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정실 의정부교구 평협 첫 여성 회장

“중환자실에서 깨어났을 때,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교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1월 31일 열린 의정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제8차 정기총회에서 제4대 회장에 조정실(소피아·마두동본당) 씨가 임명됐다. 교구 평협회장에 여성이 임명된 것은 처음이다. 조 회장은 “교회 직무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나누는 것은 사실 이미 지난 얘기”라며 “교구의 평신도 대표로서 주교님, 신부님들과 평신도 간 ‘부드러운 교집합’을 찾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조 회장은 네 자녀를 돌보던 10여 년 전,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큰 수술을 받으며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되찾은 그는 감사 기도를 드리며 “주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작은 역할이라도 교회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회복 후 조 회장은 가정에 집중하느라 다소 소홀했던 본당 활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총구역장과 본당 첫 여성 총회장직을 맡아 봉사하게 됐다. “막상 하느님과 약속은 했지만, 총구역장과 총회장 직책은 사실 많이 부담스러웠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하지만 후유증이 흔한 뇌출혈을 겪고도 건강을 회복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그때부터 봉사에 전념해 왔다. “본당에서 활동하다 보니 느꼈어요. 내가 지금까지 너무 내 일만 하며 살았구나, 이웃 사랑에 소홀했었구나” 교구 평협 회장직을 고심 끝에 수락한 것도 그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결정까지는 어느 때보다 긴 고민이 뒤따랐다. 교구장 손희송(베네딕토) 주교를 비롯해 본당 사제와 교우들, 가족들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눴고, 모두가 격려와 응원의 뜻을 전했다. 특히 생사의 순간을 곁에서 지켜본 남편이 큰 힘이 됐다. 조 회장은 “의정부교구는 신부님들은 물론이고 교우들도 진취적이고 활발한, 한마디로 ‘젊은 교구’”라며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렇게 좋은 교구의 협력자로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회장직은 하느님께서 뽑으신 것이므로, 하느님이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교구장 주교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협력자의 마음으로 봉사해달라 당부하신 주교님의 응원을 받으며 어떤 일이든 혼자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든든합니다.” 마지막으로 조 회장은 “요즘 교회가 줄곧 강조하는 것이 바로 ‘시노달리타스 정신’”이라며 “의정부교구도 모두가 주체가 되어 하나의 공동체로, 물 흐르듯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다짐했다. “서로 귀를 기울이고 낮은 자세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 비록 힘들지만 중요한 일이고, 이게 진정한 시노달리타스가 아닐지 생각해요. 저도 그런 마음으로 직무에 임하겠습니다.”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21면

[인터뷰] 김보성 가톨릭농민회 제30대 회장

“'신앙과 생명의 길'이라는 가톨릭농민회의 정신이 더욱 깊이 뿌리 내리고, 다음 세대가 이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조직을 만들겠습니다.” 1월 29일 대전교구 정하상교육회관에서 열린 가톨릭농민회 제56차 정기총회에서 제30대 회장으로 선출된 김보성(마르티노·전주교구 순창본당) 씨가 새 회장 임명 후 밝힌 포부다. 서울에서 태어나 농사와는 인연이 없던 김 회장은 2001년 전라북도 순창으로 귀촌해 고사리 농사를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농사일에 시행착오를 겪으며 막막하던 중, 본당 주보를 통해 가톨릭농민회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신앙 안에서 양심껏 농사짓고, 그렇게 수확한 생명 농산물을 신자들과 나눈다는 가톨릭농민회의 정신에 마음이 끌려 바로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선배 농부들에게 생명 농업의 의미를 배우고 실천하며 가톨릭농민의 일원으로 자리 잡은 그는 이후 다양한 생명 농업 관련 단체에서 활동을 이어왔다. “가톨릭농민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고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에서 감사로, 전국친환경농업협회에서 이사로 활동하며 땅을 살리는 농부들과 함께해 왔습니다.” 지난 4년간 가톨릭농민회 부회장으로 활동한 김 회장은, 고령화로 인한 농촌 공동화와 대농(大農) 위주의 정부 정책 등 가톨릭농민들이 직면한 현실을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정부의 농업 정책은 대농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큰 규모로 농사짓기 어려운 유기농 농가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줄어드는 농촌의 현실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가톨릭농민회는 농민운동과 물류 유통을 함께하다 보니, 자칫 농산물 판매에만 집중하게 되어 본래의 농민운동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이런 대내외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회 활동을 강화하고, 가톨릭농민회의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어 “가톨릭농민회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다른 농민단체나 북한 농민들과의 연대 자리도 만들고 싶다”며 “청년 농업인과 여성 농업인 육성을 위해서도 힘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끝으로, 기후위기로 농사짓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 속에서 ‘생명을 살리는 농업’이라는 가톨릭농민회의 정신을 더욱 충실히 실현해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21면

[인터뷰] 교황청립 로마한인신학원장 재임명된 정연정 몬시뇰

로마에는 80여 개의 교황청립 신학원이 있다. 그 가운데 로마한인신학원(Pontificio Collegio Coreano)은 필리핀신학원과 함께 아시아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원으로 꼽힌다. 보편교회의 중심인 로마에서 한국교회 성직자들의 고등교육을 돕는 동시에, 한국 주교회의의 로마 연락사무소 역할도 맡고 있다. 로마교구 안에 거주하는 한인 신자들의 사목을 담당하는 본당이기도 하다. 지난 1월 27일 교황청 복음화부 교령을 통해 교황청립 로마한인신학원 원장에 재임명된 정연정 몬시뇰(티모테오·서울대교구)은 “로마한인신학원의 위상에 걸맞게 보편교회와 한국교회를 잇는 가교로서 성심을 다해 원장직을 수행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정 몬시뇰은 로마한인신학원을 “로마에 거주하는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모두에게 ‘고향집’ 같은 장소”라고 표현했다. 그는 “공동체가 한데 모여 시공간을 넘어 신앙의 친교를 나누는 곳”이라며 “이러한 만남과 친교를 통해 자연스럽게 복음화의 사명을 실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0년 1월 25일 교회법적 설립 승인을 받은 로마한인신학원은 올해로 설립 26주년을 맞았다. 정 몬시뇰은 “설립 당시와 비교하면 신학원에 거주하는 사제 수가 늘었을 뿐 아니라, 출신 국가도 다양해졌다”며 “현재는 여섯 개 나라에서 온 사제들이 함께 살아가는 국제적 공동체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세계교회 안에서 달라진 한국교회의 위상과도 맞닿아 있다. 정 몬시뇰은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라자로) 추기경님을 비롯해 교황청 각 부서에서 활동하는 한국교회 성직자와 평신도의 수가 눈에 띄게 늘었고, 여러 국제 수도회 총장들도 배출됐다”며, “보편교회 안에서 한국교회는 더 이상 받기만 하던 변방의 작은 교회가 아니라, 나눔을 실천하는 지역 교회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앞두고 로마한인신학원의 역할 또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정 몬시뇰은 “한국 주교회의의 로마 연락사무소로서,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교황청 부서와의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로마 코디네이터(Rome Coordinator)로 활동 중인 그는 “SNS 등 디지털 소통이 급속히 발달했지만, 보편교회의 중심인 로마와 직접 연계하는 실제적이고 신속한 소통은 여전히 중요하다”며 “이곳이 교황청을 방문하는 대회 준비 관계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 임기 목표에 관해 정 몬시뇰은 “로마한인신학원은 이제 50주년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며 “보편교회 안에서 한국교회를 알리는 국제적 친교의 장으로 더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21면

[인터뷰] 한국교회 유일 농아 수도자 인보 성체 수도회 심재기 수녀

“나는 듣지 못해요. 하지만 더 많은 걸 들을 수 있어요. 나와 하느님은 서로 단 한 번도 침묵한 적이 없어요. 지금도 우리 사이에는 참 많은 이야기가 오가요. ‘너만이 나를 들을 수 있어’, ‘그런 너를 내가 많이 사랑해’라고요….” 언어라고 하면 흔히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 떠올린다. 그렇기에 침묵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한국교회 유일의 농아(聾啞) 수도자 심재기 수녀(루치아·91·인보 성체 수도회)는 ‘손짓의 언어’인 수어로 언어와 침묵의 본질을 새롭게 일깨워준다. 심 수녀는 “진짜 침묵은 나를 비워내어 상대로 가득 채우는 사랑이며, 진짜 언어는 상대를 소외시키지 않고 말을 건네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소통의 중심이 청인에게만 맞춰진 교회 안에서 스스로 입교해 57년간 수도자로 살아온 그의 삶과 영성은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1934년 강원도 강릉. 듣고 말할 수 없는 아이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하느님은 끊임없이 심 수녀에게 말을 걸었다. 수어조차 배울 기회가 없어 가족과도 소통이 어려웠던 그는 “오래전부터 나를 부르는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있었다”며 “그 목마름을 따라, 나를 시집보내려는 부모를 훌쩍 떠났다”고 고백했다. 1956년, 심 수녀는 고(故) 김학순(악셀) 수녀를 통해 서울 대신학교에서 고(故) 한공렬(베드로) 대주교를 만나게 된다. 당시 대신학교 제4대 학장이었던 한 대주교는 식복사로 일하던 그의 수도 성소를 향한 열망을 알아보고 입회를 추천했고, 인보 성체 수도회는 기꺼이 그를 받아들였다. 1969년, 마침내 심 수녀는 정식으로 수도회에 입회했다. 청인들 사이에 홀로 농아로 살아야 했던 그는 늘 외로움을 안고 살았다. 늦은 나이에 배웠기에 표준 수어가 여전히 서툴렀고, 동료들과는 간단한 손짓으로만 소통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그분께서 끊임없이 보내주셨다”는 심 수녀의 회상대로, 하느님은 침묵하지 않았다. 그의 표현대로 ‘바늘과 실’ 같았던 고(故) 신봉립(안토니아) 수녀는 2018년 선종하기까지 단짝이 돼 수도복 바느질 소임을 40년 이상 함께했다. 심 수녀를 위해 둘만의 수신호도 만들어 이야기를 나누고, 둘만이 있는 바느질 방에서조차 단 한 번도 얼굴을 붉힌 적 없이 늘 웃으며 격려했다. 동료 수녀들도 두 사람의 수신호를 익히고 다 같이 수어를 배우는 등 다정하게 동참했다. 신 수녀 선종 후에도 하느님은 여전히 심 수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지금도 심 수녀에게는, 수어를 하는 전미숙 수녀(소화데레사·인보 성체 수도회 서울 수도원 원장)와 평신도 봉사자 한 명이 단짝이 돼 보살피고 함께 기도한다. 심 수녀는 51년간의 바느질 소임 동안 남들이 귀찮아하는 잔손질, 신경이 더 쓰이는 끝마무리 손질까지 기쁘고 정성스럽게 수도복을 만들어 ‘나를 비우고 상대로 채우는 침묵’의 모범을 가족 수녀들에게 보였다. 지금도 마른 행주질, 기도 시간 촛불 켜기 등 공동체를 소소하게 챙기는 노후 사도직을 해내는 심 수녀는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언어’, 수어로 진심을 전한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오직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대요. 나를 수도자로 불러주신 하느님, 그리고 수도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받아주신 수도회와 수녀님들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발행일 2026-02-01 제3477호 21면

[인터뷰] 봉사 위해 방한한 이탈리아 라파엘라 스비사 씨

“밥을 먹으러 오는 이들을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 아니라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놀라움이자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 안나의집 봉사 경험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Trieste)에서 심리 상담사로 일하는 라파엘라 스비사(Raffaella Sbisà·56) 씨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 초까지 약 4주간 사회복지법인 안나의집 노숙인 급식소에서 봉사했다. 2024년에 이어 두 번째 한국 방문인 그에게 이번 방한의 주된 목적은 ‘봉사’였다.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한 뒤 안나의 집 대표 김하종(빈첸시오) 신부에게 연락했고, 봉사자로 함께할 수 있었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과성 허혈 발작을 겪은 뒤 언어 기능에 이상이 생겨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병원에서는 언어 치료의 일환으로 의미 없는 문장을 반복해 외우는 훈련을 권했다. 그 전환점은 뜻밖에도 한국 음악이었다. 우연히 들은 노래에서 마음과 머리가 동시에 움직이는 듯한 변화를 느꼈고, 이후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인들과 교류하면서 한국 문화와 음식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 2024년 4월 처음 한국을 찾았을 당시, 그는 서울의 한 무료 급식소 앞에서 식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긴 줄을 보게 됐다. “이탈리아에서도 알코올·약물 중독자들의 자활 프로그램을 돕는 등 오랫동안 봉사를 해왔지만, 그 장면은 제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어요. 다음에 한국에 오면 봉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라파엘라 씨는 안나의집 첫인상에 대해 “노숙인들을 따뜻하게 환영해 주는 분위기”를 꼽으며, “모든 과정이 매우 체계적인 점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가장 잊지 못할 장면은 한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식사 중 남은 음식을 비닐봉지에 담아 가려던 할머니에게 한 봉사자가 다가가 조용히 “도와드릴까요?”라고 말을 건넸던 순간이다. “원칙상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음에도, 할머니의 처지와 마음에 다가가는 봉사자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났습니다.” 그는 “이번 경험을 통해 물질적 결핍보다 사회로부터의 단절과 외면, 소외가 더 큰 문제라는 사실을 느꼈다”며 “봉사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사회 안에서 져야 할 책임임을 거듭 확인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라파엘라 씨는 조만간 다시 한국을 찾을 계획이라며, “다음에도 의미 있는 봉사 현장에서 한국인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발행일 2026-02-01 제3477호 21면

[인터뷰] ‘성 바오로’ 정신 담은 강좌 개설…가톨릭관동대 서정운 교수

“바오로 사도께서 보여 주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창업가가 지녀야 할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신을 교과목명에 담아 학생들과 함께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가톨릭관동대학교 창업지원단 창업연구소 서정운(시몬) 교수는 2025학년 2학기에 ‘창업, Omnibus Omnia’ 교양 교과목을 개설했다. ‘Omnibus Omnia(옴니부스 옴니아)’는 청주교구장과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고(故) 정진석(니콜라오) 추기경이 1970년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된 뒤 정한 사목표어다. 서 교수는 창업의 본질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정신 안에 담겨 있다는 신념에서 교과목을 개설했다. “창업은 단순한 사업 개시나 이윤 추구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서 시작해 사람에게로 되돌아가는 선순환 과정이 창업의 본질이죠. 바오로 사도께서 가르쳐 주신 타인을 향한 헌신과 봉사의 정신을 창업 영역에 적용했습니다. 따라서 이 교과목은 취업과 창업을 대립 관계가 아닌 상호 선순환 관계로 바라봅니다. 취업을 위한 창업, 창업을 위한 취업이라는 관점에서 두 영역이 서로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서 교수는 2026학년도 1학기부터는 교과목 명칭을 ‘창업, Omnibus Omnia with LLM’으로 변경할 계획이다. ‘LLM(Large Language Model)’은 ‘대규모 언어모델’을 뜻한다. 학생들은 새 학기부터 생성형 인공지능(AI)과 구조화된 철학적 대화를 진행함으로써 창업 과정에서 본질적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탐구하게 된다. “이 학습법의 핵심은 학생들이 각자 어떤 방식으로 질문하는지 그리고 그에 따라 대규모 언어모델의 답변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서로 비교하고 습득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동료의 질문 방식과 대규모 언어모델의 답변을 비교하면서 효과적인 질문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합니다. 더 중요한 점은 학습자가 스스로 선정한 후속 질문을 통해 학습에 대한 집중도와 주도성을 갖추게 되면서 깊이 있는 학습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창업, Omnibus Omnia with LLM’ 교과목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가톨릭 사회교리가 강조하는 가치 체계가 인간 중심 창업 철학의 든든한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사회교리가 전통적으로 강조하는 공동선, 연대성, 보조성, 인간 존엄성 원리가 사람에게서 시작해 사람에게로 되돌아온다는 자신의 창업 철학과 깊이 연결돼 있다고 보고 있다. “공동선과 연대성 원리는 창업 교육에서 흔히 간과돼 온 가치입니다. 공동선을 위한 투신, 타인의 선익을 위한 헌신, 더 나아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요청하신 피조물에 대한 돌봄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정신에 연결됩니다.” 서 교수는 새 학기에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무엇보다 창업이 세상에 어떤 가치를 더할 수 있을까라는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며, “진정한 창업가는 자신의 이익 추구를 넘어 고객과 직원, 지역사회, 환경 그리고 인류 전체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21면

[인터뷰] 제주교구 노인사목협의회 담당 이시우 신부

제주교구가 최근 초고령사회에 대응하는 새로운 사목 전환점으로 노인사목협의회(이하 ‘노사목’)를 공식 출범시켰다. 국내 어느 지역보다 초고령화 시대의 여파가 선명한 지역 상황에서, 전문적인 노인사목을 위해 2025년 1월 이시우(안드레아) 신부를 노인사목 담당 사제로 임명하고 실질적인 준비에 나선 결과다. 이 신부는 지난 1년간 세계교회와 한국교회의 사례를 검토하고 지역 현실에 맞는 모델을 모색했다. 그리고 2025년 12월 21일, 교구 내 7개 노인대학과 31개 본당 노인 관련 단체의 활동을 토대로 노사목 창립총회를 열었다. 이 신부는 “노사목 창립은 노년을 교회의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영적 도약의 기회로 바라보는 선언”이라며 “노인 혹은 노년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노인은 결코 사회 뒤편으로 물러나거나 소외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정중앙에 자랑스럽게 자리해야 할 빛나는 하느님의 선물임을 우리가 서서히 발견해 나가는 첫걸음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노사목은 노인을 단순한 보호나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교회의 능동적인 사목 주체로 세우는 데 초점을 둔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노인이 주도하는 구조’다. 임원 25명 가운데 70세 이상이 16명, 80세 이상도 4명에 이른다. 이 신부는 “노인이 노인을 가장 잘 안다”며 “대부분 ‘나도 교회에서 할 일이 생겨 기쁘다’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노사목 운영은 교구 내 4개 지구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각 지구에 지구장을 두고 자율적 운영권을 부여해 접근성과 참여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각 본당에 신설된 노인분과는 기존 노인 신심단체·노인학교와 유기적으로 연계된다. 그는 “아직은 시작 단계이기에, 노사목 회장단이 각 지구 회합에 적극 동참하며 시노달리타스 여정을 걸어가겠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노사목이 가장 주력할 활동은 하느님 나라를 향한 노인들의 편안한 여정을 정성껏 돕는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요양원 입소 노인, 재가 노인, 주일미사 참례 노인, 다문화·장애·냉담으로 인한 사각지대 노인 등 네 부류를 중심으로 사목 활동을 펼친다. 이를 위해 각 지구와 본당 노인분과를 중심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단계별 실천 방안을 마련한다. 이 신부는 특히 세대 간 통합사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청년사목과 노인사목이 분절된 현실을 넘어, 전 세대가 함께 신앙을 살아가는 구조가 절실하다”며 “다가오는 세계청년대회(WYD) 준비 과정에도 각 교구 노인 담당 사제들이 함께 참여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노사목 창립은 교구 전체에 노인사목이 멈출 수 없는 사명임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한 이 신부는 “노인은 교회의 변두리가 아니라 중심에 있어야 할 하느님의 선물이며, 노인 한 분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만큼 노인을 공동체의 보석으로 바라봐 달라”고 당부했다.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결코 늙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현재의 노인이거나 미래의 노인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노사목의 여정에 더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한국교회에서 활동하는 노인사목 담당사제들의 협의체 구성도 희망합니다.”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21면

[인터뷰] 1억 원 기부한 군종교구 노도본당 주임 정천진 신부

“선교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군종 사제로서 이 순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임무 중 다친 장병들을 위해 기부를 하자고 마음먹었죠.” 군종교구 정천진 신부(베드로·노도본당 주임)는 2020년부터 5년 동안 매달 월급의 절반인 150만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운영하는 ‘육군 위국헌신 전우사랑 기금’에 기부해왔다. 이 기금은 복무 중 부상당한 장병과 순직 장병의 유가족, 군 복무 지원 등에 다양하게 쓰인다. 정 신부는 2025년 4월까지 누적 기부액 1억 원을 달성해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기부를 시작한 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군종교구 전체가 큰 어려움을 겪던 시기다. 마침 사제 서품 10주년을 맞은 정 신부는 “다른 해보다 더욱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육군훈련소에서 사목하고 있던 그는, 팬데믹 여파로 장병들이 성당에 나올 수 없게 되자 효과적인 선교 방법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고심 끝에 기부를 결심했고, 처음 1000만 원을 한 번에 납부한 데 이어, 이후 5년 동안 월급을 쪼개 9000만 원을 추가로 기부했다. 이는 평소 절약하는 생활 습관 덕분에 가능했다. 전·현직 군인 가운데 해당 기금에 1억 원을 기부한 사례는 정 신부가 유일하다. 많은 이들이 고액 기부를 약정했다가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 신부는 “아무리 월급이라도 내 개인만의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도움이 절실한 장병들에게 돌려주자는 마음 덕분에 기부를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늘 사제답게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밝힌 그는 군종 신부가 된 이후로는 지역 사회와 군을 잇는 역할에 주목했다. “주님 성탄 대축일 트리 장식 비용을 아껴 지역의 결손 가정을 돕고, 난방비가 없어 힘들어하는 어르신들에게 극세사 이불을 나누는 등 여러 방식으로 지역과 함께해왔다”고 전했다. 정 신부는 군종교구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기부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로 “군종후원회는 물론, 출신 교구인 수원교구의 신부님들께서 군 본당 운영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어릴 적부터, 또 신학교 시절과 지금의 사목 활동까지 모두 누군가의 도움 덕에 가능했던 삶이었기에, 나도 쓸 돈을 아껴서라도 다른 이들에게 베풀고 싶다”고 덧붙였다. 군종교구에 대한 관심도 당부했다. 정 신부는 “평신도들의 ‘군종후원회’에 대부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군종교구 본당들은 실제로 도움이 절실한 곳 중 하나”라며 “신자들 가운데 어디에 도움을 주어야 할지 막막한 분들이 계시다면, 군 장병들을 위해 일하는 우리 교구를 한 번쯤 기억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웃을 돕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적은 금액이라도 기부를 실천해보는 것입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탓하기보다, 작은 도움부터 시작해보는 것이죠. 이런 작고 사소한 변화가 결국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믿습니다.”

발행일 2026-01-11 제3474호 21면

[인터뷰] 「교회와 역사」 새 연재 시작하는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조한건 신부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 순교 18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교회사연구소는 병오박해와 병인박해 순교성인들을 조명하는 연재를 월간지 「교회와 역사」에 1년간 실을 예정입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프란치스코) 신부는 2026년 병오년이 지닌 역사적 의미에 주목한다. 조 신부는 “올해는 병오박해 180주년, 병인박해 160주년이며, 아울러 1886년 한불수호조약 체결로 신앙의 자유가 일부 허용된 지 14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처럼 상징적인 해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요청들이 이어졌고, 결국 「교회와 역사」의 한 해 지면을 통해 두 박해의 순교성인들을 재조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 신부는 병오박해로 순교한 9명의 성인 중에서도 성 김대건 신부의 순교가 가지는 상징성을 강조했다. “김대건 신부님은 이미 많은 신자가 알고 계시고,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도 성상이 세워졌습니다. 비록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순교하셔서 사목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성인의 편지와 문초 기록을 보면 그의 용기와 덕행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에게는 물론,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에 참가할 전 세계 청년들에게도 큰 본보기가 되는 분입니다.” 그러면서도 조 신부는 김대건 신부처럼 널리 알려진 성인을 제외하면, 아직도 이름조차 생소한 순교성인들이 많다는 현실에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번 연재의 가장 큰 이유이자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억의 해, 호명(呼名)의 해’라는 연재 취지에는 순교자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 드리겠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새로운 사료를 발굴해 소개하는 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과거에 잘못 알려진 내용을 바로잡는 정도는 있겠지만, 무엇보다 신자들이 순교성인의 이름을 한 번이라도 더 접하고 부를 기회를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교회와 역사」 2026년 12권을 모으면 병오·병인박해 순교성인들을 널리 알리는 충실한 자료집이 될 것입니다.” 현재 제작 중인 1월호에서는 남경문(베드로, 1796~1846), 한이형(라우렌시오, 1799~1846), 임치백(요셉, 1803~1846) 등 세 명의 병오박해 순교성인을 소개한다. 조 신부는 이들이 성인임에도 여전히 신자들에게 생소하다는 점에서, 순교지와 생애, 관련 사적지 등을 함께 조명하는 것만으로도 신앙적으로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우리 교회에는 103위의 순교성인이 계시지만, 그분들의 이름을 기억하지도, 부르지도 않는다면 시복시성의 의미는 퇴색됩니다. 순교성인들이 단지 명단 속 이름으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성인들의 삶과 신앙을 접하면서 ‘이런 분이셨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감사한 일입니다.”

발행일 2026-01-04 제3473호 21면

23년 전 정착 경험 바탕으로 북향민 조력자로 활동…“북향민 마음 잘 아는 만큼 먼저 손 내밀어 줄래요”

“연말, 연초면 내가 한 해 동안 소망했던 일들, 평화의 도구가 되고자 했던 소망이 이뤄졌는지 점검해 봅니다. 저와 가족이 건강하게 신앙 안에서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새해에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살기를 기도드립니다.” 북향민으로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에서 근무하는 김미경(프란치스카 로마나) 북향민지원팀장은 남한에 정착한 지 23년이나 됐지만 새해를 맞이할 때면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간다. 그래서 한 해 한 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간절한 소망을 빈다. “2005년부터 시작한 ‘북향민과 함께하는 성탄제’를 올해도 12월 20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진행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북향민들이 봉헌한 새해 소망 글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찡합니다. 혈혈단신으로 혼자 낯선 곳에 정착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살아 본 사람만이 알겠지요. 저 역시 20여 년 세월 동안 많은 고난과 시련도 있었지만 늘 감사하는 이유는 신앙 안에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기도로써 풀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 팀장은 지금 이 자리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기쁨이고 영광이라는 생각을 잊은 적이 한 순간도 없다. 새해에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북향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민화위 신부님들을 도와서 북향민들과의 관계 형성에 중심을 둔 활동을 새롭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남한에 온 북향민들 중 하나원에서 천주교 종교활동을 하신 분들은 지역사회에 정착한 후에도 교회와 연락이 닿지만, 하나원에서 천주교를 접하지 않은 분들과는 접촉이 쉽지 않습니다. 새해에는 북향민들을 위해 발로 뛰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김 팀장은 현재 남한에 정착해 있는 북향민 3만4000여 명이 정부로부터 초기 정착금과 일자리, 주거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받고 있고, 민간으로부터 받는 도움도 있지만 아직 미흡한 부분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희망했다. “안정적인 정착과 성공을 꿈꾸며 열심히 살지만 사회보장제도에 편입되지 못해 어려움에 처한 북향민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정부가 더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들어온 북향민 자녀와 한국에서 태어난 북향민 자녀 각각에 맞는 복지제도도 강화되기를 바랍니다." 김 팀장은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남북 교류나 대화에 가시적인 진척이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꾸준한 기도와 노력이 있다면 북한도 변화될 것이라는 희망을 드러냈다. “가톨릭교회는 말 그대로 보편적인 교회입니다. 시대와 문화, 인종과 민족을 넘어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신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듯, 정치적 흐름에 따라가지 않고 교회가 묵묵히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을 실천한다면 북한도 변화될 것입니다.” 김 팀장은 “갈라진 두 친구 중 한 명이 먼저 손을 내밀고, 그래도 화해가 안 되면 두 번, 세 번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있을 때라야 다시 옛 관계를 되찾는다는 믿음으로 우리 정부와 교회가 북한에 꾸준한 화해의 목소리를 내 주기를 바란다”며 “남북 관계 역시 한순간에 눈 녹듯 풀리지는 않아도 서로 마음이 열릴 때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발행일 2026-01-01 제3472호 21면
기사 더보기더보기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