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통계로 본 사목적 시사점(1)] 저출생 고령화

주교회의(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는 4월 19일「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3」을 펴냈다. 2023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집계된 통계는 한국교회 신자와 성직자·신학생 현황, 교회 내 성사 활동과 신앙 교육, 사회사업과 해외 파견 현황 등을 파악해 사목 정책 수립에 반영하기 위한 자료다. 통계 주요 지표와 함께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사목적 시사점을 제언한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3 분석 보고서’(이하 분석 보고서) 내용을 종합, 소개한다. (1) 한국사회 보다 더 깊고 넓게 발견되는 ‘저출생 고령화’ 해마다「한국 천주교회 통계」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한국 사회가 경험하는 저출생 고령화 현상이 교회 안에서 더 깊고 더 넓게 발견된다는 점이다. 2023년 현재 19세 이하 신자 비율은 전체 신자 중 6.7%인 반면 65세 이상 신자 비율은 26.1%에 달하고 격차는 해마다 커지고 있다. 65세 이상 신자 비율 26.1%는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 18.2%(통계청 ‘2023 한국의 사회지표’, 2024년 3월 발표) 보다 6% 포인트 높다. 2023년 0~4세 신자는 2만 4860명으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4만 9949명)보다 50.2% 감소했다. 반면 65~69세 신자는 2019년 37만 1792명 보다 40.8% 늘어난 52만 3305명이었다. 핵심적 원인은 물론 2023년 현재 합계 출산율 0.72명이라는 극단적으로 낮은 출산율에 기인한 것이지만, 한편으로 교회가 이런 현실에 부합한 사목적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 자성이 필요하다. 유아 세례의 중요성에 대한 교리교육과 아울러, 영유아 교육, 주일학교, 청년·청소년 사목 등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전반적이고 총체적인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현재 노인 세대 신자가 많고, 성인 세례 비율이 높다고 해서, 젊은 세대가 나이가 들면 교회에 입문할 것이라는 예측은 비현실적이다. 아울러 군종교구를 제외한 모든 교구의 65세 이상 신자 비율이 20%를 넘었고 안동교구(33.4%)와 춘천교구(31.9%)는 30% 이상으로 나타났다. UN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일 경우 초고령 사회로 본다. 교회는 초고령 사회를 사회보다 먼저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성인 세례를 통해 많은 노인이 교회에 입문하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문제는 노인 사목에 대한 좀 더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사목적 지원이 본당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특별히 요양 병원에 있는 신자들은 사목적 돌봄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자녀들은 본당에 연락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사목적 돌봄이 구조적으로 차단된 현실에 대해 본당에서는 교구와 행정 기관의 협약을 통해 이들에 대한 사목적 돌봄을 가능하게 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일부 교구에서는 이들을 위한 요양 병원 전담 사제를 파견하는 사례도 있다.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는 “아직도 많은 본당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소공동체 구역장·반장들은 각 가정과 요양 병원에서 고령 환자들을 돌보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며 “여러 어려움 속에서 신앙생활이 힘겨운 사람들을 방문해 정성으로 신앙을 권면하고 있는 소명 의식에 빛나는 봉사자들을 위한 교회의 체계적인 지원과 양성 과정 역시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 사람이 건넨 사랑, 수많은 이에게 ‘새 생명’으로 피어납니다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누고 간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 가득한 사랑으로 세상을 봤던 그의 눈은 앞을 보지 못한 이에게 전해져 더 큰 사랑을 키워내는 원동력이 됐다. 소방관을 꿈꿨던 정의로운 청년의 심장은 희망을 잃어가는 이에게 전해져 더욱 뜨겁고 단단한 살아갈 희망을 선물했다. 이처럼 생명을 나누는 기적 같은 일은 이 세상에 진짜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 생명 나눔의 실천, 장기기증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준 성체성사의 신비는 다른 방식과 모습으로 현재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침을 전한다. 생명 나눔의 숭고한 정신을 실현하는 장기이식이 그중 하나다. 교회의 사명인 생명 문화 확산을 위해 가장 먼저 실천한 곳이 가톨릭계 병원이다. 1969년 3월, 명동 성모병원에서 신장이식 수술이 성공하며 국내 장기이식 역사가 시작됐다.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신장이식이 성공한지 15년 만에 이룬 성과다. 은평성모병원은 2021년 김수환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을 열고 장기이식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발걸음에 힘을 보탰다. 의학적 노력뿐 아니라 생명 나눔 인식 개선을 위해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장기기증센터는 생명 나눔 캠페인과 장기기증자 봉헌의 날을 운영하고 있다. 장기기증은 크게 뇌사 시 기증과 사망 후 기증, 생체 기증 등으로 나뉜다. 뇌사 판정을 받았을 경우 가족의 기증 동의를 통해 기증과 이식이 가능하다. 사망 후 기증하는 경우는 각막 외에 뼈와 피부 등의 일부 조직만 기증할 수 있다. 생체 기증은 살아있을 때 고형장기 중 신장 1개와 간의 일부를 타인에게 기증하는 행위를 말한다. 뇌사의 경우 2차에 걸친 뇌사 조사, 뇌파검사, 뇌사판정위원회를 통해 철저히 검증한 뒤 최종적으로 판정한다. 뇌사자는 최대 9명에게 장기이식이 가능하지만 뇌사자가 생전에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하더라도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기에 이식이 결정되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보호자 동의율은 33%에 불과해 미국이나 캐나다(9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장기이식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교회가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장기기증에 대한 긍정적 높여야 우리나라 뇌사 기증자는 꾸준히 감소해 2016년 573명에서 2022년 405명에 그쳤다. 전년(442명)에 비해서 8.4% 줄어든 수치다. 해외와 비교하면 더욱 차이가 크다. 2019년 기준 스페인의 뇌사 기증자는 2301명, 미국 1만1870명, 이탈리아 1495명, 영국 1653명이다. 한국에서는 매일 7.9명의 이식 대기 환자가 간절한 기다림 속에서 생명을 잃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은윤주 팀장은 “미디어에서 여러 생명을 살린 기증자의 이야기가 홍보되면 잠시 장기기증이 증가하다가 기증자 예우 문제가 불거지면 급격히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며 “단편적인 사건으로 장기기증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꾸준히 장기기증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긍정적인 인식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한 사람이 뿌린 생명의 씨앗, 값진 열매로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장기기증’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사람들.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박지연(가타리나) 장기이식코디네이터는 “매 순간이 어려웠지만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여정에 동행했던 숭고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자 시작한 간호사. 하지만 장기이식센터에서는 누군가의 생명이 누군가의 죽음과 연결돼 있었다. “이식을 받은 수혜자 분들이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며 장기이식이 누군가의 마지막에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16년 차임에도 뇌사자 가족들에게 ‘장기이식’을 설득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누군가가 뿌린 생명의 씨앗이 수많은 열매를 맺고 세상을 밝힐 수 있다는 믿음은 그가 오늘도 장기이식코디네이터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장기이식으로 새 삶을 선물 받은 이식 환자분들은 정말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십니다. 아마 자신에게 삶을 선물한 분들을 생각해서 더욱 잘 살고자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장기기증자분들이 선물을 남기고 간 곳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유가족들도 수혜자분들이 건강한 삶을 살고 계시는 것에 큰 위로를 받고 힘을 내 살아가시죠. 한 사람이 뿌린 생명의 씨앗은 그렇게 여러 사람의 삶을 가치 있고 풍요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 의료 기관들과 협업해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기증 및 이식 과정이 진행되도록 돕는 장기이식코디네이터. 365일, 24시간 대기를 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도 장기이식센터 의료진들이 가장 정성을 다해 진행하는 업무가 장기기증자를 위한 기도다. “장기이식 수술을 하기 전에 기증자를 위한 기도를 모든 의료진이 모인 가운데 함께 합니다. 그때만큼은 바쁘게 뛰어다닌 일을 잊고 생명을 나눠주신 숭고한 실천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진심으로 전하며 기도합니다.” 삶과 죽음은 인간이 결정할 수 없지만 내가 가진 것을 나눠 다른 사람에게 삶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축복이다. 박지연 코디네이터는 “장기기증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사랑의 실천”이라며 “누군가가 나눈 씨앗으로 누군가의 삶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더욱 따뜻하고 생명력이 넘칠 거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2024-05-05

“열정 넘치는 사제단·교구민과 함께한 시간…행복했습니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 1·4후퇴 당시 네 살의 이기헌(베드로) 주교는 수많은 피난민 행렬 속 부모 손을 꼭 잡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이 주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그를 북한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고 이후의 사목 방향에도 영향을 줬다고 전한다. 그렇게 남한에 온 지 오랜 시간이 흘러 북한과 마주한 의정부교구 교구장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직무를 마무리하게 됐다. 약자를 보듬고 교구의 일치와 친교를 추구하며 민족화해를 위해 힘써 온 이기헌 주교에게서 사목 여정의 소회를 들었다. 성당 건축의 기억, 그리고 군종교구 이 주교는 사제품을 받은 후 1995년 서울대교구 교육국장(현 청소년국장)을 맡기 전까지 군종신부 시절을 포함해 본당 사목자로서 경험을 착실히 쌓았다. 모든 순간이 소중했지만, 그중에서도 잠원동본당 주임 신부 때 성당 건축을 특별하게 기억했다.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신자 각자의 성당을 짓는다는 마음이었다”는 이 주교는 “성당 건립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염원하던 그때를 나와 잠원동본당 모든 식구가 ‘아름다운 시간’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1999년부터 2010년까지 군종교구장으로 활동한 이 주교는 “동서남북 가리지 않고 ‘눈부시게’ 돌아다녔던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또 “전방과 후방의 군인 청년들은 물론 이라크·동티모르 등 해외까지, 군종교구는 황량한 벌판을 뛰어다니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과 같다”면서 “교회에 청년은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기에 힘든 줄도 모르고 뛰어다녔다”고 전했다. 젊음 가득했던 의정부교구, 소통으로 완성하다 이 주교는 의정부교구장으로 착좌한 2010년 당시의 교구를 젊고 활력 넘치는 곳으로 기억했다. 이 주교는 “당시 사제들의 평균 연령이 36세 정도였는데, 교구 사제단 전체가 열정에 불타올랐다”면서 “교구가 아직은 힘들던 시기라 교구청은 없고 사제관도 부족해 단체 숙식을 해야 할 정도였지만, 그 와중에도 교구 발전에 대한 열정만큼은 다른 교구가 부러워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의정부교구에 왔을 때 사제들이 이한택(요셉) 주교님을 목말 태우며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교구가 사제들 열정 때문에 모두 불타버리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나올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제단과의 일치를 가장 중요시했다. 이 주교는 “사목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 사제라는 마음으로 한 명 한 명 모두 만나 소통하고 격려하며 사목 일선에서 겪는 고충과 현장감 있는 의견을 경청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지구별 사제 모임을 장려해 친교를 다지고 교구 운영에 대한 각자의 생각도 공유할 수 있게 했다. 지금은 당시의 젊었던 사제들도 50대에 접어들어 중견 사제가 됐다. 이 주교는 “당시의 사제들이 열정은 그대로 간직한 채 신앙적으로도 성숙하고 노하우와 전문성도 갖춘 사목자가 된 것 같아 기쁘다”며 “지금 젊은 사제들도 잘 본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구민들도 열정에 뒤지지 않았다고 전한다. 이 주교는 “교구민들이 순박하고 마찬가지로 교구를 함께 성장시키겠다는 열정 속에 사제들을 많이 지지해 주고 따랐다”고 말했다. 이주민·난민, 그리고 간절했던 민족화해 이한택 주교가 초대 교구장으로 있던 때부터, 의정부교구는 지역적 특성을 살려 민족화해와 이주민사목에 열심이었다. 이 주교는 자신도 이주민이라고 말했다. “평양 출신으로 6·25 전쟁 때 남으로 넘어왔으니 나도 이주민”이라며 “그러다 보니 특히 이주민·난민 사목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노력했다”고 이 주교는 말했다. 교구 내 이주민·난민들의 생활은 생각보다도 더 열악했다. 이 주교는 “난방비가 부담이 크다 보니 한겨울에 집에서도 두꺼운 옷을 껴입고 덜덜 떨거나 거주시설이 부족해 여러 가족이 좁은 집에 모여 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그의 관심 아래 의정부교구는 ‘1본당 1난민가정 돌봄사업’을 시행하는 등 이주사목에 힘썼다. 이 주교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하며 남북평화와 민족화해를 위해 노력했다. 그는 “많은 이가 현 상황이 익숙해 인식하지 못하지만, 한반도 분열과 갈등상태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라며 “민족의 화합과 일치는 곧 국가의 힘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와 교구 공동체 모두가 한마음으로 남북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작 국가가 관심이 없으니 안타까웠다”며 “정치인들이 민족화해에 대해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구 사제단은 물론 교구민들도 남북평화를 위해 몸과 마음을 쏟고 있기에 저는 여전히 민족화해라는 꿈에 희망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내내 교구에 대한 애정이 넘치던 이 주교였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는 “교회적 관점에서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참여하고자 하는 열망은 교구의 장점”이라면서도 “다만 코로나19 이후로 더욱 영성과 기도가 조금 소홀해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특히 “신자들이 성체조배와 성경 읽기로 신앙을 체험하고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행복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은퇴 후 “아코디언과 중국어 배우고 싶어” 바쁘게 걸어온 이 주교도 이제 꿀맛 같은 휴식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그에게 앞으로 소소한 계획에 관해 물었다. 이 주교는 “은퇴 후 그간 밀린 독서를 자주 하고 싶고, 중국어와 아코디언도 배울 예정”이라며 “중국어는 본당 사목 시절에도 배웠는데 이번엔 중국어를 잘하는 신부님에게 ‘과외’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코디언에 대해선 “다 같이 어울릴 때 모두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악기라고 생각해 아코디언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마치 그의 사목 표어 ‘새로운 노래를 주님께 불러라’(시편 149장)를 떠올리게 했다. 또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소통하고 사제단과 신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 그의 품성다운 계획이었다. “아코디언을 아주 잘하는 북한이탈주민 선생님이 계셔서 그분에게 아코디언을 배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해 모두를 흥겹게 만들고 싶습니다. 누군가 소소한 계획을 물어보면 저는 아코디언을 배우고 싶다고 꼭 말합니다.”

2024-05-05

패배자만 존재하는 전쟁, 멈추지 않으면 생명·환경 모두 잃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키는 원인에는 여러 요인이 지목된다. 쉽게 소비하고 버리는 개인 삶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전쟁이 없는 평화를 지키는 일도 지구온난화를 막는 방법이다. 군사 활동이 막대한 탄소를 배출할 뿐 아니라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해 평화를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전쟁과 지구온난화 전쟁은 환경파괴의 원흉으로 지목된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2022년 발표한 전쟁으로 인한 환경영향 발표에 따르면, 화학산업이나 오염물질을 다루는 시설이 밀집한 공업도시에서 군사작전이 이뤄지며 주변 지역의 수질과 토양, 대기 오염 피해가 심각하다. 경작지의 40%, 토지 3분의 1이 농업에 사용될 수 없거나 잠재적 위험 상태라고 발표했다. 게다가 전쟁으로 생태계 관리가 어려워지자 희귀 동물에 대한 밀렵, 불법 벌목이 늘어났다. 또 유럽의 녹색 심장이라 불렸던 우크라이나의 삼림보호구역은 군사기지나 난민들의 피난처로 사용되면서 생태계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같은 해 11월 우크라이나 환경부 등이 군사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계한 결과, 전쟁 7개월 동안 배출된 온실가스는 약 1억 톤CO²eq(이산화탄소 환산량)에 달했다. 이는 네덜란드와 같은 국가가 같은 기간 동안 배출한 온실가스와 유사한 수준이다. 2022년 ‘국제적 책임을 위한 과학자들’(Scientists for Global Responsibility)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군사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27억5000만 톤CO²eq로 전 세계 배출량의 5.5%를 차지한다. 이는 민간 분야의 항공(1.9%), 해운(1.7%), 철도(0.4%), 파이프라인(0.3%)을 합한 것보다 많다. 이처럼 군사 활동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군용기, 함정, 전투차량 등 주요 무기와 장비가 대부분 다량의 화석 연료로 기동되고 연비도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연비는 30mpg(휘발유 1갤런 당 운행할 수 있는 마일) 정도인데 반해 전투용 지프차는 자동차의 5분의 1 수준인 6mpg, F-35 전투기는 50분의 1인 0.6mpg, B-2 전략폭격기는 100분의 1인 0.3mpg에 불과하다. 다량의 연료 소비와 낮은 연비는 탄소배출로 연결된다. 1회 작전 임무 수행시, 전투용 지프차는 260kgCO²eq, F-35는 2만7800kgCO2e, B-2는 25만1400kgCO2e를 배출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폭등하는 군사비는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자원의 낭비를 야기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2023년에 전 세계가 지출한 군사비는 전년 대비 6.8% 증가한 2조4430억 달러(약 3373조 원)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는 2009년 이후 가장 가파른 증가로,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및 중동 지역에서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국의 2023년 군사비 지출은 전 세계 11위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군사비는 2.8%로, 우크라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미국에 이어 5번째로 높다. 이에 따라 제27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에서 군사 활동이 기후위기에 미치는 영향을 국제규범 안에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군사 활동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기밀로 처리해야 한다는 반대에 부딪혀 국제적 배출량 보고를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우려하며 2021년 12월 세계 각국의 노벨상 수상자 50여 명은 전 세계를 상대로 향후 5년간 군비를 2%씩 감축할 것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다른 나라들이 군비를 늘리면 옆에 있는 나라도 군비를 늘리는 군비경쟁의 악순환이 이어진다”며 “군비 감축액의 절반을 유엔에 보내 전염병 대유행과 기후변화, 빈곤 문제 해결에 쓰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군비 지출, 이산화탄소 배출량 높은 한국 세계 군비경쟁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는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방위산업 수출 수주액이 2020년까지 연평균 30억 달러를 유지하다가 2021년 72.5억 달러로 증가했고, 2022년에는 역대 최고 수준인 170억 달러를 달성했다. 방위사업청은 “방산 수출의 성과는 방위산업을 미래 경쟁력 성장을 촉진할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윤석열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바탕이 되었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2020년 군사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388만 톤CO²eq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의 공공부문 전체 배출량 370만 톤CO²eq 보다 많은 양이다. 우리나라는 군비 지출뿐 아니라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세계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저먼워치와 기후연구단체인 뉴클라이밋 연구소가 발표한 ‘2022 기후변화대응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63개국의 기후변화 대응 능력을 평가한 이 지수에서 최하위권인 60위를 기록했다. 우리보다 못하는 국가는 카자흐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이다. 상황이 이러하자 시민사회단체들은 군비 지출을 줄이고 생명과 일상을 위협하는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 재원을 사용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멸종반란가톨릭 등이 포함된 시민사회단체는 4월 22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2024 세계군축행동의 날 기자회견을 열고 “'1분에 64억 원, 1초에 1억 원’이 군비로 사라지고 있다”며 “우리가 가진 예산과 자원 사용의 우선순위를 ‘군사 안보’가 아닌 ‘인간 안보’, 전쟁과 파괴가 아닌 모든 생명의 공존을 위해 재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4-05-05

팬데믹 때 떠난 신자 25% 여전히 주일미사 ‘불참’

주교회의(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는 4월 19일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3」을 펴냈다. 2023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집계된 통계는 한국교회 신자와 성직자·신학생 현황, 교회 내 성사 활동과 신앙 교육, 사회사업과 해외 파견 현황 등을 파악해 사목 정책 수립에 반영하기 위한 자료다. 통계 주요 지표와 함께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사목적 시사점을 제언한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3 분석 보고서’(이하 분석 보고서) 내용을 종합, 소개한다. 신자 597만675명, 인구 대비 신자 비율 3년째 제자리 저출생 고령화 현상 뚜렷... 65세 이상 신자 비율 26.1% 한국교회 신자는 597만675명으로 2022년 대비 2만813명 늘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5267만3955명) 중 신자 비율은 11.3%다. 신자 수는 소폭(0.3%) 늘었지만 인구 대비 신자 비율은 3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한국 사회의 저출생 고령화 현상은 교회 안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2023년 0~4세 신자는 2만4860명으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4만9949명)보다 50.2% 감소했다. 반면 65~69세 신자는 2019년 37만1792명 보다 40.8% 늘어난 52만3305명이었다. 65세 이상 신자 비율은 26.1%로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비율 18.2%(통계청 ‘2023 한국의 사회지표’, 2024년 3월) 보다 6% 포인트 높다. 군종교구를 제외한 모든 교구의 65세 이상 신자 비율이 20%를 넘었고 안동교구(33.4%)와 춘천교구(31.9%)는 30% 이상이었다. 유엔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일 경우 초고령 사회로 본다. 교회가 사회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는 분석 보고서에서 “유아 세례의 중요성에 대한 교리교육과 영유아 교육, 주일학교, 청년·청소년 사목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전반적이고 총체적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현재 노인 세대 신자가 많고, 성인 세례 비율이 높다고 젊은 세대가 나이가 들면 교회에 입문할 것이라는 예측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주일 미사 참례율 13.5%... 영세자 전년보다 1만 명 늘어 미사 참례, 성사 활동 코로나19 이전의 60~80%... 온전한 회복은 과제 주일 미사 참례자는 80만5361명으로 전체 신자 대비 주일 미사 참례율은 13.5%였다. 10년 전인 2013년(21.2%)보다 7.7% 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 10.3%로 최저점을 찍은 주일 미사 참례자 비율은 점차 높아지고는 있다. 2022년 주일 미사 참례자는 2019년의 64.7%, 2023년은 74.5%까지 회복됐다. 팬데믹 이전 주일 미사를 참례하던 신자의 25%는 여전히 성당에 돌아오지 않은 셈이다.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는 “엔데믹 선언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감염의 우려가 어느 정도 제거된 상황에서 주일 미사 참례자가 (2019년의) 74.5%에 그친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전반적으로 교회의 성사 활동은 회복 국면이 분명하지만 팬데믹이 준 충격과 그에 익숙해진 신자들에게는 여전히 다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며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감안하면 교회의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영세자 수는 5만1307명으로 전년(4만1384명) 보다 약 1만 명 늘었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영세자(8만1039명) 대비 63.3%의 회복률이다. 영세자는 안동교구와 군종교구를 제외한 모든 교구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높았다. 등록 예비신자 수는 3만9249명으로 2022년(3만421명)보다 8800여 명 늘었다. 등록된 성인 예비신자 중 그해 세례를 받은 비율은 87.9%로 2013년 이후 가장 높았다. 견진·병자·고해성사, 영성체 등의 성사별 참여 건수는 팬데믹을 지나며 차츰 늘고 있다. 견진성사는 전년 대비 7.1%, 병자성사는 22.5%, 고해성사는 12.6%, 영성체는 6.4% 증가했다. 견진성사 건수는 2019년의 68.6%, 병자성사는 90.6%, 영성체 73.0%, 고해성사는 73.1%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 교구 신부 비율 17.5%... 원로사목자 등 고령 신부 지속 증가 새 사제 2013년 이후 가장 적은 75명... 입학 신학생도 감소세 한국교회 성직자(부제 제외)는 전년보다 18명 증가한 5721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교구 신부는 4715명이다. 신부들의 고령화도 수년 전부터 두드러진 특징이다. 교구 신부 연령별 분포를 보면 65세 이상이 전체의 17.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65세 이상 신부를 제외하면 50~54세 신부가 13.9%로 가장 많으며 40~44세 13.8%, 45~49세 13.6% 순으로 나타났다. 교구 원로사목자 역시 지난 10년간 계속 늘어 2023년에는 전년보다 46명 늘어난 536명(전체 신부의 11.4%)으로 500명을 훌쩍 넘었다. 고령 신부와 원로사목자가 늘어난 반면 새 신부와 신학생은 계속 줄고 있다. 교구 소속 새 신부는 2013년 이후 가장 적은 75명으로 집계됐다. 2020년 100명 아래로 떨어진 후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다. 신학생 수는 교구 790명, 수도회 228명 등 총 1018명으로 2013년(1264명) 대비 37.5% 감소했다. 2021년까지 130명 이상을 유지하던 교구·수도회 입학 신학생 수는 2023년 96명으로 전년(88명)에 이어 올해도 100명을 넘지 못했다. 교구 입학 신학생은 81명으로 2013년(143명)보다 43.4% 감소했다.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는 “새 신부 수와 고령 신부 비율을 종합적으로 볼 때 수년 내 한국교회도 현재의 중년 신부들이 일선 사목에서 은퇴하면서 사제 부족 현상에 직면할 것이라 예상되므로 이에 대한 좀 더 중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2023년 현재 한국교회에는 175개 수도회에서 1만1473명이 수도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 수도자는 전년 보다 34명 감소한 1568명, 여자 수도자는 69명 감소한 9905명이었다. 수도회 수련자는 남자 34명, 여자는 166명이었다. 2013년과 비교해 남자 수련자는 65.3%, 여자 수련자는 53.8% 감소했다. 교구 설립 여자 수도회 수련자 중 한국인은 단 3명에 불과한 반면 외국인은 86명으로 집계됐다. 2013년에 한국인 100명, 외국인 33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0년 사이 외국인 수련자의 비율이 눈에 띄게 늘었다.

2024-05-05

[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김원 건축가

어쩌다 시작한 건축, 평생을 건축가로 어릴 적 꿈은 건축가가 아니라 조각가였어요.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반에서 조각을 많이 했고, 미술대학으로 진학하려 했죠. 그런데 집에서 반대를 했어요. 미술가는 배고프다고요.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게 건축이었어요. 제일 배가 안 고플 게 확실한 게 공과대학이었고, 나름 절충을 한다고 한 게 건축이었죠. 건축가는 어쩌다 우연히 됐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도 조각처럼 건축도 창조적이며 독창적인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죠. 지금 60년째 건축일을 하고 있는데, 절대 지루하지 않고 질리지 않는 것이 건축의 매력인 것 같아요. 아침마다 ‘빨리 사무실에 나가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에요. 할 일이 항상 쌓여 있고, 그 일을 할 생각으로 흥분돼요. 건축이라는 일이 다채로워요. 선택 하나하나에 따라 결과가 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물론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끼기도 하죠. 지금 생각하면 그동안 참 재미있게 살아왔다고 느껴져요. 하늘의 별이 된 누이의 바람 고위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께서 6·25전쟁 중 돌아가시고 나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어요. 갑자기 집안 사정이 어려워진 상황이었는데, 어머니께서 먼저 세례를 받으셨어요. 저는 대학 4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 양산성당에서 영문도 모른 채 세례를 받았어요. 근데,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을 받았는데, 그게 마음에 들었어요. 여동생은 내가 건축학과에 들어간 후 ‘오빠가 성당을 지으면 좋겠다’고 매일 기도했데요. 나중에 수녀가 돼서 유럽에 가서도 어마어마한 성당을 보면 카드를 사서 보냈어요. ‘오빠가 이런 설계를 하길 바라’라고 써서요.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죠. 여동생은 수녀가 된 후 독일에서 의사 공부한 후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할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그만 암에 걸렸어요. 귀국해서 몇 달 못 버티다 주님 곁으로 갔어죠. 당시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께서 명동대성당 옆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제 동생의 장례를 부탁했어요. 거기 수녀님들이 제 동생의 장례를 정말 잘 치러주셨어요. 그리고 장례미사는 함세웅 신부님(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성사전담사제)이 주례하셨어요. 장례미사 강론이 아주 감동적이었다고 기억해요. 동생을 보내고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함 신부님이 전화하셨어요. 만나자고 해서 기쁘게 달려갔는데, 성당을 지어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1979년 처음으로 성당을 짓게 됐어요. ‘좋은 뜻은 좋은 결과를 낳는다’ 당시 함 신부님은 한강성당 주임으로 계셨는데, 당시 한강성당은 상가건물에 세를 들어 있었어요. 정의구현사제단 활동을 열심히 하시던 신부님이 당시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살던 동부이촌동에 있는 본당으로 가셨으니, 신자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함 신부님은 새 성당을 짓는 것으로 신자들의 반감을 돌파하려 하셨어요. 신자라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성당도 없이 상가를 빌려 형식적으로 미사를 봉헌하면서 무슨 사명감으로 신부를 반대하느냐는 거였죠. ‘성당부터 하나 똑바로 지어놓고 이야기하라’고요. 성당을 지으려니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던 제가 생각이 나셨던 거죠. 본당 상황을 보니, 폼 나는 고딕 스타일, 하늘을 찌르는 뭐 이런 걸 할 상황이 아니었어요. 신자들의 반대가 심하니 건축 기금 모으는 것도 큰 일이었어요. 그래서 성당을 짓는데 제일 중요한 일은 어떻게 하면 돈을 덜 들이는가였어요. 그런데, 보면 이런 나쁜 조건에서 항상 좋은 해결책이 나오더라고요. 우선 파벽돌을 썼어요. 당시 영등포에 있던 조선맥주 공장을 새로 짓고 있었는데, 기존 건물을 철거하며 나온 파벽돌을 운송비만 내고 가져다 썼어요. 지금으로 말하면 자원 재활용인거죠. 새 벽돌값의 1/4 가격에 벽돌을 구할 수 있었고, 헌 벽돌을 쓰니 번쩍번쩍하는 근사한 건물은 생각할 수 없었고, 따라서 아주 차분하고 오래된 건물 같은 성당을 지을 수 있었어요.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하느님께서 도와주셨다고 생각해요. 한강성당으로 1981년 한국건축가협회 상도 받았어요. 그 후 파벽돌 사용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어요. 교회건축과 성미술에 사목자의 관심 필요 한강성당이 잘 지어졌다는 소문이 퍼지고 명동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수녀원 성당을 지어달라고 의뢰했어요. 당시 성당 벽을 ‘로즈 윈도우’, 바로 장미창으로 만들어서 크게 이슈가 됐어요. 이후 이렇게 교회 안에서 일을 많이 하게 됐어요. 당시는 신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던 때여서 성당을 많이 지었어요. 관련해 성지 개발 프로젝트도 많았고요. 제가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타이밍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교회 관련 건축에 많이 불려 다녀 성당 여러 곳을 짓고 성지 조성에도 많이 참여했어요. 지금은 대한성공회 대전주교좌 성당을 짓고 있어요. 아마도 제 마지막 건물이 될 것 같아요. 그동안 수많은 성당을 지으며 느낀 아쉬운 점은 사목자들의 성미술과 교회건축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거예요. 제가 지은 한강성당은 채 10년도 안 되어 없어졌어요. 함 신부님 다음에 부임한 주임 신부님이 새로 성당을 지은 거죠. 신자가 늘어 더 큰 성당이 필요할 수도 있지요. 그래도 기존의 성당을 지은 지 얼마 안 돼 부수는 일은 경제적으로도 큰 손해 아니에요? 쉽게 부수고 새로 지을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들도 생각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참 아쉬워요. 신학생 양성 과정에서부터 교회건축과 성미술에 대한 과목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김원(안드레아) 조각가는 194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65년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바우센트룸 국제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서울 한강성당을 시작으로 수많은 교회뿐만 아니라 독립기념관과 국립국악원, 통일교육원 등 굵직한 건물을 건축했다. 1998년 제3회 가톨릭미술상 본상, 2001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

2024-05-05

[함께 보는 우리 성인과 복자들(1)] 성 유대철과 복자 이봉금

올해는 103위 한국 순교 성인의 시성 40주년이자 124위 한국 순교 복자의 시복 10주년이다. 이를 기념하여 5월부터 한국 순교자 성월인 9월까지 격주로 성인과 복자를 연계한 연재물을 시작한다. 성인과 복자를 조명하며 신앙 선조들의 선물에 다시금 감사하고 믿음을 굳건히 하는 계기를 마련해 본다. 소년소녀, 어른을 계도하다 (배교한 회장에게) “저와 같은 어린 사람에게 갖가지 고통을 굳세게 참아 내라고 권면해야 하실 텐데, 주객이 전도되었으니 이것이 웬일입니까? 빨리 회개하여 예수를 위해 죽으십시오.” 성 유대철(베드로, 1826~1839) “일곱 살 때부터는 천주를 섬겨 왔으니, 오늘 천주님을 배반하고 욕을 하라고 하시어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천 번 죽어도 그렇게는 못 하겠어요.” 복자 이봉금(아나스타시아, 1827?~1839) 1839년 기해박해로 교수형을 받아 스러진 소년 성인과 소녀 복자 유대철과 이봉금. 사형 당시 그들의 나이는 겨우 13세와 12세(추정)였다. 성인과 복자는 각각 우포도청과 전주 감옥에서 모진 고문 끝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성 유대철은 감옥에서 사도의 직분을 행해 배교한 회장을 직접 타이르거나 배교한 자를 회개케 하기도 했다. 복자 이봉금 또한 어머니의 옥중에서 인간적으로 의지할 데 없을 때도 어른스럽게 순교를 결심해 많은 이들을 감복게 했다. 남다르게 키워 낸 신앙 성 유대철은 서울의 유명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인은 외교를 고집한 어머니에게도 언제나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 박해가 시작되자 마음속에 순교하고자 하는 열렬한 욕망이 생겼다. 성 유대철이 옥에 갇히자 옥사장들은 ‘배교한다’는 말을 한마디만이라도 하게 하려고 갖은 혹형을 가했다. 하루는 포졸이 구리로 된 담배통으로 허벅지를 들이박아 살점을 한 점 떼어내면서 “이래도 천주교를 버리지 않겠느냐?”고 소리쳤다. 그러자 성인은 “그러믄요. 이것쯤으로 배교할 줄 아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포졸은 벌건 숯덩이를 집어 들어 입을 벌리라고 했다. 성 유대철은 “자요” 하고 입을 크게 벌리자 포졸들은 놀라 물러나고 말았다. 고문을 당한 끝에 까무러친 유대철을 데려와 다른 죄수들이 정신이 들게 하느라고 허둥지둥할 때 정신이 든 성인의 첫마디는 “너무 수고를 하지 마시오. 이런 것으로 해서 죽지는 않을 거예요”였다. 이 말에 포졸들도 놀라워했다. 또 언제는 자기 몸에서 헤어져 매달려 있는 살점을 떼어서 재판관들 앞에 던지며 웃자 관원들은 모두 치를 떨었다. 복자 이봉금은 정해박해를 피해 피신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기해박해 때 전라도 광주에서 귀양 중이던 복자 홍재영(프로타시오, 1780~1840) 집으로 이주했다. 복자 이봉금은 열 살 무렵 교리문답과 아침·저녁 기도를 배운 뒤, 집을 방문한 프랑스 신부님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나이는 어렸지만, 소녀의 마음에 감동한 신부는 첫영성체를 허락했다. 하지만 이내 신자들과 체포돼 전주로 압송됐다. 포졸과 옥리들은 복자의 나이가 어린 데다 얌전했으므로 동정심이 들었고 배교해 목숨을 건지라고 간청했으나, 복자 이봉금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복자를 여러 차례 관장 앞으로 끌어내 위협을 했지만, 결코 여기에 굴복하지 않자 끝내 고문을 가했다. 거룩한 부모를 닮아간 자녀 열절한 신앙을 지닌 그들에게는 성인·복자 부모가 있었다. 성 유대철의 아버지는 성 유진길(아우구스티노, 1791~1839), 복자 이봉금의 어머니는 복자 김조이(아나스타시아, 1789~1839)이다. 성 유진길은 신부만큼 거룩한 생활을 하며 저명한 학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을 개종시켰고 아들 성 유대철의 입교를 이끌었다. 유대철은 아버지 유진길이 옥에 갇히자 1839년 8월 자수해 아버지를 뒤따랐다. 복자 김조이는 남편 이성삼(바오로)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해 성가정을 이뤘으며, 박해 때 문초를 받고 돌아온 딸에게 “너는 고문을 당하면 꿋꿋하게 견디어 낼 힘이 없어 틀림없이 배교를 하게 될 거다”라고 훈계하며 딸의 신앙을 굳건히 했다. 오늘날 학업이나 휴식 때문에 미사나 주일학교 등 자녀의 신앙생활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소홀히 하는 부모 역할에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다. ◆ 복자 이봉금의 순교 얼 서린 전주 옥터 복자 이봉금이 옥중에서 교수형을 당한 전주 옥터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현무2길 59-25 한국전통문화전당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전주성 내에 가장 큰 옥이 있던 장소로 2014년 9월 3일 성지로 축복됐다. 조선 시대 전주는 전라도의 중심지로 각지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전주 옥에 갇혀 고문 당하고 순교했다. 신유박해(1801년) 때는 동정 부부로 유명한 복자 유중철(요한, 1779~1801)과 그의 동생 복자 유문석(요한, 1784~1801)이 교살됐다. 정해박해(1827년) 때는 240여 명의 신자들이 감금돼 고초를 겪었다. 복자 이순이(루갈다, 1782~1802)의 동생 복자 이경언(바오로, 1792~1827)도 이때 순교했다. 기해박해(1839년) 때는 복자 김조이(아나스타시아, 1789-1839)와 복자 심조이(바르바라가, 1813~1839)가 옥중 얻은 병과 형벌로 인한 상처로 옥사했다. 특히 복자 김조이는 그녀의 어린 딸 복자 이봉금이 바라보는 가운데 순교했다. 옥은 고통스러운 곳이기도 했지만 신자들에게는 기도할 수 있는 곳으로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증언하는 곳이기도 했다. 기해박해 때 전주 숲정이 성지에서 순교한 복자 이일언(욥, 1767~1839), 복자 신태보(베드로, 1769?~1839), 복자 이태권(베드로, 1782~1839), 복자 김대권(베드로, ?~1839), 복자 정태봉(바오로, 1796~1839)은 정해박해 때 이곳에 12년 동안 갇혀 있었다. 그들은 옥중에서도 밤마다 등불을 켜고 함께 성경을 읽으며 큰 소리로 기도했다.

2024-05-05

조선 선교 위해 목숨 바친 참 사제, 그 열정 가슴에 새기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위원장 구요비 욥 주교)가 4월 16~21일 중국에서 진행한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님 발자취를 따라서’ 순례는 브뤼기에르 주교가 중국 땅에 남긴 흔적과 그 안에 담긴 신앙 열정을 추적하는 여정이었다. 서울 순교자현양위 부위원장 원종현(야고보) 신부가 이끄는 순례단은 약 190년 전 자신을 기다리는 양 떼를 찾아 조선에 입국하려던 브뤼기에르 주교의 발자취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신앙이란 무엇인지를 깊이 깨달아 갔다. 순례단 앞에 불쑥 나타난 난관은 오히려 브뤼기에르 주교의 신앙과 영성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됐다. ■ 브뤼기에르 주교 선종지 마가자로 가기를 원했지만 이번 순례의 가장 중요한 목적지는 브뤼기에르 주교가 중국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다 선종한 마가자(馬架子, 마자쯔)였다. 중국 북동부 내몽골 자치구에 속한 마가자는 한적한 농촌으로 교우촌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가자성당이 이곳에 자리한다. 서만자(西灣子, 시완쯔)에서 약 1년간 사목하던 브뤼기에르 주교는 1835년 10월 7일 조선에 보다 가까운 마가자를 향해 출발한 뒤 10월 19일 도착했다. 그러나 마가자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선종하고 만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서만자에서 마가자로 이동하는 동안 다리가 부었다 가라앉는가 하면 동상에 걸렸고 두통에도 시달렸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결국 조선에 입국하지 못했다. 하느님께는 아마 다른 뜻이 있었던 것 같다. 박해의 땅 조선 선교를 자처했던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의 용기 있는 죽음을 접한 파리 외방 전교회 모방 신부가 1836년 1월 13일 서양 선교사로는 처음으로 조선에 입국했다. 같은 해 12월 31일 샤스탕 신부, 1837년 12월 18일 앵베르 주교가 조선 땅을 밟았다. 이들은 모두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해 1984년 성인품에 올랐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중국에서 선종했지만 조선에서 천주교 신앙을 꽃피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지 당국 불허에 ‘마가자’ 찾지 못했지만 요하~심양~단동 이르는 유해 이송 경로 따르며 선교 여정 가득한 현장 돌아봐 순례단은 마가자성당 뒷산 방향으로 걸어서 5분 거리에 조성돼 있는 브뤼기에르 주교 무덤 자리와 묘비를 찾아 4월 17일 서만자성당에서 출발할 예정이었다. 정확한 이동 경로는 17일 오후 1시 서만자에서 출발해 392km 떨어진 적봉(赤峯, 츠펑)시에 오후 6시에 도착한 뒤 현지에서 1박을 하고 18일 오전 9시 적봉에서 마가자까지 106km를 이동해 오전 11시 즈음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마가자는 적봉시 행정구역에 속해 있다. 적봉에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가 이 모든 계획을 뒤바꿔 놓았다. 현지 지방 정부가 한국 순례단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번 순례를 충실하게 진행하기 위해 원종현 신부와 서울 순교자현양위 신정주(요한) 팀장 등은 3월 13~18일 적봉교구와 마가자성당을 사전 답사하면서 뜨거운 환대를 받았고 한국 순례단에게 식사도 직접 요리해 대접하겠다는 약속까지 받은 터라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순례단은 긴급하게 대책을 논의했지만 마가자로 가는 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원 신부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는 성경 말씀을 기억하자”며 “개척 과정에 있는 우리의 순례가 지속될 때 막힌 길이 열릴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하북성(河北省, 허베이) 승덕(承德, 청더)으로 목적지를 바꿔 17일 오후 6시경 여장을 푼 뒤, 남은 일정을 하느님께 의탁했다. ■ 브뤼기에르 주교 유해 이송 경로를 따라 순례단은 18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승덕에서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요하(遼河, 랴오허)를 지나 브뤼기에르 주교의 유해가 잠시 안치됐던 심양(瀋陽, 선양)에 이르는 600km 가까이를 이동했다. 하루 종일 광활한 중국 대륙을 버스를 타고 통과하는 피곤한 여정 속에서도 기도 소리와 브뤼기에르 주교의 생애를 공부하는 문답이 끊이지 않았다. 19일 하루 동안 심양의 역사 유적지와 박물관 등을 방문하면서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 순례단은 20일 브뤼기에르 주교 유해가 모셔진 열차가 지나갔던 변문(邊門, 비엔먼)과 단동(丹東, 단둥)을 향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심양에서 변문까지는 160km, 변문에서 단동까지는 30km 정도 거리다. 이 경로는 브뤼기에르 주교가 살아서 조선에 입국했다면 거쳐 갔을 길이다. 변문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잠시 내린 순례단은 감격에 휩싸였다. 그곳은 서양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할 때, 그리고 조선 신자들이 박해자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중국을 왕래할 때 지나갔던 길목이었다. 또한 변문 표지석 바로 옆으로는 일제강점기에 경성에서 출발해 신의주를 거쳐 중국 대륙을 관통하던 철길이 있었다. 철길 위 기차를 보며 브뤼기에르 주교의 유해가 이 길을 지나는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버스가 단동시에 가까워질수록 순례단에는 지금은 갈 수 없는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감돌았다. 단동시 외곽은 시골 장터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시내로 접어들자 고층 빌딩이 즐비했다. 드디어 낮 12시30분경 단동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철교와 북녘땅이 순례단의 시야에 들어오자 “아!” 하는 감탄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그토록 밟고 싶었던 조선 땅에 살아서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선종 96년 만에, 조선교구 설정 100년 만에 유해로서 압록강 철교를 건너 경성까지 이송된 뒤 1931년 10월 15일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된 내력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했다. 순례단은 손에 잡힐 듯한 북녘땅에 갈 수 없다는 안타까움을 굽이치는 압록강 물결에 남겨 놓고 오후 4시경 버스에 다시 올라 북녘 동포들과 중국교회 신자들을 위해 기도를 바치며 심양으로 돌아왔다.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님 발자취를 따라서’ 순례 마지막 날인 4월 21일 주일에는 심양대교구 주교좌성당에서 오전 9시에 중국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주교좌성당 맞은편에 3층짜리 주교부(主敎府) 건물은 브뤼기에르 주교 유해 상자가 1931년 9월 17일 오후부터 9월 23일 심양역을 출발하기 전까지 머물렀던 역사적인 장소다. 브뤼기에르 주교 유해 상자는 심양-단동-신의주를 거쳐 9월 24일 오전 10시경 경성대목구 주교관(현 서울대교구 역사관)에 안치됐다. 이날 비로소 브뤼기에르 주교는 생전에 그토록 갈망했던 조선에서 안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순례를 마친 서울 순교자현양회 이래은(데레사) 부회장은 “브뤼기에르 주교님이야말로 조선이라는 나라가 알려져 있지 않던 시대에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던 참 사제”라며 “자신을 기다리는 신자들을 찾아 나서는 용기와 열정이 오늘의 사제들에게 필요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2024-05-05

[강우일 주교의 생명과 평화] 카인의 후예(하)

고대사회에서 농경문화를 이룬 종족은 부와 풍요를 구가했던 데 비해 유목민들은 평생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가축들 꽁무니만 따라다니다가 소박한 유랑 생활로 만족하는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러니 카인은 아벨보다 훨씬 더 유복하고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더 값진 자기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시고 오히려 아벨이 바친 보잘것없는 어린 양을 굽어보시자 카인은 몹시 화를 냈다. 문제가 있다면 그런 선택을 하신 하느님께 있다. 아벨은 아무 잘못도 없다. 아벨은 카인에게 아무런 해를 입힌 적도 없고, 열악한 환경에서 가축이나 따라다니면서 박복하고 가난한 삶을 살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아우를 카인은 애틋이 여겨 감싸고 돌보기는커녕 오히려 목숨을 빼앗기까지 하였으니 카인 안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 내가 먼저 폭력 행사하지 않아도 누군가 폭력적 선택하게 되면 세상에 포악한 불씨 점점 번져가 그래서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창세 4,6-7) 몹시 화를 내고 얼굴을 떨어뜨린 카인의 자세 안에는 하느님과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하느님의 선택과 판단에 공감도 동의도 할 수 없는 부정적 태도의 표출이다. 세상에서는 더 부유하고 더 힘이 있는 자가 더 높은 자리와 앞자리에 앉고, 약하고 가난한 자는 아랫자리에 앉고 적은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고 관행이다. 카인은 하느님이 그런 세상의 상식에 따르지 않으시고 약자를 높고 좋은 자리에 앉히시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화를 냈다. 얼굴을 떨어뜨렸다는 것은 하느님을 마주 보기도 싫어서 얼굴을 돌렸다는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거부요 저항의 자세다. 하느님은 카인의 이런 태도를 보시고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그를 노리게 될 것이라 하신다. 카인 안에 하느님과는 공존하거나 어우러질 수 없는 죄악의 마그마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모양새다. 이 용암이 폭발하여 친아우인 아벨의 목숨까지 빼앗았다. 살인에까지 이르는 포악은 카인 안에서 나왔다. 그리고 카인이 취한 하느님에 대한 거부의 자세는 이미 아담과 하와 안에 사탄이 씨앗을 뿌린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카인의 후예가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 안에 스스로 제어가 안 되는 포악의 뜨거운 에너지가 끓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불의와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저지른 불의와 폭력의 화염은 우리 안에 옮겨붙으면서 새로운 포악의 에너지를 증산한다. 전쟁에 나간 병사가 처음에는 적이라 해도 눈앞의 살아있는 인간을 향해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적이 쏜 총알로 내 옆의 전우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분노의 에너지가 활활 타올라 응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 번만 방아쇠를 당기면 그다음부터는 거리낌 없이 적에게 보복의 총알을 무제한 난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의 공통된 체험이다. 상대 포악의 에너지가 자신에게 전염되고 확대되어 끝없는 폭력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팔레스티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의 사슬이다. 인류는 과연 이 포악의 에너지와 폭력의 사슬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온 세상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우리 자신 안에 그럴만한 역량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드님을 보내주신 것 같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을 때 헤로데 왕은 무자비한 비인간적 폭력으로 두 살 이하의 어린이들을 몰살시키는 참극을 저질렀다. 폭력의 악순환 끊어버리려면 박해에도 힘으로 맞서지 않고 지혜 보여주신 예수님 따라야 그때 하느님이 보여주신 대처법은 도망치는 일이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이집트로 몸을 숨겼다. 헤로데 왕의 폭력에 대한 대응은 하느님 몫이었다. 죄악의 우두머리와 싸우는 일은 하느님이 감당하셨다. 하느님은 시간으로 헤로데 왕을 심판하시고, 아기와 부모가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안배하셨다. 루카 복음 22장 36절에 예수님은 반대자들의 음모가 절정에 달하자, 제자들에게 겉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정당방위를 인정하시는 모습이다. 그런데 정작 제자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온 무리에게 칼을 뽑아 대사제의 종 오른쪽 귀를 잘라버리자, 예수님은 “그만해 두어라” 하시고, 그 사람의 귀에 손을 대어 고쳐 주셨다. 마태오복음 26장에는 같은 장면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청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청하기만 하면 당장에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내 곁에 세워 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박해자들의 음모와 폭력에 힘으로 맞서는 길을 포기하셨다. 자신을 온전히 비우시고 악의 우두머리와의 싸움을 하느님 아버지께 맡겨드리셨다. 이것이 우리 안에 포악과 폭력의 불씨를 심어놓은 악의 괴수에 승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고 지혜다. 카인의 후예인 우리가 그 포악의 사슬을 끊어버릴 수 있는 길이다. 글 _ 강우일 베드로 주교 전 제주교구장

2024-05-05

“기도손 예쁘게 모으면 우리도 하느님 부르심 듣게 될까요?”

4월 21일 성소 주일을 맞아 전국 각 교구에서는 기념 미사와 다양한 행사가 마련됐다. 신학교를 방문한 참가자들은 미사와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자연스럽게 성소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대교구와 의정부교구는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21)를 주제로 제61차 성소 주일 미사를 봉헌하고 신학생이 함께하는 여러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7000여 명이 참석한 이번 행사에서는 굿즈 키링 만들기나 다트 던지기,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에 기반한 생태 지킴이 프로그램 등을 마련됐다. 특히 ‘수단 한 번 입어보자’ 코너는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외에도 음식 부스와 신학과 밴드 동아리 우니따스(UNITAS) 공연 등 다채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 미사를 주례한 서울대교구 총대리 구요비(욥) 주교는 강론에서 “오늘은 성직자 수도자들의 성소 개발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고 그 중요성과 필요성을 우리 모두가 일깨우는 날”이라고 전했다. 이어 고등학생 시절 냉담을 하다가 청평본당에서 총고해를 하고 ‘거룩한 사람, 완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사제의 길을 결심했다고 자신의 성소 동기를 밝힌 구 주교는 “특별히 일기 쓰기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과 이끄심에 귀 기울여보자”고 덧붙였다. 대구대교구는 대구가톨릭대학교 유스티노 교정에서 성소 주일 행사를 개최했다. 예비신학생과 신학생을 대상으로 열린 이번 행사에서는 ‘동행’을 주제로 소그룹 친교 모임과 레크리에이션 등이 진행됐다. 파견 미사는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주례로 봉헌됐다. 격년으로 진행되는 신학교 개방 행사는 내년 성소 주일에 열릴 계획이다. 광주대교구는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교구장 옥현진(시몬) 대주교 주례 미사와 행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마르 10,52)를 주제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수도회 홍보 및 스탬프 투어’와 기숙사 개방·수단 입기 체험 등의 ‘신학생 프로그램’, 신학생과 수도회 공연이 있는 ‘어울림 한마당’으로 구성됐다. 옥 대주교는 미사 중 “미사에 함께하는 분들은 이 자리에 있는 부제, 학사, 수사, 수녀님들의 밝은 얼굴을 보면서 예수님을 따를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며 참가자 4000여 명의 성소를 북돋웠다. 전국 교구, 신학교·교구청 등에서 행사 예비신학생·교구민 함께 어울린 ‘잔치’ 사제·수도자 참여해 성소 참의미 전달 전주교구는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에서 4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소 주일 미사와 행사를 열었다. 미사를 집전한 교구장 김선태(요한 사도) 주교는 강론에서 “하느님은 사람을 통해서도 부르시고 말씀 혹은 어떤 사건을 통해서도 부르신다”라며 “기쁘고 즐거운 마음에서 찾아오는 평화를 통해 하느님이 나를 부르는지를 식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대전교구는 교구청에 예비신학생을 초대해 의미 있는 성소 주일을 보냈다. 참가자들은 ‘나도 곧 신부님’, ‘성경 가로 세로 퍼즐’ 등 퀴즈를 풀며 성소를 키우는 시간을 가졌다. 부산교구는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교정에서 성소 주일을 맞아 주제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10)와 함께 미사와 ‘수녀복 입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인천교구는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0)를 주제로 성소 주일 미사와 행사를 마련했다. 수원교구는 ‘저마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상태대로 지내십시오’(1코린 7,20)를 주제로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성소 주일 미사와 행사를 열었다. 미사는 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리노) 주교가 주례했으며 수도회와 재속회 소개, 사진 및 콘텐츠 전시회와 여러 부스를 진행해 참가자들이 성소를 알아가도록 도왔다. 마산교구는 20여 년 만에 교구민 전체 대상의 행사가 교구청에서 열려 1200여 명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교구 내 수도회 등이 준비한 21개 부스를 돌며 성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며 사제·수도자와 자연스레 어울리는 게임과 공연에도 참여했다. 안동교구는 교구청에서 성소 주일 행사를 진행했다. 교구장 권혁주(요한 크리소스토모) 주례 미사를 시작으로 레크리에이션과 부스 관람, 공연 등을 통해 약 350명의 참가자가 성소를 길렀다.

2024-04-28
기사 더보기더보기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