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인 1926년 5월 29일.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Florian Demange·한국명 안세화·1875~1938) 주례로 성 유스티노 신학교 소속 부제 11명의 사제서품식이 거행됐다. 한국교회가 아직 넉넉지 않은 사제 수와 어려운 사목 환경 속에서 신앙 공동체의 뿌리를 넓혀 가던 때였다. 서품식 다음 날인 5월 30일, 드망즈 주교는 새 사제 11명을 각 지역으로 파견하는 사제인사를 단행했다. 이 인사를 통해 7개 본당이 새로 세워졌다. 한날 한뜻으로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100년의 시간을 지나 오늘의 공동체로 자라났다. 그 가운데 대구대교구 남산본당과 성동본당, 전주교구 부안본당, 마산교구 옥봉동본당은 오늘날까지 신앙의 맥을 이어 오며 5월 나란히 설립 100주년을 맞이한다. 한 세기 전 사제서품과 본당 신설로 시작된 공동체의 여정은 100년의 시간을 지나 오늘, 신앙의 열매로 맺어지고 있다. ■ 기도가 끊이지 않는 공동체 ‘대구대교구 남산본당’ 대구대교구 남산본당(주임 박덕수 스테파노 신부)은 석종관(바오로)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1926년 5월 30일 설립됐다. 당시 정식 성당이 없어 교구청 내 평신도 교육 공간이던 ‘명도회관’을 개축해 사용했지만, 공동체의 활동은 활발했다. 1928년에는 본당 차원으로는 이례적으로 라틴어 그레고리오 성가와 우리말 성가 수십 곡을 담은 성가집 「공교셩가집」을 발행했다. 신자 수가 늘어나자 본당은 2대 주임 남대영(루도비코) 신부 주도로 1929년 5월 새 성당 건립 준비에 나섰다. 공동체가 합심해 현재 성당 맞은편 자리인 대명동 언덕의 토지를 매입했고, 1936년 가을 새 성당을 착공해 이듬해 10월 10일 봉헌식을 거행했다. 본당 소재지가 대명동으로 옮겨지면서 ‘대명동성당’으로 불렸다. 일제의 압력으로 1945년 3월 11일부터 성당을 집단수용소로 내주는 아픔도 겪었다. 대구대교구가 1952년 4월 2일 여성 고등교육 기회 제공을 위해 효성여자대학을 설립함에 따라 성당과 부지는 대학이 사용하게 됐다. 같은 해 가을 본당은 교구청 부지인 성모당 남쪽 현 위치에 새 성당을 지었고, 1953년 5월 5일 제6대 대구교구장 최덕홍(요한) 주교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했다. 성당이 다시 남산동으로 옮겨지면서 본당 명칭도 현재의 남산본당으로 변경됐다. 남산본당은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를 배출한 공동체이기도 하다. 본당 출신 사제만 39명에 이른다. 본당 출신 첫 사제는 제2대 마산교구장을 지낸 장병화(요셉) 주교이며, 하느님의 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도 본당 출신이다. 남산본당은 성모당과 인접해 설립 초기부터 오늘까지 기도가 끊이지 않는 공동체로 자리해 왔다. 본당은 설립 100주년을 맞아 「남산본당 100년사」 편찬을 비롯해 전 신자 성지순례, 100주년 기념 바자와 음악회 등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마련했다. 5월 30일 오전 10시30분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주례로 10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 신심 운동 매진하며 지역사회 발전 이끌다 ‘전주교구 부안본당’ 전주교구 부안본당(주임 김정훈 스테파노 신부)의 역사는 1903년경 전북 부안군 하서면 등용리 일대에 교우촌이 형성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8년 12월에는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 주례로 등용리공소 경당이 봉헌됐다. 이후 본당 신자들의 요청에 따라 드망즈 주교는 1926년 5월 30일 이기수(야고보)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고,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초대 주임 이기수 신부는 등용리가 외진 곳에 있어 교세 확장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고, 1935년 옛 부안문화원이 있던 자리에 새 성당 터를 마련했다. 이후 성당 이전과 함께 4년제 소학교를 세워 지역사회 문맹 퇴치에 앞장섰고, 교리교육을 통해 교세를 넓혀 갔다. 일제의 탄압으로 1941년 소학교는 강제 폐교됐지만, 당시 성당 자리는 훗날 청우실업학교로 발전해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6·25전쟁 중 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본당은 1957년부터 새 성당 건립을 추진했고, 1963년 8월 27일 제4대 전주교구장 한공열(베드로) 주교 주례로 새 성당 봉헌식을 거행했다. 본당은 1950년대 후반부터는 농촌 부흥 운동의 일환으로 간척사업을 실시해 신자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도록 도왔다. 1980년대 들어 신자들은 신심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한때는 매년 100명 이상의 새 신자가 탄생하기도 했다. 성직자와 수도자도 다수 배출했다.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본당은 성당과 사제관, 수녀원 등을 리모델링하고 쉼터를 조성했다. 또 100주년 기도문을 함께 바치며 신자 재교육 특강, 성지순례, 성경쓰기와 성경통독, 묵주기도 봉헌 등 신심을 살찌우는 다양한 영성운동도 전개했다. 본당은 5월 17일 오전 10시30분 교구장 김선태(요한 사도) 주교 주례로 10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한다. 김정훈 신부는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놓지 않았던 선배 신앙인들의 기도와 희생이 오늘의 본당 공동체를 세웠다”며 “다가올 100년도 더 따뜻하고 더 열린 공동체, 젊은이와 어린이들이 기쁘게 머물 수 있는 교회, 지역사회 안에서 복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본당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28개 본당의 모본당 ‘대구대교구 성동본당’ 대구대교구 경주 성동본당(주임 김태한 바오로 신부)은 이성인(야고보)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1926년 5월 30일 설립됐다. 당시에는 ‘경주본당’으로 불렸다. 천년 고도(古都) 경주 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린 공동체로 경주 11개, 포항 17개 본당의 모본당이다. 1983년 9월 1일 성건본당을 분리하면서 본당명을 성동으로 바꿨다. 본당은 1992년 4월 1일 발생한 화재로 1959년부터 사용하던 성당을 잃었다. 이후 1999년 새 성당 공사에 들어가 2001년 1월 28일 제8대 대구대교구장 이문희(바울로) 대주교 주례로 현재의 성당을 봉헌했다. 2026년 3월 현재 2514명의 신자들이 지역 복음화에 헌신하고 있는 본당은 박재수(요한) 신부를 시작으로 그동안 사제 9명, 수도자 30명을 배출했다. 본당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나눔 활동도 꾸준히 이어 왔다. 2023년 1월 부임한 제31대 주임 김태한 신부는 코로나19 이후 감소한 신자들을 다시 교회로 초대해 공동체의 활력을 높이고, 100년을 이어 온 신앙 공동체에 걸맞은 영적 쇄신을 이끌고 있다. 노후화된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한편, 예술적 감각을 담은 십자가상과 성모 마리아상 등을 배치해 신자들과 지역 주민, 경주를 찾는 타 지역 신자들에게도 특별한 감흥을 전하고자 힘쓰고 있다. 본당은 5월 31일 오후 2시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주례로 설립 100주년 기념미사를 거행한다. 현재 전국을 순회하고 있는 ‘파티마 국제 순례 성모상’도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성당을 찾는다. 김 신부는 “본당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우리 공동체를 구원의 도구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며 “복음화의 사명을 새롭게 되새기고, 지난 100년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가운데 살아 있는 신앙 정신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산청 성심원 설립 등 지역사회에 사랑 실천 ‘마산교구 옥봉동본당’ 마산교구 진주 옥봉동본당(주임 이진수 스테파노 신부)의 역사는 19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1년 4월 8일 대구대목구 설정 이후, 초대 대목구장으로 부임한 드망즈 주교는 미국교회 한 신자의 성금을 받아 진주 읍내 동북쪽, 옥봉동 산 아래 땅 120평을 구입해 공소를 마련했다. 당시 초대 회장을 맡은 이낙종(스테파노) 씨는 전교에 헌신했고, 그의 아들 이상석(가브리엘) 씨도 ‘가톨릭청년회’를 조직해 지역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많은 이의 정성이 모여 1923년 목조건물이 신축됐고, 정수길(요셉)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문산본당 소속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됐다. 설립 당시 본당명은 진주본당이었다. 진주·사천·삼천포·합천·의령·하동·남해 지역을 관할했다. 이후 1967년 제10대 주임으로 박정일(미카엘) 신부, 훗날 마산교구 제3대 교구장이 부임한 뒤 현재의 옥봉동본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오랜 역사만큼 본당이 지역 복음화에 미친 영향은 컸다. 현재 경남 진주 소재 12개 본당의 모본당으로 ‘진주 지역의 어머니 성당’으로 불린다. 또한 해성학원‧해성유치원 등을 운영하며 교육사업을 펼쳤고, 한센인 공동체인 산청 성심원을 설립했다. 노인 요양 시설 운영을 통해 지역사회 안에서 사랑의 실천도 이어 왔다. 이진수 신부는 “진주대로의 끝자락, 낙후된 지역에 본당이 자리 잡았기에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앙에 더 부합하는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며 “본당은 지역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말씀 그대로 살고자 노력해 온 공동체”라고 전했다. 본당은 설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친다. 2025년 대림 1주일부터 ‘본당 설립 100주년 기도’를 봉헌해 왔으며, 올해 사순 시기에는 역대 주임신부 특강을 마련했다. ‘열일곱이다’ 음악 피정(4월 19일)에 이어 5월 8일에는 기념 음악회 ‘은총의, 100년 찬미의 노래’와 기념 사진전을 열었다. 100주년 기념미사는 5월 10일 10시30분 교구장 이성효(리노) 주교 주례로 봉헌한다.

피레네산맥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바람이 이는 아침에도, 마사비엘(Massabielle) 동굴 앞에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휠체어를 밀며 온 가족, 목발을 짚은 노인, 어린아이 손을 잡은 어머니. 저마다 다른 언어로 기도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이들은 동굴 앞에 다다르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 같은 자리에 손끝으로 바위를 가만히 짚는다. 인구 1만 5천 명의 소도시에 해마다 수백만 명이 모여드는 곳, 프랑스 ‘루르드 성지’다. 18번의 발현 그리고 결정적인 한마디 루르드의 이야기는 1858년 14세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루의 증언에서 시작된다. 베르나데트는 그해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마사비엘 동굴에서 모두 18차례 ‘흰옷을 입은 여인’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여인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고, 회개와 보속, 죄인들을 위한 기도의 메시지를 들었다고 전했다. 또 동굴 안 샘에서 물을 마시고 씻으라는 요청도 받았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1858년 3월 25일 찾아왔다. 베르나데트는 그 여인이 자신을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이”라고 밝혔다고 증언했다. 이는 비오 9세 교황이 1854년 선포한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와 맞닿아 있었다. 여러 해에 걸친 조사 끝에 1862년 타르브 교구장 베르트랑-세베르 로랑스 주교는 루르드 발현을 공식 인정했다. 이후 루르드는 세계적인 성모 순례지로 자리 잡았다. 1907년 비오 10세 교황은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을 보편 교회 전례력에 넣었고, 1933년에는 베르나데트가 성인품에 올랐다. 오늘도 루르드를 찾는 순례자들은 마사비엘 동굴 앞에서 기도하며, 병든 이와 지친 이, 위로를 찾는 이들을 향한 성모님의 초대를 되새긴다. 루르드 성지 전경. 총면적 약 53만m²의 성지는 마사비엘 동굴을 중심으로 성당과 경당, 광장과 샘터, 가브 강 건너편 기도 공간까지 아우르는 복합 순례 공간이다. 이주연 기자동굴에서 강 건너까지 총면적 약 53만m²의 루르드 성지는 마사비엘 동굴을 중심으로 성당과 경당, 광장과 샘터, 가브 강 건너편 기도 공간까지 아우르는 복합 순례 공간이다. 동굴 위 언덕에는 시대를 달리해 세워진 성당들이 층을 이루며 자리한다. 가장 먼저 세워진 곳은 1866년 착공된 크립트(Crypt)다. 동굴 바로 위에 자리한 성당으로, 발현 직후 루르드의 첫 공식 성당이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다. 베르나데트가 루르드를 영원히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미사에 참여한 자리로 성녀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다. 크립트 위로는 네오고딕 양식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솟아 있고, 아래쪽 전면에는 로마노-비잔틴 양식의 로사리오 대성당이 자리해 광장 전례의 장엄한 배경이 된다. 광장 지하에는 1958년 발현 100주년을 기념해 축성된 성 비오 10세 대성당이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지하 공간이지만 2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국제 미사와 병자 미사,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곳이다. 대성당 오른쪽 언덕에는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걷는 십자가의 길이 펼쳐진다. 1912년 조성된 이 길은 총 1500m에 이르며, 자연 지형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따라 이어지는 조용한 개인 묵상의 공간이다. 강변 가까이에는 2008년 조성된 십자가의 길도 있어, 거동이 불편한 순례자도 수난의 신비를 함께 묵상할 수 있다. 베르나데트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 담장 밖 루르드 시내에 베르나데트의 삶이 남아 있다. 볼리(Boly) 방앗간 생가는 그가 태어나 열 살까지 살았던 자리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 방앗간 운영이 어려워지며 가족의 삶은 내리막을 걸었고, 1857년 결국 폐쇄된 옛 감옥을 얻어 살게 됐다. 그곳이 까쇼(Cachot)다. 불과 16㎡의 좁은 방에서도 베르나데트의 가족은 작은 제단을 만들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살았다. 가브 강 위의 퐁비외(Pont-Vieux)는 중세부터 이어져 온 돌다리다. 마지막 발현을 제외한 17차례, 베르나데트가 동굴로 건너가던 통로였다. 시내 아스팔트 바닥 곳곳에 박힌 황동 못은 ‘베르나데트의 길(Chemin de Bernadette)’ 표지다. 그 못을 따라 걸으면 성녀가 동굴로 향하던 길을 그대로 밟게 된다. 병자 행렬, 침수, 기적 그리고 밤의 촛불 루르드의 하루는 성지의 정해진 리듬을 따라 흐른다. 새벽부터 마사비엘 동굴과 성당 곳곳에서 미사가 봉헌되고, 묵주기도와 성체 행렬과 강복, 촛불 행렬이 계속된다. 낮 시간의 핵심은 병자 행렬과 성체강복이다. 휠체어와 이동 침대, 들것에 몸을 의지한 병자들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행렬에 참여한다. 병자와 장애인들이 앞줄에 서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성직자와 수도자, 순례자들이 그 뒤를 따르며 성체 앞에 함께 무릎을 꿇는다. 가장 아프고 약한 이들이 언제나 공동체의 앞자리에 서는, 루르드만의 풍경이다. 의료진을 포함한 수천 명의 봉사자가 병자와 장애인들을 곁에서 돕는다. 루르드가 전하는 또 하나의 희망의 표징이다. 저녁이 되면 동굴 앞에 촛불이 모인다. 성체 행렬과 촛불 묵주기도 행렬은 주님 부활 대축일이 있는 4월부터 11월까지 열리지만, 순례 시즌 내내 동굴 앞 묵주기도는 계속된다. 베르나데트가 처음 발현을 체험한 그 자리에서 성모님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듯, 순례자들도 같은 기도로 성모님 곁에 머문다. 한국 순례단이 찾은 3월에는 행렬 없이 촛불 묵주기도가 봉헌됐다. 대표 한 명이 선창에 참여하면서, 성모송이 한국어로 동굴 앞에 울렸다. 침수(浸水)는 순례의 중심 체험 가운데 하나다. “가서 마시고 그곳에서 씻으라”는 성모 마리아의 말씀에 직접 응답하는 행위로, 동굴 샘물을 채운 욕조에 온몸을 담그는 예식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시설 개선으로 2020년 문을 닫았던 침수장은 2024년 8월 다시 열렸다. 루르드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기적이다. 발현 이래 수많은 환자가 치유됐다고 전해진다. 그간 7000건 이상의 치유 사례가 보고됐지만, 가장 최근인 2025년 인정된 사례를 포함해 공식 기적으로 발표된 것은 72건에 불과하다. 의학적 검증, 과학적 분석, 영적 심사를 거쳐 진정한 기적 여부가 판단된다. 그 엄격함이 역설적으로 루르드의 기적을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 루르드와 한국교회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 중앙 제대 왼편 경당 벽면. 라틴어와 한문 사이, 세로로 흘러내리는 옛한글이 새겨져 있다. “셩총을 가득히 닙우신 마리아여 네게 하례ᄒᆞ나이다.” 19세기 조선 천주교의 고어체로 된 한글 성모송 첫 구절이다. 한국 순례자라면 누구나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석판의 봉헌문은 이렇게 전한다. 조선 반도의 선교사들이 바다에서 극심한 위험에 처했다가 원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의 도움으로 구출되었고, 그 은혜를 기억하며 서약을 지켜 이 돌을 세운다고. 연도는 1876년. 리델 주교와 리샤르·블랑 신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루르드 발현이 공식 인정된 지 불과 14년 뒤였다. 박해의 땅 조선을 오가며 목숨을 걸던 선교사들이 풍랑 속에서 성모님의 보호를 받은 뒤 이 성지를 찾아 석판을 봉헌한 것이다. 루르드와 한국교회의 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후에도 루르드의 성모 신심은 루르드 인근 출신이었던 임 가밀로 신부(Camille Bouillon, 1869~1947) 등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 곳곳에 스며들었다.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 순례지, 대구대교구 성모당,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루르드 동굴 등 한국 땅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가장 약한 이들이 앞자리에 서는 곳 오늘의 루르드는 발현지를 보존하는 박물관이 아니다. 가장 느리고 가장 약한 이들이 공동체의 맨 앞자리에 자리하는, 살아 있는 순례의 현장이다. 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병이 낫지 않아도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다는 확신을 얻어 가는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 타르브-루르드교구 전임 교구장 쟈크 페리에 주교는 2008년 루르드 성모 발현 150주년을 기념해 가톨릭신문과 나눈 대담에서 “루르드를 순례하는 사람들은 단지 치유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희망을 품기 위한 힘과 용기를 얻으러 오는 것”이라고 했다. 루르드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는 회개와 기도 그리고 모든 고통받는 이들과의 연대였다. 그 메시지는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168년 전과 같은 간절함으로 동굴에 모인 신자들의 입술에서, 순례자들의 손끝에서 면면히 이어진다. ▶ https://www.lourdes-france.org/ 루르드 성지 공식 사이트 ▶ lourdes.live/ko 루르드 TV 한국어 페이지 ◆ 가톨릭신문투어 순례 문의: 02-2281-9070, 1577-5006 카카오톡 ID: cttour 홈페이지:http://www.cttour.org

‘제3차 시노드 교회를 위한 본당 사제 모임’에 참석한 사제들이 시노달리타스 실현을 위한 관계와 소통의 회복을 다짐했다. 사제들은 모든 관계의 출발점을 주님 안에서 찾고, 신자들과는 함께 믿음의 길을 걷는 동반자로, 동료 사제들과는 서로의 약함을 나누고 함께 회복해 가는 공동체로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주교회의는 4월 28일부터 30일까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문화영성센터에서 ‘제3차 시노드 교회를 위한 본당 사제 모임’을 열었다. 참석 사제들은 모임을 마치며 ‘관계와 소통, 우리들의 성찰과 다짐’ 제목의 종합 의견서를 채택했다. 의견서는 사제들이 ‘관계와 소통’을 주제로 ‘성령 안에서 대화’하며 나눈 성찰과 식별을 담고 있다. 사제들은 관계의 회복이 주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되며, 신자·동료 사제들과의 관계도 동반과 회복의 공동체성 안에서 새로워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참된 소통은 단순한 의견 교환이나 의사결정 기술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함께 식별하는 영적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소통으로 나아가는 길은 단순히 방법만 바꾸는 일이 아니라 “교회 문화 전체가 복음화되는 회심의 여정”이라고 전했다. 의견서는 시노드 이행 단계 여정에서 한국교회가 구체적 실천 노력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결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교회의는 의견서를 교황청 세계주교시노드 사무처와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에도 공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체 강복으로 시작한 이번 모임에는 전국 15개 교구에서 서품 36년 차부터 1년 차까지의 사제 53명이 함께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시몬) 대주교, 제주교구장 문창우(비오) 주교, 춘천교구장 김주영(시몬) 주교, 대구대교구 총대리 장신호(요한 보스코) 주교도 모임에 함께했다. 제1주제 ‘관계를 돌아보기’와 제2주제 ‘소통으로 나아가기’로 진행된 성령 안에서 대화는 주제 안내와 개인기도에 이어, 참가자들이 조별로 성찰문과 성찰 질문에 따라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아울러 김도형(스테파노) 신부는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이해’,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엄재중(요셉) 연구원은 ‘성령 안에서 대화 안내’를 주제로 강의하며 시노달리타스에 관한 이해를 도왔다. 각 조 발표문을 토대로 작성된 종합 의견서 초안을 참가자 전원이 함께 검토하고 수정하는 공동 식별 시간도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이 과정을 통해 시노달리타스를 말로만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듣고 식별하는 방식으로 체험했다. 1차 모임부터 기획과 준비를 맡은 주교회의 사무국장 송영민(아우구스티노) 신부는 “모임은 회를 거듭하면서 시노드 정신을 나누는 사제 양성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고, 성령 안에서 대화도 풍성해지고 있다”며 “모임에 참가한 사제들이 진정한 소통 방식을 배워가면서 시노드 스타일을 몸에 익히는 사목자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주요뉴스

“서로 다른 소리 맞추듯…배경 달라도 마음은 하나”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이웃살이.’ 주말이면 이곳 지하에서 기타와 드럼 소리가 새어 나온다. 음악 소리를 따라 지하 1층 음악 연습실로 내려가면 일렉과 베이스 기타, 드럼, 피아노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다. 각 악기를 맡은 학생들은 영국 싱어송라이터 스팅의 노래 <Englishman in New York>를 맞춰 나간다. 서툰 대목에서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 다시 박자를 맞추며 곡을 이어 간다. 한국 청소년과 이주 배경 청소년이 함께 만든 센터의 하나뿐인 청소년 밴드 ‘이쁜이 쉐이크’다. 네 명으로 구성된 밴드 멤버 가운데 두 명은 한국 청소년, 두 명은 어머니가 외국인인 이주 배경 청소년이다. 밴드는 보컬이자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 이재영(요셉) 군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고1 여름방학 때 밴드를 만들어 음악을 해 보고 싶었어요. 친한 친구들 가운데 악기를 조금이라도 다룰 줄 아는 친구들과 모여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이주 배경 청소년인 이 군은 초등학생 때부터 센터와 인연을 맺었다. 센터가 이주 배경 청소년을 위해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 ‘꿈터’에서 처음 기타를 배웠다. 음악 선생님에게 통기타와 일렉 기타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베이스 기타에도 관심이 생겼다. 중학생이 된 뒤에는 센터가 이주민들을 위해 마련한 작은 공연 무대에도 올랐다. 고등학생이 된 2025년에는 센터에서 만난 친구들을 모아 직접 밴드를 만들었다. 기타를 배우던 공간은 이제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는 밴드 연습실이 됐다. 이 군은 악기를 처음 접하는 친구들에게 직접 연주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센터는 이주 배경 청소년뿐 아니라 지역 청소년들에게도 열려 있다. 이 때문에 밴드도 국적이나 배경을 따지기보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꾸려졌다. 같은 이주 배경 청소년인 원대연 군은 드럼을 맡고, 한국 청소년인 구예찬 군과 양희훈 군은 각각 베이스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한다. 원 군은 중학생 때 이 군과 함께 센터 공연 무대에 오른 경험도 있다. 이들은 5월 10일 김포시 제2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리는 ‘이주민 장기자랑’ 무대에도 함께 서고 싶었다. 센터 담당 김주찬(알베르토) 신부의 색소폰 연주에 맞춰 합주하는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학교 시험 기간과 연습 일정이 겹치면서 이번에는 이 군만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된 친구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내년이면 고3이 되는 만큼 앞으로 밴드 활동을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센터 안에서 음악을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 맺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꿈도 조금씩 키우고 있다. 원 군은 간호사, 구 군은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 군은 성인이 되면 악기를 들고 도심에 나가 버스킹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센터는 이주민과 이주 배경 가정, 지역 주민이 구별 없이 어울리는 공동체를 지향해 왔다.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함께 활동하며 사회성을 키워 국내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이 밴드는 단순한 취미 모임을 넘어 센터가 꾸준히 이어 온 교육과 돌봄의 결실이기도 하다. 센터가 지자체 등과 연계해 청소년들에게 음악과 미술 등 예술 활동의 기회를 마련해 온 시간이 밴드라는 모습으로 이어진 셈이다. 센터 사회복지사 서효정(미카엘라) 팀장은 “2014년부터 공모 사업을 통해 예산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왔다”며 “음악 연습실과 악기를 갖춘 것도 관심 있는 학생들이 누구나 배우고,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말했다. 이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음악 안에서 친구가 되고 함께 성장하는 모습이 센터의 운영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제주교구 사회사목국, 청년 사목 패러다임 진단

청년의 실제 삶에 진정으로 응답하는 새로운 사목으로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제주교구 사회사목국 주관으로 5월 2일 제주지방해양경찰청 대강당에서 열린 제10회 ‘제주, 기쁨과 희망’ 포럼에서 살레시오회 박정우(요한 세례자) 신부는 “청년들의 고립된 삶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상처 입은 청년들과 나란히 걷는 인격적 동반”이 청년 사목의 본질이라며, 청년 사목의 패러다임이 ‘관리에서 동반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신부는 ‘함께 걷는 여정’으로서의 가톨릭 청년 사목 재조명: 영적 동반 사목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제하며 오늘날 청년들이 처한 위기를 짚었다. 특히 신앙이 공동체적 투신이 아니라 개인의 심리적 위안을 위한 도구로 축소되는 ‘사사화(私事化)’ 현상에 주목했다. 교리적 권위에 일방적으로 순응하기보다 다양한 영적 시장에서 개인 취향에 맞는 묵상과 영성만 선별해 소비하는, 이른바 ‘영적 옴니보어(Omnivore)’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박 신부는 2022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서 20대와 30대의 주일미사 참례율이 각각 7.1%, 7.7%에 그친다는 점도 제시했다. 그는 이 수치가 “단순한 인구 감소를 넘어 교회가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영적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교회 내부의 구조적 문제도 다뤘다. 수평적 소통에 익숙한 청년들에게 맹목적 순종을 강요하는 본당 문화, 청년을 사목의 주체가 아닌 행사 유지를 위한 기능적 인력으로 취급하는 태도, 봉사를 거절할 때 밀려오는 죄책감과 의무감의 이중고가 청년들을 교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신부는 ‘성사적 동반’을 강조하며, “섣부른 훈계를 멈추고 청년의 언어에 겸손하게 귀 기울이는 ‘경청하는 교회’, 절망한 청년들 곁에 조건 없이 다가가는 ‘동반의 여정’, 인내로운 경청을 통해 닫힌 마음을 여는 ‘전인적 치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시노달리타스에 기반한 성찰적 제도화, 청년들을 사명 수행의 온전한 주체자로 격상시키는 구조 재편, 나이별 분리 사목을 넘어서는 통합적 세대 사목 등도 과제로 제안했다. 특히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청년들을 단순히 동원하는 행사가 아니라 기획부터 실행까지 청년들에게 실질적 권한을 위임하는 무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포럼은 2027 서울 WYD를 앞두고 지역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교회와 지역사회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포럼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이어지며, 다양한 방식으로 청년들의 참여를 이끌 예정이다. ‘제주, 기쁨과 희망’ 포럼은 2022년 시작됐다. 제16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 교구 종합 보고서에서 교구민들이 지역사회의 현실 문제와 교회 공동체 문화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교구는 인권·평화·생태·환경 등 현실 문제에 교회가 적극 참여하는 장으로 포럼을 열어 왔다. 그동안 제주 4·3 사건, 희년과 생태적 회개, 제2공항과 도민 자기 결정권 등 제주 사회의 주요 현안을 다루며 교구민의 소통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포럼에서는 사회적기업 ‘섬이다’ 대표 김종현 씨의 ‘창조적인 사람과 교회 - 안전지대, 문화 경험, 소명 의식’ 주제 발표도 있었다. 김 씨는 청년들을 위한 안전지대로서의 교회, 문화 활동을 통한 높은 단계 욕구를 향한 경험 제공, 성장의 기회 제공 등을 젊은 교회를 위해 나아갈 방향으로 강조했다.

한국교회 현실 짚은 기사들 ‘눈길’…독자들에게 교회 문제 환기 역할

◎ 참석자 현재우 에드몬드 위원장(한국평단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 소장) 김민 요한 사도 신부(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부소장) 김은영 크리스티나 위원(경향잡지 편집장) 이진옥 페트라 위원(돈보스코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 선임연구원) 이혜정 에밀라스 수녀(생활성서사 교육연구팀장) 조성현 대건 안드레아 위원(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위원(한님성서연구소 선임연구원) 가톨릭신문 편집자문위원회 제30차 회의가 4월 2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회의에서 편집자문위원들은 2026년 1월 1일자부터 5월 3일자까지 가톨릭신문과 홈페이지에 게재된 콘텐츠를 중심으로 기사 기획, 지면 구성, 온라인 전략, 세계청년대회(WYD) 보도, 세계교회 기사, 통계 분석 기사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편집자문위원들은 최근 보도 가운데 한국교회의 현실을 분석해 성찰한 기사와 현장 중심 기사, 세계교회 ‘글로벌 칼럼’과 핵심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전한 학술·포럼 보도 등을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아울러 위기 진단 이후의 현장 사례 발굴, 한국 독자를 위한 세계교회 기사 배경 설명, 기자의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콘텐츠 확대, 온라인 확산 전략 강화, 더 대담한 제목과 지면 구성 등도 과제로 제안했다. 한국교회 현실을 짚고 보편교회 시야를 넓히다 위원들은 한국교회의 현실을 짚은 기사들이 인상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가톨릭신문이 성소주일 기획(4월 26일자)과 한국천주교회 통계 분석 기사(5월 3일자) 등을 통해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독자들에게 환기한 점도 긍정적으로 언급됐다. 특히 한국천주교회 통계 분석 기사는 외형적 성장을 전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주일미사 참여율 저하, 성사생활 약화, 주일학교 감소, 공동체 밖 신자 문제 등을 함께 짚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세계교회 ‘글로벌 칼럼’에는 여러 위원이 공통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세계교회 관련 보도와 학술대회·포럼 보도도 긍정적으로 언급됐다. 글로벌 칼럼은 한국교회 내부 시각에 머물지 않고 보편교회의 흐름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창구이자, 수준 높은 콘텐츠로 받아들여졌다. 사회 극우화, 인공지능(AI), 트랜스휴머니즘, 생태 문제 등을 다룬 학술대회·포럼 보도 역시 직접 현장에 가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의제를 정리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거론됐다. 사람과 현장을 살린 기사도 주목받았다. ‘커버스토리 - 인구소멸, 공소가 사라진다’(2월 15일자)는 사라져가는 공소의 현실을 통해 평신도의 신원과 시노달리타스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언급됐다. ‘창간 99주년 특집 - 백령도 독자 김상재 할아버지의 기다림’(3월 29일자)도 감동을 주는 기사로 꼽혔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관련 보도는 아직 행사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홈스테이 관련 ‘가톨릭 POLL’, 청년 봉사자 인터뷰, 십자가와 성모 성화 순례 참여자 반응, 각 교구 준비 상황, 지원 법안 등으로 조금씩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이 언급됐다. 가톨릭신문이 꾸준히 WYD 관련 소식을 전하는 것은 WYD에 대한 관심이 한국교회 전체로 충분히 확산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온라인 영상과 종이신문의 연계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온라인 영상이 먼저 올라오고 이후 지면 기사로 이어지는 방식은 영상의 생동감과 지면의 정리 기능을 함께 살리는 사례로 제시됐다. ‘가톨릭 쉼터 - 교회사 속 커피 이야기’(2월 8일자)나 가톨릭 POLL처럼 일상적 소재를 신앙적 관심으로 연결한 콘텐츠도 친근하고 흥미로운 시도로 언급됐다. 또한 사실 전달 위주의 기사에서는 신문의 시선이나 기자의 문제의식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지만, ‘현장에서’ 같은 코너는 기자의 생각이 드러나 흥미롭다는 의견이 나왔다. 인터뷰이 선정이나 출판 지면에 소개하는 도서의 선정도 단순한 인물·책 소개를 넘어 가톨릭신문이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로 읽혔다. 더 깊은 맥락과 더 선명한 시선 필요 편집자문위원들이 가장 많이 전한 아쉬움은 위기를 진단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위기 속에서 분투하는 사람들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성소주일 특집은 성소자 감소 현실을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지만, 전개가 다소 익숙하고 예측 가능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성소 감소를 다룰 때 실제로 성소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교구와 본당, 예비 신학생, 평범한 신자 공동체의 이야기가 함께 들어갔다면 더 입체적인 기획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이어졌다. 사제성소에 집중된 점 역시 아쉬운 대목으로 언급됐다. 통계 기사에 대해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위기 지표를 보여주는 것은 중요하지만, 통계의 부정적인 면만 드러내면 독자에게 무력감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자 고령화와 청년 감소를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생의 좌절과 고난을 겪고 교회로 돌아오는 이들에게 가톨릭교회가 어떤 의미인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가톨릭신문의 관점과 기자의 목소리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면 좋겠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꼽혔다. 사실 보도 중심의 안정감은 장점이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 신문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 기자가 현장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기자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취재 경험과 문제의식을 들려주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세계교회 기사에서는 한국 독자를 위한 배경 설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홍콩교구 세례자 배출’(3월 19일자), ‘인도교회 달리트 출신 주교회의 의장 선출’(3월 1일자), ‘아라비아반도 첫 준대성당 지정’(1월 25일자) 기사 등은 흥미로운 소재였지만, 해당 인물이나 사건이 현지 교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조금 더 설명해주면 좋겠다는 주문이 나왔다. 교황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관련 내용도 한국 독자에게 교회적 맥락에서 균형 있게 풀어주는 해설 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제목과 편집의 흡인력, 지면의 대담함도 아쉬운 부분으로 거론됐다.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는 내용은 좋지만 제목이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약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지면 레이아웃은 전보다 정리됐지만, 더 큰 사진과 과감한 배치를 시도해도 좋다는 제안도 나왔다. 문화면에 연재되는 ‘성미술 산책’의 경우 작품 이미지가 너무 작아 아쉬웠다는 반응도 있었다. 시노드 정신을 실현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담은 기사가 꾸준히 이어질 수 있도록 관련 사례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국내 청소년사목과 교육 관련 사례도 더 적극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당부도 있었다.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브렌다노의 항해〉와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5월 16일은 아일랜드의 성인, 항해자 브렌다노 축일이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배를 타고 형제들과 함께 ‘약속된 땅’을 찾아 서쪽 바다로 떠났다. 항해가 역사적으로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확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야기가 그리스도교 세계를 사로잡은 이유는 분명하다. 브렌다노가 향한 곳은 지리의 바다이기 이전에, 신앙의 바다였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중세 라틴어 문헌 「성 브렌다노 수도원장의 항해(Navigatio Sancti Brendani Abbatis)」, 「브렌다노의 삶(Vita Brendani)」 등으로 전해진다. 항해담 속 바다는 평온하지 않다. 브렌다노 일행은 섬이라고 믿고 내린 곳에서 불을 피우지만, 그곳은 섬이 아니라 거대한 해양 생물 야스코니우스(Jasconius)의 등이다. 그들은 떠돌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새들의 섬, 유다 이스카리옷이 절망 속에서 잠시 쉬는 바위를 본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기이한 전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바다는 인간이 자신을 내어 맡기고 하느님으로 향하는 기나긴 여정의 장소다. 이런 성 브렌다노를 20세기 음악으로 듣는 경험은 각별하다. 아일랜드 작곡가 숀 데이비(Shaun Davey)가 1980년 선보인 〈브렌다노의 항해(The Brendan Voyage)〉는 탐험가 팀 세버린이 아일랜드에서 대서양을 건너 캐나다까지 배를 타고 나아간 과정을 묘사한 곡이다. 여기서 세버린의 모험은 성 브렌다노의 뱃길을 재현한 것이다. 아일랜드 전통 악기 일리언 파이프의 음색은 성인의 배를 표현하고, 오케스트라는 그들이 마주하는 바다, 기상 조건, 섬, 생물들을 형상화한다. 10개 악장의 구조는 실제 항로를 그대로 따른다. ‘서곡’과 ‘브렌다노의 테마’로 시작된 도정은, ‘미키네스의 절벽’ 같은 구체적인 풍경 속으로 청자를 인도한다. ‘아이슬란드로 향하는 행로’와 집어삼킬 듯한 ‘강풍’의 위기는 신앙의 시련처럼 그려지지만, 배는 끝내 ‘뉴펀들랜드’라는 평화로운 항구에 도착한다. 이 서사는 9세기 철학자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Johannes Scotus Eriugena)의 ‘지성적 항해’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그의 이름 ‘스코투스’는 당시 맥락에서 아일랜드인을, ‘에리우게나’ 역시 에리우(Ériu, 아일랜드) 태생임을 의미한다.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기 활동한 그는 주저 「자연구분론(Periphyseon)」 4권에서 신학·철학적 탐구를 위태로운 바닷길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독자를 초대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전혀 다른 항해에 들어선다. 여기서는 수많은 굽이치고 얽힌 논의들 사이에서 항로를 가려내야 하고, 난해한 교리들의 가파른 비탈을 올라야 하며, 시르테스의 해역, 곧 낯선 가르침들의 급류가 만들어내는 위험한 지역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곳에서는 가장 미묘한 지성들의 어스름 속에서 언제나 즉각적인 난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그것들은 마치 숨겨진 암초처럼 갑작스레 우리의 배를 산산이 부술 수 있다. 그럼에도,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선장이자 조타수가 되고, 성령의 은혜로운 바람이 우리 돛을 가득 채운다면, 우리는 이 모든 위험 속에서도 참되고 안전한 항로를 가려낼 것이며, 마침내 우리가 찾는 항구에, 상처 없이 자유로운 몸으로, 평온한 여로 끝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돛을 펼치고 바다로 나아가자.”(「Periphyseon」, Ⅳ. 744a-b) 이 점에서 브렌다노, 작곡가 데이비, 에리우게나는 아일랜드 수도승 전통인 ‘그리스도를 위한 순례(Peregrinatio pro Christo)’와 겹친다. 이는 고향과 안온한 삶을 떠나 오직 하느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거룩한 유랑의 정서다. 그들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장소인 동시에, 나를 비우고 하느님 현존과 이끄심을 느끼는 은총의 공간이었다. 대서양의 거친 파도를 넘었던 수도자들, 지성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했던 철학자, 〈브렌다노의 항해〉 선율은 오늘날 여전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하느님 자비를 조타수 삼아, 각자의 대해로 기꺼이 향하고 있는가. 그러니 이제 돛을 펼치고 바다로 나아가자.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종합

한국 포콜라레운동, 전국서 ‘런포유니티’ 행사 개최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무력 분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기억하며 평화를 기원하는 청소년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국 포콜라레운동은 평화를 위한 청소년들의 달리기 행사 ‘런포유니티’(Run4Unity)를 마련했다. 이번 행사는 포콜라레운동 국제 네트워크와의 연대 차원에서 기획됐다. 5월 1일 대구 수성구 대구스타디움에서는 어린이, 청소년, 이주노동자 등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워크숍·퍼포먼스 등 4개 포스트에서 포콜라레운동 창시자 끼아라 루빅, 성 마더 테레사 수녀, 마하트마 간디 등이 전한 용서, 화해, 평화 등의 메시지를 되새겼다. 3일 서울 상암동 평화의 공원에서 열린 행사에서는 전 세계의 일치를 희망하는 버스킹, 퀴즈 등이 진행됐다. 또한 참가자들은 같은 날 광주가톨릭대학교평생교육원과 일본에서 열린 행사 참가자들과 화상 통화를 통해 지역을 넘어선 친교를 형성했다. 참가자 김이록(요한 세례자·수원교구 안양 평촌본당) 군은 “의미 깊은 활동들 덕분에 전쟁을 멈추고,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며 “친구들에게 ‘평화 고(Go)!, 전쟁 스톱(Stop)!’이라고 전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오는 10일에는 대전 도안 갑천생태호수공원에서 행사가 예정돼 있다. 포콜라레운동은 매년 5월 ‘세계일치 주간’을 지내며, 세계 각지에서 ‘런포유니티’를 열고 있다. 행사에는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타 종교 신자, 비신자도 참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모든 문화와 종교에서 제안하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루카 6,31)는 황금률을 실천하고 있다.

‘초강력 태풍 피해’ 사이판 한인본당…“기도·관심 절실”

지난 4월 14일부터 사흘간 사이판 전역을 강타한 초강력 태풍 ‘신라쿠’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은 사이판 한인본당(주임 김종규 시몬 신부)이 간절한 기도와 관심을 요청하고 있다. 이번 태풍은 평균 시속 120km, 최대 시속 170km의 강한 돌풍 위력을 지닌 채 이례적으로 사흘 동안 사이판 전역을 관통했다. 장시간 이어진 극한 강풍과 폭우는 사이판 한인성당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현재 확인된 피해 상황은 처참하다. 성당 내 공용 화장실과 관리실, 사제관 주방 등 총 5곳의 실내 천장이 붕괴됐다.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시설은 3분의 2가 파손돼 사용이 불가능하다. 또 야외 경계 펜스 대부분이 무너졌고 식당 지붕과 외부 CCTV, 교육관 도어락 등 제반 시설이 전손 또는 파손됐다. 단수와 단전은 복구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사이판 전체 제반 시설이 마비되면서 성당은 현재 빗물 저장 탱크에 의존하고 있으며, 미사 봉헌을 위해 매일 2~3시간씩 발전기를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치솟는 유류비는 본당 재정에 큰 부담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주임 김종규 신부와 사목회를 중심으로 복구 작업이 시작됐다. 파손 잔여물 정리와 성당 출입문 복구, 빗물 누수를 막기 위한 임시 지붕 수리 등 응급 복구는 이뤄졌다. 문제는 5월 중 또 다른 태풍이 예보되어 있다는 점이다. 추가 침수와 붕괴를 막기 위해 복구를 서두르고 있지만, 현지의 열악한 물자와 인력난으로 인해 완전 복구까지는 갈 길이 멀다. 공항마저 폐쇄돼 적어도 6월까지는 사이판 전체가 사실상 고립 상태다. 특히 본당은 전체 미사 참례 인원이 70명 남짓한 소규모 공동체인데다, 대다수가 고령 신자라 자체적인 복구 인력과 재정 마련에 한계가 있다. 본당이 소속된 차란카노아교구 역시 재정 상태가 여의치 않다. 위기 속에서도 본당은 무엇보다 ‘기도의 힘’을 강조했다. 김 신부는 “태풍 피해는 우리 공동체뿐 아니라 사이판 전체의 아픔”이라며 “우리보다 더 어렵고 절실한 곳을 먼저 기억해 주시되, 작게나마 우리 본당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 후원 계좌: 국민은행 571501-01-099302 김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