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신비

4월이 되면 제주는 참 바쁘다. 봄 여행도 봄 여행이지만 부활 시기 많은 본당에서 ‘엠마오’로 제주를 방문하신다. 성지를 돌아보기도 하고, 봄꽃 가득한 곳을 찾기도 하고, 맛있고 풍경 좋은 카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가끔은 “제주에 살고 계시니 좋으시겠어요?” 하며 뭐가 좋은지 묻는 분들도 있다. 이곳에 머물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좋은 점을 적어본다면, 첫 번째로는 자연이다. 매일 아침 보는 나무와 하늘이 같은 모습이 아니라 날마다 날마다 새로운 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난 창조주를 미술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내가 머무는 서귀포의 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에서 보는 한라산은 하루하루가 다르고, 바쁜 일정을 마무리하고 차에서 내려 바라보는 밤하늘은 늘 맑고 초롱초롱한 별들이 수고했다고 웃어준다. 두 번째로는 겉모습으로 판단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흙먼지 가득한 바지를 입고 다니더라도, 아주 오래된 차를 몰고 다닌다 하더라도 이곳 제주에서의 편견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사실 그런 분 대다수는 넓은 감귤밭이나 땅을 갖고 있다. 세 번째로는 남의 물건을 탐하지 않는다. 혼숨에는 문이 없다. 그리고 옆집 사람들의 모습이 보일 정도로 담이 낮다. 가끔 정원을 정리하느라 장비를 마당에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상황이 되어도, 차량에 물건을 실어 놓고 문을 잠그지 않더라도 물건을 집어 가거나 훔쳐 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표현을 안 할 뿐 관심도 많다. 물론 가끔은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도 많지만 이곳에 있다가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폐쇄적인 관계가 힘들 때가 있고, 오늘 말과 내일 말이 다르기도 해서 당황하기도 하고, 운전 문화도 달라 가끔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엔 “내가 뭘 잘못했나? 저 사람 왜 저럴까” 의심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4월이 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4·3.’ 아직도 정확한 용어 정리도 되어 있지 못할 만큼 아픈 단어다. 제주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조선시대 200년이 넘도록 제주 사람은 육지에 가지 못하게 한 ‘출륙 금지령’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이처럼 아프고 힘든 시간이 많은 곳이다 보니 사람을 믿지 못하고, 웃음이 사라진 삶을 사는 분들도 있다. 그런 제주를 주님께서는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서울 할망’이라고도 불리는 정난주(마리아) 선조는 대정현에서 관비(官婢)로 유배 생활을 했지만 참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고, 차귀도라는 곳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조난을 당하는 바람에 첫 미사를 봉헌하게 된 은총의 장소가 됐다. 또 제주교구 유일한 복자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을 통해 제주도에 신앙의 씨앗을 맺게 하셨으니, 세상은 보잘것없고 가난한 곳을 외면할지라도 주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며 놀라운 신비를 보여 주신 곳이 제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발행일 2026-04-12 제3486호 22면

안녕하세요~

“‘오늘은 안돼!’라는 말은 없어요. ‘빨리빨리’라는 말도 없어요~” “20분 걷는 거리는 30분으로 10분 늦게 걷고, 여유롭게 즐기면서 오늘 하루를 즐기세요.” 주교회의 교육위원회 학교법인 사무국장 신부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제주도에서 가톨릭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모여 축제를 하는데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장소와 프로그램을 내어놓으라는 압박(?)의 전화였다. 제주에서 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을 관리하면서 터득한 아이디어로 하루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내드렸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학생들 인솔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계획에도 없었던 일이었기에 살짝 당황과 부담감이 생기고, 그러면서도 청소년들을 만난다는 즐거운 마음도 공유되고 있었다. 제주에서 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을 관리, 운영하고 있다. 예전 가나안 공소를 리모델링하여 제주에 오는 주일학교, 복사단, 청년 단체들이 부담 없이 머물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 같은 피정 센터이다. 혼숨의 뜻은 ‘하느님의 숨결’, ‘큰 숨결’이라는 뜻으로 이곳에 오는 청소년, 청년들이 호흡 한번 길게 쉬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짓게 되었다. 처음엔 프로그램도 만들고 기본적인 규칙을 만들어 운영하였지만, 지금은 프로그램도, 규칙도 없다. 다만 “안 돼요~ 하지 마세요~”, “빨리빨리 하세요~”, “왜 그렇게 행동이 느려요”라는 말들이 나오지 않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에 지쳐 있는 이들에게, 늘 주변의 비교 대상이 되어 있는 청년들에게 ‘혼숨’에서도 똑같은 말을 듣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방문한 청년들을 통해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잔소리(?)를 멈추고, 청년들이 자유롭게 머물며 하고 싶은 것을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2박3일 동안 방에서 잠만 자다가 집으로 돌아간 청년이 있었는데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올라간 일도 있었다. 이런 마음으로 다가가니, 의외로 청소년·청년들이 전보다 정겹게 다가온다. 물론 까칠한 친구들도 있고, 시선조차 주지 않는 친구들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이 마음을 열면 더욱 대박이다. 얼마나 순수하고 이쁜 친구들인지. 그래서 제주에 온 가톨릭계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그런 마음으로 다가가고, 함께 걸어주고, 들어주면 되겠다 싶어 프로그램 인솔을 하게 되었다. 바다를 보며 걷는 30여 분의 시간. 그들은 어느덧 바위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다. 나중엔 끼리끼리 단체 사진도 찍는다. 가끔 위험한 곳에 올라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지켜만 본다. 잠시 머문 성지에선 짧은 기도를 하고 나오자는 말에 조용히 기도하고 나오는 학생들. 시장에서의 자유시간엔 친구들과 어울려 음식도 먹고, 작은 소품을 사면서 가족들을 위한 선물, 꼭 선물을 주고픈 사람들 것도 구입하는 모습들, 유채꽃밭에서는 꽃처럼 화사하게 웃는 모습이 내 마음을 즐겁게 한다. 이게 다였다. 하루 일정이 끝났을 때 목이 쉬거나, 감정이 불안하거나, 몸이 피곤한 것이 아니라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는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의 청소년· 청년들은 그렇게 살아가야 하고 또 그렇게 살 수 있는 하느님의 귀한 자녀들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를 본 학생들은 이렇게 먼저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발행일 2026-04-05 제3485호 26면

키레네 사람 시몬의 고백

사순 찬양 피정 의뢰를 받고 준비하면서 늘 묵상하는 성가가 있다. <키레네 사람 시몬의 고백>(박우곤 작사·작곡)이다. 키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사람으로, 늘 내가 궁금해하던 인물이었다. ‘찬양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어 드린다’는 교만한 생각에 머물렀던 나는 영성체 후 관상기도 중에 시몬을 만났다. 시몬은 가족들과 큰 축제를 지내기 위해 골고타 언덕을 내려오다가 십자가를 진 예수를 만난다. 군사의 강압으로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게 되지만 왜 십자가를 져야 되는지, 사람들이 던지는 돌을 맞고 욕을 들어야 하는 억울함과 아비로서, 남편으로서 권력 앞에 꼼짝 못 하는 자존심 상하고 분노한 마음에 예수라는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을 것이다. ‘그냥 모르는 척 지나칠걸’이라는 아쉬운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기도 중 내가 시몬이 되어 십자가를 등에 지어 보기로 했다. 얼마나 맞았는지 온몸이 찢기고 피투성이인 예수님, 바로 쓰러져 죽어도 당연할 만큼 힘겨운 그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십자가를 지려 하는 모습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보라고 한다. 십자가를 보는 순간 나는 놀란다. 내가 살아오면서 버겁고 힘든 나머지 버렸던 십자가였고, 외면하고 지지 않았던 십자가였던 것이었다. 그리곤 예수가 나에게 말한다. “외로웠지? 무거웠지? 지치고 힘들었지? 그리고 이 고통이 왜 나에게만 있는 거냐고 불만도 늘어놨지? 그런데 알렉시우스야~ 넌 혼자가 아니었어!! 난 언제나 너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있었는데 앞에 놓인 어려움 때문에, 어깨에 눌린 무게 때문에 나를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거지~. 그런데 난 늘 너와 함께하고 있었고, 너의 십자가를 지고 여기까지 온 거야~. 어때 다시 같이 가지 않겠니? 나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시몬의 인생은 내리막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었더니 내리막길이 아닌 오르막길을 걷게 되었다. 나의 인생도 사실 내리막길이었다. 하루에 스케줄 2~3개가 있을 정도로 바쁜 나날 중에도 페이를 좀 더 많이 주는 피정이나 공연을 선호했고, 나를 잘 대해 주는 행사에 다니려던 이기적인 삶이었기 때문이다. 30년 전 오로지 주님을 찬양하겠다는 생각으로 기타 하나 메고 험난한 찬양 사도의 길을 걸어가기로 다짐했지만, 어느새 내 앞의 십자가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가벼운 십자가만 찾으면서 그마저도 나 편해지자고 남에게 십자가를 미뤘다. 그러나 알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는 더욱 무거워지고 날카로워지고 거칠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또 그런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십자가를 놓지 않으셨으며 당신의 무한한 사랑과 희생으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고, 나 대신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도 키레네 사람 시몬이 되어 주님을 만나고 있다.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발행일 2026-03-29 제3484호 22면

무뎌진 마음…그리고 이기적인 삶

주님을 뜨겁게 체험했던 20대 시절부터 뉴스나 신문 기사에 사건,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주님, 저 영혼에 영원한 안식과 위로를 주소서”라는 화살기도를 봉헌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30여 년간 기도를 해왔지만, 요즈음은 기도하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성의 없는 기도라도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전대사를 남에게 양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여러 행사를 참여하며 받은 전대사를 연옥에 있는 불쌍한 영혼에게 양보하기도 했다. 내가 해 온 나름의 선행이라면 최선을 다한 기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최근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으로 많은 이가, 특히 170여 명의 어린 학생들이 안타깝게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가 예전과는 다르게 습관적이고 형식적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던 무뎌진 마음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주가가 폭락하고 유류 가격이 올랐다는 뉴스에 분노하며 주식장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이 순간 우습고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먼 이웃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엔 마음이 무뎌지고, 내 생활에 당장이라도 불편한 상황은 분노하는 이기적인 내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나의 가장 지저분한 발을 씻겨 주고 닦아주고 안아주고 입맞춤해 주신 주님의 사랑을 체험했다면서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전하는 내가 사실은 무디고 이기적인 삶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신앙인이라면 고통 가운데 있을 그들을 기억하며 기도해야 하고, 게다가 찬양 사도라면 찬양으로 위로를 전하고 평화를 노래해야 할 거다. 하지만 전쟁으로 세상이 혼란한 가운데 SNS 같은 인터넷 세상에 여전히 나의 활동을 알리고, 나의 생활을 자랑하고, 나를 홍보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모습에 뭔가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멈춰 나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외롭고 힘들었던 때 주님은 마냥 가만히 계시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위로와 격려, 그리고 기도가 멈추지 않도록 해 주셨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말만 할 게 아니라, 고통과 두려움에 있을 이웃을 위해 최소한의 기도와 찬양으로 다가가는 게 도리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들을 위해 애타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위로해 주시는 주님께 작게나마 동참하고 기도하자. 오히려 주님께 위로와 웃음을 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희망하며,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를 비판하며 하셨던 말씀으로 마무리해 본다. “노숙자가 추위에 얼어 죽어도 뉴스가 되지 않지만, 주식 시장이 2포인트 떨어지면 뉴스가 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복음의 기쁨」 53항)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발행일 2026-03-22 제3483호 22면

즐거운 미사

“아니, 주님께서 부활하셨는데 대영광송을 외국어로 들어야 하나요?” 매년 부활 때마다 내 마음속에 드는 불만 중 하나는 부활 성가를 라틴어나 이탈리아어로 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마저 성가가 길어 자리에 앉아 있으니 “일어나 달라”는 해설자의 멘트에 마지못해 일어난 적도 있었는데, 이 또한 불만이었다. “과연 이런 모습으로 어려운 성가들을 듣고 있기만 할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하는 것이 전례 형식에 들어 있는 줄 알았다. 2025년 겨울, 제주교구 하귀본당에서 성가대 지휘를 맡게 되었다. 이보다 더 예전에 어느 교구의 작은 본당에서 한 달 정도 지휘자 흉내를 내다가 쫓겨 난 이후로 관심조차 없었던, 아니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 생각조차 안 했던 내가 지휘를 한다고 성가대원 앞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 음악 전공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심히 공부하는 스타일도 아니라서 하귀본당에서 나를 선택한 건 실수라는 핑계를 마음에 두고 성가대원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어색한 인사를 끝내고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기초적인 지휘를 시작했다. 이때 깜짝 놀랐던 것은 내 손짓에 반주와 노래가 시작되고, 내 지휘 템포에 맞춰 성가가 불리고, 나의 마무리 지휘 액션에 노래가 끝난다는 것이었다. 당황스럽고 등짝에 땀이 물 흐르는 듯했다. 내가 뭐라고, 이런 위치에 있는 게 맞는지, 뭔가 잘못된 건 아닌지 심장이 뛰었다. 연속되는 긴장감 속에 어깨는 무거워지고, 정신이 없었다. 어떻게 연습을 했고, 어떻게 미사를 했는지도 모른 채 빨리 그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학수고대했던 것 같다. 육지에서 지휘하고 있는 후배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주변의 신부님들에게 전례에 관해 여쭈어보기도 하고, 영상도 참고하기 시작하였다. 30년의 찬양 사도 활동에서 얻은 경험과 현장에서 배우고 느꼈던 방법도 생각해 내며 본격적인 공부(?)를 하려고 했을 때, 그동안 불만이었던 것들이 해결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꼭 성가를 어렵게 외국어로 불러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성가는 신자들이 즐겁고 기쁘게 미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불러야 한다는 것이 전례 관련 책을 읽고 계셨던 신부님께 들은 내용이었다. 오호라~. 그다음부터 성가대 단원들에게 “외국어로 된 특송은 절대 하지 않겠다. 제 능력이 거기까지고, 전례서에도 꼭 어렵게 부르라는 내용도 없으니, 불만이면 저를 쫒아내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면서 연습에 임하고 지휘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지휘한 지 아직 짧은 기간임에도, 느낀 것이 있다면 성가대가 즐겁고 행복하게 성가를 불러야 미사에 오시는 신자들도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또한 일주일 동안 힘겨운 일상생활에서 시간을 내어 미사에 참석하신 신자분들에게 성가를 통해 주님의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은혜로운 시간인지를 신자분들의 얼굴을 통해, 목소리를 통해 조금씩 체험하고 있다. 이 체험을 한 후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그 바람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어려운 성가를 부르는 것보다, 내 목소리를 드러냄으로써 주님의 이름이 가려지는 것보다, 나의 작은 찬양과 작은 몸짓이 주님과 신자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미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발행일 2026-03-15 제3482호 22면

이상한 묵상

“카나의 혼인 잔치, 그날 성모님과 예수님 앞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 제주 이시돌에 오신 순례팀과 함께 새미 은총의 동산, 카나의 혼인 잔치 조각상 앞에서 늘 이렇게 문제를 내면, 대부분 다 머뭇거리신다. 여러분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저는 정답이 하인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성모님께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말씀하시자, 하인들은 물항아리에 물을 붓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쪽저쪽에서 “술을 가져오라”, “반찬을 날라라”, “여기 좀 치워라” 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쏟아졌을 터이다. 정신없이 불려 다니면서도, 졸졸 흐르는 물을 묵묵히 항아리에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요한 2,1-12 참조) 그럼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는 사실을 먼저 알게 되었던 사람들은? 물론 하인들이었을 것이다. 과방장이 “이렇게 좋은 포도주는 처음에 내어놓아야지, 왜 지금 내어놓는가?” 하고 묻는 순간, 하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했을지 모른다. “저희는 분명 물을 담았을 뿐인데… 물이 포도주로 변한 건가요?” 하고 속삭이며, 그들은 자신들이 본 일을 더듬어 과방장과 주인에게 전했을 것이다. 기적을 알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요즘 신조어 중에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의미)라는 말이 있다. 사회생활의 어려움 속에 있는 청년들에게 많이 쓰는 단어인데, 나는 신자들에게 이 단어를 이야기한다. 신앙생활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인가? 봉사하는 이 시간이 나에게 무슨 부귀영화를 가져다주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 미사 보내는 시간에 학원이라도 한 군데 더 보내고, 힘은 힘대로 들고, 오해도 사고, 때론 갈등도 있는 이런 시간이 나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사회생활에 장애물로만 보이며, 올해까지만 하고 내년엔 봉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실 거다. 그런데 하인들이라고 믿음이 있었을까? 확신이 있었을까? 그냥 시키니까, 바쁜 사람 불러다 놓고 포도주를 구하러 다녀야 하는데 항아리에 물을 담고 있는 하인들은 그냥 무의미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놀랍지 않은가? 그 사람들이 물이 포도주로 변해가는 사실을 알리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들이 증인이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성모님과 예수님 앞에 가장 오래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중간에 다른 일을 하러 간 하인들은 증인이 되지 못하고 현장에 있던 하인들에게 물어보는 신세(?)가 됐을 것이다. 신앙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교리도 모르고, 강론 시간에 신부님 말씀도 재미없고, 때론 세상이 좋아서 곁눈질도 해보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기쁘고 즐겁게 하기보단 어쩔 수 없는 그런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예수님과 성모님 곁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다고 한다면 우린 언젠가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는 사실을 세상에 선포하고, 설명하는 증거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또한 나의 비어 있는 영혼의 항아리에 물이 담기고 포도주로 채워지는 나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카나의 혼인 잔치의 기적은 바로 ‘나’인 것이다. 그러면서 신앙이 성장하고 믿음으로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 설명이 끝나면 본당 신부님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시다. 내년에 봉사자들이 봉사를 그만둔다고는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때문에~.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발행일 2026-03-08 제3481호 22면

창살 없는 감옥 - 광야에서

요즈음 유학생들은 과거에 비하면 비교적 안정된 형편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40여 년 전만 해도 유학 생활은 생존 그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여정이었다. 임신한 아내와 함께 떠난 유학길은 시작부터 팍팍했다. 수입은 없고 지출만 이어졌다. 가계부를 쓰던 아내는 어느 날 “이제 더는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남은 돈이 100달러도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기록은 위로가 아니라 절망이 되었다.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느냐며 눈물을 보이던 아내 앞에서 나는 달리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때 문득 성경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하늘의 나는 새도 먹여 주시는데, 저 새들보다도 더 귀한 주님의 자녀를 하느님께서 어찌 돌보지 않으시겠는가.’(마태 6,26 참조)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붙잡을 끈 하나는 생겼다. 그 말은 사실 아내에게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건네는 다짐에 가까웠다. 아내는 훗날 그 시절을 ‘창살 없는 감옥’이라 불렀다. 돈이 없으니 어디를 갈 수도 없고, 남편은 공부하느라 늘 바빴다. 아내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 보냈다. 몸은 자유로웠지만 마음은 늘 갇혀 있었다. 보이지 않는 창살이 삶을 둘러싸고 있는 듯한 시간이었다. 주일이 되면 남의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 40분쯤 떨어진 새크라멘토 한인 천주교 공소로 갔다. 교포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식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한 주의 유일한 위로였다. 그 만남은 마치 유치장에서 면회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간절했다. 잠시나마 세상과 다시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그 자리에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유학 생활은 광야와도 같았다. 광야는 먹을 것도 부족하고 쉬거나 잠잘 곳도 마땅치 않다. 인간은 그곳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로 돌아간다. 의지할 것이 사라질수록, 사람은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다. 광야는 인간의 부족함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자리이자, 동시에 신앙이 가장 맑아지는 자리다. 성경 속에서 광야는 늘 기도의 자리였다. 모세는 광야에서 방황하며 하느님을 찾았고, 예수님 또한 40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하며 기도하셨다. 단식은 선택이라기보다, 욕심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 낸 삶의 방식이었다. 광야는 인간의 욕망을 채워 주는 곳이 아니라, 욕망을 비워 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순절의 단식도 같은 맥락에 있다. 우리는 종종 단식을 절제나 나눔의 실천으로만 이해한다. 그러나 단식의 본래 의미는 그보다 깊다. 단식은 나 자신을 비우고, 온전히 주님께 나아가기 위한 통로다. 신앙인에게 단식은 “주님, 저는 혼자 살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우리 몸의 언어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드리는 기도는 다르다. 계산도 조건도 없다. 그저 주님께 맡기고 매달릴 뿐이다. 사순절의 단식은 우리를 억지로 괴롭히기 위한 규율이 아니라, 스스로를 광야로 이끄는 은총의 길이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던 삶에서 한 걸음 물러나,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시간이다. 지난 시절의 광야 같은 유학 생활은 지금도 내게 단식의 의미를 새롭게 가르쳐 주고 있다. 글 _ 노봉수 야고보(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발행일 2026-03-01 제3480호 22면

나눔은 여유가 아니라 태도이다

며칠 전 과천에서 전철을 타려다 플랫폼에서 노부부가 다투고 있는 모습을 봤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향해 연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오늘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이번 달 생활이 어려울 것 같다는 말씀이었다. 얼마나 썼기에 그러시나 싶어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그 액수는 오만 원이었다. 오만 원. 누군가에게는 점심 몇 번 값에 지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달의 숨통을 조이는 무게가 된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계셨다. 변명도, 억울함도 드러내지 않은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왔다. 말없이 서 계신 그 모습에서, 돈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 속에는 마침 오만 원이 있었다. 조용히 드릴까 하는 마음이 스쳤다. 그러나 괜한 오해를 사지는 않을지, 오히려 모욕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지, 내 행동이 그분들의 마음을 더 다치게 하지는 않을지 망설이게 되었다. 그렇게 머뭇거리는 사이 전철이 들어왔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전철에 올라탄 뒤에도 하늘만 바라보시던 할머니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나눔은 늘 그렇게, 마음에서는 시작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까지가 어렵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모습이 언젠가 나의 모습이 될 수도 있겠구나. 노후의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삶, 작은 지출 하나에도 마음이 조급해지는 현실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인생 앞에서, 우리는 결국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더욱, 서로를 외면하지 않는 사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이 다가오니 여기저기서 선물을 주고받는다. 감사한 일이지만, 나는 아직 누군가에게 선물을 드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 문득 매일같이 아파트를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간 자리를 말없이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묵묵히 비우는 분이다. 이름도 잘 알지 못한 채 늘 스쳐 지나가던 분이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발걸음이 멈췄다. 작은 선물이라도 드리고 싶어 커피믹스 한 봉지를 건넸다. 그분은 뜻밖에도 크게 기뻐하시며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교수님이 어떻게 저 같은 사람에게 이런 걸 다 주세요.” 그 말속에는 물건에 대한 감사보다도, 사람으로 존중받았다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선물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눔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라는 사실을 말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루카 10,27) 이 말씀은 거창한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먼 곳에 있는 누군가를 찾기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말라는 초대에 가깝다. 나눔은 특별한 결단이 아니라, 일상의 방향에서 시작된다. 나눔은 여유가 있는 사람만의 몫이 아니다. 사람의 지위에 높고 낮음이 없듯, 나눔에도 위아래는 없다. 있을 때 조금씩 나누며 사는 삶, 그 작은 실천이 서로를 버티게 한다. 설을 맞아 오가는 많은 선물 속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를 떠올리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미 충분히 가진 이들보다, 오늘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건네는 마음 하나가 이 계절을 더 따뜻하게 만들지 않을까. 글 _ 노봉수 야고보(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발행일 2026-02-15 제3479호 22면

고통의 시간도 사랑 안에 있다

대학에서 강의하며 나는 늘 학생들에게 많은 숙제와 과제를 내주었다. 프로젝트도 빠지지 않았고, 시험은 대부분 주관식이었다. 답안지는 10장씩 이어졌고, 학생들은 손에 쥐가 날 정도로 서둘러 써 내려가야 했다. 문제 중에는 교과서에 없는 상황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는 질문도 꼭 포함했다. 단순히 외운 지식을 옮겨 적는 시험이 아니라, 생각하고 판단하는 연습을 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반응은 늘 거칠었다. “이 과목은 공부를 하나 마나입니다.” “가능하면 신청하지 말아야 할 수업입니다.” 이런 말들이 들려왔다. 실제로 수강 신청 기간이면 내 과목을 두고 고민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들의 부담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배움이란 원래 편안한 과정이 아니라는 생각을 쉽게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시간은 흘러, 그렇게 힘겹게 공부하고 시험을 치렀던 제자들이 사회인이 되어 20여 년 만에 길에서 나를 만나곤 한다. 그때 그들은 뜻밖에도 웃으며 이런 말을 건넨다. “교수님을 뵈면 학창 시절의 괴로웠던 기억이 먼저 떠오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때야 대학이 무엇인지, 공부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언제 들어도 마음 한쪽을 조용히 두드린다. 이 장면은 어린아이가 병원에서 주사를 맞는 모습과 닮았다. 아이는 병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긴장하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린다.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온몸으로 저항한다. 그러나 주사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 열은 내리고 통증은 사라진다. 아이는 그제야 아픔보다 회복을 먼저 경험한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재난과 고통 앞에서 자주 묻는다. 왜 하느님께서는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아픔과 시련을 허락하시는가. 왜 착한 이들이 먼저 무너지고, 선한 이들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다. 자유의지는 사랑 안에서만 온전히 드러난다. 만일 우리가 창조주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기계와 같은 존재였다면, 거기에는 선택도 사랑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사랑을 강요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응답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 그래서 삶에는 설명되지 않는 고통의 순간들이 허락된다. 그 고통은 벌이기보다는 부르심에 가깝다. 지금 이 순간의 시야로 보면 슬픔은 불공평하고, 괴로움은 과도해 보인다. 그러나 인생 전체의 흐름 속에서 한 사건을 바라보면, 그 의미는 전혀 다르게 드러난다. 슬픔과 고통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게 하며, 사랑의 깊이를 넓히는 과정일 수 있다. 주사를 맞고 울던 아이가 건강을 되찾듯, 시험과 부담을 견딘 제자들이 삶의 힘을 얻듯, 우리의 아픔 또한 언젠가는 의미로 바뀌는 날을 맞이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러나 분명한 사랑으로 우리를 살리고 계신다. 지금은 아프고 버거워 보이는 시간일지라도, 훗날 돌아보면 그 시간 역시 은총의 일부였음을 고백하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믿음의 자리에서 바라본 삶의 깊이일 것이다. 글 _ 노봉수 야고보(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22면

숫자가 아니라 방식이 중요

어릴 적 나는 대가족 속에서 자랐다. 조부모님을 중심으로 삼촌, 고모, 사촌 형제들이 한집에 모여 살았다. 식사 시간이 되면 집안은 늘 소란스러웠다. 국그릇 하나를 가운데 두고 숟가락들이 분주히 오갔다. 국에 떠 있는 두부 몇 조각은 늘 경쟁의 대상이었다. 막내였던 나는 어렵게 건져 올린 두부를 입에 넣기도 전에 형들의 젓가락에 빼앗기기 일쑤였다. 국은 있었지만, 내 몫의 두부는 늘 없었다. 그때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형들이 많으니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 보면, 문제는 음식의 양이 아니라 나누는 질서였다. 모두가 동시에 손을 뻗는 식탁에는 기다림도, 배려도 없었다. 그 결과 음식은 남았지만, 마음은 늘 허기졌었다. 마르코복음에 나오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이야기도 우리는 흔히 그렇게 기억한다. 빵이 갑자기 늘어났고, 물고기가 기적처럼 불어났다는 이야기로 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 보면, 복음이 강조하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방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고 한다. 그들이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굶주림은 단순히 배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 먹을 수 있는지, 누가 책임지는지, 무엇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 사람은 먼저 불안해진다. 배보다 먼저 마음이 무너진다. 제자들의 제안은 매우 현실적이다. “저들을 돌려보내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오늘의 시장 논리로 보면 합리적인 해결책이다. 각자 책임지고 각자 해결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다르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예수님께서는 먼저 사람들을 앉히신다. 50명, 100명씩 자리를 잡게 하신다. 혼란을 가라앉히고, 모두가 받을 준비를 하게 하신다. 질서 없는 자리에서는 음식이 넘쳐도 다툼이 생긴다. 자리가 정리되어야 나눔이 시작된다. 이 장면은 먹는 일보다 앞서는 준비가 무엇인지를 조용히 보여 준다. 그다음에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신다. 먹기 전의 감사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음식이 ‘내가 차지해야 할 몫’에서 ‘오늘 나에게 맡겨진 선물’로 바뀌는 순간이다. 소유가 되는 순간 경쟁이 시작되지만, 선물이 되는 순간 나눔이 열린다. 우리가 식사 전에 드리는 짧은 기도에는 바로 이 고백이 담겨 있다. 빵은 예수님의 손에서 곧바로 군중에게 가지 않는다. 제자들을 거쳐 전달된다. 기적은 한 사람의 손에 머무르지 않는다. 참여와 전달을 통해 완성된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다. 이것은 과잉이 아니라 충만의 표지다. 필요한 만큼 먹고도 남는 상태,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풍요다. 이 이야기를 오늘 우리의 식탁으로 옮겨 놓으면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정말 가진 것이 부족한가, 아니면 나누는 질서가 무너져 있는가? 양을 늘리기 전에, 자리를 먼저 정리했는가? 먹기 전에, 감사했는가? 어릴 적 국그릇 속 두부를 둘러싼 기억은 이제 다른 가르침으로 남아 있다. 예수님의 기적은 빵의 양을 바꾼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바꾼 사건이었다. 오늘 우리의 식탁에서도 기적은 여전히 가능하다. 다만 그 기적은 숫자가 아니라, 나누는 방식에서 시작된다. 글 _ 노봉수 야고보(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발행일 2026-02-01 제3477호 22면
기사 더보기더보기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