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 대한 사유

“나는 대리석 안에 있는 천사를 보았고, 천사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 냈다.” 다비드상을 조각한 미켈란젤로의 신앙고백이다. 그는 이미 대리석 안에 있는 천사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조각상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 들어있는 천사를 발견한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우리 안의 그리스도를 볼 줄 아는 눈을 갖는 것이다. 신앙은 곧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을 발견하고 믿는 것이다. 신앙은 성스러운 절대자를 믿고 절대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 내지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인간의 신뢰와 순종이라는 인격적 관계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신앙이란 하느님과 그분이 보이신 계시에 대한 인간의 긍정적인 반응 즉, 신앙의 대상인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계시를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전적으로 하느님의 증거와 언약에 의존한다. 즉 신앙은 하느님의 언약인 ‘말씀’에 전 존재를 걸고 신뢰하는 것이다. 신앙은 구원의 필수 조건이다. 하느님의 창조와 섭리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재림과 최후 심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부활 신앙이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끝’이 아니라 한 방식의 삶이 끝나고 다른 방식의 삶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썩어질 육체를 위하여 삶을 소진할 것이 아니라 부활의 신앙으로 영생한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러고는 눈을 들어 바라보니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것은 매우 큰 돌이었다.”(마르 16,4) 성경은 이 짧은 한 문장으로 무덤 안과 무덤 밖을 연결한다. 참으로 놀랍고 엄청난 변화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르 16,6) 그렇게 성경은 단호하고 분명히 예수님의 부활을 알린다. 무덤 안의 어둠과 두려움이 무덤 밖의 빛과 희망으로 연결된 것이다. 무덤 안의 죽음과 무덤 밖의 생명이 연결됐다.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돌이 치워진 것이다.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은 치워졌고, 창으로 찔려 벌어진 그 옆구리 사이가 보고 믿은 이의 손으로 메워졌다. 그리고 믿지 못한 토마스는 벌어진 상처를 넣어 보고 나서야 신앙고백을 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부활을 통해 열어 주신 생명의 문, 그분께서 당신을 믿고 당신의 뜻을 끝까지 충실하게 지켜 온 사람들을 하늘의 영광에 참여시키기 위해 열어 주신 천국의 문,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발걸음이 우리 신앙의 전부일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요한 20,25) 그 생생한 기억이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펼치신 구원의 손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고립과 절망으로부터 꺼내 주며, 지금 우리 안에 희망의 기쁨을 움트게 하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여기에서 양팔을 벌려 신앙으로 다져진 우리를 맞이하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신 능력은 성령이었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 성령을 받아 부활의 신앙으로 각자에게 내려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며 작은 예수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세가 신앙인의 진정한 삶이 아닐까. 글 _ 윤여환 요한 사도(충남대 회화과 명예교수)

2024-04-21

예수 초상에 대한 상징성

2020년 선보인 한국천주교 103위 순교성인화 중에서 얼굴이 없는 77위의 성인화가 새로 제작되었는데, 그 당시 여러 명의 화가가 심혈을 기울여 그려냈다. 초상화들을 보면 당시의 사진 자료가 없고 직계 혈손도 없으므로 화가 개인의 주관적인 감각으로 창조된 얼굴들이다. 그러다 보니 충분한 형태적 분석이 안 된 화가는 신앙적 품성이 결여된 느낌이 들거나 자신을 닮은 모습이 나오기도 하여 심의에서 탈락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예수의 초상화는 어떠한가. 인성과 신성으로 상징화된 예수의 초상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예술형식과 매체에 의해 신앙과 관습적 인식의 조합으로 창조되어 왔는데, 그리스·로마 미술에 뿌리를 둔 3세기경에 처음으로 양을 어깨에 메고 있는, 수염이 없는 관습화된 선한 목자의 얼굴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6세기경에는 비잔틴제국과 중세미술에서 관습화된 초상인, 어깨까지 내려온 긴 머리에 수염이 있는 모습이 되어, 예수의 도상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오른손에는 하늘과 땅을 축복하고 왼손에는 복음서를 들고 있는 성상화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인간적 가치를 중시한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배경으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서 묘사된 남성미 넘치는 근육질의 예수,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나타난 우아하고 이상적인 용모를 지닌 예수가 등장한다. 예수의 초상화는 20세기로 들어서면서 미국의 워너 샐먼이 그린 하얀 피부와 긴 머리, 푸른 눈을 가진 예수의 얼굴로 탄생한다. 샐먼의 그림은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마치 표준영정처럼 전 세계로 널리 퍼져나갔다. 결과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친근하고 달콤한 예수의 이미지가 대중 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그에 비해 조선 시대 공신들의 초상화는 곰보나 사팔눈, 흉터가 있는 얼굴을 한 용모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다. 아름답고 잘생긴 외모 지상주의가 아닌 진솔한 얼굴 그 자체를 가감 없이 담아내어 예수의 초상화와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영국 BBC 다큐멘터리 ‘신의 아들’이 공개한, 현대과학이 만들어 낸 예수의 얼굴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이 아닌 농민이나 노동자 계층의 검고 짧은 머리카락과 까무잡잡한 피부색을 가진 거칠고 투박한 생김새의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부근에서 도로공사 중 발견된 1세기 유대인들의 두개골 중 가장 대표적인 형태를 가진 것들을 골라 첨단 법의학 기법과 컴퓨터로 실제 얼굴을 복원했다. 머리카락, 턱수염, 피부색 등은 이라크 북부의 한 사원에서 발견된 예수상을 토대로 제작했다고 한다. 성경의 이사야서 53장에도 그의 용모에 대해,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만한 모습도 없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어쩌면 직업이 목수(마르코 6:3)였으므로 육체노동자의 다부진 체격을 가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예수의 성상은 성경에서만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얼굴로서, 아무도 보고 그린 사람이 없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인간이 창조해 낸 관습적 인식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뒷받침할 시대적 공감대를 형성해 주는 예수의 초상이, 우리를 신앙과 영적 성장에 길잡이 역할을 해 주고 있는 것이다. 글 _ 윤여환 요한 사도(충남대 회화과 명예교수)

2024-04-14

성 김대건과 최양업 신부의 동행 / 윤여환

2021년 유네스코 세계 기념인물로 선정된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2021년 1월 1일자 가톨릭신문 신년호 1면에 성체의 빛을 받으며 걷는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를 그린 ‘아름다운 동행’ 작품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하늘에 계신 성체의 빛을 받으며 솔뫼성지를 걷고 있는 성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이 함께 서 있는 모습으로 설정했는데, 그것은 두 분이 친척이면서 동년배이시고, 마카오로 건너가 함께 신학 수업을 받으셨던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 두 분이 이 땅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주님께 다가가고자 했던 그 시절 신앙의 열정을 최대한 담아내 보려고 하였다. 그리고 화면 양 옆으로는 신부들이 뿌린 신앙의 씨앗으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한 한국교회를 상징하는 명동성당과 나바위성당을 배치하여 거룩한 분위기를 고취시키려고 노력했다. 성 김대건 신부님은 한국천주교회 첫 사제이면서 성인이시기 때문에 후광을 넣었고 사제복식을 따랐다. 최양업 신부님은 12년 동안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교우촌 신자들을 위한 사목과 전교활동을 하시다가 순직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지팡이와 짚신을 신고 있는 복식으로 표현했다. 또한 대전가톨릭대 학생 자치회는 그 당시 학생들의 뜻을 모아 교내에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 그림을 걸자고 뜻을 모으고 학교의 허락을 받았다. 이어 두 신부의 모습이 담긴 작품들을 수소문하고 선별해 재학생 모두에게 의견을 물었고, 내가 제작한 ‘아름다운 동행’ 작품을 최종 선정했다. 이 그림을 가로 120㎝, 세로 105㎝ 크기 액자로 제작하여 4월 19일에 성당으로 가는 복도에 걸어 하루에도 여러 번 성당으로 들고 나는 신학생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학생회장 이재홍(미카엘) 부제는 “사제직을 향해 가는 우리 신학생들이 두 분 선배 신부님들의 신앙과 정신을 항상 되새기고 참 사제가 되기를 다짐하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충청 솔뫼에서 태어나 서울 한강변 새남터에서 순교할 때까지 25년을 살았다. 1845년 한국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고 그 이듬해 처형됐다. 지극히 짧은 삶이었으나 한국 천주교의 불꽃을 일으킨 선각자로서의 울림은 길게 이어지고 있다. 교황청은 지난 1925년 김 신부를 복자로, 1984년 성인으로 선포했다. 유네스코는 2019년 총회를 통해 김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기리며 ‘2021년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한 것이다. 충청 다락골에서 태어난 최양업 신부는 15세 때 프랑스 모방 신부에 의해 김대건, 최방제 등과 함께 한국 첫 신학생으로 선발됐다. 유학길에 올라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1849년 사제 서품을 받고 두 번째 한국인 신부가 됐다. 라틴어로 된 교리를 우리말로 번역해 박해를 피해서 산골 곳곳에 숨어 있던 천주교인들에게 전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 많이 불리던 가사양식을 활용해 ‘천주가사’를 창작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최 신부는 사목 활동 중 과로와 장티푸스로 선종했다. 1984년 한국 성인 시성식 때 명단에 들지 못했으나, 이후 주교회의는 최 신부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6년 최 신부를 가경자로 선포했다. 오늘날 한국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제도가 김대건 성인과 최양업 신부님의 순교 영성에 누가 되지 않게 되기를 빌며, 순교정신을 본받아 자아성찰과 묵상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글 _ 윤여환 요한 사도(충남대 회화과 명예교수)

2024-04-07

103위 순교 성인화 스토리 / 윤여환

한국 천주교 103위 순교 성인화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는 지난 2017년 2월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에 103위 순교 성인화 제작 추진을 요청했다. 그해 7월에 초상화 제작사업 승인을 받아 ‘103위 순교 성인화 제작 운영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리고 전국 교구 가톨릭미술가회를 통해 참여 작가를 공모하여 성인화 제작 작가를 선정하였다. 이어서 ‘한국 103위 순교성인 초상화 제작자 워크숍’을 개최하여 복식 고증과 자세 그리고 손에 든 서적, 성물, 갓, 머리모양 등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하였다. 회의 결과, 새로 제작하는 성인화들은 모두 상반신에 20호 크기로 통일하였다. 그런데 2018년 2월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한 성인화 제작 사업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2018년 12월에는 채색된 작품들을 검토하여 인준, 조건부 인준, 비인준으로 분류해 조건부 인준 작품은 수정을 거쳤고, 비인준된 12점의 작품은 다시 제작하기로 하였다. 결국 2019년 6월에 작가 63명이 참여하여, 1차로 68위 성인화를 완성하였고, 기존 성인화 중에서 다시 제작할 필요가 있다고 결정한 9위를 포함하여 2020년 6월에 최종 77위 성인화를 완성하여 인준을 받아 3년 만에 천주교 표준성인화가 탄생했다. 나는 그 당시 운영위원으로 참여하여 작가당 1위를 제작하기로 했는데, 추가 성인이 늘어나 부득이 6인의 성인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 9월 4일에서 27일까지 서울 명동 갤러리1898 전관에서 성인화전을 개최했다. ‘한국 103위 순교 성인화 특별전’의 가장 큰 의미는 103위 성인의 시성식이 거행된 지 36년이 지난 지금, 최초로 103위 성인 초상화 전체를 한자리에 모았다는 점이었다. 이 가운데 문화예술위원회가 진행한 103위 순교 성인 초상화 제작사업을 통해 새로 제작한 초상화가 77점이었고, 기존에 제작된 26위의 초상화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 정하상 바오로,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 조신철 가롤로 등과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 10명을 그린 작품들이었다. 103위 성인들을 박해 시기별로 나눠보면 기해박해 순교 성인이 70위, 병오박해 9위, 병인박해 24위이다. 성인 초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머리 뒤에 후광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10위의 성인들은 시복 시성 이전인 19세기 말에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진 초상화이기 때문에 후광이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제작한 성인화 6위는 성 이광렬 요한, 성 김임이 데레사, 성 권희 바르바라, 성 손소벽 막달레나,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아들인 성 유대철 베드로이다. 이 성인화들은 비단에 그림을 그리는 육리문법과 배채법, 적선법을 사용한 견본채색 방식으로 전통초상기법에 충실하였다. 그동안 초상화 작업은 다양하게 연구해 왔지만 이번 성인화는 처음 접하면서 용모 추출의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고심 끝에, 순교하신 103위 성인들의 영적 교감을 얻기 위해 해당되는 성인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계속 기도했다. 그리고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신심 깊은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신부님과 수녀님, 신자들의 모습에서 ‘신앙적 용모 우성인자’를 분석해 이를 바탕으로 순교 성인의 성스러운 얼굴을 표현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글 _ 윤여환 요한 사도(충남대 회화과 명예교수)

2024-03-31

내포의 마더 테레사 초상 / 윤여환

긴 세월, 초상이 없는 선현들의 용모를 찾아내기 위한 영정 작업을 꾸준히 해 왔다. 주로 해당 위인들의 문헌자료와 직계 혈손들의 용모에서 표준우성인자를 추출하여, 어느 정도 직계 후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결과를 얻어냈다. 혈손들의 용모에서 그 위인의 인품과 진상(眞像)을 찾아내는 작업은 무척 난이도가 높고, 영혼의 교감까지 요구되는 영역이라서 여간 까다롭고 난해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연구 분석한 통계적 골상학과 관상학 그리고 인상학과 기색의 찰색법 등 가능한 모든 추출 방식을 동원하여 유전적 형태를 부위별로 분석한다. 그 표준유전인자를 모본으로 하여 주인공의 근사치를 찾아내고 최종결과의 용모를 도출하여 완성한다. 지난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내포 지역 방문 기념 특집으로 ‘TJB화첩기행-내포성지순례 2부작’을 제작하기 위해 2주간 촬영과 현장 사생 작업을 진행한 일이 있었다. ‘TJB화첩기행’은 TJB대전방송의 예술과 여행 프로그램으로,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를 읽고 그리며,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휴머니티를 사생과 음악을 통해 풀어갔다. 이 프로그램에서 ‘한국 천주교의 못자리’로 꼽히는 내포 지역의 의미를 되새기며, 교황이 찾는 당진 솔뫼성지와 서산 해미순교성지를 비롯해 한국 천주교의 샘터로 불리는 여사울성지 등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를 미리 돌아보았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기념할 만한 일을 고민하던 중 “마더 테레사가 한국인이었다면 어떤 모습일까”하는 생각에 내포의 마더 테레사를 찾아보는 시나리오를 기획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랑의 천사 마더 테레사 수녀의 따뜻한 품성과 신앙적 향기를 기리기 위해 내포 지역 성지인, 해미순교성지 성당의 신자 중에서 오랜 세월 동안 깊은 신앙심으로 다져진 여성 신자들을 물색했다. 그 결과 14명의 할머니 얼굴에서 신앙적 용모 우성인자를 추출하여 한국의 ‘내포 마더 테레사’ 초상을 구현해 냈다. 신앙적 용모란 하느님에 대한 깊은 믿음으로 다져진 용모를 말하는데, 안면근육의 활성도를 측정하고, 안면피부의 발색도를 찰색하여, 발색도와 활성도 등이 높은 용모인자 중에서 우성인자를 찾아 분석하였다. 그리하여 인자하고 단아하며 맑고 신앙심이 깊은 내포의 할머니 초상을 탄생시켰다. 이번 초상화 작업을 통해 마더 테레사 수녀가 걸어온 성녀의 삶과 참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과 우리 곁에서 발견한 테레사 수녀의 모습 등을 통해 삶의 행복과 기쁨, 보람과 희망이 늘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내포 지역에 다시 탄생하는, 부활하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초상화를 구현해 내는 일련의 과정들은 오롯이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잠재의식 속에 깊숙이 침잠해 있던 어떤 영적 메시지를 받는 시간, 묵상하며 기도하는 무언의 영적 소통의 시간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글 _ 윤여환 요한 사도(충남대 회화과 명예교수)

2024-03-24

[일요한담] 성령묵상회의 추억

동양회화를 하면서부터 동양사상과 동양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왔다. 특히 동양의 기사상이라든가, 음양오행론에 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왔지만 결국 사상과 철학의 근간은 종교적이고 영적인 곳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음양오행에 심취하다 보니 신비주의에 빠져들기도 하여 신적인 존재나 영적인 세계를 찾으려는 노력도 했었다. 그러한 종교적 편린 끝에 1991년에는 가톨릭교회에 입교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세례성사 즉, 물과 기름에 의한 세례를 받고, 다음에는 더욱 굳건한 믿음을 위해 견진성사를 받았다. 또 소위 불세례라고 하는 성령묵상회 등을 통한 성령세례를 받기도 하였다. 나는 그 무렵 유인성 신부님의 성령묵상회 안수 중에 바위처럼 큰 불덩어리가 머리 위에 내려오면서 전신이 감전되는 듯한 전율을 느꼈고, 신령한 언어의 은사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에 그 신령한 언어가 글자화되는 심령 글씨를 쓰게 되었고, 그 언어는 리듬을 타고 노래로 나오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영가(靈歌)라고 할 수 있다. 노래는 시작과 끝도 없이 저절로 작사 작곡이 되어 불러졌다. 글씨도 자동필기로 글씨가 저절로 빨리 써지는데 한 자도 흐트러짐 없이 질서 있게 기록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작품 제작에 들어갔을 때 어느 틈에 그 글씨들이 나의 작품 속에 잠식해 들어왔음을 보고 무척 놀랐다. 그로 인해 그림이 마무리가 안 되고 망쳐버리는 결과가 자주 일어났다. 나의 의도와 그 글자 조형이 서로 불협화음을 낸 것이다. 결국 기도 중에 나는 자동 필기되는 그 의도에 따라주라는 무언의 암시를 받고 아무 생각 없이 무작위로 그림을 그려 나갔다. 그 후부터 나는 무작위적 글자의 조형성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그림의 소재도 자유로워졌다. 그 심령 글씨가 나의 조형적 회화 세계를 점유하여 나의 조형적 사고와 신적 문자 조형이 혼연일체가 되어 표출되고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것은 현상과 본질, 순수조형감각과 신비적 로고스와의 만남이었다. 나의 경험적 미의식과 초월적 미의식과의 융화였다. 이른바 ‘묵시찬가’(黙示讚歌) 시리즈는 이렇게 해서 제작되었다. 이들 작품에 나타난 심령 글씨들은 하느님에 대한 찬미, 감사, 참회, 비탄, 예언, 교훈, 찬양, 찬가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말하자면 하느님과의 묵시적 심령 기도문이다. 그것이 언어의 한계성과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우리를 대신해서 하느님께 신비한 일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듣거나 해득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하느님 자신을 위해 조배 드리는 것이다. 그로부터 32년이 지난 지금도 이 세 가지(심령 언어와 심령 글씨, 심령 노래) 기도 형식은 변함없이 나의 신앙과 작품세계 속에서 발현되고 있다. 이 묵시적 ‘사유문자’(思惟文字)는 내 작품 속에서 하느님을 통해 참나(眞我)를 찾기 위한 표현 기제로 내 잠재의식 속에 들어앉아 있다.

2024-03-17

[일요한담] 다시, 시작

3월이 있어 감사합니다. 새해 벽두에 세웠던 계획들이 흐트러지는 때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시작점이 되어 주기 때문이지요. 그러고 보면 기회는 여러 번 있습니다. 신정에 세운 계획들이 무너져 갈 때 구정이 다가와 목록을 점검하고 새 다짐을 할 기회가 있었고, 그럼에도 작심삼일로 끝난 목표들을, 이번엔 아이들의 새 학기에 맞춰 다시 출발선으로 끌어옵니다. 느슨해졌던 마음을 다잡고 초심을 장착해야지요. 저의 새해 계획 중 하나는 ‘근육량 1kg 늘리기’입니다. 1kg은 너무 작은 목표가 아니냐고요? 그렇다면, 1000g이라고 달리 표현하겠습니다만, 저에게는 도전적인 숫자입니다. PT 선생님과 함께 제 몸 상태를 측정하고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냉정한 관점으로 논의한 끝에 결정한 수치입니다. 30대에는 새해 운동을 시작할 때면, 야심 찬 포부를 품곤 했습니다. ‘말 근육’이라 부르는 매끈하고 선명한 근육을 동경했죠. 피부 겉으로 갈라진 근육의 모양이 드러나도록 만들고 싶다는 게 목표였지요. 그렇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보이는 외관에 초점이 있었습니다. 제게 있어 근육이란, 미의 측면에서 선망하는 어떤 장신구처럼 고려되었던 듯 합니다. 물론 매번 실패로 끝이 났고, 연말이면 풀죽은 마음으로, ‘내년에는 기필코!’를 외치곤 했습니다. 40대에 이르러서는 관점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부족한 근육량으로 인해 기초대사량은 낮아지고 뱃살은 두둑해지는데, 정작 근력은 약해지고 피로감은 커졌습니다. 전형적인 마른 비만으로 향하는 체성분 검사의 수치를 보고서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말 근육은 커녕 그나마 있는 근육도 더 빠지고 있는 노화의 현실도 직시해야 했지요. 허황한 꿈에 젖어 멀고 먼 꿈을 향해 달리기보다, 현실에 기반해 목표를 수정하고, 전념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요. 이젠 겉으로 보이는 근육 라인에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나이와 함께 줄어들 근육을 얼마나 잃지 않고 지킬 것이냐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해서 장기적으로 얼마만큼 근육을 더 만들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때였습니다. 근육이 잘 붙는 근육형 체질은 따로 있고, 저와 같은 반대의 체질은, 과한 욕심을 부리기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목표를 잡는 게 현명하다는 것 또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그러한 판단에서 ‘근육량 1kg 늘리기’는 운동에 관해서는 늘 패배자였던 저에게 ‘난이도 상’의 목표입니다. 저는 과연 올 연말, 목표를 이루었다며 자랑스럽게 SNS에 사진을 올릴 수 있을까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의욕적으로 주 2회를 목표로 했던 운동을, 지난달에는 주 1회도 채우지 못했거든요. 그러니 3월로 들어서며 저에겐 초심이 다시 필요합니다. 이렇게 저의 목표를 못 박아 적어 두는 것도 스스로에게 압박을 가하는 작업일 겁니다. 저만 힘들 수는 없으니, 당신에게도 묻습니다. 1월에 적어 둔, 당신의 올해 목표는 무엇이었나요?

2024-03-10

[일요한담] 좋은 부모란…

3월을 준비하는 마음이 분주합니다. 3월이면 저는 학부모가 되거든요. 쌍둥이 남매를 낳았다고 축하를 받았던 게 며칠 전 같은데, 그 아이들이 자라 초등학생이 됩니다. 책가방을 장만하고, 실내화를 사면서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실내화는 까맣게 더러워진 채 오래 신었고, 우산을 빠뜨려 비 맞으며 하교하는 나날도 당연했지요. 그런 기억들이 서러워 바쁘신 부모님을, 무심하신 부모님을 탓하곤 했었는데, 그랬던 제가 이젠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길러 학교로 보냅니다. 자라서 보니 그런 결핍감, 자잘한 상처들이 소중한 자산입니다. 더러운 실내화를 신고도 열심히 공부했고, 비 맞았다고 아팠던 적도 없었습니다. 부끄러움도 느껴보았고, 좌절감도 맛보았지요. 그래서 원만하게 자라났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아이가 좌절하고, 부끄러워하고, 위축되고, 슬퍼하는 순간들을 잘 지켜봐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걸 막고 싶은 게 부모의 본능인지라, 아이가 힘겨워하는 순간을 품고 견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이를 잘 기른다는 것은,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고 싶은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소화해 내는 그 과정을 함께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되새깁니다. 윤우상 박사는 「강강술래학교」에서 ‘도와주지 않는 힘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절대 맞지 않도록 보호막을 쳐줄 게 아니라, 사회로 나가 받을 온갖 상처에서 금세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길러주는 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현대의 부모는 어떤 걸 해줄까 보다 어떤 걸 안 해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이죠.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라는 책에도 답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온갖 정성을 들이고, 나중에 억울한 나머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고함이 나오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의 마음으로 키우라고요. 그 지혜로운 말씀에 웃음을 터뜨리며 새삼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예비소집일에 찾아간 학교에서는 3월이 되기 전까지 집에서 익히고 연습해 두면 좋을 것들을 일러주셨습니다. 1. 우유팩 뜯는 법. 삼각 모서리를 옆으로 열어젖히고, 다시 날개를 눌러 마름모꼴로 입구를 여는 것이 제법 요령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이번에 가르쳐 보면서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2. 스스로 바지를 풀러 용변 보고 뒤처리하는 법. 남학생의 경우 소변기 앞에서 바지를 훌렁 내려서 바지가 바닥에 끌리면 젖을 수도 있고, 엉덩이를 보였다며 놀림을 받기도 한답니다. 앞섶만 살짝 풀러 용변 보는 기술도 익혀야 합니다. 3. 쇠젓가락 훈련. 유아용 플라스틱 젓가락이 아닌, 어른용 쇠젓가락의 무게와 길이를 익히는 것도 필요하지요. 급식에서는 유아용을 따로 구비해 두지 않습니다. 이런 안내를 들으며 새삼 실감이 났습니다. 내 품의 아기가 이젠 품에서 나와 스스로의 사회를 구축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 다시 마음에 새겨봅니다. 아이가 사회로 내딛는 이 발걸음에서 나의 역할은, 한 걸음 더 물러나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의 세계가 더 확장되도록 지켜봐 주는 일이라는 것을.

2024-03-03

[일요한담] 치앙마이에서 느리게 살기

올해는 설 연휴를 태국 치앙마이에서 맞이합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온 일정입니다. 거리 곳곳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더니, 한달살기로 벌써 인기가 높은 지역이더군요. 긴 휴가를 온 가족이 함께 즐기며, 느리게 살다 가려 합니다. ‘느리게 살기.’ 마음챙김 명상을 시작하면서 나의 삶이 얼마나 의미없이 바쁘기만 한지를 느끼고, 이제는 ‘빨리빨리’를 내려 놓고 매 순간을 음미하며 살겠다 다짐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바삐 사는 것이 몸에도 마음에도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에는 언제나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목록이 길게 늘어서 있고, 그 사이를 오가다 보면 하루가 끝나기 마련이거든요. 느리게 살기를 실천하기 위해 치앙마이 중심부에서 차로 15분 거리 외곽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자갈이 깔린 마당에는 고양이 두세 마리가 오가고, 작은 풀장에는 커다란 잎사귀가 시시때때로 떨어지고, 방 안에 앉아서도 하루 종일 온갖 새소리가 들려오고, 그러다 멀리서 오토바이 굉음도 섞이는, 시골도 도시도 아닌 중간 지대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해야 할 일 목록도, 하고 싶은 일 목록도 간소화하려 합니다. 그렇게 느린 템포로 하루를 길게 살아보려 합니다. 아침엔 아이들과 함께 눈을 뜹니다. 서울에서라면 아이들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밥도 챙겨야 하고, 아이들 옷을 꺼내 놓고, 준비물 챙기고,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이곳에선 알람 없이 눈이 떠지는 때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함께 느릿느릿 아침거리를 챙겨 먹지요. 간단히 빵을 먹기도 하고, 태국식 닭죽에 간장을 뿌려 먹기도 합니다. 그러고 나면 부모님은 느긋하게 샤워를 오래 하시고, 저는 식탁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아이들은 강아지와 고양이를 찾으러 마당으로 달려 나갑니다. 게으른 오전을 보내고 점심 때가 다가오면 슬슬 나갈 채비를 합니다. 일정은 시간을 넉넉히 잡고 한두 가지만 정하고 나갑니다. 한 번은 동물원에 가고, 한 번은 사원 한두 군데를 들러 보고, 어떤 날엔 야시장에서 조그맣고 귀여운 것들을 찾아 쇼핑합니다. 오늘은 미술관 한 군데를 들르기로 하고 길을 나섭니다. 지도를 볼 때와 사진을 찍을 때를 빼곤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고, 대신 사두고 읽지 못했던 책 한두 권을 가방에 넣었습니다. 거리에서 눈에 띄는 곳에 들어가 식사하고, 디저트는 과일 스무디가 싸고 맛있으니 종류별로 시도해 봅니다. 카페가 많은 동네이니 하루에 몇 번씩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요. 이런 느긋함, 여유,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그런대로 괜찮은 나날은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느리게 살기’라는 모토로 지낸 며칠, 조급함이 사라진 자리에 천천히 채워지는 만족감이 있습니다. 따져 보면 한국의 일상에서라도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인데, 왜 이국에 와서야 더 가능해지는 걸까. 환경을 바꾼 것이 슬로우 모드로 진입하기 더 수월하게 만들어 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챙김이 매 순간을 알아차리며 생생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라면, 어쩌면 이곳에서 한 걸음 마음챙김을 향해 걸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장소가 중요할까요. 마음이 중요하겠지요. 긴 연휴, 마음에 한번쯤 느릿느릿한 공백과 여유가 깃드는 시간이 주어지기를, 또 그런 시간을 충만하게 누려보기를 소망하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도합니다.

2024-02-25

[일요한담] 내향형을 위한 자리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어떤 질문을 하시나요? 요즘 많이 하는 질문은 아마도 “MBTI가 어떻게 되세요?”일 것입니다. 16가지로 분류된 틀로 한 사람을 총체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그래도 상대를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본다면 MBTI의 유행은 반가운 일입니다. 특히 MBTI 유형 구분의 첫 번째 글자, 환경에 반응하는 태도를 구분하는 I와 E, 즉 내향형(Introversion)과 외향형(Extroversion)에 대한 인식이 전과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전에는 내향형의 사람에 대해, 내성적이라거나 소심하다거나 하는 식의 부정적 뉘앙스가 담긴 표현을 하기도 하고,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개선하거나 변화시켜야 할 성격으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이젠 타고난 기질로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관점이 생겼다고 느낍니다. 내향형의 사람들은 외향형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사교력(?)을 발휘해야 하는 사회적 장면에 더 불편감을 느끼고, 여러 시선이 몰리는 상황을 어색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적 에너지의 방향이 개인 안으로 향하기에, 흔히 외향형이 좋아하는 ‘폭넓고 다양한 교류’를 버겁게 느끼고, ‘소수의 친밀한 관계’를 더 선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종종 오해를 사곤 하는데, 내향형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안 좋아한다는 인식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저도 내향인으로서 단언컨대, 내향인도 사람을 좋아합니다, 무척. 다만 한꺼번에 여러 명이 아니라, 따로 따로, 긴밀한 1대 1을 선호하지요. 외향인들이 넓은 인맥을 형성하는 동안, 아마도 내향인들은 좁지만 심도 깊은 인연을 맺느라 바쁠지 모릅니다. 최근 저는 내향형을 주인공으로 모시는 모임을 열었습니다. 이름하여 ‘I들의 은밀한 브런치’. 지지 모임에 참여하고 싶지만, 낯선 상황에 대한 불안 때문에 선뜻 참여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분들의 문의를 받으면서 번뜩 생각했습니다. ‘아예 내향형만 모여 보자!’ 라고요. 참여 조건은 내향인일 것. 모임 시작을 10분 앞두고 한 분 한 분, 조심스럽게 들어오시던 순간의 적막한 긴장감이란, 등에 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생각이 닿았죠. ‘아, 우리 모두 내향형이지.’ 누군가 입을 먼저 열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침묵을 마주했습니다. 그럼, 우리의 모임은 어떻게 흘러갔느냐고요? 섣불리 먼저 입을 열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분위기를 살피는 우리 내향인들은 각자 자신의 속도대로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합류했습니다. 어느결에 배 앞에 끌어안고 있던 가방을 옆으로 내려놓았고, 등받이에 등을 기대어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쿠키를 와그작 와그작 소란스럽게 먹으며 편안해졌고, 우리의 시간은 3시간을 훌쩍 넘겨 뜨겁게 채워졌습니다. 모처럼 우리에게 편안한, 느린 호흡으로 대화했고, 깊어졌으며, 충만해졌습니다. 내향인도 소통의 욕구가 있습니다. 어쩌면 더 높을지 모르겠습니다. 소통하고자 하지만, 이 사회의 많은 장면은 내향인이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기에 자주 좌절되며 눌러 온 욕구. 마음껏 그 욕구를 발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하며, 내향형들이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이 이해받고 수용되기를,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서로를 향한 이해가 더 깊어지기를, 가만히 소망해 봅니다.

202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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