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한국에 꽃피운 가르멜 영성 놀라워”

“가르멜 영성이 한국에서 꽃피울 수 있게 도와주신 한국교회 모든 구성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이젠 새로운 50년, 가르멜 영성이 이곳과 아시아에 어떻게 더 잘 스며들 수 있을까 고민할 차례네요.” 가르멜 수도회 한국 진출 50주년을 맞아 방한한 로마 총본부 총장 미겔 마르케스(Miguel Márquez) 신부는 10월 8일 기자들과 만남에서 아시아 선교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다. 세계 가르멜 수도회를 총괄하는 만큼 방한 일정 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그래도 이날만큼은 인터뷰 후 시간을 내 서울을 둘러볼 예정이라며 웃어 보였다. 미겔 신부는 한국에 가르멜 영성이 자리 잡은 것 자체가 놀랍다고 했다. 미겔 신부는 “500여년 전인 16세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로부터 시작된 수도회가 지구 반대편 전혀 다른 문화권인 한국에 꽃피웠다는 건 인상 깊은 경험”이라고 했다. 인간 존엄에 대한 고민과 성찰 가르멜 영성과 동양 종교 닮아 “한국교회, 아시아 선교의 발판” 미겔 신부는 가르멜 영성이 한국에 통한 비결로 동양 종교와의 유사점을 짚었다. “불교와 유교가 인간의 깊은 내면세계에 대해 성찰하고 인간 존엄성에 대해 던지는 다양한 메시지는 가르멜 신비가들이 말해 온 ‘인간에 대한 존중’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면서 “더불어 인간의 신비적 측면에 대한 탐구는 문화와 종교를 넘어선 공통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유사점 덕에 아시아에도 우리 영성이 잘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필리핀교회와 함께 그 모범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에 50주년이 더 의미 깊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한국 가르멜 선교 사명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미겔 신부는 “중국 선교에 교회 관심이 큰데, 한국 가르멜은 전부터 중국 선교를 위한 발판을 마련해오고 있다”며 “한국은 우리의 카리스마를 아시아 전역에 전할 수 있는 좋은 못자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새로운 50년은 가르멜 공동체가 침묵과 관상뿐 아니라 적극적인 선교 사명을 지님을 확인하고 보편 교회 안에서 실현해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또 선교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하느님과의 체험 나누기’라고 강조했다. 미겔 신부는 “침묵과 관상으로 하느님과 깊은 내적 만남을 갖고, 또 다른 공동체 형제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느님 안에서 ‘우정’을 나누는 것이 시작이다”라며 “이 체험을 다른 이에게도 전하는 게 선교”라고 말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 체험을 여러 지역 교회에 나누는 것이 우리 가르멜 선교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에 더해 선교의 주인공은 선교사가 아니라 하느님이고, 선교사들은 하느님의 협력자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죠.”

2024-10-20

“누군가를 돕고 벅찬 감동 느끼면, 봉사 계속하게 되죠”

“신부님들이 영혼의 아픔을 치료하듯, 육신의 병을 치료하는 게 의료인의 소명이잖아요. 하느님께서 저를 그렇게 부르셨다는 또렷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돕지 못하는 사람들을 낫게 하는 일에 열정적이 된 것 같아요.” 무료병원 요셉의원 고영초(가시미로) 병원장은 저소득 주민, 노숙인, 이주노동자 등 의료 사각지대 환자들을 위해 지난 51년간 의료봉사를 계속해 온 공로로 제36회 아산상 의료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돼 11월 25일 수상을 앞두고 있다. 고 병원장은 신경외과 전문의로 근무하며 주말, 밤까지 틈나는 대로 의료봉사를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그간 돌본 의료 사각지대 환자만 해도 3만여 명이다. 반 백년을 넘는 시간 자신을 내던지듯 봉사에 임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일까. 혹자들은 특권처럼 휘두르는 의료인의 탤런트를 어떻게 오롯이 나눔에 바칠 수 있었을까. 고 병원장은 “내가 먼저 조건 없이 섬김받아 보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기꺼이 섬기는 기쁨에 눈뜨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꼬마 시절 시위대에 휩쓸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었던 적이 있어요. 고립무원한 제게 한 낯선 분이 다가와 자기 하숙방에 데려가 씻겨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아침에 집에까지 데려다주셨죠. ‘수호천사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어요. 저도 꼭 어떤 모습이든 수호천사 같은 삶을 살겠다는 열망이 그때 움튼 것 같아요.” 고 병원장의 의료봉사는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73년 시작한 가톨릭학생회 활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졸업 후에는 지난해 2월 대학병원 교수직에서 은퇴할 때까지 전진상의원, 라파엘클리닉, 요셉의원에서까지 정기적으로 봉사했다. “소신학교에 다니며 영을 치유하는 사제 성소를 키웠다”는 그의 고백대로, 버림받은 이들의 고통받는 영육을 어루만지고 싶은 진심은 의사의 길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가치였다. 대학병원 의사는 반나절 넘는 수술 등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마저 불사하고 긴 세월 투신했다면 황혼기에는 다른 삶을 꿈꿀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지난해 3월 요셉의원 병원장으로 취임해 유일한 상주 의사로 1주일에 4일 신경과·신경외과 환자들을 진료하고 10월에는 쪽방촌 방문 진료도 시작했다. 고 병원장은 “주는 사랑만이 가능케 하는 감동은 역설적이게도 그 모든 기쁨을 뛰어넘는다”고 말했다. “‘나의 조그마한 희생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있구나’ 하는 벅찬 감동에 길들여지면, 고갈됐던 내면은 물론 녹초가 된 몸까지 촉촉해지는 걸 체험할 수 있을 거예요.” 아산상은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이념으로 세워진 아산사회복지재단이 나눔과 봉사문화를 확산시키는 취지로 수여하는 상이다. 고 병원장은 “나보다도 상을 받을 훌륭한 자격을 갖춘 의료인과 봉사자들이 많은데, 그분들을 대신해 수상하는 것이 미안하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그가 이번 기회로 꼭 전하고 싶은 건 “이번 수상을 통해 요셉의원의 존재가 다시 한번 부각되고, 함께 일하는 자원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이 다시 한번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는 희망이다. “저는 비교적 많이 알려졌기에 상을 받게 되는 것뿐이에요. 그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뜨겁게 사랑을 실천하시는 분들께서 더욱 힘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2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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