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자녀를 위한 기도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 있는 인간입니다”

신자로 살아오며, 가톨릭 기도서에 나오는 ‘자녀를 위한 기도’를 바쳐 왔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도, 조금 자랐을 때도, 제 마음이 불안할 때도 이 기도를 바쳤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자녀를 길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어느 순간부터 이 기도문의 전반부에 있는 이 문장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녀를 길러’라는 구절에서, ‘과연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하느님께 맡겨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마음에 자리 잡았습니다. 아버지가 되고 나서 제가 ‘아이를 기른다’고 말해 왔습니다. 실제로 아내가 아이를 낳았지만 아버지인 제가 먹이고, 가르치는 일에 동참했으니까요. 두 딸의 아버지로서 꽤 오랫동안 아주 자연스럽게 ‘제가 기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정말로 내가 이 아이들을 키운 것일까, 아이들과 함께 그 시간을 지나온 것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제가 분명히 해냈다고 말할 수 있는 일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서성였던 순간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 힘든 일을 겪을 때, 불안해하며 잠들지 못하던 밤들 앞에서 저는 준비된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럴듯한 조언을 건네지도 못했고, 상황을 단번에 해결해 주지도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저 아이들 곁에서 함께 머무르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자라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자기 생각을 갖고 자기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가고 있는 이 길은, 애초에 내가 대신 걸어줄 순 없는 길이었구나!’ 하는 깨달음 말입니다. 아내는 어릴 적 자주 넘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대신 걸어 주지 않았고, 넘어지지 않게 미리 막아 주지도 않았답니다. 다만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이었다고요. 그 짧은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자녀를 기른다’는 것은 아이가 가야 할 길을 앞장서서 열어준다거나 대신 그 길을 걸어 준다기보다 하느님께서 이미 시작하신 길이 드러나도록 아이 곁에 머무는 일일 것입니다. 기도문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이 문장은 자칫 아이가 무언가 대단한 일을 이루기를 바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신학자였던 성 이레네오는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 있는 인간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이 특별한 성취를 이루는 삶이 아니라, 내가 나답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내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삶이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가족이란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 주는 공동체가 아니라, 가족구성원 각자가 자기답게 살아도 괜찮다고, 하느님 앞에서 자기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조용히 말해 주는 관계일 것입니다. 자녀를 위한 기도의 전반부는, 부모에게 더 많은 책임을 지우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짐을 내려놓게 하는 기도처럼 들립니다. 아이의 삶을 대신 완성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 하느님께서 이미 그 삶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믿음 말입니다. 이 기도는 응답을 서두르지 않은 채, 우리 삶 한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글 _ 유형선 아우구스티노(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주님의 부르심과 회심 그리고 카이로스의 완성

포목점과 염색업을 하는 부유한 상인 집안에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던 프란치스코에게 세상의 유혹을 떨쳐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프란치스코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당시 황제를 지지했던 도시 페루자와 교황을 지지했던 아시시의 전쟁에 참전하면서부터입니다. 어린 시절 라틴어도 배우면서 남부러울 것 없이 성장한 프란치스코였지만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중인이었지 귀족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 신분 상승의 유일한 방법은 전쟁터에서 공을 세워 기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1202년 부푼 꿈을 안고 페루자와의 전쟁에 참전하였지만, 포로로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인생의 밑바닥을 보았을 것입니다. 지하 감옥 안에서 1년 가까이 갇혀 있던 기간은 고통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참담하고 나약한 모습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시간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 순간 처음 밖으로 보이는 ‘나’가 아닌 내부의 자신에게 질문합니다. ‘나는 왜 세상에 태어났는가? 진정한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지만 아직도 프란치스코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고 귀족이 되고 싶은 열망을 끊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온 프란치스코는 새로운 꿈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위해 십자군들이 모이는 아시시 근처 도시 스폴레토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을 자다 꿈꾸게 되는데 주님께서는 더 많이 베풀어줄 주인을 섬기지 않고 왜 종에게 자신의 삶을 바치려고 하는지 질문하십니다. 그러면서 다시 고향인 아시시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프란치스코는 꿈에서 들었던 음성대로 기사가 되겠다는 욕심을 포기하고 아시시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꿈은 하느님이 프란치스코를 부르시는 중요한 첫 번째 때, 카이로스의 시간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에 대한 개념으로 아이온(αἰών), 크로노스(χρόνος) 그리고 카이로스(καιρός). 세 가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아이온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성을 나타내는 신의 시간입니다. 크로노스는 양적인 개념으로 1년, 1시간, 1분 등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세상의 시간입니다. 카이로스는 질적인 개념으로 측정할 수 없는 순간이나 때를 가리키는 시간입니다. 아이온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만날 수 없는 영역이고, 크로노스는 유한한 존재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영역이며, 카이로스는 사람의 힘으로 만날 수는 없지만 절대자의 개입으로 아이온과 크로노스를 이어주어 새로운 순간을 경험하게 해주는 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카이로스는 하느님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강요와 명령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하심의 시작이고 그 완성의 때는 오로지 ‘사람의 응답’에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선택을 위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깨어있는 이성과 믿음인 것입니다. 기사가 되겠다는 욕심을 포기하고 아시시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프란치스코의 온전한 선택과 믿음,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에서 완성된 충만한 시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프란치스코에게 무작정 아시시로 돌려보낸 것이 아니라 세상과 싸울 무기를 주셨습니다. 꿈속 예수님의 손이 향한 궁전 안에 있는 무기들은 사람을 죽이는 칼과 창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평화를 지키는 십자 표시가 들어간 방패들이었습니다. 하늘나라를 위한 싸움의 무기는 세상의 칼이 아니라 믿음의 방패임을 프란치스코에게 명확하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에페 6,12-16) 고향으로 돌아온 프란치스코는 아시시 성 밖에 있는 허물어져 가던 다미아노 경당에서 하느님의 뜻을 청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제대 위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이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영혼의 안식을 느끼며 십자가를 응시하였습니다. 그 순간 십자가로부터 울리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프란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세워라.” 이 말씀을 들은 프란치스코는 처음엔 문자적으로만 알아들어 자신이 기도하고 있는 반쯤 허물어진 다미아노 경당을 수리하라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하지만 허물어져 가는 집을 고쳐 세우라는 것은 작은 성전인 개인의 회개와 큰 성전인 교회의 회개를 말씀하시는 것임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프란치스코에게 회개하라는 이 말씀은 과거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그림 <십자가의 기적>을 보고 있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 앞으로 몸이 기울어져 다가가는 프란치스코의 모습과 놀란 얼굴, 그리고 벌어진 손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 모두를 회개의 시간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13면

[WYD와 함께] 원주 교구대회,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필리 4, 19)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향한 순례길에 부담감을 덜어 줍니다. 교회에 젊은이들이 줄어든 현실이나 봉사할 사람의 숫자를 걱정하는 마음은 더 이상 이 순례길에 방해 요소가 되지 않습니다. 이 순례길은 행사를 잘 치르는 여정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의 영적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열린 마음으로 초대하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 이 대회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원주교구는 2026년 1월 21일부터 2월 25일까지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의 교구 순례를 시작으로 이번 해를 맞이합니다.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24년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사랑하는 한국 청년 여러분! 이제 여러분의 차례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아시아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십시오”라고 하신 말씀처럼 교구 곳곳에 예수님의 사랑을 선포하려 합니다. 본당뿐만 아니라 성지, 수도회, 학교, 사회복지 시설까지 순례합니다. 또한 이 순례 기간 중인 2월 7일(토), 배론성지 최양업 신부님 기념 대성전에서 원주교구 대회 발대식 및 발대 미사가 이어집니다. 본격적으로 교구민과 함께 교구 대회 뿐 아니라 2027년 서울 세계 청년대회를 향해 걸어갈 예정입니다. 우리 교구는 초대 교구장이신 지학순(다니엘) 주교님의 ‘빛과 정의’, 2대 김지석(야고보) 주교님의 ‘기쁨’, 그리고 3대 조규만(바실리오) 주교님의 ‘평화’라는 사목 표어의 주제들이 교구 대회 안에서 체험되길 고대하면서, 산, 강, 바다의 풍요로운 자연환경, 그리고 순교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성지를 바탕으로 “Witness”(증인, 증언)라는 단어를 교구 대회의 주제로 결정하였습니다. 또한 WYD, WONJU, WITNESS 각 단어의 시작인 W로, 첫날은 ‘Welcome’, 둘째 날은 ‘Witness of light’, 셋째 날은 ‘Witness of joy’, 넷째 날은 ‘Witness of peace’ 그리고 마지막 날은 ‘With you’로 교구 대회 매일의 주제를 정해보았습니다. 교구 대회 프로그램으로, 지역 사회복지 체험, 성지 순례, 교구 내 순례길인 ‘님의 길’과 석탄을 실어 나르던 ‘운탄고도’ 걷기, 자연 안에서 사찰 방문과 문화 탐방 등 다양한 장소에서의 만남과 체험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구 대회의 꽃이라 불리는 홈스테이를, 외국 청년들에게 뿐 아니라 초대한 가정에 기쁨의 체험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입니다. 늘 많은 도움 주시는 전국 교구의 신부님, 간사님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교구장 주교님께서 저에게 하신 성경 말씀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걱정하지 마라.” 글 _ 김정하 야누아리오 신부(2027 WYD 원주 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장)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17면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전진상 공동체의 ‘유쾌한 언니들’

1970년대 시흥. 지금의 서울 금천구 시흥동·독산동 일대는 판잣집과 무허가 주택이 겹겹이 이어진 도시의 변두리였다. 장마철이면 골목마다 물이 차올랐고, 겨울이면 작은 불씨 하나에 온 동네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 등 가난한 이들과 실향민이 모여들었지만, 국가도, 제도도, 교회도 이들의 삶을 쉽게 품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산동네에, 1975년 2월 1일 사과 궤짝 몇 개와 이불 보따리를 들고 세 명의 젊은 여성이 들어섰다. 책상 대신 궤짝을 놓고, 삶의 현장 한복판에 그대로 몸을 던진 이들. 그들이 걸어 들어간 그 골목 ‘전진상’의 시작이었다. 무작정 산동네에 발을 들인 ‘고운 처자’들은 국제가톨릭형제회(Association Fraternelle Internationale, 이하 아피) 회원인 최소희(데레사) 약사, 유송자(데레사) 사회복지사, 벨기에 출신 배현정(마리 헬렌 브라쇠르) 간호사.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라(Becoming Being)’라는 아피의 가르침과,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가난한 이들 속으로 들어가라”는 요청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해 6월 7일 전진상 약국이, 10월 25일에는 전진상 복지센터가 문을 열었다. 3년 뒤 김영자(루치아) 간호사가 합류하면서 네 명이 된 이들은 가파른 산동네 골목을 오르내리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병으로 고통받는 이웃을 돌보고 약을 나누고 아이를 업고 뛰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씨앗은 이후 전진상 의원과 복지관,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지역아동센터로 자라났다. 50년이 흐른 지금, 이들은 8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현역이다. 최소희 약사는 약국 원장, 유송자 사회복지사는 복지관 관장, 김영자 간호사는 의원과 복지관의 재정 담당, 의대에 진학해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된 배현정 의사는 의원 원장을 맡고 있다. 네 명이 시흥벌에서 펼쳐온 50년은 한국 사회복지 역사의 살아 있는 증언이기도 하다. “가난한 이들 속으로 들어가라” 1974년 1월 초, 아피 공동체의 새해미사를 집전한 김수환 추기경은 뜻밖의 제안을 건넸다.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가난한 이들 속으로 들어갔으면 한다”며, “특히 평신도인 아피 회원들이 그곳에서 함께 살며 활동해 달라”는 것이었다. 최소희 원장은 그 순간을 떠올리며 “마치 마음에 ‘빛’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그 정신을 삶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던 때였다. 당시 유송자, 배현정 회원 역시 그 말을 듣고 깊은 울림을 느꼈고,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뜻을 모았다. 김 추기경은 “약사, 사회복지사, 간호사가 함께 있으니 약국을 열고 의료·사회복지 활동을 하면 된다”며 독려했고, 빈민촌 후보지 목록을 건네주었다. 하나하나 지역을 직접 돌아보던 이들은 시흥동에 이르러 말을 잇지 못했다. 배현정 원장은 “그 자체로 정말 충격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미등록 주민을 포함해 약 4만 명이 산동네에 살고 있었지만, 약국과 동네 의원 한 곳이 전부였어요. 아무리 가난해도 이렇게까지 가난할 수 있을까 싶었죠.” 어떤 이는 물조차 없는 판잣집에 살았고, 어떤 이들은 생선 나무 궤짝을 엮어 만든 공간에서 가족과 버텼다. 세 사람의 마음은 ‘여기에 들어와야 한다’로 자연스럽게 모였다. 김 추기경의 도움으로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 지원을 받아 현재 전진상 약국 자리의 2층 집을 구했고, 그곳에서 전진상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진·상의 정신 그대로 살아 낸 50년 전진상의 초창기는 시흥의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낸 시간이었다. 온 가족이 폐결핵에 걸려 도움을 청한 집, 연탄가스에 중독된 가족, 폐에 고름이 가득 차 심장이 오른쪽으로 밀릴 만큼 위급했던 학생, 가마니에 덮여 하수구에 놓여 있던 어린아이의 시신까지…. 기억을 꺼내면 하룻밤을 지새울 만큼 많은 사연이 이어졌다. 젊은 여성들이 빈민가에서 살며 일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알코올중독자의 난동과 칼부림, 심지어 조현병 환자가 약국으로 뛰어드는 일도 있었다. 현금이 있는 약국은 가난한 동네에서 언제나 표적이 될 수 있었다. 김 추기경은 사정을 알고 매우 안타까워했다. ‘고운 처자들이 제복도 보호막도 없이 험난한 생활을 어찌 해 나갈까’ 걱정하면서도, 성직자와 수도자가 하기 힘든 일을 평신도인 아피 회원들이 맡아 준 것에 깊이 감사했다고 한다. 이러저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심란했을 순간이 많을 법도 하다. 접고 싶을 때는 없었을까. “온전한 자아봉헌, 참다운 사랑, 끊임없는 기쁨인, 아피의 전.진.상(全眞常) 영성에 따른 우리의 소명이자 사명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한 번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최소희 원장의 말에 유송자 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나를 위한 일이 아니었어요. 정말 그리스도의 사업에 동참한다는 마음이었죠. 인간적으로 힘들다고 느낀 적은 있어도, 근본적으로 일을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죠.” 김영자 간호사는 “건강이 많이 안 좋아서 모든 게 더 어렵게 느껴진 적도 있었지만, 공동체가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웃과 함께 삶을 나눈 것, 그것이 전진상” 전진상 공동체 50년의 의미에 대해 언니들은 한목소리로 “이웃과 함께 살며 아픔과 삶을 나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각자 상처와 어려움이 있지만, 나를 닮은 이웃, 소외되고 병든 이웃과 함께 살며 그 아픔을 함께한 시간이 뜻깊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은 “전진상이라는 이름 아래 누구나 형제였고, 모두가 내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살아 왔다”며 “또 이곳에 오는 사람들도 ‘내 집’, ‘내 형제’를 만난 마음으로 거쳐 갈 수 있기를 여전히 희망하고 있다”고 했다. 전진상이 자신들에게 어떤 곳이었는지를 묻자, ‘인생’, ‘영적·정신적으로 성장시켜 주고 큰 가족을 만들어 준 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50년을 꾸준히 같은 뜻을 가지고 열심히 살 수 있는 이들을 만났다는 게 감사해요. 그리고 사람들이 전진상을 떠올릴 때 ‘그들은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며 살았다’고 말해주면 좋겠어요.” 이들의 손길이 닿은 전진상 복지관과 산하 5개 기관은 지금도 지역 사회 안에서 전인적인 돌봄을 이어가고 있다. 저소득층에게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말기 암 환자가 가정에서 편안히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 돌봄도 한다. 의료 상담뿐 아니라 가족 문제에 대한 종합 상담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결손가정 아동과 비행 청소년을 예방하는 데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저소득층 아동에게는 전인 교육과 학습 공간을 제공하고, 장학금 지원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을 응원하고 있다. 교사와 간호사, 의사, 사회복지사,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며 계층 간의 벽을 허물고 서로 돌보는 공동체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전진상의 뜻을 이어갈 사람들 요즘 이들의 마음속에 가장 큰 고민은 전진상의 뜻을 함께 이어갈 사람들이다. 언니들 가운데 막내인 80세의 배현정 원장은 전진상의원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의사를 찾고 있다. “전진상 의원은 일반 병원의 외래 진료보다 훨씬 어려워요. 환자를 전체적으로, 포괄적으로 바라봐야 하거든요. 가정의학과 진료는 물론이고, 40년 넘게 이어져 온 방문 재택 진료도 함께해야 하죠. 최근 기대했던 의사 선생님도 ‘왕진’이 부담스럽다며 결국 오지 않으셨어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인터뷰 현장. 80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네 명의 언니들은 힘차고 밝았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더 젊어지는 것 같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든든한 언니들이다. 이들은 전진상을 아끼고 함께해 준 의료 봉사자와 후원자, 자원봉사자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전진상이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라’는 정신 안에서 앞으로도 따뜻한 사람이 사는 곳, 누구나 편히 머물 수 있는 곳,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는 공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시흥동에서의 반세기를 넘어선 지금, ‘못 말리는 유쾌한 언니들’이라 불리는 네 사람은 여전히 사람들 곁에서 웃음으로 문을 연다. 그 웃음 안에는 기도와 눈물, 그리고 흔들림 없는 선택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상담 및 문의 02-802-9313 전진상 의원·복지관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12면

“어려운 단어는 짝꿍 아저씨에게 질문하며 공부했어요”

친구들과 게임하기를 좋아하고, 체육 시간에는 야구가 가장 즐거우며, 본당 주일학교에서는 맛있는 간식을 가장 기다리는 구예준(비오·수원교구 풍산본당) 군. 여느 초등학교 6학년과 다르지 않은 예준이는 수원교구 성경공부 일반 과정 최연소 수료자다. 매일 새벽미사와 평일미사에 참례하고 복사를 서며, 성경 필사와 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맞아, 교구 성경공부 3학기를 앞두고 있는 평범한 예준이의 ‘특별한’ 신앙 여정을 소개한다. 야구 좋아하는 6학년 비오, 수원교구 성경공부 최연소 수료 “수원교구 성경공부 일반 과정 등록비로 제 용돈 5만 원을 냈어요.” 2025년 초,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예준이는 수원교구 신장성당에서 처음 성경공부 강의를 들었다. 처음엔 간식도 사고 게임도 살 수 있는 돈이라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강의를 들으니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어 수업을 계속하게 됐다. 예준이가 처음 성경공부를 접한 것은 어머니 박경보(엘리사벳·수원교구 풍산본당) 씨 덕분이었다. 교구 성경 교육 봉사자인 박 씨는 매주 수요일 저녁 신장성당에서 강의했고, 그 시간 동안 아들이 따로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의실이 궁금해 문을 열어본 예준이는 자연스럽게 성경공부에 흥미를 느꼈고 자연스럽게 강의를 함께하게 됐다. 박 씨는 “예준이를 임신했을 때도 성경 교육 봉사를 하고 있었기에, 태교 자체가 성경 말씀이었다”고 회상했다. 초등학생 수강 신청을 받은 담당 수녀는 처음엔 과정 수료가 가능할지 염려했지만, 예준이를 받아들였다. 수업에 함께한 어른들도 놀랐지만 곧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간식도 챙겨주고 가방도 걸어주는 등 아들이나 손주처럼 대했다. 특히 같은 반 여성 신자들은 떡볶이, 부침개 같은 간식을 준비해 응원했다. 2025년 1년간 짝꿍이었던 50대 후반의 남성 신자는 메모지에 ‘비오야, 우리 함께 하느님의 도구로 쓰임 받자’는 메시지를 써서 전하며 격려했다. 예준 군은 “어른들 대상 강의라, 듣다 보면 모르는 단어나 어려운 내용 때문에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며 “짝꿍 아저씨를 보고 형광펜 색상까지 맞춰 똑같이 밑줄을 긋기도 하고, 궁금한 건 질문도 하며 수업을 따라갔다”고 말했다. 말씀 안에서 자라는 아이, 함께 걷는 부모 “어린이를 위한 성경공부가 따로 있으면 좋겠어요. 게임처럼 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예준이와 어머니는 2025년 교구 성경잔치에서 어린이와 성인 대상의 ‘성경 예언서 초성 게임’을 준비해 직접 촬영한 영상을 봉사자들에게 배포했다. 예준이가 성경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초등학교 3학년, 첫영성체 교리 숙제로 마르코복음을 필사하면서부터였다. 이후 평일미사에서 접한 사도행전에 흥미가 생겨 필사를 계속 이어갔다. 함께 꾸준히 해 온 사람은 바로 어머니였다. 박 씨는 “처음부터 ‘엄마랑 같이 쓰자’고 제안했고, 지금도 매일 예준이와 함께 필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박 씨는 본당 첫영성체 부모 교육 교사로 3년째 봉사 중이다. 예준이처럼 다른 아이들도 성경 필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부모와 함께 실천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의 신앙은 환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며, 자신 또한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진리를 절감한 시간이 있었기에 더욱 그렇게 느낀다고 덧붙였다. “아이마다 때가 다르기에, 지금 잘한다고 의미 있는 건 아니에요. 부모는 아이에게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알려줘야 해요.” “야구선수! 신부님! 둘 다 되고 싶어요” 예준이의 장래 희망은 야구선수이자 신부다. 집에서는 미사 집전 놀이도 한다. 가족들을 앞에 앉히고, 동그란 감자칩을 포도 주스에 찍어 성체를 나눠준다. 놀라운 점은 미사 통상문을 거의 모두 외워 따라 한다는 것. 미사 때 늘 미사 통상문을 보며 기도문을 익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기도요? 가장 짧은 ‘아멘’이요!”라며 해맑게 웃는 모습에서는 여전히 동심이 묻어난다. “나중에 성경에 나오는 곳들을 성지순례 해보고 싶어요. 아직 다른 데는 잘 몰라서, 예루살렘에 꼭 가고 싶어요. 언젠가는 갈 수 있겠죠?”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11면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 (35)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과 최기식 신부 구속

국익 내세워 신군부 지지한 미국, 광주 학살 묵인하고 독재 정당화 반독재·반미 투쟁 본격화…1982년 부산 미 문화원에 방화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 관련 최 신부 등 5명 구속 - 치안본부는 지난 4월 8일 부산 미국 문화원 방화 사건과 관련, 원주교구 사목국장 겸 교육원장 최기식 신부(39), 방화교사범 김현장(32), 교육원 관리인 문길환(37), 치악산 서점 주인 김영애(25), 가톨릭농민회 조사부원 오상근(29) 씨 등 5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최 신부에게는 범인 은닉, 다른 4명에게는 국가보안법·범인 은닉 및 교사 혐의 등이 적용됐으며... 최 신부의 혐의 내용은 80년 5월 김현장을 22개월간 교육원에 은신시켰고, 지난 3월 19일 김현장으로부터 방화 교사 사실을 고백받고 도피 자금 50만 원을 주었으며, 3월 28일부터 4일간 문부식과 김은숙을 숨겨준 것 등이다.”(가톨릭신문 1982년 4월 18일 1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행사를 치르며 정치적 발언을 자제해오던 한국교회는, 1982년 4월 다시 한번 전 국민적 관심의 초점이 되는 사건을 맞게 됩니다. 이는 원주교구 최기식(베네딕토) 신부가 5·18 광주와 관련돼 수배 중이던 김현장과 부산 미 문화원 방화범 문부식, 김은숙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범인은닉죄’로 구속된 사건입니다. 제5공화국과 미국 신군부 세력은 광주를 무력으로 짓밟은 직후인 1980년 5월 31일, 초헌법적 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위원장 전두환)를 설치했습니다. 국보위는 ’사회 정화‘를 명목으로 삼청교육대를 설치하고 공직자 숙청, 언론 통폐합을 단행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정치적 반대 세력을 무력화하고 최규하 대통령을 강제로 하야시켰습니다. 전두환은 1980년 8월 27일 ’체육관 선거‘를 통해 제11대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이후 제5공화국 헌법 개정안 통과, 국회 해산, 기성 정치인 활동 금지, 관제 정당 급조 등 사전 작업을 거쳐, 1981년 2월 25일 간접선거를 통해 제12대 대통령으로 선출됐습니다. 미국은 광주에서의 학살을 묵인함으로써 어두운 속내를 드러낸 바 있습니다. 나아가 5·18 이후의 모든 과정에서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며 학살의 주범인 신군부를 지지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전두환의 취임식 이전인 1981년 2월 말 그를 워싱턴으로 초청해 지지를 표했고, 1982년 4월에는 부시 부통령이, 1983년 11월에는 레이건 대통령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재차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분노와 배신감, ’반미주의‘의 확산 무죄한 시민들의 학살을 묵인하고 그 주범인 전두환을 비호한 미국의 실체는 한국 국민에게 충격과 배신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한국인을 비하하고 독재를 정당화했던 미국 고위 인사들의 망언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특히 존 위컴 주한 미군사령관의 ’들쥐 발언‘은 가장 치욕적이었습니다. 그는 1980년 8월, 미국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은 들쥐(lemmings)와 같다. 그들은 언제나 지도자가 누구든 줄을 서서 그를 따라간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한국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감을 주었으며, “미국은 한국의 민주화보다 독재자를 통한 통제를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폭력과 독재를 지원한 미국의 이중적인 모습은, 1980년대 내내 학생운동권이 반미 노선으로 기울게 만드는 원인이 됐습니다. 그 최초의 반미 투쟁이 광주 미 문화원 방화 사건입니다.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 회원들은 1980년 12월 9일 밤, 광주 미 문화원 지붕에 불을 질렀습니다. 하지만 당국은 반미 감정의 확산을 우려해 방화 사실 자체를 숨기고 전기 누전에 의한 화재라고 거짓 발표를 했습니다. 성역의 침탈 최기식 신부의 구속을 불러온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은 광주 미 문화원 방화가 불씨가 된 것이었습니다. 1982년 3월 18일, 부산 미 문화원에 문부식, 김은숙 등이 불을 질렀습니다. 이들은 광주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을 묻고 반미 투쟁을 호소했습니다. 사건 후 수배 중이었던 김은숙과 문부식은 원주교구 교육원으로 최기식 신부를 찾아왔습니다. 이곳에는 수배 중이던 김현장이 2년 가까이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모두 교회의 주선으로 자수의 뜻을 밝혔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최 신부가 이들을 숨겨준 것을 두고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불순분자를 비호했다”며 범인 은닉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씌워 전격 구속했습니다. 그리고 여론을 총동원해 방화범들이 북한의 사주를 받았으며, 천주교회와 원주교구, 가톨릭농민회 등을 국가 안보를 해치는 범죄의 온상으로 몰았습니다. 이에 교회는 최 신부의 행위가 사제의 양심에 따른 정당한 직무 수행이라고 맞섰습니다. 원주교구장 지학순(다니엘) 주교는 1982년 4월 2일, 가톨릭신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 사제의 직분”이라며 “최 신부는 사제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최 신부의 동료 사제들은 4월 12일 성명서를 통해 “당국의 발표와 언론 보도가 사건의 실체에 대한 진상 조사와 발표보다는 천주교 신부의 범인 은닉 문제를 확대 선전함으로써 사건의 본말을 전도시키고 나아가 의도적으로 천주교회를 음해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4월 16일, 주교단은 “가톨릭교회를 불온집단의 온상으로 오해하도록 유도”하는 언론보도에 유감을 표시하고, “교회가 보호하던 이들의 자수를 주선해 준 최 신부의 행위는 최선의 길”임을 확신하며, “쫓기고 있던 사람들을 보호해 준 사제들의 양심을 전적으로 존중한다”는 입장을 천명했습니다. 최기식 신부는 부산지법(1심)과 대구고법(2심)에서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성직자의 직무라 하더라도 실정법(국가보안법 등)의 테두리 안에서 행사되어야 한다”고 판시하며 종교적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1983년 대법원 확정판결에서도 형법상 범인은닉죄 및 국가보안법 위반(불고지죄 등)의 죄목으로 같은 형량이 확정돼 실형을 살게 됐습니다. 이후 1983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석방됐고, 사면 복권됐습니다. 이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비록 성역과 양심의 영역이 침탈됐지만, 역사적 승리는 오히려 교회와 민주화 세력의 것이었습니다. 이제 천주교회는 사회정의와 민주화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최전선으로 나서게 됩니다. 정치적 민주화의 결정적 계기가 된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천주교회와 명동성당은 공권력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성역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8면

[하느님의 말씀 주일 특집] “낡은 성경, 직접 리폼해 보세요”

갈라지고 가루가 떨어지는 낡은 성경 표지. 방치하거나 버리기보다 내 손으로 나만의 표지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성경을 오래 사용한 신자라면 성경 표지가 갈라지며 떨어져 나온 가루 때문에 불편을 겪곤 한다. 이는 성경 표지가 직물 위에 폴리우레탄을 코팅한 인조가죽 표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폴리우레탄은 가죽처럼 촉감이 부드러울 뿐 아니라 가볍고 가격 부담도 적어 성경 표지로 널리 쓰인다. 그러나 습기와 열, 직사광선 등에 약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코팅층이 약해지면서 표면이 갈라져 떨어지거나 끈적한 상태로 변하곤 한다. 모든 성경이 폴리우레탄 표지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우피(소가죽)와 돈피(돼지가죽)로 제작된 표지는 시간이 오래 흘러도 폴리우레탄 표지와 같은 불편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주교회의가 출판하는 성경 가운데 우피나 돈피를 사용하는 성경은 크기가 큰 고급형 성경뿐이다. 우피와 돈피를 사용하면 제작비용이 높아지다 보니 대부분의 성경은 폴리우레탄 표지로 제작되고 있다. 물론 온습도 관리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폴리우레탄 표지도 비교적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다. 성경 표지를 비닐이나 천으로 감싸는 것도 표지의 내구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그러나 여름엔 습하고 겨울엔 건조한 우리나라 기후에서는 적정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어렵고, 아무리 잘 관리해도 갈라짐을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 일단 성경 표지가 갈라지기 시작하면 고민이 깊어진다. 성경을 꽂아두거나 펼쳐둔 책장 주변, 성경을 들고 다니는 가방 등이 폴리우레탄 조각으로 지저분해지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표지는 엉망이지만 성경 내용이 담긴 속지는 양호하다 보니 버리기도 아깝다. 그럴 땐 표지만 교체하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에는 성경 표지를 새 가죽으로 교체해 주는 업체들도 있어 교체를 의뢰할 수 있다. 하지만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도 표지를 교체할 수 있어, 나만의 성경 표지를 제작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내 손으로 직접 표지를 만든다면 성경과 더욱 친숙해지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표지 교체 시에는 먼저 기존 성경 커버를 분리하고 제본 면을 정리한다. 그다음 제본풀을 사용해 성경 옆면의 위아래에 헤드밴드나 작은 천을 붙인다. 가름끈이 필요하다면 위쪽 헤드밴드를 붙이기 전에 붙이면 된다. 이어 성경 옆면에 접착사, 속지, 이음지를 순서대로 붙인다. 혹시 성경 속지가 떨어졌다면 이 작업 중에 붙이면 된다. 이렇게 성경 속지가 정리됐다면 새 표지를 만드는 작업에 들어간다. 우선 하드보드지를 표지 위·옆면·아래로 나눠 표지 크기로 제단한다. 이때 하드보드지는 속지보다 위, 아래, 한쪽 옆면을 각각 0.5mm 정도 크게 만들면 적당하다. 표지로 사용할 가죽이나 천 등에 위·옆면·아래면 하드보드지를 붙이고 속지와 하드보드지를 붙이면 완성이다. 자세한 제작 과정을 유튜브 ‘성바오로딸’의 금손수녀님 영상에서 볼 수 있다. ▶성경 리폼 유튜브 바로 보기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11면

[WYD와 함께] “얘들아 모여라”…청년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이 위한 은총의 잔치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한 해 앞으로 다가왔다. WYD는 어떤 대회고 2027년 서울에서, 그리고 각 교구에서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YOUTH면을 통해 월 1회 서울 WYD 조직위원회 기획사무국 차장 김윤욱(루카) 신부의 WYD 본대회의 이야기를, 그리고 각 교구대회와 수도회 프로그램 담당자들의 교구대회 이야기를 전한다. †찬미예수님. 가톨릭신문 독자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WYD 조직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김윤욱 루카 신부입니다. WYD를 1년여 앞두고 WYD를 준비하는 이야기들을 독자분들과 나누기 위해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1년간 청년대회가 이렇게 준비되고 요렇게 진행이 되는구나’ 하며 배우고 만들어가는 여정을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언제 어떻게 시작한 대회? 1984년, 지금은 성인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재미난 생각을 하십니다. “마침 희년이고 분위기도 좋은데… 청년들을 위한 행사가 없네? 청년들을 위한 뭔가를 해볼까?” 해서 주님수난 성지주일에 전 세계 청년들을 로마로 초대하십니다. “우리 청년들~ 로마로 모이세요~ 저랑 같이 기도하고 미사하고 주님을 신나게 찬양해 봅시다~” 그런데 웬걸요? 25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청년들이 모인 것입니다. 그때 교황님은 깜짝 놀라셨고 이렇게 열심한 청년들을 위한 사목적 행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고민 끝에 1986년 로마에서 제1회 세계청년대회가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수난 성지주일에 세계 젊은이의 날을 기념했었고 2020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세계 젊은이의 날의 중심에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가 자리한다는 말씀으로 지금은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이동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리끼리? 우리 모두 함께! 대회는 다양한 국가의 젊은이들이 교황과 함께 모여 기도, 교리 교육, 미사, 문화 행사를 통해 예수님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그래서 행사라는 말보다 순례라는 말을 더 선호합니다. 열흘간 순례 장소를 방문하고 다양한 체험들을 통해 하느님을 찾아가는 과정, 그 마지막 종착지에 청년들을 초대한 교황님이 계시고 함께 미사하며 청년들을 격려하십니다. 이러한 순례 안에는 기도, 교리, 미사도 있지만 가톨릭 문화를 체험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함께하기에 꼭 우리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의 신자들도 얼마든지 동등한 참가자로 등록하여 청년대회를 즐기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한국을 사랑하신 참 고마우신 교황님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WYD를 처음 구상한 시기는 1980년대입니다. 1980년대, 비록 지금보다 신자 수는 적었지만 지금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자 증가율, 교회의 성장률이 높던 시기였습니다. 한마디로 교회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던 시기였죠. 그렇게 성장하는 교회만 보면 이미 잘하고 있으니 원래대로 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교황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성장하는 교세에 안주하지 않으시고 이 열심한 청년들에게 필요한 더 아름답고 더 뜨거운 무언가를 내다 보셨습니다. WYD를 개최한 나라의 신자들은 한결같이 얘기합니다. 갈수록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WYD는 커다란 기회였고 넘치는 은총이었다고. 이 청년들을 위한 은총의 잔치를 교황님은 1980년대, 그 옛날 옛적 미리 그리고 멀리 바라보신 것입니다. 그렇게 대회를 만들어주시고 특별히 한국을 사랑해 주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그리고 그 은총의 잔치를 한국에게 선물로 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 WYD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며 두 분의 교황님의 한국사랑에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WYD에 대한 짧은 TIP WYD는 2년에서 3년정도의 주기로 유럽과 비유럽을 번갈아 가면서 개최됩니다. 지난 대회가 포르투갈(유럽)이었으니 이번엔 비유럽권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선정된 것입니다. 그러니 다음나라는 유럽의 어느 나라가 선정 되겠죠? 그 차기 개최국은 우리 서울대회 폐막미사를 마치며 교황님께서 선포해 주십니다. “다음 WYD 개최국은 000입니다” “WYD? 우리 함께 해요!” WYD는 청년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사목적인 행사입니다.(이유는 3회에 설명) 그래서 청년들만의 아름답고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필요합니다. WYD행사들에 제안하고 싶은 나만의 아이디어나 통통 튀는 재미난 생각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알려주세요. 청년들과 독자분들의 아이디어 하나가 2027년 세상 모든 청년들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만듭니다. ※이메일: 2027wyd1234@gmail.com 글 _ 김윤욱 루카 신부(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 기획사무국 차장)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17면

[해외 원조 주일 특집] 분쟁 피해 지역 지원하는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면전 개시, 1996년부터 콩고민주공화국 안팎에서 끝없이 이어져 온 전쟁과 학살….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많은 국가에서 분쟁이 이어지는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거나 관심조차 가진 적 없는 분쟁들로 지구촌 이웃들이 여느 때보다도 고통받고 있다. 이에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이하 한국카리타스)도 올해 특별히 분쟁 피해 긴급구호·난민 지원에 집중할 계획이다. 세계 분쟁 현황, 잊힌 난민들의 처참한 현실, 한국카리타스의 지원 계획과 우리의 동참 방법을 알아본다. 국제사회가 외면한 ‘불편한 진실’ 2025년 세계 난민의 날 국제구조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50개 이상 국가에서 분쟁이 지속 중이다. 현대의 분쟁은 국가 간 전쟁을 넘어 영토, 정치권력, 민족·종교 정체성, 자원, 범죄 조직, 기후 요인이 중첩된 내부 반란, 민족 갈등, 테러 반군 활동 등 복합 분쟁 형태를 보인다. 국가와 비국가 행위자가 동시에 개입하고, 민간인이 주요 피해자가 되는 양상이라 해결도 어려워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남중국해(중국·대만,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브루나이, 베트남, 필리핀), 이란과 파키스탄에서는 영토 관련 분쟁이 ▲수단, 미얀마, 에티오피아에서는 정권·통치 문제를 둘러싼 내전이 ▲베네수엘라, 쿠바, 한반도에서는 이념 충돌이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에서는 학살까지 동원한 인종·민족 분쟁이 ▲가자 지구(이스라엘·팔레스타인), 나이지리아와 보코하람(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모잠비크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결합한 분쟁이 ▲콩고민주공화국, 남수단, 아프리카 사헬 지역에서는 자원 분쟁이 ▲수단,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예멘에서는 기후 환경 문제가 촉발·증폭 원인이 된 분쟁이 진행 중이다. 세계은행 2025년 6월 월례보고서와 ‘무장 분쟁 위치 및 사건 자료 프로젝트’(ACLED)에 따르면, 현재 세계의 전쟁 발발 건수와 사망자는 2000년대 초의 3배 이상으로 늘었고, 세계 인구 약 17%가 무력 충돌 영향권에 놓인 것으로 나타난다. 폭격·전투 피해와 대규모 민간인 피해, 강제 이주, 사회 기반 붕괴 등 광범위한 인도적 위기를 망라한 통계다. 가자 지구와 우크라이나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여전히 심각하다. 가자 지구는 휴전 중임에도 인구 약 90%(190만 명)가 피난민이 됐다. 누적 사망자는 7만 명을 넘었고, 인구 4분의 3이 긴급 또는 재앙적 식량 불안정에 직면해 있다. 유엔 2025 세계 위기 국가 보고서는 우크라이나 인구 3분의 1(1270만 명)이 긴급한 인도적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경고한다. 2025년 1월부터 10월까지 누적 민간인 사상자는 2024년 동기간보다 27% 증가했고 2024년 전체 사상자 수를 넘었다. 실시간으로 세계 뉴스를 접하는 정보화 시대, 아프리카처럼 정작 도움이 절박한 일부 국가·지역은 국제사회와 언론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한국카리타스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가 점점 ‘각자도생’ 국면으로 접어들고 언론 보도도 지정학적 중요도와 정치·경제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뤄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2025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고마교구에서만 63만 명 넘는 피난민과 1만 명가량 사상자가 발생했다. 총기가 확산하고 공항과 은행이 폐쇄돼 식량과 식수 지원은 더 어려워졌고, 모든 병원이 포화 상태라 전염병 확산은 통제 불가 수준이다. 자원 부족, 질병, 고령 등 이유로 피난하지 못한 이들은 지역 학교나 병원 등으로 피신했으나 모두 과밀 상태라 위생 열악과 식수 부족이 심각하다. 의약품도 구할 수 없는데 도시 전역 전력과 통신도 끊겼다. 부르키나파소는 사헬지대 전역에서 활동하는 극단주의 무력 단체에 장악돼 2023년에만 206만 명 난민이 발생했다. 강제 이주가 반복돼 5세 미만 아동 영양실조 문제도 극심한데 591만 명 이상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꺼져 가는 목숨들이 다시 숨 쉬도록…‘꺼지지 않는 희망’을 내전으로 1200만 명 피난민이 발생하고 공공 서비스도 붕괴한 아프리카 수단. 낮에도 무차별 학살이 횡행하는 땅에서 수단 카리타스 활동가들은 사생결단으로 외딴 산악 지역부터 수도 하르툼교구까지 전국을 누비며 고립·취약 가구들에게 식량, 담요, 의약품을 전달하고 있다. 산모 구호, 영양센터 운영, 아동·여성·노인을 위한 보호 프로그램뿐 아니라 만성 질환자 노인, 아동, 장애인, 고아를 위한 정서 안정 프로그램도 실시한다. 침공한 러시아군에 의해 ‘분쟁 관련 성폭력 피해(Conflict-Related Sexual Violence, CRSV)’ 당사자가 된 우크라이나 청년 올렉(23)도 현지 카리타스 활동가들을 만나 사회 서비스, 의료와 교육, 기본 생필품 지원, 직업 훈련, 주거지 지원을 받으며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무장 군인들에게 체포됐던 올렉은 구타와 고문 속에 거짓 자백을 강요당했고, 충분히 자거나 먹지 못하고 날마다 16시간가량 강제노동을 했다. 군인들이 가한 성폭력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올렉의 영육을 더욱 덧들여 놓았다. 포로 교환으로 석방된 올렉은 카리타스 심리상담사를 만남으로써 남자도 CRSV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결코 그의 잘못이 아니며, 마음껏 울어도 된다는 치료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처럼 전 세계 분쟁 현지에서 난민들의 절박한 필요를 채우는 국제 카리타스 활동가들에게, 한국카리타스는 늘 대규모 지원을 보내는 충실한 우군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해마다 국제 카리타스 긴급구호 사업 지원 규모로 162개 회원기구 중 10위 안에 들고 있고, 2025년에만 28개국 54개 사업에 51억 원 가까이 지원했다. 올해 한국카리타스는 가자 지구와 우크라이나, 미얀마 등 주요 분쟁 피해 지역 구호와 난민 지원을 계속하고, 국제사회가 외면한 수단, 에티오피아, 콩고민주공화국 등지 분쟁에 대해서도 상황 공유와 지원을 이어갈 예정이다. 2025년부터 2029년까지 진행되는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캠페인도 전개 중이다. 현재 캠페인 특별 모금을 진행 중으로, 모금된 기금으로 캠페인 핵심 사업인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식량지원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올해에도 전 세계 13개 국가에 파견된 한국 선교사들과 협력해 총 19개 식량지원사업에 약 5억7000만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인터뷰] 한국카리타스 사무국장 신동민 신부 “분쟁 지역 생명 살리는 일, 해외원조 후원으로 가능” 한국카리타스 사무국장 신동민(베드로) 신부는 “‘세계화된 무관심’(「모든 형제들」 30항)을 경계하고, 국경과 민족을 넘어 한 형제자매로서 서로를 돌보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자”고 강조했다. 신 신부는 “국제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분쟁에는 많은 해외원조 단체가 관심을 보이며 지원이 몰리지만, 아프리카 사헬지대처럼 국제 이해 관계에서 배제되거나 장기화한 분쟁들은 방관되는 게 현실”이라며 “한국카리타스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정신에 기초한 한국교회 공식 국제개발협력기구로서 ‘잊힌 분쟁’들까지 찾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한국카리타스 비전은 가난한 세계 이웃 현장과 분쟁 지역을 선제적으로 찾고 구호하는 데 있다. 신 신부는 “사후 접근보다, 사람들이 고통받는 그 순간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의 내부 역량을 모으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일시적 지원을 넘어 현지인들이 인간 존엄을 유지하고 자립 역량을 쌓을 장기 개발 프로젝트도 올해부터 선제적으로 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 신부는 “한국교회가 해외원조를 시작한 지 33년 만인 2025년, 한국카리타스 연간 지원 규모가 처음으로 50억 원을 돌파했고, 덕분에 가자 지구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콩고민주공화국, 미얀마, 부르키나파소 등 관심 받지 못한 분쟁 지역에도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이어 “후원이 늘어나는 건 무관심이 관심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라며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변함없는 공감을 당부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회성 연민이 아니라 지속적인 연대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 피난민, 미얀마 난민 아동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또 긴급 상황은 언제든 발생하지만, 정작 구호 활동은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국카리타스 해외원조 후원회에 참여해 주시면 가장 신속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 문의 : 02-2279-9204 ※ 후원 계좌 : 우리은행 064-182742-01-101 (재)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 ARS 후원 : 060-700-9204(1통 5000원)

발행일 2026-01-20 제3476호 10면

[칼럼 -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해] (12) 탄소중립, 선택 아닌 신앙의 응답

기상청은 최근 「우리나라 113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은 1910년대 12.0℃에서 2020년대 14.8℃로 상승하였고, 폭염일수는 2020년대에 16.9일로 1910년대에 비해 2.2배 증가했다. 열대야 일수는 같은 기간 19.7일로 4.2배나 늘어났다. 강수 특성도 크게 달라졌다. 2020년대 강수량은 1336mm로 1910년대보다 156mm 증가했지만, 강수일수는 오히려 112회에서 106회로 줄었다. 그 결과, 시간당 100mm가 넘는 극한호우가 2025년 한 해에만 15개 지점에서 발생하였다. 기후변화가 더 이상 통계 속 숫자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겨울철 미세먼지도 거의 ‘국가재난’ 수준에 이르렀다. 2005년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을 위한 특별대책 시행 이후 점차 나아지던 미세먼지 농도는 2013년 가을을 기점으로 다시 악화됐다. 이후 미세먼지 오염도는 더욱 심각해졌고, 주의보 발령 횟수도 예년의 거의 두 배에 이를 정도로 증가하였다. OECD는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에서 2060년 대기오염으로 인해 인구 100만 명당 약 1100명이 조기 사망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는 서울에서만 매년 만 명 이상이 조기 사망할 수 있음을 뜻하는 충격적인 경고다. 우리는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을 나와 무관한 먼 나라의 일로 여기며, 그 책임을 발전소와 산업 부문에만 돌리곤 한다. 전체 온실가스의 약 95%가 에너지와 산업공정에서 배출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기와 재화가 최종 소비되는 도시의 배출 구조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타난다. 서울의 경우, 우리의 일상과 직결된 건물 부문과 수송 부문에서 전체의 80%가 배출되고 있다. 남의 탓이라고 여겼던 온실가스 배출이 사실은 ‘내 탓’이었던 것이다. “네 눈 속의 들보를 먼저 빼내라”(마태 7,5)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입니다”라는 고백은 더 이상 전례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를 ‘하느님 백성’으로 규정하며, 그 핵심 특징으로 보편사제직을 강조하였다. 이는 평신도가 교회 안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복음을 살아내고 증언해야 할 책임의 주체임을 분명히 한 선언이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말했듯, 우리는 지금 “집단행동이냐, 집단자살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 바른길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탄소중립이다. 그렇다면 이 일을 누가 해야 하는가? 창조주이신 하느님일까, 우리를 구하러 오신 예수님일까? 아니다. 그 답은 분명하다. 온실가스를 배출해 온 우리 자신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신앙인에게 요구되는 회개이며, 시대의 표징 앞에서 응답하는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글 _ 전의찬 스테파노(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세종대학교 기후에너지융합학과 석좌교수)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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