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이에게 쉴 곳 제공…교회 마땅히 할 일”

“우리 수도회는 예수님과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랬듯이 낮은 곳의 평범하고 작은 이들과 함께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지금 거리에 나와 있는 이들이 바로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작은 이들입니다.” 서울 한남동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수도회 서울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원장 김욱 다윗 신부, 이하 수도원)은 1월 4일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일대에서 밤 추위 속 화장실을 찾던 시위대에게 화장실과 회관 회의실 등을 개방해 엑스(X)를 비롯한 SNS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김욱 신부는 “그날 개방 이후에도 밤 늦은 시각 마땅히 쉴 공간이 없는 시위대에게 화장실과 회의실을 계속 개방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추위를 잠시 피해 회의실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잠깐의 잠을 청하기도 한다고 김 신부는 말했다. 수도원에는 대통령 체포를 찬성하는 시민은 물론이고 반대집회 시민들도 찾아왔다. 심지어 안전을 통제하던 경찰들도 화장실과 회의실을 이용했다. 김 신부는 “이곳에 들어온 시민들은 모두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나가신다”고 전했다. 언론과 대중은 다른 곳도 아닌 수도원이 원내 건물을 활짝 연 것에 주목했다. 김 신부는 “비신자 분들은 평소 접할 기회가 없던 수도원이 건물을 시민에게 개방하고 쉴 자리를 마련한 것이 더 특별한 일인 것처럼 느끼신 것 같다”며 “하지만 프란치스코 성인이 가난하고 아픈 이, 평범하고 작은 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사셨듯이 그 영성을 따르는 저희가 시민들에게 공간을 제공한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동안 사실 교회 밖에선 수도회가 얼마나 활발하게 대외 활동을 하는 지 관심을 안 가졌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수도회가 폐쇄된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세상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게 조금이나마 알려진 같다”고 말했다. “그날 밤 이후 수도회를 위해 후원하신 분들도 있었어요. 또 천주교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돼 믿음을 가지고 싶다는 분, 냉담자였는데 회개의 계기가 됐다는 분들도 계셨지요. 저희는 당연하고 작은 일은 한 것이지만 보람을 크게 느낍니다.”

2025-01-19

[인터뷰]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유가족 상담 봉사하는 박향란 수녀

“한 유가족께서는 신자가 아님에도 제가 수도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저의 존재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하셨어요. 저의 역할은 바로 그것인 것 같아요. 죽음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 저를 통해 하느님 나라에 대한 암시적인 희망을 주는 거죠.” 12월 29일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바로 다음 날, 박향란(레오나르도·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광주관구) 수녀는 힘든 분들을 돕자는 관구장 이순진(야고바) 수녀의 말에 무안국제공항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곳은 비탄과 애통 그 자체였다. “현장은 죽지 못해 숨 쉬고 있는 슬픔의 끝자락이었습니다. 자식의 주검을 안고 계신 성모 마리아의 피에타상 슬픔보다도 더 큰 슬픔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슬픔과 온전하지 않은 아들 시신의 모습에 날마다 실신하여 병원에 실려 가는 지인도 계셨어요.” 박 수녀는 평소 상담직 소임을 맡아왔기 때문에 유가족들의 슬픔을 나누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임했다. 또한 사회 복지 활동에 나서던 주 아가타 씨와 함께 유가족들과 봉사자들을 위한 봉사와 부스 등의 설치를 위해 노력했다. 매일 현장을 찾아 하루 종일 상주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는 다른 지역으로 기도를 다녀온 날 유가족이 “수녀님이 없는 오늘 혼자 버티기 힘들었다”는 유가족의 연락이 오면서 다음날 바로 달려가게 됐다고. “저희 수도회가 항상 먼저 선택해야 하는 대상은 고통받고 있는 자, 가난한 자와 함께하셨던 설립자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슬픔이기에 희생자 179분 모두를 위해서 저희 수도회 차원에서 영원한 안식을 위한 매일 미사와 기도를 계속 드리고 있어요.” 진도 팽목항 세월호 현장에도 함께했던 박 수녀는 첫영성체 때 소원으로 사회 복지 일과 상담 일을 꿈꿨다. 하느님께서는 박 수녀가 바라던 이 모든 것을 수도회 안에서 이루셨다. 때문에 박 수녀는 본인의 역사가 자신이라는 보잘것없는 도구를 하느님께서 수녀회로 불러 쓰신 ‘부르심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이런 슬픈 상황에서 인간의 머리로는 하느님, 예수님은 안 계신 듯할 거예요. 그러나 그분은 지금 울부짖는 이들과 함께하고 계세요. 함께 울고 계시죠.” 박 수녀는 이번 일로 공항에만 방문한 것이 아니라 장흥 장례식장까지 가서 이번 사고로 세상을 떠난 광주대교구 장흥본당 장평공소회장과 함께 희생된 일행분들을 위해 연도를 바치고 다음 방문을 약속했다. 나주에도 찾아가 참사에 희생된 젊은 부부의 장례미사에 참례했다. 이외에도 목포 장례식장 등 공동체 수녀들과 함께했지만, 마음으로나 봉사로나 아픔에 동참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며 박 수녀는 가톨릭신문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마음의 소리에 움직이십시오. 자비로운 사랑, 위로자이신 성령께서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용기를 가지고 지금 손길이 필요한 분들을 위로해 주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당신이 계셔서 세상은 따뜻합니다.”

2025-01-19

“학문적 강점으로 시대에 맞는 융합 학문 개척할 것”

“가톨릭대학교는 성신·성심·성의 세 교정이 하나의 대학을 이뤄 시대가 원하는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한 기반이 탄탄합니다. 학문적 강점을 토대로 탁월하게 가르치는 ‘연구 중심 대학’으로 나아가고, 융합 연구를 선도하는 대학으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톨릭대학교 제9대 총장으로 취임한 최준규(미카엘) 신부는 올해 1월 1일부터 4년간 임기를 시작하며 이처럼 “연구 중심 대학으로서 학문적 성과를 추구하는 가운데 탁월한 교육을 실현하고, 시대의 요청에 따른 융합 학문을 개척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최 신부는 “그간 가톨릭대가 이룩해온 바이오메디컬 분야에서의 혁신적 연구를 인공지능 및 첨단공학과 접목해 융합 연구를 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가톨릭대가 구축한 ‘첨단학과 클러스터’를 통해서다. 의약 생체소재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 특화한 바이오메디컬 클러스터, AI 신산업 분야 인재를 집중 육성하는 인공지능 클러스터 두 축으로 구성된다. “가톨릭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첨단 분야 특성화에 일찍이 집중해 왔습니다. 이제 더욱 박차를 가해 첨단산업 분야 인재로서 소양을 함양한 인재를 양성할 때입니다. 신산업 및 첨단기술이 견인할 미래사회에 대비할 수 있는 융합 연구를 선도하는 대학으로 거듭나야겠죠.” 이러한 비전을 위해 최 신부는 “경청과 소통의 문화 조성이 중요하다”며 “그를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가톨릭 교육 공동체를 형성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를 위한 계획으로 ▲가치 교육 프로그램 운영 ▲연구 성과를 강의에 반영하는 ‘연구 연계’ 수업 확대 ▲아이디어 제안 플랫폼과 타운홀 미팅 도입 ▲피드백 중심의 업무 개선 문화 ▲실험적 프로젝트 지원제도 운영 등을 제시했다. 20년 이상 교내 주요 보직들을 역임해 온 만큼 가톨릭대의 잠재력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최 신부는 2004년부터 대학발전추진단장, 교목실장, 문화영성대학원장 등 교내 주요 직책을 맡아왔다. 그는 가톨릭대의 강점을 ▲순교 정신과 오랜 지적 전통 ▲복음화 사명 ▲성과와 가치 간 균형으로 정리했다. “1855년 세워진 우리 대학은 순교자들의 유산 위에 세워진 교육기관이자, 진리 탐구와 봉사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재를 키워내고 물적 성장과 영적 가치를 균형 있게 실현하는 대학입니다. 그 자부심을 학생·교직원 모두가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제 최대 사명이 되겠죠.” 그러면서 최 신부는 ▲교직원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정기적 소통 구조 ▲직원 성장을 지원하는 협력 체계 ▲업무 환경과 복지의 단계적 향상을 약속했다. “설립 170주년이자 세 교정 통합 30주년인 올해 총장으로 취임하게 돼 뜻깊다”는 최 신부. 그는 끝으로 교육계에 점점 큰 영향을 미치는 학령인구 감소세를 언급하며 “현실적 방안들을 적용하는 가운데 가톨릭 교육 이념을 잃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생명을 위한 인간화 교육’ 방향은 변치 않습니다. 국제화한 캠퍼스 문화 정착, 성인 학습자에게도 열린 평생교육체제 구축을 통해서도 수준 높은 교육과 연구 성과를 꾸준히 제공하고 사회적 신뢰를 지켜가겠습니다.”

2025-01-12

황복만 수사, “쓰레기 매립장 아이들에겐 ‘먹거리와 교육’ 꼭 필요합니다”

“솔로몬제도는 정치, 사회, 경제 모두 열악합니다. 공산품은 물론이고 육류도 구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저의 첫 번째 우선순위는 아이들 밥이라도 한 끼 든든하게 챙겨주는 겁니다.” 살레시오회 황복만(필립보 네리) 수사는 2019년부터 남태평양 오세아니아 북부에 위치한 솔로몬제도 수도 호니아라의 직업전문학교에서 선교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러던 중 쓰레기 매립장 주변에서 임시 건물을 짓고 사는 가족의 자녀들, 일명 ‘쓰레기 매립장 아이들’이 부실한 점심을 먹는 것을 보고 지원금과 자신의 연금으로 급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황 수사는 “나는 전기와 목공을 전공한 이과라 기초수학만 하면 되는 이곳 학생들에게 수업을 해주기에 무리가 없다”면서 “하지만 학생들에게 당장 필요한 건 영양가 높은 식사”라고 말했다. 황 수사가 급식을 제공하기 전 학생들은 점심으로 비스킷 같은 과자를 주로 먹었다. 황 수사는 “이곳엔 말라리아가 흔하고 청년들이 마약인 마리화나도 구하기 쉬운 환경이라 학생들 건강과 정신에 나쁜 영향을 주는 요소가 차고 넘친다”며 “그래서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에게 솔로몬제도에서 구할 수 있는 좋은 음식이라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황 수사에 따르면 솔로몬제도에선 닭고기가 가장 귀하다. 황 수사는 또 직업전문학교 체육관에서 쓰레기 매립장 아이들을 가르친다. 식사까지는 본인의 연금 등으로 제공하고 있지만, 학생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수업을 들을 교실을 짓는 데는 부족하다. 필요한 교실이라고 해도 외국에서 수입해 온 컨테이너 정도지만 솔로몬제도, 그곳에서도 취약계층인 쓰레기 매립장 아이들에겐 꼭 필요하다. 2025년을 맞은 황 수사에게 급식 다음으로 중요한 건 교실을 짓는 일이다. 휴가로 한국에 한 달을 넘게 머물렀지만, 그의 머릿속은 온통 솔로몬제도 아이들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휴가를 마치고 솔로몬 제도로 돌아가면 아이들을 위해 교실을 꼭 설치하고 싶습니다. 조금씩 환경을 개선해서 아이들이 정규학교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2025-01-12

[인터뷰] 소아암·난치병 환아들에게 희망 전한 이명진 원장

12월 20일 수원 이의동 비엠잉글리쉬 영어교습소(원장 이명진 아녜스)에서는 특별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렸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 24명이 이명진 원장(수원교구 동수원본당)과 함께 소아암·희귀 난치병 환아들의 영상을 시청하고, 환아들을 위한 응원 카드를 만들고 기부금을 전달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소아암·희귀 난치병 환아들을 위해 펼친 ‘산타가 되어주세요’ 캠페인에 동참하는 ‘사랑 나눔’의 크리스마스 파티였다. 이 원장은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아이들 마음에 심어주고자 올해 학원 파티는 이렇게 나눔의 기회로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원 식구들끼리 즐기기보다, 이웃과 나누는 더 큰 사랑의 기쁨을 아이들이 듬뿍 느끼도록 인간애 실천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제 교육 철학은 ‘Let your learning benefit not only yourself but the world(너의 배움이 너 자신뿐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하라)’예요. 워크시트와 학원 문구류 곳곳에 쓰여 있어서 학원 아이들도 이미 다 알고 있죠. 아이들이 영어만 잘하는 걸 넘어, 배운 것을 선하게 쓸 줄 아는 전인적인 사람이 되도록 이끄는 게 가톨릭 교육자의 자세니까요.” 선물이나 스낵 타임에만 관심이 있을 줄 알던 아이들은 아주 진지하게 파티에 임했다. 처음에는 파티 분위기에 잔뜩 들떠 있다가도, 소아암과 투병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접하자 진지해졌다. 뒤에 있을 스낵 타임도 자진해 줄이고 카드 만들기에 공을 들였다. 이 원장은 “‘아픈 친구들은 이번 크리스마스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하며 어른보다도 도타운 사랑을 보여준 아이들을 보며 뭉클해 그만 울컥했다”고 고백했다. ‘영어나 잘 가르치지’라며 메마른 눈총을 준 사람은 없었다. 이 원장은 “제 교육 철학을 깊이 공감해 주시는 학부모님들 덕에 오히려 힘을 얻었다”며 웃었다. “‘우리도 아이에게 말로만 나눔을 가르쳤지 이렇듯 실천할 기회를 주지는 못했다’고, ‘아이가 친구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서 기쁘다’고, ‘앞으로도 특별한 날이면 아이와 함께 후원을 해보려고 한다’고까지 말씀한 부모님도 있었죠.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말씀들을 해주시니, 제가 아닌 주님께서 이번 나눔을 행하셨다는 묵상이 다가왔습니다.” 끝으로 ‘언어는 존재의 집’(Language is the house of Being)이라는 한 철학자의 말을 언급한 이 원장. 그는 “이렇듯 언어는 인간의 내면이 담기기에, 단순히 문제를 풀고 시험을 잘 맞기 위한 게 아니라 서로 다가가고 생각을 공유하는 도구”라며 “유창하면서도 그 안에 선함이 듬뿍 묻어나는 영어를 아이들이 할 수 있도록 가르치겠다”고 전했다. “우리 학원 아이들은 ‘영어를 잘 모르는 반 친구를 도와줬어요’, ‘영어를 잘해서 다른 사람에게 무료로 가르쳐 주고 싶어요’라며 늘 입버릇처럼 말해 온답니다. 그 어진 품성들이 진정 학습에서 빛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사로서 소명을 다하고 싶어요.”

2025-01-05

“공수 강하의 두려움까지도 장병들과 나누고 싶었죠”

“공수 강하 임무에 투입되는 장병들의 등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그들의 두려움을 곁에서 직접 보듬어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역량을 갖추고자 훈련에 스스로 지원했습니다.” 군종교구 해병중앙본당 주임 박동진(안드레아) 신부는 이렇듯 “장병들이 감수해야 하는 공수 강하 훈련의 두려움까지도 함께 나누고자” 해병대 군종사제단 처음으로 훈련에 자원해 2024년 11월 18일부터 12월 6일까지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장병들이 있는 곳 어디든 찾아다니는 군종사제 일과만으로도 힘겹지 않았을까. 박 신부도 장병 위문과 상담, 자살 예방과 회복탄력성 교육으로 매일 긴 시간과 거리를 무릅쓰고 돌아다녀야 하지만, “해병대 장병들과 더 깊이 있게 공감하고 그들의 자부심을 아는 최선의 방법으로 훈련에 직접 함께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처음에는 신학생 시절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던 경험만으로 대원들과 충분한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해병대 장병들은 공수 강하처럼 가장 어렵고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이 있어요. 같은 마음을 나누고 싶었기에 실천할 용기가 솟았습니다.” 교육마다 진행되는 체력 훈련, 1200피트의 강하 높이, 20㎏ 넘는 군장을 이겨내는 건 힘겨웠다. 박 신부는 “몸이 피곤해지니 마음도 여유를 잃어 장병들에게 한결같이 따뜻하게 다가가기 힘들 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는 같은 교육생들에게서 위로자이신 예수님을 발견하며 각오를 다잡았다. “자기보다도 힘겨워하는 동료를 챙기고 위로하는 장병들에게서 배웠어요. 저야말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면모일 테니까요. 그래서 힘들어도 먼저 웃음을 보이고 따뜻한 말을 건네며 교육생들과 많이 친해지고 더 밀접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직 사명감만으로 아찔한 높이를 서슴없이 강하하는 장병들과 같은 경험을 나눈다는 건 박 신부의 성소를 새롭게 했다. 박 신부는 “인간적인 두려움마저 결의로써 극복해 내는 이들이 내 동료라는 게 자랑스러웠다”며 “군종사제로서 그들을 위해 내 몸을 기꺼이 내던지겠다는 다짐이 한층 더 단단해졌다”고 역설했다. 장병들과 기꺼이 같은 상황에 뛰어들고 공감하는 사목을 실천으로써 보여준 박 신부. 그는 “2000년 전 지상에 오셨던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와 온전히 같아지시고, 같은 것을 느끼시고 이해해 주셨다”면서 “그런 그리스도를 따른 ‘젖어 드는 사목’을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이어나가고자 한다”고 고백했다. “종교가 힘을 잃고 하느님의 부재를 말하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그저 삶으로 증언해 내고 싶습니다.”

2025-01-01

“국가가 돌보지 않는 2만 명 아이들에게 관심을”

‘유럽미술 300년’ 전시회가 12월 13일 대구대교구 주교좌범어대성당 드망즈갤러리에서 열려 26일까지 계속된다.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역임했던 김진수(시몬) 유로 오스트리아 아츠 대표가 자신의 소장 작품을 전시한다.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던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알브레흐트 뒤러, 파블로 피카소, 르누아르, 구스타프 클림트, 마크 샤갈,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등의 명작 원화를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대문호 헤르만 헤세가 편지지에 직접 그린 그림도 만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오스카 코코쉬카의 작품을 관심 있게 살펴봐 주십시오. 여성 화가들의 작품도 추천합니다. 당시 차별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열정과 천재성으로 빛났던 몇 안 되는 천재 여성 화가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10년 동안 공부했던 김 대표는 유학 시절을 시작으로 귀국 후에도 유럽 출장과 빈대학교 교환 교수 시절 등을 기회로 해서 40여 년 동안 명화 수집을 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전시 수익을 베트남 귀환 여성 자녀들의 교육 지원에 쓴다고 밝혔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한국에서 다문화가정을 꾸렸으나 다시 베트남에 돌아간 여성들의 자녀 수를 2만 명가량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중 절반 정도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습니다. 베트남도 한국도, 그들에게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습니다.” 귀환 여성 자녀들 대부분은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농사일에 투입된다. 고등학교 교육마저 사치라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자녀들은 대학 진학을 엄두도 못 낸다. 어린 시절부터 미래에 대한 꿈이 차단된 그들을 위해 김 대표는 도움을 결심했다. “전시회 판매 수익금으로 내년부터 자녀들의 4년 대학 등록금 지원사업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대학 성적이 좋으면 국비 장학생으로 한국에 올 수 있고, 대학원을 마치면 그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김 대표는 독자들도 함께 마음 모아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신다면 꿈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학생이 훨씬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이 아이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비의 손길을 내밀어 주십시오.” ※ 후원 하나은행 333-18-00993-2 김진수

2024-12-15

“실질적 도움 되는 피정으로 청년들을 초대합니다”

“청년들을 보면 남 같지 않아요. 저도 지난날 10년 넘게 우울증이 심하다가 동생 때문에 기도 모임을 나가며 하느님을 대면하게 됐고, ICPE 초기 멤버인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했죠.”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이하 ICPE) 한국지부장 우기홍(미카엘) 선교사는 일과 인간관계, 사랑, 신앙에 있어 부침이 많았던 지난 삶을 소회하며, 하느님을 만난 뒤 서울가톨릭연극협회 회원이자 성극(聖劇) 배우로 활동하게 된 이야기를 나눴다. ICPE는 신자 대상 선교 단체로 교회 내 복음화에 힘쓰고 있다. 특히 청년 대상으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이 강조한 몸 신학을 중심으로 두고 이에 관한 여러 피정을 개최한다. 하느님 자녀로서의 정체성 피정, 청장년층의 혼인 성소를 찾기 위한 만남의 장인 ‘지저스 시그널’, 그 후속 모임이자 성·생명·사랑을 주제로 다루는 몸 신학 피정, 하느님과의 관계 치유와 회복인 SONE, 이혼한 신자들의 만남과 치유의 장인 ‘비긴 어게인’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 이중 2022년부터 시작한 지저스 시그널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 지부장은 “코로나19로 비대면에 익숙해진 청년들이 만남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론 만남에 갈증을 느끼는 걸 보며 많이 안타까웠다”며 “이들을 신앙 안으로 불러들이고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친교를 이루게 하며,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이고 삶을 충만하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저스 시그널에서는 2박 3일 동안 남녀 동수가 모여 미사와 강의뿐만 아니라 올림픽과 데이트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한다. 현재 5차까지 진행된 지저스 시그널을 통해 두 쌍이 결혼하고 여러 커플이 탄생하는 등 실질적 결실도 맺었다. “점점 떨어지는 결혼·출산율을 보며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위한 일을 해보자는 비전으로 시작했다”는 지저스 시그널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와 보건복지부의 후원도 받고 있다. 참가자들은 일회성 만남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 지부장은 “지저스 시그널 1차~5차까지 모두 모인 단체채팅방도 있고 북클럽이나 공연 관람 등 후속 모임도 하고 있으며, 내년쯤 전체 기수가 모이는 운동회도 계획하고 있다”며 “단순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뛰어넘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친교의 충만함과 풍족함을 느끼는 기회이자, 그 완성인 혼인과 성가정으로 가는 첫걸음이 되는 피정”이라고 밝혔다. 청년들과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경험을 한 인생 선배로서 우 지부장은 본당과 지구 차원에서도 지저스 시그널 등의 피정 지원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달려가겠다며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희망했다. “지저스 시그널에 대한 청년들의 반응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교회에 대한 바람을 읽었어요. 앞으로도 처음 설정한 선의의 목적과 교회 질서를 거스르지 않는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참가자들이 영적·육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여정에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2024-12-15

쪽방촌에 파자마 나눔…“존중받는 아늑함 선물했어요”

“쪽방촌이라는 공간이 조금이라도 아늑한 휴식의 집이 되었으면 해서 저희 파자마를 기부하게 됐어요.” 이틀째 이어진 폭설로 수도권이 온통 빙판이 된 11월 28일, 파자마 브랜드 ‘폴앤안나’를 운영하는 박안나(안나·서울대교구 수서본당) 대표와 박한아(로사·서울대교구 잠실7동본당) 부대표 자매는 이날 서울 동자동 쪽방촌을 찾아 주민들에게 손수 파자마를 나눠줬다. 봉사 계기에 대해 두 자매는 “편한 소재와 핏이 특징인 파자마의 ‘편안함’이, 거동이 불편해 집에 오래 머무는 쪽방촌 주민들에게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아늑함을 가져다주길 바란다”는 진심을 밝혔다. 두 자매는 생산된 상품 중에서도 가장 따뜻하고 원단이 편안한 제품을 선별해 기부했다. 주민들이 존중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정성스럽게 포장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가올 성탄의 기쁨도 안겨주고자, 직접 그린 아기자기한 눈사람 스노우볼이 자수로 놓인 파자마,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적록 계열의 파자마 등 계절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선물을 준비했다. 디자이너인 박 부대표는 “우리 브랜드가 추구하는 활기찬 생동감과 긍정의 이미지가 소외된 이웃에게일수록 필요하다”고 밝혔다. 폴앤안나가 지향하는 가치는 브랜드 로고의 노란색처럼 활기찬 생동감과 긍정의 이미지다. 파자마를 입는 사람들과 그 공간에 생명력과 에너지를 선사하고자 생동감 있는 색깔의 패턴과 원단을 사용한다. “쪽방이라는 말대로 좁은 곳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하루를 거의 혼자 보내는 병든 분이 특히 많죠. 그런 분들일수록 ‘활기차고 긍정적인 생활은 내 것이 아니야’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하느님 안에 모두가 평등하다면, 그분들의 생동감과 긍정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되찾아 줘야지 않겠어요?” 어머니를 따라 무연고 노인들의 목욕 봉사 등 소외 이웃을 섬겨온 박 대표도 “가난한 이들 중에도 더 특별한 관심과 정성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어머니가 자신을 봉사에 데리고 다니며 새겨주던 말을 덧붙였다. “아이들은 예뻐서 도움의 손길이 한 번 더 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누군가는 그조차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가르침이었다. 폴앤안나는 화려한 색감과 디자인으로 인해 품격 있는 라운지웨어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브랜드 가치를 위해서라면 기부와 봉사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이윤 창출과 정반대일지 모르는, 잠재 구매력이 없는 이웃을 위한 ‘나눔’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박 대표는 쑥스러워하며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패션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모두의 마음속에는 사실 인간을 향한 따뜻함, 인간을 위한 참된 미(美)의 갈망이 있다고 믿어요. 우리의 나눔이 그 진정한 아름다움을 실현해 나가는 작은 봉헌이 되길 바랄 따름이죠.” “선한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생산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진심으로 담아낸 상품을 만드는 데 있다”는 박 대표와 부대표. 두 자매는 “파자마 선물을 나눔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럽지만, 쪽방촌 이웃들이 파자마를 입고 거울을 보며 잠시 즐겁고 따뜻한 마음이 든다면 우리에게도 크나큰 뿌듯함과 행복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2024-12-08

“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항상 이뤄주심 느껴”

“저는 ‘봉사’하고 있지 않아요. 그저 하느님 부르심대로 살고 있을 뿐이에요.” 아프리카 케냐와 말라위에서 활동 중인 전교가르멜수녀회 정춘실(데레사·케냐 키텐겔라 공동체 원장) 수녀가 제4회 마리안느·마가렛 봉사 대상 간호 부문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정 수녀는 봉사를 하지 않는데 봉사 대상을 수상한 것이 너무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쳤다. 간호학을 전공한 정 수녀는 2003년 케냐 성 소화 데레사 진료소 설립 때부터 현재까지 진료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는 말라위 음텡고완텡가의 병원에서 11년간 대표를 맡기도 했다. 성 소화 데레사 진료소는 거의 무료 수준으로 진료비를 받고 있어 다른 곳에 비해 많은 사람이 찾는다. 한 달에 외래진료만 약 1300명, 예방접종을 원하는 어린이와 산부인과 진료를 보는 임산부까지 합하면 한 달 방문 환자는 2000명을 훌쩍 넘는다. “형편은 항상 빠듯하지만 직원들 월급을 못 준 적은 없어요. 하느님께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늘 돌봐주심을 느낍니다.” 정 수녀는 아프리카에 있던 지난 20여 년간 거의 4개월 단위로 헌혈을 했다. 첫 헌혈은 심한 빈혈로 혼수상태 직전에 있던 한 여학생을 위해서였다. 케냐에는 당시만 해도 다른 사람에게서 수혈받는 걸 금기시하는 풍조가 있었는데 정 수녀에게서라면 받겠다고 해서였다. 그 뒤로 정 수녀는 산모들을 위해 항상 혈액을 비축해두려고 헌혈을 해왔다. 정 수녀는 “검사실에서도 혈액을 못 구하면 제게 연락하기로 돼 있을 정도”였다며 “재작년에 무리한 진행으로 쓰러진 뒤 헌혈을 중단하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학구열이 높은 케냐 학생들을 돕기 위해 전교가르멜수녀회 재속회원들의 지원도 받았다. 2003년부터 재속회를 통해 모금 활동을 벌여 한 가정 돕기 운동을 해오고 있다. 정 수녀는 “학생들이 자라서 의사, 간호사, 회계사 등이 돼 함께 일하게 됐을 때 뿌듯했다”고 전했다.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투신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해요.” 이번 봉사 대상 추천도 한사코 거절했지만 결국 하느님께서 이뤄주심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지나가는 길에서 마주친 누군가가 “아플 때 도와줘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건넬 때 큰 보람을 느낀다는 정 수녀는 상금을 이동 진료를 위한 자동차 구입에 사용하겠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앞으로도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입회 때 마음가짐으로 살고 싶습니다.” 제4회 마리안느·마가렛 봉사 대상 시상식은 11월 29일 전남 고흥군 주최로 마리안느·마가렛 나눔 연수원에서 개최됐다. 마리안느·마가렛 봉사 대상은 소록도에서 40여 년간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살았던 두 간호사의 숭고한 정신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제정됐다.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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