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항상 이뤄주심 느껴”

“저는 ‘봉사’하고 있지 않아요. 그저 하느님 부르심대로 살고 있을 뿐이에요.” 아프리카 케냐와 말라위에서 활동 중인 전교가르멜수녀회 정춘실(데레사·케냐 키텐겔라 공동체 원장) 수녀가 제4회 마리안느·마가렛 봉사 대상 간호 부문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정 수녀는 봉사를 하지 않는데 봉사 대상을 수상한 것이 너무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쳤다. 간호학을 전공한 정 수녀는 2003년 케냐 성 소화 데레사 진료소 설립 때부터 현재까지 진료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는 말라위 음텡고완텡가의 병원에서 11년간 대표를 맡기도 했다. 성 소화 데레사 진료소는 거의 무료 수준으로 진료비를 받고 있어 다른 곳에 비해 많은 사람이 찾는다. 한 달에 외래진료만 약 1300명, 예방접종을 원하는 어린이와 산부인과 진료를 보는 임산부까지 합하면 한 달 방문 환자는 2000명을 훌쩍 넘는다. “형편은 항상 빠듯하지만 직원들 월급을 못 준 적은 없어요. 하느님께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늘 돌봐주심을 느낍니다.” 정 수녀는 아프리카에 있던 지난 20여 년간 거의 4개월 단위로 헌혈을 했다. 첫 헌혈은 심한 빈혈로 혼수상태 직전에 있던 한 여학생을 위해서였다. 케냐에는 당시만 해도 다른 사람에게서 수혈받는 걸 금기시하는 풍조가 있었는데 정 수녀에게서라면 받겠다고 해서였다. 그 뒤로 정 수녀는 산모들을 위해 항상 혈액을 비축해두려고 헌혈을 해왔다. 정 수녀는 “검사실에서도 혈액을 못 구하면 제게 연락하기로 돼 있을 정도”였다며 “재작년에 무리한 진행으로 쓰러진 뒤 헌혈을 중단하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학구열이 높은 케냐 학생들을 돕기 위해 전교가르멜수녀회 재속회원들의 지원도 받았다. 2003년부터 재속회를 통해 모금 활동을 벌여 한 가정 돕기 운동을 해오고 있다. 정 수녀는 “학생들이 자라서 의사, 간호사, 회계사 등이 돼 함께 일하게 됐을 때 뿌듯했다”고 전했다.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투신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해요.” 이번 봉사 대상 추천도 한사코 거절했지만 결국 하느님께서 이뤄주심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지나가는 길에서 마주친 누군가가 “아플 때 도와줘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건넬 때 큰 보람을 느낀다는 정 수녀는 상금을 이동 진료를 위한 자동차 구입에 사용하겠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앞으로도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입회 때 마음가짐으로 살고 싶습니다.” 제4회 마리안느·마가렛 봉사 대상 시상식은 11월 29일 전남 고흥군 주최로 마리안느·마가렛 나눔 연수원에서 개최됐다. 마리안느·마가렛 봉사 대상은 소록도에서 40여 년간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살았던 두 간호사의 숭고한 정신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제정됐다.

2024-12-01

“우리 신앙에 큰 도움 될 공주 향옥터 발굴에 관심을”

“신앙선조들의 삶은 지금 내 신앙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은 공동체성을 띄기 때문이지요. 순교자들의 삶과 자취를 더욱 명확하게 따르기 위해서 교회 유산과 과거의 기록을 찾고 보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박해시대 197명이 순교한 것으로 알려진 공주 향옥터의 시굴에 힘쓴 대전교구 내포교회사연구소 소장 김성태(요셉) 신부는 “신앙을 매개로 한 과거의 기록도 신앙인들에게 성사적인 작용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당시 전체 천주교 신자의 4분의 1 정도가 살았을 것으로 알려진 충청도, 그 중 공주는 지방 행정의 중심지인 감영의 소재지이자 관찰사가 부임하는 행정 중심지였다. 이러한 이유로 공주에 향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정확한 터의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 “내포의 사도 이존창(루도비코)이 참수된 황새바위는 성지로서 알려졌지만, 공주 향옥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습니다. 학술대회 개최와 연구를 통해 공주향옥에서 197명이 순교했다는 것을 밝혀냈고 그 터를 찾는 것이 교회사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연구소를 공주로 옮기며 향옥터를 찾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한울문화유산연구원이 유적 시굴조사를 실시한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 114-5 일원은 내포교회사연구소 바로 뒤에 자리하고 있다. 시굴조사 결과, 연구원은 이곳이 공주 향옥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공주 향옥은 손자성(토마스) 성인이 교수형으로 순교한 곳으로 알려졌고 그 밖에 많은 신자도 고문 후유증으로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순교지로서 뿐만 아니라 이존창이 조선에 성직자를 요청하는 서한을 작성해 보내고 소통했던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죠.” 연구소를 옮기고 옥터로 추정되는 곳을 시굴하며 역사적 증거를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어 낸 것에는, 현대 신앙인들이 신앙을 되찾을 수 있는 힘이 과거의 기록에 있다는 것을 알고 물심양면 지원한 대전교구 성지위원회 위원장 한정현(스테파노) 주교의 동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국에 수많은 성지가 있고 우리는 그 곳에 담긴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을 알고 있습니다. 막연히 알고 있는 것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체험하는 신앙은 깊이와 애착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유산과 과거의 기록을 찾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공주 향옥터 발굴은 이제 시작이지만 신자들은 물론이고 신자가 아닌 분들도 이곳에 와서 신앙적 감성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 또한 좋은 선교의 방법이 될 수 있겠죠.”

2024-12-01

“성경과 친해지면 말씀에 주님 사랑 느낄 수 있어요”

“이제 이웃에게 가서 전하라.” 17년여 전, 수원교구 제2대리구 성경교육봉사자회 김인희(안나·분당성요한본당) 회장은 어느 날 미사 참례 중 들은 신부님 강론이 하느님께서 직접 그에게 이야기하신 것처럼 들렸다. 세례 후 봉사와 기도, 성경 공부를 하며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여겼던 날들이 하느님이 아닌 인간의 생각으로 살았던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밀려왔다. 그날로 성경교육봉사자회 문을 두드렸고, 지금 양성 기간을 포함하면 17년째 ‘말씀’에 빠져 성경교육 현장에서 신자들에게 말씀을 나르고 있다. “삶이 혼란스럽고 복잡하다고 생각했는데 질서를 잡아주시고 다듬어주시고 다독여주시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그저 ‘사건’들로 여겼던 삶의 부분이 말씀으로 해석돼 은총과 섭리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성경 교육 봉사를 통해 김 회장이 느끼게 된 삶의 전환이다. “여전히 과정 중에 있지만 가정과 교회, 사회와 사람들 안에서 나와 이웃의 변화가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본당에 파견 나가서 학기를 시작할 때 그는 ‘셀카’, 수강생들이 각자 자신의 얼굴을 찍게 한다. 그리고 학기 마칠 때 다시 한번 찍어보도록 한다. 말씀을 경험하기 전과 후, ‘비포 앤 애프터’를 확인을 위해서다. “짧은 기간 안에 바뀌는 분도 있고 느리게 서서히 표가 나는 분도 있지만, 많은 분이 표정 변화가 생기는데 그것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제일 많이 바뀐 사람은 나 자신”이라고 덧붙였다. “성경 묵상 나눔을 통해, 표정으로 변화가 드러날 때 말씀이 역사하시는 힘에 다시 감사드리게 되고 사람들이 변모하는 모습이 보람”이라는 그는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가는데, 그 시간에 하느님이 일하고 계심을 매번 체험하며 고개를 숙이게 된다”고 말했다. 성경 교육 봉사자로서 가장 큰 기쁨은 수업을 통해 함께 했던 이들이 말씀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고 하느님 자녀로서의 자존감과 세상에 대해 담대함을 회복할 때다. 그는 “수강생들에게 말씀을 선포한다고 하지만 그 시간의 최대 수혜자는 봉사자”라며 “여러 어려움과 상황들이 있지만, 그런데도 계속 신자들을 만나 말씀을 전할 힘은 그런 감사함과 함께 선포한 말씀을 살아내야 한다는 책임감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성경 읽기에 도전하려는 이들에게 김 회장은 일단 ‘성경을 먼저 펼쳐 놓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한 절씩 짧게 읽기로 출발하는 것도 좋고, 읽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듣기를 먼저 해도 좋을 듯하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본당 등 교회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참여를 권유했다. 여럿이 함께 읽고 공부하면 좀 더 지속해서 성경을 가까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말씀, 한 주의 말씀, 이달의 말씀, 올해의 말씀, 우리 가정의 말씀 등으로 짧은 성경 구절을 현관, 차량 내부, 식탁 등 손이 닿는 장소에 준비해 놓는 것도 늘 말씀을 가까이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급변하는 세상에 성경이 더욱 필요한 만큼, 말씀을 느끼는 시간을 하느님께 더 내어드렸으면 한다”는 김 회장은 “성경은 사랑으로 구원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섭리의 하느님 말씀이기에, 보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 말씀에 친숙해져 그분 사랑을 느끼면 좋겠다”고 성서 주간의 변을 밝혔다.

2024-11-24

“지역 공동체에 신앙 원동력 되니 기쁨 두 배”

대전교구 배나드리 성지 인근에 있는 한 묘지는 오래전부터 천주교를 믿다 순교한 분의 무덤이라는 말이 동네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구전으로 전해진 이야기였지만 그 지역 신자들은 용동리에 살다 해미에서 순교한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의 묘지라 믿었고 그의 순교정신을 따르며 신앙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지난 11월 1일 대전교구장 김종수(아우구스티노) 주교는 교령을 통해 “충남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 산 9-6번지에서 발굴된 유해가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의 유해라고 선언하며 이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배척한다”고 밝혔다. 신자들의 믿음과 순교자 현양을 위한 삽교본당 주임 신부의 노력이 더해져 구전되던 이야기는 구체적인 현실이 될 수 있었다. 삽교본당 주임 최일현(루카) 신부는 “오랫동안 용동리에 사신 신자분들이 무명의 묘지에서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의 흔적을 찾길 간절히 원하셨고, 그 증거를 찾는 과정에서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느낄 수 있었던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충청도 덕산 주래(현 삽교읍 용동리) 양반집 출신 인언민(1737-1800)은 한양에서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공주로 이주했다. 그러나 1737년 정사박해 때 붙잡혀 해미에서 돌에 맞아 순교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63세였다. 이후 그의 시신이 해미에 묻혔을거라 추정했으나 용동리 마을에서는 교동 인씨 선영의 무덤 중 하나가 복자의 것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었다. “성당 어르신들이 어렸을 때 무덤가에서 놀고 있으면 어른들이 ‘천주교를 믿다 돌에 맞아 돌아가신 분의 무덤이니 함부로 올라가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셨어요. 유난히 봉분이 컸다고 기억하셨죠. 여러분들이 같은 증언을 하시니 그 무덤이 진짜 복자의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최 신부는 신자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 팀을 꾸려 체계적으로 자료 조사에 나섰다. 마을에 오래 산 신자들 덕분에 교동 인씨 문중과 접촉이 가능했고, 족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무덤을 관리하던 후손의 자녀에게서 무덤에 대한 증언도 들을 수 있었다. “족보에서 선영에 인언민 복자가 매장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실제 무덤 위치와 족보상의 위치가 일치한 것도 확인했죠. 주민과 후손들의 증언을 모아 교구 교회사연구소에 자문을 구했고,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교구장 주교님께 묘소 발굴을 청원했습니다.” 발굴을 진행한 결과, 유골의 토양화 진행 정도가 심해 유전자 분석을 통한 개인식별 정보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나 무덤 위치, 매장 방향, 구전증언, 목관의 연륜 연대 등을 토대로 재판관 한정현(스테파노) 주교는 “발굴된 유해가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라는 진정성이 입증됐음”을 선언했다. 이번 판결은 한국 교회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삽교본당 공동체에도 전환점이 됐다. “삽교본당 신자는 고령이신 분들이 대부분이세요. 몸이 힘드니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죠. 63세에 순교한 복자 인언민은 고령이신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날까지 하느님을 잘 섬기며 신앙인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을 이번 판결을 통해 얻게 된 것 같아 기쁩니다.”

2024-11-24

“예수께서 그러하셨듯 고립된 가난한 이웃 찾아나서야”

고립감·심리적 빈곤 심화로 오늘날 가난 더 잔인해 특수사목으로 국한하지 않고 빈민과 동행하려는 변화 필요 “과거와 달리 현재의 빈민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방 안에 숨어 더욱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으니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교회가 찾아가야죠.” 1990년대 후반, 도시개발로 철거민들이 집을 잃은 현장에 교회는 ‘빈민사목’의 이름으로 동행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고 그곳에 살았던 빈민들은 도시에서, 기억에서 사라진 듯 보였다. 당시 철거지역에 선교본당을 두고 빈민사목에 집중했으나, 빈민들이 사라지자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웠다. 서울 빈민사목위원회 위원 이영우(토마스) 신부는 가난한 이들을 찾아 나섰다. 예수님이 그러하셨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봉천3동(선교)본당 주임을 하면서 대학동 고시촌에 가난한 중장년층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됐어요. 사법고시가 폐지되면서 고시생들이 떠난 동네에 빈민들이 몰려들었죠. 쪽방촌과 이곳이 다른 것은 옆집 이웃의 얼굴도 모를 만큼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하는 분들이라는 겁니다.” 대학동 고시촌에서 가장 싼 방은 월 10만원가량. 고시원의 특성상 옆방과 완전히 분리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는 없다. “예전에는 가난했을지언정 서로 애환을 나누고 도우며 위로를 받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의 가난이 더욱 잔인한 이유는 심리적 빈곤이 심화되는 것입니다. 사회복지 기관에서 빈민들을 만나러 오긴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같은 처지인 사람들끼리 만나서 소통할 때 찾을 수 있는 공감대와 시너지가 있기 때문이죠.” ‘참 소중한...’ 센터는 대학동 고시촌에 마련된 작은 쉼터다. 주방과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밥을 먹거나 책을 읽으며 쉬어간다. 미사와 교육, 야유회, 운동 등 사람들이 만나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센터에서 이뤄진다. 취재를 위해 찾은 11월 8일, 혼자 라면을 먹고 있는 주민 앞에 앉은 남성은 대뜸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느라 몸이 성한 데가 없다”고 토로한다. 귀찮은듯하면서도 “병원에 가보라”며 걱정 어린 말을 건네는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람 사는 온기가 남았다. 배를 채울 밥과 돈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과 사랑인 듯했다. 이영우 신부는 미처 밖으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환대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이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에 이제는 빈민사목을 특수사목으로 국한하지 않고 모든 본당,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찾아서 동행하려는 변화가 필요하다”며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루카 14,13)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을 맞아 우리는 다시 한번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후원 계좌: 우리 1005-104-121020(예금주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2024-11-17

[인터뷰] 세계주교시노드 다녀온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지난 10월 27일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가 대장정을 마쳤다. 2021년 10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두 회기에 걸쳐 3년여 동안 진행된 시노드에 한국교회에서는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가 전 회기를 참석했다. 11월 7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교구장 접견실에서 교계 기자들을 만나 소회를 밝힌 정 대주교는 “선교하는 시노드 교회를 향한 발걸음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강조하고 “시노드는 모두가 함께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이기에 서로 존중하고 경청하면서 우리 안에 하느님의 뜻이 있는지 성령의 목소리를 같이 식별해 나가자”고 말했다. 대의원들, 최종 문서에 긍정적 “한국에서 혼자서 참석했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는 정 대주교는 “또 교회 전체가 새로운 시노드 교회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해서 감사한 마음이었다”고 회의에 대한 감상을 전했다. 이번 시노드는 첨예한 주제들이 논의된 자리로도 시선을 모았다. 특히 제1회기에는 여성 부제, 성소수자 문제 등에 대한 의견들이 오갔다. 제2회기에서는 의안집에서 이런 민감한 논란 주제들은 제외했지만, 특별 이슈에 대한 연구 그룹을 설치했다. 이에 대해 정 대주교는 “여성 부제 서품 등 특정 문제들이 중요하지 않아서라든가 아니면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큰 틀에서 우리가 모두 시노드 교회를 향해 가는 걸음을 옮기고자 하는 의미”라며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내용들은 10가지 주제로 선정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10가지 주제는 동방 가톨릭교회와 라틴 교회, 가난한 자들에 귀 기울이기, 디지털 문화, 시노드적인 관점에서의 사제 양성, 여성 부제직 등을 포함한 교회 내 여성 역할, 교회일치 등을 포함한다. 정 대주교는 “대의원들은 회의 중 10개 주제 가운데 관심 있는 그룹을 찾아 진행 상황을 듣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10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회기 본회의를 마치며 투표로 승인된 최종 문서를 제출받고 승인했다. 정 대주교는 “대의원들이 최종 내용을 검토하고 항목당 찬반 의견을 들어서 3분의 2 이상 득표한 것이 최종 문서로 정리됐다”며 “한 달여 동안 함께 나눈 내용들이 잘 담겨 있으면서도 표현들도 평이하게 읽히도록 정리돼 있어서 대체로 대의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저 반복 정도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찬반 지침 내용이 없다’ 등 내용을 다소 못마땅하게 여기는 대의원들도 소수 계셨지만, 논의한 내용들 상당수가 포함돼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회심을 통한 교회의 변화와 쇄신 강조 “최종 문서에는 ‘회심’(conversion)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면서 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한 정 대주교는 “이런 밑그림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선교하는 시노드가 될 것인가’라는 문제가 최종 문서에서 가장 큰 핵심”이라고 전했다. 덧붙여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느님과 깊게 일치하며 이를 바탕으로 이웃과의 일치, 참여, 증거와 선포를 이루는 과정에서 서로가 성령 안에서 대화하고 경청하고 존중하며 성령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식별해 가는 것이 요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교구나 본당, 단체가 이를 이루는 과정에서 새롭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투명성’과 ‘책임 있는 설명’, ‘평가’”라고 말한 정 대주교는 “재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모든 행정적인 것이나 일 처리 등을 투명하게 해 나가야 하고 직권자들은 어떤 결정을 내렸으면 그에 대한 배경이나 지향점을 공동체에 책임 있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투명성과도 연결이 되는 부분”이라고 했다. 2021~2024년 모든 회기 참석…"역사적 순간 함께해 감사" 최종문서는 ‘교회 변화와 쇄신’ 강조 본당 사제의 이해·관심·의지 중요 신자들과 나누며 실현 방법 고민해야 통상 세계주교시노드가 폐막하면 시노드 후속 교황 권고가 발표되는 것과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후속 권고를 내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정 대주교는 “대의원들의 승인이 마치자마자 교황님이 그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최종 문서를 승인 발표하셔서 굉장히 놀라웠다”며 “그 자체가 시노드적인 결정이라는 반응 속에 환영의 박수가 나왔다”고 당시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교황님의 최종 문서 승인은 전 세계 모든 본당에서 모여진 내용들로 구성된 최종 문서가 모든 신자들의 풀뿌리 신앙과 의견을 담으면서 그 안에 성령의 음성이 깃들어 있다고 여기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굉장히 특별하고 의미 깊은, 시노드적인 교회의 한 모습이 구현된 것으로 봅니다.” 시노드에 대한 관심 지속돼야 한국교회 교구나 본당 등 사목 현장에서 이 내용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과 조치가 필요할까. 정 대주교는 “최종 문서가 현재 번역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신자들이 시노드적인 교회 정신을 함양하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본당 신자들이 이를 숙지하고 나누는 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전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본당 사제들의 이해와 관심,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 대주교는 “시노드를 위한 본당 사제 모임이 지난 9월 열렸고 앞으로도 계속 개최되는 것처럼, 교구나 본당 사제들이 시노드 중요성에 대한 이해와 관심으로 신자들을 독려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그래서 모든 신앙인이 ‘시노드 교회가 무엇인지’,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관심 가지며 같이 나누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 대주교는 “교구 시노드나 본당 시노드 등 크거나 작게 시노드를 준비해서 직접적으로 시노드를 경험해 보는 시도도 중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난관이나 도전, 숙제들이 없지 않다. 예를 들면 최종문서 77항은 교회 식별 과정과 의사결정 과정, 더 나아가 평신도 남성과 여성이 교구와 신학교를 포함한 교회 기관의 책임있는 위치에 폭넓게 접근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관련해서 정 대주교는 “한국교회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남녀 평신도들이 신학교나 다른 기구에 책임 있는 자리를 맡는 것이 현실적으로 간단하지 않아서 더 연구하고 찾아봐야 하는 부분이지만, ‘어떻게 하면 평신도의 역량을 교회 안에서 좀 더 풀어낼 수 있는가’라는 종합적인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주교는 “시노드 교회를 향한 여정은 어려운 ‘숙제’라고 볼 수 있다”며 “한 번의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거기에는 우리의 회심이 필요하고 교회 전체의 어떤 새로운 노력들, 즉 의식의 변화 등이 요구되기에 쉽지는 않다”고 토로했다. “주교와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같이 걸어가는 모습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회심이, 변화가 요청됩니다. 2025년 희년의 주제가 ‘희망의 순례자’입니다. ‘희망’과 ‘순례’, ‘선교’ 등을 키워드로 삼아 신년을 맞으며 시노드 교회를 향해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2024-11-17

“도시·농촌 함께하며 이해하는 자리 만들 것”

“우리농촌살리기 운동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죠.” 1980년대, 개방농정 정책으로 수입농산물이 확대되면서 농산물 가격 파동, 적자 영농 증가 등 농민들의 어려움은 가중됐다. 특히 1986년부터 진행된 ‘우루과이라운드’는 농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이에 교회는 농민과 형제적 연대를 실천코자 1994년 6월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전국본부를 설립했고 같은 해 10월 서울교구본부가 생겼다. ‘도시와 농촌이 연대해 하느님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더불어 사는 생명 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도시와 농촌이 함께 걸어온 30년.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이하 서울 우리농본부) 본부장 이승현(베드로) 신부는 그 시간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을 실천해 온 시간”이라고 말했다. 우리농 운동은 크게 교육과 우리농 생활공동체 활동가 양성, 물품나눔사업으로 구분된다. 각 본당에 나눔터와 활동가를 두고 물품나눔사업을 진행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몇 년간 부침을 겪었다. 이승현 신부는 위기를 발판 삼아 우리농운동의 본래 목표인 도농교류 활성화에 집중할 수 있는 체제 전환을 꾀한다는 계획이다. 이 신부는 “본당 직거래 장터라는 고정적인 공간 안에서 물품나눔이 이뤄지다 보니 주변 환경 변화로 인한 변수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물품나눔도 중요하지만 도시민과 농민들과 만나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쪽으로 우리농운동의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농 생활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제 중심이 아닌 평신도로 꾸려진 생활공동체 중심으로 운동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이 신부의 계획이다. 이 신부는 “농민과 도시에 있는 활동가들이 서로 이해해야지 서로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농운동이 신앙인에게 중요한 이유는 성체성사의 정신을 실현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 신부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았던 예수님의 식탁은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것, 즉 성체성사의 정신이 실현된 곳이었다”며 “우리도 매일 밥을 먹는 식탁 위에서 농민과 피조물, 이웃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정신을 매일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4-11-10

“문화·역사 상황 고려한 토착화, 교회 미래 위해 필수”

“토착화에 대한 헌신은 교회의 미래를 위해 필수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우리는 ‘박물관’이 될 것입니다.” 10월 16일부터 25일까지 방한한 스티븐 베반스 신부(시카고 가톨릭신학대학원 명예교수, 말씀의 선교 수도회)는 “(보편)교회 전체에서 토착화가 ‘냉각’됐다”고 우려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의교서 「신학의 발전을 위하여」(Ad Theologiam Promovendam)에서 신학자들과 교회가 지역 문화와 현대 사상에 더 많이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고 전했다. 베반스 신부는 시카고 가톨릭신학대학원 교수로 30여 년 재임하면서 미국선교학회 회장,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및 세계교회협의회 세계선교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는 등 세계적으로 토착화 신학의 대가로 평가를 받는 석학이다. “전통적인 문구나 단어가 비록 정통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문화와 경험 속에서 표현돼야 합니다.” 특히 베반스 신부가 정립하고 체계화시킨 ‘상황 신학’은 자의교서 「신학의 발전을 위하여」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상황 신학은 현재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적, 역사적 상황 속에서 각 신자, 또는 신앙공동체의 경험을 고려하면서 교회의 전통적인 지혜를 해석해 나가는 신학의 한 방식이다. 교황은 자의교서에서 시노드적이고 선교하는 교회와 일치하는 신학을 이야기하면서 이를 위해 “상황 신학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베반스 신부는 “상황화(Contextualization)는 토착화의 개념을 넘어 현대의 세속성, 기술과학, 그리고 인간 사회 및 생태적 정의를 위한 투쟁의 현실도 포괄한다”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표현대로, 상황 신학을 해야만 오늘날의 세계에서 ‘신학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는 한국 신학이 보편교회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저술이 있었고 신학 학술대회도 꾸준히 열리고 있지만, 서유럽 언어나 다른 아시아 언어 등 다른 언어로 번역되지 않아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의 초청으로 방한한 베반스 신부는 방한 기간 신자들을 위한 다양한 강연과 한국 신학자들과의 좌담회 등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경험한 한국 신학의 우수성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길 희망했다. 베반스 신부는 특별히 심상태 몬시뇰(요한 세례자·수원교구 성사전담)의 신학을 높이 평가하면서 “심 몬시뇰의 논문집이 번역돼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심오한 사상과 학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베반스 신부는 앞으로도 저서를 통해 한국 신자들과 교류해 나갈 계획이다. 그동안 「상황화 신학」, 「예언자적 대화의 선교」 등이 한국어로 소개됐고, 현재 신작 「선교하는 제자 공동체」의 국내 출간을 앞두고 있다. “저의 큰 희망 중 하나는 제 책이 한국교회가 시노달리타스를 실천하는 과정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것입니다. 많은 나라에서, 특히 성직자들 사이에서 시노드가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선교적 교회론을 강조한 제 책이 한국 신자들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들끼리 서로를 더 깊이 신뢰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4-11-03

“갈등 만연한 아시아에는 ‘적극적 비폭력’이 필요합니다”

필리핀의 국제 가톨릭 평화운동 단체 ‘팍스 크리스티 필리핀’(Pax Christi Pilipinas) 공동대표 안토니오 레데스마 대주교(Antonio Ledesma·전 카가얀데오로대교구장)는 “비폭력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막아내려는 적극적 의지”라고 강조했다. 10월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심포지엄에서 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기조강연, DMZ 방문 등 일정으로 방한한 그는 “갈등이 만연한 아시아에 평화적 대화가 이뤄지도록 다 같이 ‘적극적 비폭력’(Active non-violence)을 실천하자”고 당부했다. 레데스마 대주교는 “한반도 핵무기 위협과 확산 움직임이 이웃 나라 필리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만큼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 체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필리핀이 속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은 핵무기 금지지역이다. 필리핀은 유엔이 2017년 채택한 핵무기금지협약(TPNW)에 가입했으나 동북아시아에서는 어느 국가도 가입하지 않았다. 힘이 우선시되는 국제 정세에서 왜 패권 선점보다 평화 건설에 힘써야 할까. “폭력은 강자들의 언어이기에 더더욱 답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레데스마 대주교는 역설했다. 필리핀은 현재 중국과의 영토분쟁이 심각하다.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있는 섬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과 기지 설립으로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를 통한 법적 해결을 시도했으나 중국은 판결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패권국이기 때문이다. “절대적 무력을 지닌 자들과 똑같은 언어(폭력)를 써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아요. 그들이 감히 무력만으로는 평화와 질서를 좌우하지 못하도록 그리스도인이 평화적 대화에 앞장서야겠죠?” 이렇듯 패권을 무효화시키는 ‘적극적 비폭력’의 저력을 강조한 레데스마 대주교는 카가얀데오로대교구가 있는 민다나오섬을 예로 들며 “종교 간 협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200만 명 인구의 섬은 가톨릭신자가 63%, 이슬람 신자가 32%를 차지한다. 과거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한 무장투쟁이 지속되고 종종 테러가 발생했지만, 그때마다 가톨릭·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이 합심해 폭력을 규탄하고 평화적 갈등 해소를 호소해 왔다. 그렇게 2014년 두 종교 사이에 민간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40년을 이어온 분쟁은 종식됐다. “폭력이 적극적이라고 해서 비폭력이 소극적이어서는 안 돼요. 폭력이 폭력인 줄도 모를 정도로 일상화하던 시점에 종교들, 평화를 염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평화!’하고 외쳐오지 않았다면 오늘날 민다나오섬의 평화는 구축되지 않았을 거예요.” 같은 아시아 국가인 필리핀과 한국은 중국과 미국의 갈등 등 지정학적 도전을 함께 당면하고 있다. 필리핀교회, 한국교회, 국제 팍스크리스티 운동은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까. 레데스마 대주교의 답은 한결같다. “적극적 비폭력에 대한 더 많은 그리스도인의 참여”라고. “현재 아시아·태평양 팍스 크리스티 공동체는 필리핀, 한국, 호주, 뉴질랜드에 있습니다. 아시아 차원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전개하기에 회원이 너무 부족합니다. 가톨릭교회 활동이 자유로운 일본, 대만, 홍콩 등에서 팍스 크리스티 운동 파트너를 찾아 동아시아 평화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2024-10-27

“지구 반대편 한국에 꽃피운 가르멜 영성 놀라워”

“가르멜 영성이 한국에서 꽃피울 수 있게 도와주신 한국교회 모든 구성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이젠 새로운 50년, 가르멜 영성이 이곳과 아시아에 어떻게 더 잘 스며들 수 있을까 고민할 차례네요.” 가르멜 수도회 한국 진출 50주년을 맞아 방한한 로마 총본부 총장 미겔 마르케스(Miguel Márquez) 신부는 10월 8일 기자들과 만남에서 아시아 선교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다. 세계 가르멜 수도회를 총괄하는 만큼 방한 일정 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그래도 이날만큼은 인터뷰 후 시간을 내 서울을 둘러볼 예정이라며 웃어 보였다. 미겔 신부는 한국에 가르멜 영성이 자리 잡은 것 자체가 놀랍다고 했다. 미겔 신부는 “500여년 전인 16세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로부터 시작된 수도회가 지구 반대편 전혀 다른 문화권인 한국에 꽃피웠다는 건 인상 깊은 경험”이라고 했다. 인간 존엄에 대한 고민과 성찰 가르멜 영성과 동양 종교 닮아 “한국교회, 아시아 선교의 발판” 미겔 신부는 가르멜 영성이 한국에 통한 비결로 동양 종교와의 유사점을 짚었다. “불교와 유교가 인간의 깊은 내면세계에 대해 성찰하고 인간 존엄성에 대해 던지는 다양한 메시지는 가르멜 신비가들이 말해 온 ‘인간에 대한 존중’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면서 “더불어 인간의 신비적 측면에 대한 탐구는 문화와 종교를 넘어선 공통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유사점 덕에 아시아에도 우리 영성이 잘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필리핀교회와 함께 그 모범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에 50주년이 더 의미 깊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한국 가르멜 선교 사명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미겔 신부는 “중국 선교에 교회 관심이 큰데, 한국 가르멜은 전부터 중국 선교를 위한 발판을 마련해오고 있다”며 “한국은 우리의 카리스마를 아시아 전역에 전할 수 있는 좋은 못자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새로운 50년은 가르멜 공동체가 침묵과 관상뿐 아니라 적극적인 선교 사명을 지님을 확인하고 보편 교회 안에서 실현해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또 선교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하느님과의 체험 나누기’라고 강조했다. 미겔 신부는 “침묵과 관상으로 하느님과 깊은 내적 만남을 갖고, 또 다른 공동체 형제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느님 안에서 ‘우정’을 나누는 것이 시작이다”라며 “이 체험을 다른 이에게도 전하는 게 선교”라고 말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 체험을 여러 지역 교회에 나누는 것이 우리 가르멜 선교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에 더해 선교의 주인공은 선교사가 아니라 하느님이고, 선교사들은 하느님의 협력자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죠.”

202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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