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특집] 성탄을 준비하는 사람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마태 24,44) 임마누엘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 1주, 설레는 마음으로 대림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성스러운 마음을 담아 대림환을 만든 신자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주님성탄대축일 주님 안에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예비 신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 대림환 만들기 - 서울 무악재본당 “나를 내려놓고 귀한 손님 맞이할 준비해요”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복음 낭독과 함께 대림환 만들기가 시작됐다. 11월 23일 서울대교구 무악재본당(주임 김민석토마스데아퀴노 신부) 신자들은 대강당에서 대림환을 만들고 꾸미는 시간을 가졌다. 김민석 신부는 “오늘이 대림 4주간을 의미 있게 보내겠다는 결심을 하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다”며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때’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도구인 대림환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대림환 꾸미기에 나선 15명의 신자들은 보라색과 분홍색의 초 네 개, 유리병, 오아시스, 측백나무 등 다양한 준비물로 각양각색의 대림환 만들기를 시작했다. 서로서로 “꾸미는 잎들과 초가 너무 가까우면 잎이 촛불에 탈 수 있다”, “꽃과 잎들을 너무 조금 넣으면 별로 안 예쁘다” 같은 팁도 공유하며 함께했다. 손영민(비비안나) 씨는 “‘기다림’의 대림 시기는 너무 귀한 손님을 맞이한다는 생각으로 나를 내려놓는 시간인 듯하다”며 “대림 때마다 매년 그해의 목표를 지향했는데 이번에는 그룹 성서 봉사를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림환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대림환 만들기를 주관한 헌화회 담당 안 비비안나 수녀(예수성심시녀회)는 “스스로 준비한 대림초에 불을 붙이고 기도하며 대림 시기 의미를 더 깊이 깨닫길 바란다”며 “대림 시기가 묵상을 통해 더 기쁜 성탄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 주님성탄대축일에 세례 받는 예비 신자들 - 서울 청담동본당 주님 자녀로 첫 발, 설렘 가득한 예비 신자 교리반 “앞으로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을 갖추길 기대합니다. 새 신자로서 믿음을 키워나갈 날들이 기다려집니다.” 11월 24일 서울대교구 청담동본당(주임 양장욱 베드로 신부). 주님성탄대축일에 세례식이 예정된 예비 신자들의 교리가 한창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신자가 되는 최고령 부부 박창섭·유정자 씨는 나란히 출석해 금실 좋은 모습을 보였다. 신자로서의 기대감을 나타낸 박창섭 씨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교리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성당 강당은 스무 명 남짓한 예비 신자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이들은 누구보다 대림 시기를 간절한 ‘기다림’으로 맞이하는 듯 보였다. 부부 예비 신자인 최 엘리사벳 씨는 “남편은 불교, 나는 개신교 신자였는데 남편이 성당에 함께 나가자고 해 한 분이신 하느님을 남편과 함께 믿고 싶어 입교하게 됐다”며 “주님성탄대축일이라는 뜻깊은 날에 받는 세례는 우리 부부에게 큰 선물이고 올해 성탄이 평생 의미있는 날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최 씨는 “앞으로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ME 모임 등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을 보였다. 절박한 상황에서 입교를 결심한 예비 신자도 적지 않았다. 장윤희 씨는 “편찮으신 어머니가 천주교 신자인 가정간호사·요양보호사님 덕분에 대세를 받을 수 있었다”며 “버거운 선택의 순간이 계속되는 중에 주님께 기도하고 싶고 신자 분들이 주시는 도움에도 감사해 입교를 결심했다”고 전했다. 장 씨는 이어 “3월에 통신교리를 시작해 9개월 만에 받는 세례라 오래 기다린 만큼 가장 큰 선물 같은 날이 될 것 같다”고 기대감을 비쳤다. 홍지연 씨는 “인대 재건술을 받은 뒤 예후가 안 좋아 걷게만 해주시면 성당에 다니겠다고 하느님께 기도한 뒤 거짓말처럼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됐다”며 “냉담 중이던 남편도 성당에 다시 다니게 된 기쁨에 더해 성탄이라는 의미 있는 날 주님의 자녀로 첫발을 내딛을 수 있어 설렌다”고 말했다. “말씀 안에서 신앙을 전한다는 마음…새 신자들이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도록 돕고 싶어” 예비 신자들이 새 신자로 거듭나길 기다리며 본당에서도 많은 준비를 해 왔다. 주일반 강의를 맡은 김미정 수녀(세노리나·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는 “예비 신자들을 맞이하기 두세 달 전부터 이분들을 지향으로 두고 기도해왔다”며 “가르치기보다 하느님 말씀 안에서 신앙을 전한다는 마음으로, 부활과 또 다른 절정인 성탄에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도록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예비 신자를 담당하는 본당 부주임 박용준(요한 사도) 신부는 “세례를 앞둔 분들이 지향과 간절함을 가지고 예수님 탄생과 세례를 기다리는 대림 시기를 보내시길 바란다”며 “복음을 듣기는 쉽지만 소화하기는 어려운 만큼 세례 후 동기 부여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세례 후 6개월간 후속 프로그램도 진행하니 계속 함께해달라”고 당부했다. 예비 신자 교리반 봉사자 윤상희(마리아) 대표는 “나도 모태 신앙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비 신자분들께 공감이 많이 된다”며 “어색하고 어렵겠지만 성당에 자주 나오셔서 신자분들과 친교를 나누다보면 신앙을 더욱 활짝 꽃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2024-12-01

WYD 십자가, 한국교회 청년들 품 안에

11월 24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지난해 세계청년대회를 주최한 포르투갈의 청년들이 세계청년대회(이하 WYD) 상징물인 WYD 십자가와 ‘로마 백성의 구원자’ 성모 이콘을 2027년 다음 WYD를 주최하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전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이번 WYD 상징물 전달식은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자 제39차 세계 젊은이의 날인 11월 24일 오전 8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하는 미사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이었지만,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들어가기 위해 모인 신자들은 끊임없이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줄을 기다렸다. 미사 전 성당을 가득 메운 신자들은 먼저 묵주 기도를 바쳤다. 의정부교구의 김예나(로사) 씨는 한국어로 묵주 기도 한 단을 선창하기도 했다. 미사 전 교황은 한국의 WYD 상징물 전달식 순례단 청년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이어 제대 왼편에 WYD 상징물인 WYD 십자가와 성모 이콘이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미사가 시작됐다. 이날 미사의 성찬례는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 장관 케빈 패럴 추기경이 집전했다. 한국에서 온 청년과 사제, 수도자 60여 명은 양편의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와 서울 WYD 지역조직위원회 총괄 코디네이터 이경상(바오로) 주교도 제대 위에 올라 성찬례를 공동집전했다. 영성체 후 WYD 상징물 전달식이 이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달식에 앞서 특별한 기도를 올렸다. WYD 상징물이 전쟁과 폭력의 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힘의 원천이 되어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교황은 “어디든지 이 WYD 십자가와 성모 이콘이 닿는 곳은 사람들 사이에 하느님 사랑과 형제애가 샘솟아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포르투갈 청년 15명이 제대 곁에 세워져 있던 십자가와 성모 이콘을 들고 제대 앞으로 나왔고, 한국 청년 15명이 십자가와 이콘을 받아 제대 앞에 세웠다. 2027 서울 WYD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날 십자가를 나눠 진 인천교구 강수민(리드비나) 씨는 “많이 무거울 줄 알았는데, 여러 명이 같이 드니 십자가가 전혀 무겁지 않았다”면서 “십자가를 지고 옮기는 동안 계속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본당 주일학교 교사인 강 씨는 “학생들에게 신앙을 알리는 교사로서 책임감이 더 커지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희망은 더 멀리 내다보게 한다’는 교황님의 말씀을 되새겨 제가 맡고 있는 학생들을 또 다른 청년 사도로 키울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 중에는 제2독서와 예물 봉헌에 한국 순례단원이 참여했다. 독서자로 나선 서울대교구 김시홍(모세) 씨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전례봉사에 참여하면서 그동안 제가 성악가로서 교구 청년밴드에서 노래를 부르는 등 그간 살아온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인도하신 것이라는 것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WYD라는 행사가 한 청년, 사제, 교구의 힘으로는 절대 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관심을 갖고 힘을 합쳐야 할 것 같다"면서 “저도 그 안에서 함께 노력하겠다”고 다짐을 전했다. 한복을 차려입고 예물 봉헌에 나섰던 광주대교구 민성경(실비아) 씨는 “가톨릭교회의 중심인 로마에서 교회에 관해 배우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면서 “특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예물 봉헌에 나선 것은 가톨릭신자로서 가장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또 “미사 후 대성당을 나서는 교황님께서 다정한 할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과자 등을 챙겨주시는 모습에 감명받았다”고 덧붙였다. 청년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민 씨는 “WYD에서 교구대회도 많이 중요한 만큼 광주를 알리는 데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미사 후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이뤄진 삼종기도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집무실에 인천교구 유현민(마르티노) 씨와 수원교구 강은비(아녜스) 씨 등 두 명의 한국 청년이 초대됐다. 두 청년들은 교황이 삼종기도를 주례하는 중간 교황 곁에 섰다. 교황은 “오늘 이 두 한국 청년이 WYD 십자가를 받아가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한다”면서 “한국의 청년들에게 박수를 보내달라”고 말했고, 광장을 가득 채운 순례자들은 환호와 박수로 서울 WYD의 시작을 환영했다. 주교회의 WYD 교구대회 준비위원회 위원장 김종강(시몬) 주교는 순례단에게 “오늘 WYD 십자가와 성모 이콘을 전달받았다”면서 “특히 천사의 알림을 마음속 깊이 새겼던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처럼 우리가 오늘 받은 감동을 가슴속에 깊이 새기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어 “오늘의 이 감동을 깊이 새겨 우리 이웃에 복음을 증거하고 사랑을 전하며 WYD에 임하자”고 덧붙였다. ■ WYD 십자가와 성모 이콘의 유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이 세상에 구원을 선포한지 1950년째가 되던 1983년 구원의 해를 선포했다. 당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상징인 십자가를 모두가 잘 볼 수 있도록 높이 3.8 미터의 십자가를 성 베드로 대성당 제대에 설치했다. 구원의 해가 끝나며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성문을 닫은 교황은 이 십자가를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맡겼고, 성 베드로 대성당 인근에 있던 산 로렌조 청년센터가 이 십자가를 보관하도록 했다. 당시 교황은 “희년을 마치며 이 희년의 상징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젊은이들에게 맡긴다”면서 “인류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는 이 십자가를 세상에 짊어지고 나아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라”고 당부했다. 산 로렌조 청년센터는 이 십자가를 관리하며 세상에 선보였다. 첫 번째 순례는 1984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가톨릭의 날’ 행사였다. 이어 프랑스의 루르드로 순례를 떠났다. 같은 해 당시 공산 치하에 있던 체코에도 선을 보였다. 유엔이 정한 세계 청년의 해였던 1985년 성지 주일 약 30만 명의 청년들이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만났는데 그 때에도 이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그해 12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매년 성지 주일을 세계 젊은이의 날로 정했고, 1987년에는 전 세계 청년들이 모이는 세계청년대회를 개최했다. 이때부터 이 십자가는 WYD 십자가로 불리게 됐다. WYD 십자가는 계속해서 전 세계를 순례했는데, 1989년 서울에서 열린 제42차 세계성체대회 중 열린 ‘젊은이 성찬제’를 위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1996년부터는 WYD 개최국 청년들에게 십자가가 전달되는 전통이 시작됐다. 2008년 시드니 WYD를 앞둔 2007년, 아시아태평양 순례 도중 두 번째로 한국을 순례했고, 이번이 세 번째 한국행이다. ‘로마 백성의 구원자’(Salus Populi Romani) 성모 이콘은 2000년 대희년에 로마에서 열린 WYD 철야 기도와 교황 미사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후 2003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WYD 십자가’의 순례 여정에 ‘로마 백성의 구원자’ 성모 이콘을 함께하도록 했다. 이콘의 원본은 로마 성모대성당에 보관되어 있으며, 화가들의 수호성인인 루카 복음사가가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2024-12-01

[WYD 상징물 전달식 한국 청년순례단] 로마 성모대성당에서 포르투갈 청년들과 묵주기도 봉헌

세계청년대회의 상징물인 WYD 십자가와 성모 이콘 전달식에 한국교회는 전국 각 교구 청년대표를 비롯해 60여 명의 순례단을 파견했다. 순례단은 상징물 전달식에 앞서 무너져가는 교회를 일으켜 세운 프란치스코 성인의 숨결이 남아있는 아시시를 순례하고 WYD 십자가를 관리하는 산 로렌조 센터를 찾았다. 또 이전 대회 주최국인 포르투갈 청년들과 함께 2027 WYD의 성공을 위해 함께 묵주 기도를 봉헌했다. 성 프란치스코와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에 WYD 성공 기원 11월 20일 로마에 도착한 순례단은 다음 날인 21일 프란치스코 성인의 자취가 남아있는 아시시를 순례했다. 순례단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묘소를 참배하고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서 한국어로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를 주례한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총무 최인비(유스티노) 신부는 강론에서 순례단에게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아 가난한 삶을 선택할 것을 당부했다. 최 신부는 “가난한 삶은 우리가 하느님의 필요성을 깨닫고 우리의 이웃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는 삶”이라면서 “2027 세계청년대회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WYD 상징물 전달식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의 시간을 하느님께 봉헌한 우리는 가난한 선택한 것이며 이는 하느님께는 영광이며 우리 교회에는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순례단은 아시시교구 성 루피노 대성당 앞 광장에서 깜짝 손님을 맞았다. 바로 내년 4월 27일 시성이 예정된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의 어머니 안토니아 아쿠티스 여사를 만난 것. 순례단은 최근 한국교회에 아쿠티스 복자의 유해를 선물한 안토니아 여사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다 한국의 성모상을 선물했다. 안토니아 여사는 아쿠티스 복자가 2027 WYD 최초의 순례자가 됐다는 순례단의 말에 “카를로도 다음 WYD의 첫 순례가자 된 것을 기뻐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안토니아 여사는 “WYD는 아주 중요한 행사로 젊은이들이 많은 은총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젊은이들은 현재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주님 안에서 희망의 증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아쿠티스 복자가 성체 신심과 묵주 기도를 통해 젊은이들의 모범이 된 것처럼 청년들도 “하느님 나라로 가는 고속도로인 성체성사를 통해 성화의 삶을 살길 바란다”고 전했다. 순례단에 참여한 유현민(마르티노·인천교구 해안본당) 씨는 “프란치스코 성인과 아쿠티스 복자는 각자의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복음 선포에 열정을 보였다”면서 “두 성인의 자취가 남아았는 아시시를 순례하면서 우리도 현재의 삶에서 복음을 살아내고 전파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가톨릭 청년으로서 WYD에 참여하면서 두 분의 정신을 이어받아 교회의 주역이 되어 복음화에 힘을 보태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성모대성당에서 포르투갈 청년들과 묵주 기도 순례단은 23일 오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을 순례하고 대성당 인근 산 로렌조 청년센터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산 로렌조 청년센터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4년 WYD 십자가를 만든 후 청년들이 언제나 찾아와 경배하도록 십자가를 맡긴 곳이다. 이날 미사를 주례한 서울대교구 대학교사목부 담당 박민재(미카엘) 신부는 순례단에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의 삶을 살고자 따르는 모든 하느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끄는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WYD 십자가를 우리에게 건네주셨다”면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끄는 이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라는 소명에 함께 응답하자”고 당부했다. 이날 오후 순례단은 로마 성모대성당에서 지난 WYD 개최지였던 포르투갈 청년들과 함께 묵주 기도를 봉헌했다. 성모대성당은 WYD 십자가와 함께 WYD 상징물인 성모 이콘 원본이 있는 곳이다. 2003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젊은이들이 성모님의 모성을 자신들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상징으로, 성모 이콘을 젊은이들에게 선물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해외 사목방문에 나설 때마다 이곳 ‘로마의 구원자 성모’ 이콘 앞에서 기도한다. 이날 묵주 기도회는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 장관 케빈 패럴 추기경이 주례했다. 패럴 추기경은 “십자가와 성모 이콘을 지고 여러분의 여정을 용기 있게 걸어가 달라”면서 “전 세계적 위기, 그리고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와 불확실성으로 고통받고 있는 세상에 이 십자가와 성모 이콘을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우리의 긴 여정을 떠나는 전야에, 성모님께서 당신 품에 예수님을 안으셨던 것과 같이 우리를 안아주시고 전구를 들어주시도록 성모님께 의탁하자”고 덧붙였다. 묵주 기도는 한국어와 영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로 번갈아가며 진행됐다. 묵주 기도를 마친 양국의 청년들은 지난 리스본 WYD 주제곡 ‘서둘러 가보자’를 부르며 신앙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만끽했다. 한국과 포르투갈의 청년들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세계청년대회 개최를 간절히 염원했던 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 WYD 교구대회 준비위원회 위원장 김종강(시몬) 주교, 서울 WYD 지역조직위원회 총괄 코디네이터 이경상(바오로) 주교 등 한국 주교단도 묵주 기도회에 참여했다.

2024-12-01

[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오수연 작가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 어릴 적부터 늘 그림을 그렸어요. 피아노를 치기도 했는데, 그냥 그림이 좋았어요. 어머니께서 여러 성지에 다니셨는데, 저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종이나 땅에 그림을 그렸던 게 기억나요. 중학교에 들어가니 미술반이 있어서 거기에 들어갔어요. 한번은 조각 수업을 했는데, 사람 얼굴을 만드는 시간이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눈을 표현할 때 그냥 평면으로 동그랗게 그렸어요. 그런데 저는 눈을 입체감 있게 동그랗게 파놓았죠. 그걸 보신 선생님께서 저보고 ‘너는 조소과 가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다른 아이들이 눈을 평면으로 표현하는 게 이해가 안 됐어요. 주님께서 제게 보이는 대로 표현하는 탈렌트를 주신 것 같아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계속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 조각을 하게 됐어요. 정대식(마티아) 작가님이 아버지의 오랜 친구셨어요. 정 작가님이 홍대 출신이라 저보고 ‘너는 그냥 홍대 가라’고 하셔서 홍익대 조소과에 들어갔어요. 당시 미대가 몇 군데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갔어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인사동 갤러리를 많이 돌아다녔어요.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어떤 성향인지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는지 많이 보았어요. 아마 작품을 보는 눈도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인 것 같아요. 그림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신나게 그림의 의미를 설명하곤 했죠. 성미술 작가의 길로 대학 졸업 후 미래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했어요. 집안 형편상 유학을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혼자서 방에 콕 처박혀서 밤새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어요. 밤새 촛불을 켜놓고 책을 읽고 작업을 하다가 새벽에 잠에 드는 그런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성모상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어요. 전 누가 부탁을 하면 그냥 들어주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어머니의 부탁에 성모상을 만들었어요. 그날 여느 때처럼 촛불을 켜놓고 성모상과 제 자화상을 만들고는 깜빡 잠이 들었었어요. 잠결에 누군가 제 머리를 강하게 치는 느낌이 들어 일어나니, 제 방 한가운데에 불기둥이 있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미처 끄지 않은 촛불 때문에 방에 불이 난 거였어요. 전 원래 한번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일어나지 못하는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깰 수 있었어요. 부랴부랴 욕실에 가니 우연찮게 욕조에 물이 받아져 있었고 그 물로 불을 껐어요.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죠. 불을 끄고 천천히 보니 신기하게도 성모상은 티 하나 없이 깨끗한데, 제 자화상을 까맣게 그을려 있었어요. 전 그날 일은 주님께서 수호천사를 보내 저를 살려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수원교구 광주본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때였어요. 아는 신부님이 가톨릭미술가회가 있다고 들어오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작가들이 왜 성물을 만들어야 하지 하면서 이해하지 못했어요. 성물은 그냥 만들어진 것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기도하는 도구잖아. 그냥 사면 되지. 왜 작가가 필요해?’라고요. 그만큼 성미술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거죠. 그러다가 당시 수원교구 분당야탑동본당 주임이던 최재용(바르톨로메오) 신부님께서 성당 리모델링을 하면서 저에게 작품을 의뢰하셨어요. 성수대와 한지 유리화였어요. 대학 시절 한지공예 전통기법 중 하나인 ‘꽃일’ 기법을 배웠어요. 한지 위에 글씨나 그림을 그리고, 그 부분을 잘라내 걸어놓는 꽃일 기법은 색다른 아름다움을 전해요. 성당 계단 창과 교리실, 휴게실 창에 설치된 작품들에는 다양한 성모상을 한국적인 모습으로 표현했어요. 최 신부님은 아무 경험이 젊은 작가였던 제게 큰 기회를 주셨어요. 지금도 인사를 드리면 ‘항상 정진하세요’라는 표현으로 응원을 해 주세요. 야탑동성당에서 작업한 게 2005년 즈음이었는데, 이후로는 1년에 한 군데 정도씩은 작업을 했어요. 십자가의 길 14처와 십자고상 등을 꾸준하게 만들어 봉헌했어요. 십자고상을 만들 땐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사실 십자가의 길은 처음에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잘 몰랐어요. 최종태(요셉) 선생님께서 관련 자료를 구해주셔서 그걸 보고 연구하고, 명동대성당이나 다른 성당에 가서 작품들을 많이 보고 묵상하며 만들었어요. 신자들이 보고 기도하는데 방해만 되질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언제나 최선 다하는 성미술 작가 되고파 2014년 세월호 참사 일어나고 아버지께서 그해 가을에 돌아가셨어요. 제 작업실이 안산에 있는데요, 제 작업실 앞으로 등교하던 아이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어요. 중간에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표현한 작품들을 만들어 전시회를 열기도 했지만, 작업을 놓게 되더라고요. 또 어머니께서 중간에 돌아가시고 그렇게 혼자가 됐어요. 2014년 이후로 한 7년 동안은 성미술 작업을 못했어요. 그러다가 2021년 서울대교구 양원성당에 십자고상과 십자가의 길을 봉헌했어요. 여기 십자가의 길에는 제 부모님이 투영돼 있어요.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예수님을 잃은 성모님의 마음으로 투영한 거죠. 양원성당 이후로 작업을 쉬고 있어요. 뒤늦게 짝을 만나 결혼도 했고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누군가 부탁하면 언제나 ‘네’라고 답을 해요. 곧 제 작업을 다시 시작할 거예요. 언제나 기도하는데 도움이 되는 성미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요. ◆오수연(세레나) 작가는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2005년 평화화랑 개인전 등 3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대교구 양원성당 십자고상과 십자가의 길, 묵동성당 십자가의 길을 포함해 다수의 본당에 성미술 작품을 봉헌했다.

2024-12-01

존재마저 거부되는 고통 극복하며 서로에게 ‘용기’ 안겨주는 식구들

존재를 거부당하는 고통만큼 큰 게 있을까. 누군가 뜻 없이 비아냥거린 한마디도 일생 가슴속 빠지지 않는 비수가 되듯, 거부는 그 경중과 상관없이 인간을 벼랑 끝까지도 내모는 십자가다. HIV 감염인들은 거부의 십자가 중에도 가장 무거운 걸 짊어진 이들이다. “불치병을 옮기는 두려운 존재”라는 편견을 감내하는 이들을 위해 성 골롬반 외방 선교 수녀회는 2000년 서울에 ‘새빛공동체’(책임 김계숙 마르티나 수녀) 쉼터를 열어 거주, 건강 회복, 섭생, 사회 복귀를 위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 왔다. 하루하루 죽음으로 기울던 감염인들은 새빛공동체와 만나며 생명을 되찾는 ‘새 빛’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안개 속 드리운 빛줄기 해 뜰 녘 냉기가 채 가시지 않은 11월 20일 늦은 아침, 서울의 어느 인적 뜸한 주택가 골목을 찾았다. 사람의 온기 없이, 안개 낀 날씨에 물들어 더 쓸쓸했다. 한 평범한 가정집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사부작거리는 인기척, 철문이 열리며 쇠붙이끼리 스치는 파열음이 상쾌하게 적막을 깨뜨렸다. 점심을 짓느라 더운 김이 풍기는 부엌에 발을 디뎠다. “우리 쉼터에 어서 오세요~” 새빛공동체 식구들 목소리가 초겨울 공기를 삽시간에 녹였다. 여느 평범한 가족처럼 사람의 온기 가득한 집밥이 차려지고 있었다. 무를 두툼히 썰어 넣은 고등어조림, 주방 담당 식구의 특제 참깨 드레싱에 버무린 샐러드, 도라지가 절반인 오이무침, 따끈한 배춧국, 가지볶음….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며 식사하는 식구들 얼굴에는 미소만이 가득했다. 이렇듯 새빛공동체는 감염인들이 복용하는 약만큼 균형 잡힌 식단에 중요성을 두고 있다. 정상적 영양 섭취는 바이러스로 인해 잃은 건강 회복의 기본이 되기에, 약의 순응도를 높이도록 균형 있는 식단을 제공한다. “밥만 잘 먹이는 게 목적이 아녜요. 식사는 이들이 유대감을 맺는 시간도 돼요.” 김계숙 수녀가 식구들과 커피를 마시러 마당으로 나서며 이야기했다. 김 수녀는 “다른 감염인 쉼터의 경우 각자 알아서 밥을 먹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미 가족, 사회, 벗들로부터 거부당한 그들은 그렇게 한 번 더 고립되기 쉽다. 그와 달리 새빛공동체는 매일 끼니를 함께하며 서로에게 ‘식구(食口)’가 돼준다. “밥을 먹어야 약을 먹죠. 국에 말아서 한 술만 먹어 볼까요? 아~!” 주방 담당 인열(가명) 씨가 몇 주 전 들어온 새 식구 치환(가명) 씨 어깨를 도닥이며 말했다. 바이러스성 치매를 앓는 치환 씨가 용기를 내 몇 술을 떴다. “잘했어요, 이제 커피 한잔해요!” 하며 치환 씨를 데리고 나가는 식구들. 살짝 고개를 내민 해가 여트막이 비추고 있었다. 희망으로 서로 가족 된 사람들 함께 식사하며 정(情) 나눠 검정고시·자격증 취득 등 사회 복귀 도와 ■ 상처 덧들이지 않도록 감염 확진된 그날부터 주어진 ‘거부’의 기억들은 감염인들에게 가장 큰 아픔이다. 직장 등 사회적 관계로부터의 고립은 물론 가족에게서마저 추방당하는 상처다. 김 수녀는 “HIV 바이러스는 일상생활을 통해 전파되지 않음에도 감염인들이 거부만 당하는 것은 가족조차 그들을 ‘불가촉(不可觸)의 죄인’으로 대하는 잘못된 시선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감염인의 침이나 땀은 타인을 감염시키지 않는다. 같은 그릇의 라면을 같이 먹어도 감염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AIDS 환자들이나 감염인은 낙인 때문에, 기존 공동체의 포용 아래 새로운 삶의 기회를 받는 일이 극히 드물다. 감염인들은 집에서 쫓겨나지 않더라도 혼자 철저히 분리된 생활 공간에서 살게 된다. 한 지붕 아래임에도 가족들과 눈도 못 마주치는 사람도 있다. 가족마저 받아주는 공간이 못 됨을 안 감염인들 다수가 가출을 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노숙자가 된다. HIV는 아직 완치될 수는 없어도 규칙적으로 약을 먹고 관리하면 건강히 살 수 있다. 그러나 의사 처방에 의한 철저한 약 복용과 순응도를 높이는 식사를 제대로 못 하면 면역력이 극도로 저하돼 온갖 감염성 질환으로 죽게 된다는 걸 감염인들도 안다. 그저 반복된 거부의 경험으로 그들 또한 스스로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문란하다’는 오해는 감염인들을 벼랑으로 내몬다. 새빛공동체를 다녀간 감염인 중에는 어려서부터 부모나 보호자 없이 사회 밖으로 내몰렸던 이들도 많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 채 주변 환경에 휩쓸려 감염된 이도 있다. 용서를 모르는 사회는 감염인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덧들인다. 극단적 선택을 여러 번 했거나 우울증, 공황장애를 겪는 환자도 많다. 김 수녀는 “누구나 삶 전체를 거부당하면 삶 자체를 거부하고 자책의 늪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라며 “외면받는 감염인들을 위해 그리스도인은 용기의 ‘새 빛’을 안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 ‘새 빛’ 향해 내디디는 걸음 점심 식사 후 식탁에는 가죽 공예 장비들이 놓였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각자 만들던 공예품을 꺼내 바늘과 실, 망치와 끌을 들고 작업에 몰두했다. 식당은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이면 ‘새빛마실’ 교실로 변한다. 식구들은 가죽 공예, 재봉 등 기술을 익히며 자신감을 쌓는다. 새빛공동체는 감염인들의 사회 복귀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검정고시 응시뿐 아니라 각종 자격증 취득 등 자활을 돕는다. 일방적 시혜 대상이 아니라 떳떳한 사회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런 응원에 힘입어 ‘새 빛’을 향해 나아가는 식구가 많다. 열심히 공부해 장례지도사라는 새 삶에 안착한 사람, 미용 자격증이나 중장비 자격증을 취득한 이도 있다. “그래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어요.” 유달리 손재주가 좋은 강수(가명·프란치스코) 씨는 매주 새빛마실 시간에 식구 중 가장 몰두해서 작업한다. 간단한 옷도 만들 줄 알고 패션 감각도 뛰어난 그는 건강과 ‘뷰티’(beauty) 쪽으로 대학교에 편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가 매사에 열정적인 이유는 김 수녀가 늘 말해주듯 “내가 여전히 하느님 안에서 귀하고 사랑받는 사람임”을 알기 때문이다. 강수 씨는 새빛공동체 식구가 된 후, 2014년 방한해 세월호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름으로 세례받았다. 그가 꿈꾸는 ‘새 빛’은 무엇일까. 그는 “하느님이 내게 주신 사랑과 극복을 같은 고통에 있는 이들에게 안겨주는 것뿐”이라고 했다. 새빛공동체는 HIV 감염인 쉼터라는 특성상 비공개로 운영돼 정부 등 여타 기관 도움 없이 수녀회와 소수 후원자의 도움으로만 꾸려가고 있다. 김 수녀는 “아직도 오해에 내몰린 감염인들 안에서 똑같이 거부당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섬기는 노력에 힘을 보태달라”고 전했다. ※ 후원 계좌 : 국민은행 016701-04-016601(예금주 새빛공동체) ※ 문의 : 010-4571-9302(김계숙 수녀)

2024-12-01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폐막…‘새 기후재원’ 목표 설정키로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24일(현지시간) 폐막한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는 ‘행동 촉진(Enabling Action), 의욕 증진(Enhancing Ambition)’을 위해, 새로운 기후재원 목표 설정과 국제탄소시장 운영 기반 조성을 주요 과제로 다루었고, 진통 끝에 두 쟁점 모두 타결에 성공했다. 반면 국내 환경단체들은 이번 총회 결과에 대해 “기후재원을 어떻게 조성하고 제공될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와 합의는 없어 개도국은 말뿐인 ‘기후재원’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따라 한국도 상향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무엇이 합의됐나 환경부와 외교부 등은 25일 공동 보도자료를 내고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폐막한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이하 총회)에서 신규기후재원목표(NCQG) 설정과 국제탄소시장 운영 기반 조성을 주요 과제로 다뤘고, 진통 끝에 두 쟁점 모두 타결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합의에 따르면 이번 총회에서는 국제사회 모든 주체가 2035년까지 연간 1조3억달러(1824조원) 이상을 전 세계적 기후 투자로 확대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 민간 부문을 포함한 모든 행위 주체의 노력을 요청했다. 이 중 연간 3000억달러는 선진국 주도로 조성한다. 이 돈은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국가들의 공공·민간 부문에 걸쳐 매년 현금으로 지원돼 그동안의 피해를 보상하고 앞으로의 대응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2009년에 타결된 기존 목표인 연간 1000억달러에서 3배로 늘어난 금액이다. 또한 국제 탄소시장 세부 운영규칙인 파리협정 제5조가 이행규칙 협상 시작 9년 만에 최종합의에 도달, 국제탄소시장이 작동할 수 있는 기본조건이 모두 갖춰졌다. 주요 내용으로, 국가간 자발적 국제감축 협력사업 및 국제감축실적(ITMOs)의 허가절차, 당사국 보고 내용의 불일치 식별 및 처리방안, 국제등록부 운영 방법 및 추가 기능 등에 대한 추가적인 지침을 마련했다.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해서는 감축 작업 프로그램에 대한 추가 지침이 협상됐다. 특히 올해 논의 주제인 ‘도시: 건물 및 도시 시스템’에 대한 주요 논의 결과를 결정문에 반영함으로써 해당 주제와 관련해 요구되는 전 지구적 감축 노력에 대해 명확한 지침을 제공했다. 반면 ‘UAE 정의로운 전환 작업프로그램’의 실질적인 이행력 강화 방안에 대해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대립 끝에 제시된 결정문 초안에서는 정의로운 전환 경로와 중장기 국가 기후계획 정책 수립의 연계 및 노동자 재교육, 노동권 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국제적 협력과 재정적·기술적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개도국들은 해당 초안이 불균형적임을 지적했고 내년 6월 제62차 이행부속기구회의에서 논의를 지속할 예정이다. “한국 감축목표 국제기준에 못 미쳐” 교황, 국가 간 발생한 ‘생태적 부채’ 지적 교회와 환경단체 메시지 국내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은 이번 총회의 주요 성과와 과제를 분석, 25일 발표했다. 기후솔루션은 한국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을 꼽았다. 기후솔루션은 “현재 한국의 2030년 목표(2018년 대비 40% 감축)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며, 2035년에는 2018년 대비 최소 67%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OECD 회원국들이 논의 중인 화석연료 투자 제한 협정에 한국이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13일 총회에 메시지를 보내 국제 사회가 “인류와 우리의 ‘공동의 집’의 선익을 중심에 두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 보호가 평화와 정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강조해 온 교황은 메시지에서 가난한 나라들의 부채 탕감을 촉구하며 2025년 희년이 “결코 갚을 수 없는 부채를 탕감할 기회”가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교황은 이것이 “관용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로, 북반구는 남반구에 대해 진정한 ‘생태적 부채’를 지고 있다”며 이는 “특정 국가들이 오랫동안 자연 자원을 불균형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교황은 “기후위기와의 싸움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문제가 COP29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라며 기후 재난에 취약한 가난한 국가들을 포함해 모든 나라가 저탄소 개발과 공평한 자원 공유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새로운 국제 금융 구조’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Conference of the Parties) 전 세계가 함께 모여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약속할 수 있는 국제외교회의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처음 개최됐다. 회의에서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들이 모여 협약의 이행을 검토하고 이에 필요한 결정을 내린다. 실제로 주요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합의한 1997년의 ‘교토의정서’, 197개국에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자고 합의한 2015년의 ‘파리협정’은 각각 COP3과 COP21에서 체결됐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황청 대표로 파견된 국무원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을 비롯해 다양한 가톨릭 환경단체와 개발 기구들이 이번 회의에 공식 및 비공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지구 온도 1.5℃ 상승 억제를 위한 탄소배출 감축과 함께 선진국들이 개도국과 저개발국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연간 1000억 달러의 기후 기금을 조성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선진국들이 저개발국의 기후위기 피해에 대해 배상하고 화석연료 사용을 즉각 중지할 것 등을 강조하고 있다.

2024-12-01

“조건 없이 품으시는 하느님 사랑, 서로를 통해 배우고 느끼죠”

다름을 불편해하는 공동체는 끼리끼리 어울리게 마련이다. 그 폐쇄성은 어쩌면 ‘열린 교회 닫힘’이라는 농담처럼 교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에서 2023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2000여 명 응답자 중 33.1%가 교회에서 가장 변해야 하는 문화 중 하나로 ‘신자들 간 끼리끼리 문화’를 꼽았다. 서울대교구 수유동본당(주임 장광재 요아킴 신부)에는 그 닫힌 분위기를 유쾌하게 깨뜨리는 청년 공동체가 있다. 다양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답게 장애, 국적, 신앙, 나이 등 상관없이 누구나 환영하는 청년 공동체 ‘종들의 종’(단장 신명덕 에스텔·지도 신웅 바오로 신부)이다. 다름을 포용할 줄 아는 것만큼 청년다운 열린 감수성은 없지 않을까. 그 감수성을 간직한 단원들은 아무런 불편함 없이 돈독한 친교를 나누고 있었다. 국적·장애·나이 등 장벽 넘어 다양한 청년들 어우러지는 공동체 성경 공부·묵상 나눔으로 믿음 다져 “고유성 포용받는 기쁨 커” ■ 종들의 종 “열린 감수성을 지닌 청년들에게, 성당마저 갈등을 피해 끼리끼리 모이는 공간이 되면 안 되잖아요. 우리가 결국 하나라는 기쁨을 안겨주는 공동체가, 성당에서일수록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갈수록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어우러져 사는 다문화 시대다. 그만큼 갈등의 소지가 되는 것들도 많아지고 있다. 부주임 신웅 신부는 바로 이러한 사목적 문제의식에서 2023년 11월 종들의 종을 창단했다. 그해 9월 본당에 부임한 지 2달 만이었다. 학력, 소득, 세대, 장애·비장애, 인종, 종교 등 사회적 갈등들을 경험하는 서로 다른 청년들이 조건 없이 함께하며, 두루 품으시는 하느님 사랑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게 이끌어주려는 진심이었다. 20대부터 40대까지 26명 단원 중에는 장애를 지닌 청년들, 한국어 소통이 어렵고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도 있다. 신앙이 없어도 종들의 종부터 들어와 교리교육을 받게 된 청년도 8명이나 된다. 단원들은 매 주일 청년미사(오후 6시) 전 다 같이 모여 성경을 함께 읽고 기도를 봉헌한다. 첫째 주는 미사 1시간 전 모여 묵주 기도를 바친다. 둘째 주와 넷째 주는 2시간 전 모여 신 신부와 함께 성경 공부를 하고 이어 나눔의 시간을 갖는다. 셋째 주에는 단원들이 각자 작은 정성을 모아, 청년미사에 참례하는 모든 신자를 위해 말씀 사탕과 함께 선물을 준비한다. 올해 3월(성 요셉 성월)에는 성가정상 키링을, 6월(예수 성심 성월)에는 예수 성심 그림 편지지를, 10월(묵주 기도 성월)에는 참례자 모두를 위해 봉헌 초 140개를 만들어 봉헌했다. 단원들이 돈독한 친교를 맺는 핵심은 무엇보다도 신앙의 근본인 성경을 다 같이 읽고 그 배경을 함께 공부하며, 묵상한 내용을 서로 나누는 데 있다. 말씀을 따라 살고자 노력할수록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핵심인 ‘조건 없는 사랑’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1년 두 차례 떠나는 피정은 서로 사랑과 용기를 심어 주는 장이 된다. 그 안에서 싹트는 마음은 “우리는 하느님의 종이면서 서로를 섬기는 종이기도 해”라는 사랑이다. 그렇기에 종들의 종은 단체에서 직함을 가진 청년들 위주로 움직이지 않는 평등함이 매력이다. 신앙 지식이 적은 예비 신자도,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도 상관없이 모든 단원이 같은 발언권으로 의논하고 공동체를 함께 움직인다. 신명덕 단장은 “누구에게나 부족함이 있고,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부족함을 서로 채워줄 수 있다는 사실을 청년들은 이미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 구별 없이 품는 하느님 “나를 있는 그대로 품으시는 하느님의 숨결이 단원들 덕에 와닿아요.” 황은규(그라시아) 씨에게 청각 장애 3급이라는 ‘개성’은 종들의 종 활동에 아무런 장벽이 되지 않는다. 종들의 종 총무로 소임하는 그는 “편견 없이 나를 믿어주는 단원들 덕분에 단체 활동에도 신앙생활에도 더욱 열심해진다”고 고백했다. 황 씨가 요즘 고백하는 통찰은 “어쩌면 내가 가진 ‘특별함’은 내가 하느님 안에서 나와 다른 청년들과 친교를 맺는 문이 될 수 있겠다”는 묵상이다. 이렇듯 다름이 아무런 장벽이 되지 않는 종들의 종만의 조건 없는 사랑 때문에 단원들은 매 주일 청년미사 전 모임을 손꼽아 기다린다. 단원들은 “구별 없이 품으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한목소리를 모은다. 누구나 특정 기준에서는 소수자가 되기 마련임을 알기에 단원들은 묵상 나눔 시간이면 서로 자신감을 갖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다름 때문에 소극적이었던 장애인 단원들도 종들의 종에 들어오자 모두 활발해지고 취직에도 성공했다. 신 단장은 “회식 때 ‘첫 월급을 탄 기념으로 제가 한턱냅니다’ 하던 한 친구의 꽃다발 같은 미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웃었다. 개신교 신자였다가 가톨릭교회로 입교를 준비 중인 조성재 씨는 “함께 성경 나눔, 묵주 기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실천할 기회가 주어지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랑을 실천하는 기회는 삶에서 많지 않으니 종들의 종이 존재가 더욱 값진 것 아니겠느냐”면서 조 씨는 묵주를 들어보였다. ■ 너와 나의 고유성을 위하여 다름을 존중하기는커녕 배려조차 피곤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종들의 종은 어떤 답을 던져줄 수 있을까. 이탈리아인 단원 에스텔 주앙(Esther Joao) 씨는 “‘너’와 ‘나’의 고유성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주앙 씨는 피부색이 검고 한국어 소통이 어렵지만 “벽을 넘어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그리스도 말씀대로 포용하고 또 포용받는 기쁨이 무진장하다”며 웃었다. 브라질에서 온 마리아 빅토리아(Maria Victoria) 씨가 종들의 종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다름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는 편안한 분위기다. 빅토리아 씨는 “브라질에서는 한국과 달리 다 함께 성체조배를 자주 하는데, 한국 청년들도 다 같이 해봐도 좋을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이렇듯 다름은 단원들의 친교에 장벽이 아니라 다리로 역할하고 있다. 예비신자 진연욱 씨는 통신교리를 이미 마쳤음에도 자청해서 종들의 종에서 교리교육을 다시 받고 있다. 진 씨는 “다른 성당에서 세례를 받을 수 있지만, 본당에서 단원들이 축하해 주는 가운데서 입교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진 씨는 ‘아우구스티노’를 세례명으로 할 것을 고민 중이다. “존재론적으로 깊은 고찰을 했던 성인의 면모가 너와 참 닮은 것 같아”라며 단원들이 추천해 줬기 때문이다. 그는 “모로 가든 내가 하느님을 만난 건 여러분 덕분인 건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씽긋 웃었다. 신 신부는 “이렇듯 ‘다름 안에서의 함께’라는 가치에 목마른 청년들 갈망에 귀 기울이고 그 여정을 동반한다면, 지금도 길 잃고 헤매는 수많은 청년이 가톨릭교회의 문을 두드릴 것이라고 믿는다”고 전했다.

2024-11-24

“그리스도인, 평화 가로막는 장벽 무너뜨리는 데 주저해선 안 돼”

대통령은 ‘힘에 의한 평화’를 천명했고 북한 역시 남북 관계를 민족 관계가 아닌 국가 간 관계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남북한의 대립은 가속화됐다. 남북을 연결하는 경의선과 동해선 비무장지대 일대 구간이 폭파됐고, 오물을 매단 풍선과 비방하는 전단지가 서로 간에 오갔다. 끊어진 길 위에는 미움과 폭력만이 남았다. 남북한 어디에서도 평화를 말하지 않았고 언제였는지 모를 평화를 기억하는 이도 없었다. ‘용서’와 ‘화해’의 가치를 좇는 그리스도인들은 평화가 사라진 지금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화에 대해 침묵해야 할까.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는 11월 15일 주교좌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2024 한반도평화나눔포럼을 열고 교회의 평화 인식을 진단하고, 평화에 대한 희망을 되찾는 자리를 마련했다. ■ 한국교회, 평화 여정에 어떻게 동행했나? ‘한반도 갈등 해소를 위한 교회의 인식’ 세션에서는 한반도 평화 증진이라는 교회적 소명을 실천하기 위해서 ‘어떻게 관찰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지’를 교회 언론이라는 통로를 통해 살펴봤다. 연구자들은 가톨릭신문과 가톨릭평화신문에서 북한을 보도한 전체 기사에 대해 총 50개의 토픽을 추출해 잠재적 디리클레 할당(LDA·문서 텍스트에 단어들이 어떻게 사용(분포)돼 있는지를 관찰해 문서 내 숨어있는 주제 찾아내는 기법) 분석을 수행했다. 북한 관련 보도에서 유의미한 차이는 2010년 이후로 두드러졌다. 남북관계가 급격하게 냉각되면서 교회 언론에서도 북한 문제에 대한 실천 차원의 교회적 관심이 줄어들고 관찰 차원의 교회적 관심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북한 문제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가장 크게 강조되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과 ‘양심’인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교회가 북한 문제를 판단하고 평가하는데 있어서 신앙인의 사명과 의무를 강조하는 데만 집중하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양심)에 호소하는 정서적인 접근을 좀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또한 “평화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제한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개선하고 정의, 발전, 사랑, 연대의 가치를 함께 생각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평가했다. 가톨릭 사제가 바라보는 통일과 교회에 대해서도 살펴봤다. 교회와 신자들을 잇는 가교로서 성직자의 역할이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사제 460명을 대상으로 평화와 통일, 북한에 대한 인식,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대한 태도를 조사했다. 통일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사제의 81.5%는 “통일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일반 국민(43%)보다 두 배가량 높은 수치다. “북한에 대해 협력대상으로 인식한다”는 답변도 89.3%로 일반 국민(56.3%), 천주교 신자(58.9%)보다 높았다. “신자들에게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얼마나 자주 언급하느냐”는 질문에는 “가끔 언급한다”가 56.5%, “그다지 언급하지 않는다”가 29.6%로 과반수를 차지했다. 언급하는 상황은 ‘미사 중 강론’이 81.5%로 가장 많았다. “그다지 언급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제들을 대상으로 이유를 물은 결과 “교우들이 싫어하기 때문에(공동체 분란 우려)”가 45.7%로 가장 높았다. 연구자들은 “사제들의 경우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나 실제 남북관계의 미래에 대한 응답에서는 사제와 일반 국민, 천주교 신자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았다”며 “이는 당위적 차원에서 통일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사제들 사이에서도 구체적인 통일의 모습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들 이상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한반도 평화 위한 교회 역할 모색 북한 문제 판단과 평가 위해서는 신앙인 사명·의무 강조보다 양심에 호소하는 정서적 접근 필요 남북 간 대면 대화 중요성도 강조 ■ 평화를 향했던 여정 독일의 평신도 평화 신학자 유스튼 호븐 박사는 ‘독일 통일의 전제조건으로서의 화해와 가톨릭교회의 역할’에 대해 발표했다. 그 중심에는 평화를 위한 기도가 있었다. 독일이 분단됐던 1980년대 당시 동독 내 복음주의 교회는 기도와 평화 행동을 시작했다. 1982년부터 월요일마다 정기적으로 기도가 계속됐고 복음주의 교회 목사들은 반체제 단체에 속한 사람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1989년 여름에 이르러 시위 군중의 숫자는 크게 늘어나, 수십만이 됐다. 이 평화 기도는 나라 전역으로 퍼졌고 독일 통일의 단초가 됐다. 유스튼 호븐 박사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신자 개개인은 기도 활동을 시작해 이전의 반대 세력들에게 다가갔고 정치인은 화해의 필요성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정치적 영역으로 가져가 민족들 간의 미움을 극복하고 공동의 미래를 건설하고자 했다”며 “가톨릭 주교들과 교황도 나서서 역사적인 적개심을 마주하고 평화의 미래를 위한 가교를 놓는 일을 도왔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반도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분노는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악용될 수 있음을 지적한 유스튼 호븐 박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에 끊임없이 이를 상기시키고 새로운 화해 행동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1968년 설립된 ‘산 에지디오’ 공동체는 소외지역에 관심을 두고 전 세계 70여 개 나라에서 활동하는 가톨릭국제구호단체다. 산 에지디오의 프란치오니 박사는 ‘위기 시나리오 속 산 에지디오 공동체의 경험’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산 에지디오의 평화를 위한 노력을 ‘분쟁의 조정’, ‘사회 내 평화의 문화 촉진’, ‘아시시의 정신과 종교 간의 대화’로 정리했다. 그는 “한 국가 내부의 무력 분쟁 해결을 인접국들로 구성된 지역적 기구에 맡겨버리는 것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며 “이들 인접국들 모두는 각각 이해관계가 있고 분쟁 국가에 의해 중립적으로 인식될 수 없다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약한 도덕적, 영적 인간의 힘을 통해 직접 만나 대화를 시작하는 것, 바로 우정-대화-유연성이 산 에지디오의 평화 창설 노력의 핵심 단어”라고 덧붙였다. 2011년부터 북한 당국과 인도적 협력 및 대화 노력을 시작한 산 에지디오 공동체의 경험을 설명하며 프란치오니 박사가 평화를 향한 여정에서 강조하는 것은 ‘대화’다. 프란치오니 박사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분열 때문에 그리스도교인들이 나라 전체를 고립시키고 있는 벽들을 무너뜨리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신앙의 힘으로 문을 열고 다리를 놓고 희망이 자라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4-11-24

[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김종필 작가

흙의 매력에 빠져 조각의 길로 어릴 적에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사실 그 전까지는 조소라는 걸 잘 몰랐어요. 학원에서도 조소를 가르치는 곳도 없었고요. 접할 기회가 없었던 거죠. 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술교육과에 입학했어요. 대학에서는 여러 미술 장르에 대해서 배우는데, 그때 처음으로 조소를 접했어요. 흙으로 빚어 조형물을 만드는 이 작업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제가 지금까지 했던 평면 작업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매력을 느꼈어요. 처음에는 사범대학에 다녔으니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학교 선배들도 대부분 임용고사를 치르고 학교 선생님이 됐어요. 그런데 조소를 접하고 나서는 ‘이걸로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 4학년 때까지도 임용고사를 볼 준비를 했는데, 그때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일반대학원에서 조각을 전문적으로 더 배웠어요. 대학원 교육은 대체로 도제식으로 가르치는데, 은사님께서는 점토로 인물을 만드는 소조를 하셨어요. 저고 그렇게 소조의 맛을 들이게 된 거죠. 대학원을 졸업하고는 대형 공공조각 프로젝트를 몇 개 맡았어요. 사실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팔아 생활하기는 어렵잖아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조형물 프로젝트를 종종 맡을 수 있었어요. 학교에서 강사를 하면서 뭔가 목돈이 필요할 때 쯤엔 공공 프로젝트를 맡았어요. 하느님의 섭리인가 싶을 정도로요. 그러면서도 꾸준히 제 작품을 만들고 전시회를 열었어요. 경제적으로 큰 도움은 안 되었지만 전시회에서 제 소품 작품을 사주시는 분들을 보면 굉장히 힘이 났어요. ‘아 내 작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시는구나’ 하고요. 이걸 계속 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어요. 성미술 전문작가의 길로 제가 태어난 곳은 전북의 한 교우촌이었어요. 아주 어릴 적 대전으로 이사를 와서 많은 기억이 없지만, 마을 가운데에 공소가 있었어요. 신앙을 가지신 부모님 덕에 하느님을 알게 됐죠.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성당은 제 놀이터였어요. 친구들과 놀러도 가고 공부하러도 가고요. 그러면서 성당에 있는 성미술 작품에 노출이 돼 있었나 봐요. 항상 성미술 작품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조각을 하다 보니 저도 만들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조각을 하면서 인체를 다뤘으니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만들어 보니 그냥 단순히 만들면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공부도 많이 하고 묵상도 많이 해야했어요. 성미술 작품은 굉장히 어렵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처음 만든 성미술 작품은 제가 다니던 대전교구 문창동성당 성모상이었어요. 성당에 조그마한 파티마 성모동굴을 조성했는데, 본당 신부님께서 저보고 만들어보라고 하셨어요. 다른 파티마 성모상을 흉내 내서 만들었는데, 만들면서 성모상마다 다 양식이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됐어요. 문창동성당 성모상 제작 이후, 대전교구 성령쇄신봉사회 새얼센터에 십자가의 길 14처를 봉헌하면서 교회미술 전문작가로 전향하게 됐어요. 십자가의 길을 처음 만들어서 잘 모르기 때문에 굉장히 연구를 많이 했어요. 각 처에 관한 묵상도 많이 하고요. 그러면서 십자가의 길은 14처 모두가 역작처럼 하나의 작품이지만, 각 처가 각각 하나의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한 점 한 점에 나를 쏟아부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요. 복음에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를 주제로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면 내가 평생을 해도 이걸 다 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게 성미술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어요.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도움 되는 작품 만들고 파 성미술 작업을 전문적으로 하면서 다행스럽게도 계속 일이 들어오고 있어요. 최근에는 진상성지에서 작업을 했어요. 야외 십자가의 길과 성당 십자가의 길과 십자고상을 설치했어요. 주중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말에 대전 집 근처에 있는 금산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해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요. 항상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주로 십자가의 길을 작업하는데 똑같은 작품을 설치하면 안 되잖아요. 새로운 것에 대한 작가로서의 갈증도 있고요. 제가 우선으로 두는 것은 신자들이 기도하는 데 분심이 들게 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에요. 제 작품이 도구가 돼 조금이라도 신앙을 두텁게 하는 데에 일조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기쁘고 보람을 느껴요. 작업을 하며 ‘예수님은 어떤 기분이셨을까’를 공감해야 하기에 이러한 스스로도 신앙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 밑거름이 되고 있어요. 작품을 하면서 성경도 일고, 조금이라도 깊게 되새겨보기 위해 묵상하고요. 요즘엔 성지 등을 다녀보면 훌륭하게 좋은 작품들로 잘 꾸며놓은 게 느껴져요. 어떨 때 제가 작품을 보고 감동하고 더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작가들이 고민한 흔적들이 보이는 거죠. 그래도 더 많은 젊은 작가들이 교회미술, 성미술 작업에 참여하면 좋겠어요. 많은 분들이 참여하면 지금보다도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요? ◆ 김종필(라파엘) 작가는 1970년 전북에서 태어났다.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한남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앵베르센터 옥상정원 십자가의 길과 솔뫼성지 야외 십자가의 길, 갈매못순교성지 십자가의 길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을 교회에 봉헌했다. 현재 한남대 사범대학 교수로 활동하며 성미술활동을 하고 있다. 2016년 제20회 가톨릭미술상 조각부문 본상을 받았다.

202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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