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랑 실천하며 하느님 사랑 구체적으로 드러낸 사막 교부들 하느님에 대한 사랑 만큼이나…인간에 대한 사랑도 중요시 모든 이를 향해 열린 자세로…손님 방문하면 침묵 깨고 환대
4세기 열심한 그리스도인들이 이집트 사막으로 들어간 일차적 동기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었다. 그 사랑이 그들을 사막의 고독과 침묵 속으로 이끌었고 하느님만을 찾게 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웃사랑을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하느님 사랑을 환대와 애덕 실천, 봉사와 섬김 등으로 이웃에게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압바 포이멘이 말했다. “모두에게 가장 유익한 일은 이 세 가지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 끊임없는 기도, 그리고 이웃에게 행하는 선입니다.”(포이멘 160) 사막 교부들은 독방의 고독 속에서 자기만을 생각하며 개인의 성화에만 열중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압바 포이멘의 말대로 그들은 이웃에 대한 구체적 사랑 실천 역시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웃에게 드러내는 사랑, 곧 선행은 하느님께 대한 경외와 끊임없는 기도와 더불어 필수 불가결인 것이었다.
인간에 대한 사랑
사막 교부들에게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금언집에는 인간애를 보여주는 일화가 여럿 있다. 대표적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압바 아가톤은 말했다. “나병환자를 만나 그와 서로 몸을 교환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아가톤 26) 이런 생각과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앙과 사랑, 그리고 인간애 없이는 결코 나올 수 없다.
같은 암자에서 여러 해 동안 함께 지내면서도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는 두 압바의 다음 일화도 깊은 상호 사랑을 보여준다. “한 압바가 다른 압바에게 말했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우리도 한번 다투어 봅시다.’ 그러자 다른 압바가 대답했다. ‘나는 어떻게 다투는지 모르오.’ 첫 번째 압바가 말했다. ‘보시오, 내가 우리 사이에 벽돌 한 개를 놓고 그것이 내 것이라고 말하겠소. 그러면 당신이 ‘아니오, 그것은 내 것이오’라고 말하시오. 그러면 이로 인해 다툼이 시작될 것이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 사이에 벽돌 하나를 놓고 첫 번째 압바가 ‘그것은 내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압바가 ‘아니오, 그것은 내 것이오’라고 했다. 다시 첫 번째 압바가 말했다. ‘그것이 당신 것이라면 가져가시오.’ 이렇게 해서 결국 논쟁을 계속할 수 없어 다툼은 끝나버렸다.”(익명의 압바 352)
이렇게 산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 두 압바는 싸움의 기술을 터득하지 못하여, 결국 싸움을 포기하고 말았다. 반면 우리는 싸움의 기술을 너무 잘 터득하여 매번 사소한 것으로 분노하고 싸우고 있지는 않은가?
방문객에게 드러낸 사랑
독수도승들은 누가 방문하면 주저 없이 자신의 고독과 침묵, 엄격한 삶의 질서를 깨고 손님을 환대했다. 방문객을 맞아들이는 것은 곧 주님을 맞아들이는 것이며, 그에게 베푸는 환대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방문객의 성향이나 방문 목적을 불문하고 그를 하느님이 보내신 사람처럼 환대했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사람의 첫째 의무는 단식을 깨고 방문객에게 식탁 봉사를 하고 함께 식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방문객에게 한 말씀이나 교훈적 담화를 통해 영적 활력을 되찾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육체의 회복도 도와주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빵과 물밖에 없는 독수도승은 손님에게 딱히 내놓을 만한 게 없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손님에게 더 좋은 식단을 제공하기 위한 음식을 따로 보관해 두었다. 사실 손님이 왔다고 오랫동안 유지해 온 자신의 질서와 규칙을 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손님도 이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주인에게 규칙을 깨게 한 것에 사과하곤 했다. 그러면 주인은 이렇게 다정하게 대답했다. “나의 규칙은 그대에게 원기를 회복시켜 평화로이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익명의 압바 283)
어떤 원로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나는 내 뜻을 포기하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이중의 공로를 얻게 됩니다.”(익명의 압바 288) 손님의 방문은 수도승에게 애덕 실천의 기회를 제공하고 수도승을 일깨워 자신의 독수도승생활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검증해 주는 이점도 있었다. 손님이 떠나면 그는 다시 규칙적인 생활로 돌아갔다.
다양한 방문객
사막에서의 방문은 통상 수도승 간의 방문이었다. 보통은 젊은 형제가 원로나 영적 사부를 방문했다. 유명 인사는 신분을 불문하고 열렬한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유명 인사의 방문을 피하곤 했다. 압바 시몬은 한 행정관이 찾아왔을 때 “띠를 두르고 종려나무를 전지하러 나무 위로 올라갔다. 방문객들이 도착하여 그에게 소리쳤다. ‘원로, 그 독수도승은 어디 계시오?’ 그가 대답했다. ‘여기에는 독수도승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들은 다시 떠나갔다.”(시몬 1)
압바 모세는 어느 날 집정관이 자신을 보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습지로 달아났다. 집정관 일행이 길에서 만난 모세에게 “원로, 압바 모세의 암자가 어디 있는지 말해주시겠습니까?”라고 묻자, 그들에게 말했다. “그에게 뭘 원하십니까? 그는 어리석은 자입니다.”(모세 8) 사막 교부들은 오히려 자기에게 적대적인 사람이나 악명 높은 사람을 더 환대했다.
방문객 중에는 물건을 훔치거나 수도승을 살해하기도 했던 도적과 강도들도 있었다. 대개는 약탈을 방치했다. 압바 마카리우스는 도적들이 자기에게서 훔친 물건을 낙타에 싣는 것을 도와주기까지 했다.(대(大) 마카리우스 40) 한 원로는 약탈하는 강도들에게 “형제들이 도착하기 전에 빨리 서두르시오”라고 말해 강도들을 몹시 당황케 했다(익명의 압바 554). 또 어떤 원로는 기도 시간에 강도들이 들이닥치자, 형제들에게 “그들이 자기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시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합시다”(익명의 압바 607)라고 말했다.
사막 교부들이 하느님 사랑을 드러낸 방식은 우리에게는 너무 낯설고 심지어 불가능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서 모든 이를 향한 열려 있는 자세,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 애덕 실천을 위한 적극적 자세와 노력, 비폭력, 물질에 대한 집착에서의 자유로움 등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글 _ 허성석 로무알도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대구대교구 왜관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