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 대성당의 돔 공사에 착수하고 피렌체 고아원과 산 로렌초 성당의 설계와 시공을 맡은 지 십 년이 훌쩍 지난 1432년, 그가 여전히 인생에서 가장 바쁘면서도 절정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제노바(Genova,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태생의 한 젊은이가 금의환향(錦衣還鄕)하듯이 피렌체 땅을 밟았습니다. 격식 차린 옷매무새에 자신감 넘치는 눈빛을 한 그는, 부친이 피렌체에서 은행업을 하다가 정치적 문제에 연루되어 제노바에서 망명 생활을 할 때 태어난,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입니다. 다행히도 1428년 가문에 대한 추방령이 철회되고 알베르티는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아버지의 고향 땅에 드디어 발을 딛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낯선 피렌체에 온 것은 단지 이곳이 아버지의 고향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피렌체에 도착한 그는, 오래 지체하지 않고, 대성당 공사 현장에서 흙먼지 뒤집어쓰고 일꾼들에게 기중기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는 건축가 브루넬레스키를 찾아갔습니다. 알베르티는 브루넬레스키와 한 세대 차이가 났지만, 인문학적 지성을 갖춘 중견 건축가와 건축에 관심이 많은 젊은 인문학자는 그것만으로도 친구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알베르티는 인문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한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대학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제노바에서 베네치아로 이주한 알베르티는 10대 중반에 파도바 대학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웠고, 10대 후반에 볼로냐 대학에서 교회법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알베르티는 혼외 자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삼촌들의 지원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천재 조카가 인문학은 물론이고 수학과 물리학, 예술과 문학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고 나 몰라라 하는 삼촌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인문학 섭렵한 당대 최고 지성 브루넬레스키와 교류하며 영향 받아 원근법·비례 숙고한 「회화론」 펴내 고대 로마 유물 복원했던 경험 토대 10권의 건축 이론서 「건축물론」 집필 알베르티는 피렌체에 머물면서 1435년 그의 첫 번째 예술 관련 저술인 「회화론」(Della Pittura)을 썼습니다. 이 책은 회화의 기초 이론에 관한 것으로, 알베르티는 그 서문에서 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 기베르티, 마사초 등 동시대의 예술가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회화에 있어서 입체적으로 다른 거리에 있는 여러 사물을 한 평면에 표현하는 것과 그 사물들을 같은 비율로 축소하는 것, 곧 원근법과 비례에 대해서 깊게 숙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원근법(투시도법)을 창시한 브루넬레스키에게 이 책을 헌정하였습니다. 알베르티는 이렇게 회화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만, 조르조 바사리에 의하면, 실제로 회화 작품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작품 활동보다는 회화와 관련된 학문적 연구에 더 몰두한 듯합니다. 하지만 회화와는 다르게 건축과 관련해서 알베르티는 브루넬레스키의 조언과 지도를 받으면서 몇몇 공사를 수주하였고, 이후 루첼라이 가문과 인연을 맺으면서 건축가로 활동하였습니다. 교회법을 공부한 알베르티는 피렌체에 가기 전인 1430년대 초에 로마 교황청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20년이 지난 1450년대 초에 그는 다시 로마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알베르티는 피렌체에서 ‘팔라초 루첼라이’의 파사드 작업을 마칠 즈음이었는데, 최초의 인문주의자 교황으로 불리는 니콜라오 5세 교황이 1450년 희년을 보내면서 로마의 도로와 수로를 새롭게 정비할 필요를 느꼈던 것입니다. 니콜라오 5세 교황은 볼로냐와 피렌체에서 공부하고 1444년 피렌체 공의회에도 참석한 바 있는 인문주의의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로마에 도착한 알베르티는 교황청 건축 자문직을 맡았고, 교황의 배려로 하위 성직자로 임명되어 고대 로마 유적의 복원을 주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중요한 공사가 천년이 넘은 ‘아쿠아 비르고(Aqua Virgo) 수도교’의 보수인데, 멀리 수원지(水源池)에서 로마 시내까지 깨끗한 물을 끌어다 중앙 급수대까지 공급하는 수로 복원 공사입니다. 그 중앙 급수대에 세 개의 길, 곧 ‘트레 비에’(tre vie)에서 물이 흘러들어와 만난다고 하여 그 이름을 ‘트레비’(Trevi)라고 지었고, 훗날 그곳에 지금의 ‘트레비 분수’가 만들어졌습니다. 알베르티는 로마에 머물면서 고대 로마의 건축물들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고, 로마의 고전 건축에 대해 깊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피렌체에서 건축가로서 활동한 알베르티는 총 10권의 건축 이론서 「건축물론」(De re aedificatoria)을 집필하여, 1452년 로마에 갔을 때 니콜라오 5세 교황에게 증정했다고 합니다. 르네상스 시대 최초의 건축서인 이 대작은 그가 죽기 직전까지 수정을 거듭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알베르티의 「건축물론」에 영향을 준 책은 1세기 고대 로마의 가장 훌륭한 건축가이자 공학자인 비트루비우스의 「건축론」(De Architectura)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은 사라지고 내용만 전해져 왔는데, 그 필사본이 1415년경 인문학자 포조 브라촐리니(Poggio Bracciolini, 1380-1459)에 의해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알베르티는 1400년 전 고대 로마의 건축학을 최초로 연구하여 「건축물론」을 쓴 것입니다. 세상은 알베르티에게 ‘만능인’(萬能人) 혹은 ‘전인상’(全人像)이라는 별칭을 붙입니다. 이런 표현은 반세기 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어울리지만, 알베르티 역시 이런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엄청난 지식욕을 가졌고, 그것 때문에 그들의 삶에는 사실상 만족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알베르티는 가정환경 덕에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조르조 바사리는 알베르티의 생애를 쓰면서 독서를 많이 하는 예술가는 독서로부터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갖기 때문에 그림이나 건축에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자신의 영감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다면 그 예술가는 자신의 재능을 한껏 펼치게 됩니다. 알베르티는 그의 인문학적, 과학적, 예술적 역량을 모두 동원하여 리미니의 산 프란체스코 성당(말라테스타 사원), 피렌체의 루첼라이 팔라초와 산타 마리아 노벨라 파사드, 그리고 만토바의 성 세바스티아노와 성 안드레아 성당 등을 설계하고 지었습니다. 알베르티 덕분에 피렌체의 르네상스 성당들이 바깥세상을 향하게(ad extra) 되었습니다. 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

[순례, 걷고 기도하고]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동성당

유명 가톨릭 미술가 작품 가득한 ‘가톨릭 미술의 보고(寶庫)’ 화강암 성당과 중정·회랑·잔디마당 어우러진 기도의 장소 6·25전쟁 순교자 묘역은 2017년 성지로 선포 북한강과 나란한 경춘가도를 따라 춘천 시내로 들어서자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한 회벽돌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춘천교구 죽림동주교좌성당이다. 성당은 예전 그대로 약사리고개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서 있지만 주변은 변화가 있었다. 2013년 성역화 사업으로 성당 앞은 중정과 회랑이 조성됐다. 교구의 얼굴인 주교좌성당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낼 뿐 아니라 신자들이 언제든 찾아와 묵상하고 기도하는 순례의 장소로 거듭난 것이다. 춘천 지역 복음화에 헌신한 엄주언(마르티노, 1872~1955) 회장의 세례명을 딴 말딩회관을 지나 두 팔 벌려 춘천 시내를 아우르는 예수성심상 곁으로 계단을 오르면 아치 너머로 널따란 중정, 잔디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정원 좌우에는 십자가의 길 14처를 봉헌할 수 있는 회랑이 길게 이어져 있고 그 끝에 한국교회 석조성당의 대표작이라 할 죽림동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성당의 건축 역사는 6·25전쟁의 아픔과 궤를 같이한다. 죽림동본당은 1949년 엄주언 회장을 비롯한 신자들과 당시 본당 신부였던 토마스 퀸란 주교(Thomas F. Quinlan, 한국명 구인란)가 마련한 현재 자리에서 성당 건축의 첫 삽을 떴다. 그런데 외벽을 쌓고 동판 지붕까지 얹는 공사까지 마무리한 1950년, 6․25전쟁이 터졌다. 성당을 지키던 성직자들은 미사 도중 인민군에게 끌려가고 공습으로 성당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다. 공사는 중단됐고 전쟁 중 이 터에서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수녀들이 주민들을 돌보며 식량을 나눠줬다. 결국 성당 공사는 미군과 교황청의 지원으로 1953년에야 마무리됐고 1956년 6월 성당 봉헌식이 거행됐다. 대대적인 보수공사(1998년)를 거친 성당은 2003년 6월 25일 근대 건축 유산 문화재 제54호로 등록됐다. 화강암을 차곡차곡 쌓은 성당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고풍스럽지만, 성당 곳곳에 자리한 성미술 작품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작품이 담은 의미를 새기다 보면 이곳이 ‘가톨릭 미술의 보고(寶庫)’라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회랑의 끝 성당 오른편에 최종태(요셉) 작가가 제작한 예수성심상이, 왼쪽에는 이춘만(크리스티나) 작가가 고(故) 김세중(프란치스코) 작가의 원작을 살려 다시 세운 성모자상이 성당을 보듬어 안 듯 자리하고 있다. 성당을 나드는 청동문도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문에 걸린 아일랜드풍의 옛 십자 문양 한 쌍은 강원도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전쟁 후 주교좌성당을 건축하는데 힘을 보탠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의 업적을 기린다. 문양 아래는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를 안고 생명의 땅 이집트로 가는 장면과 예수의 산상설교 장면이 부조로 표현돼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하고 따스함이 묻어나오는 공간. 제대와 감실, 독서대 등 성당 내부의 성물과 좌우의 유리화 등도 모두 내로라하는 가톨릭 미술가들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다. 오전 11시 미사를 앞두고 성당을 찾아 주님과 하나 됨의 시간을 갖는 신자들이 앉아 있다. 성당 뒤편 너른 공간은 지난 2017년 성지로 선포된 춘천교구 성직자·순교자 묘역이다. 이곳에는 6·25전쟁 때 순교해 현재 시복이 추진되고 있는 이광재(티모테오) 신부 등 춘천교구 순교 성직자들이 잠들어 있다. 가장 오른쪽 하느님의 종 프랜시스 캐너밴(Francis Canavan, 1915~1950, 손 프란치스코) 신부의 생애를 읽어 내려 간다. # 1950년, 한국말을 배우며 사목을 준비하던 손 신부는 당시 지목구장인 토마스 퀸란 신부와 함께 성당을 지키다 공산군에게 체포됐다. 다른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수백 명의 전쟁포로와 함께 북한 깊숙이 압송되는 이른바 ‘죽음의 행진’에 내몰린 손 신부는 1950년 12월 6일 폐렴으로 선종했고 동료 성직자들의 손에 의해 차디찬 압록강 변에 묻혔다. 손 신부 곁에는 춘천지목구의 첫 한국인 사제 김교명(베네딕토) 신부, 패트릭 라일리 신부(Patrick Reilly, 라 바드리시오), 백응만(다마소) 신부, 앤서니 콜리어 신부(Anthony Collier, 고 안토니오,), 이광재 신부, 제임스 매긴 신부(James Maginn, 진 야고보) 등 6·25전쟁 중 순교한 성직자들의 생애와 순교 상황 등이 빛바랜 흑백 사진과 함께 안내돼 있다. 현대의 순교자들. 불과 75년 전 이 땅에서 일어난 아픈 전쟁의 역사 속에서도 신앙을 증거하며 목숨을 바친 성직자들이 하루빨리 시복시성의 영광스런 자리에 오르기를 청하며 묘역 앞에 섰다. 예수성심을 주보로 하는 성당 마당 곁에서 이곳에 잠들어 있는 성직자들이 닮고자 했던 예수성심을 떠올려 본다. 성당 곁 예수성심상 아래 새겨진 글귀를 기도 삼아 봉헌한다. ‘십자가에서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성심은, 자비 지극하신 하느님 마음 자체이며 온 인류 구원의 중심이자 원천이시다.’ ◆ 춘천교구 죽림동주교좌성당(cafe.daum.net/uf99) - 강원도 춘천시 약사고개길 23 - 문의 : 033-254-2631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14면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1) 한국 천주교회 100년, 그 빛과 그림자

1927년, 일제의 억압적 식민통치 아래에서 우리 민족은 숨쉬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일제는 온갖 수단으로 민족 문화를 말살하려 했고, 경제적인 수탈이 극심해졌습니다. 하지만 극심한 탄압은 민족운동과 사회운동 확산의 계기가 됐습니다. 특히 그해 11월 시작돼 전국적인 학생 시위로 확대된 광주학생운동은 이후 1930년대 항일운동과 독립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혹독한 억압의 시기, 그해 4월 1일 한 줌의 젊은 평신도들이 가톨릭신문의 전신인 ‘천주교회보’를 창간했습니다. 오는 2027년은 가톨릭신문 창간 100주년입니다. 이를 2년 앞두고 가톨릭신문, 그리고 한국교회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총 100회 남짓 이어질 성찰에 독자여러분의 깊은 관심 바랍니다. 교회와 민족과 함께한 100년 한국 가톨릭 언론의 효시가 된 작지만 소중한 씨앗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어 2027년 창간 100주년을 2년 남짓 남겼습니다. 평신도들의 자발적 신앙의 수용으로 시작된 한국 천주교회의 시작이 1784년의 일입니다. 가톨릭신문이 그중 100년을 함께했으니 한국교회 역사의 거의 반을 함께 살아온 셈입니다. 게다가 지난 100년은 유례없는 격동의 시기였기에 가톨릭신문의 역사는 교회와 민족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복음 선포의 증언과 민족적 사명 이는 교회의 복음선포에 대한 증언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 자비 속에서 참 하느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민족을 이끌어야 하는, 한국 천주교회의 민족적 사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기도 합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신앙 수용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졌습니다. 선조들은 유교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탐구한 서학으로부터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온갖 박해를 겪어내면서 평등한 세상에서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신앙을 지켜냈습니다. 교회는 박해의 끝에 신앙의 자유를 얻어냈지만 숨을 고르기도 전에 일제의 억압 속에서 민족과 함께 다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해방의 함성이 잦아들기도 전에 민족은 외세에 의해 허리가 잘려 서로 총부리를 겨눠야 했고, 분단된 조국에서 교회는 독재에 맞서 민주화 투쟁에 나섰습니다. 빛과 그림자 험난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한국교회는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지나온 역사 안에서, 빛과 희망은 물론 때로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어두운 그림자도 발견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 생존과 존엄보다는 교회의 존립을 우선시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교회를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일제에 부역했다는 혐의를 받기도 합니다. 분단된 조국에서, 멸공 이데올로기를 신봉함으로써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저해했다고도 합니다. 독재에 대한 저항을 통해 한국교회는 양심의 보루가 됐습니다. 독재와의 투쟁에 몸 사리지 않음으로써,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가장 빛났습니다. 조선시대 왕조의 억압과 수탈 속에서 고통받던 민중들이 교회로 모여들었듯이, 민주화 운동이라는 복음적 실천의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교회를 찾았습니다. 물론 우리는 역사적 평가를 오로지 지금 여기에서의 기준으로만 내릴 수 없습니다. 모든 사건과 인물은 시대의 한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의 빛과 그림자가 모두 새로운 100년을 열어가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 역사를 목격하고 증언했던 가톨릭신문도 제외될 수 없습니다. 유례없는 격동 휘몰아친 근현대 교회·민족과 생사고락 함께하며 창간 100주년 맞는 가톨릭신문 눈부시게 성장한 교회와 함께 새로운 100년 역사 밑거름 될 것 한국교회와 가톨릭신문의 역사를 성찰하기에 앞서 한국교회의 역사, 특히 가톨릭신문이 취재하고 보도했던 지난 100년의 한국 교회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분단된 조국 가톨릭신문이 ‘천주교회보’라는 이름으로 창간됐을 때 문맹률은 80%였습니다. 여기에 교회는 작고 보잘것없었음을 생각할 때, 가톨릭신문을 창간한다는 것은 만용에 가까웠습니다. 교회는 1895년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1910년 한일합방까지 매년 7%의 교세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이후 해방 전까지 2.73%에 머물렀습니다. 일제의 억압 때문이었지만 민족의 고통을 외면한 교회에 대한 실망감도 작용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1945년 해방을 맞아 교회는 선교와 사회사목 활동에 적극 임했고, 청년운동과 가톨릭액션이 활발해졌습니다. 하지만 북한교회는 혹독한 탄압을 받았고, 곧바로 발발한 전쟁으로 전체 교회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후 한국교회에서 멸공 이데올로기는 지배적인 이념이 됐습니다. 외국 교회의 지원에 힘입어 성당 건립과 사회사업, 교육사업이 활기를 띠고 이는 신자 증가율에 크게 기여, 50년대 신자 증가율은 무려 연 16.5%에 달했습니다. 교회 쇄신과 사회정의 실현 1962년 10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려 세계교회와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내적 쇄신을 일깨우고 세상을 향해 창을 열라는 공의회의 가르침은 교회의 쇄신과 세상에 대한 봉사, 사회적 책임을 일깨웠습니다. 이는 인권 수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습니다. 교회는 예언자적 소명에 충실, 우리 사회 최후의 양심으로 자리 잡아 민주화를 주도했습니다. 한국교회의 급속한 성장은 예언자적 소명 실천과 함께 대규모 종교집회에 의해서도 이뤄졌습니다. 두 차례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한과 순교자 103위 시성식 등을 통해 한국교회의 대사회적 지명도가 높아졌습니다. 이는 폭발적인 교세 신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질적 성숙의 요구와 제삼천년기 90년대 들어 교회는 양적 성장에 걸맞은 질적 성숙이 요구됐습니다. 성장이 둔화하고 높은 냉담률과 저조한 성사 참여율이 고착됐습니다. 성장 요인들의 효과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고, 교회의 체제유지적이고 중산층화된 모습은 복음적 공동체의 매력을 퇴색시켰습니다. 이후 뚜렷한 사목적 돌파구를 발견하지 못한 채 제삼천년기를 맞게 됩니다.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제삼천년기 새 복음화의 기치를 올리며 쇄신과 변혁을 꾀하던 교회는, 교회 안팎에서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이는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보편교회 전체의 깊은 고민을 가져왔습니다. 2019년 중국에서 시작돼 수년 동안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감염병은 우리 사회와 교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그 뿌리부터 성찰하게 만들었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빈발하는 전쟁과 기후위기 등 인류가 직면한 거대한 도전들에 대해 교회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선종 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즉위했습니다. 전 세계에 충격을 준 교황 사임 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새로운 면모를 제시했습니다. 그러한 고민들에 대한 가장 총체적인 논의의 장으로서, 교회는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세계주교시노드를 개최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세계교회와 함께, 시노드의 결과를 바탕으로 자기 쇄신과 세상을 향한 봉사에 기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13면

청년을 현재의 주인공으로 환대하는 교회로

팬데믹 이후 청년들의 탈종교화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향한 지금, 청년을 ‘현재’의 주인공으로 환대하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동행한 예수님처럼 청년과 동반하는 교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선교사 없이 신앙을 받아들인 유례없는 신앙의 역사를 지닌 한국교회. 그 창설의 중심에는 청년들이 있었다. 첫 세례자인 이승훈(베드로)이 세례를 받았을 때, 첫 사제 김대건(안드레아)이 사제품을 받았을 때, 그들은 20대 청년이었다. 그리고 1927년 가톨릭신문을 창간한 이들 역시 청년이었고, 천주교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 서있던 것도 청년이었다. 그러나 청년들의 열정으로 타오르던 교회는 이제 옛말이 된 듯하다. 청년층의 감소세는 이미 진행 중이었지만, 팬데믹을 기점으로 더욱 큰 폭으로 청년 신자가 감소하고 있다. 본당 청년미사에 참례하는 청년의 감소는 이를 더욱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현상은 청년 세대가 더 이상 영성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종교를 떠난 많은 청년들이 자신을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영적인’(Spiritual But Not Religious, 이하 SBNR) 존재로 여기며, 제도화된 종교를 떠나 개인화된 신앙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영적 갈망을 지닌 청년들이 정작 영적 보화를 지닌 교회에서 영적인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떠나는 이유를 청년을 ‘미래의 희망’으로만 여기는 교회의 태도에서 찾았다. 청년들을 현재 교회를 일구는 주역으로 환대하지 않고, 미래의 주역, 다시 말해 아직은 주역이 아닌 존재들로 대하는 모습에 청년들이 교회에 대한 매력을 잃고 떠나갔다는 것이다. 아울러 교회 밖으로 떠난 청년을 찾는데 소홀했고, 영적인 것을 갈구하는 청년들에게 성소(聖召)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사목이 부족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런 실태 속에 WYD를 준비하는 한국교회의 여정이 청년들을 다시 ‘희망의 현재 진행형’으로 회복시킬 기회로 주목받는다. 서울 WYD 기획사무국을 비롯해 WYD 수원교구대회 조직위원회 등 준비부서들은 청년이 스스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사목자들이 그 과정에 동반하는 시노달리타스적 청년사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방적으로 청년들에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존의 사목방식에서 벗어나, 제15차 세계주교시노드 교부들이 제안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청년사목 모델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에서 “세속에 물들지 않으며 흠 없이 완벽한 청년 사목을 주장하다 보면, 우리는 복음을 진부하고 무의미하며 매력 없는 명제로 만들어 버려, 엘리트에게만 적합한 것이 되고 만다”면서 “엘리트주의를 버리고 기꺼이 ‘대중적’이 되고자 할 때, 청년 사목은 점진적이고 존중하는 여정, 인내로우며 희망차고 지칠 줄 모르며 공감하는 여정이 된다”고 강조했다.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1면

[COVER STORY - 청년, 희망의 현재 진행형] ②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성당에서 하느님 이야기를 할 수 없어요” 여전히 영적 갈망을 지닌 청년들. 그들은 왜 영적 보화를 간직한 교회에서 떠나고 있는 것일까? 돈보스코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 이진옥(페트라) 박사는 서강대학교에서 ‘신학적 인간학’ 강의를 하며 다양한 청년을 만난다. 그러면서 생각보다 많은 청년들이 종교 유무나 신앙의 열심 정도와 관계없이 종교, 교회,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많은 청년들이 수업이나 개인적인 자리에서 이 박사와 종교, 신앙, 하느님에 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청년들의 많은 수가 “성당에서는 ‘하느님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본당 청년들 사이에서 “하느님”을 운운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거나 ‘유난스럽다’는 시선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본당에 청년회는 있지만, 하느님에 관해 나눌 수 있는 곳이기보다 친목모임이나 본당 행사를 위한 노력봉사단에 치우치기 일쑤였다. 심지어 어떤 청년은 이 박사에게 “삶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본당 신부님이랑 하고 싶은데 해도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청년들은 영적 동반자인 본당 신부와 영적인 주제로 대화를 하는 것에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들의 이런 반응은 그만큼 교회가 청년들의 영적 갈망을 헤아리지 못했으며, 청년들이 성소(聖召)를 발견하도록 동반하지 못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성소는 넓은 의미에서 주님과 나누는 우정으로 부르심, 성덕으로 부르심 등을 아우르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다. 청년들의 영적 갈망이 시작되는 원천이기도 하다. 젊은이를 주제로 진행된 제15차 세계주교시노드의 최종문서는 “모든 젊은이에게 성소 사목이 제공돼야 한다”고 ‘성소적 사목’을 강조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를 통해 젊은이들이 다양한 형태의 부르심을 깨닫도록 제안한 바 있다. 이 박사는 “내 존재의 의미, 하느님이 계획하신 내 삶의 의미와 같이 각자의 성소를 찾고자 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면서 “청년들이 지닌 종교적 관심과 질문은 굉장히 진지한데, 교회가 청년들의 영적 갈망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개별 성소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교회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목 혹은 봉사 위주 본당 청년회, 청년들의 영적 갈증 헤아리지 못해 청년들 스스로 영적 요구 표출하는 주체적 교회의 일원으로 존중해야 울타리 안에 머무는 청년사목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들의 어려움에 공감해 주고, 청년들과 대화하고, 청년들이 그 어려움을 신앙으로써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로부터,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랑으로부터 청년들이 위로를 받고,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청년사목에 대한 어느 청년담당 신부의 응답이다. 청년사목에 관한 좋은 방침으로 보이지만, 경희대 사회학과 송재룡 교수는 “(여러 청년사목자가) 비슷한 의견을 내놓는다”면서 “이러한 입장은 청년신자들을 붙들어두고 끌어오려는 의지의 부재로 이어진다”고 평가했다. 「청년 신자들의 탈종교현상에 대한 일 고찰」에서 서울 시내에 자리한 5개 종교기관의 청년 사목자들을 심층 인터뷰하고 비교 연구한 그는 “그들이 혁신적 방안의 필요성을 인지하더라도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마련된 실천적 방안들은 가톨릭 신앙의 가르침에 의해 만들어진 전통적 패러다임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많은 청년들이 울타리 밖으로 떠났지만, 여전히 울타리 안에서만 사목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경청 과정을 통해 작성된 「한국교회 종합 의견서」에서 한국교회는 “거의 모든 교구에서 그들(젊은이)에게 온전한 동반자가 되지 못했음을 언급했다”며 “교회는 젊은이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정작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으며, 함께한다고는 하는데 젊은이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노력들이 부족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물론 여러 수도회와 교구가 시작한 청년 밥집 등 울타리 밖 청년을 찾아 나서는 노력은 있었다. 그러나 사목현장의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본당에서는 울타리 밖의 청년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13년째 냉담 중인 이미란(라우렌시아·33) 씨는 “고등학생 때 교목 신부님과 철학적 주제로 소통한 것에서 종교에 매력을 느껴 세례를 받고 성당을 다녔지만, 지역 성당에 간 이후 ‘다음에도 성당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성당과 멀어졌다”면서 “성당이 종교의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기보다 새 신자가 늘어나는 것과 그저 원래 신자가 성당에 오는 것에 집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청년은 미래의 희망? 송 교수가 지적했듯 ‘전통적 패러다임’도 청년 사목이 벗어나지 못하는 또 다른 울타리다. 2023년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실시한 코로나19 설문조사에서 청년들은 한국교회에서 가장 변해야 하는 문화를 첫 번째로 ‘권위주의 문화’, 두 번째로 ‘사제의 독단적 의사결정 구조’를 꼽았다. 청년들을 ‘미래의 희망’이라고 말하면서도, 미성숙한 존재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여기면서 ‘현재의 희망’으로는 바라보지 않는 태도가 청년들이 교회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하는, 혹은 교회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정구훈(이사악·37·인천교구 부평1동본당) 씨는 “본당 내 청년 활동 운영 문제나 삶과 신앙충돌 문제로 겪는 고민에 질문을 던질 때 ‘전통적으로 이렇게 가르쳐왔다’, ‘너희는 아직 신앙이 부족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다’는 식의 대답을 들으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자 고민하는 청년들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며 “결국 질문한 청년들은 불편한 존재가 되고 대화의 문이 닫혀 신앙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를 통해 “교회의 지체들이 언제나 예수님처럼 다가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며 “젊은이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기보다는 젊은이들의 진정한 물음들을 허용하지 않고 그들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때로는 틀에 박힌 정답과 구태의연한 해결책을 제공하려는 경향이 널리 퍼져 있다”고 교회의 현실을 비판한다.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최영균(시몬) 신부는 “청년사목은 사목자와 교회 조직이 일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을 청년에게 적용하는 것이 관습이었다”고 청년 사목의 전통적 패러다임을 설명하면서 “‘청년을 위한 교회’적 자원과 프로그램을 공급하기보다 ‘청년들의 교회’ 즉 청년들 스스로 생각하는 다양한 영적 체험과 아이디어를 모으고 나누며 청년들의 영적이고 신앙적인 요구가 표출되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청년들을 ‘미래’의 주인공으로서가 아니라, ‘현재’의 주인공으로서 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11면

[COVER STORY - 청년, 희망의 현재 진행형] ③시노달리타스로 피어난 희망의 사도, 청년

청년이 시노달리타스 정신의 예외가 될 수 없듯 이들에게도 교회의 ‘현재’로서 교회의 특정 부분만큼은 주체적으로 이끌고 갈 능력이 있고, 교회는 그들의 부족함을 채우고 함께하는 동반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본지는 교회 내에서 주어진 사명을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청년들의 모습과 교회의 ‘동반자’적 역할의 의미를 알아봤다. 기획부터 실행까지 척척! 교회의 청년 재발굴 “스포츠 관련 전공부터 국제 업무 경험까지, 각자의 분야에서 오는 전문성에 창의력을 더해요.” 최근 들어 청년들의 능동적 참여를 위해 교회가 문을 열고 있다. 서울대교구 WYD 기획사무국(국장 이영제 요셉 신부)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사전행사 준비 등에 참여하는 청년 봉사자들이 직접 기획과 운영에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오는 5월 서울 혜화동 일대에서 열리는 유스 페스티벌 ‘희희희’부터 시작해 청년 희망 순례, 나무 심기 등 굵직한 프로젝트에 청년들이 깊이 관여한다. 3월 22일 서울 명동 기획사무국에서 열린 전략팀 전체 회의에서 청년들은 팀 내 각 파트별 사업 진행상황과 후원 기업 유치 방안, 희망 순례 동선과 안전 확보 방안, 행사 강연자 섭외 등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사무국 차장 이상진(아모스) 신부는 “WYD와 연계한 올해 5월 성소 주일 행사를 예로 들면 5개의 상설 프로그램과 6개의 이벤트 프로그램은 청년 봉사자들이 팀을 짜 토의하고 실행 방안을 직접 마련한다”며 “성소 주일 미사의 경우 청년들은 교회 전통의 미사 형식을 존중하는 동시에 톡톡 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고 전했다. 교육 전략 파트를 맡은 청년 양혜경(마리아) 씨는 “행사의 방향성 등 큰 틀은 교구에서 정하지만 프로젝트 기획같이 청년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지도사제의 피드백을 받는다”며 “지자체나 다른 교회 기관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들은 신부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살레시오청년운동(SYM, 전국 담당 이현진 바오로 신부)도 청년들의 능동적 참여를 중요시하고 있다. 청소년·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리·인성 교육부터 시작해 올해 6월 제주도에서 열리는 제6회 한국살레시오청년대회(KSYD) 기획까지 청년들이 도맡아 한다. 이현진 신부는 “전국에 있는 SYM 소그룹 청년들은 모두 각자의 개성과 색깔을 간직한 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특별한 점은 신부님들이 결정한 것을 청년들이 따라오며 돕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 기획 단계부터 함께 시작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6호 보호처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인성·교리 교육을 하고 있는 SYM '마고네프렌즈' 소속 청년 나종인(베드로) 씨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전체적인 방향성은 아무래도 신부님들이 동반해 주고 계시지만, 본당 활동에 비해 청년들이 더 큰 권한을 가지고 교육 계획을 세운다”며 “주체적으로 봉사할 수 있다 보니 경험도 쌓이고 어느새 6년 넘게 봉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회는 청년의 성숙한 동반자 이처럼 교회 구성원 모두의 주체적 참여를 강조하는 시노달리타스 정신에 따라 최근 교회도 청년들을 ‘주체’로 참여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시작했다. WYD 기획사무국 청년 봉사자와 살레시오청년운동 외에도 의정부교구는 청년기후모임 ‘청숲’을 창설하고 청숲을 비롯한 교구 청년들이 능동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는 공간인 일산 에피파니아센터, 의정부 에파타센터를 열었다. 또한 최근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등 일부 본당은 청년 사목회를 신설해 청년들의 목소리를 본당 사목에 적극 반영하고자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모두 청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차근차근 내어 맡기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고 교회가 마냥 방관자로 있지는 않다. 신앙 증진과 교리 등 교회의 전통적 가치를 청년들이 잃지 않도록 이들과 ‘동반’한다는 표현을 사목자들에게서 공통으로 들을 수 있었다. WYD 기획사무국 차장 이상진 신부는 “우리는 스스로를 ‘동반 사제’라고 부른다”며 “사실 교회의 가르침을 어떻게든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 습관처럼 ‘지도’하려는 경우가 있지만, 그럴 때마다 끊임없이 수정하고 성찰해 나간다”고 전했다. 이현진 신부도 “그간 교회가 청년들을 주역이 아니라 ‘소비재’처럼 바라봐 온 것이 사실”이라며 “당연히 청년들은 젊기에 경험의 측면에서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이들을 능력이라는 기준에서 평가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바라보시는 것처럼 그 존재 자체로 우리와 동등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SYM에서는 청년들을 미래이자 동시에 현재로 바라본다는 관점에서 사제들이 ‘동반’한다는 표현을 쓴다”고 전했다. 동반의 모델,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함께한 예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총회 최종문서는 젊은이들과 동반해야 할 교회의 모습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예수님에게서 찾는다. 문서는 머리말에서 “젊은이들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전형적으로 꼽는 예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이야기”라며 “예수님과 제자들은 공동체를 뒤로한 채 예루살렘에서 멀어지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들의 길동무가 되어 함께 걸으셨다”고 언급한다. 최종문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말을 인내 속에 경청하며, 자신들이 체험한 것을 스스로 깨닫게 도와줬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과 반대로 가는 제자들을 예수님이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은 교회가 청년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가의 길잡이가 돼준다. 정규현 신부(마르티노·서울대교구·서강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는 “청년들이 곧장 가는 지름길이 아닌 돌아가는 길, 반대 방향의 길로 가더라도 교회가 신뢰와 동반의 역할로써 인내하고 버틸 영적 에너지를 가졌는지가 관건”이라며 “정답만 요구하는 게 아니라 함께 체험하며 나아가는 것이 최종문서가 요구하는 교회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12면

[가톨릭POLL] 금육과 단식, 어떻게 생각하세요?

3월 가톨릭POLL 설문 결과, 응답자의 12%가 매주 금육재를 지키고 있으며, 지난 재의 수요일(3월 5일)에 47%가 단식재를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POLL’은 교회 내 여론에 귀 기울이고 친교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가톨릭신문과 서울대교구 가톨릭굿뉴스가 공동기획한 설문조사다. 3월 6~21일 ‘금육과 단식, 어떻게 생각하세요?’를 주제로 진행한 가톨릭POLL 3월 설문에는 1027명이 참여했다. 조사결과 절반이 넘는 응답자(65%)가 매주 금육을 지키거나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었으나, 응답자 4명 중 1명은 금육을 지키지 않거나,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육을 지키려 하지만 가끔 고기를 먹는다는 답변이 343명(33%)으로 가장 많았고, 지키려 하지만 잘 안 지킨다는 답변이 206명(20%)으로 그 뒤를 이었다. 매주 금요일 반드시 금육을 지킨다는 응답은 126명(12%)이었다. 반면, 금육을 알고 있지만 지키지 않는다는 답변이 173명(17%)이었고, 금요일마다 금육인 것을 몰랐다는 이들도 62명(6%)으로 나타났다. 원래 채식을 하기 때문에 금육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답변도 21명(2%) 있었다. 지난 재의 수요일에 단식재를 준수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481명(47%)이 지켰다고 응답했다. 단식재를 알았지만 못 지킨 사람은 309명(30%)이었고, 단식재를 몰라서 못 지켰다는 응답도 110명(11%)있었다. 신자들은 대부분 금육과 단식을 내 신앙에 도움이 되며, 기도와 같은 행위로 인식하고 있었다. 응답자들은 금육재에 대한 생각으로 신앙 성장에(30%),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19%), 생태에(19%)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어 의무감 때문에 불편하다(16%), 현대 사회와 맞지 않다(10%), 채식과 비슷하다(6%) 순으로 응답했다. 단식재에 관해서는 기도와 비슷하다(41%),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도움이 된다(19%), 마땅히 바쳐야 할 고행이다(18%), 단식재의 의무감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10%), 다이어트나 건강에 도움이 된다(8%), 현대사회에는 맞지 않는 행위다(4%) 순으로 생각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응답자의 대부분은 이번 주님 수난 성금요일(4월 18일)에 단식과 금육을 실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응답자 중 650명(63%)은 성금요일에 단식과 금육을, 211명(21%)은 단식은 어렵지만 금육은 실천하겠다고 응답했다. 금육/단식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기도, 희생, 애덕실천 등으로 동참하겠다는 응답도 137명(13%)에 달했다. 다만 응답자의 3%는 단식·금육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4면

[COVER STORY - 청년, 희망의 현재 진행형] ①청년, 종교를 떠나다

청년들이 종교를 떠나고 있다. 한국리서치 ‘2024 종교 인식조사’에 따르면, 종교를 믿지 않는 청년이 약 70%에 이른다. 많은 청년이 ▲전통적 종교 가치관(도그마)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어서 ▲시대 감수성과 교리 사이의 괴리를 느껴서 ▲밀착된 관계가 부담스러워서 마음이 떠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명상, 심리·철학적 탐구 등 대안적 영성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영적으로 목마른 그들은 왜 정작 종교 안에서는 갈증을 채우지 못할까. 청년들의 탈종교 현상을 분석하고, 그들이 종교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에 귀 기울여 봤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한국교회에서 청년 신자는 가파르게 줄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 통계」를 따르면, 20대 청년 신자는 2015년 77만1251명(전체 신자 13.6%), 2019년 78만9368명(전체 신자 13.3%), 2023년 61만5668명(전체 신자 10.3%)까지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신자 수는 물론 전체 신자 중 비율까지 떨어진 것이다. 청년들의 탈종교 현상은 천주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한국기독교분석리포트’에 따르면, 교회 출석자 중 20대의 비중은 2017년 17%에 달했으나 2023년 6%로 줄었다. 이는 청년들이 종교에서 유의미한 효능감을 얻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2023년 진행한 ‘기독청년 인식조사: 가치관, 마음, 신앙’ 조사에서 응답자 청년들은 교회를 떠났거나 떠나고 싶은 이유를 ▲매주 교회 다니는 게 부담스러워서 ▲신앙이 나의 삶에 도움 되지 않아서 ▲신앙심이 사라지거나 회의가 생겨서 등으로 밝혔다. 주일미사 참례 등 의무에 부담을 느끼는 천주교 냉담 청년들도 공감하는 내용이다. 독실한 가정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현아(가명·30·안젤라)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냉담 중이다. 초등학생 때는 첫영성체 교리 수업에서 기도문 암기로 늘 1등, 중학생 때 전례 봉사도 했던 현아 씨는 이제 고해성사를 보는 법도 가물가물하다. “예수님은 여전히 호감이고 힘들 때 기도도 한다”는 현아 씨는 “그렇다고 그게 내가 의무감으로 매 주일 성당에서 시간을 ‘소비’할 이유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어떤 종교의식이든 일회성 행사처럼만 다가와요. 생존과 직결된 삶에 그것이 어떤 힘을 주는지도 체감한 적 없고요. 그래서 교회도 절도 다닐 생각 없어요.” #이성적사고 #시대감수성 #수평적관계 기성세대보다 높은 교육 수준에 힘입어 청년들은 신앙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무조건 따르기보다 스스로 탐구·확립하는 걸 선호한다. 인터넷·SNS가 능숙해 정보 접근성이 높아 다양한 해석, 비판적 견해를 두루 접해오기도 했다. 그래서 종교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고, 믿더라도 ‘무엇이 믿을 만한지’ 짚고 넘어간다.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에페 5,22) 이런 표현이 성경에 나오면 합리적으로 해석해 주는 신부님도 있지만, 사실 설명이 부족할 때가 많아요.” 바이오 전공자 박가은(테클라·25·서울대교구 양천본당) 씨는 “우리는 빅뱅 이론과 진화론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개입과 창조를 강조하는 교회의 ‘진심’을 이해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본당 주일학교 교사로 6년간 활동한 박 씨는 “그런데 가르침은 거의 우리에게 ‘한쪽만 맞다’거나 ‘그냥 교회 입장이 그렇다’는 식으로 전달된다”고 토로했다. 청년들은 시대 감수성에도 깊이 공감한다.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이 성(젠더)평등, 성소수자 인권, 생명윤리 등 사회적 흐름과 충돌할 때 교회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인천교구 청년성서모임 봉사자 정구훈(이사악·37·인천교구 부평1동본당) 씨는 “도그마는 옳고 그름보다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어른들은 이를 현대적 감수성과 조화롭게 풀어가는 방법을 고민하기보다 순종부터 바라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래서 청년들은 ‘수평적 관계’를 좇는다. 끈끈한 친교가 아니라, 동등한 눈높이에서 서로 존중하며, 각자가 만난 예수님을 나누고 발견하면서 서로 인격적 관심을 기울이는 관계다. “친교를 핑계 삼아 지나친 ‘함께’(공동체주의)를 중시하는 건 맞지 않다고 봐요. 그 ‘함께’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외감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저 고인 물 같이 돼서 아무 의미 없는 만남 시간이 될 수 있겠죠.” 철학·종교 전공자 성유빈(에디트 슈타인·인천교구 마전동본당) 씨는 “청년이라는 거대한 덩어리보다는 청춘 개개인을 봐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이어 “친교의 본질은 구렁에 빠진 친구가 있으면 올라올 수 있게 손을 내밀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문턱 낮은 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너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현아 씨는 요가 강사다. “내적 균형이 최우선 가치”라는 그에게 명상은 일상이다. 오늘 아침도 현아 씨는 명상 도구인 싱잉볼(Singing bowl) 여러 개로 자신을 에워싸고,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침묵하며, 타종 소리를 매개 삼아 내면세계로 침잠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 종교를 떠났다고 영성까지 잃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종교가 없었거나 종교를 떠난 많은 청년이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 이하 SBNR) 활동에 심취한다. 청년들의 탈종교가 반드시 신앙심 부족이나 종교생활 거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청년들의 많은 수는 영적 갈망을 지니고 있다. 미국 설문조사기관 퓨리서치에 따르면, 자신이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영적’이라고 생각하는 청년세대(18~29세)는 2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를 떠난 청년 4명 중 1명이 스스로 영적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은 신자 청년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진다. 본지가 서울대교구 옥수동본당 부주임 김강룡(프란치스코) 신부와 ‘스레드’(Threads)를 통해 청년 신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에서도 응답한 청년의 79%가 영신수련과 같은 기도·묵상 피정에 참여해 보고 싶다고 답했다. 정규현 신부(마르티노·36·서울대교구·서강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는 “더 충만한 삶의 의미를 모색하고 내적 진정성에 귀 기울이며 대안적 가치를 추구하는 청년도 많아지고 있다”며 “세대론에 빠져 청년들의 세태를 비판하고 쇄신을 외면했던 것은 아닐지 반성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10면

떠나보낸 아기와 화해하고, 하느님 품 안에서 희망 찾습니다

생명을 지우는 낙태는 교회에서 금하는 무거운 죄이다. 하지만 우리가 회개와 속죄의 사순 시기 후 기쁨의 부활을 맞듯, 교회는 낙태 경험자가 고통과 죄의식에서 벗어나 앞으로 기쁨 안에서 성가정을 이루고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는 데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그 일환으로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이하 생명위)는 낙태 상처 치유 프로그램 및 미사 ‘희망으로 가는 길’을 주관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마친 참가자들은 “같은 아픔을 지닌 많은 이들이 이 시간을 통해 함께 치유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애도: “하느님 품에서 다시 하나 되길” “사랑하는 엄마, 엄마와 내가 한 몸이었을 때로 돌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아요. 엄마의 자궁 속에서 나는 많은 걱정거리였어요. 나를 받아들이지 못한 결정이 쉽지 않았을 거예요.” <아기가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가 낭독되자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다섯 명의 참가자가 3부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을 함께했다. 1부 ‘자신을 돌아보기, 아기와의 화해’를 진행한 봉사자 이숙희(데레사·수원교구 평촌본당) 씨는 참가자들이 애도 시간에 충분히 머물 수 있도록 살폈다. 이 씨가 “다들 일상에서 하느님께 감사하다가도 ‘나 죄지었는데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자꾸 들게 될 것”이라며 “그냥 묻어두고 눌러놓았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라고 설명하자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아기의 이름을 지은 뒤 화해와 용서의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하트모양의 종이에 아기에게 쓴 편지는 3부인 미사 봉헌 시간에 촛불로 태워졌다. 생명위 담당 박진리 수녀(베리타스·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가 마련한 2부 ‘주님 안에 머무르기’에서는 명상과 함께 루카복음 15장 11절에서 32절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읽고 나눴다.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에게 입 맞추는 구절을 고른 정수미(가명) 씨는 “그동안 ‘아가들이 어디에서 떠돌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왔다”며 “오늘 강의 시간에 아가들이 고이 주님의 품 안에서 수호천사로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아이들이 입 맞춰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작은아들을 불쌍히 여기는 부분이 와닿았다는 이가은(가명) 씨는 “하느님이 얼마나 나를 불쌍하게 여기셨을까 생각이 들었다”며 “항상 주님이 인자로우셔서 지금도 나를 가엾게 생각하시며 많은 은총을 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3부에는 고해성사 후 생명위 사무국장 오석준 신부(레오) 주례의 미사가 계속됐다. 평화의 인사 시간에 참가자들은 마치 알던 사이인 것처럼 서로를 힘주어 안았다. 안주영(가명) 씨는 “같은 아픔을 지니고 있는 사이라 애틋했고, 그간 아팠던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이 모두 끝난 후 진애주(가명) 씨는 “항상 죄인처럼 살면서 죄책감으로 말도 잘 못 하고 ‘내 아기들이 또 다른 어둠 속에 있지 않을까’라고 늘 생각했는데 오늘 하느님 품에 있다고 하니 너무 감사하고 기쁘다”며 “이곳으로 이끌어주신 하느님은 정말 너무 좋으신 분”이라고 덧붙였다. 희망: 생명을 더하는 사람 되기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봉사자들과 담당자들은 ‘희망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아픔을 승화시켜 생명을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봉사자 이 씨는 “나와 화해하고 나를 용서하면, 앞으로 행복하게 살고 상대에게 축복의 말을 해줄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며 “용서받음을 통해서 내가 또 다른 누군가를 용서를 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동안 어둠에 있어 들을 수 없었던 하느님의 희망과 생명의 말씀을 듣고 그 생명을 나누어 나의 말로 인해서 상대를 행복하게 만들 때, 나는 치유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애도 시간 충분히 가진 뒤 화해와 용서의 편지 적어 아픔을 희망으로 승화시켜 ‘생명 전하는 이’ 될 것 다짐 오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못 다 준 사랑을 다른 아이에게 더 주겠다는 마음을 다짐하는 등 기쁨으로 가는 길을 하나씩 챙겨달라”며 “고통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희망과 생명을 말하듯 여러분도 아픔을 딛고 일어나 생명을 전파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박 수녀는 참가자들에게 낙태에 대해 언급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생명의 복음」 을 소개했다. “교회는 많은 경우에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일이 무척 고통스럽고 거의 절망적이기도 한 결정이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며 “그 일은 분명히 엄청난 잘못이지만 실망에 굴복하지 말고 희망을 잃지 말라고 권고한다”고 전했다. 또한 박 수녀는 “회칙은 여러분 자신의 고통스러운 체험의 결과로 여러분은 생명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지닌 권리에 대한 설득력 있는 옹호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밝혔다. 동행: ‘돌아온 탕자’ 보듬는 교회 우리나라는 모든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통한 낙태죄 용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낙태 경험자들이 고해성사의 은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고해와 보속 후에도 죄책감 속에 시달리고 있다. 오 신부는 “아픈 경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것을 내 삶의 여정에서 함께 가는 동반자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며 “치유의 과정을 통해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같이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이 희망을 얻는 것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해방의 희년’일 것”이라고 말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처럼 모든 것 용서하시는 하느님 죄책감에서 해방으로 건너가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박 수녀는 “참가자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기쁨을 얻고 자유로움을 느끼며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길잃은 양을 돌보는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사랑을 느끼게 된다”며 “이 시간은 ‘그때’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마주하고 들여다봄으로써 떠나보낸 아기와 화해를 하는 기회”라고 덧붙였다. 봉사자 이 씨는 “많은 낙태 경험자들이 ‘나는 죄가 많으니까 용서받을 수 없다’는 생각 속에서 신앙생활을 기쁘게 못한다”며 “잘못한 부분을 분명히 아는 가운데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해 생명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시작점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생명위는 낙태 상처 치유 프로그램 및 미사 ‘희망으로 가는 길’을 8월을 제외하고 매월 두 번째 화요일에 진행한다. 7월과 10월에는 직장인들이 참가하기 쉽게 두 번째 토요일에 마련된다. 프로그램과 미사는 오후 1시 30분~4시 30분까지 서울대교구 교구청별관 6층 소성당에서 이어지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사전 예약 등은 받지 않는다. ※ 문의 02-727-2353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8면

“세상 모든 관계 끊겨도 하느님은 관계를 끊지 않으십니다”

인내와 보속의 사순 시기를 누구보다 마음 깊이 지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교정 시설에 있는 수용자들이다. 부활의 기쁨을 기다리며 성찰과 정화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수용자들. 교정 시설은 사회적 처우 활동 중 하나로 천주교 등 종교 활동을 지원해 수용자들의 사회 통합을 돕고 있다. 25년째 꾸준히 교정 사목 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교정 위원인 사단법인 꿈나눔 재단(지도 서상진 바오로 신부)의 신원건(대건 안드레아) 이사장과 함께 경북 청송군에 위치한 경북북부제1교도소를 찾았다. 나눔과 배려의 소공동체 모임 “주님, 이 자리에 오늘도 주님께서 함께하시어 축복 내려주시고 형제간 사랑이 가득하도록 은총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한 수용자의 진지한 기도와 함께 소공동체 모임이 시작됐다. 신원건 이사장, 재단 후원회원 김미자(체칠리아, 수원교구 미리내본당) 씨와 7명의 수용자가 교육관에 모였다. 서로 안부를 물으며 인사한 뒤 오늘의 복음을 읽으며 와닿는 구절을 세 번씩 낭독하고 침묵 속에 말씀을 새겼다. 그 후 돌아가며 구절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실천 사항을 나누는 모습은, 철창문 안에 있다는 것만 빼면 여느 소공동체 모임과 다르지 않았다. 루카복음 9장 28절에서 36절의 복음 구절을 나눌 땐 지난날에 대한 성찰과 연결하는 수용자들도 적지 않았다. “제자들이 잠에 빠졌다가 예수님 영광을 본 부분이 와 닿는다”고 말한 배진우(가명, 요셉) 씨는 “유혹과 향락 속에 있던 옛날의 내가 바로 잠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면서 “여기에 와서도 계속 잠들어 있었지만 끊임없이 도와주신 여러 손길 덕분에 잠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명훈(가명) 씨는 “이전에 개신교회를 잠깐 다닐 때 누군가가 내 편이라는 느낌이 들었었던 걸 잊고 살았다가 이곳에서 천주교 모임과 기도, 미사를 하며 마음을 치유 받았다”며 “많은 가르침을 외면하며 살았는데 앞으로 삶에 있어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배우며 잘 살아보고 싶다”고 밝혔다. “저는 저번 주부터 예비신자 교리를 시작했습니다.” 총 두 명의 예비신자에게 수용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예비신자 외에도 유아세례를 받았던 수용자부터 다른 종교 모임에서 옮겨온 첫 참가자까지 구성원은 다양했다. 소공동체 모임이 끝난 후 재단에서 준비해 온 음식을 다 같이 먹는 시간이 마련됐다. 음식에서 거리가 조금 먼 사람들에게 가까이 놓아주고, 먼저 다 먹은 곳에 많은 쪽 음식을 덜어주는 등 따뜻한 배려가 이어졌다. 펼쳐진 치킨 외에도 과일이며 과자 같은 소분한 간식들을 서로 챙겨주기도 했다. 신 이사장이 챙겨간 책도 시설 측의 확인 후 배분됐다. 나를 들어 올리신 하느님 보통의 소공동체 모임과 다른 점은 또 하나 있었다. 피해자를 위한 기도와 수용자를 위한 기도를 모임 시작과 끝 즈음에 각각 바친다는 것이었다. 뛰어난 리더십으로 작업반장 역할도 맡았던 정건우(가명, 라우렌시오) 씨는 “사실 사건 당시에는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이 그리 크지 않았는데, 기도 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잘 모르는 내 모습이 큰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훗날 내가 받은 자비와 자선을 조금씩이라도 꼭 갚아나가는 삶을 살고 싶다”고 밝혔다. 무기징역 형을 받고 27년째 지내고 있는 박영섭(가명, 미카엘) 씨는 “2심 때 사형을 선고받고는 자포자기로 있었는데 미사에 참례하며 마음이 평온해졌고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게 됐다”면서 “그 후 다행히 감형됐다”고 말했다. 이어 “새벽 4시에 일어나 묵주기도 3~4단씩 꼭 한다”면서 “사순 시기에는 눈이 안 좋아서 놓고 있던 성경 필사를 다시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임하진(가명, 시몬) 씨는 “봉사자들이 이곳을 찾아와서 건네주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에게는 일주일, 열흘을 버티는 힘”이라며 “시작된 사순 기간에 천주교의 전례 시기나 용어 설명 등이 담긴 책을 필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말씀 읽고 나누는 소공동체 모임…신앙 안에서 성찰·정화 이끌어 매 모임에 피해자를 위한 기도 바쳐 “기도 생활 통해 잘못 뉘우쳐” 경북북부제1교도소는 사회적 처우 중 하나로서 천주교 관련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정기적인 미사와 기도 모임을 주관하고 수용자들과 상담 시간을 가지며, 천주교 교육과 가족 연결, 사회복지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한다. 담당 이창운 교사는 “수용자들은 교회 활동을 통해 부정적 감정을 떨치고 내면의 평화와 보다 높은 가치를 얻어 성공적인 사회 복귀를 향하게 된다”며 “수용자들이 신앙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이어 “이 외딴곳까지 찾아와 교정 봉사를 하는 이들의 노력과 사랑이 헛되지 않도록 교도관들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먼저 찾아가 친교 맺은 예수님처럼 안동교구 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차광철(베다) 신부는 “이곳에는 모든 관계가 끊긴 이들이 많은데 하느님은 관계를 끊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교정 사목”이라며 “세관장 자캐오나 간음한 여인이 먼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그들을 찾아갔던 모습을 교회가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교도소 안에서 팔지 않는 너구리 라면을 먹고 싶어 한 수용자가 있어 보냈더니, 나중에 울면서 먹었다는 편지가 왔다”고 말한 차 신부는 교구 교정 사목 후원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이렇게 귀하게 쓰이는 후원금 봉헌은 사랑의 최소한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어 차 신부는 “교회에서 준비한 간식이 부족할 때는 미사 참례만 하러 온 이들에게 신자인 수용자들이 간식을 양보하는 아름다우면서 안타까운 모습도 종종 보였다”고 덧붙였다. 신원건 이사장은 현재 경북북부제1·2교도소, 안동교도소 등 세 곳을 매월 정기 방문하고 있으며, 총 9개 교도소 40여 명의 수용자에게 영치금·간식·병원비·도서·검정고시 교재 지원을 하고 안동교구 교정 사목 후원 등을 하고 있다. 신 이사장은 “방문했을 때 조금 더 내실 있는 시간을 갖고자 소공동체 모임을 시작했다”며 “사회에 다시 나가서 냉담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 명이라도 우리를 통해 도움을 받고 다시 살아간다면 그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신 이사장은 “나는 소아마비로 한쪽 발이 불편해, 다른 쪽 다리로만 운전해서 새벽부터 오는 일이 쉽지 않다”며 “하지만 수용자들의 웃는 모습을 보면 내 힘이 닿는 한 계속 오겠다고 다짐하게 된다”고 전했다. ※ 후원 우리은행 1005-003-570954 사단법인 꿈나눔 재단 ※ 문의 010-5211-2571 신원건 이사장

발행일 2025-03-23 제343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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