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이경상 주교 서품] 교계 축하인사·답사

서울대교구 이경상(바오로) 주교의 서품식 중 2부 축하식에서는 이 주교의 주교 서품을 함께 기뻐하는 축하의 말들이 넘쳤다. 주요 축사와 이경상 주교의 답사를 정리해 싣는다. [축사] 주한 교황대사 직무대행 페르난도 헤이스 몬시뇰 이 복된 주교 서품식을 맞아 주교단의 일원이 되신 이경상 바오로 주교님에게 인사드리게 돼 참으로 기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서울대교구의 사목적 필요와 교구장님의 요청을 신중히 고려하시어, 신부님을 서울대교구의 새로운 보좌주교로 임명하셨습니다. 이제 주교님께서는 서울대교구의 다른 보좌주교님들과의 친교 안에서 협력이 필요한 모든 사목적·행정적 사안에 대해 기꺼운 마음으로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님을 도우실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주교의 사명을 ‘사랑의 직무’(amoris officium)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목자로서 주교는 언제나, 모든 행동 안에서, 자신의 직무를 사랑의 의무로 완수해야 합니다. 이경상 바오로 주교님, 이미 그렇게 해 오셨듯 교구장님과 다른 형제 주교님들, 사제와 수도자들, 국가 지도자들, 그리고 하느님의 온 백성과 서로 존중하는 좋은 관계를 가꿔 나가시길 빕니다. 또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 주교님께 대한 환영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정, 그리고 기도를 약속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주교님을 위해 기도 안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을 위해 하느님의 은총을 청합니다. [축사]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새 주교님의 첫 마음이 담긴 사목 표어의 뜻을 상기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기’(Vivere in Corde Jesus), 이 말씀에는 거친 바다의 풍랑과 같은 현세에서 예수님 마음으로 살겠다는 주교님 다짐과 이런 험난한 세상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예수 성심을 닮자고 초대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주교님은 교회법 전문가이자 학교 법인과 병원 사목에 오래 헌신하신 분이며, 무엇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는 ‘양 냄새 나는 목자’이십니다. 누구에게나 웃음으로 대하시고 사람들과 기쁘게 소통하셨습니다. 주교님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기’를 바라시며 사람들과 동행했던 사제 생활처럼, 주교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변함없이 누구에게나 예수님 마음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실 것입니다. 교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교님은 “세상 사람들의 일상 노고와 애환에 대해 깊은 감수성과 연민을 가지는 주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내시고, 또한 “아끼는 마음으로 교구 신부님들 곁에서 신부님들을 챙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소망을 들으며 저는 ‘시노달리타스 시대의 주교님이 나셨다’고 내심 기뻐했습니다. 시노달리타스를 통해 ‘함께 걷는 교회’를 추구하는 이 시점에, 예수님 마음으로 사람들과 ‘함께 걷는 주교님’ 모습을 기대합니다. [축사] 서울대교구 사제단 대표 지상술(힐라리오) 신부 저를 신학교로 추천해 주시고 사제품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인연으로, 저는 주교님의 모습을 오랜 기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주교님의 재능과 역량은 너무나도 크고 많으셨습니다. 동대문본당에서 주임신부로서 첫발을 내디디신 때는 특유의 친화력과 유머 감각으로 이내 본당 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셨고, 깊은 영성과 재미를 담은 강론으로 신자들을 영적으로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방학동본당에서는 성당 건립모금을 위해 ‘오 마이 갓’이라는 음반을 제작하기도 하셨습니다. 이처럼 어느 본당에서든 그곳을 신자들이 오고 싶어 하는 기쁨과 잔치의 장으로 만드셨습니다. 또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 사무처장 시절에는 학생들이 치유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은 의료인이 되도록 온 힘을 다하셨고,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에서는 뛰어난 경영 능력으로 재정구조를 탄탄하게 만드셨습니다. 이처럼 뛰어난 재능과 깊은 영성을 바탕으로 한 경영 능력과 행정력을 두루 갖추신 만큼, 부담도 크실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성심께서 주교님을 은총으로 이끄실 것이라 믿으며 저희도 주교님을 위해 기도드리며 함께 하겠습니다. [축사]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안재홍(베다) 회장 유머와 따뜻함과 웃음이 몸에 밴 이경상 바오로 주교님의 주교 수품을 축하드립니다. 주교님은 웃음꽃을 몰고 다니는 분이십니다. 그 예로 주교님과 50년 지기이신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님은 “교회 정신에 충실하고 유머 감각은 물론 의리에 배포도 큰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주교님의 신학교 입학 추천서를 써준 ‘아버지 신부’ 김충수 신부님도 “친화력과 리더십을 갖춘 분위기 메이커”라며 “머리도 좋고 재주가 많아 신부가 된 뒤에는 이 사람이 주교가 되면 좋겠다고 내심 기대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교님의 막내 여동생 이상화 유스티나님은 “정말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재미있게 공부를 가르쳐주신 분”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주교님은 스스로 “세상 사람들의 노고와 애환에 깊은 감수성과 연민을 가지는 주교가 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주교님의 이러한 인품과 다짐처럼, 시노드 교회를 향해 교구민들과 함께 동행해 주시고, 교우들이 걷다가 힘들어할 때는 업어 주십시오. 배고픈 교우에게는 기도와 함께 먹을 것을 주시고, 진정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돼 주십시오.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사랑을 담아 행복한 마음으로 축하드립니다. [답사] 이경상 주교, “사람들의 고통과 애환에 연민 갖고 살아갈 것” 저를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해 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감사드리며 순종을 서약했음을 다시 기억합니다. 저는 지난 2월 24일에 주교 임명 후 2월 29일 교황청대사관에서 교구장님과 교구 선배 주교님들 입회하에 신앙선서를 통해서 믿을 교리에 대한 저의 신앙을 고백했고, 곧이어 신앙선서와 함께 주교 수품자가 반드시 해야 하는 충성 서약문을 낭독하고 서약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가톨릭교회와 그 최고 목자이신 교황님께 항상 충성을 다하겠다는 문장을 시작해서, 가톨릭 신앙과 도덕이 만인에게 전파되기를 노력하고 교회 재산을 성실히 관리하고 주교의 협력자로 섭리된 모든 성직자, 특히 남녀수도자들을 각별한 사랑으로 보살피고, 성소 계발에 힘쓰고 평신도의 존엄성과 그들의 고유 분야를 인정하고 증진하며 인류 복음화에 각별한 관심을 두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복음 말씀이 수품자를 도와주시기를 간청하면서 마무리하게 돼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기도 응원에 힘입어,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에 기대어 그 서원을 잘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우주 창조 이래 인간을 위해 맺으신 계약을 어긴 적이 없으십니다. 저는 이제 걱정하기보다는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한 이 어머니 교회에서 조금씩 더 주님의 영을 제 안에 지니고, 사람들이 겪는 일상에 특히 노고와 고통과 애환에 감수성과 연민을 갖고 살아가렵니다. 하느님 도와주세요. 그리고 여러분 모두 도와주십시오.

뜨거워진 한반도, 서울에서도 감귤이 자란다

‘나주 배, 대구 사과, 제주 감귤.’ 지역 특산물로 오랫동안 즐겨먹던 과일들이 사라지고 있다. 아울러 한반도에서 볼 수 없었던 올리브, 망고와 같은 아열대 작물재배는 점차 확산되고 있다. 온난화로 뜨거워진 지구가 한반도의 과일 지도를 바꿔놓은 것이다. 기온과 먹을거리의 변화는 곧 우리 삶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 과일 재배지 북상 중 지구온난화로 인해 우리나라 주요 과일 재배지가 북상하고 있다. 기온과 재배지가 달라지면서 과일의 맛도 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전남 지역의 배 재배지는 2020년 1734㏊로, 2010년(3297㏊)보다 47.4%나 줄었다. 줄어든 배 밭은 경기도까지 북상, 안성에서만 20%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도 특산물인 감귤도 내륙을 넘어 수도권까지 올라왔다. 같은 기간 제주도의 노지 감귤 재배 면적은 소폭 감소했고 전남의 노지 감귤 재배지는 3배로 늘었다. 나아가 경기 지역을 넘어 서울에서도 노지 감귤 농사가 시작됐다. 통계청의 기후변화에 따른 주요 농산물 주산지 이동현황을 보면, 사과의 재배지가 경북에서 정선·영월·양구 등 강원 산간 지역으로 확대됐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경북 지역의 사과 재배지는 16.7% 감소한 반면 강원도의 사과 재배지는 164.3%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복숭아 역시 충북과 강원 지역 재배가 늘어났으며, 포도 주산지는 경북 김천에서 충북 영동과 강원 영월로 올라오고 있다. 반면 아열대 작물 재배는 남쪽에서부터 증가하고 있다. 2001년 제주에서 첫 재배를 시작한 망고는 이제 ‘제주 망고’라는 이름을 달고 식탁 위에 오르고 있다. ‘지중해 특산물’로 잘 알려진 올리브 역시 2016년 시험 재배를 시작해 2020년 기준 제주와 전남, 경남 등에서 총 20.86.ha 규모로 재배되고 있다. 올리브 나무는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자랄 수 없지만, 지구온난화 영향 등으로 제주의 겨울철 평년 기온이 높아지면서 별도의 난방 시설 없이도 바깥에서 재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2090년 맛있는 사과 사라져 농촌진흥청은 연평균 기온이 1℃ 오를 때 농작물 재배 가능 지역은 81km 북상하고, 해발고도는 154m 상승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여름철(6~8월) 평균 기온은 2022년 24.5℃로 2002년(22.9℃)보다 1.6℃ 높아졌다. 지난 20년간 농작물 적정 재배지의 위도는 129.6km 북상하고, 해발고도는 246.4m 높아진 셈이다. 게다가 사과의 경우 기온과 이산화탄소 농도가 상승하면 정상 기후 때보다 크기도 작고 당도도 떨어진다. 붉은색을 내는 안토시안 함량도 낮아져 품질도 떨어진다. 2022년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반영한 6대 과일 재배지 변동을 예측한 결과, 사과는 2070년대에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되며 배와 복숭아는 2090년대에 이르러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지금과 같은 맛을 내는 고품질 사과와 배는 2090년대에는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2090년대에는 복숭아도 전 국토의 5.2%만 기후적으로 재배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2024-04-21

[서울대교구 이경상 주교 서품] 서품식 이모저모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돌보며, 활력있는 생명 공동체로 나가기를 함께 다짐하는 자리였다. 4월 11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된 이경상(바오로) 주교의 서품식은 장엄한 전례에 7년 만에 새로운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탄생을 지켜보는 교구민들 설렘과 기쁨이 더해진 자리였다. ◎… 오후 2시 십자가와 복사단을 앞세운 사제단과 주교단이 샤르팡티에의 ‘떼 데움’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입장하자 신자들은 가톨릭성가 304번 ‘보아라 우리의 대사제’와 1번 ‘나는 굳게 믿나이다’를 부르며 영접했다. 주교 서품 예식은 임명장 낭독, 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의 훈시 및 안수와 주교 서품기도 등으로 이어졌다. 이경상 주교 머리에 도유하는 예식과 복음서 수여식, 주교 반지와 주교관, 목장 수여식이 계속됐다. 이후 주교로서 성찬 전례를 집전한 이 주교는 구요비(욥) 주교와 이성효(리노) 주교와 함께 성당 중앙통로를 따라가며 신자들에게 강복했다. ◎… 주교 서품 미사에 이어진 축하식은 꽃다발 증정과 영적 예물 증정 및 교황대사 직무 대행 페르난도 헤이스 몬시뇰,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교회 내외 인사들의 축사 등으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는 영적 예물로 미사·영성체 45만93회, 묵주기도 358만17단, 성체조배 28만9992회, 희생 31만3604회, 주교를 위한 기도 83만4654회를 봉헌했다. ◎… 유인촌(토마스 아퀴나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독한 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변함없는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과 동행하며 우리 사회의 희망을 키우는 따뜻한 목자가 되시리라 믿으며, 정부도 어려운 이웃을 더 세심하게 챙기고 연대의 정신으로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오세훈(스테파노) 서울특별시장은 “하느님께서 꼭 맞는 자리로 주교님을 불러주셨다고 본다”며 “주교님 다짐처럼 서울시도 약자와의 동행 정신으로 늘 함께하겠다”고 했다. ◎… 늘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유머로 미소 짓게 하는 이경상 주교는 축사에서도 예의 재치 있는 말로 참석자들의 웃음을 터트렸다. 사제 성소를 가진 이후 지금까지 기억해야 할 이들을 소개하며 감사를 전한 이 주교는 “온 교구민이 9일 기도를 해주신다는 소식을 듣고 ‘이걸 어떻게 갚지’라는 채무감과 함께 너무도 황송했다”고 말했다. 또 이 주교는 “4년 전 환갑을 지낸 입장에서 몇 년 후 맞이할 은퇴 후 삶을 상상하며 인간적 행복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늦깎이 주교가 됐다”며 “여러분의 기도 응원에 힘입어, 하느님 은총에 기대어 교황님께 드린 충성 서약의 서원을 잘 지키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 제대 앞 가족석에는 누나 이봉림(루치아)씨를 비롯한 가족과 친지들이 나란히 자리해 이 주교의 서품을 지켜봤다. 캐나다 밴쿠버와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서품식을 위해 귀국한 가족들은 ‘양들에게 늘 열려 있는 목자가 되기를’ 기원했다. 이봉림씨는 “어릴 적부터 사제가 되기를 소망한 주교님이 행복하게 사제 생활을 하는 모습이 참으로 감사하다”고 말하고 “많은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빛과 위로를 안기는 주교님이 되시면 좋겠다”고 했다. ◎… 이날 참례자들은 주교좌명동대성당 대성전과 더불어 꼬스트홀에서 서품식을 지켜봤다. 사무처를 비롯한 서울대교구청 직원들은 대성전에 자리하는 참석자들과 내빈의 안내를 맡았고 꼬스트홀에서는 사회사목국 직원들이 참석자들을 안내했다. 특별히 이경상 주교가 주임 사제로 봉직했던 서울 개포동본당에서는 70여 명 신자들이 참례해 이 주교의 주교 서품을 축하했다. 축하 현수막을 준비해 온 신자들은 서품식 후 마당에서 이 주교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기쁜 마음과 함께 아쉬움을 달랬다. 일반인들과 외국인들도 입당 행렬 등을 관심 있게 바라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 주교 서품 미사는 교회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트럼펫과 오르간, 합창이 어우러지며 자아내는 장중하고 화려한 화음의 성가로 더욱 아름다운 전례가 됐다. 이날 합창단은 최호영 신부(요한 사도·가톨릭대 음악과 교수, 주교좌명동대성당 성음악 감독)의 지휘 아래 가톨릭합창단, 서울가톨릭싱어즈, 성 김대건 성가단, 돔앙상블로 구성돼 풍성한 하모니를 선보였다. 축하식에서는 무지카사크라 소년합창단이 S. 템플의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청아하게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 서품식에는 교회 내외빈을 비롯한 정재계 및 문화예술인들도 다수 참석했다. 유인촌 장관은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비롯한 교구의 큰 업무를 진행하시는 데 있어서 주교님 역할이 크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정애(율리아나) 국가보훈부장관은 “예수님과 하느님, 신자들과 우리나라를 사랑하시는 주교님을 굉장히 존경한다”며 “하느님의 크신 축복이 늘 함께하셔서 우리 모두를 구원의 길로 안내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상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은 강금실(마리아) 전 법무부 장관은 “세례를 주신 분이라 인연이 깊고, 서품식에 참석할 수 있어서 더 영광이다”라며 “어둡고 방황 많은 사회에 맑은 영혼의 주교님이 기쁨과 용기를 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배우 이윤지(마리아)씨는 “학생 때 본당에서 뵌 인연이 있는데 당시의 유쾌함이 여전하셔서 너무 좋은 것 같다”면서 “서울대교구에 새 에너지를 불어넣으실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를 전했다.

2024-04-21

가톨릭문학상 본상에 김탁환 소설 「사랑과 혁명」

가톨릭신문사(사장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가 제정·운영하고, 우리은행(은행장 조병규)이 후원하는 제27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 수상작에 김탁환 소설가의 「사랑과 혁명 1·2·3」(2023, 해냄)이, 작품상 수상작에 김재홍(요한 사도) 시인의 「돼지촌의 당당한 돼지가 되어」(2022, 여우난골)가 선정됐다.시상식은 5월 9일 오후 4시 서울 명동 로얄호텔 3층 그랜드볼룸에서 열린다. 시상식은 가톨릭신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실시간 생중계된다. 한국가톨릭문학상은 한국교회에서 처음 마련된 문학상으로 그간 가톨릭정신과 인류 보편적 진리를 문학으로 승화한 작품을 발굴해 왔다. 본상 수상자 김탁환 소설가를 만나 수상 소감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인터뷰 - 본상 수상자 김탁환 작가 본질적인 것 공들여 쓰려는 마음, 문학상으로 격려받았습니다 광주대교구 곡성성당은 1827년 발생한 정해박해 진원지 옥터성지에 세워졌다. 박해 중 곡성은 물론 전라도 전역, 경상도 상주, 충청도와 서울 지역 등지에서 500명 정도 신자가 체포됐다. 심문 과정에서 다른 도에 거주하는 신자들 이름이 밝혀짐에 따라 규모가 커졌는데, 지독하게 고문한 것으로도 악명 높았던 박해다. 광주대교구는 박해 당시 감옥이었던 자리에 제대를 봉헌하고 1958년 본당을 설립했다. 김탁환 작가의 집은 곡성성당 뒷마당과 이웃하고 있다. 철망이 경계일 뿐이어서 고양이들이 집의 텃밭과 성당 마당을 수시로 오간다. 박해 당시에는 김 작가 집을 포함한 성당 일대가 객사와 감옥터였다. 「사랑과 혁명」은 그가 실제 소설 속 공간에서 구상하고 집필한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4년 동안 원고지 약 6000매 분량에 전 3권으로 구성된 대작이다. 김 작가는 작품 속 주인공들이 모진 고문 속에 고통스럽게 지냈던 터에서 성당 종소리를 들으며 기르고 숨고 흐르는 마음을 매일 문장으로 옮겼다. “소설을 쓰면서 ‘영성과 노동’이 중요한 두 개의 키워드였습니다. 이를 독자들과 함께 충분히, 좀 깊게 나누고 싶었습니다. 어떤 것은 짧고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또 어떤 것은 불편하더라도 길게 설명해야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정해박해는 후자입니다. 제대로 서술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는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 수상이 이런 본질적인 것을 공들여 쓰고자 하는 마음을 격려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곡성과의 인연은 2018년에 닿았다. 사회파 소설을 쓰며 안전과 생태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농촌으로 내려갈 마음을 굳혔던 그는 그런 배경에서 그해 곡성에 내려간 기회에 성당과 더불어 옹기교우촌이 있던 당고개 덕실마을을 둘러보게 됐다. 이는 「열녀문의 비밀」과 「대소설의 시대」 등 이전 작품에서 18세기 정조 시절 천주교 신자들 모습을 다루며, ‘언젠가 18세기 신자들 활동이 19세기에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가’를 쓰려던 김 작가 마음을 움직였다. 곡성은 생태적인 삶을 살면서 19세기 천주교 신자들을 그리는 최적의 마을이었다. 이후 곡성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소설의 틀을 마련했고, 2020년 집필에 착수했다. 그리고 2021년 1월 1일 곡성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곡성에서, 그것도 감옥 터였던 성당 옆집을 우연히 구해 글을 쓰게 된 것을 그는 “‘신의 의지’인 것 같다”고 했다. 한양에서 가장 먼 곳이라 할 수 있는 곡성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1815년 경이다. 박해를 피해 강원도와 경상도 등에서 남으로 내려온 신자들이 덕실마을(현 승법리)과 미륵골(현 미산리) 일대에 정착했다. 신앙을 유지하고 생계를 위해 가마터를 열고 옹기를 구워 팔며 은거했다. 낯설고 물선 곳까지 간 사람들은 어떻게 은밀히 마을을 꾸리고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까. 특별히 신유박해부터 정해박해까지 26년 동안 교인들이 이뤘던 공동체 생활에 관심을 돌렸던 김 작가는 “직업도 집도 가족도 다 버리고 떠나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점이 놀라웠다”고 했다. 그는 작품의 핵심을 ‘변화’로 짚는다. 신앙으로 이전에 불가능했던 삶이 바뀌는 변화다. 그것은 자신과 공동체가 변하는 혁명으로 이어진다. “정해박해 때 붙잡힌 곡성의 신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후 가장 낮은 자인 옹기꾼이 되었고, 낯선 곡성에서 마을을 이뤘습니다. 제자들도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다는 건 참으로 힘들고 대단한 용기와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신교 신자인 김 작가는 유년 시절 주일학교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나자렛 예수의 삶이 늘 화두였다. 소설 속 인물 짱구나 길종문이 던지는 물음은 그의 질문이기도 하다. “4년 동안 작품을 쓰며 태어나면서부터 지녔던 신앙을 더 깊고 진하게 고민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김 작가는 “네 권의 복음서를 정말 자세히 읽고 묵상하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사랑과 혁명」에 등장하는 신자들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살아 있는 생명을 보호하고 때로는 원수 같은 사람을 사랑하며 갈등을 평화롭게 극복하려 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다른 길을 찾아 걸었던 그들을 통해 김 작가는 믿음과 희망, 사랑, 바로 신망애의 궁극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들의 태도는 특정 종교 특정 시대에 갇히지 않는다. 이 작품이 종교 소설이지만 사실 생태 소설이기도 하고, 1800년대 역사소설이되 지금을 이야기하는 소설인 이유다. 그는 이번 책이 “작가로서 세 번째 시기를 시작하는 소설 같다”고 말했다. 교단에서 가르치며 글을 쓰던 시기를 거쳐 전업 작가로 사회파 소설 등을 쓰던 도시 소설가에서, 이제는 ‘섬진강 대학교 4학년’ 마을 소설가로서 말이다. “영성과 노동을 두 날개처럼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사랑과 혁명」은 그런 삶의 첫 열매”라는 김 작가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천주교에 대한 소설을 또 쓰고 싶다”고 했다. ◆ 김탁환 작가는 1968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김탁환 작가는 서울대 국어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해군사관학교에서 해양문학을 가르치며 첫 장편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 이야기」와 첫 역사소설 「불멸의 이순신」을 썼다. 건양대, 한남대,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를 거치며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소설들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31편의 장편소설과 3권의 단편집, 3편의 장편 동화를 냈다. 「불멸의 이순신」과 「나, 황진이」, 「허균, 최후의 19일」이 드라마로 제작됐으며 「열녀문의 비밀」과 「노서아 가비」, 「조선마술사」, 「대장 김창수」는 영화로 제작됐다. 요산김정한문학상, 카멜레온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제27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 수상작 「사랑과 혁명 1·2·3」은 ‘조선의 암흑기’라 불리던 19세기 초 다른 세상을 꿈꾸며 천주를 믿었던 사람들의 사랑과 소망 그리고 기다림을 담고 있다. 27년간 역사소설과 사회파 소설을 오가며 치열하게 창작 활동을 해온 김탁환 작가의 서른한 번째 장편소설로서, 원고지 약 6000매 분량 전 3권으로 구성된 대작이다. 1827년 정해박해로 시선을 돌린 작품은 땅만을 섬기던 농부 들녘이 하늘만을 믿던 아가다를 만나 세상이 금하는 신을 믿어가는 과정과 그 신을 믿기 위해 목숨 건 교우들과 이들을 추적하고 탄압하는 무리의 팽팽한 갈등을 그리고 있다. 순교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치명록’ 형식을 차용해 액자식 구성을 띤 책은 정해박해 전후에 발생한 천주교 박해를 배경으로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신자들 시간을 따라간다. 1권에서는 곡성 교우촌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옹기를 만들며 사랑을 빚는 시간을, 2권에서는 천주교인과 첩자 군관이 숨고 달아나고 쫓고 쫓는 추적의 시간을, 3권에서는 옥 안팎에서 다시 사제를 모셔 오기 위한 움직임과 기다림이 펼쳐진다. 등장인물들은 인간 존엄을 지키고 살아 있는 생명을 보호하고 때로는 원수 같은 사람을 사랑하며 갈등을 평화롭게 극복하려 한다. 그들의 이런 태도는 특정 종교에 갇히지 않고, 특정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 책이 ‘종교소설이되 종교소설이 아니고 역사소설이되 역사소설이 아닌’ 이유다. 최근 사회 내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관심과 생태환경 문제에 천착해 온 작가 세계의 확장을 품고 있기도 하다. 종교와 상관없이 억압된 사회에서 인간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에게 묵묵한 수호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책이다. ◆ 제27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 심사평 "정해박해 통해 ‘인간다운 삶’ 성찰하는 작품 「사랑과 혁명 1·2·3」은 1827년 전남 곡성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 옥사인 정해박해를 다루며 사랑으로 혁명을 이룰 가능성과 그 열망에의 서사다. 그리고 고난과 좌절, ‘깊은 고통’의 이야기다. 들녘의 사람들이 하늘의 뜻과 소통하며 정녕 인간다운 삶의 지평을 열고자 하는 자연발생적 소망을 무도한 정권은 혹독하게 억압하고 치죄한다. 500여 명 교인이 체포되고 16명이 치명해 순교하는 정해박해 사건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신분과 성별의 차이, 경제적 질곡 등으로 고난받아야 하는 현실을 배경으로 삼는다. 그런 상황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들녘’이나 ‘짱구’ 같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변화의 가능성을 탐문하고 십자가의 길로 접어든다. 빛과 어둠, 열망과 좌절이 혼돈처럼 어우러진 그 이야기를 작가는 매우 촘촘하게 그려낸다. 많은 자료를 성실하게 고증하고, 그 사실들을 넘나들며 상상의 빛을 쏘아 매우 고통스러웠던 천주교회사의 한 장면을 형상화했다. 이 소설은 단지 정해박해 사건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천주교 순교사에서 머물지 않는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 사랑 없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독자를 오래 성찰하게 하기 때문이다. 고전 산문의 율격과 현대 산문의 리듬 사이를 가로지르며 독특한 소설 문장의 숨결을 형성한 것도 인상적이다. 그 숨결로 빚어진 문장들은 작중 옹기촌에서 신자들이 구운 ‘잘 빚어진 항아리’처럼 빛난다. 역사소설로 오랜 세월 내공을 쌓은 작가의 능란한 솜씨가 빛나는 역작이다. 생태주의적 색채가 진하게 깔린 모습 또한 볼 수 있다. < 심사위원 - 김산춘 신부, 구중서 평론가, 신달자 시인, 구자명 소설가, 우찬제 평론가 >

2024-04-21

“사목 힘겨울 때도, 주님 믿고 따르며 기쁘게 걸어갑니다”

첫 직장, 첫 학교, 첫 결혼 생활. 기대에 부풀어 첫발을 내디디던 그때와 달리 사명감이 무뎌지고 마는 건 인간의 나약함 때문일까. ‘3년차 증후군’이라는 시쳇말처럼 어느 길이든 꼭 3년째면 “여긴 내 길이 아니야”라며 중도 하차하는 사람이 있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직무사제직을 살아내는 본당 신부들은 어떨까. 자신 보다 사람들을 돌보며 ‘내어주는’ 삶을 살아가는3년차 본당 사제 이준혁 신부(바오로·서울 이문동본당 부주임)의 하루를 통해 알아봤다. ■ 성당이 곧 집 “이번 주는 유독 경황이 없네요.” 4월 12일 서울 이문동성당 사제관. 낮 묵상 중이던 이준혁 신부가 쑥스러운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오늘은 새벽미사를 주례하고 사제관에 돌아와 사무를 마치고 미용실을 다녀왔더니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이 신부는 “인터뷰를 마치면 곧장 한 신자와 상담 약속이 있어 나가 봐야 한다”며 벽에 걸린 사목계획표를 가리키며 웃었다. 매일 최소 1대씩 있는 미사 집전, 본당 단체 회합 참석을 비롯해 신자 개개인과의 사목 상담 및 만남이 나날이 일과로 주어지는 본당 신부 생활. 이번 주는 특히 일이 많다. 어제도 새벽미사 주례 후 짐 정리를 마치자 그나마 개인 시간이 주어지는 낮에도 여유 없이 보냈다. 신임 교구 보좌주교 서품식에 참례했기 때문이다. 5시가 넘어 사제관으로 돌아와, 6시 혼배 면담 및 성사, 7시30분 본당 미사, 8시30분 중고등부 회합까지 일정이 이어졌다. 또 이번 달부터는 평일 저녁에 첫영성체 학생들의 부모 면담이 있다. 면담은 오전에도 종종 잡혀 개인 시간을 갖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성당이 곧 집이니까요.” 직장과 삶이 구분된 ‘워라밸’을 중시하는 현대인들…. “그러한 직업 생활과 철저히 다른 것이 사목자의 삶”이라고 이 신부는 말했다. 성당이 출퇴근하는 직장이 아니라 먹고 자고 생활하는 집 자체가 되어 본당 공동체를 온 삶으로 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목적 고민도 생활 내내 계속된다. 6명뿐인 교리교사로 증가 추세인 초·중·고등부 학생들을 어떻게 돌볼 수 있을지, 새로 들어온 청년들과 기존 청년들 사이를 어떻게 중재하고 사이좋게 묶어줄 수 있을지 그저 기도 속에서 답을 구한다. 주임신부와의 식사 시간은 그냥 밥을 먹기보다 그러한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얻는 자리다. “자기 의견을 제시하기보다 사람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신부의 역할”이라며 이 신부는 “최대한 경청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로 평일 저녁에 열리는 공동체 회합, 주일 청년 미사, 성가대 모임에는 꼭 참석한다. 또 먼저 나서서 청년들과 만남의 자리를 열기도 한다. ■ 가슴 뛰게 하는 것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 신부님 덕분에 주말이면 성당을 찾게 돼요.” 4월 13일, 견학차 서울 아현동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을 찾은 본당 청년들이 잔뜩 들뜬 목소리로 입을 모았다. 청년들이 전례 공부 겸 신앙 안에서 친교를 다지고 주님과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게 해주고자 이 신부가 마련한 행사다. 본당 대학생 및 청년 사목 담당 사제로서 이 신부도 “청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큰 기쁨”이라고 말한다. 자기 단체에만 충실하기 쉬운 청년들이 사제의 노력을 통해 다른 청년 단체와 교류하게 되고, 교리교사 등 본당 활동에 나서기는 어려워하는 청년들이 공동체와 거리감을 느끼지 않고 함께할 때 사목자로서 가장 뿌듯하다는 것이다. 사제의 길을 걷길 잘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은 이렇듯 예수님이 필요한 이웃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기쁨이다. 이 신부는 “특히 봉성체를 다닐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고백헀다. 주택가인 이문동, 도로변이 아닌 집을 들르려면 차를 탔다가도 굽이굽이 골목길을 직접 걷기도 해야 하지만 걸음에는 힘이 차오른다. 이 신부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한테도 ‘신부님이 잊지 않고 찾아와 주니 너무 감사하다’며 글썽이는 노인들의 뭉클한 진심이 전해져서”라고 말했다. “신부님 덕분에 그 할머님이 얼마나 평안하게 가셨는지 몰라요.” 한 선종 신자의 냉담했던 자녀가 이 신부의 봉성체 활동으로 다시 미사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희소식은 지금도 이 신부를 가슴 뛰게 한다. 이 신부는 “위로이신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선사해 주려고 내가 부르심을 받았구나" 하는 벅찬 감동에 오히려 제가 힘을 받는다”며 웃었다. ■ 사제의 삶이 처음이라 “신자들이 저 때문에 상처받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삶에는 예행연습이 없다. 이 신부도 사목자는 처음이라 많은 것이 힘겨울 때가 있다. 끊임없이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제의 삶이기에, 가장 힘겨운 것도 사람들과의 관계다. “그저 경청해야 하기에 가끔은 너무 많은 말을 듣게 되고,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 식별이 어려워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지 못할 때가 있다”고 이 신부는 토로했다. 잘해 주려던 진심이 오해로 돌아올 때 무겁게 짓누르는 속상함은 동료 사제들도 공감하는 사목자의 시련이다. 한때는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며 종일 침대에 눕고만 싶기도 했지만, 이 신부는 그때마다 서품받을 때의 첫 마음으로 돌아간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까지도 용서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선종일인 2005년 4월 2일을 되새기며, 가장 낮은 자세로 사람들과 함께하려는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 7,14) 성사와 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사제 생활의 본분대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원동력도 늘 말씀에서 얻는다. 힘들 때마다 첫 마음으로 돌아가듯, 늘 원천에서 계시면서 끊임없이 격려하시는 주님께 의탁하며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성당을 거닐며 바치는 묵주기도 속에 생각이 정리되기도 한다. 또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오롯이 고독을 마주하며 바치는 묵상기도는 예수님이 이 신부 내면으로 말씀을 거시는 창구가 된다. “사제가 아닌 길을 걸었다면” 하는 회의감도 어느새 가라앉는다. 사람들의 어긋난 신체를 맞춰 주는 물리치료사도 한때 꿈꿨지만,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사람들 내면을 아물게 하는 영적 치료사로서의 기쁨이 더 크게 차오른다. 그런 이 신부의 꿈은 여느 사제와 다르지 않다. 인간관계에 지칠 때 조용히 마음의 문을 닫기보다 더욱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제다운 사제를 향해 나아갈 뿐이다. “마음의 문을 닫기보다 예수님처럼 기다릴 줄 아는 사제로 소임하고 싶습니다.”

2024-04-21

“시의 길을 걷는 매순간, 하느님께서 시를 주실 때까지 기도하곤 합니다”

가톨릭신문사(사장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가 제정·운영하고, 우리은행(은행장 조병규)이 후원하는 제27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 수상작에 김탁환 소설가의 「사랑과 혁명 1·2·3」(2023, 해냄)이, 작품상 수상작에 김재홍(요한 사도) 시인의 「돼지촌의 당당한 돼지가 되어」(2022, 여우난골)가 선정됐다.시상식은 5월 9일 오후 4시 서울 명동 로얄호텔 3층 그랜드볼룸에서 열린다. 시상식은 가톨릭신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실시간 생중계된다. 한국가톨릭문학상은 한국교회에서 처음 마련된 문학상으로 그간 가톨릭정신과 인류 보편적 진리를 문학으로 승화한 작품을 발굴해 왔다. 작품상 수상자 김재홍(요한 사도) 시인을 만나 수상 소감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늘 진실하게 내면을 들여다보며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제27회 가톨릭문학상 작품상을 수상한 김재홍(요한 사도)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길을 이같이 걷겠다고 말했다. 시를 쓰기 시작한 지 30여 년이 지난 47살, 늦깎이로 시작한 신앙생활이었지만 뒤늦게 그의 삶에 들어온 신앙은 시의 토대를 단단하게 메꿨다. “시란 본래 가장 낮고 약한 곳에 머물러 온 예술입니다. 저 역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즉 낮음에 주목해 시적 언어로 풀어낸 시인이었죠. 하지만 하느님을 만나고 난 뒤 저의 시는 더욱 풍요로워졌습니다. 저보다 앞서서 낮은 곳을 향했던 많은 사람들을 신앙생활 속에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 것들에서 받은 감화가 자연스럽게 제 시에 녹아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네 번째 시집 「돼지촌의 당당한 돼지가 되어」는 “현대 인간의 존재 가치를 추구하는 철학적 탐색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제27회 가톨릭문학상 작품상에 선정됐다. 물질에 경도돼 영혼을 잃어 가는 현대 사회를 바라보며 시인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천착하고 시를 통해 질문을 던진다. 철학적이고 무거울 수 있는 주제들이지만 시인은 자주 가던 식당, 출퇴근길에 오가던 지하철역, 후배 시인의 장례식장 등 일상적인 소재에서 이야기를 꺼낸다. 시를 통해 만나는 익숙한 풍경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고민들을 쉽게 꺼내놓을 수 있게 만든다. ‘당신의 고민은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다’라고 위로를 건네며 말이다. “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오랫동안 하셨던 식당이 주차장으로 바뀐 것을 봤습니다. ‘인간의 죽음은 보이는 것들을 사라지게 하지만 과연 모든 게 사라진 것일까? 슬프기만 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어 시를 받아 적기 시작했죠. 이처럼 제게 시적 순간은 불현듯 찾아오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시를 쓰는 게 아닌 ‘받아 적는다’고 표현합니다.” 종이 위에 새겨진 몇 개의 단어에는 시인이 진실하게 바라본 내면, 삶에 대한 성찰이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시로 완성된다. 그 한 단어의 무게감을 잘 알고 있는 김 시인은 늘 기도하고 반성하며 시인의 길을 걷고 있다. 이번 수상으로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는 김 시인은 더욱 열심히 기도하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하느님께서 저를 부려 한 알의 소금 알갱이가 되는 시를 주실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끝내 한 줄의 시구를 주시지 않더라도 기도로써 이 세상에서 하느님 사랑의 손길을 갈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와 함께 시의 길을 걸으며 오늘도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 김재홍 시인은 1968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울산에서 성장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석사),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MBC에서 오랫동안 전시와 공연 PD로 일하면서도 습작을 이어갔고 2003년 중앙일보에 시 ‘메히아’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메히아」와 「다큐멘터리의 눈」, 「주름, 펼치는」이 있다. 2011년과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세대예술인력으로 선정됐고 2017년에는 박두진 문학상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시인협회 사무총장과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기획홍보위원장을 맡으며 대학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다. ◆ 「돼지촌의 당당한 돼지가 되어」는 삶의 현장에서 소외된 주체의 뜨거운 힘을 ‘다큐멘터리의 눈’으로 포착하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시 세계를 구축해 온 김재홍 시인은 새 시집 「돼지촌의 당당한 돼지가 되어」에서 ‘근원’에 대한 가장 솔직한 감정과 해석을 담아냈다. 시인의 물리적 고향을 의미하는 ‘돼지촌’은 그가 견지해 온 묘사의 힘을 통해 현실의 남루함을 그대로 안고도 자연스럽게 유토피아로 변화 해나간다. 그리고 그곳은 시인과 독자 모두가 언젠가 돌아가야 할 가장 작으면서도 따뜻한 곳의 형태를 띠게 된다. 시인은 그런 친밀하면서도 낯선 공간의 신비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 제27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작품상 심사평 「돼지촌의 당당한 돼지가 되어」를 펴낸 김재홍(요한 사도) 시인의 시는 현대 인간의 존재 가치를 추구하는 철학적 탐색의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물질 치중의 소비문화가 빼앗아 가는 인간의 영혼을 되찾으려는 이상을 지니고 있다. 이 희망의 구원을 위해 김 시인의 시는 초월적인 영원의 차원에 관념적으로 날아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일생 막일만 하는 어머니, 잠재적 의도도 어떤 가능성도 변곡점도 없이, 늙어가는 육신에 영혼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오히려 존재 근원에 연결돼 생동하고 있는, 일상적 삶의 구체성이다. 표정도 말도 없는 오히려 무한히 큰 영혼이다. 시집에서 김 시인은 가톨릭적 성향의 표현 방식을 취하지 않고도 가톨릭적 영성을 풍부하게 담보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흔히 종래의 가톨릭 시문학이 교회의 상징적 기호나 체계를 사용하여 신앙적 추구와 성찰을 표현하는데 비해, 시인은 현실 생활에서 육화된 주제를 건져 올려 종교적 표현의 끼어듦이 없는 일상적 언어로 가톨릭적 본질을 자연스럽게 탐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 심사위원 - 김산춘 신부, 구중서 평론가, 신달자 시인, 구자명 소설가, 우찬제 평론가 >

2024-04-21

[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변진의 작가

제가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렸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이 보면 왜 이렇게 이야기하나 싶겠지만, 제 인생이 그랬어요. 그림은 제 언니가 잘 그렸어요. 제 남동생도 그림에 재주가 있었어요. 저만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못 받았어요. 대신 저는 어디에나 낙서를 했어요. 사람을 주로 그렸지요. 저는 그게 그림인 줄 알았어요.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 그렇게 예고에 들어갔는데, 동급생들은 다 천재더라고요. ‘아 그림은 저런 애들이 그리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고 저는 이론 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학을 예술학과로 진학했어요. 그런데 당시 정부에서 서울대 통폐합을 하면서 예술학과를 없앴어요. 문리대 미학과나 인류학과 아니면 미대 안에 있는 응용미술과나 조소과, 회화과로 전과해야 했어요. 그래도 예고를 나왔으니 회화과로 전과했어요. 하느님께서 ‘진의야, 네가 갈 길은 여기야’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대학 졸업 후 결혼하고 아이를 둘 낳았는데, 이상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더라고요. 한양여대 전임강사로 들어간 후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렸어요. 동료 선생님이 제가 그림을 열심히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더러 ‘대성하실 거예요’라고 하더라고요. 이후 수원대로 옮기고 나서는 사람에 대해 열심히 연구했어요. 크로키도 정말 많이 그리고요. 하느님께서 그림 그리는 훈련을 시킨 것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선생님들 예고 시절 정말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어요. 서세옥 화백, 장선백 화백, 문학진 화백, 정창섭 화백 등이 당시 제 선생님들이셨어요. 성화도 많이 그린 분들이고요. 어느 분이 말씀하셨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 선생님께서 ‘그림을 그리려면 모든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을 그림으로 바라보라’고 하셨어요. 대상을 바라보며 나름 그림을 구상하는 거죠. 좋은 훈련이 됐어요. 그리고 ‘전시를 많이 보고 그림을 보는 눈을 열라’고도 하셨어요. 또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도 하셨어요. 많이 돌아다녀야 눈에 보이는 것을 다 담을 수 있다고요. 마지막으로는 빠른 음악을 들으면 좋다고 하셨어요. 느린 음악은 몸을 나태하게 한다고요. 이 가르침을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참 좋은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이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처음에는 잘 안 믿었어요. 그런데 한 학생이 나중에 상을 받고 나서 제가 강조했던 내용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해주더라고요. 아버지께 물려받은 신앙 저는 아버지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았어요. 전에 고모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 아버지의 외할머니가 흥선대원군 부인의 대모였다고 해요. 그런 신앙의 이력이 있는 만큼 아버지께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셨어요. 베네딕도 수도회가 백동, 지금의 혜화동에 수도원을 지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수사님들이 운영하는 직업학교에도 다니셨어요. 당시 젊은이들이 일거리가 없으니 수사님들이 기술을 가르치신 거죠. 아버지는 거기서 목수 일을 배워서 가구공장을 차리셨어요. 아버지께서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큰 은혜를 입은 거지요. 오랜 신앙의 역사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미사에 가자고 하면 두말 안 하고 따라나섰어요. 50대에 들어선 매일 미사에 참례했어요. 중간에 빠지기도 했지만 한번도 주일 미사를 거르진 않았어요.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했죠. 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딸’이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아버지께서 좋은 말씀도 해주시고 저를 다정하게 보살피며 키우셨어요. 어머니의 사랑보다는 아버지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신앙도요. 결국 하느님께서 저를 부르셨던 것이겠죠. 추상에서 구상으로 저는 처음에는 추상화를 많이 그렸어요. 자유롭게 창작을 하고 싶어서였죠. 그런데 1989년 가톨릭미술가회에 입회하고 나서는 구상 쪽으로 전향하게 됐어요. 종교적인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데 추상화로는 어렵더라고요. 한번은 가톨릭미술가회 전시회를 위한 그림을 그렸는데, 최종태 선생님이 ‘이게 사람인가?’ 하시더라고요. 종교미술을 추상보다는 좀 더 직관적으로 보여야 하잖아요? 그렇게 추상에서 구상으로 넘어가는 데 10년이 걸렸어요. 전향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에요. 정말 노력을 많이 했어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크로키 작업을 많이 한 것이 도움이 됐어요. 배론성지에 ‘순교자’라는 작품을 봉헌한 후 다양한 곳에 성미술 작품을 봉헌했어요. 중서울 사제평생교육원이나 가톨릭대학교에 많이 보냈지요. 특히 대작을 많이 했어요.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동안 성경을 8번 통독하고 이제 9번째 읽고 있어요. 이젠 크고 장엄한 그림보다는 어린이를 위한 성경 그림책에 들어갈 만한 그림을 그리려고 해요. 꼭 어린이가 아니라도 성경 내용이 어려운 분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요. 말씀드렸듯이, 저는 하느님께서 저를 이만큼 키워주셨다고 생각해요. 미술 쪽으로 공부를 시키고 그림을 그리게 하시고요. 저의 아버지를 통해서요. 매일 묵주기도를 드리며 요셉 성인께도 기도드리고 있어요. ◆ 변진의 작가는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고에서 그림을 시작했으며 서울대 회화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프랑스 Ecole du Louvre에서 수학했으며,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육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수많은 개인전과 단체전, 자선전에 참여했다. 1999년 배론성지에 봉헌한 ‘순교자’로 제5회 가톨릭미술상 회화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현재 수원대 명예교수이자 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4-04-21

[순례, 걷고 기도하고] 대전교구 공세리성지성당

경기 평택과 충남 아산을 잇는 아산만방조제를 지나며 올려본 하늘.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구름은 어디 갔나 싶었는데 공세리성당을 들어서며 답을 찾았다. 진입로를 벗 삼아 선 십여 그루 벚나무에 구름이 내려앉았다. 벚꽃 구름 너머 야트막한 언덕은 꽃 잔디가 분홍빛 바다를 이뤘다. 대전교구 공세리성지성당이 봄의 절정 한 가운데서 순례자를 반긴다. 조선의 공세 창고, ‘복음의 창고’로 거듭나다 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보려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성당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곳은 조선시대 충청 서남부 40개 마을에서 거둔 조세를 보관하던 창고였다. 공세리라는 이름도 공세곶 창고지에서 비롯됐다. 이곳이 ‘복음의 창고’로 새로 난 것은 1895년 이곳에 부임한 에밀 드비즈(한국명 성일론, 파리 외방 전교회) 신부에 의해서다. 공세리에서만 39년간 사목한 드비즈 신부는 1922년 버려진 공세 창고 터에 하느님의 집을 짓는다. 언덕을 오르자 고딕풍의 붉은 벽돌 성당이 350년 된 팽나무와 어우러져 모습을 드러낸다. 종탑 위 십자가가 푸른 하늘을 만나 더욱 높아 보인다. 성당 내부는 소박하다. 제대 뒤 정중앙에는 베네딕토 성인상이 놓여 있다. 성당 건립 당시 베네딕토 성인 패를 묻고 3일간 기도한 다음 성당을 지어 무탈히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고 그 은덕에 감사하며 성인상을 모셨다고 전해진다. 베네딕토 성인은 공세리본당의 주보성인이다. “내 평생 천주를 공경함을 실답게 못하였더니 오늘 주께서 나를 부르셨다” 공세리는 박해시기 신앙 요충지였던 충청 내포지방이 시작되는 곳이다. 성당이 들어서기 전부터 이곳에서 수많은 신자가 잡혀 서울, 수원, 공주 등지에서 순교한다. 신유박해 때는 당시 18세이던 하 바르바라가 아산 최초의 순교자로 하늘나라에 올랐고, 병인박해 때는 걸매리에서 신앙생활을 한 박의서(사바)와 박원서(마르코), 박익서 등 박씨 삼 형제를 비롯해 부부 순교자인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그리고 삼부자인 이 요한, 이 베드로, 이 프란치스코가 영광스럽게 순교했다. 아산 출신 순교자는 이들을 포함해 모두 32명이다. 성모상을 곁에 두고 소로를 따라 걸으면 납골식 순교자 현양탑과 현양비를 마주한다. 현양비 앞에서 하느님의 종 박원서 순교자의 말씀을 묵상한다. “내 평생 천주를 공경함을 실답게 못하였더니 오늘 주께서 나를 부르셨다.” 순교의 터전이자 믿음 선포의 거룩한 자리, 그곳에 다시 봄이 오다 현양탑 너머 공세리성당과 단짝인 듯한 모습의 건물은 성지박물관이다. 옛 사제관을 개보수한 박물관은 1890년 공세리성당의 전신인 신창 간양골성당이 설립된 때부터 현재까지 한국교회 신앙의 못자리이자 순교의 터전이었던 내포교회 순교사와 순교자들의 일생을 다양한 전시품을 통해 보여준다. 에밀 드비즈 신부의 유품과 신부가 개발 전수한 이명래 고약도 소개한다. 박물관은 6·25전쟁의 아픔도 고스란히 안고 있다. 공산군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 8대 주임 뷜토 오 신부는 “양떼를 두고 목자가 떠날 수 없다”며 피난을 마다하고 북으로 끌려가 결국 순교했다. 뷜토 오 신부가 신자들의 만류를 뿌리치며 기꺼이 순교의 길을 택했던 그 사제관 2층, 지금은 박물관 2층 난간에 섰다. 공세리성당과 성모상, 널따란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봄을 반기는 이들의 탄성이 마당에 가득하다. 순교자들이 믿음을 증거한 터전이었고 창고 터가 헐리고 하느님의 집이 들어섰을 때는 믿음을 선포한 자리였다. 6·25전쟁 때는 양떼를 사랑한 목자가 기꺼이 순교의 길을 택한 거룩한 장소였다. 한결같이 그 모습을 내려다본 공세리성당의 십자가를, 그보다 훨씬 먼저 그 자리에서 묵묵히 세월의 풍상을 견디며 함께 한 고목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 순례 길잡이 공세리성지성당은 충청남도 지정 기념물 144호이면서 2005년 한국관광공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한 성당이다. 350년이 넘는 국가 보호수가 세 그루나 있고 그에 버금가는 오래된 거목들이 성당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성당으로 오르는 길 왼편으로는 피정의 집이 들어서 있다. 순례자를 위한 미사는 평일과 토요일 오전 11시, 주일은 오전 11시30분 봉헌된다. 벚꽃에 이어 철쭉이 활짝 피어날 5월에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5월 11일 오후 2시 ‘제의 전시회’, 5월 12일 오후 2시에는 ‘음악회와 함께하는 고해성사’가 있다. 6월 1일 오전 10시30분에는 대전교구장 김종수(아우구스티노) 주교 주례로 ‘2024 공세리 성체거동’ 행사가 열린다. ※ 순례 문의 : 041-533-8181

2024-04-14

예수님은 청년 삶의 나침반, 그분과의 대화로 영적 갈증 채워요

대개 청년 신자들은 기도보다 생활성가 찬양과 같은 활동만을 선호할 것이라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영성보다 활동 중심적인 본당 청년 활동, 표면적으로만 접하는 신앙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청년도 많다.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하는 방법을 모르겠다”거나 “삶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는지 배운 적이 없다”며 교회에서 멀어지는 청년도 있다. 예수회가 전 세계에서 펼치는 평신도 영성 활동인 교황님 기도 네트워크(한국 책임자 손우배 요셉 신부, 이하 기도의 사도직)는 개인별 기도 교육, 영신 상담 등을 통해 청년들의 영적 갈증을 채워주고 있다. 예수회원들 도움으로 예수와의 인격적 만남으로 나아가는 기도의 사도직 청년 회원들은 그들이 방황하지 않도록 나침반처럼 안내하시는 주님을 비로소 체험하고 있었다. ■ ‘그분과의 진지한 만남 추구’ 4월 5일 저녁 7시30분, 서울 예수회센터에서 장엄한 미사가 봉헌됐다. 오르간 성가가 울려 펴지는 가운데 십자고상, 예수성심 상본, 성경을 치켜들고 입당한 건 다름 아닌 청년 복사단원들. 전례 중 제대와 복음서, 신자들을 향해 분향하는 것도 빠지지 않았다. 기도의 사도직은 매달 첫 금요일 바치는 예수 성심 신심 미사를 장엄미사로 봉헌한다. ‘전통 전례는 고리타분해서 싫어할 것’이라는 흔한 예상과 달리 청년 회원들의 호응이 높다. 전통 전례를 경험하기 힘든 청년 회원들은 “가톨릭교회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가치로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고 늘 말한다. “피어오르는 향을 보면 주님에게서 오는 크나큰 위로가 느껴져요. 한 달간 삶 속 힘들었던 것들이 주님께 봉헌돼 올라가는 기분이거든요.” 미사에 참례한 60명가량의 회원 중 청년은 무려 20여 명. 한창인 봄 날씨에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즐기러 가기보다 성당으로 발걸음한 이유는 주님과의 진지한 만남을 추구해서다. 미사에 앞서 5시30분 시작된 기도 묵상과 성시간 전례 때부터 한 명 한 명 모여들었다. 신앙과 괴리되기 쉬운 분주한 삶…. 청년들은 성체 조배와 강복을 통해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예수님을 느끼고 그분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복사기를 돌리거나 상자를 옮기는 등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작업에서도 주님께서 자신에게 바라시는 뜻을 찾고, 일상을 예수성심에 봉헌하는 기도의 사도직 영성을 실천하면서 그분과의 인격적 만남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관상기도에서 마주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답답함 가운데 예수님이 함께 계시니 어느 순간 괜찮아졌던 체험처럼 청년들은 예수님을 만나며 그간 느껴본 적 없던 근본적 안정감을 맛본다. 2016년부터 예수 성심 신심 미사에 참례해 온 이원준(유스티노·37·서울 도곡동본당)씨는 “예수님을 내 삶에서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내 삶에서 구체적으로 그분 뜻에 따라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조금씩 느끼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격적으로 오신 그분을 찾기 전의 삶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평화”라고 덧붙였다. ■ 기도하는 방법 “염경기도 외에 별다른 기도를 해본 적이 없었어요.” 청년 회원들은 레지오, 성서모임, 이런저런 봉사에 몸담았던 사람이 대다수다. “아무리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신앙 지식을 쌓아도 채워지지 않던 목마름은 바로 기도에 대한 갈구였다”는 말은 그들의 공통된 고백이다. 신앙인에게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청년들도 알고 있지만 정작 어떻게 기도하는지는 잘 모른다. 기도의 사도직은 이렇듯 깊이 있는 기도와 친숙하지 않은 청년들을 위해 ‘기도 학교’ 등을 열고 있다. 기도 순서가 복잡하고 일반 청년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신수련을 가르쳐 주고 묵상과 성찰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주는 장이다. 청년들은 예수회원들에게서 가장 기초적인 것들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침을 받는다. 본질적으로 예수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위해 자신의 내면을 비우는 침묵, 영으로 깊이 침잠하게 하는 호흡법, 자세를 배운다. 그러다 보면 양심 및 자아 성찰, 향심기도, 렉시오 디비나 등 깊이 있는 기도법으로 어느새 자연스럽게 나아가게 된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식이 아니라 청년 개개인에게 영적 동반자로 함께하는 여정이다. 청년들은 예수회원들이 매번 내주는 기도 숙제를 받아 각자 수행하게 된다. 청년들을 위한 개인 면담도 이뤄진다. 면담에서는 막연한 체험을 듣기보다 청년들에게 기도 느낌이 어땠는지, 관상에 자신의 모습이 투영됐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도록 이끈다. 기도의 사도직 한국 부책임자 최준열(다미아노) 신부는 “늘 내면에 무언가 갈망이 있음을 느끼는 청년들에게 그 실체가 예수님임을 알려주는 것이 기도 교육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돈, 지위 등 저마다 좇는 목적을 이뤄도 허전한 마음은 예수님과의 밀접한 대화로 비로소 채워지는 것”이라고 전했다. ■ 나눌 수 있는 분위기 “‘펠릭스 쿨파’(Felix Culpa, 복된 죄)라고 하잖아. 어쩌면 우리가 죄인이기에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닐까 싶어.” 학업, 취업, 직장생활…. 인생에서 유독 캄캄한 시련만 몰아치는 시기를 보내는 청년들은 언제나 마음속으로 “하느님, 함께 있어 주세요”하고 되뇐다. 하지만 그를 다른 청년들과 나누기는 쉽지 않다. 본당 청년 모임 뒤풀이 자리에서만 해도 신앙 이야기를 꺼내려다가도 “오글거리니 그만두자”하고 단념한다. 하지만 기도의 사도직 청년 회원들은 함께 자연스럽게 신앙 이야기를 나눈다. 먼저 청년들에게 본인의 기도 체험을 나누는 예수회원들이 조성한 나눔의 문화다. 반응하는 삶과 응답하는 삶은 어떻게 다른지, 각자 어떻게 자기 삶에 응답하고 있는지 식사 자리, 술자리에서도 물꼬를 트는 예수회원들을 따라 청년들도 자유롭게 털어놓을 용기를 얻는다. 3년째 회원으로 함께하는 양은혜(그라시아·36·의정부교구 일산본당)씨는 “‘우리가 이렇게 서로 도와주라고 하느님이 만나도록 엮어주셨나 보다’라는 등 소소한 일상에서도 청년들이 하느님 현존을 함께 찾아내고 나눌 수 있어 큰 위로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 교황님 기도 네트워크는 1844년 ‘기도의 사도직’(Apostleship of Pray)으로 출발한 교황님 기도 네트워크는 이냐시오 영신수련을 일상에서 살아가며 예수성심과 일치하는 삶을 실천한다. 회원들은 ▲성체성사와 매일 봉헌기도 및 성찰기도 봉헌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에 대한 믿음 ▲교황 매달 기도지향 동참 등 노력으로 평범한 일상을 예수에게 봉헌하고 신앙과 일상을 통합하는 평신도 영성을 살아내고 있다.

2024-04-14
기사 더보기더보기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