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라기에는 나이가 많고 장년 단체 활동에는 주저하기 마련인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 사이. 소위 ‘낀세대’ 사목에 대한 교회의 고민이 깊은 가운데, 다양한 방식으로 맞춤 사목을 시도하는 교구와 본당 공동체가 눈길을 끈다. 다만 그간의 노력에도 낀세대 사목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교회의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원교구 제2대리구(대리구장 문희종 요한 세례자 주교)는 지난해 4월부터 9주간 청·장년 신앙 아카데미 ‘바라봄’을 열었다. 청년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전문가의 맞춤 강의와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청·장년들의 호응에 힘입어 올해 5월에도 프로그램을 가질 예정이다. 인천교구 청소년사목국(국장 최인비 유스티노 신부)도 청장년들을 위한 맞춤형 사목에 힘쓰고 있다. 청년부 부국장 박수종(스테파노) 신부는 “청년 신자 대상으로는 그들의 신앙생활을 이끌고 동반하는 ‘양성’에 초점을 둔다면, 30대 이상에게는 더 성숙한 신앙으로 교회에 봉사하는 ‘사랑 실천’을 하도록 이끄는 데에 초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기 휴가를 내기 힘든 직장인들을 위해 명절을 이용한 청·장년 맞춤 피정, 성지순례 등을 기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선 본당도 이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에 나서고 있다. 본당 내에 3545+청년봉사분과를 둔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주임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은 매주 토요일 ‘3545+ 늘푸른청년미사’를 봉헌한다. 미사 뿐 아니라 분기별 교리 특강, ‘명동밤샘’ 단기 피정 등도 마련해 청·장년 신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묵동본당(주임 송차선 요한세례자 신부)도 지난 2015년부터 청·장년모임 ‘요셉회’를 만들어 청년회와 중장년단체 간 다리를 놓고 있다. 회원 대부분은 본당 청년 밴드 ‘먹골리카’와 전례단 등에서 활동하던 30대 이상 신자들. 자신들보다 연령대가 낮은 청년들에게 청년회 활동 기회를 열어줌과 동시에 신혼이거나 어린 자녀를 둬 활동에 제약이 있는 젊은 부부들이 부담 없이 본당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주목을 받는다. 수원교구 제2대리구 분당성요한본당(주임 김유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은 2016년 청·장년모임 ‘마루’를 결성했다. 현재 45명이 활발하게 활동 중인 마루는 회원들이 청년회에서 장년 단체로 넘어가기 전 준비단계 역할을 하고 있다. 이밖에도 청·장년 사목의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30대 이상을 모집 요건으로 전례 봉사자를 모집하거나 이들만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본당도 속속 생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교구·본당 차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팬데믹을 비롯한 교회 내·외부 요인 탓에 청·장년 사목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과제로 남아있다. 묵동본당 요셉회 엄영석(가브리엘) 씨는 “팬데믹 당시 모든 단체의 대면 활동이 멈추며 침체기를 겪었는데, 그 여파로 요셉회도 신규 회원 유입이 줄었다”며 “기존 회원 외 비슷한 또래 청·장년들은 요셉회 활동에 동참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유입 원천인 청년회 자체도 인원이 줄고 있다”고 전했다. 청년도, 장년도 아닌 세대를 바라보는 교회의 이중적인 인식 또한 이들 세대가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주교좌명동본당 진슬기(토마스데아퀴노) 신부는 “교회 내 기성세대가 청·장년을 궂은일이 있을 때마다 동원하는 등 쉽게 생각하면서도 직장을 다니며 경제력을 갖춘 성인이니 후원에 적극 참여하라고 요구하며 이중 잣대로 바라보는 것도 청·장년들을 교회 밖으로 밀어내는 요인”이라며 “본당은 최근 청년 사목회를 따로 만들어 이들이 책임감을 갖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티칸 CNS] 교황청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 봉사하는 것이지 그 관계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교황청 신앙교리부와 문화교육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승인을 거쳐 1월 28일 AI의 올바른 사용 방향을 담은 문헌 「옛것과 새것」(Antiqua et Nova, ancient and new)을 공개했다. 신앙교리부와 문화교육부는 AI의 발전과 응용에 대한 길잡이를 제공하기 위해 문헌을 준비해 왔다. 문헌은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대신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교사의 현실적 존재는 학생과의 사이에 상호 역동성을 창조해 내고 이 역동성은 AI가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문헌은 또한 AI가 활용되는 광범위한 영역을 사람 간의 관계성, 법률, 예술, 건강, 전쟁 등으로 분석한 뒤 특히, 교육 체계에서 AI의 역할을 깊이 다루고 있다. 문헌은 “만일 신중한 방식으로 사용된다면, AI는 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가치 있는 교육 자산이 될 수 있고, 학생들에게 숙련된 지원과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할 수도 있다”며 “이러한 AI의 장점은 학생 개인에 대한 주의가 필요한 경우나 교육 자산이 부족한 경우 등에는 교육 체험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황청 신앙교리부와 문화교육부는 문헌을 통해 AI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가져올 부정적 효과를 경고하면서 “교육 분야에서 AI를 지나치게 사용하면, 학생들이 기술에 점점 치우치게 되면서 독립적으로 재능을 발휘할 능력은 축소되고 화면(Screens)만 바라보는 의존성은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많은 AI 시스템들은 학생들 스스로가 해답을 찾거나 문서를 작성하도록 동기 부여를 하는 대신에 단순히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교육은 젊은이들이 정보들을 대량으로 수집하고 빠르게 응답하라고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지적인 재능을 발휘해 도전에 나서도록 북돋아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옛것과 새것」은 아울러 교황이 AI를 주제로 발표한 2024년 세계 평화의 날 메시지 내용을 인용해 “학생들은 AI로부터 제공받은 정보들과 자료들을 어떻게 식별할지를 배워야 하고,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와 대학들은 학생과 전문가 그룹이 과학기술 발전과 사용의 사회적, 윤리적 양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고 제시했다. 또한 AI 프로그램들이 편향되거나 조작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이 부정확한 자료를 믿도록 잘못 인도하거나, 더 나아가 교육 과정 자체를 침해할 위험성을 안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위험성을 예방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교육 분야에서의 AI 사용은 항상 투명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제안했다. 교황청 신앙교리부와 문화교육부는 “이처럼 과학기술이 빠르게 진보하는 역사의 교차로에 서 있는 가톨릭계 대학들은 희망의 연구실로 존재해야 하고, 신앙과 이성 간의 대화를 추구하면서 우리 사회와 공동선에 봉사하는 AI를 윤리적으로 온전하게 적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황은 「옛것과 새것」 승인에 앞서 1월 20~24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 포럼’ 참석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AI도 인간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인간에 의해 통제돼야 한다”며 “AI를 포함해 어떤 과학기술도 불평등을 심화시키거나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낸다면 진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2월 24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성문이 열리면서 시작된 이번 희년은 2000년 희년에 이은 정기 희년이다. 레위기(25장 8절)로 그 의미가 거슬러 올라가는 희년은 1300년 시작됐다. 희년을 지내며, 그 역사적인 변천과 희년에 얽힌 주요 이야기를 알아본다. 보니파시오 8세 교황(1294~1303)은 1300년 로마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100년마다 한 번의 희년을 선포할 것이라는 내용의 교서 「옛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을 발표했다. 교회 역사상 최초의 희년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당시 교황은 교서를 통해 “앞으로 100년마다, 경건하게 이(베드로·바오로) 대성당들을 방문하는 이들과 진실로 참회하고 고백하는 이들, 또는 앞으로 참회하며 올해와 100년마다 이러한 방법으로 참여할 이들에게 본인은 그들의 모든 죄에 대해 완전할 뿐만 아니라 더욱 너그럽고 가장 완전한 용서를 허락하며 앞으로도 허락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1343년 클레멘스 6세 교황(1342~1352)은 50년마다 희년을 거행한다고 정했다. 이후 1350년 제2차 희년이 거행됐으나, 교황은 프랑스 아비뇽에 감금돼 있었다. 때문에 이 희년은 교황 없는 유일한 희년으로 남았다. 우르바노 6세 교황(1378~1389)은 예수의 33년 공생활 기간에 의미를 부여했다. 50년 주기 희년을 33년마다 개회하도록 정한 후, 1390년을 ‘구원의 희년’으로 선포했으나 갑작스레 선종했다. 후임 보니파시오 9세 교황(1389~1404)은 이에 따라 제3차 희년을 치렀으나 다시 50년 주기 전통으로 복원해 1400년 제4차 희년을 열었다. 하지만 전염병이 유행해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검은 희년’으로 기록됐다. 마르티노 5세 교황(1417~1431)은 1423년 희년을 두 번째 '구원의 희년'으로 거행했다. 1390년에 기념한 구원의 희년으로부터 33주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라테라노 대성당의 성문(聖門)을 여는 예식이 처음 시작됐으며, 로마 4대 성당 순례지가 완성됐다. 아울러 희년을 다시 50년마다 지내는 규정이 마련됐다. ‘성년’(희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제안한 이는 바오로 2세 교황(1464~1471)이다. 이와 함께 25년마다 성년을 거행하도록 했는데, 이 전통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알렉산데르 6세 교황(1492~1503)은 성 베드로 대성당 성문은 교황이, 다른 3개 대성당 문은 그가 임명한 3명 추기경이 열게 했다. 그리고 폐막하면 성문을 벽으로 막는 전례 규정을 정했다. 이 예식은 오늘날 희년의 본질적인 예식이 됐다. 로마에 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희년의 은사가 베풀어지도록 한 것은 율리오 3세 교황(1550~1555) 때였다. 교황은 지중해에서 해적들과 싸우는 군인들과 전쟁터에 나가 있는 모든 군인에게 로마를 순례하지 않아도 희년의 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밖에도 1750년 희년 때 베네딕토 14세 교황(1740~1758)은 성년의 은사를 받기 위해 반드시 영성체해야 한다는 규정을 덧붙였다. 한국교회와 관련이 깊은 희년은 1925년이다. 비오 11세 교황(1922~1939)이 기념한 이 희년 동안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를 비롯한 한국 순교자 79위가 시복됐다. 리지외의 아기 예수의 데레사가 시성됐고, 루르드 성모 발현을 목격한 베르나데타 수비루는 복자 반열에 올랐다. 1950년 희년 11월 1일, 비오 12세 교황(1939~1958)에 의해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에서 성모 마리아의 승천이 교의로 선포된 것도 기억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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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순결한 동성애자’의 신학교 입학에 관하여

최근 언론을 통해 교황청이 성관계를 하지 않는 동성애자의 신학교 입학을 허용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성경의 가르침을 가톨릭대 윤리신학 교수 방종우(야고보) 신부에게 들어봤다. 최근 각종 언론은 교황청이 성관계를 하지 않는 동성애자의 신학교 입학을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본 그리스도교인들은 ‘이제 교회는 동성애를 용인하고 옹호하기 시작한 것인가?’ ‘교회의 가르침이 변화된 것인가?’ 등의 의문으로 혼란스럽다. 먼저 언론이 보도하고 있는 이탈리아 주교회의 성직자 양성부의 「신학교를 위한 지침과 규범」 44항은 다음의 내용을 언급한다. “신학교 입학을 원하는 이들이나 교육 과정 도중에 발견된 동성애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 관해, 교회는 당사자들을 깊이 존중하면서도, 실제로 동성애 행위를 하는 사람들, 뿌리 깊은 동성애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 또는 이른바 게이 문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신학교나 성품에 받아들일 수 없다. 사실 그러한 사람들은 남자든 여자든,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데에 심각한 지장을 받는 상황에 놓여 있다.” 동성애 문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성품이 불가능하다는 단호한 선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정반대되는 보도는 무엇 때문일까? 이어지는 내용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사제 후보자 양성의 목적은 독신 생활의 순결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데 있다.” 이 부분만 본다면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순결을 지킬 경우 신학교 입학이 가능하다고 왜곡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참고하면 이는 신학생 양성 과정에서 고려되어야 할 자유와 책임에 대한 교육적 권고일 뿐이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 주교회의 역시 “교도권의 규범을 되풀이하고 있으므로 언론의 해석은 올바르지 않다. 동성애자의 사제직 불허에 관한 규범은 변함이 없다.”(Avvenire, 2025년 1월 10일)고 즉각 대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확인 없이 악의적이고 왜곡된 기사를 보도한 국내 언론들 모습은 심히 유감스럽다. 그런데도 다음의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교황님께서는 최근, 동성애자들과 관련하여 우호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았는가?” “동성애자 축복이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교회 가르침을 분명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단 교회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이들과 동성애 행위를 하는 이들을 명확히 구분한다. 동성애 성향을 갖고 태어난 이들에게 교회는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개인의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동성애 행위에 대해서는 명확히 반대한다. 이는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목적을 결여한 행위이며, 성서에서도 이를 극심한 부패 행위로 단죄하고 있고, 하느님을 배척하는 슬픈 결과를 내는 것으로까지 제시되기 때문이다.” (「성 윤리상 특정 문제에 관한 선언」) 결국 동성애자 축복은, 성향이 있을지라도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며, 이는 결코 동성 커플의 승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동성애자 축복과 관련된 선언 「간청하는 믿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성애자 축복에 있어 “혼인성사에 고유한 축복과 혼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그 축복의 형식에는 교회 권위가 예식으로 고정한 어떠한 것도 있어서는 안 된다.”(31항) 마지막으로 다음의 질문도 제기될 수 있다.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이 동성애자를 배척하시겠는가? 이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받는 이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죄를 지었었다 할지라도 후에 회개한 이들,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이들이다. 즉 하느님이 사랑이시라고 해서 모든 윤리적 죄가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 자비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선의 부재, 계명의 부재를 의미한다. 그러한 점에서 성향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주님을 따라 살고자 하는 이들만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대상이다. 만약 하느님의 계명을 따르지 않으며 행위를 정당화하는 이들은 그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행위를 하지 않는 성향만으로도 신학교 입학은 허가되지 않음을 교회는 분명히 해왔다. 동성애자의 특수한 성향이 죄는 아니지만, 그것은 내재적인 윤리적 악으로 기울어지는 다소 강력한 경향이기에, 그 성향 자체는 하나의 ‘객관적 무질서’로 인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뿌리 깊은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서품에서 비롯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신학교 입학과 성품 허가와 관련하여 이들의 성소를 식별하는 기준에 관한 훈령」) 글 _ 방종우 야고보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단절과 연속 사이

지금까지 소개한 시인 단테, 화가 조토, 그리고 조각가이자 건축가 아르놀포 디 캄비오, 그들이 만든 「신곡」, 스크로베니 경당의 프레스코화, 그리고 피렌체 대성당(돔 제외)과 산타 크로체 성당 등은 사실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이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중세의 손길로 빚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작품들은 새 시대를 향해서 던지는 어떤 물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중세와 르네상스가 서로 맞물려 있는 시대의 작품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르네상스를 정의하는 데, 다시 말해서 르네상스의 시기와 특징을 밝히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16세기 피렌체 대성당 돔 안쪽의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화’를 비롯한 수많은 회화를 남긴 화가이자 우피치 궁전과 피티 궁전 등을 설계한 건축가, 그리고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Le Vite de' più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d architettori)을 저술한 최초의 미술사학자로 불리는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1511-1574)는 그의 책에서 “14~16세기에 활동한 예술가들의 공통점은 고전을 재탄생(Rinascita, 부활)시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리나시타’ 개념 안에는 르네상스 시대가 중세와 차별되고 단절된 새로운 시대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의 언급대로 르네상스 시대에는 중세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 곧 인본주의, 중상주의, 고전주의 등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런 사상들을 중세에는 없었던 새로운 문명 현상으로 본다면, 르네상스는 문명 전체의 차원에서 중세를 대체하는 새로운 변혁 운동이 분명합니다. 19세기 미술사와 문화사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학자인 스위스의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1818-1897)는 그의 역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Die Kultur der Renaissance in Italien·1860)에서 르네상스를 중세와 구별되는 새로운 시대라고 언급합니다. 중세를 종교적 전체주의가 강조된 시대라고 본다면 르네상스는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개인주의가 출현한 시기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의 경우 정치, 예술, 철학 분야에서 개인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삶과 경험이 신 중심적이 아니라 인간 중심적 가치를 통해서 재해석되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가 부활하여 인문주의 운동이 전개되면서 중세에서 단절되었던 고전이 르네상스에서 다시 탄생하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르네상스가 근대 서양 문명의 시작이라고 정의합니다. 인간 중심으로 삶 인식하는 르네상스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부활하기도 중세-르네상스 대립적으로 인식하지만 구 시대-새 시대는 공통·일치점도 있어 중세를 암흑기로 보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서, 르네상스는 쇠락한 그리스도교 문명을 인문주의로 부활시킨 새로운 문명의 발생으로 정의되고, 그 경우 르네상스의 시작은 14세기가 됩니다. 이렇게 중세와 단절된 새로운 문명 현상으로서의 르네상스는 중세를 탈피하고 중세를 완전히 대체합니다. 따라서 중세와 르네상스는 문명 전체의 차원에서 대립적 구도를 이룹니다. 그리스도교와 고전의 대립, 신 중심과 인간 중심의 대립, 그리고 건축에서는 포인티드 아치와 반원 아치의 대립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문명 전체가 아닌 예술 분야의 차원에서 보면 르네상스가 발생한 시기는 14세기에서 조금 더 늦춰진 15세기 이후로 정의됩니다. 이 주장은 14세기를 중세와 르네상스의 중첩 시기로 본다는 것인데, 중세와 르네상스 사이에 겹치는 기간이 있다는 것은 두 시대가 단절되지 않고 서로 연속적인 측면을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1872-1945)는 그의 저서 「중세의 가을」(Herfsttij der Middeleeuwen·1919)에서 14~15세기를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시기가 아니라, 중세의 세계관이 절정에 이르렀다가 쇠퇴하는 시기라고 언급합니다. 중세 후기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종교 예식과 미술, 그리고 문학에 반영되어 감성적이고 상징적인 문화가 지배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식적이고 상징적인 삶의 방식이 중요하게 여겨졌고 이런 형식적이고 고착된 사고방식은 중세 문화를 쇠퇴하게 만들어 새로운 사고방식의 등장을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중세의 종교적이고 집단적인 세계관과 근대의 세속적이고 개인적인 문화가 혼재하는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시기를 ‘중세의 가을’이라고 표현하면서 르네상스가 중세와 대립하는 시기가 아니라 중세적 감수성이 연속되는 시기라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 중세 후기는 문화적으로 풍요로웠지만 그 한계도 드러내면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전환의 시기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위징아는 중세가 암흑의 시기가 아니라 감수성과 문화적 깊이가 무르익는 시기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중세와 르네상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먼저 르네상스뿐만 아니라 중세에도 고전에 대한 연속성이 발견됩니다. 철학 분야에서 중세의 스콜라철학은 헬레니즘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반하고, 건축에서도 중세의 로마네스크 양식은 고대 로마의 건축 양식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나아가 르네상스 시대에도 중세의 연속성이 나타납니다. 특히 건축 분야에서 브루넬레스키의 반원형 아치는 토스카나의 로마네스크에서 이미 쓰인 건축 요소입니다. 그리고 건축 양식의 르네상스는 1420년에 시작되었지만 구조 분야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1490년까지는 중세의 구조 기술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문명 전체의 관점에서는 중세와 르네상스가 서로 단절된 것으로 보이지만 예술 분야 등 각각의 분야별로 보면 상호 연속성이 존재합니다. 이는 고대에는 문명과 예술이 고전이라는 일치점을 갖고 있었고, 중세에도 문명과 예술이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에서 일치되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는 문명과 예술이 분리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건축의 경우만 보더라도 고대 건축과 중세 건축은 사회와 일체성을 유지했지만, 르네상스에서는 사회와의 일체성을 잃고 예술적으로도 새로운 건축 양식을 창출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전 양식을 가져와 건축가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형태를 띠었습니다. 아르놀포가 설계한 피렌체 대성당은 중앙 상부에 돔이 계획되었으나 당시의 기술로는 무리였고, 한 세기가 지나서야 브루넬레스키에 의해서 올려집니다.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두 시대의 단절 덕분인가요, 연속 덕분인가요? 아니면 단절과 연속 사이일까요? 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

‘제주를 사랑한 사제’ 에밀 타케 신부 헌정곡 발매

제주를 사랑하며 제주 사람들의 벗으로 살았던 파리 외방 전교회 에밀 타케 신부(Emile Taquet, 한국명 엄택기, 1873~1952)를 기리는 노래가 세상에 나왔다.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총원장 백남일 요셉 신부)는 에밀 타케 신부 헌정곡 <벚의 벗>을 최근 공개했다. 작곡은 한장호(베네딕도) 신부, 작사는 김성(요한 세례자) 신부, 노래는 추계예술대학교 외래교수이자 에밀 타케 신부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소프라노 강정아(소화데레사) 씨가 맡았다. 헌정곡은 에밀 타케 신부가 제주에서 펼친 사목자로서의 여정과 제주에 대한 사랑을 경쾌한 리듬 안에 담아냈다. 작곡자 한장호 신부는 “에밀 타케 신부님이 바다와 한라산, 왕벚꽃 등 제주의 자연을 어떻게 보고 계셨을까 고민하면서 멜로디를 청했다”며 “자연을 사랑하고 생태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에 관심을 둬야 할 지금, 에밀 타케 신부가 지나온 여정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영성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벚의 벗>은 멜론이나 지니, 벅스 등 국내 음원사이트에서 스트리밍 혹은 내려받아 들을 수 있고, ‘BJBS 가톨릭 복자방송’ 유튜브(www.youtube.com/watch?v=PrptAKPWLik)에서도 강정아 씨가 노래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1898년 선교사로 조선에 온 에밀 타케 신부는 제주 서귀포 하논본당과 홍로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며 제주교구 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 특히 제주의 자연에 관심을 둔 에밀 타케 신부는 식물 1만여 점을 채집하고 표본을 만들어 전 세계 박물관과 대학교에 보내 제주의 식물을 알렸다. 또한 한라산 해발 600m 지점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해 제주도가 왕벚나무 자생지임을 밝혔을 뿐 아니라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되는 구상나무도 1907년 포리 신부와 함께 한라산 해발 1400m에서 최초로 발견했다. 제주도가 현재 감귤의 주요 생산지가 된 것 역시 에밀 타케 신부가 1911년 일본 아오모리현에 있는 포리 신부에게 받은 온주 밀감 14그루에서 시작됐다.

북한인권정보센터, “종교 박해·순교자에 우선적 관심을”

(사)북한인권정보센터(이사장 신영호)는 4년 만에 발간한 「2024 북한종교자유백서」 발간을 기념하는 세미나를 1월 23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2층 강당에서 개최했다. 세미나에서는 ‘2024년 북한인권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북한인권정보센터가 하나원에서 북한이탈주민을 면접조사한 내용과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2007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발간했던 「북한 종교자유 백서」는 통일부가 2020년 이후 2023년까지 북한인권정보센터의 하나원 면접조사를 허용하지 않아 발간이 중단됐었다. 이번 세미나는 최근 북한의 종교자유와 인권 현황이 공유되는 자리인 만큼 북한 관련 연구자, 시민단체 활동가, 종교계 인사 등 200여 명이 참여해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북한인권정보센터 양수영 연구원은 ‘「2024 북한 종교자유 백서」 주요 결과’ 주제 발표에서 북한 내 종교의 자유가 거의 허용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밝혔다. 양 연구원은 2007년부터 2024년 10월까지 조사에 참여한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종교자유에 대한 증언을 제공한 1만5169명의 구두 진술 기록, 종교박해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단행본·수기·논문·신문 기사를 분석한 결과, 북한이탈주민 중 96%는 북한에서 “성경을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성경을 본 적이 있다고 답한 경우도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고’ 읽은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라는 책을 보았다는 의미까지 포함한다. 또한 조사 대상자의 98.6%는 ‘북한 안에서 종교 활동을 위한 합법적 가정예배 처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양 연구원은 “북한 종교자유 실태에서 더욱 심각한 것은 북한인권정보센터가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한 2045건의 종교박해 사건 가운데 65.8%에서 피해자가 사망, 구금, 실종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사에 참여한 대다수 북한이탈주민은 단순히 성경을 소지하거나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의심 혹은 종교인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다는 구체적인 증언을 했다”고 덧붙였다. 처벌 대상 종교에는 북한에서 제국주의 이념으로 간주되는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무속신앙과 같은 전통 종교까지 포함된다. ‘여리고미션’ 김스데반 대표는 ‘대북 선교 현황과 방향’ 발표에서 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중 특히 여성이 당하는 인권 침해와 중국에서 다시 북한으로 송환된 이들이 겪게 되는 처벌을 설명했다. 김 대표는 북한으로 송환될 위기에 처한 중국 내 북한이탈주민을 구출하는 활동과 비용이 과거에 비해 급격히 늘었다는 사실도 설명했다. ‘2024년 북한인권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한 ㈜컨슈머인사이트 연구본부 박승표 이사는 “응답자의 65.5%는 평소 북한 인권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응답했다”며 “성별로는 남성의 72.1%, 여성의 59.1%, 연령별로는 60세 이상 79%가 북한 인권에 관심을 나타냈다”고 소개했다. 조사는 2024년 10월 7~13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에 대한 온라인 설문을 통해 이뤄졌다. 종합토론에서 북한인권정보센터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윤여상(요한 사도) 소장은 “한국 종교계는 미래의 북한 선교를 준비하기보다 현재 북한 주민들이 당하는 종교 박해와 순교자들에 관한 우선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종합

“십시일반 손길로 소외 이웃에 온기 나눠요”

인천교구 박촌동본당(주임 이홍일 토마스 신부) 빈첸시오회는 12년 전부터 후원회원들과 본당 신자들에게서 수시로 저금통을 모아 지역 독거노인, 조손 가정, 장애인 등 취약계층 이웃들에게 겨울철 난방비를 지원하고 반찬을 나누는 성금을 마련해 왔다. 법적 가족관계 사유(부양의무자 유무) 때문에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도록 보탬이 되고자, 있어도 쓰게 되지 않는 잔돈이라도 함께 보태는 나눔 실천이다. 6명의 활동 회원이 의기투합해 현재 11가구에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간 난방비 지원금을, 22가구에 매달 반찬을 손수 만들어 전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은 늘고 있지만, 석 달에 25만 원 남짓인 저금통 모금으로는 부족한 형편. 새 성당 건축 부채 상환 중인 본당 교우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쉽지 않다. 매달 적자를 걱정해야 함에도 회원들은 복지 사각지대 이웃들의 처지를 헤아리며 의지를 다진다. “성당 주변에 오래된 빌라가 많아요. 겨울이면 한기에 속수무책이죠. 대부분이 몸도 성치 않은 상태에서 겨울 냉골에 오들오들 떨고 계세요. ‘먹을 것 걱정할 판에 불이라도 안 때야 간신히 버틴다’면서요.” 회원들은 저금통 모으기 외에도 복지 사각지대 이웃을 돕고자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수시로 미역과 참기름 등을 떼어다가 팔거나, 본당 신자들에게서 기부받은 헌 옷을 팔아 비용에 보탠다. 소수 활동 회원만으로도 이렇게 다양한 지원에 나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회원들은 매번 하느님께서 이웃들을 통해 보태 주시는 기적 같은 도움들에서 나온다고 입을 모은다. ‘이웃들에게 송편 몇 개씩이라도 빚어 나눠줄 수 있다면’ 하고 꿈만 꾸던 지난 추석에는 한 신자가 선뜻 송편과 함께 떡국떡과 웃돈을 얹어 기부했다. 김장 비용이 모자랐던 지난해 연말에는 배추밭을 경작하는 신자가 배추와 함게 쌀과 성금을 전달했다. 김도진(베네딕토) 회장은 “우리 이웃들 또 그들과 함께하는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듣고 계시며 뜨겁게 안아주시는 걸 매번 체험하기에 지치지 않는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활동 회원 김정현(스텔라) 씨는 “난방비와 반찬을 전달하러 이웃을 방문하면 다들 단절감 호소를 많이 하는데, 활동 회원이 적어서 말벗까지는 길게 해드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더 많은 교우가 빈첸시오회 활동에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 후원: 농협 355-0047-6478-33(예금주 (재)인천교구천주교)

“침묵으로 써 내려간 글씨에 기도 담아요”

서울대교구 사당5동본당 서예 동아리(회장 양승대 이냐시오)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2015년 6월 서예 동아리를 창단해 10년간 회장으로 봉사한 양승대 회장은 “대면 행사가 어려웠던 팬데믹 기간에도 활동을 이어 나가기 위해 야외 공원이나 산 속에서 체본하는 모임을 했었는데 벌써 10주년이라니 감개무량하다”며 “하느님 은총 속에 특별한 나날이었기에 함께 자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예 동아리는 무엇보다 신앙심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양 회장은 “서예는 한 획마다 집중하고 내면부터 침묵해야 하기에 기도와 닮은 구석이 많다”며 “마음을 아래로 하고 한 획 한 획 쓰는 것도 나를 낮추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본당 주임 최정진 신부는 “내적인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응답하는 신앙생활은 서예처럼 집중이 필요하다”며 “본당 신자들이 서예 기량을 쌓으며 인격을 수양하고 그 결과로 나온 작품이 다른 교우에게 좋은 영감을 주며, 교우 간 친목을 도모해 신앙생활에도 크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회원 권형대(빈첸시오) 씨도 “서예 동아리를 시작한 뒤 신앙생활이 즐거워졌고 특히 냉담하던 가족이 주님 곁으로 돌아왔다”며 “예수님의 사랑과 향기는 묵향과 닮았고,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명 한 명의 형제자매라는 점은 서예 속 점과 획들의 모임과 같으며, 우리 공동체가 구원이라는 한 방향을 향하는 것도 작품의 완성을 도모하는 것과 닮았다”고 전했다. 강원도 횡성 연례 모임과 주님 성탄 대축일 전후 본당 전시회 등으로 친교를 다지고 실력을 꾸준히 키워 나간 것은 동아리 10년 장수의 비결. 금파서예술대전과 대한민국서도협회에도 참가한다. 본당 바자 때는 가훈 쓰기 행사도 열어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20년 경력의 전문 서예가인 양 회장을 비롯해 2명의 전문 서예가와 10명의 아마추어 회원들이 매주 월요일 세 시간씩 서로 돕고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양 회장은 “서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에 10년이라는 시간이 더욱 필요했던 것 같다”며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나를 성화하는 기회로 삼아 본당 공동체 일원으로서 함께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