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분들이 왜 이렇게 많지?’ 수원교구의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 미사 취재를 위해 안산 화랑유원지에 다다를 때쯤이었다. 삼삼오오 모인 검은 정장의 남성들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곧 앳된 얼굴의 수원교구 신학생들이었다. 또래라면 또래일 수 있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추모 미사에 참례한 신학생들의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경건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와 교구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추모 미사가 거행됐다. 이용훈 주교의 강론과 보편지향기도를 통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생존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깊은 위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예비신학생이었던 세월호 희생자 고(故) 박성호(임마누엘)군의 친구 심기윤(요한 사도) 부제가 추모 편지를 읽을 땐, 신학생과 신자들 사이에서 훌쩍이거나 눈물을 닦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끝내 떨리는 목소리로 울음을 참던 심 부제의 낭독을 들으며 내 눈시울도 붉어졌다. ‘집안의 활력소이자 엔도르핀, 엄마가 기분이 안 좋을 때 귀를 움직여 웃게 하는 아들, 재외교포를 돕는 최고 외교관을 꿈꾸는 서재능(6반)’, ‘기타도 잘 치고 손재주가 좋아 프라모델도 능숙하게 조립하고, 자동차 공학박사를 꿈꾸는 안주현(8반)’ 등 희생자 각각에 대한 메시지가 붙은 세월호 리본 봉도 사람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도 해명도 한 번 받지 못했다는 희생자 가족들. “우리는 평범한 부모들이었다”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애통한 발언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2024-04-21

열매 하나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내 마음이 얼마나 변화될 수 있는지 체험하고 나면, 그 사랑이 넘쳐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아요.” 4월 5일 서울 예수회센터에서 열린 교황님 기도 네트워크 첫 금요일 예수 성심 신심 미사 후 마련된 청년 회원들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과자는 ‘그리스도의 몸’, 와인은 ‘그리스도의 피’라며 농담하는 청년들 중, 자칭 ‘고인물’이라며 웃던 유스티노씨의 나눔이었다. 평온한 어조였지만 큰 여운으로 다가왔다. 핵심은 “인격적 예수님 체험의 열매는 열매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열매를 맺어 과수원처럼 커져 간다”는 것이었다. 그의 고백에 청년 개개인의 영신수련을 동반하는 부책임자 신부님 공로가 크게 느껴졌다. 사제 한 사람이 전체 50명 넘는 청년 회원들을 한 사람씩 개인 면담하는 많은 시간을 희생한다는 게 상상되지 않았다. 사제가 이미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있고 그로써 내면에 사랑이 가득 차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됐다. 그와 달리 다른 사람을 향할 줄 모르는, 사랑이 메말라 붙은 내 내면을 들여다보게 됐다. 인간 예수를 만나지 못한 것, 어쩌면 만날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늘 자신을 성찰한다고는 하지만 그 자리에는 예수가 빠져 있고 늘 나로 채워져 있었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의 뜻에 맡기기보다 내가 생각의 흐름을 주도하고 판단했다. 늘 과수원이 되길 꿈꾸지만, 정작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황량한 나를 반성하게 됐다. 꼭 언젠가는 열매가 열리고 사랑이 차오르길 바랄 따름이다.

2024-04-14

공동선에 닿기 위해 / 민경화 기자

13년 전 핵발전소 사고가 있었던 일본 후쿠시마에는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었다. 생업을 위해 고향에 남기를 선택한 가장은 가족과 헤어져야 했고 이혼이 급증하는 원인이 됐다. 그렇게 다른 도시로 떠난 아이들은 위험한 곳에서 왔다며 따돌림의 대상이 됐다. 여전히 핵발전소 인근 마을에는 암이나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웃의 소식을 듣는 일이 흔했다.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곳은 전력회사이고 이를 도운 것은 정부였지만 슬픔과 불안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은 그곳을 지키는 주민들이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인근에서 물고기를 잡는 시가 가쓰야키씨는 핵발전을 반대하며 50년 넘게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가 주변의 비난과 협박에도 싸움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소중한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공동선을 위해 용감히 나아가는 시가씨의 모습은 국가의 핵진흥 정책을 멈추고자 거리로 나온 한국의 종교·시민단체와 닮았다. 이들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후의제를 염두에 둔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교회의가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에 보낸 정책질의서 답변에서 특히 환경분야는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다. 신규핵발전소 건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저지 문제에 대해 어떤 당은 동의했고, 어떤 당은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교회는 정치 공동체의 최종 목적이 공동선의 실현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수행하지 못했을 때 교회는 정치에 관여할 수 있고, 이때 복음이 정치적 선택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복음이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제대로 식별해 공동선을 위해 외롭게 싸우고 있는 이들 곁에 서야 하겠다.

2024-04-07

부활, 기억하고 기도하며

10년 전 부활은 그 어느 부활보다 절실히 부활을 바랐던 시기였다. 파스카 성삼일, 예수님이 묻히시던 날, 그분과 함께 바다에 묻힌 사람들. 당시 희생자들이 많이 거주했던 안산, 수원교구를 출입하던 나는 그 현장에서 참담함과 슬픔을 목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슬픔 속에서 합동분향소를 찾으며 ‘잊지 않겠노라’고, ‘안전한 세상을 만들겠노라’고 약속하고 다짐하는 모습을 취재했다. 그리고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슴에 단 노란 리본을 카메라에 담으며 그 마음을 되새기기도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안산 합동분향소가 철거됐고, 진도 팽목성당도 문을 닫았다. 기억하던 공간이 하나 둘 사라졌다. 슬퍼하던 사람도, 화를 내던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도 하나 둘 사라졌다. 그렇게 변해 가는데 여전히 이 사회는 변하지 않고 비슷한 슬픔을 반복한다. 어쩐지 변하지 말아야 할 마음은 변하고, 변해야 할 세상은 변하지 않는 듯 같다. 그러던 중 10주기를 앞두고 보수공사를 한 임마누엘 경당을 찾았다. 희생자를 추모하고자 안산 합동분향소에 세워졌던 작은 목조 경당. 수원가톨릭대학교는 갈 곳 잃은 이 경당과 팽목항 십자가를 교정에 품었다. 나아가 그 경당을 더 오래 보존하고 기억하고자 비용을 들여 보수공사를 진행한 것이었다. 한민택(바오로) 신부는 “기억하고 기도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며 경당 보수의 취지를 말했다. 기억하고 기도하는 경당이 새로 나는 모습, 그 부활에 적잖이 위로를 받았다. 기억하고 기도하는 이유는 그 슬픔이 반복되지 않는 세상으로 변하길 바라서, 부활하길 바라서다. 세월호 참사 후 10번째 부활. 다시 기억하고 기도한다.

2024-03-31

‘시노달리타스’에 담긴 뜻은? / 박지순 기자

올해 10월 본회의 제2회기가 열리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전국 각 교구 담당 사제들을 취재하면서 한국교회와 세계주교시노드는 거리가 꽤 멀다는 것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다. 시노드 담당 사제들도 세계주교시노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취재에 응한 시노드 담당 사제들은 각자 한국교회에서 왜 시노달리타스가 낯설게 여겨지는지 나름대로 원인을 들려줬다. 무엇보다 다시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시노달리타스라는 라틴어 원어가 신자들에게 생소하게 들리고 왜 우리말 번역어를 사용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지만, 시노달리타스는 없던 말이 아니라 가톨릭교회 전통에서 오랜 세월 사용돼 왔다는 사실이다. 부산교구 시노드 담당 노우재(미카엘) 신부는 시노달리타스를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어가야 할 여정’, 달리 말해 ‘교회 공동체 자체’라고 정의했다. 춘천교구 시노드 담당 김도형(스테파노) 신부 역시 시노달리타스가 지향하는 교회의 원형은 사도행전에 그려진 초대교회라고 말했다. 한국교회에서 시노달리타스가 멀게만 느껴진다는 것은 곧, 함께 걷는 교회나 초대교회로부터 그만큼 멀어졌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노우재 신부가 시노달리타스 실현을 방해하는 핵심 원인을 ‘교회의 세속성’으로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 여겨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 15일 교황청 복음화부 정기총회에 참석해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최대 위기를 ‘세속화’라고 지적하면서 “가정과 공동체에서 극복의 길을 찾자”고 말한 것도 기자에게는 시노달리타스의 길을 걷자는 의미로 들렸다. 시노달리타스는 그 안에 담긴 본래 의미를 아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2024-03-24

[현장에서] Quiet Quitting

‘Quiet Quitting’(조용한 사직)은 직장을 그만두진 않지만, 마음은 떠나 최소한의 일만 하겠다는 직장인의 태도를 일컫는다. 일이 곧 삶은 아니고 성취에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에 지극히 합리적인 선에서만 업(業)을 유지한다는 것으로, 팬데믹 전후 미국의 MZ세대에서 유행처럼 번졌고 한국 젊은이들에게도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지난 3월 9일 수원교구 본당 총회장 연수에서 교구 복음화국장 이승환(루카) 신부는 “종교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면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고 대중의 탈종교화 현상을 설명했다. 강의를 접하며 어쩌면 신앙의 ‘Quiet Quitting’으로 젊은이들이 교회와 멀어지고 결국 떠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주일미사 거르지 않는 ‘의무’ 외에는 더 이상 성당 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이 늘고 있다. ‘팬데믹이 종교와 신앙에 미친 영향’ 설문조사 결과가 그 이유를 보여준다. 청년들은 가장 변해야 할 교회 문화로 권위주의, 사제의 독단적 의사결정 구조, 환대 부족을 꼽았다. 사정이 이러한데 매력은커녕 머물 이유조차 찾을 수 있을까. 해법은? 역시 청년들이 제시한다.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한국교회 종합의견서에서 청년들은 팬데믹 이후 교회의 우선적 사목 대상으로 ‘청년 자신’을 꼽았다. 담대하게 전한 자신들의 의견이 유효하게 전달될 창구를 마련해 달라고도 했다. 권위주의에서 탈피해 환대의 마음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 교회가 줄곧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시노달리타스 여정의 첫 출발이 아닐까.

2024-03-17

[현장에서] 생명 일꾼 양성의 장 / 이주연 기자

지난 2월 27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의 인재양성기금 장학 증서 수여식에서 총 10명에게 장학 증서가 전달됐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인재 양성 기금을 제정한 것은 지난 2010년이다. 생명과학 분야와 생명윤리 관련 인문 사회 과학 분야의 학술 발전 및 생명 존중 문화 확산에 기여할 인재 양성이 취지다. 이후 연 2회 대상자를 공모해 대학원 학비 등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15년 가까이 이뤄진 인재 양성 작업은 죽음의 문화가 극심한 이 시대에 가톨릭교회가 지향하는 생명 존중 문화 조성의 중요한 텃밭이 되고 있다. 대부분이 인식하는 대로, 반생명적 현상은 한국 사회를 포함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병자의 날 담화에서 지적한 대로, 개인이 더 이상 보조를 맞출 힘이 없을 때 무관심해지고 냉혹해지는 개인주의 문화가 버리는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교황은 “버리는 문화에서 사람은 존경하고 보호할 우선 가치로 더 이상 여겨지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생명의 기쁜 소식을 선언하고 증명하는 것은 교회의 기본 사명이지만, 이런 환경을 거슬러 생명 친화적인 가치를 배우며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실질적인 지원으로 생명의 일꾼들을 양성하는 그 자리가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생명 존중 문화와 이를 위한 연구 및 교육, 인재 양성은 지속돼야 하고 지원 확산도 필요하다. 한 학자는 “생명은 바로 우리 자신, 후손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창조 의미와 신비를 드러내고 실현해 가는 노력”이라고 했다. 죽음의 문화 범람 앞에서 더 힘을 모아야 할 이유다.

2024-03-10

[현장에서]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박주헌 기자

“삶의 안식처여야 할 ‘집’이 감당할 수 없는 ‘짐’이 되어 전세사기의 지옥도가 펼쳐졌습니다. 아무나 임대하고, 아무렇게나 중개하고, 아무거나 세를 놓아도 괜찮은 나라에서 집으로 돈을 버는 이들에게, 세입자는 가장 쉬운 먹잇감이었습니다.” 2월 24일 서울 관철동 보신각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자 1주기 추모문화제에서 울려퍼진 ‘추모와 다짐의 글’은 이렇듯 피해자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위로를 전했다. 그 말과 함께 이날 행사에서 울려퍼진 가장 단호한 메시지는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포함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이었다.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된 특별법은 피해자들에게 반쪽짜리 특별법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피해자들이 또 다시 전세대출을 받을 것을 구제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건 피해자부터 구제하고 임대인에게 추후 피해액을 징수하는, 피눈물을 닦아줄 줄 아는 나라다. 한편 모든 걸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일각은 피해자들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네 잘못”이라는 등 행위자인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하지만 약한 이들을 지키는 교회는 책임 추궁보다 도덕성에 대한 연대를 강조한다.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도 “사회 전역에 갖가지 방식으로 난무하고 사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불의와 폭력의 죄가 있을 때, 이를 고발할 의무가 있다”(81항)고 가르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 소장 황인근 목사도 추모사에서 “올무를 놓고 기다린 악한 자들이 처벌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그리스도인이면 피해자들이 자책하고 삶을 훼손하지 않도록 함께해야 한다.

2024-03-03

[현장에서]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 / 민경화 기자

나쁜 물건이 들어와 속이 상하기도 하고, 단골 손님의 좋은 소식에 같이 기뻐하며 긴 세월을 보냈던 삶의 터전. 화재로 불탄 서천특화시장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시간들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화재 당시 상황을 묻자 눈물을 먼저 쏟아내는 상인의 심정은 사고의 상흔이 비단 돈으로만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을 가늠케 했다. 서천에서 가장 큰 시장이 불탔다는 소식에 대통령도 현장에 방문했고, 세간의 관심이 커졌다. 대전교구와 서천본당도 신자인 상인 20가구를 초청해 위로를 전했다. 1억 원가량 되는 피해 금액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후원금. 하지만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힘내세요”라는 한마디는 그 어떤 큰돈보다 마음의 위로가 됐다고 상인들은 말했다. 그들이 한숨짓고 눈물을 흘린 것은 재산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이 60대가 넘는 상인들은 삶의 전부를 바쳤던 터전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미래에 대한 희망과 삶의 의지가 사라진 것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교회는, 그리고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실의에 빠진 사람들 옆에 섰다. ‘당신의 아픔을 함께 나누겠다’는 든든한 위로는 교회를 떠난 이들을 돌아오게 하기도 하고, 절망한 이들이 ‘다시 잘살아 보겠다’는 의지를 찾는 원동력이 됐다.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악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은 결국 누군가가 실천한 ‘선’이다. 예수님이 보내주신 당신을 닮은 수많은 사람들. 그 얼굴을 찾아내는 것은 나의 몫이다.

2024-02-25

[현장에서] 이걸요? 제가요? 왜요? / 이승훈 기자

“요즘 젊은 사람들은 봉사를 하지 않으려 해요.” 최근 취재 현장에서 유난히 봉사자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특히 코로나19 이후로 젊은 봉사자들이 부족하다며 많은 단체에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떤 이는 교회 안에도 ‘3요 주의보’가 발령됐다며 씁쓸한 농을 던지기도 했다. ‘3요 주의보’는 직장에서 업무 지시에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되묻는 젊은 세대 직원들의 반응에 당황한 기업들의 분위기를 일컫는 말이다. 이 모습을 “봉사하라”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교회 내 젊은 세대의 모습에 빗댄 것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의 ‘3요’를 나무라기만 할 수도 없다.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자신도 납득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경향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말’로만 납득시키려 하다간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2월 2일 수원가톨릭대 부설 하상신학원 선교사·교리교사증 수여미사 중 문희종(요한 세례자) 주교의 강론에서 힌트를 얻어 본다. 문 주교는 선교사·교리교사들에게 “가르침의 직무는 보통 말로써 하는 지식적인 것을 떠올리는데, 우리는 행동으로도, 곧 삶으로도 가르치는 의무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예수님도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요한 13,35)이라 하셨듯, 보여주는 것은 좋은 가르침이 된다. 이 봉사가 어떤 봉사인지(이걸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필요한 봉사인지(제가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왜요?)를 말로, 또 삶으로 보여주는 노력이 이어진다면, 젊은 세대들도 그것을 보고 함께 봉사의 기쁨을 찾게 되지 않을까.

202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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