골 성당이 최초로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로만 꾸며진 현대 성당의 이정표와 같은 곳이 되리라 누가 상상했을까요? 이는 또한 전 시대의 유산을 답습하는 데 그쳤던 정체된 교회의 높은 벽이 허물어진 상징적인 순간을 의미합니다. 동시대 ‘최고의 예술’이 성당에 들어와야 진정 살아 숨 쉬고 영감을 주는 ‘영성의 공간’이 된다는 신선하고 의식 있는 발언은 도미니코회의 레가메(P. Régamey) 신부, 마리-알랭 쿠튜리에(Marie-Alain Couturier) 신부 등 소수의 성직자에 의해 일깨워졌습니다. 특히 프랑스 현대 성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쿠튜리에 신부는 아시에 현대 작가들을 섭외한 장본인으로 다음은 그의 목소리입니다. “모든 진정한 예술가는 영감을 받은 자다. 예술가는 그의 속성과 기질적으로 그러한 성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영적인 직감에 준비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 곳으로부터 불어오는 성령의 부름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여기 ‘아시 프로젝트’에 1순위로 초대받은 이는 바로 20세기 종교미술의 거장,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입니다. 성당 출입문 벽면 다섯 개의 작은 스테인드글라스 아치창 중 세 번째인 <꽃다발,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는 이사야서 53장 7절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를 묵상한 결과물입니다. 창 하단에는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et il n'a pas ouvert la bouche)'고 직접 써놓아 그의 필체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랏빛 탁자 위에 푸른 화병이 있고 만개한 꽃다발이 꽂혀 있습니다. 꽃의 화려한 향기에 매료되어 계속 바라보노라면 우리 시선은 자연스럽게 푸른 화병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얼굴에 이르게 됩니다. 골고타 언덕을 오르던 중, 피땀 흘리는 얼굴이 닦인 ‘베로니카의 수건’ 그리고 에데사 왕을 치유한 ‘만딜리온’을 연상시키는 성안(聖顔). 이 눈부신 꽃다발은 인류 구원을 위해 수난당하고 희생한 그리스도에 대한 헌정이자 그의 상처받고 지친 마음과 육신에 바치는 위로이자 찬미입니다. “하느님, 예술로써 찬미 받으소서, 저희 마음에 함께 하시듯 저희 창작에도 함께하소서, 아멘.”(국제 크리스천 예술가 협회 기도문 중)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14면

수원교구 김태규 신부, ‘은경축’ 기념 앨범 발매

수원교구 수지본당 주임 김태규(판크라시오) 신부가 사제수품 25주년 은경축을 기념해 본당 신자들과 함께한 첫 번째 앨범 ‘나의 노래 하느님께로’를 발매한다. 2021년 6월 본당에 부임한 김 신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움츠러든 본당을 활성화하기 위해 2022년 9월부터 매주 금요일 오전 찬양미사를 봉헌해 왔다. 특히 수원가톨릭대학교 갓등중창단 멤버로 활동 중인 김 신부는 생활성가 가수 신상옥(안드레아) 선교사, 본당 신자들로 구성된 ‘수태고지’ 밴드를 결성했다.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 소식을 예고한 가브리엘 대천사처럼 ‘기쁜 소식을 알리는 전령이 되자’는 뜻을 담았다. 이번 앨범은 지난 4년간 합을 맞춰 온 김 신부와 수태고지 밴드의 합작품이다. 김 신부의 기도와 묵상이 담긴 자작시에 신 선교사, 밴드 멤버들이 직접 곡을 붙였다. 신학생 시절의 감상을 풋풋하게 녹인 <기다림>, 2001년 1월 사제품을 받은 직후 성직자로서의 마음을 담은 <이끄심>을 포함한 창작곡 9곡과 기존 생활성가 5곡 등 총 14곡이 수록됐으며, 전례시기에 따라 어울리는 곡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앨범에는 김 신부가 직접 촬영한 사진과 경기 안성 마오로미술관 관장인 김형부(마오로) 이콘 작가의 작품도 담겨 있다. 김 신부는 “25년간의 사제 생활은 어느 것 하나 하느님의 은총이 아닌 것이 없었다”며 “밴드 멤버들과 기도로 작업한 앨범이 많은 사람에게 묵상의 시간으로 가닿기를 기도한다”고 전했다. 앨범은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에 발매되며, 수익금 전액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위한 기금 조성에 사용된다. ※문의: 031-265-2101 수지본당 사무실

발행일 2026-02-01 제3477호 14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세계 각지 언어로 남아 있는 요사팟 노래들

교회는 해마다 불교의 큰 경축일에 맞춰 불자들에게 인사를 보낸다. 교회가 이웃 종교의 기념일을 기억하고 축하한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만남과 교류가 결코 오늘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일깨운다. 나아가 역사는 때론 낯설고 대담한 방식으로 두 종교를 연결한다. 불교의 석가모니 부처가 그리스도교 성인이 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 서사는 동서양을 횡단해 ‘성 요사팟(Josaphat)’이라는 이름으로 변모했고, 여러 언어의 기록과 노래를 타고 대륙을 가로질렀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왕자 요사팟은 궁정에서 질병과 죽음과 가난을 보지 못한 채 쾌락과 아름다움만 접하며 자란다. 그러던 중 외부 세계의 고통과 죽음을 직시하고, 수도승 바를라암(Barlaam)을 만난다. 부친 아벤니르 왕의 반대가 잇따르지만, 요사팟은 끝내 왕위를 버리고 은수자로 살아간다. 이야기는 불교권 독자에게 익숙한 싯다르타의 출가 드라마를 연상시키며, 결말은 그리스도교적 회심과 성덕으로 재배치된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요사팟 명칭의 이동 경로다. 보살(Bodhisattva)이 중동을 거치며 부다사프(Budasaf)에서 유다사프(Yudasaf)가 된다. B가 Y로 잘못 읽힌 필사·독해 오류가 결정적 분기점이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이는 요다사프(Iodasaph)와 그리스어 요아사프(Ioasaph)로 변형되며 서방에서 요사팟으로 정착한다. 이름의 여정은 설화가 일종의 ‘번역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했음을 유추하게 한다. 요사팟 이야기는 여러 지역에서 운문과 노래와 암송에 최적화되어 지속적으로 변주되었다. 문자 문화보다 구술 문화에 친숙했던 중세에서 노래로 불린다는 것은, 곧 살아남는다는 뜻이었다. 이야기는 가락으로 불릴 수 있는 형태로, 공동체의 기억으로 쉬이 들어갈 수 있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소리와 운율은 전승의 길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여러 언어로 전해지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요사팟 전승은 아랍어,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에티오피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오크어(남프랑스), 카탈루냐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고(古) 노르드어 등으로 번안되어, 각 지역의 시와 서사 전통 속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요사팟이 동서 교류사에서 지닌 의미는 호기심 거리를 넘어선다. 이는 종교와 문화의 교류가 매우 역동적이고 상호교차적이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번역과 각색, 필사와 낭독, 구전(口傳)이 모든 과정에서 함께 있었다. 요사팟은 붓다가 곧장 그리스도교 성인이 되었다는 단순한 등식이 아니다. 그는 이야기가 국경과 언어를 넘어 선율로 불리고 기록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재탄생된 인물이다. 중세 후기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의 성인들에 대한 방대한 저서 「황금전설」에 바를라암과 요사팟 항목이 수록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19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우리 시대(Nostra Aetate)」에서 이렇게 말한다. “불교는 신심과 확신으로 완전한 해탈의 경지에 이르거나 궁극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길을 가르친다.” 「우리 시대」의 메시지는 바를라암과 요사팟 서사를 요약하며 의미를 새롭게 비춘다. 석가모니 부처와 성 요사팟이 서로 공명한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불교라는 이웃종교를 이해할 수 있는 선명한 통로가 된다. 환락과 영화를 내려놓고, 자신을 끊임없이 비우는 길. 요사팟의 여정이 세계 지도에 그린 역동적인 궤적은, 두 종교에 새삼 다른 빛을 드리운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2-01 제347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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