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면 자기도 모르게 두려움에 빠진다. 그런데 그 두려움의 근원을 캐묻다가도 어느덧 의연해지는 이유는 뭘까. 지난했든 순탄했든, 삶이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둘 때 비로소 온전한 것이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 아닐까. 국제가톨릭형제회(Association Fraternelle Internationale, 이하 AFI) 회원들이 운영하는 전·진·상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원장 배현정, 이하 전진상 호스피스)는 이렇듯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죽음을 포기가 아닌 ‘완성’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30여 년간 호스피스 돌봄을 해왔다. 한계에 놓인 생명을 비로소 ‘영원’으로 치환하는 전진상 호스피스를 소개한다. 아픈 이는 즐거운 시간 보내고 가족도 힘들지 않게 돕는 자리 죽음, 끝 아니라 '영원' 여는 문…화해와 성찰로 가장 아름다운 시간 인도 ■ 가정집과 같은 호스피스 “우리는 일을 시작한 초기부터 늘 생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환자들을 만나왔습니다.” 환자들의 가정 방문 진료를 다니던 전진상의원의 AFI 회원들은 이렇듯 집에서 삶의 끝을 보내며 고통스러워하는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해 1996년부터 암환자를 위한 가정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시작했다. 평생 고달프게 살아온 이들이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에라도 인간답게 존중받으며 평안한 임종을 맞이하도록 돕고자 하는 뜻이었다. 벨기에 출신 간호사로 1972년 한국에 온 배현정(Marie-Helene Brasseur) 원장은 1975년 김수환 추기경 제안으로 무료진료소 전진상 가정복지센터에서 봉사했다. 상주 의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1981년 중앙대 의대에 들어가 1985년 의사고시에 합격했고, 1988년부터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했다. 전진상의 여러 직원들도 1990년대 호스피스 교육을 받아 체계적인 호스피스 돌봄의 기틀을 갖췄다. 당시 정부에서 진행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사업은 대학병원과 병동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에 전진상 의원도 AFI 회원들의 숙소를 내어 호스피스 병동을 마련했다. 2008년에는 병상 10여 개를 갖춘 입원실을 열고 서울 최초의 독립시설형 호스피스 기관이자 전문 완화의료 센터로 자리매김했다. 입원형·가정형 양쪽 모두를 하는 호스피스로, 일반 병원과 달리 가정집과 비슷한 구조로 의사 3명이 상주한다. 서울 시흥동 주택가 틈에 자리한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3층 건물 그대로, 고즈넉한 가족 분위기의 호스피스다. 환자에게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평안함을 느끼게 한다. 한국에서 보편적인 대형 병원 호스피스 병동과 달리,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모델이다. 전진상 호스피스의 완화의료는 말기질환 환자를 위해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이뤄진 전문팀이 통증 등으로 힘들어하는 환자의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하고,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경감시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환자의 고통에 따른 적절한 완화적 돌봄, 죽음을 향해가는 환자의 마지막 길 동반, 정서·영적 돌봄을 제공한다. 환자는 물론 그 가족까지도 돌봄의 대상이다. 통증, 호흡곤란, 구토 등 고통스러운 신체 증상 조절을 넘어 환자와 가족의 불안, 우울, 두려움과 경제·사회적 문제도 돌본다. 환자마다 3세대 가계도를 만들어 삶의 배경을 깊이 있게 이해한다. 전문 호스피스 기관답게, 미술 및 음악요법 등 프로그램에도 아마추어가 아닌 전문 치료사를 동원한다. 가족에게는 임종 준비부터 사별 후 심적 어려움에 귀 기울이고 돌본다. ■ 현재를 위해 산다는 것 사람들이 질병을 견뎌낼 힘을 얻는 건 치유와 그 후 생활을 향한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미래를 전제로 한 치유적 진료가 아니라 ‘현재’를 위하여 사는 시간을 마련하는 데 의미가 있다. 삶을 긍정하고 죽음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간주한다. 죽음을 촉진하거나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라 통증 등 다른 증상들을 완화하는 가운데 임종까지 활발하게 살 수 있도록 환자에게 지지체계를 제공한다. 그로써 환자의 가족은 투병 기간과 사별 시기에 대처할 힘을 얻는다. 미래를 포기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평온함과 기쁨은 미풍처럼 잔잔하게 찾아든다. 전진상 호스피스 직원들이 자주 크게 체험하는 것은 환자들이 표현하는 강력한 삶의 의지다. 생을 마치기 며칠 전에도 환자들은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일들이 있다며 강력한 열정을 드러낸다. “모든 것이 무정물(無情物, 나무나 돌 등 감각이 없는 것)에서 그쳤을지도 모르는 이 존재의 바다에서, 살아 숨 쉬며 모든 것을 느끼고 인식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신비로운 선물을 받았는지 모른다”며 깊이 있는 통찰로 나아가는 환자도 있다. 고통으로 점철됐던 삶들도, 일생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았음을 뽐내던 삶들도 그 깨달음 앞에서는 두루 평등해진다.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해서예요.” 호스피스에 대해 많이 알려지며 ‘죽음 대기소’라는 오명도 많이 씻어졌지만, 아직 건강한 이들에게조차 여전히 두려운 공간이자 시간적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죽음뿐’이라는 패전병과 같은 의기소침 때문이다. “이곳은 죽으려고 오는 곳이 아니에요, 함께 마지막 순간까지 잘 살려고 온 거예요”라며 전진상 호스피스 직원들은 환자와 그 가족에게 말을 건넨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오가며 긴장이 풀린다. 그렇게 집처럼 꾸며진 아늑하고 따뜻한 병실에 누우면 그들은 금세 하나같이 고백해 온다. “여기에서 비로소 나로서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 생애 가장 아름다운 시간 결말만 있는 책은 아무리 멋져도 감동과 의미를 던져주지 못한다. 비통한 끝을 맞은 주인공도 스스로 영웅으로 추억할 수 있게 하는 힘은 그가 겪어낸 줄거리(과정)에서만 나온다. 이렇듯 호스피스의 시간은 환자들 삶의 책에 ‘화해’의 줄거리를 써낼 시간이 된다. 깨진 관계, 불화, 애증….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삶이기에 오래도록 미워하고 미움받았던 그들은 좌절됐던 사랑, 믿음, 관계의 문제에 비로소 선한 종지부를 찍는다. 과정(화해) 없이 결말(죽음)로 뛰어넘는 조력자살, 안락사, 존엄사를 택했다면 결코 이루지 못했을 해후(邂逅)의 줄거리다. “임종자 누구나 마지막 날 ‘생애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다’며 꽃 같은 웃음을 보인다”는 직원들 고백대로다. 20년 동안 서로 있어도 없는 사람처럼 등지던 모자가 서로 손을 맞대고, 버림과 버림받음의 상처뿐이던 전(前) 배우자가 병상에 찾아와 눈을 마주친다. 때 타지 않은 헌신뿐이던 지난날처럼, 아무 조건 없이 충만했던 그때 그 사랑이 담긴 시선이 오간다. “원망이란 결국 해를 등진 사랑이 드리웠던 그림자에 불과했구나” 하며, 모든 응어리를 맺힘 없이 내려놓는다. “당신을 원망했어요. 하지만 사랑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부끄럽기만 했던 이 마음을 이제야 표현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배 원장은 “죽음은 포기의 끝이 아니라 ‘영원’을 여는 문”이라며 “호스피스를 통해 화해와 성찰 안에 더없는 평안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문의 jeonjinsang.or.kr
2024-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