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그 별은 있네

7월 10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맞춤형 돌봄 지원방안’ 제도개선 공개토론회. 많은 발달장애인 가족·보호자를 자살 위기까지 내몰 만큼 막중한 ‘독박 돌봄’ 앞에 교회·사회가 머리를 맞댄 토론회에서 한 참가자의 발표가 깊은 울림을 줬다. “장애 때문에 제약이 있을지는 몰라도,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들도 해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13살에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은 기타리스트 김지희씨는 2013년 평창동계 스페셜 올림픽 세계대회 폐막식에서 기타 독주를 펼쳤다. 또 대전특수교육원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강사로서 2018년부터 매해 여러 학교에서 스토리텔링 콘서트를 열며 장애인 학생들에게 희망을 북돋아 주고 있다. 소수 수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발달장애 예술인 전문 에이전시 ‘디스에이블드’, 한국발달장애인문화예술협회 ‘아트위캔’ 발달장애 작가들도 여러 브랜드·기관과 협업해 예술혼을 펼치고 있다. 이렇듯 그들의 특별함을 배려한 교육과 보살핌이 이뤄지자 발달장애인들은 가능성을 펼쳐낸다. 지켜보는 모두를 가슴 뛰게 하는 감동…. 사실 장애라는 꺼풀만 벗기면 누구나 ‘특별하다’는 걸 알아서가 아닐까. 좁게는 피부색, 외모가 남다르거나 감수성이 유별나거나 등, 사회가 개성을 헤아려만 주면 누구나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하느님은 누구나를 있는 그대로 완전하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울려 퍼진 ‘내 마음 속 반짝이는’이라는 노래에서, “보이지 않아도 그 별은 있네”라는 가사에서 눈물이 났었다. 발달장애인을 비롯해 ‘특별하게’ 태어난 우리 모두가 타고난 텃밭에서 별보다도 반짝이는 꽃을 피우게 배려하는 사회가 되길 바랄 따름이다.

2024-07-21

희망을 찾는 방법

대전교구 관저동본당은 주일미사 참례자가 300여 명인 작은 본당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그나마 있던 신자들도 돌아오지 않게 된 성당은 활력을 잃었다. 주임 박찬인(마태오) 신부의 사목적 목표는 신자 ‘숫자’의 회복이 아니었다. 복음이 주는 기쁨을 체험하는 곳을 만들고자 했고 행동으로 옮겼다. 가장 먼저 사제관 문을 열었고, 신자들이 본당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게시판에 수입과 지출 현황을 공개했고 성당 내 시설 교체도 신자들의 투표로 결정했다. 미사 때는 복음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이미지를 첨부한 파워포인트로 강론을 진행했다. 본당의 모든 활동은 신자들을 향해 있었다. 취재를 위해 관저동성당을 찾은 날에도 미사가 끝난 뒤 몇몇 신자들이 사제관에 모여 있었다. 함께 점심을 먹고 주임 신부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평범한 일상 같지만, 그 시간 속에는 기쁨과 희망이 존재했다. 즐길 거리가 많아진 현대사회에서 종교를 찾을 이유가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신앙이 회복되지 않은 현실 앞에서, 교회가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고민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교회는 변해야 할까? 관저동본당은 변화를 꾀한 것 같아 보이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변화의 중심에 복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롭고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 복음이 전하는 대로 실천했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누군가는 하느님 나라를, 누군가는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복음이 기쁨과 희망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가치들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 지도 이미 알고 있다.

2024-07-14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나의 살던 고향은~” 6월 25일 수원교구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 중에는 ‘고향의 봄’이 울려 퍼졌다. 미사참례자 중 많은 이에게 통일이 오지 않으면 발 디딜 수 없는 고향이기에, ‘통일’이란 말 한마디 없이도 통일을 향한 간절함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민족화해위원회에서는 이들을 북향민(北鄕民)이라 불렀다. 이북 땅에 고향이 있는 이들. 실향민이란 말도 있어서인지 애틋하기도 하고, 더 가깝게 느껴진다. 북향민은 공식적으로는 ‘북한이탈주민’이라 불린다. 아무래도 ‘이탈’이라는 말이 있어서인지,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이탈’이란 말이 주로 정상적인 범주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탓이다. 한때 ‘새터민’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현재는 쓰이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땅이 언제까지고 ‘새터’로 남아서는 안 될 노릇이다. 북향민 말고도 우리가 긍정적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이들은 더 있다. 이를테면 ‘농인’(聾人)이다. 언젠가 취재 중 박민서(베네딕토) 신부가 농인과 청인(聽人)을 설명해 준 적이 있다. 흔히 농인과 청각장애인을 동일한 뜻으로 생각하지만, 청인이란 말과 함께 사용하면 ‘청각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농인)과 ‘청각을 사용하는 사람’(청인)이 된다. 호칭만 바꿔도 ‘장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에서, 동등한 이웃이라는 긍정적인 관계로 변모한다. 이웃을 부르는 이름에 긍정을 담을까 부정을 담을까. 질문 자체가 부끄러울 정도로 답은 명확하다. 긍정의 언어는 우리 생각보다 큰 힘을 지닌다. 예수님도 우리를 ‘친구’라 부르지 않았던가.(요한 15,15 참조) 혹시 이웃을 부르는 말에 무심코 부정을 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겠다.

2024-07-07

우리는 하루 세 번 통일을 생각한다

'우리는 하루 3번 통일을 생각한다.’ 이 문구가 붙어 있는 곳은 서울 구로구에 자리한 사립고등학교다. 기자가 신앙생활하는 본당에서 가깝다. 그 학교에 인접해 있는 생태공원에 아이들을 데리고 갈 때는 항상 학교 정문 옆 공간에 차를 주차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 3번 통일을 생각한다’는 문구가 학교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그때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제대로 배우는구나’ 싶었다. 2년 전에는 본당 전 신자 체육대회를 같은 학교 운동장에서 하게 돼서 학교 건물들을 유심히 둘러보면서 설립자는 어떤 분일까 소개자료를 읽어 보기도 했다. 지난 6월 20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2024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심포지엄이 열렸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학술 발표 자리였다. 심포지엄 주제는 매년 바뀌지만 남북의 공존과 상생, 궁극적으로 통일을 지향한다. 올해는 ‘가톨릭교회와 평화 교육’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을 취재하면서 기자의 눈에 먼저 들어온 모습은, 발표자나 발표 내용보다는 객석에 빈자리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3분의 1도 채워지지 않았고, 그마저도 평신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민족화해 업무에 종사하는 수도자들이 상당수였다. 이 모습이 말하는 것은 통일문제에 대한 한국교회의 관심이 예전보다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민족화해나 통일 분야 취재를 할 때마다 매번 같은 감정을 느낀다. 북한을 우리 동족이요 통일의 협력자로 바라보지 않고 적대와 증오, 대결의 대상으로 여기는 일부 정치권과 사회 풍조가 교회 안에도 퍼져 있는 것이 아닐까? 마음이 무거워진다.

2024-06-30

아름다운 청년들

최근 두 명의 청년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한 명은 미국인으로 2027 서울 WYD 지역조직위원회에 지원해 지난 3월부터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소화기내과 의사로 갑작스러운 사고에 한눈을 실명했지만, 일곱 번 수술과 치료 과정을 견뎌내며 다시 환자들 앞에 서고 있다. 상황과 처지가 다른 이 두 사람에게서 공통점으로 느낀 것은 신앙을 바탕으로 한 최선을 다하는 끈기,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한 걸음 내딛는 용기였다. 낯설고 물선 타국에서 생활하는 자체가 쉽지 않을 것임에도 한국교회가 맡은 국제 행사에 기여하기 위해 2027 서울 WYD와 함께 한 미국 청년은 본당 초등부 교리교사로도 봉사하고 있다. 사고를 당한 의사는 갑자기 환자가 되고 장애자로 살아가는 경험의 의미를 기필코 찾아내 상처받은 치유자가 되려 한다. 표현은 달랐지만, 그들은 돌봄과 연대의 중요성을 얘기했다. 웃으며 그간의 세월을 밝히지만 나름의 힘듦이 왜 없었을까. 크고 작은 일들 속에서 좋은 마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주고 감싸준 이들을 만나며 그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어려움을 이길 힘을 보았다는 말들이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들의 인터뷰를 돌아보며 우리가 저마다 부딪히는 크고 작은 시련들이 갖고 있는 의미들, 그 안에서 찾아야 하는 삶에 대한 겸손 또 함께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각자의 시련과 어려움을 공유하고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인 것 같다'는 그 청년 의사의 말이 따스한 생기가 되어 마음속으로 밀려왔다.

2024-06-23

‘내 친구 정일우’처럼 그냥 함께하기

흔히들 누군가를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그 이유를 ‘힘들 때 곁에 있어 줘서’라고 말하는 경우가 꽤 있다. 딱히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아도 함께해 줬다는 것 자체로 우리는 누군가를 소중하다고 느낀다. 고(故) 정일우 신부의 10주기 추모행사를 취재하며 알게 된 그가 존경받는 이유도 그저 ‘빈민과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함께한 방식은 그들처럼 사람답게 사는 것이었다. 빈민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그의 성격이 원체 소박하고 털털하기도 했다. 술 한잔 기울이길 즐겼고 함께 잠들고 일어났다.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허술한 판자촌 한가운데서 단출한 한복을 입고 사람들과 즐기고 웃다가도 기득권층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 자체가 그의 방식이었다. 물론 성과도 많았다. 철거된 판자촌 빈민들을 이끌고 이주해 복음자리마을, 목화마을을 건립했다. 하지만 정 신부를 사랑하는 건 이주에 실패한 상계동 판자촌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철거로 고통받을 때 끝까지 함께했기 때문이다. 판자촌 주민들은 이런 그가 예수님을 닮았다고 말했다. 귀담아듣는 것이 어색하고 결과물을 중시하는 요즘이다. 그런 면에서 정일우 신부는 요즘 세상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웃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에 대한 하나의 대답일 수 있겠다. 거창한 게 아닌 그저 이웃과 함께 있으라는 것이다. 사람들과 함께하다 ‘먹보요 술꾼’(루카 7,34 참조) 소리를 들었던 예수님 그리고 ‘내 친구 정일우’처럼.

2024-06-16

열린 종교, 열린 마음

승려이자 시인인 대한불교 조계종 무산 조오현 대종사(1932년~2018년)의 뜻을 기리는 제1회 무산문화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사회문화 부문 수상자는 예수의 소화 수녀회였다. 수도자가 15명밖에 안 되는 광주의 작은 수녀회다. 시상식은 진정으로 열린 종교와 열린 마음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시상식 기자회견의 첫 질문이 수녀회에 “타 종교 단체에서 상을 받은 소감”을 물어보는 등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수녀회 외에도 박찬욱 감독의 수상 또한 감독 스스로도 의외였다고 밝혔다. 부모가 모두 가톨릭신자에 본인도 사춘기 때까진 매주 성당에 다녔다는 박 감독은 자신의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영화는 관객에게 도덕적 질문을 던지는 장치라며, 예술적으로 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상식장에서 상영된 무산 대종사의 법문 영상도 새로웠다. 영상에서 무산 대종사는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문제를 지적했던 부분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불교계에도 쇄신을 주문했다. 조계종의 큰 어른이 다른 종교의 수장을 본받자고 역설하고 또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스님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불교계 행사였지만 시상식장에 수녀들이 앉아있는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조화로웠다. 어쩌면 모르고 지나쳤을 소화(小花), 길가의 작은 꽃들을 연민의 마음으로 허리 굽혀 바라보고 돌본 수녀들이었다. 불교의 가르침인 ‘자비’, 그리스도교의 사랑을 직접 실천한 수녀회이기에 이 상이 돌아갔음을 수녀들의 작은 꽃을 닮은 미소에서 알 수 있었다.

2024-06-09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고(故) 선우경식(요셉) 원장님은 어쩌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무모하다고도 할 만큼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셨죠.” 요셉의원 설립자인 선우 원장의 삶을 주제로 5월 21일 열린 ‘가톨릭대 의대 개교 70주년 공동 심포지엄’에서 들었던 이 한마디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냉정한 세상과 달리 자신을 인간으로 대우한 선우 원장의 사랑에 감화된 환자들 중에는 술을 끊고 결혼해 건실하게 살게 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가 있던 어떤 이들은 오히려 선우 원장의 청진기를 빼앗고, 병원 유리창을 깨거나 대문을 부수기도 했다. 험난한 삶의 궤적, 그 때문에 상식부터가 다를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생활은 선우 원장에게도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내과전문의로 인정받는 삶도 ‘포기’하지 말고 봉사는 짬짬이 하고 살았으면 다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차지도 않는 독에 물을 붓던 그의 삶은 미련하다”는 누군가의 속삭임이 들렸다. 그때 예수와 만났던 부자 청년의 일화가 떠올랐다. “나를 따르려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예수의 말에 청년은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슬퍼하며 떠나간 것은, 가진 것에 대한 ‘포기’라고만 들었지 ‘나눔’이라고 듣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선우 원장처럼 명예, 지위 등 많은 걸 가졌지만 온전히 ‘나눠지는’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이 귀한 걸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선우 원장의 삶은 온전한 ‘나눔’이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세상의 가치 그 이상의 사랑이 있어”라며, 구차한 타산(打算) 따위 너끈히 뛰어넘는 부활을 보여줬다.

2024-06-02

내가 있는 곳은 천국인가요?

1991년 본격화된 몽골 선교. 여러 수도회와 대전교구에서 사제와 수도자를 파견해 선교의 기반을 다졌지만, 교세는 좀처럼 확장되지 못했다. 몽골의 선교사들은 여러 가지 원인을 지목했다. 먼저 9개의 본당 중 수도 울란바토르에 6개가 있지만 심각한 교통난과 먼 거리 등의 이유로 매주 미사 참례하기 어렵다는 점을 꼽았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선교를 펼친 한국 이단 종교로 인해 가정파괴, 경제적 피해를 겪은 몽골인들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감, 인격적으로 신을 만나는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한 거리감 등이 뒤를 이었다. 애초에 예수님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좋은 곳이니 성당에 오라”는 식의 선교는 잠시 영세자를 늘릴 수 있을진 모르지만, 마음 안에 신앙의 토대를 만들진 못했다. 몽골인을 사랑했던 고(故) 김성현 신부는 그들과 함께 사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년 뒤 찾은 몽골. 예수님을 몰랐던 몽골인들은 “김성현 신부님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신부님은 항상 저희를 사랑하신다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김 신부는 신앙생활에 필요한 미사참례, 성경과 교리공부를 앞세우기 보다, 먼저 사람들을 사랑했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그의 진심은 몽골인들이 예수님 품으로 스스로 들어오게 만들었다. 예수님이 없는 줄 알았던 곳에 이미 예수님은 와 계셨던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 불행이 내게만 일어난 것 같은 절망을 경험한다. 김성현 신부가 20여 년 전 몽골에서 겪은 상황도 낙관적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있는 자리를 천국으로 만들었다. 그 힘은 복음적인 삶의 실천에 있었다.

2024-05-26

[현장에서] 가운데 자리

성당에서 아기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초등부쯤 되면 주일학교라도 있지만, 그 전의 어린 아이는 성당에 ‘머리 둘 곳조차’ 없다. 전례가 시작되면 대부분은 유리벽 너머에 ‘격리’되고, 아기가 얌전해 뒷자리 어디쯤 있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아기가 자연스럽게 하는 일들을 성당에서는 자연스럽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성당 가운데 자리에서는 울 수도, 먹을 수도, 기저귀를 갈 수도 없다. 혹여 신부님이 괜찮다해도 신자들의 눈총은 여전히 따갑다. 고령를 넘어 초고령이 된 한국교회에서 아기란 존재는 낯설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5월 11일 수원교구 시흥지구 중심 성당인 시화성바오로성당 가운데 자리에 어린아이들이 가득 찬 모습은 참 반가웠다. 우는 아이, 젖병을 물고 있는 아이, 두리번거리는 아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아이, 잠자는 아이…. 아이들은 각양각색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예수님 앞에 나와 있었다. 이 각양각색의 어린이들이 성당 가운데 자리에 모여 참례하는 전례에서는 어느 때보다 생명력이 느껴졌다. 물론 유아세례식이니 어린아이들이 가운데 자리를 있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성당에서 사제들, 봉사자들, 전례에 함께한 모든 신자들이 어린이들을 불편해하지 않았고, 또 어린이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는 모습이 따듯하게 다가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세계 어린이 날을 제정하면서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어린이들을 가운데 자리에 두고 그들을 돌보기 원한다”고 말했다. 보편교회의 흐름에 한국교회는 얼마나 함께하고 있을까? 언젠가 모든 성당에서 어린이들에게 가운데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때가 오길 손꼽아본다.

202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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