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 카리타스 50주년 맞아 특별 공로상 수상한 최재선 전 사무국장

“가난한 이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공감대’를 신자들 사이에 형성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모금의 액수보다 중요한 건 나눔의 정신이 교회 안에 뿌리내리는 것이었죠.” 지난 6월 19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한국 카리타스 설립 50주년 기념식에서 특별 공로상을 수상한 최재선(폴리카르포·85) 전 한국 카리타스 사무국장은 한국 카리타스의 전신인 인성회(仁成會) 창립 이전부터 2003년까지 30여 년 동안 한국교회 사회복지와 해외원조 사업의 기반을 닦고 성장시켜 온 주역이다. 미국 가톨릭교회 해외원조 기구인 가톨릭구제회(CRS) 한국지부에서 일하던 최 전 사무국장은 CRS가 1974년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새로운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당시 지부장이던 조지 캐롤 몬시뇰(메리놀 외방전교회)의 도움을 받아 국제 카리타스 본부와의 연락을 주도하며 인성회 설립을 준비했다. 이듬해인 1975년 인성회가 창립되면서 그는 한국 카리타스 초창기 체계 구축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손을 거쳐 이뤄진 대표적인 사업들로는 ▲1977년부터 전개된 단식 자선 모금인 ‘사순절 운동’ ▲1993년 ‘해외원조 주일’이 제정되며 시작된 한국교회의 해외원조 ▲1995년부터 본격화된 대북 지원 사업 등이 있다. 이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 한국교회 안에 ‘나눔’의 문화가 정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사순절 운동의 표어는 ‘사랑으로 가진 바를 나누자’였어요. 중요한 건 액수가 아니라,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죠. 그래서 흩어져 있던 자선·복지 단체들이 협력할 수 있도록 전국 단위 협의체도 여러 개 만들었습니다.” 1980년대 이전, 한국 사회는 가난과 정치적 억압 속에 놓여 있었고, 교회는 외국의 원조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외부 지원이 점차 줄어들면서 한국 카리타스는 스스로 모금하고 자원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국가와 지역에 나눔을 실천하는 기관으로 전환해 갔다. “초기엔 걱정도 많았지만, 매번 기대 이상의 성금이 모였어요. 이를 통해 한국교회도 이제는 원조를 받는 데서 나아가, 나누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죠.” 그는 한국 카리타스가 지금도 지켜가는 핵심 가치로 ‘인간 존엄성 수호’를 꼽는다.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자극적으로 드러내어 모금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복음 정신에도, 인권에도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죠. 교회를 다 팔아 도움을 준다 해도, 그것은 빈곤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정도일 뿐이에요. 중요한 건,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 곁에 있을 가난한 이들, 그리고 그들 안에 계신 주님을 섬기는 태도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존재 이유 역시 바로 이 연대에 있다고 강조했다. “하느님 아래 같은 자녀인 우리는, 이념과 정치, 국경을 넘어 서로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고 그리스도교는 가르칩니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입니다.” 끝으로 그는 한국 카리타스의 설립 50주년이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언제부턴가 도움의 손길이 끊긴 북한을 비롯해, 더 많은 가난한 세계 이웃에게 한국과 국제 카리타스 활동가들이 위로와 희망을 전할 수 있도록, 많은 분이 마음을 모아주시길 바랍니다.”

발행일 2025-06-29 제3448호 21면

[인터뷰] 미수습 전사자 유해 발굴과 영원한 안식 위해 기도하는 이충호 할머니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에 갈 때마다, 어딘가 묻혀 있을 오빠의 유해를 하루라도 빨리 찾아 양지 바른 곳에 모셔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이충호(제노베파·93·수원교구 군포 용호본당) 할머니는 해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되면 6·25전쟁 중 전사했지만 75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해를 찾지 못한 오빠 이종호 씨 영혼을 위해 더욱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오빠가 1948년 육군사관학교 8기생으로 입교한 뒤 한 번도 만나지 못했어요. 1950년 11월 26일, 강원도 양구·화천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나중에서야 듣게 됐지요. 아직까지 유해를 찾지 못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것이 여전히 가슴 깊은 한으로 남아 있어요.” 이 할머니는 오빠의 유족이라고는 이제 자신밖에 없다는 안타까운 생각에 위패를 모신 국립서울현충원을 찾는다. 혼자 힘으로는 어려워 아들이나 손자녀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꼭 발걸음을 옮긴다. “좁은 공간에 무려 10만4000여 명의 미수습 전사자 이름이 검은 오석에 빼곡히 적혀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다는 소식이나 수습한 유해가 최고의 예우 속에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장면을 뉴스에서 접하면, 우리 오빠를 비롯해 수많은 미수습 전사자 유해도 하루 빨리 찾아 정성껏 비석을 세우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이 할머니는 미수습 전사자들이 한국교회와 사회에서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섭섭함도 토로했다. “성직자들과 정치인들이 국립묘지에 찾는 경우가 자주 있지만, 미수습 전자사 위패봉안관에 모셔진 분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혈육이 아니라고 이렇게 무관심해서는 안 되지요.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들임에도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면 교회와 사회가 더욱 합당한 예우를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행일 2025-06-29 제3448호 21면

[인터뷰] 대구대교구 찾은 홍콩교구장 초우 추기경

홍콩교구장 초우사오얀 추기경(Chow Sau-yan, S.J.·周守仁·스테파노)이 6월 9일부터 11일까지 대구대교구를 방문했다. 초우 추기경의 방문은 대구대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가 홍콩 성 정하상 바오로 한인본당(주임 김종호 요셉 신부) 견진성사를 위해 2024년 10월 홍콩을 방문한 것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성사됐다. 대구대교구는 홍콩 한인본당에 1991년부터 전담 사제를 파견하고 있다. “조환길 대주교님께 ‘시노달리타스’를 한문으로 표기한 족자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홍콩교구와 대구대교구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함께 걸어가는 좋은 관계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초우 추기경은 10일 오전 대구대교구청에서 교구 사제단과 환담하고 성모당에서 조 대주교와 미사를 공동 집전했다. 이어 이틀에 걸쳐 교구 성직자묘지, 대구대교구 대신학교, 관덕정순교기념관, 가톨릭신문사, 대구가톨릭평화방송, 주교좌계산대성당, 대구가톨릭대학교 효성캠퍼스 등을 둘러봤다. “대구대교구의 114년 역사가 교구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놀랍고 감동적입니다. 초대교구장 드망즈 주교님을 시작으로 지난 세월 동안 모든 교구 사제·신자들이 한마음으로 노력한 결실이라 생각합니다.” 홍콩가톨릭교회 역사는 1841년 홍콩에 지목구가 설정되면서 시작됐다. 현재 홍콩교구 신자는 약 40만 명이다. 초우 추기경은 대구대교구의 사회복지와 교육 활동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홍콩교구 역시 사회복지와 교육 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대교구 학교법인 선목학원에는 21개 교육기관과 병원 등이 운영되고 있으며, 10개의 사회복지법인과 118개 사회복지시설·단체가 지역사회에서 활동 중이다. 초우 추기경은 특히 대구가톨릭대학교에 24개 국가 1787명의 유학생이 공부하고 있으며, 그중 1177명이 중국 학생인 것에 놀라워했다. “이번 방문으로 많은 곳을 둘러보고 많은 정보를 교환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대구대교구를 보며 많은 감명을 받았고, 앞으로도 꾸준히 교류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초우 추기경은 예수회 소속으로, 2021년 홍콩교구장에 착좌했다. 2023년 9월 30일, 현 레오 14세 교황인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과 함께 추기경에 서임됐다.

발행일 2025-06-22 제3447호 21면

[인터뷰] (재)통합의료진흥원 신임 이사장 장병배 신부

6월 12일 재단법인 통합의료진흥원 제5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장병배 신부(베드로·대구대교구 1대리구 교구장 대리)는 “환자 중심의 참다운 전인적 치료 실현이 ‘통합의료’의 시작이고 목적”이라며 “특이 질환뿐 아니라 감기부터 만성질환까지, 어떤 병이든 전인병원에서 치유(Healing)와 돌봄(Care)까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통합의료진흥원은 현대의학과 한국전통의학을 융합한 신개념 의료모델인 통합의료를 연구, 진료, 교육하고 있다. 통합의료라는 개념과 용어를 처음으로 도입한 통합의료진흥원은 양·한방이 조화롭게 융합된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2009년 대구가톨릭대학교의료원과 대구한의대학교의료원, 대구광역시가 손을 잡아 탄생했다. 통합의료진흥원의 연구 성과로 치료율뿐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의료를 현실화하기 위해 2015년에는 ‘전인병원’(원장 추성훈 바오로 신부)을 대구 대명동에서 개원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장 신부는 지역민 특히 신자들조차 아직 대구대교구가 전인병원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며 안타까워했다. “통합의료진흥원과 전인병원의 존재 이유는 예수님의 전인적 치료를 우리 삶 한가운데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인적 의료를, 사람들을 낫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배웁니다.” 통합의료진흥원은 지난 16년 동안 미국 하버드 암센터 등 세계 유수 의료기관들과 활발하게 연구와 정보 공유, 인적 교류 등을 하면서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규 건강보조성분(NDI) 4건 인증, 국내외 다수 논문 발표, 국제회의 개최 등 성과를 거뒀다. 이 같은 성과는 지난 10년 동안 전인병원의 진료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장 신부는 전인병원이 많은 사람에게 암과 같은 난치병만을 치료하는 병원으로 오해되는 것 같다며, 병의 경중(輕重)을 떠나 모든 환자에게 전인적 치유가 이뤄지도록 돕는 병원임을 강조했다. “전인병원의 치료 분야는, 암 환자에게 중요한 전인적 치료뿐 아니라, 의사와 한의사의 통합의료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는 재활치료에도 특화돼 있습니다. 당연히 일반 감기 환자분들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열린 병원입니다. 통합의료진흥원과 전인병원이 많은 분에게, 특히 그리스도의 전인적 치유를 믿는 신자분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합니다.”

발행일 2025-06-22 제3447호 21면

[인터뷰] ‘청년 자립 지원 쉐어하우스’로 아파트 기증한 김춘미 씨

지난 5월 중순, 경기도 일산의 한 아파트가 ‘사회복지법인 안나의집’(대표 김하종 빈첸시오 신부, 이하 안나의집)의 청년 자립 지원 쉐어하우스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안나의집은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함께 생활하며, 안정된 일상과 독립을 대비할 수 있도록 ‘쉐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공간은 안나의집이 경기도 곳곳에 운영하는 ‘쉐어하우스’ 가운데 열 번째 시설로,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김춘미(예수의 성녀 데레사·82·수원교구 분당구미동본당) 씨의 기증으로 가능해졌다. “20여 년을 남편과 함께 살아온 집이에요. 근처 호수공원을 자주 산책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집을 처분해 노후 자금으로 쓸 수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이곳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김 씨가 증여한 아파트는 실면적 148㎡(45평) 이상으로, 방 네 개와 넓은 거실 등을 갖췄다. 이미 두 명의 청년이 입주해 직장생활을 하며 자립을 준비 중이다. 안나의집은 현재 단기쉼터, 중장기 쉼터, 그룹홈, 자립지원관 등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통해 청소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집이 있는 청년들이 한 달에 두 번 방문해 상담과 지원을 받는 형태, 집이 없는 청년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쉐어하우스’ 형태 등을 운영한다. 김 씨는 오래 전부터 안나의집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고, 정기 후원도 이어왔다. 실버타운으로 이주하면서, 김하종 신부를 직접 만나 아파트 기증 의사를 밝혔다. “오랫동안 위기 청소년들의 삶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언젠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안나의집 홈페이지를 보면서 신부님이 청소년과 노숙인을 돌보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고,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깝다’, ‘아쉽다’는 생각은 없었을까. 김 씨는 "그런 섭섭함보다는 ‘내가 그래도 보람 있는 일을 했구나 라는 기쁨이 더 크다”며 “신부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고, 남편도 ’복 받을 거야'라는 말로 응원해 줬다”고 전했다. ‘쉐어하우스’는 김 씨의 세례명을 딴 ‘대 데레사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거실에 작은 팻말도 걸렸다. “예전 십자가와 성모상을 걸어두었던 곳에 자리한 팻말을 보니 참 기뻤다”는 그는 “하느님께서 ‘나누고 사랑하라’ 하셨는데, 그 말씀을 실천에 옮겼다는 자부심이 조금 생겼다”고 했다. “어떤 청년이 들어와 살게 되든, 이 집에서 잘 지내며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누구든 행복하게,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면 좋겠어요.”

발행일 2025-06-15 제3446호 21면

[인터뷰] 노숙인 위한 목욕탕 ‘우리물터’서 25년간 봉사한 홍순용·조재순 부부

“봉사를 하면서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물터에서 봉사하며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고 느끼며 살아갑니다." 서울대교구 남대문시장준본당 ‘우리물터’에서 25년 간 봉사해 온 홍순용(이냐시오)·조재순(클라라) 부부는 “노숙인 이용자들과 함께한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부부는 지난 5월 21일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 명의 감사패를 받았다. 우리물터는 노숙인, 쪽방촌 거주자 등이 목욕·빨래를 할 수 있도록 본당이 마련한 공간이다. 본당 초대 사목회장이었던 홍 씨는 본당 초대주임 이성원(베드로) 신부와 함께 우리물터 설립에 앞장섰다. 당시는 IMF 외환위기로 노숙인이 급증한 때였다. 성당 완공 후 “내적 성전을 세우자”는 이 신부의 제안에 홍 씨는 지하도에서 노숙인들을 직접 만나 식사나 방한도구 등을 전하며 노숙인을 위해 봉사했다. 하지만 일시적인 도움은 큰 힘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고, 모임을 구성해 지속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고민해 마련한 곳이 우리물터다. “단 한 두 사람이라도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우리물터의 문을 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봉사합니다. 굉장히 어렵고 막막한 순간에도 일이 해결되는 걸 보며 ‘이건 우리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남대문시장 신자들이 좋은 뜻으로 설립한 곳이었지만,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많은 노숙인이 모여들어 민원이 들어오고, 후원금과 봉사자 부족으로 운영 중단을 고민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물터에는 도움의 손길이 이어져왔다. 홍 씨 개인적으로도 가게 운영이 어려운 시기도 있었고, 암 투병도 했다. 그래도 그는 힘 닿는 대로 매주, 또 우리물터에 문제가 생기면 가게를 비우고서라도 찾아 봉사했다. 홍 씨가 그렇게 봉사에 매진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준 것이 아내 조 씨였다. 홍 씨 대신 가게를 지켜야했기에 우리물터 현장에 나설 수는 없었지만, 조 씨는 홍 씨가 봉사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런 노고에 감사패도 함께 받았다. 조 씨는 “처음에는 세상일은 뒷전으로 하는 남편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온전히 봉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라며 “노숙인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잘 대접하려는 남편의 모습에 ‘예수님께서 이 아들을 얼마나 예쁘게 생각하실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이용자들이 가족 같다는 느낌입니다. 힘들었던 순간들도 이용자들과 함께하면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봉사하면서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은, 참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발행일 2025-06-15 제3446호 21면

[인터뷰] 프라도 수녀회 전 국제총장 마리 조 바리에르 수녀

프라도 수녀회 전 국제총장 마리 조 바리에르(Marie-Jo Barrier) 수녀가 프라도 한국 진출 50주년 기념 행사 참석을 위해 5월 24일부터 6월 9일까지 방한했다. 프랑스인 바리에르 수녀는 프라도 한국 진출 직후인 1978년부터 1997년까지 한국에서 활동하며 프라도 영성을 널리 전파하고 프라도 수녀회 성장의 기틀을 다졌다. 한국교회 ‘노동사목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고(故) 올리비에 드 베랑제 주교(한국명 오영진)가 한국 프라도 사제회 발전의 선구자였다면, 바리에르 수녀는 한국 프라도 수녀회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바리에르 수녀는 “한국 프라도가 ‘파견된 고장 사람들의 생활 조건,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 그들의 기쁨과 갈망을 함께 나누는’(프라도 수녀회 회헌 202항) 영성을 한결같이 지켜왔기에 50주년이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들과 다르지 않은 처지에서 함께했다는 게 저희 사도직의 특별함이에요. 우리는 설립 초기부터 각자 공장 일꾼, 파출부, 비닐하우스와 밭에서 땀 흘리는 삯일꾼이 되어 노동자들과 가난한 농촌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생활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내어놓고 같은 인간이 되어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요.” 프라도 수녀회는 사제들과 달리 수도자로서 공동생활을 한다. 바리에르 수녀는 “그래서 오히려 제약 없이 가난한 이들과 지속적으로 함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동체(수녀회)가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덕에, 구성원은 바뀌더라도 가난한 이들을 도중에 두고 떠날 일이 없었다. 덕분에 한국 프라도 수녀회는 가난한 이들과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었다. 바리에르 수녀는 “마치 ‘옆집 아줌마’처럼 그들과 밀착해야만 가능한 사도직들을 펼쳤다”고 회고했다. 1994년에는 장애나 생활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파출부’ 활동에 나섰다. 같은 해 서울의 낙후된 마을에서 시작한 ‘맛있는 것 해 먹는 모임’도 가난과 가정불화 등으로 방치된 청소년들을 집으로 초대해 몸과 마음의 굶주림 모두에서 벗어나게 해 준 사회적 안전망이었다. 바리에르 수녀는 “가난한 이들이 우리에게서 예수님을 만나 꽃처럼 활짝 피어날 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5월 27일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열린 50주년 기념 미사에서 바리에르 수녀를 감동시킨 것도 성당을 가득 채운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모두 프라도 수녀회 회원들과 긴 세월 동고동락했던 노동자와 아이들, 가난과 아픔을 짊어진 이들이었다. “그날 한 자매님의 증언이 지금도 감동으로 다가와요. ‘계속 가난한 삶을 살더라도, 가난 속에서 우리를 만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돼 너무 행복하다’고, ‘제가 계속 가난한 사람으로 있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고백이었죠.” 바리에르 수녀는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주체”라며 “그런 복음의 사도들과 일치해 살아가는 소중한 영성을 프라도 사제회와 프라도 수녀회, 프라도 여성 재속회 등 한국 프라도회 모든 가족이 앞으로도 소중히 간직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발행일 2025-06-08 제3445호 21면

[인터뷰] 대만 ‘나프로 임신법’ 전문가, 아를렌 테 수녀

“나프로(NaPro) 임신법은 본연의 가임력이 회복되도록 치료를 하죠. 불임의 근본 원인은 치료 못하고 임신을 그저 성공률에 맡기는 인공수정 시술과는 달라요.” 대만 티엔추기경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나프로 임신법 전문가 아를렌 테 수녀는 5월 24일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성의회관에서 개최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생명의 복음」 반포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회칙 「생명의 복음」과 회칙이 의료 및 출산에 미치는 영향’ 주제 발표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나프로 임신법은 ‘자연적인 가임력 기술’(Natural Procreative Technology)의 영문 약자로, 가톨릭 영성을 바탕으로 건강한 자연임신 가임력을 극대화하도록 도와주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통한 임신율이 26%가 넘은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자연주기법을 활용하기에 당장 빠른 결과를 보이는 인공수정에 비해 현실적으로 불편한 점이 존재한다. 테 수녀는 “이런 불편함을 극복하려 하기보다 부부가 서로 도우며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어떤 자녀가 주어지든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면서 부부의 친밀감을 두텁게 하고 하느님의 힘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프로 임신법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테 수녀는 “나프로 임신법과 자연주기법의 긍정적인 부분을 사목적 관점에서 가르쳐야 할 것”이라며 “신학교 과정 도입이나 강론에서의 언급, 교리 문답, 콘퍼런스 개최 등을 통한 적극 홍보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SNS나 웹사이트를 구축해 소외계층이나 농촌 사회에도 활발히 알릴 수 있다”며 “무엇보다 관련 책자를 여러 언어로 번역해서 해당 문화에 적합한 범위 안에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생명을 낳는 것이 성스러운 것임을 알려야 해요. 나프로 임신법이야말로 인간 생명의 존엄과 결혼의 신성성이라는 본질과 잘 맞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목도하는 기쁨을 누리세요.”

발행일 2025-06-08 제3445호 21면

[인터뷰] 한국가톨릭문학상 운영위원 활동 마친 구중서 문학평론가

1998년 한국가톨릭문학상 제정 이후 27년간 운영과 심사에 참여해 온 구중서(베네딕토) 문학평론가가 운영위원 활동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다. 가톨릭신문사는 5월 22일 서울 명동 로얄호텔에서 열린 제28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에 앞서 한국 가톨릭문학 발전에 헌신한 공로를 기리며 구중서 평론가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구중서 평론가는 “오랫동안 여러 글을 기고하며 교류해 온 가톨릭신문은 친근하고 안방처럼 편안한 공간인데, 임무를 내려놓는 자리에서 두터운 정을 나눠 주시니 과분하고 감사할 따름”이라며 “행복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내려선다”는 소회를 밝혔다. “1998년 당시 신달자 시인이 가톨릭신문사에 다녀와 한국가톨릭문학상 제정 소식을 전했습니다. 구상 시인, 신달자 시인과 함께 저도 운영·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고 하더군요.” 한국가톨릭문학상 제정은 뜻밖이었다. 가톨릭교회가 문학상이라는 구체적인 ‘나눔’을 통해 문단과 직접 호흡하려 한 시도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신자인 정지용 시인은 가톨릭잡지 「가톨릭청년」 편집을 도우며 문단의 9인회 그룹을 초청해 그들의 작품을 싣는 등 당시 모더니즘 문학의 중요한 거점을 형성했다. 그러나 한국가톨릭문학상을 제정하고 상금을 수여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본격적이고 획기적인 기획이었다. 기꺼이 의욕을 내서 운영에 참여했고, 우선 문단 중심부의 대표적 계층에 문학상을 알리며 소통했다. 이렇게 당시를 회상한 그는, 한국가톨릭문학상이 수상 대상에서 가톨릭 신자 여부를 따지지 않고 문학성 그 자체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현대 교회는 이미 폐쇄적인 교조주의를 벗어나 있었기에 문단과의 소통도 열린 시각으로 가능했습니다.” 심사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긴 기준이나 원칙은 “도식적인 잣대나 기준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가톨릭교회의 양식과 품격이 지켜지도록 한 것"이었다. “가령 1945년 해방 직후부터 나타난, 이른바 순수문학 계열의 퇴영적 감상이나 허무 의식 또는 서구적 분석주의 내지 해체 의식에 기반한 난해한 문학 경향에는 거리를 뒀습니다.” 그는 “문단의 기존 인습인 권위 의식에도 추종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원로 김남조 시인이 제17회 수상자로, 최다 독자층을 지닌 이해인 수녀가 제26회 수상자로 선정된 사례는 심사진의 잠재적 주체 의식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는 “문학예술은 현대 세계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발견하고, 보다 나은 운명을 개척하려는 노력"이라며, “한국가톨릭문학상 운영위원회가 교회의 사목 현장과 더욱 긴밀히 연결되어 가톨릭문학의 본질을 함께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한 신자 문학인들의 소명 의식도 강조했다. “1960년대 이래 문학의 사회 참여와 리얼리즘을 지향한 문학평론가로서, 사회 참여는 단순한 이익의 쟁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적 역할 분담이며 이는 현대 가톨릭 신앙과 상통한다는 것을 내면적 가치관으로 지켜왔다”며 “앞으로 신앙을 지닌 문학인들은 보편적 가치를 심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문학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을 역임한 구중서 평론가는 다수의 문학비평서와 시조집 외에도 「김수환 추기경 평전: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용서하세요」, 「한국천주교문학사」 등 교회 관련 서적을 출판했다. 1988년 요산문학상, 2020년 구상문학상 특별상, 2023년 유심작품상 특별상 등을 받았다.

발행일 2025-06-01 제3444호 21면

[인터뷰] 로마 교황청립 레지나 아포스톨로룸대 교수 조셉 탐 신부

“대화는 스스로 지닌 진리와 객관화에 부족함을 느끼고 회심하는 데서 출발해야 해요. 여기에 의지와 인내심만 있다면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을 거예요.” 로마 교황청립 레지나 아포스톨로룸대학교 생명윤리학 교수 조셉 탐 신부는 5월 24일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성의회관에서 열린 회칙 「생명의 복음」 반포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대화, 문화, 그리고 정체성: 회칙 「생명의 복음」 30주년을 맞이하여’를 발제하기 위해 방한했다. 탐 신부는 무엇보다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탐 신부는 “몸에는 서로 다른 다양한 지체가 있듯이 학자, 성직자, 평신도 등의 역할이 다른 것은 당연하기에 각자의 방법으로 진리를 구현하면 된다”며 “그보다 진리에 대해 알고자 하는 갈망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대화는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려는 개방성이 있을 때만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진리는 고난받은 그리스도처럼 박해받기도 한다”며 “변화는 문화를 통해 오기에 생명의 문화가 구축될 때까지 예수님처럼 묵묵히 기다리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탐 신부는 대화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지적 연대성’을 강조했다. 지적 연대성이란, 사랑은 우리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조차도 존중과 겸손, 배려의 태도로 대할 것을 요구하기에 함께 대화에 나서야 함을 뜻한다. 탐 신부는 “나와 입장이 달라도 그도 여전히 인류 사회를 돕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사람”이라며 “최근 레오 14세 교황님이 서로 공통의 근간을 찾고 가교를 만드는 과정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셨듯 ‘내가 진리이고 너는 틀렸다’가 아닌 겸손한 태도로 상대방의 입장을 경청하고 그 안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란 동의하지 않는 이들과도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입니다. 진실성과 선의가 있다면 이성과 진리가 결국 승리할 것이라 믿어요.”

발행일 2025-06-01 제3444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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