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진리를 찾는 진실한 사람, 바르톨로메오

철학과 예술이 발달했던 아테네에서 거지꼴을 한 노인이 거리에서 큰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노인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다. “당신들은 무엇을 하며 사는가?”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을 표현했다. 부자나 관리, 유명 인사가 되겠다고 자신의 꿈들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노인은 “돼지가 되어 즐기기보다는 사람이 되어 슬퍼하겠네. 사람은 먹기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하여 먹는 것이니까”라고 했다.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큰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노인의 이름은 소크라테스였다.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그에게 찾아왔다. 그때마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부패한 정치가와 학자들을 비판하며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그는 항상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아테네 정부는 청년들을 미혹하고 국가에 해를 끼친다는 죄목으로 소크라테스를 체포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그의 제자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죄 없이 죽는 것이 억울해 그를 탈출시키려 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사형을 받아들였다. 교회의 오랜 전승은 바르톨로메오와 나타나엘을 같은 인물이라 여긴다. 사도의 명단에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는 항상 같이 짝을 이룬다. 실제로 필립보는 나타나엘의 친구였고 나타나엘을 예수님에게 소개했다. 필립보는 예수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바로 친구 나타나엘을 찾아가서 참 예언자를 찾았다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자렛 출신이란 말을 들은 나타나엘은 멈칫한다. 나자렛은 성경에 언급된 중요한 곳이 아닌 시골 마을이었다. 그러자 필립보는 그래도 친구를 예수님께 데려갔다. 예수님은 나타나엘을 보자 “이 사람이야말로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라고 했다. 나타나엘은 첫 만남에서 예수님의 신비한 매력에 빠져 제자가 된다. 그리고 ‘톨로메오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바르톨로메오라고 불리게 되었다. 성서에 관한 많은 지식을 가진 경건한 사람인 바르톨로메오는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메시아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던 인물이다. 예수님이 언급한 참다운 이스라엘 사람이란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사람이고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의구심을 품었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의 편견을 버리고 신앙의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사실 편견이나 선입견을 극복하기가 어렵다. 많이 알수록 새로운 진리를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완고함이 자리잡고 있기 마련이다. 전승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는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전교하다가 순교했다. 그는 칼로 가죽이 벗겨지고 참수를 당했다. 그래서 칼은 바르톨로메오 사도 성화의 상징이다.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평생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위해 죽었던 진실한 사람이었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열혈당원이었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시몬

독립운동가 중에서 이봉창 의사(1900-1932년)는 처음으로 일본의 심장, 도쿄에서 일왕에게 폭탄을 던져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한국인의 용기를 드러낸 인물이다. 오사카에서 철공소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우리나라 국민들의 어려운 생활이 일본인의 식민정책에 연유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그는 1931년에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스스로 찾아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드디어 1931년 12월 13일 이봉창 의사는 양손에 수류탄을 든 채 애국선서식과 마지막 사진을 남겼다. 슬퍼하는 김구 선생을 오히려 위로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봉창 의사는 사전답사를 하고 1932년 1월 8일 도쿄 경시청에서 히로히토 일왕이 탄 마차에 수류탄을 던졌는데 히로히토를 명중시키지 못하고 체포되고 말았다. 이봉창 의사의 거사가 알려지자 특히 중국 신문들은 한국 청년 이봉창이 모든 중국인의 간절한 의사를 대변하였다고 대서특필했다. 이후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에게 호감을 갖게 되어 독립투사의 활동을 은연중에 많이 돕게 됐다. 1932년 10월 10일 일본 경찰이 둘러싼 가운데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이봉창 의사의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이봉창 의사는 체포부터 심문, 재판, 심지어 교수형 직전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여유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예수님의 제자 명단에 열혈당원 시몬(마태 10,4)이 등장한다. 열혈당은 극단적인 유다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모임으로 우상숭배와 배교, 율법적인 죄에 대한 하느님의 의로운 진노와 심판의 대행자로서 하느님께 헌신한 자들이다. 열혈당원들은 하느님만이 그들의 왕이고 로마인들에 대한 세금 납부도 하느님께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설명해서 대부분은 현대의 테러리스트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타협적인’ 유다인들에 대해서는 약탈, 살인을 저지르는 공격을 감행하였다. 서기 70년 열혈당은 로마에 대항에 반란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런데 열혈당원 시몬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감화되어 제자가 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성 시몬은 이집트에서 설교하였다. 시몬은 톱으로 육신이 두 동강이 나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성화에서 시몬을 톱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는 까닭이다. 예수님과 열혈당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인간에 대한 태도 속에 있다. 열혈당은 율법을 어기는 자를 엄단하는 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새 율법을 선포하셨다.(루카 6, 27-36 참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그리스도인 행동의 중심이며 규준이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이웃 사랑의 모범이었다.(루카 10,30-37 참조) 폭력은 다시 폭력을 낳지만 진정한 사랑과 화해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현실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진리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03-23 제3434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마지막까지도 사랑을 설교했던 사랑의 사도 요한

서울 성북동의 고즈넉한 언덕에 유명한 길상사가 있다. 본래는 대원각(大苑閣)이란 이름의 건물이었다. 주인이었던 김영한 선생은 평생을 한 사람만을 사랑했다. 그녀는 20살 때 23살의 청년 시인 백석(白石) 백기연을 만났다. 젊은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졌고 서로 똑똑해서 대화도 정말 잘 통했다. 백석은 그녀에게 자야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그러나 백석의 집안에서 기생(妓生)인 자야를 반기지 않았다. 백석은 자야와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만주로 도망하기로 했지만 자야가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는 천재인 백석의 앞길을 자신 때문에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백석은 6·25전쟁 후 사회주의자로 북쪽에 머물며 문학의 꿈을 펼치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공산당의 압력으로 결혼하고 가정을 이뤘다. 그 소식을 들은 자야는 마음이 아팠지만 자신의 사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30여 년 전 1000억 원(지금은 적어도 2500억 원 이상)을 법정 스님께 조건 없이 봉헌했다. 평생 한 남자만을 사랑했던 자야는 기자들에게 “돈 1000억 원은 백석의 시 한 줄 값도 안 된다”며 백석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백석이 자야와의 이별의 심정을 담은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교과서에도 실렸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사랑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도는 요한이다. 요한은 주님께 특별히 사랑받던 제자였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 요한에게 성모님을 모시도록 했다.(요한 19,26-27) 이후 전승에는 요한이 오래도록 에페소에서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에페소에 도착한 요한과 성모 마리아를 위해 에페소 신자들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지금도 에페소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성모님의 집은 전 세계 순례자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후 죄인들의 손에 잡혔을 때 사랑받던 제자 요한도 무서워 떨며 도망쳤다. 그러나 다음날 예수님이 처형당하는 십자가 밑으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을 데리고 다가갔다. 그는 십자가 밑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스승의 임종을 지키며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슴 깊이 새겼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요한은 늘 “자녀들이여, 서로 사랑하시오”라며 사랑을 역설했다고 한다. 요한은 하느님의 아들인 스승이 살고 가르쳤던 가장 중요한 정수(精髓)가 사랑이라 몸소 체험한 인물이었다. 사랑은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지만 인간 삶의 최고 가치임이 틀림없다. 하느님을 표현할 때도 사랑 자체라고 하는 이유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03-16 제3433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도 바오로의 회심

‘1654년 11월 23일 밤의 회심’이라 불리는 파스칼(1623-1662)의 초월적인 체험은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는 말을 남긴 유명한 철학자 파스칼은 39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인류에 남긴 영적 유산은 무척 크다. 파스칼은 11세 때 이미 ‘음향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썼고, 16세 때 유명한 수학 논문을 발표했던 천재였다. 현재 사용하는 컴퓨터의 전신인 전자계산기를 발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회개 사건은 하느님의 세례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이 초월적인 체험 이후로 파스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는 쾌락에 빠진 방탕한 생활을 완전히 끊고 신앙을 생활의 신조로 삼는 그야말로 새사람이 되었다. 그는 회심한 후 매우 어렵게 지내면서도 가난한 이웃을 돌보았고 그리스도에 관한 글을 계속 저술했는데, 파스칼의 사후에 이런 그의 글들을 엮어 출간된 책이 바로 「팡세」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인간은 악과 비참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인간마다 마음속에 공백이 있는데, 이 공백은 다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본래 이름이 사울이었던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그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율법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울은 그리스도교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복종하고 지키는 것이 바로 구원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사울은 각지로 흩어진 이단자들인 그리스도교인을 잡으러 다마스쿠스로 떠난다. 사울이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였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소리를 들었다.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사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다. 그 이후 눈이 보이지 않는 등 우여곡절 끝에 그는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 태어난다.(사도 9장 참조) 세례를 받은 후 그는 바오로라 불려지고 온 세계를 무대로 선교사업을 하는 데에 맹활약했다. 그 후의 바오로는 온갖 박해를 무릅쓰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사도가 되었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 다음으로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큰 영향을 끼쳤고 사도 베드로와 두 기둥을 이루는 초대 그리스도교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적인 신학, 그리스도론, 교회론 등의 이론을 세운 그는 그리스도의 박해자에서 열렬한 추종자로, 이방인의 사도로 변모했다. 끝내 순교자로서 삶을 마감한 그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이다. 우리도 가끔 다른 이들에게 잘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체험을 할 때가 있다. 이 순간이 바로 우리가 회심해야 할 시간으로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기도해야 한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03-09 제3432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예수님께 베드로를 소개한 동생 안드레아

예전에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님과 함께 그리스 성지를 순례할 때였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파트라이 지역에 가까워지자, 옆에 앉은 염 추기경님은 많이 상기한 듯 보였고 눈가엔 이슬이 살짝 비쳤다. 전승에 따르면 안드레아 사도는 파트라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 도시에 들어서자, 곳곳에 많은 X자 모양의 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안드레아 사도가 스승과 같은 십자가에 못 박힐 자격이 없다고 X자 모양의 십자가에 묶여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X자 모양의 십자가는 ‘성 안드레아 십자가’로 알려져 있다. 염 추기경님은 어두운 성당에 무릎을 꿇고 한참 동안 말없이 기도하셨다. 밖에 나오면서 평소에는 감정을 잘 안 드러내는 염 추기경은 눈가가 촉촉해져 “여기를 평생에 꼭 한번 오고 싶었어. 이제야 오게 된 것이 참 미안하고 감사해”하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 본래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다가 357년 콘스탄티우스 2세 때 아카이아 지역의 파트라이로 옮겨졌다. 그 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콘스탄티노스 11세의 동생이 1461년 로마로 망명하면서 안드레아의 유해 중 머리를 로마에 가져왔다. 비오 2세 교황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드레아의 머리를 봉안했다. 그런데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정교회와의 공존과 화해를 위해 다시 그리스 파트라이로 반환했다. 안드레아는 순교 이후에도 유해가 여러 곳에 옮겨 다니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 안드레아 사도는 형제인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의 첫 제자이다. 안드레아는 어떻게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고 고백했을까? 안드레아는 본래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 예수님은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받으셨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라고 증언하였다.(요한 1,29-33 참조) 다음날 세례자 요한이 두 제자와 함께 있다가 예수님이 보이자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하자 두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갔다. 다음날 안드레아는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가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소’하며 형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갔다.(요한 1,35-42 참조) 안드레아는 형 베드로와는 다르게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이었고 뒤에서 보조자의 역할, 대중과 주님, 이방인과 주님, 제자들과 주님을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잘 실행했다. 안드레아는 5000명을 먹이신 기적에서 예수님에게 한 어린이가 가져온 보리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져와 기적의 발판을 마련했고(요한 6,8), 그리스 출신의 이방인들에게 다가가 스승을 방문하도록 조치했다.(요한 12,22) 제자들을 대표해 안드레아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과 함께 따로 예수님이 챙기는 사도단에서도 신임이 높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언제나 사도단에서 겸손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던 인물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03-02 제3431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주님에 대한 사랑이 바위처럼 단단했던 베드로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은 중요한 가톨릭 성지 가운데 하나이며, 로마 여행의 랜드마크가 된 곳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종교와 예술, 역사가 어우러진 세계적인 순례 장소요 박물관이다. 교회에 따르면, 기원후 67년에 순교한 로마의 초대 주교인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대성당이 건립됐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4세기이래 같은 장소에 있었는데 현재의 대성당 건설은 1506년 4월 18일 시작되어 한 세기 넘는 공사 끝에 1626년 완료되었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돌’ 또는 ‘바위’를 뜻하는 ‘페트라’(petra)에서 유래했다.(마태 16,18 참조) 성 베드로는 순교 때 스승과 같을 수 없으므로 머리를 아래로 두고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유해는 바티카누스 언덕 위의 이교도와 그리스도인의 공동묘지 장소에 매장되었다. 1950년 12월 23일 비오 12세 교황은 전 세계에 성 베드로의 무덤을 발굴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실 아래 구역을 조사하며 10여 년을 탐구하여 이룬 기적과 같은 성과였다. 서슬 시퍼런 군인들이 주님을 잡아가자,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의 길을 찾았다. 그마나 수석 제자였던 베드로는 멀찍이 서서 잡히신 예수님의 동태를 살폈다. 그마저도 자신을 알아본 한 여종이 소리를 치자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시치미를 뗐다. 죄의식에 못 이겨 베드로는 혼자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저기 잡힌 예수의 제자이다. 나도 잡아 죽여라!’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심신이 약한 인간이다. 그런데 죽은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왕성한 가운데 갈릴래아에서 물질을 하던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셨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섭섭한 마음이나 질책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주님을 만난 베드로는 더욱 몸 둘 바를 몰라 어쩔 줄을 몰랐다. 주님이 하신 첫마디는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였다. 베드로는 “예”라고 대답했지만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자 베드로는 세 번 배반한 생각이 들어 슬퍼졌다. 베드로는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주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사실 베드로는 결점도 많고 우유부단했지만, 바위처럼 우직한 사람이었다. 주님은 능력이 출중한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를 대표로 세우셨다. 주님에 대한 베드로의 사랑이 순수하고 컸던 이유이다. 예전에 일상처럼 호숫가에서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고 있을 때 주님은 그들 곁으로 다가오셔서 부르셨다. “나를 따라오시오. 그러면 저 큰 세상에 나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해주겠소.” 이후 베드로는 오순절 날 성령을 받은 후(사도 2장 참조) 그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베드로는 정말 주님이 원하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지금도 많은 이들을 구원의 낚싯대로 끌어올리고 있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02-23 제3430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예수님의 여정에 끝까지 함께 여성 제자들

여자대장부로 불리는 복자 강완숙(골룸바)는 한국천주교회사에서 그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역할이 컸다. 강완숙은 결혼 후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고 책을 얻어 읽는 가운데 그리스도교 신앙에 이끌렸다. 강완숙은 신앙에 대한 열정으로 교리를 실천해 나갔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국교회의 초석을 세우는데 노력했다. 1791년 신해박해 때는 신자들의 옥바라지를 하다 자신도 옥에 갇히기도 했다. 1794년 말 주문모(야고보)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은 강완숙은 모든 교회의 대표인 ‘여회장’으로 임명됐다. 당시의 양반사회에서는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강완숙은 전교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고 1801년 신유박해 때 강완숙은 같은 신자의 고발로 관가에 잡혀갔다. 관리들은 주문모 신부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그녀에게 여섯 차례나 혹독한 형벌을 가했지만 강완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포졸들은 그의 어린 아들을 끌고 와 거적을 씌우고 매질을 하기도 했다. 강완숙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배교하지 않았다. 회유를 포기한 관리는 1801년 7월 2일 서소문 형장에서 강완숙을 참수했다. 그의 나이 40세였다. 여성 사도, 여성 제자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신약성경에는 여성 제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의 초기 복음 선포부터 많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름도 언급되는 분들도 있고 대부분은 익명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열두 사도 못지않게 예수님의 선교사업을 지지하고 도와준 여성들은 실제 여성 제자라 할 수 있다. 그 중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도 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초기 몇 년 동안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다. 당대에 여성의 역할이 경시되었던 측면도 있다고 본다. 성모님은 예수님과 늘 함께 계셨고 예수님께서 임종하실 때 마리아를 제자들에게 교회의 어머니로 내주셨다.(요한 19,25-27 참조). 2016년 6월 3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령 「사도들의 사도」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를 열두 사도와 같은 반열에 올리며 ‘사도들을 위한 사도’라 말했다. 교황은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마지막까지 따랐고 ‘죽음의 장소인 묘지에서 생명을 선포했다’고 강조했다. 그밖에도 익명의 많은 여성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하면서 초기부터 교회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남성 제자들이 도망친 상황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까지 가서 함께했다. “백인대장과 또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이들이 지진과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며,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하고 말하였다. 거기에는 많은 여자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이들이다.”(마태 27,54-55) 현대의 교회도 여성의 활동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반박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여성의 역할이 기대된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02-16 제3429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사람 낚는 어부, 첫 번째로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

성경에서 첫 번째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제자들의 직업은 어부(漁夫)였다. 성경에는 물고기가 나오는 대목이 많다. 구약성경에서 인간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로 비유된다. 손으로 물건 만드는 것을 업(業)으로 하는 장인(匠人)처럼 어부의 사회적 지위는 전통적으로 매우 낮았다. 잡은 물고기들은 지금처럼 큰 것과 작은 것, 흔한 것과 희귀한 것, 깨끗한 것과 부정한 것 등을 구분하여 말리거나 소금에 절여 가공한 후 시장에 팔거나 외국에 수출했다. 예수님 시대의 모든 종류의 상업은 로마 제국의 엄격한 법률에 따라야 했다. 세금 징수자들은 잡힌 물고기를 보고 세금을 부과했다. 예수님 시대에 랍비나 레위인이나 제사장 중에도 어부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물품 수요가 많아지면서 어부들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많이 변하게 되었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과거에 멸시받던 직업이 많은 이들이 원하는 직업으로 바뀌는 경우는 많다. 물고기는 유다인들의 주요한 음식물이었고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다.(레위 11,9-12 참조) 첫 번째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던 제자들의 직업은 어부이다. 그 당시 일꾼들을 고용하고 있는 것을 보아 아주 가난하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마르 1,20-29 참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을 물고기에 비유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9) 죄의 바다에서 사람을 낚는 것은 구원과 심판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부르심은 성경에서 가장 일반화된 단어 중 하나로 많은 경우 하느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신약에서 부르심이란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되어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응답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의 선포와 성령의 증언을 통해 죄인들을 회개시키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목적을 지닌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특별히 물고기와 깊은 관계를 지닌다. 스승의 십자가형을 확인한 후 많은 제자들은 허탈하게 고향으로 돌아가 본래 직업인 어부로 활동했다. 물고기를 잡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던져 고기를 많이 잡은 후 주님을 비로소 알아보는 장면이 있다.(요한 21,6-7 참조) 초대교회에서 물고기는 구원을 가져오는 그리스도의 상징이었다. 오늘날 이 시간에 주님은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신다. 나는 매일 무엇을 낚고 있는가?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배와 그물, 심지어 부모도 버리고 따랐다. 성경의 언급처럼 즉시 따랐을까? 주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따라나섰을까? 꼭 모두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고 많이 망설였으리라 추측해 본다. 또한 다른 개인적 욕심을 지니고 따른 이들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시간이 흐르며 완성으로 다가간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02-09 제3428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믿음으로 예수님께 치유받은 나병환자

한센병(나병)의 아버지로 살았던 이경재 신부님(알렉산델, 1926~1998)님은 ‘성 라자로마을’을 만들었다. 구약시대 나병은 하느님이 주는 천벌로 여겨졌다. 나병환자를 문둥이라고 한 것은 우리나라 남쪽 지방의 욕설이었다. 이 신부님은 40여 년 동안 나환우에 대한 봉사로 자신의 모든 삶을 바쳤다. 신학생 때 다른 신학생들과 성 라자로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신부님이 미사 때 우리 신학생들에게 하신 강론 말씀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나환우들의 진짜 고통은 손이 문드러지고 발가락이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로부터, 공동체와 격리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천벌을 받은 사람처럼 자신의 모습을 숨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고통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경영하시던 토기공장이 일감이 없어 한가하던 겨울, 수십 명의 사람이 얼굴을 꽁꽁 가린 채 한동안 머물다 밤중에 몰래 어딘가로 가는 것을 여러 번 봤다. 나중에 그들이 나병환자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공장에 머무는 동안 근처에 사람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슬픈 일이다. 나병환자들과 16년간 동고동락하면서 사목했고 결국은 나병환자가 된 성 다미안 신부님은 나병에 걸리고 나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나병의 고통을 통해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병이 아니었으면 하느님을 이처럼 절박하게 뵙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저에게 나병을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유다 사회에서 나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한 자로 공동체를 떠나 혼자 살아야 했다. 성경에서 나병은 하느님이 벌을 내린 큰 재앙으로 간주되었다.(레위기 13장 참조) 현재는 치료가 가능한 병이 되었고 나병환자도 많이 줄었지만, 예전에는 나병에 걸리면 사회적으로 철저히 고립됐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몸이 썩어 들어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거부감을 일으키게 했다. 그러나 나병환자가 치료되면 사제에게 나아가 일주일 동안 관찰을 받고, 사제로부터 치료가 되었다는 판정을 받고 정한 제물을 봉헌한 후 다시 공동체로 복귀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시며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셨다.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했다. 그는 “스승님께서 하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며 치유를 청했다.(마르 1,40-45 참조)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고쳐주셨고 사제에게 가서 깨끗해진 것을 보이라고 하셨다. 성경의 치유 이야기들은 환자가 먼저 예수님께 다가오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에 부르시는 장면에서는 항상 주도권이 주님께 있다. 가족과의 접촉마저 금지되었던 나병환자에게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셨고 그를 공동체로 다시 돌아가게 했다는 것은 구원의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치유를 행하시고 자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말씀하셨다. 즉 믿음이 치유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믿음을 청하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 까닭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01-26 제3427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하느님께 희망을 안고 기다린 신앙인, 엘리사벳

세계 어린이들의 친구인, ‘미키 마우스’를 창조한 월트 디즈니(Walt Disney, 1901-1966)는 창고에서 어렵게 지내던 시절에 쥐를 모델로 미키 마우스를 창조했다. 디즈니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프랑스로 건너갔는데 미술관에서 많은 명화를 보았다. 이 체험은 훗날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전쟁 후 미국으로 돌아와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19세에 동료들과 낡은 창고를 빌려 만화사를 설립했다. 1919년 처음으로 만화영화를 만든 디즈니는 계속해서 만화영화를 제작했지만, 대공황으로 그의 회사는 한순간에 도산하고 말았다. 디즈니는 더러운 창고에서 지내면서도 사업을 구상하는데 몰두했다. 심심한 디즈니는 창고에 들어오는 쥐들에게 빵부스러기를 던져주었는데 한 마리가 유독 디즈니와 친해졌고 ‘모티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27세가 되던 해 빈털터리의 디즈니는 할리우드로 향하는 기차에서 아내와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모티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꺼리는 동물인 쥐를 유쾌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로 만드는 기발한 발상을 했다. 처음 이름은 ‘모티마 마우스’였는데 그의 아내 릴리안이 미키가 좋겠다고 해서 ‘미키마우스’가 탄생했다. 디즈니는 만화영화 <미키 마우스>를 제작했고 그 결과는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계속해서 디즈니랜드를 세워 오늘까지 미국의 대표적 명소가 되었다. 월트 디즈니는 나락에 떨어지고도 계속해서 기회를 기다리며 노력을 통해 끝내 성공을 거둔 인물이었다. 성모 마리아의 친척이자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은 한마디로 기다림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엘리사벳은 늦은 나이에도 아이를 갖지 못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자녀가 없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제약을 받는 치명적인 결함이 되었다. 엘리사벳은 하느님의 은총을 기다리며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람이 믿음을 갖고 진심으로 기도하면 하늘에 닿는다는 말처럼 기적처럼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로 늙은 나이에 자녀를 잉태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하느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도 천사를 보내시어 인류의 구원을 약속하셨다. 마리아는 임신을 한 후 며칠 동안 험한 산길을 걸어 엘리사벳을 찾았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이라고 칭송한다. 엘리사벳은 오랫동안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응답을 기다렸던 인물이다. 믿음의 기다림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할 때 즉시 응답이 없으면 실망하고 포기하기도 한다. 특히 고통의 삶이 지속될 때 우리는 신앙이 뿌리째 흔들린다. 엘리사벳은 하느님은 언젠가 우리의 기도에 꼭 응답하신다는 것을 증거한 인물이다. 신앙은 희망으로 이어지고 사랑은 열매를 맺는다. 엘리사벳의 삶은 아무리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어도 하느님께 희망을 안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01-19 제3426호 18면
기사 더보기더보기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