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병자의 날 특집] 아픈 마음 돌보는 ‘마음정원영성센터’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창세기 2,18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창세기 말씀을 언급하며 “한처음부터,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친교를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에게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을 부여하여 주셨다”고 밝혔다. 아픈 이들을 치유하는데 있어서 함께 아파하고 사랑으로 곁에 있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개인주의로 인해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냉혹함이 커지는 가운데 마음에 상처를 입고 고립되고 있는 사람들. 병든 이들, 취약한 이들, 가난한 이들 옆에 계셨던 예수님을 따라 우리는 어느 곳에 서 있어야 할까?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 마음이 아픈 사람들 곁에서 동행하고 있는 대전 대흥동에 자리한 협동조합 마음정원영성센터(센터장 김혜원 요셉피나)를 찾아 답을 들어봤다. 마음이 아픈 시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료 통계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수는 69만1164명에서 93만3481명으로 35.1% 증가했다. 불안장애 환자 수도 같은 기간 65만3694명에서 86만5108명으로 32.3% 증가했다. 우울증 환자의 경우 5년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연령층은 20대로, 127.1%를 기록했다. 2017년에는 60대 환자가 전체의 18.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2021년에는 20대 환자가 전체의 19%로(17만7166명) 가장 많았다. 불안장애 환자도 마찬가지로 20대 증가폭이 86.8%로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은 20~30대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매년 우울증이 증가하는 이유가 시대적 변화와 연결된다고 진단했다. 경제 불황에 따른 취업난 심화 현상, 이로 인해 연애·결혼·출산 등을 포기한 ‘3포 세대’라는 말이 나온지도 오래다. 그 다음으로 등장한 것이 고립·은둔형 청년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은 좌절과 무력감의 심화로 사람을 만나지도,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타인의 생활을 쉽게 엿볼 수 있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일상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청년 우울증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노인 우울증 문제도 심각하다. 노인은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으로 우울증을 겪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 감소, 가족의 사별, 경제적 궁핍 등 환경적인 요인으로도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 결국 사회적 비난과 외로움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내 편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더욱 고립돼 자신만의 세계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정말 내 옆에는 아무도 없는 것일까? “하느님은 늘 우리 옆에 계십니다.” 협동조합 마음정원영성센터는 사람을 돌보고 사람 안의 생명력을 살려 건강한 가정과 사회공동체를 만들고자 2015년 세워졌다. 마음정원에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일은 상담사의 몫이지만 씨앗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하느님이다. 센터를 대표하는 치료 프로그램은 내면아이워크숍이다. 2박3일 진행되는 워크숍은 자연명상, 놀이치료, 심리검사, 미술치료, 음악치료 등을 통해 내면을 치유하는데 집중한다. 김혜원 센터장은 “몸은 성인이지만 일상생활 중에 과거 상처와 연결된 버튼이 눌리면 갑자기 아이처럼 돌아가고 그 상처에 지나치게 크게 반응을 할 때가 있다"며 “이는 어린 시절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인이 돼서도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면아이워크숍은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는 작업을 통해 성인인 자아로 크는 과정을 돕는다. 내면아이 치유과정은 다른 심리상담센터도 운영한다. 마음정원영성센터만의 특징은 협동조합이라는 특별한 시스템 안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센터의 모든 프로그램에는 조합원들이 참여할 수 있다. 상담 과정에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하지만 2022년부터는 내면아이 상담사 민간 자격증을 등록, 자격증을 취득한 조합원들이 상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워크숍 참가자는 보통 6~7명이지만 스태프와 상담사 수가 더 많아 참가자 한명 한명 밀착해서 동반할 수 있는 구조다. 김 센터장은 “센터를 열때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영성-몸-사람-일’ 4개의 창이 모두 성장하려면 센터장 개인이 아닌 더욱 많은 사람이 가족처럼 함께할 때 성장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었다”며 “그래서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을 결정했고, 센터 모든 프로그램에 조합원들이 참여하면서 많은 사람의 색을 입힐 수 있게 됐고 더 많은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희망이 점점 확장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인생에 더할나위 없이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참가자들에게 마음정원영성센터 조합원들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예수님의 모습으로 그들 곁에 함께했다. 하느님은 우리를 이렇게 바라보십니다. “내면아이 워크숍을 시작하면 참가자들은 자신에게 상처가 시작된 어린아이 시절로 돌아갑니다. 가족 안에서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 가정폭력, 외로웠던 순간 등 상처를 드러내보면 결국 내탓이 아닌 일들이에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참가자들은 내게 있었던 상처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따뜻하고 안전한 울타리가 있다는 것을 체험하죠. 그것을 알게 되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조금씩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됩니다. 그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던 생명력이 채워지는 것이죠.”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수에도 자녀에게 크게 화를 내거나 헤어지자는 말을 한 이성친구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자신을 비난한다는 생각에 지인을 살해하는 흉악한 사건들이 적잖이 벌어지는 시대다. 자신의 가장 아픈 상처를 누군가 건드리는 순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나는 하느님이 영적 생명력을 주신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 달라”며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이 필요한지 천천히 생각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센터장은 마음정원영성센터에서 많은 내담자를 만나며 하느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체험했다고 밝혔다. “못난 모습, 더러운 모습, 냄새나는 모습 할 것 없이 하느님은 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저희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상처에 아파하는 우리를 안타깝게 보시며 어떻게든 치유해주려고 애쓰고 계시죠. 우리가 이렇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 상담 문의: 042-862-9780 마음정원영성센터

생태 감수성 일깨우며 지역사회와 함께 환경운동 확산 나서

199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자연과 하느님께 대한 의무는 신앙의 본질적 부분이며 건강한 환경 보전을 위한 신앙인의 투신은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서 직접 뻗쳐 나오는 것”이라고 천명하면서 교회는 생태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 즈음 한국의 몇몇 교구는 위원회를 만들어 환경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25년 만에 발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교회 생태환경 운동의 전환점이 됐다. 회칙은 통합생태론의 다양한 요소에 관한 성찰을 제안하며 구체적인 행동방식도 언급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교회는 생태영성교육은 물론이고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 탄소중립 선포,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 활동 등을 전개했다. 2025년을 시작하며 각자 다른 지역과 사목 환경 속에서 각 교구(위원회)가 어떤 생태환경 사목을 전개해 왔고 올해 계획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서울대교구, 생태감수성 키우는 교육 지원 서울대교구 생태환경 사목의 시작은 1991년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계기로 주교회의가 교구와 본당, 신자 개개인의 환경운동 실천을 당부했기 때문이다. 서울대교구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 활동과제로 환경운동을 채택하고 환경보전과 나눔 및 자원 재활용, 도농직거래운동을 전개했다. 이듬해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구성된 하늘땅물벗 모임도 시작됐다. 2000년 10월 25일에는 교구 환경사목위원회가 출범돼 전문영역별 활동이 강화됐다. 교황 담화가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생태학적 회심을 깨닫게 했으나 신자 개인이나 본당 차원의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 동력은 부족했다. 1988년부터 생태환경 운동에 투신한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위원장 이재돈(요한 세례자) 신부는 “교황님 담화로 환경운동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나 신학적 추진력이나 토대가 부족해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며 “따라서 1990년대 교회의 생태환경 운동은 사회의 운동방식을 따르는 형식, 즉 교회밖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전개됐다”고 설명했다. 전환점이 된 것은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다. 생태신학에 대한 토대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운동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회칙을 이재돈 신부는 “교회 생태환경 운동의 교과서와 같은 문헌”이라고 소개했다. 이후 서울대교구에서는 2016년 생태사도직단체 ‘하늘땅물벗’을 창립했고 이듬해 제1기 천주교생태영성학교가 문을 열었다. 특히 하늘땅물벗 창립은 교회의 환경운동이 본당과 개인으로 확산될 수 있는 도화선이 됐다. 미국에서 생태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이재돈 신부는 2016년 환경사목위원장을 맡으면서 교육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문헌자료 확보에 주력했다. 생태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관련 지식 습득이 선행돼야 했기 때문이다. 2016년에는 위원회 생태영성연구소 부설 파스카 출판사를 세우고 생태서적 번역을 지원하고 있다. 2018년 「생태 공명-지구의 울부짖음,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 번역 지원을 비롯해 2023년에는 「토마스 베리 평전」을 발간했다. 이 신부는 “「찬미받으소서」가 나온 이후 교계출판사에서도 생태관련 서적들을 활발히 내는 추세지만 전문 서적은 여전히 많이 나오지 못하는 현실”이라며 “생태감수성의 토대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기에 위원회는 번역 지원을 통해 해외의 문헌들을 신학교나 생태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더욱 많이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했다. 올해는 실천에 초점을 맞춘 「찬미받으소서 녹색십계명」을 발간할 예정이다. 아울러 환경 운동에 대한 본당의 실천이 강조되면서 본당 신부들이 참고할 수 있는 「찬미받으소서 본당 실천 길잡이」(가제)도 펴낸다. 또한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준비하면서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여정에도 동행한다. 이재돈 신부는 “무엇이 자연을 아프게 하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공부했을 때 생태적 감수성이 생기고 회개가 일어날 수 있다”며 “위원회는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방법을 교구민들에게 알리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원교구, 지속가능한 사회에 동행 수원교구가 환경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환경운동을 시작한 것은 1995년이다.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를 올바로 진단하고 신자들에게 그 중요성을 홍보하는 한편 본당이나 개인별로 다뤄지던 환경 문제를 교구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다루기 위해 위원회를 세웠다. 단발적이거나 교구 전체적으로 공감대를 얻지 못했던 환경운동이 정착된 것은 2015년 「찬미받으소서」 회칙 발표 이후다. 2019년 12월 17일 환경위원회는 생태환경위원회로 명칭을 바꾸고 양기석(스테파노) 신부가 전담으로 부임하며 인간의 존엄성 회복과 생태정의 실현을 위한 제반 활동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양 신부는 “회칙 발표를 계기로 교회는 생태적 회심을 이룰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데 빛과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해야한다는 데 적극 공감하고 위원회 사목방향도 이를 염두에 두고 전개됐다”고 말했다. 수원교구는 한국교회 교구 중 최초로 탄소중립을 선포했다. 2021년 9월 11일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수원교구 탄소중립 선포 미사’를 봉헌한 교구는 2030년까지 교구와 본당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고 2040년에는 탄소중립을 실현할 것을 천명했다. 그 일환으로 위원회가 전개한 사업이 ‘공동의집에너지협동조합’이다. 교구는 협동조합을 통해 태양광발전소 운영, 탄소중립에 한발짝 가까워지게 됐다. 양 신부는 “경기도는 전국의 여러 광역단체 중에도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적극적”이라며 “경기도에 속한 수원교구는 이러한 지형적 장점을 활용해 성당을 중심으로 태양광 발전소를 올리는 협동조합을 세워 탄소중립 실현에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원교구 생태환경 사목의 키워드는 지역사회와의 협력이다. 올해는 성당 울타리를 벗어나 제로웨이스트 상품과 가톨릭농민이 재배한 생명농산물을 판매하는 매장을 도심에 운영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양 신부는 “교회가 목표로 하는 인류 구원에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생태계 파괴 문제이기에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삶의 모든 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위원회는 기후위기를 야기하는 잘못된 삶의 방식을 바꾸고 교구민들이 온전하게 하느님에게 돌아갈 수 있는 생태적 회심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동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5-02-09

‘착한 소비’로 이웃에게 힘 보태고 지구도 살려요

어려운 이웃을 돕고 기후 위기도 극복하는 ‘더 착한 소비’를 해보는 건 어떨까? 교회는 지적 혹은 지체나 자폐성·정신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의 잠재 능력과 자립 능력을 최대한 개발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보호작업장을 전국에 설립해 운영 중이다. 그중 친환경 휴지나 종이, 세제, EM 제품 등 환경을 살리는 제품 생산으로 한 번 더 뜻깊은 소비를 잇는 보호작업장들이 있다.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로 지정된 대구대교구 카리타스보호작업장·일심보호작업장과 서울에 있는 성모자애보호작업장을 소개한다. 친환경 화장지와 복사 용지 “장애인으로서 작업할 때 어려움은 있지만 직업을 갖고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친환경 화장지와 복사 용지를 생산하는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카리타스보호작업장(원장 전화진 토비아) 근로자 김수진(가명) 씨는 “나무를 더 이상 베지 않아도 되는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니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노동을 통한 중증장애인의 온전한 일상 자립’을 미션으로 삼은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포항 카리타스보호작업장. 2008년 설립돼 중증장애인 56명이 근로자와 훈련생으로 근무 중이다. 화장지 브랜드 ‘포카포카’와 복사 용지 브랜드 ‘담음’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 중 두루마리 화장지와 점보롤 화장지, 친환경 복사 용지 등은 사회적기업이자 중증장애인생산품 인증, 친환경 인증 제품이다. 직업훈련교사 이민정 씨는 “장애인 생산품이라는 편견이 힘들지만 제품의 품질 면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며 “장애인들은 작업 집중도와 속도 면에서 다소 어려움이 있으나 충분히 극복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지구를 푸르게 하는 세제와 밀랍 초 2003년 문을 연 대구대교구 성요한복지재단 일심보호작업장(원장 김기철 요한 피셔)은 장애를 가진 이들의 의미 있는 직업생활 지원을 지향한다. 친환경 제품 등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의 생산품 수익은 전액 근로 장애인들의 임금과 직업 재활비로 사용된다. 김기철 원장은 “매일 퇴근 전 직원들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회칙 「찬미 받으소서」를 읽고 묵상하며 환경보호에 관심을 두게 됐다”며 “팬데믹 이후 그 심각성을 더 느껴 친환경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푸른 지구’ 주방 세제는 식물성 원료 사용 및 유해 화학 성분 무첨가이자 생분해도 98% 이상으로 수질을 보호한다. 용기에 붙은 라벨은 물에 분리되며, 리필 파우치도 스스로 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가는 친환경 제품으로 연간 약 7000kg 생산한다. 또한 유해 물질이 나오지 않는 친환경 밀랍 초에 대한 본당과 가정의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한 달에 200개가량 제작 가능하다. 근로자 박윤수(가명) 씨는 “맨손으로 만져도 괜찮은 우리 세제를 집에서도 쓴다”며 “열심히 일해서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꿈을 밝혔다. 자연의 친구 EM 생산품 사회복지법인 자애종합복지원의 성모자애보호작업장(원장 이상철)은 장애인의 행복한 일터를 구현하며 자연 친화적 사업을 실천하는 미래지향적 직업재활시설이다. 2000년 설립해 현재 20대에서 50대까지 총 34명의 중증장애인이 함께하고 있다. 화장품 브랜드 ‘해달별’ EM 생산품은 사람에게 유익한 미생물 여러 종을 조합해 배양한 유용미생물군을 사용하는 친환경 제품이다. 해달별 리필용 포장은 대부분을 재생용 크라프트 용지를 사용하는 레스 플라스틱을 실천했다. 2022년에는 친환경 제로웨이스트매장도 열었다. 2024년에는 ‘기분좋은 배쓰밤 청귤’ 등 고형제품 약 2만5000개, EM활성액 3톤을 생산했다. 근로자 민정현(가명·로사) 씨는 “환경도 지키고 중증장애인의 복지 향상과 지역사회 나눔을 실천하는 해달별 제품이 많이 알려져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건희(다니엘) 사무국장은 “지적·자폐성 장애 근로자들이 하나의 작업을 습득하고 태도와 습관을 형성하기까지는 수개월이 소요되지만 인내하며 노력하고 있다”며 “바르고 정직한 제품을 통해 환경을 배려하며 고객과 발달장애인 그리고 우리 사회 모두에게 건강하고 드높은 가치를 선물하고 싶다”고 밝혔다. 해달별은 나눔에도 앞장섰다. 2022년 다운증후군 이종석(알베르토) 화가의 작품을 사용한 해달별 제품의 판매수익금 5%를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에 기부하기로 협약하고 3년 연속 기부를 실천했다. 앞으로도 판매수익금의 일부를 자립 준비 청년과 장애 환아 치료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2025-02-09

[당신의 유리알] 로마에서 온 외계인

‘재봉틀과 해부용 탁자 위에 우산이 우연히 마주치는 것처럼 아름다워’. 이 문장은 이시도르 뒤카스(Isidore L. Ducasse)가 쓴 ‘말도로르의 노래’ 중 한 구절이다. 필명 로트레아몽 백작으로 활동했던 그는, 작가를 꿈꿨지만 음침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라는 이유로 당시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사라진다. 토요일 오후 3시. 주일학교 미사를 앞두고 서울역으로 향한다. 기차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온 젊은 여행가 혹은 주일학교 교사이며 의사인 파브리지오(Fabrizio Ettorre)를 정각에 내려줄 것이다. 나는 왜 그를 기다리며 로트레아몽 백작이 쓴 시가 떠올랐을까. ‘말도로르의 노래’는 작가 사후에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앞에서부터 몰입해서 읽으나 뒤 문장부터 거꾸로 읽으나,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배설한 듯한 글은 아무리 현대소설의 기원이라 해도 난해할 뿐이었다. 서울역에서 만나기 전 파브리지오는 이태원에서 출발하여 부산까지 며칠간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어 했다. 그에게 이탈리아어를 배우던 신부님은 나에게 몇 번이고 그의 한국 여정을 부탁한 상태였다. 드디어 5번 정거장에 기차가 선다. 내리는 사람마다 출발지에서 가져온 낯선 땅 내음을 풍기고… 파브리지오는 양팔로 자전거용 안장 가방을 쥐고 내렸다. 문자 외에 그와의 만남은 처음이었다. 불현듯 그에게서 여행 중 방문한 안동찜닭과 추어탕의 진한 국물 향이 풍기는 듯했다. 우리는 자주 본 사이처럼 알아보고 웃었다. 내가 물었다. “틈틈이 자전거로 세상을 다닌다는 말을 들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곳이 있던가요?” “네. 저는 자전거로 놀라운 곳을 많이 다녔어요. 그중에 아름다웠던 곳을 꼽자면, 북유럽에 위치한 라피(Lappi) 지역이에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의 국경에 접한 곳입니다. 그곳은 수평선까지 펼쳐진 숲이 있고 도로를 횡단하는 순록을 만날 수 있어요. 적어도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고요…” 나는 사실 부러웠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애초에 혼자서 여행을 ‘하고 싶다’는 바람보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이라는 빠져나갈 궁리를 댔으니까. 망설임 없는 그의 대답에서 봉우리를 타고 흐르는 알프스의 바람이 느껴졌다. 주일학교 미사는 오후 5시였다. 그의 눈빛은 60여 명의 꼬마 짹짹이들 속에서, 자신의 로마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 본당을 떠올리며 비슷한 얼굴을 찾고 있었는지 모른다. 수줍게 ‘헬로’ 인사를 건네는 꼬마에게, 그는 ‘안녕’이라고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현재 본당에서 견진교리(5학년) 1년 차 학생들과 청소년(14세~18세)들에게 교리를 지도하며, 동시에 복사단을 담당하고 있다. 후에 그는 이때의 기억을 ‘온전히 환대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성가부터 독서까지 미사의 모든 부분에서 로마와 달리, 청소년들이 함께 하는 미사가 좋았다고 했다. 내 인생에 로마에서 온 손님과 미사를 함께 하게 될 줄이야. 그래서 ‘인간은 계획하고 하느님은 비웃으신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원인과 결과가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고양이가 날개를 퍼덕이며, 새들을 따라다니고, 물고기가 지하철로 출근하는 일은 현실에 없지만, 그보다 갑작스러운 사건과 사고 속에 상선벌악부터 시작해서 상식은 온통 흔들리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난다. ‘말도로르의 노래’에 영향을 받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에도 초현실적인 기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먼저 살바도르 달리는 ‘데페이즈망’이라는 기법을 사용하여 ‘낯설게 만들기’, 서로 다른 소재를 부딪치면서 만들어진 틈새로 이 시를 표현했다. 의사인 파브리지오가 일주일에 3일을 본당에서 보내고, 화요일과 금요일 오후에는 청소년을 위한 학습과 교리를 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사제나 수도자가 되는 편이 나을 텐데, 살면서 선택에 후회한 적은 없나요?” 그는 이 질문을 어려워했다. “저는 고집이 참 센 편이에요. 더 많이 공부하지 못할 때는 자학이 심했습니다. 사춘기 내내 사람들 시선을 받지 않으려고 애썼고, 언제나 익명으로 살고자 했지요. 이런 습관들이 제가 인간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수줍음이 많았다고 할까요. 제가 선택하는 것보다 결정된 것에 자주 끌려다니는 편이었어요.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 안에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걸 깨달았지요.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결점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바로 ‘자신의 약점을 풍자하기(놀리기)’ 시작한 거지요.” 껍질에 갇힌 자신을 구하기 위해 ‘풍자’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습거나 어리석어 보이기보다 성당과 병원에서 온기를 주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묻기보다 우선 듣기로 했다. 파브리지오는 평소 주변 학생들에게 결정 앞에서 망설일 때는, 언제나 ‘바로’ 실행에 옮기라고 조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변과 함께하는 조화도 살펴야 한다며. 다음 날 새벽, 아주 평범한 하루가 다시 시작됐다.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성호를 긋는다. ‘오늘 하루를 주님께 봉헌할게요’라고 짧게. 그러니 ‘이 봉헌자를 보호해 주소서’. 어떠한 일이 닥치더라도 이 하루는 내 것이 아니라 이제 당신 것이오니, 혹여 바쁘셔서 못 오시면, 천사라도 부르셔서 모르게 지켜 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해졌다. 영혼을 파고드는 매일의 걱정을 물리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러면 하루의 탓이 내게 없으니 놀라지도 화내지도 안 테니까. 파브리지오와 나는 출국 전날 아침, 국립중앙박물관을 보기로 했다. 그날 박물관 앞에는 야외수업을 온 학생들로 붐분볐다. 가끔 화장기가 도는 고등학생들이 삼삼오오 우리를 스쳐 갔다. 박물관의 1층 선사시대관부터 발길을 들이며 물었다. “파브리지오! 이탈리아에서 ‘가정의’라고 들었는데, 환자를 대할 때 주로 어떤 위로의 말을 하나요?” “친근한 의사가 되려고 노력해요. 의사도 환자의 가족이니까요. 누구든지 위로가 필요할 때가 오면, 그들이 질병 앞에서 겪는 외로움을 덜어주려고 애씁니다. 무엇보다 저는 환자들이 병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그들이 겁을 먹으면 치료와 희망을 모두 놓치니까요. 이럴 때 두려움이 더 커집니다. 그들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줄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지요.” 말을 듣는 내내 낯선 그에게서 익숙한 빛이 퍼지고 있었다. 글 _ 박홍철 다니엘 신부(서울대교구 삼각지본당 주임)

2025-02-09

[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단절과 연속 사이

지금까지 소개한 시인 단테, 화가 조토, 그리고 조각가이자 건축가 아르놀포 디 캄비오, 그들이 만든 「신곡」, 스크로베니 경당의 프레스코화, 그리고 피렌체 대성당(돔 제외)과 산타 크로체 성당 등은 사실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이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중세의 손길로 빚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작품들은 새 시대를 향해서 던지는 어떤 물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중세와 르네상스가 서로 맞물려 있는 시대의 작품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르네상스를 정의하는 데, 다시 말해서 르네상스의 시기와 특징을 밝히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16세기 피렌체 대성당 돔 안쪽의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화’를 비롯한 수많은 회화를 남긴 화가이자 우피치 궁전과 피티 궁전 등을 설계한 건축가, 그리고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Le Vite de' più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d architettori)을 저술한 최초의 미술사학자로 불리는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1511-1574)는 그의 책에서 “14~16세기에 활동한 예술가들의 공통점은 고전을 재탄생(Rinascita, 부활)시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리나시타’ 개념 안에는 르네상스 시대가 중세와 차별되고 단절된 새로운 시대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의 언급대로 르네상스 시대에는 중세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 곧 인본주의, 중상주의, 고전주의 등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런 사상들을 중세에는 없었던 새로운 문명 현상으로 본다면, 르네상스는 문명 전체의 차원에서 중세를 대체하는 새로운 변혁 운동이 분명합니다. 19세기 미술사와 문화사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학자인 스위스의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1818-1897)는 그의 역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Die Kultur der Renaissance in Italien·1860)에서 르네상스를 중세와 구별되는 새로운 시대라고 언급합니다. 중세를 종교적 전체주의가 강조된 시대라고 본다면 르네상스는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개인주의가 출현한 시기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의 경우 정치, 예술, 철학 분야에서 개인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삶과 경험이 신 중심적이 아니라 인간 중심적 가치를 통해서 재해석되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가 부활하여 인문주의 운동이 전개되면서 중세에서 단절되었던 고전이 르네상스에서 다시 탄생하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르네상스가 근대 서양 문명의 시작이라고 정의합니다. 인간 중심으로 삶 인식하는 르네상스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부활하기도 중세-르네상스 대립적으로 인식하지만 구 시대-새 시대는 공통·일치점도 있어 중세를 암흑기로 보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서, 르네상스는 쇠락한 그리스도교 문명을 인문주의로 부활시킨 새로운 문명의 발생으로 정의되고, 그 경우 르네상스의 시작은 14세기가 됩니다. 이렇게 중세와 단절된 새로운 문명 현상으로서의 르네상스는 중세를 탈피하고 중세를 완전히 대체합니다. 따라서 중세와 르네상스는 문명 전체의 차원에서 대립적 구도를 이룹니다. 그리스도교와 고전의 대립, 신 중심과 인간 중심의 대립, 그리고 건축에서는 포인티드 아치와 반원 아치의 대립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문명 전체가 아닌 예술 분야의 차원에서 보면 르네상스가 발생한 시기는 14세기에서 조금 더 늦춰진 15세기 이후로 정의됩니다. 이 주장은 14세기를 중세와 르네상스의 중첩 시기로 본다는 것인데, 중세와 르네상스 사이에 겹치는 기간이 있다는 것은 두 시대가 단절되지 않고 서로 연속적인 측면을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1872-1945)는 그의 저서 「중세의 가을」(Herfsttij der Middeleeuwen·1919)에서 14~15세기를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시기가 아니라, 중세의 세계관이 절정에 이르렀다가 쇠퇴하는 시기라고 언급합니다. 중세 후기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종교 예식과 미술, 그리고 문학에 반영되어 감성적이고 상징적인 문화가 지배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식적이고 상징적인 삶의 방식이 중요하게 여겨졌고 이런 형식적이고 고착된 사고방식은 중세 문화를 쇠퇴하게 만들어 새로운 사고방식의 등장을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중세의 종교적이고 집단적인 세계관과 근대의 세속적이고 개인적인 문화가 혼재하는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시기를 ‘중세의 가을’이라고 표현하면서 르네상스가 중세와 대립하는 시기가 아니라 중세적 감수성이 연속되는 시기라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 중세 후기는 문화적으로 풍요로웠지만 그 한계도 드러내면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전환의 시기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위징아는 중세가 암흑의 시기가 아니라 감수성과 문화적 깊이가 무르익는 시기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중세와 르네상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먼저 르네상스뿐만 아니라 중세에도 고전에 대한 연속성이 발견됩니다. 철학 분야에서 중세의 스콜라철학은 헬레니즘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반하고, 건축에서도 중세의 로마네스크 양식은 고대 로마의 건축 양식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나아가 르네상스 시대에도 중세의 연속성이 나타납니다. 특히 건축 분야에서 브루넬레스키의 반원형 아치는 토스카나의 로마네스크에서 이미 쓰인 건축 요소입니다. 그리고 건축 양식의 르네상스는 1420년에 시작되었지만 구조 분야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1490년까지는 중세의 구조 기술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문명 전체의 관점에서는 중세와 르네상스가 서로 단절된 것으로 보이지만 예술 분야 등 각각의 분야별로 보면 상호 연속성이 존재합니다. 이는 고대에는 문명과 예술이 고전이라는 일치점을 갖고 있었고, 중세에도 문명과 예술이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에서 일치되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는 문명과 예술이 분리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건축의 경우만 보더라도 고대 건축과 중세 건축은 사회와 일체성을 유지했지만, 르네상스에서는 사회와의 일체성을 잃고 예술적으로도 새로운 건축 양식을 창출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전 양식을 가져와 건축가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형태를 띠었습니다. 아르놀포가 설계한 피렌체 대성당은 중앙 상부에 돔이 계획되었으나 당시의 기술로는 무리였고, 한 세기가 지나서야 브루넬레스키에 의해서 올려집니다.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두 시대의 단절 덕분인가요, 연속 덕분인가요? 아니면 단절과 연속 사이일까요? 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

2025-02-09

[축성생활의 날 특집] 축성생활, 어떻게 분류할까?

축성생활자(봉헌생활자)라고 하면 흔히 수도회·수녀회에 입회한 수도자를 떠올린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교회가 말하는 축성생활은 더 자세하게 나뉜다. 어떻게 설립됐느냐에 따라, 삶의 양식과 활동성에 따라 나뉘는 축성생활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교회에 봉사하며 복음 선포와 실천에 앞장서오고 있다. 교회가 말하는 축성생활자의 분류와 성격을 알아보고, 교회 내에서 이들의 활동과 영성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아봤다. 선교회는 수도회가 아닌가요? - 축성생활회와 사도생활단 우선 교회는 축성생활자를 단체의 설립 형태에 따라 일반적으로 축성생활회(institutes of consecrated life)와 사도생활단(societies of apostolic life)으로 나누고, 이에 더해 교회가 공적으로 인준한 은수자·동정녀들도 축성생활자에 넣는다. 이 분류를 적용해 한국교회에서 활동하는 축성생활자들도 큰 틀에서 나눠볼 수 있다. 축성생활회는 보통 수도회라고 부르는 단체들이다. 이들은 수도규칙과 회헌·회칙에 따라 설립·승인되고, 입회자는 ‘수도 서원’을 해야 한다. 한국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남자 축성생활회로는 예수회,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살레시오회, 가르멜 수도회, 성 베네딕도회, 프란치스코회 등 35개 수도회가 있다. 축성생활회는 사도좌 설립 수도회(교황청 설립 수도회)와 교구 설립 수도회로 나뉜다. 국내 수도회 중 그리스도 수도회,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 등 6개 수도회가 교구 설립 수도회로 분류된다. 다만 2020년 11월 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의교서 「은사의 진정성」(Authenticum Charismatis)을 발표함으로써 교구가 수도회를 설립하고자 해도 교황청의 사전 승인을 반드시 받도록 했고, 교회법이 개정된 바 있다. 사도생활단은 「교회법」 제731조에 따르면 “수도 서원 없이 그 단에 고유한 사도적 목적을 추구하고 고유한 생활 방식에 따라 형제적 생활을 공동으로 살면서 회헌의 준수를 통하여 애덕의 완성을 향하여 정진하는 단체들”이다. 사도생활단이 수도회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수도 서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과달루페 외방 선교회, 메리놀 외방 전교회,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등이고, 한국교회 내엔 8개 사도생활단이 있다. 즉 사도생활단은 엄밀히 말해 수도회와 구별된다. 축성생활회와 사도생활단, 은수자와 동정녀 외에도 그리스도왕직 재속회, 성모 카테키스타 재속회 등 ‘준 수도자’들도 축성생활자에 속한다. 은수자로서, 또는 세상과 함께 - 봉쇄 수도회와 활동 수도회 축성생활회를 삶의 형태에 따라 봉쇄 수도회(수도승적 삶, Vita Monastica)와 활동 수도회(활동 사도직 삶, Vita Apostolica)로도 나눌 수 있다. 보통 수도회라고 하면 세속과 완전히 단절된 은수자로서의 삶을 주로 떠올리지만 적지 않은 수도회가 봉쇄적 성격과 활동적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들을 준 관상 수도회라고 부른다. 작은형제회 호명환(가롤로) 신부는 “정주와 기도, 공동체적 삶에 중심을 두고 살아가는지(수도승적 삶), 교회에서 인준해 준 특별한 사도직 활동에 초점을 맞춰 살아가는지(활동 사도직 삶)에 따라 차이점이 있을 뿐, 사실 수도회들은 모두 사도직 활동에 투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수도승적 삶을 대표하는 베네딕도회도 사도직 활동을 겸하고 있다. 호 신부는 “실제로 현대 교회에는 봉쇄 수도회보다 활동 수도회가 훨씬 많다”며 “활동 사도직 수도회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예수회 영향이 큰데, 수도승적 삶이 공동 기도와 공동의 일로 하느님 나라 건설과 세상을 위한 기도에 집중한다면 활동 사도직은 실질적으로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키며 복음을 선포하는 데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수도회들은 봉쇄, 활동 가릴 것 없이 교회 내에서 주어진 사명을 각자의 여정으로 끊임없이 쇄신하고 반성한다. 한국 가르멜 수도회는 지난해 한국 수도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수도회가 오직 봉쇄 수도회로만 인식되는 편견을 되짚고 활동 사도직 사명을 확인하는 등 쇄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이 중요 축성생활자들은 교회법적인 축성생활자 구분을 사실 개별 지역교회 모두에 완전히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교회가 말하는 재속회는 주로 준 수도회적 성격을 띠지만 한국교회에서 재속회는 수도회 후원자로서 성격이 좀 더 짙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은 재속회를 수도회 중 하나로 이해한 반면, 「수도생활교령」은 재속회를 “수도회가 아니다”(11항 참조)라고 못 박기도 했다. 교회 공식 문헌 간에도 재속회의 성격을 설명하다 혼동을 일으킨 것이다. 동정녀와 은수자 등의 개념도 수녀회를 비롯한 수도자들과 삶의 성격이 유사하다. 또 앞서 살펴봤듯이 축성생활자들은 수도승적 삶과 활동 사도직 중 오로지 한 측면만 가지고 있지 않다. 이처럼 실제 축성생활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몇 가지 분류로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호명환 신부는 “그래서 프란치스칸 수도회들은 교회가 분류하는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를 ‘복음적 삶의 수도회’(Vita Evangelica)라고 칭한다”며 “물론 여러 단체에서 다양한 사도직이 나오겠지만 핵심은 수도승적 삶도, 활동 사도직 삶도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을 경험하고 나누는 삶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2025-01-26

외딴 공소 뜨겁게 채우는 ‘찬양 하모니’

우리는 하느님을 향해 샘솟는 사랑을 표출하고자 미사곡을 부른다. 그래서 성가대가 없고 노래하지 않는 미사는 허전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공소들 경우 성가대가 있는 곳은 찾기 어렵다. 이렇듯 더 뜨거워지고 싶어도 뜨거워지지 못하는 미사는 공소 신자들에게는 일상과 같다. 그런 공소 신자들이 풍요로운 전례를 열 수 있도록 교구 내 공소들을 두루 다니며 일일 성가대로 활약하는 청년 단체가 있다. 광주대교구 사목국 공소사목 소속의 청년 공소성가봉사단 ‘주사위’(단장 최유정 스테파노, 지도 진우섭 폰시아노 신부)다. 청춘만이 지닌 활력과 순수한 섬김으로 산골짜기까지도 찾아가 노래하는, 이름대로 ‘주님을 사랑하기 위한’ 열정을 간직한 찬양 사도들을 소개한다. 주님을 사랑하기 위한 청년들 “노래는 두 배의 기도라는 말이 있죠. 그만큼 노래는 신앙심을 키우는 데 가장 효과적인 역할을 해요.” 이런 취지로 주사위 단원들은 매달 셋째 주일 성가대가 없는 교구 내 공소들을 찾아다니며 성가 봉사를 하고 있다. 2015년 교구 사목국 봉사단체로 시작해 현재까지 교구 내 많은 공소를 다니며 노래 찬양을 펼쳤다. 소프라노, 테너, 알토, 베이스, 반주자와 지휘자 등 16명의 단원은 성가와 미사곡 없이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이 더 풍성한 전례를 봉헌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단원들은 ‘불금’(불타는 금요일)마저 봉헌해 왔다. 허투루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진심 어린 찬양이 될 수 있도록 매주 금요일 저녁 모여 연습한다. 전례 시기에 맞춰 특송도 선정해 연습한다. 성가 봉사 직후에는 노래에 개선점을 찾는 평가회를 항상 연다. 열정 때문이다. 가깝게는 40여 분 걸리는 공소부터 2시간 이상 걸리는 먼 곳까지 찾아간다. 주말 하루를 온전히 내어놓아야 하는 봉사다. 이른 아침에 시작해 미사를 마치고, 더 잘 부르기 위해 자체 평가회를 가지며 늦은 오후에 마무리한다. 외딴 공소에 방문할 때면 어스름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에 모이기도 한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 “차질이 생겨 제때 닿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하지만 단원들은 아침 일찍 출발한 봉고차 안에서부터 차오르는 설렘과 기대감이 있다며 한 달에 한 번뿐인 봉사 날을 기다린다. 단원 김가은(데레사) 씨는 “미사가 시작하기 1시간도 전부터 자리를 가득 채운 신자들을 보며 울컥한다”고 전했다. 김 씨는 “미사 후 함박웃음으로 두 손을 맞잡아 주며 고마워하는 신자들의 따뜻한 마음에서, ‘작은 봉헌이 큰 위로로 반향하는’ 미사의 의미를 매번 실감한다”며 웃었다. 성가대 없는 공소 찾아다니며 주일 성가 봉사 산간벽지 곳곳 누비는 강행군 “작은 보탬이라도 큰 보람 느껴” 공소, 신앙에 울림을 주는 곳 주님을 사랑하기 위한 여러 봉사 중에, 공소를 찾아다니며 노래하는 건 어떤 의미에서 각별한 봉헌이 될까. 단원들은 “내 이웃을 향한 사랑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다수 사람은 노래 없이 건조한 미사만 봉헌하게 되는 공소 신자들에게 큰 관심을 지니지 않는다. 알더라도 산간벽지 먼 거리를 감내하고 찾아갈 엄두를 차마 내지 않는다. 하지만 단원들은 그런 교우들을 특별히 기억하고 섬긴다. 노래를 좋아할 뿐인 작은 마음일지는 몰라도, 그를 살려서 무언가 작은 보탬이 돼주고 싶다는 소박한 진심이다. 메말랐던 미사가 음률을 띤 육성으로 비로소 촉촉해지면서 공소 신자들은 평소 주일미사보다 더 깊은 묵상으로 잠겨 든다. 그렇게 단원들의 봉사는 이웃 신자들 또한 ‘주님을 사랑하게 하기 위한’ 의미 있는 봉헌이 된다. 한국 교회사에서 공소가 가지는 의미만큼 단원들도 내면에 울림을 받는다. 공소는 박해를 피해 모였던 옛 신자들이 교우촌을 형성하고 미사를 드리며 시작한 터전이다. 즉 단원들은 단순한 노래 찬양을 넘어 오랜 믿음의 현장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교우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했던 봉사는 이렇듯 단원들을 자연스럽게 깊이 있는 신앙으로 이끈다. 단원 최기혁(그라토) 씨는 “공소 한곳 한곳은 작은 공동체지만 그 안에 단단하고 싶은 신앙의 뿌리가 있음을 항상 느낀다”고 말했다. “미사라는 게 단순히 의무를 다하는 행위가 아니라, 매 순간 주님을 통해 감사와 희망을 찾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주변 환경을 탓하지 않는 공소 신자들의 믿음에서도 단원들은 배운다. 신부가 상주하는 본당과 달리 공동체 활동을 하기 어려운 공소지만, 신자들은 그러한 환경에서도 자체적 행사도 열고 서로 연대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알아가고자 했던 신앙 선조들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2년차 단원 문용(안드레아) 씨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던 초기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실을 살다 보면 ‘오늘은 이것 때문에, 내일은 저 일 때문에’ 하고 갖은 핑계를 대며 미사도 봉사도 고민할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공소 신자들이 지켜온 믿음의 초심(初心)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전했다. 감사함에 드높아지는 찬양의 목소리 여느 봉사가 그렇듯, 단원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을 베푸는 쪽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자신들이 더 많이 받고 있었다. 찬양할 수 있는 목소리, 함께하는 신부님과 단원들, 우리가 갈 수 있는 공소들, 환영해 주시는 공소 신자들 모두가 주님이 당신과 함께일 수 있도록 베푸신 은총이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단원들은 감사 때문에 더욱 열정을 얻는다. “단원들 덕에 청년들이 가득 차서 미사가 생기 넘쳤다”며 방문만으로도 고마워하는 공소 신자들을 보면 ‘섬길 기회를 주셔서 고마운 건 우리’라고, ‘그만큼 우리의 에너지를 더 잘 전달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고. 이렇게 뜨거운 진심만큼 주사위의 꿈도 열기를 띠었다. 활동 목표는 교구 모든 공소를 방문해 봉사하는 것, 나아가 공소사목연수회 등 공소 신자들과 소통하고 찬양 봉사를 이어가는 것이다. 최유정 단장은 “기회가 된다면 공소 신자들을 모시고 주사위의 작은 음악회를 진행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단원들과 오랜 시간 연습해 와서 서로 합이 잘 맞아 매달 선보이는 특송들이 곧 잊히는 게 아쉬웠다”며 “주사위의 지난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찬양이 주는 행복을 단원들도 신자들도 함께 느끼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며 웃었다. 담당 진우섭 신부는 “불금에 화려한 곳을 찾아가기보다, 외적으로 낡은 공소를 위해 매주 연습한다는 것만으로도 단원들은 특이한 친구들”이라며 “그 특이함을 듬뿍 칭찬해 주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봉사 후 평가회에서도 서로에게 힘과 사랑이 되는 이야기를 나누는 두터운 우정은 사목자에게 너무도 흐뭇한 모습”이라며 엄지손을 추켜세웠다.

2025-01-26

“황폐한 지구촌에 ‘희망의 씨앗’ 함께 심어요!”

“우리의 작은 ‘희망씨앗’ 한 알은 다른 이의 두 알, 세 알과 모여 묘목, 병아리, 새끼 돼지가 되고, 주민들이 함께 일하는 협동농장이 되어 희망찬 자립 마을을 이룹니다.” 한국희망재단(이사장 서북원 베드로 신부)은 전쟁, 기근, 기후위기로 무너진 지구촌 이웃들을 일으켜 세우는 마을생계자립 캠페인 ‘희망씨앗’을 펼치고 있다. 협동조합 마련, 생계 수단 확보, 사회 기반 시설 설치로 ‘마을공동체’가 다시 세워지면, 자포자기했던 그들이 지구촌의 떳떳한 일원으로서 일어설 터전이 되기 때문이다. 일시적 지원을 넘어 동료 인간을 진정으로 일으켜 세우는 희망씨앗 캠페인을 해외 원조 주일을 맞아 소개한다. ■ 자립의 터전, ‘마을공동체’ 재단은 2005년 설립 초기부터 ‘마을생계자립’ 캠페인들을 펼쳐왔다. 지역사회개발, 교육·식수·보건 개선, 기후위기 대응 등 한 마을의 주민들이 힘을 합쳐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단계적으로 진행한다. 캠페인은 겨자씨처럼 작은 나눔을 통해 무너진 마을과 사람들의 삶을 살릴 수 있다는 뜻에서 2024년 ‘희망씨앗’이라는 새 이름이 붙여졌다. ▲미얀마 군부 피해 실향민 공동체 회복 캠페인 ‘다시 일어나 미얀마’ ▲방글라데시 빈곤아동 교육사업 및 급식·간식 지원 캠페인 ‘따스한 밥 한 끼’ ▲아프리카 여아 인권옹호·역량강화사업 ‘걸스업’(Girl Stands Up) 등 사례 중심 사업들로 구성된다. 핵심 목표는 마을공동체 재건이다. 흩어진 개인이나 가정은 구조적 가난과 재난 앞에 속수무책이지만, 마을은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대처하는 사회·정치·경제적 연대체의 출발점(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민들이 난관에 부딪혀도 극복할 의지가 생기고, 후원 없이도 스스로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활동가들은 식수시설부터 확충한다. 시설 설치·개보수, 식수관리위원회 조직 등 주민들이 스스로 시설을 잘 관리하게 돕는다. 물은 생존과 직결될 뿐 아니라 교육, 생계, 안전 등 삶의 모든 영역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물이 부족한 사람들은 삶을 전방위적으로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물 문제가 해결되면 교육사업에 착수한다. 하루 3~4시간 물을 뜨러 다녀야 했던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시작한다. 그러면 어른들도 안정적 생산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활동가들은 지역사회개발사업을 펼쳐 협동농장 구축, 가축 지원, 협동조합 설립 등 지역공동체가 스스로 빈곤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소득을 창출하도록 돕는다. 주민들이 일할 수 있는 건강을 위해 보건사업을, 지속 가능한 자립이 되도록 친환경 농업 장려, 태양광 전력 시설 설치, 숲 조성 등 기후위기 대응사업을 펼친다. 이러한 물적 토대는 자립 노력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조성한다. 재단은 현지 지부를 두지 않고 현지 협력단체(NGO)와 협업한다. 현지 단체가 자연스럽게 역량을 키워 후원이 끝나도 주민들과 꾸준히 변화를 이어가게 하기 위함이다. 마을 단위의 주민들도 현지 단체 성장과 발맞춰 조직화한다. 자조(自助) 그룹 또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기초 조직이 만들어지면, 그것이 더 큰 조직으로 확장돼 공동체 발전을 꿈꾸는 주민들의 역량이 마침내 하나로 모이게 된다. 그렇게 최종 목표인, 사업과 대상자 자체의 자립이 이뤄진다. ■ ‘자립’의 떡잎, 나무로 숲으로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의욕이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퍼져갔어요.” 여성 인권 인식이 낮은 네팔 타플레 마을의 ‘마하락시미 여성 협동조합’ 란지타 타파 조합장은 “협동조합과 신협을 조직하면서 우리 스스로 기적을 써내려 가게 됐다”고 강조했다. 마을은 현지 협력단체 SoD Nepal과 재단의 도움으로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추진된 ‘살기 좋은 타플레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변화했다. 마을 여성들은 기존 소규모 조합들을 통합해 마하락시미 여성 협동조합을 구성했다. 조합 수익의 5%를 마을발전기금으로 저축하고, 예산으로 장학사업 등을 스스로 펼치며 완전한 자립으로 나아가고 있다. 2015년 네팔 대지진 진원지에 있는 마을은 코로나19 팬데믹 등 재난이 연거푸 덮쳐 10년이 지난 지금도 재건을 못 마칠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렇듯 캠페인을 통해 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지 지구촌 가난한 이웃들이 협동조합 등 자조 공동체를 꾸려 자발적으로 자립 노력을 기울인다. 한때는 재난과 내전, 기후위기의 직접적 피해자로 내몰렸지만, 모두가 모아준 물(일시적 지원)을 나무(실질적 자립)로, 또 숲(지속 가능한 자립)으로 가꿔간다. 1993년부터 2005년까지 내전으로 사회기반시설 미비와 총체적 빈곤(국민 80%가 절대빈곤층)에 내몰린 부룬디의 5개 마을이 스스로 서고 있다. 재단은 2014년 카루라마를 시작으로 2016년 카그웨마, 2017년 무진다, 2019년 무쿤구·카마카라 마을 5개 마을공동체를 개발했다. 이는 가정소득 창출을 위한 비누 사업을 시작으로 생산자 협동조합으로 확장됐다. 각각의 협동조합은 농업, 봉제업 등 소득증대사업 창출을 넘어 마을 내 식수시설, 학교, 마을발전센터를 조성했다. 더욱 지속 가능한 발전과 연대·협력을 도모하며 협동조합 연합체까지 스스로 구성했다. 기후위기로 목초지를 잃고 강제 이주한 탄자니아 엔데베시 마을의 마사이족은 자립을 위해 사회 기반 시설 구축에 나섰다. 2013년 재단의 마을 생계 자립 사업에 참여하며 식수시설을 갖추고 학교와 마을발전센터, 보건소를 열었다. 이를 바탕으로 과거 한국의 ‘계’와 유사한 마을 은행을 스스로 조직했다. 2022년 세워진 주민 협동체 및 마을 은행 조직 ‘VICOBA’다. 아직 협동조합의 형태를 온전히 갖추지는 못하고 있지만, 여성들은 발생한 수익금을 공동 분배하고, 일부는 마을 은행 자본금으로 재투자하고 있다. 재단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총괄하는 이상준(알렉산데르) 상임이사는 “이렇듯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자립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딛고 일어설 기반이 없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재단이 현재 사업을 펼치는 16개 아프리카·아시아 국가는 내전 등 정치적 불안 때문에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를 자주 받아 물가가 급등하고 국가 부채가 많다. 특히 연료비가 폭등하면서 건축비도 크게 올라 사회 간접 자본(도로, 항만 등) 확충조차 어렵게 된다. 천연자원이 많은 나라도 그를 개발할 시설을 짓지 못하고, 희망을 코앞에 두고 발전 의지를 잃는 것이다. 이 상임이사는 “해외 원조는 불의와 폭력의 산불이 꺼지지 않는 지구촌에 꾸준히 물을 길어 붓는 공동선 실천”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작은 마을 하나가 자립하면 주변의 다른 마을들을 도우며 더 큰 자립을 가져온다”며 “이렇듯 해외 원조란 단순한 인도적 동기를 넘어 지구적인 선순환의 씨앗을 심는 봉헌임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2025-01-26

“궁금해요. 교황님의 기도 지향”

교회는 매월 ‘교황님 기도 지향’을 두고 신자들이 함께 기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교황의 전 세계적인 현안에 대한 관심과 우려, 바람을 전하는 기도 지향은 전년도 6~7월에 다음 1년간의 목록이 발표된다. 교황님의 기도 지향은 정기 희년 전대사를 받는 등의 경우에 필수 사항이다. 교황님의 기도 지향에 대한 동참이 필요한 이유는 교황이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이자 교회의 지도자이며 세계 보편 교회의 목자이기 때문이다. 교황은 교도권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권위 있는 교회의 가르침을 뜻한다. 교회는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최고 목자이며 스승으로서 신앙이나 도덕에 관하여 고수해야 할 교리를 확정적 행위로 선언하는 때 그의 임무에 의하여 교도권의 무류성을 지닌다”(교회법 제749조 1항)고 가르친다. 이러한 교황이 어떠한 세태에 대해 특정한 시각을 가지고 기도를 청한다면 따르는 것이 장려된다. 교황님의 기도 지향은 교황 혼자 정하지 않는다. ‘기도의 사도직’은 1890년 레오 13세 교황(1810~1903)의 요청으로 매월 교황의 기도 지향을 함께해왔다. 이후 명칭을 변경하고 교황청 재단이 된 ‘교황님 기도 네트워크(기도의 사도직)’ 로마 본부는 전 세계 교황님 기도 네트워크(한국 책임자 손우배 요셉 신부) 각 책임자에게 2년 전부터 기도 지향을 추천받는다. 각국의 책임자들은 내부 회의를 거쳐 보통 3~4개의 안건을 본부에 전달한다. 이 의견들이 정리된 후 교황이 검토와 의견 추가를 하면 로마 본부에서 전년도 중순쯤 기도 지향 목록을 발표한다. 교황님의 기도 지향은 주교회의 홈페이지(www.cbck.or.kr)와 매월 발행하는 「매일미사」 책 첫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월 교황님의 기도 지향은 ‘이주민과 난민과 전쟁 피해자들이,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 데에 필요한, 교육받을 권리를 언제나 존중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이다. 이에 대해 이창준 신부(로사리오·예수회)는 “함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요하다”며 “이주민과 난민과 전쟁 피해자들은 특별히 이러한 교육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취약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신부는 “특별히 교육받을 기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올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함께 기도하자”고 교황님의 기도 지향을 해설했다. 손우배 신부는 “교황님 기도 지향은 ‘보편 지향’과 ‘복음화 지향’으로 구분된다”며 “두 가지 유형의 지향을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시야는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고, 우리 형제자매들의 기쁨과 희망, 아픔과 고통에 함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손 신부는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자신의 관심사에 머물지 않고 이웃에 사랑과 관심을 보여야 한다”며 “예수님의 마음으로 온 세상을 바라보시는 교황님과 함께 간구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교회의 사명에 동참하는 길”이라고 전했다.

2025-01-26

[순례, 걷고 기도하고] 인천교구 제물진두 순교성지

한국 속 중국이자 원조 짜장면 거리로 알려진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 국철 인천역과 인천 제8부두가 가까운 이곳에 1866년부터 1871년까지 지속된 병인박해 순교사를 간직한 성지가 있다. 인천교구 ‘제물진두 순교성지’다. 진두(津頭)는 한자 그대로 나루터. 흥선대원군은 이곳 제물 나루터를 공개 처형장으로 택했다. 백성들의 왕래가 잦고 외국 선박들의 출입이 빈번한 이곳에서 서양의 종교를 받아들인 천주교인을 처형함으로써, 외세 배척의 뜻을 대외에 밝히고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서울 한강변 양화진두(절두산)와 더불어 많은 신앙인이 공개 처형된 곳임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곳은 2010년에야 순교 터가 규명됐고 2014년 순교기념경당이 봉헌됐다. 제물진두 순교기념경당은 독특한 모습부터 눈길을 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공간에 세워진 경당은 아마도 한국교회의 성지 중 가장 날씬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15m 높이의 경당 외관은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꽃 모양이자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순교한 이들을 감싸는 두 손을 형상화하고 있다. 성지 입구에는 ‘위로와 자비의 주님’이 오른팔을 내려뜨려 순례자를 맞이한다. “내 손을 잡아라.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노라. 힘을 내라”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경당으로 들어서는 복도는 한두 사람 겨우 지날 정도로 좁다. 복도 옆면으로 제물진두 순교자들의 초상이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나란히 걸려 있다. 이곳에서 순교한 이는 10명. 1868년 4월 20일 손 넓적이(베드로, 순교자들의 행적 증거자 박순집의 이모부)와 그의 부인 김 씨, 사위 백치문(요한 사도) 등 4명의 순교자가 도끼로 참수당했다. 박해는 신미양요를 전후한 1871년에도 이어졌다. 5월 6일 한국교회 최초의 세례자인 이승훈(베드로)의 증손자 이연구와 이균구가 미군의 배에 들어가 길 안내를 하려 했다는 죄로 순교했다. 5월 21일에는 이재겸(이승훈의 손자)의 부인 정 씨와 이명현(정 씨의 손자), 백용석, 김아지가 사학죄인으로 박해의 칼을 받았다. 두 손 가지런히 모은 성모님 바라보며 경당 안으로 들어섰다. 햇볕 머금은 십자가 스테인드글라스가 그 자체로 조명을 이뤄 순례자를 비춘다. 맞은편 벽면에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 8,32)라는 성구와 함께 순교자의 모습을 담은 부조 작품이 있다. 박해 당시 제물진두 처형장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도끼로 참수당하는 순교자 모습 너머로 이미 천상에 올라 기도하는 순교자들이 그려져 있다.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초상과 배 한 척이 함께 그려져 있는 것은 김대건 신부와 이곳 제물진두의 인연을 드러낸다. 1844년 부제품을 받고 조선에 잠시 입국한 김대건은 1845년 4월 30일 신자 11명과 함께 이곳에서 중국 상해로 떠났다. 교회와 제물진두의 인연은 또 있다. 경당을 나와 길을 건너면 인천 중부경찰서 앞 공원에 비석이 세워져 있다. ‘첫 선교 수녀 도착지 기념비’다. 기나긴 박해가 끝나고 종교의 자유가 찾아온 1888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도자 4명(프랑스인 2명, 중국인 2명)이 이곳 제물포항에 도착함으로써 ‘순교의 땅’ 조선에서 처음으로 수도 생활이 시작된 것을 기념하는 자리다. 기념비에는 선교 수녀들이 배에서 내리는 장면을 표현한 청동 부조와 초대 원장 자카리아 수녀의 여행 일기 속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비석을 등지자 길 건너 제물진두 순교성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손을 내어 주시는 예수님이 멀리서도 또렷이 보인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사랑했던 이곳 순교자들이 천상의 기쁨을 얻은 것처럼…절망과 아픔의 역경 속에서도 늘 나에게 손을 뻗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손 맞잡을 수 있기를 고대하며 순례를 마친다. ◆ 순례 길잡이 제물진두 순교성지(cafe.naver.com/jemuljin,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40)는 순교자 10명의 넋이 서린 순교지이며, 1845년 4월 김대건 부제가 사제 서품을 받기 위해 중국 상해로 떠났던 역사적인 곳이다. 바로 뒤편에 자리한 인천교구 해안본당이 성지를 관할하고 있다. 2025년 희년을 맞아 인천교구가 지정한 전대사 수여 지정 순례지 중 한 곳이다. - 개방시간: 오전 11시~오후 4시(주일, 공휴일 휴무) - 미사: 월~토 오후 2시 - 문의: 032-764-4193(성지 사무실)

202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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