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을 이해해요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다고 모든 인간의 난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해도, 그리스도교적 진리는 제게 큰 힘이 됐어요. ‘운’처럼 보이지만 그 이전에, 모든 것의 시작에 시작을 만든 ‘누군가’(하느님)가 존재한다면, 또 그의 행동 원리가 ‘자비’와 ‘사랑’에 근거한 것이라면! 거기서 살짝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죠.” 성유빈 씨(에디트 슈타인·21·인천 마전동본당)가 바쁜 일상에서도 ‘청년, 희망의 현재진행형’ 기획 인터뷰에 선뜻 화답하고 들려준 말이다. 성 씨를 비롯한 청년들 모두 각자의 인터뷰에서 결이 같은 말을 해서 감동이었다. 개인 영성과 평안함 추구에서 기도가 그치는 이들과 달리, 부조리한 세상에서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통찰하는 청년다운 순수함이 녹아 있었다. 그런 청년들이 과연 신을 거부하기에 종교를 떠나갈까. 취재하며 만난 청년들은 냉담 중이더라도 존재론적이었고 물질 너머의 가치를 좇았다. 독실한 집안 분위기에도 냉담 중인 현아(가명·30·안젤라) 씨는 착취적 가축 산업에 반대해 채식주의자가 됐고 피혁 제품도 쓰지 않는다. “인간은 착취자가 아니다”라며 제로웨이스트도 실천한다. “그럼에도 신앙을 느낀 적 없다”는 현아 씨는 “나처럼 스스로 떠나온 부류에게는 교회에도 천국에도 나를 위한 공간이 없을 줄을 안다”며 적적하게 웃었다. 그런 청년들에게 “늦기 전에 회개하시오”라는 말만큼 폭력적인 게 있을까. 그때 내가 주변 신부님께 받았던 위로가 기억났다. 큰 상처에 대해 털어놓은 어느 날, 신부님은 “하느님은 오로지 공감하시는 분”이라며 단죄는커녕 포옹해 주셨다. 그래서 내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현아 씨, 우리는 같아요. 당신을 이해해요.”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23면

성령 안에서의 재회를 기다리며

경북 청송군 경북북부제1교도소 교육관에서 진행된 교정 사목 현장 취재는 교도소 관계자분들과 사단법인 꿈나눔 재단, 수용자분들의 큰 협조로 이뤄졌다. 소공동체 모임 후 개별 인터뷰 시간, 방문 전 미리 전달해드렸던 질문에 한 분씩 다가오셔서 건넨 답변지에는 손 글씨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컴퓨터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감 27년째라는 한 수용자는 “사회에 있을 때 자장면이 20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새삼 이곳이 사회와 동떨어진 곳임을 느꼈다. 얼마 전 기자가 보도한 꿈나눔 재단의 ‘네팔바람부 폴 직업기술학교’ 설립 기사 얘기가 나왔다. “기사 잘 읽었다. 스크랩해서 붙여놨다”는 수용자분의 말에 가톨릭신문을 교정 시설에 후원하는 분들께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마무리하려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꿈나눔 재단 신원건 이사장은 자신이 끼고 있던 묵주 팔찌를 빼서 오늘 모임에 새로 온 수용자분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동행한 꿈나눔 재단 후원자 김미자 씨도 팔에서 묵주 팔찌를 뺐다. 생각해 보니 내 팔목에도 언젠가 한 교구 주교님께 받은 묵주 팔찌가 걸려있었다. 신기하게도 세 명 모두 비슷한 나무 묵주 팔찌였다. “제 것은 주교님께 받은 묵주 팔찌에요.” “아이구야, 오늘 새로 온 함영(가명) 씨가 주교님 것으로 가져요.” 주교님께 받았다고 해서 더 효험(?)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예비신자가 됐다는 두 분께도 묵주 팔찌를 드리고 인사를 나눴다. 기도 안에서, 또 교회와 세상에서 성령과 함께 다시 만날 것을 기다리며.

발행일 2025-03-23 제3434호 23면

교회가 기억해야 하는 것

3월 1일, 서울 광화문광장은 인파로 북적였다. 두 진영 모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있었지만 한쪽에선 대통령의 탄핵을, 다른 한쪽에서는 탄핵 기각을 외치고 있었다. 106년 전 일본에게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벌였던 만세 운동을 기념하는 2025년 3월 1일, 대한민국은 독립의 기쁨을 기억하는 것이 무색할 만큼 둘로 쪼개져 있었다. ‘하나된 대한민국’의 의미를 찾기 어려운 현장에서 일본으로부터 고통받은 이들을 기억하는 미사가 봉헌됐다. 9개 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남·녀 장상연합회 등이 포함된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천주교 전국행동이 주관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미사’였다. 미사에 참례한 이들은 50명 남짓. 광화문광장의 거대한 인파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인원이지만 이들이 함께한 기도는 큰 울림을 남겼다. 힘없는 소녀들이 일본군의 성노예로 희생된 것은 역사 안에 살아있지만 피해 할머니들은 “돈을 벌러 자진해서 간 것”이라거나 “돈을 더 받아내고자 대중 앞에 나오는 것”이라는 모욕적인 말을 같은 민족으로부터 들어야 했다.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누군가의 인권을 기억하는 이날 미사는 광화문광장에 끝없이 수놓인 태극기와 겹쳐 아픔과 상처를 남겼다. 교회는 이처럼 정부가 외면한 작고 힘없는 이들의 인권을 되찾고자 30여 년째 기도로 힘을 모으고 있다. 미사를 집전한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하성용(유스티노) 신부는 “이 문제는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이고 사람의 도리에 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더 이상 힘에 의해 인권이 무시당하고 도리를 해치는 일이 없기를 이번 미사를 통해 바란다.

발행일 2025-03-16 제3433호 23면

채식과 금육 사이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첫 문장이다. 소설에서처럼 우리 사회에는 아직 ‘채식주의자’라 하면 ‘별나다’라는 시선이 남아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에 채식을 하는 인구가 250만 명에 달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채식을 낯설게 여기는 이들도 많다. 그런 ‘특별한 사람’들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우리 신앙선조들이다. 성지를, 교회사를 취재하다보면 ‘채식’에 관련된 신앙선조들의 일화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신앙선조들은 특정 시기, 특히 사순 시기가 되면 채식주의자로 변모했다. 거기에 단식도 곁들였다. 신자들의 채식은 비신자들, 박해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신유박해 당시 충주목사 이가환은 신자들을 체포하려고 선비들을 초대해 고기를 대접하기도 했다고 한다. 박해자들은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인 줄을 알았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면서 채식을 했기 때문이다. 그 별난 채식을 우리는 ‘금육’, 소재(小齋)라 한다. 금육도 채식도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행위는 같다. 세상이 ‘별나다’고 여기는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금육과 채식은 다르다. 우리의 금육은 그저 건강이나 동물권이나 환경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 우리의 금육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행위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후 첫 미사 강론에서 말했듯 “예수를 증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교회가 아니라 동정심 많은 비정부기구(NGO)에 불과하다.” 이번 사순 시기, 우리 신앙은 채식과 금육 사이 어디쯤 서 있을까? 아니면 혹시 어디에도 서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성찰의 시간을 보내야겠다.

발행일 2025-03-09 제3432호 23면

공소 신자들에게 배우는 점

원주교구 공소사목협의회 2025년 정기총회가 배론성지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에서 2월 20일 오후 2시 시작해 다음날 오후 1시경 끝났다. 1박2일 일정이지만 시간으로 치면 만 하루 동안 진행된 자리였다. 첫날 취재를 하면서 기자에게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 공소사목협의회 박종섭(힐라리오) 회장이 공소별로 참석자를 소개하는 순서였다. 원주교구 36개 공소 명칭을 하나하나 부르며 참석 인원 수를 말했다. 공소 명칭을 부르긴 했지만 “참석 못하셨습니다”라고 말한 곳도 10여 군데나 됐다. 공소 신자들 대다수가 60대 이상 고령층이다 보니 정기총회 장소까지 차를 운전할 사람이 없으면 오고 싶어도 못 오는 사례가 많았다. 공소 신자들 중에는 동해안 지역에서 버스와 기차를 몇 번씩 갈아타고 배론성지까지 온 분들도 계셨다. 대도시에 거주하며 집에서 가까운 본당에 다니고 있는 신자들은 공소라는 말만 들어 보았을 뿐 공소의 실재 존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할 듯하다. 공소 신자들은 대도시 본당 신자들에 비하면 외형적으로 아주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사제를 대면할 수 있는 기회도 한 주일 혹은 두 주일에 한 번 미사 봉헌하는 때가 거의 전부다. 기자는 원주교구 공소사목협의회 2025년 정기총회 자리에서 비록 짧은 시간 동안 공소 신자들과 대화를 나눴지만 그분들에게서 한국천주교회 신앙의 원류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한국천주교회 역사의 뿌리와 전통을 찾아가다 보면 공소가 등장한다. 공소는 과거에 비해 그 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한국천주교회의 커다란 자산이고 신앙의 모범을 제시한다는 것을 배웠다.

발행일 2025-03-02 제3431호 23면

하느님의 동선

최근 한국교회 두 번째 청각장애 신부로 서품된 김동준 신부를 만났다. 첫 미사를 봉헌한 날이었는데, 마침 김 신부에게는 14년 전 사제성소를 결심하고 한 수도회에 입회한 날이었다.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후 10여 년, 그 세월 동안 겪었을 어려움은 농인이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부제품을 앞두고 수도회를 퇴회하는 어려움을 겪었던 김 신부는 당시 ‘사제가 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좌절하기도 했단다. 교구로의 이적 방법을 찾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아 담담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던 중에 서울대교구로 이적이 가능하게 됐다. 기적에 가까운 낭보였다. 그의 서품은 한국교회 안에 장애인이나 장애인 사목에 대한 다양한 공론화의 장을 하나 더 열었다는 느낌이다. 현재 모 교구에 청각장애 신학생이 한 명 더 있는 상황에서, 장애인 사목 논의가 더 활발하게 펼쳐질 여지를 마련한 게 아닐까 싶다. 여기에는 서울대교구의 장애인 사목에 대한 의지와 결정이 큰 몫을 했다고 본다. 사회 전반적으로 장애인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시노달리타스를 살아가고자 하는 교회 안에서도 미진한 모습은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김 신부의 사제 서품은 교회 내외에 메아리처럼 어떤 울림으로 퍼져가는 듯하다. 인터뷰를 마치며 우리 각자에게 미치는 하느님의 동선을 생각했다. ‘성직자의 길을 선택으로 생각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선택이라는 행위조차 당신 계획안에 두고 계셨음을 깨달았다’는 김 신부의 말을 듣고서다. 그를 통해 움직이시는 하느님의 궤도가 한국교회 장애인 사목에 어떤 경로를 그릴지 궁금하다.

발행일 2025-02-23 제3430호 23면

모두가 바다로 나갈 배

“배의 역할은 안전한 항구에 정박해 있는 게 아니라 바다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박현동(블라시오) 아빠스가 2월 6일 해외선교사 파견 미사 강론에서 한 말이다. 당연한 말임에도 이날따라 새롭게 느껴졌다. 아빠스가 미사를 주례하던 제대 앞에 넘실거리는 파도 위를 떠가는 배가 선교사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설치돼 있어 더 공감이 갔는지도 모른다. 배가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고 항구에서 이끼만 낀 채 낡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안전할지는 몰라도 마냥 행복할 것 같지는 않다. 선교사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나’를 배에 대입해 본다. 일단 ‘도대체 무슨 배인가’라는 문제에 봉착한다. 바다로 나가느냐 마느냐를 떠나 무슨 배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고민조차 안 하고 있었다. 당장 눈앞의 일상에 정신이 팔리니 삶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에 소홀해졌다. 마치 배가 당장 정박해 있는 자리의 불편함만을 걱정하고 토로하는 듯하다. 해외선교사 파견 미사에서 교육을 마치고 수료한 사제·수도자들 모습은 설렘과 떨림, 기대감과 두려움이 교차해 보였다. 가고 싶었던 선교지로 발령받은 선교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선교사도 있는 듯했다. 하지만 어찌됐든 순명하고자 다짐한 모습은 똑같았다. 2025년 새해가 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하느님은 교회 구성원 모두에게 당신 뜻에 알맞은 역할을 준다고 한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선교사들처럼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배인지 알고, 나 자신이 나갈 바다는 어떤 바다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보는 새해가 되길 다짐해 본다.

발행일 2025-02-16 제3429호 23면

나이가 들다

새해가 밝았다고, 음력 설이 지났다고 나이를 더 먹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들은 과거와의 분기점이 된다. 설날에 떡국을 먹으면 과거보다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신체적인 나이와 영적인 나이는 다르다. 그리스도인은 견진성사를 받아야 영적 어른이 된다. 1월에 있었던 수원교구 청소년 견진 캠프에 참가한 견진성사 후보자들은 대부분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자신들도 대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들뜨면서도 사뭇 진지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청덕본당의 김민성(토마스) 군은 “그동안 모두 나를 아이로 부르고 대했는데 이제 성인이 된다니 뿌듯하다"며 "신앙적으로 전진한다는 생각으로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견진성사를 받기로 결심했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영적으로는 어른이 됐지만 심적으로는 아직 순수해서인지 청소년들은 ‘그런 게 있을까?’라는 의심보다는 진심으로 성령의 은사를 청했다. 배곧본당의 김지윤(아녜스) 양은 성령의 은사로 ‘깨달음’을 얻고 싶다며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도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깨달음을 주시면 이해가 되는 경험을 했다”고 설명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지닌 채 영적으로는 성숙한 어른이 되기’가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평생 목표 아닐까? 성령의 영감을 받아 어느덧 늠름하고 듬직한 말을 할 줄 알게 된 청소년들을 보며 내가 지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 표본들을 보고 있다는 것이 새삼 감동스러웠다. “악에는 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에는 어른이 되십시오.”(1코린 14,20)

발행일 2025-02-09 제3428호 23면

‘공감하는 하느님’의 숨결

해외 원조 주일 취재차 서울 중곡동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사무실을 찾은 1월 8일,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활동가들에게서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래, 가자지구에서 난민들을 위해 구호품 배부 등 활동을 펼치던 예루살렘 카리타스 활동가들이 벌써 3명 넘게 사망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죽음이 도사리는 곳에 스스로 난민이 돼 들어가 똑같은 난민들을 섬겼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죽음마저 무릅쓰고 헌신하는 활동가들에게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꼈다. 인간과 똑같이 아파하는 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지극한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우리 주변에도 있었다. 과거 서울 동자동 쪽방촌을 취재했을 때 주민 활동가들에게서도 똑 닮은 사랑을 목격했다. 온갖 장애와 병을 앓는 그들은 다른 아픈 주민을 부축해 산책 다녀주고 상냥한 말벗이 돼줬다. 이런 ‘공감하는 사랑’들만이 인류에게 신이 있다는 믿음을 붙들게 한다는 묵상에 닿았다. 많은 이가 무신론에 빠지는 것도, 무결한 천상에 앉아 지상에서 고통받는 피조물들을 굽어보는 존재로 신을 생각해서가 아닐까. 이미 하느님은 희생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나타나 “나 여기 있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말이다. 저마다 상처 입은 우리는 고통의 이유라도 알고자 하느님을 찾지만, 그분의 대답 없음에 지쳐 부재만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하느님의 숨결이 된다면, 낫지 않는 상처조차 이웃과 아픔을 나누고 일치하는 창구로 승화시킨다면 어떨까. 권정생의 동화 「강아지똥」에서, 주인공 강아지똥이 ‘나는 쓸모없는 똥’이라는 아픔을 빗물에 녹여 민들레에게 양분이 돼줬듯 말이다.

발행일 2025-01-26 제3427호 23면

지역을 밝히는 성당의 불

지난 1월 12일 서울대교구 우면동성당에는 신자가 아닌 주민들이 모였다. 우면동성당이 속해있는 서리풀 지구가 공공주택지구로 개발된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강제수용 위기에 놓인 주민들과 국회의원들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간담회를 주최한 것은 주임 백운철 신부다. 서리풀 지구에 속한 식유촌 마을과 송동 마을에서 개발구역에 해당하는 가구는 70여 개. 작은 규모지만 집성촌인 이 마을은 40년 넘게 터를 지키며 살아온 주민이 대부분이었다. 이중 신자인 가구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우면동본당은 본당에 속한 지역에서 생긴 문제, 특히 힘없고 소외된 주민들과 동행하고자 마음을 모은 것이다. 백운철 신부는 “이 문제는 우면동본당뿐 아니라 지역 전체의 문제이기에 본당공동체가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은 당연하다”며 “주민들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공정하지 못한 개발이 아닌 정의로운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마을 초입에 있는 성당이지만 한 번도 문턱을 넘지 않았던 주민들은 이날 주님의 성전에서 신자들이 준비한 따뜻한 떡국을 먹으며 차가워진 마음을 녹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주민은 “오랫동안 정을 두고 살았던 지역을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듣고 너무 당황스러웠고 더욱이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곳이 없어 답답함이 컸다”며 “우면동성당에서 우리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주민들과 함께 해주겠다고 나서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이웃하고 있는 성당이 주변을 돌아보고 손을 내밀자, 세상에 복음의 가치가 더욱 짙게 새겨지고 있었다. 우리 성당의 불은 언제나 켜져 있을까?

발행일 2025-01-19 제3426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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