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 시대 서울에서 성당과 공소 역할을 하던 곳과 교우들의 삶」…박해 시대 서울 곳곳 따라가

조선교회에 복음이 전파된 뒤 서울은 복자 주문모(야고보) 신부를 비롯한 선교사와 교우들이 활동하는 사목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박해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성당도, 공소도 없었다. 사제가 숨어 지내던 교우의 집이 성당이 되고, 교우들이 모여 기도하던 집은 공소가 됐다. 한국교회사와 중국교회사를 중점적으로 연구해 온 서양자 수녀(아가타·한국순교복자수녀회)가 펴낸 책은 박해 시대 서울의 사목 공간과 그곳에서 살아간 교우들의 삶을 복원한다. 천주교가 전파되고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과정을 구체적인 지명과 인물, 사료를 통해 따라간다. 책은 주문모 신부의 초기 사목지였던 ‘계동’과 ‘창동’을 시작으로 유방제(파치피코) 신부와 프랑스 선교사들의 활동 중심지가 된 ‘후동’(현 중구 산림동·주교동),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가 사목했던 ‘돌우물골’ 등 성당 역할을 했던 곳을 차례로 다룬다. 당시 사제들이 어디에 머물며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를 집전했는지 짚으며 박해 속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살펴본다. 공소 역할을 했던 교우들의 집도 추적한다. 하느님의 종 이벽(요한 세례자)의 집이 있던 ‘수표교’를 비롯해 김범우(토마스)가 지낸 ‘명례방’, 박순집(베드로)의 집이 있었던 ‘홍제원’ 등을 통해 평신도의 집이 교우들을 이어 주는 신앙의 구심점이었음을 보여 준다. 책은 사목 공간뿐 아니라 교우들이 어떤 신분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갔는지도 살핀다. 떡을 만들던 장인부터 화장품을 만들던 분장(粉匠), 활을 만들던 궁인, 갖바치와 낙죽장, 목장(木匠)까지 다양한 직업을 통해 박해 시대 신앙인들의 일상을 입체적으로 그린다. 한강변 교우들의 역할에도 주목한다. 경제와 교통의 중심지였던 한강에 살던 교우들은 프랑스 선교사들의 입국을 돕기도 했다. 저자는 약 50년 전 밤섬 주민들을 직접 만나 성녀 김효임(골롬바)·김효주(아녜스) 등에 관한 이야기를 수집한 경험도 책에 담았다. 책은 국법에 따른 공식적인 박해와는 별개로 마을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또 다른 박해도 짚는다. 대표적인 것이 ‘훼가출향(毁家出鄕)’이다.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의 집을 헐고 재산을 빼앗은 뒤 마을에서 내쫓는 방식으로 신자를 배척하던 일이었다. 저자는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가 리브와 신부와 르그레주아 신부에게 1860년 9월 3일 보낸 서한을 통해 그 참상을 전한다. “그 밖의 교우들도 특히 이 도(道)의 신자들은 거의 모두 다 자기 마을에서 쫓겨났고, 집과 전답과 모든 생활필수품은 전부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도움을 받을 데도 없고 몸 붙여 지낼 곳도 없이 극도로 처참하게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민간신앙과의 충돌도 당시 교우들의 어려운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대문에 부적을 붙이고 부락제·기우제·여제 등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사회에서 이를 거부한 교우들은 마을 공동체에서 배척받기도 했다. 이처럼 삶의 터전을 잃은 교우들은 고향을 떠나거나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어야 했다. 박해 시대 교우촌이 외딴 산간에 자리 잡게 된 배경을 이해하게 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이처럼 200여 년 전 사회의 풍속과 신분, 직업, 마을 공동체의 모습을 함께 들여다보며 교우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삶을 되살린다.

발행일 2026-09-13 제3507호 15면

교계 출판사 책 2권, ‘2026년 세종도서’ 선정

교계 출판사가 발간한 두 권의 책이 ‘2026년 세종도서’에 이름을 올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2026년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예수님 가이드」(마이크 보몽 지음/ 황대기 신부 옮김/128쪽/2만5000원/생활성서)가, 학술부문에 「신구약 중간 시기」(김혜윤 수녀 지음/560쪽/3만 원/바오로딸)가 선정됐다. 세종도서 지원 사업은 매년 학술적 가치와 대중성을 갖춘 우수 도서를 선정해 출판사의 양서 출판 의욕을 진작하고, 국민의 독서 문화 확산하기 위한 사업이다. 올해는 교양부문 429종, 학술부문 345종 등 총 774종의 책이 선정됐다. 「예수님 가이드」는 신학적·영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 측면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종합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선정단으로부터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성서를 바탕으로, 또 역사적 사료들을 바탕으로 쉽고 흥미롭게 소개한 교양서”라는 평을 받았다. 「신구약 중간 시기」는 구약과 신약 사이의 거대하고 역동적인 역사를 고찰하는 연구서로 시대의 사상과 정치적 상황, 종교적 특성 등을 정리한다. 특히 한국교회 안에서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연구되지 않은 분야인 ‘신구약 중간 시기’와 관련된 정보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선정단은 사상적 흐름과 정치적 상황이 종교적 특성과 무관할 수 없음을 지적한 내용을 높이 평가했다.

발행일 2026-09-13 제3507호 6면

박해 피해 신앙 지킨 사람들…「가쿠레키리시탄」

‘가쿠레 키리시탄(隠れ切支丹).’ 일본어로 ‘잠복 그리스도인’을 뜻하는 말이다. 일본에 가톨릭 선교가 시작된 것은 1549년. 유럽 선교사들의 포교 활동이 이어지자 도쿠가와 막부는 그리스도교를 금지하고 선교사들을 추방했다. 발각된 그리스도인들은 잔인하게 처형당했고, 성화는 무참히 짓밟혔다. 이에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지하로 숨어들었고, 불교와 토착 전통 등으로 종교를 위장하며 신앙을 이어갔다. 오랜 시간이 흘러 미일수호통상조약으로 1859년 선교사들이 돌아왔을 때, 일본의 신앙인들은 그들의 눈에 더 이상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다. 이교로 배척된 일부는 가톨릭으로 재개종했지만, 또 일부는 선조들의 신앙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가쿠레 키리시탄으로 남았다. 저자는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뒤 신학과 군사사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리즈대학교에서 가쿠레 키리시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책은 1998년 출간된 그의 연구를 번역한 책으로, 가쿠레 키리시탄 신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그들이 살아온 역사와 사회·종교적 맥락 안에서 살펴본다. 책에는 가쿠레 키리시탄 공동체의 구조와 가톨릭과의 관계, 성화와 메달의 상징, 순교자의 무덤과 성지, 전례력과 기도, 공동 식사, 장례와 조상 숭배 등 다양한 주제가 담겼다. 특히 성물과 성수에 관한 설명에서는 박해와 성직자 부재라는 상황에서 가톨릭과 다른 신앙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 준다. 교회에서는 성수를 사제의 축복을 통해 신앙생활과 전례에 사용하는 물로 여기지만, 가쿠레 키리시탄은 성직자가 없는 상황에서 순교지의 물을 성수로 삼았다. 순교자의 신앙과 희생이 깃든 장소의 성스러움이 물에도 이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책은 제도 교회와 단절된 채 신앙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독특한 의례와 관습이 형성됐음을 설명한다. 책의 후반에는 일본 연구자 나카조노 시게오의 2025년 연구 「가쿠레 키리시탄 신앙 연구의 과거와 현재」도 특별 부록으로 수록돼 1998년 이후 발전한 연구의 흐름 등을 소개한다. 오랜 시간 박해를 견딘 이들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질문을 던진다. 신앙은 전통적인 ‘교리와 제도’에 있는 것일까. 시대를 견디며 변화한 ‘실천과 포용’에도 신앙이 담길 수 있을까. 또한 종교의 언어가 타인을 쉽게 규정하고 전쟁과 혐오의 빌미로 오용되는 시대, 우리는 ‘타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구입처 바로가기

발행일 2026-09-13 제3507호 15면

언어 통역사에서 종교 통역사 된 사제…「통역사 다니엘 슈타인」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나치 독일의 점령지에서 통역사로 일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통역 임무를 이용해 수백 명의 유대인에게 학살 계획을 알리고 탈출을 도왔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가톨릭 사제가 됐다. 소설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은 이 극적인 삶을 바탕으로 종교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선 한 인간의 여정을 그린다. 소설의 모델이 된 인물은 폴란드계 유대인 출신의 가르멜회 수도사 오스발트 루페이젠(Oswald Rufeisen, 1922~1998)이다. 전후 가톨릭으로 개종해 ‘다니엘 마리아’라는 수도명으로 살아갔다. 소설 속 주인공은 다니엘 슈타인이다. 다니엘은 뛰어난 언어 능력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나치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의 통역사로 일한다. 그는 통역사라는 위치를 이용해 수용구역 ‘게토’에 갇힌 유대인 수백 명의 탈출을 돕고, 자신 역시 죽음의 위기를 피해 달아난다. 전쟁이 끝난 뒤, 그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그를 찾지만 다니엘은 가톨릭 수도원에서 은둔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사제가 된 다니엘은 이스라엘로 건너가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가톨릭 공동체를 세운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가톨릭 사제가 된 그는 자신처럼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신앙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 그가 품었던 꿈이었다. 이처럼 ‘통역’은 작품의 핵심을 이룬다. 전쟁 중에는 언어를 통역했고, 이후에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이해와 화해를 돕는 다리가 되고자 했던 다니엘의 삶을 상징한다. 작품은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종교가 본래 목적을 잃을 때 믿음이 배제와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나타내는 한편,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와의 관계를 돌아보고 화해를 모색해 온 과정도 조명한다. 소설은 이 과정을 편지와 일기, 증언 등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보여 준다. 순교자 성월에 만나는 이 이야기는 박해 속에서 타인의 생명을 구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은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신앙의 증언’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유대인에게도 기독교인에게도 중심에 있는 것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지. 사람 안에서 하느님을 봐야 해. … 나는 사람을 파괴하는 진리는 필요하지 않다네. 더욱이 사람을 파괴하는 자는 하느님도 파괴한다네.”(512~513쪽)

발행일 2026-09-13 제3507호 15면

[이달의 잡지] 2026년 9월

■ 경향잡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경향 돋보기’에서는 행사의 오랜 전통인 홈스테이의 의미와 실제를 알아본다. 한국에서 열린 2014 아시아청년대회(AYD) 참가자로 홈스테이를 체험한 인도네시아 청년 요셉 알디 위보오 씨, 2007 한국청년대회(KYD) 홈스테이 호스트 오자영(아녜스) 씨 등의 경험담이 실렸다. 서울 WYD 조직위원회 학술팀 봉사자 장지혜(루시아) 씨는 ‘청년, 어떻게 지내니?’ 코너에서 교회가 청년의 안부를 묻는 의미에 관한 성찰을 나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900원> ■ 빛 ‘책 읽기, 삶 읽기’에서는 한강 작가의 동화 「눈물상자」에 대해 살펴본다. ‘가 보고 싶었습니다’에서는 순교자 성월을 맞아 치명자산성지, 전동성당, 수리치골성지를 방문한다. WYD 대구 교구대회 조직위 사무국장 문창규(베드로) 신부는 젊은이들이 다시 교회를 찾고 있는 프랑스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대구대교구/2500원> ■ 생활성서 특집 ‘순교 너머’는 예수회 소속 정제천(요한 사도) 신부와 캄보디아 직업학교에서 활동하는 평신도 선교사 김상집(라파엘) 씨, 류한영 신부(베드로·청주교구 성사전담) 등의 글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순교 정신과 그로부터 이어진 선교,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이야기를 전한다. ‘표징이 하는 말’ 코너의 김경민 신부(판크라시오·전주교구·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는 고해성사가 하느님과 개인의 만남을 넘어, 복음 선포의 자리임을 상기시킨다. <생활성서/4800원> ■ 월간 꿈CUM ‘테마로 읽는 성경’에서는 함원식 신부(이사야·안동교구 농은수련원 원장)가 ‘하느님의 도우심’을 주제로 용서에 대해 말한다. ‘전례 미사 해설’에서는 영성체 예식을 상세히 풀이한다. ‘하느님의 어린 양’ 기도부터 영성체 전 신앙고백, 영성체송까지 그 의미와 역사를 다룬다.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강석진(요셉) 신부는 ‘교회사의 숨겨진 한 페이지’를 통해 1790년대 이후 형성된 전라도 고산 교우촌을 소개한다. <월간 꿈CUM/5000원> ■ 참 소중한 당신 특집 ‘순교 성인께 띄웁니다’에서는 신앙을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놓았던 수많은 순교 성인을 기억하며 순교 성인에게 편지를 띄운다. ‘인터뷰-깨소금 신앙’에서는 「한국 천주교 성지 순례」 책자에 담긴 전국 성지 188곳을 14차례 완주하고, 현재 15번째 순례 여정을 이어 가고 있는 김광식(요셉)·최복순(안나) 부부를 만난다. <미래사목연구소/4000원> ■ 사목정보 ‘순례, 신앙을 다시 길어 올리는 여정’을 주제로, 주교회의 순교자현양과 성지순례사목 위원회 총무 이찬우(타대오) 신부를 만나 순례가 지닌 참된 의미를 짚는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며 고뇌하고 흔들렸던 수많은 순교자의 삶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나아가야 할 신앙의 길은 어떤 모습일지 들어 본다. 특집에서는 신앙의 뿌리를 되새기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영적 여정인 순례의 신앙적 의미와 가치, 순교 신심과 성지순례의 관계, 현대 사회에서 순례가 지니는 의미 등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발행일 2026-09-06 제3506호 15면

남상근 신부의 「은총 수업」…“하느님께 받은 사랑, 이웃과 나눌 때 완성됩니다”

세례성사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늘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은총’이라는 말은 어느새 삶과 동떨어진 단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만날 수 있을까. 올해 은경축을 맞은 남상근(라파엘) 신부가 첫 책 「은총 수업」을 통해 은총의 의미를 전한다. 오랜 시간 서울대교구 대신학교에서 영성 지도를 담당하며 ‘신학생들의 위로자’로 불려 온 남 신부는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도록 초대한다. 그가 말하는 은총은 특별한 체험이나 극적인 사건이 아니다. 매일 마주하는 사람, 때로는 어려움과 아픔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깨닫는 것이다. 책에는 믿음이 어떻게 삶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던 어느 날, 한 시골 본당 신자들은 비가 내리기를 바라며 기우제 미사를 청했다. 미사가 봉헌되던 중 비가 쏟아지자 사람들은 허둥지둥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모니카 할머니만은 가방에서 조용히 우산을 꺼내 들었다. 비가 내릴 것을 믿고 미리 준비해 온 것이다. 이 이야기는 믿음이 단순히 희망에 머물지 않고 삶의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전한다. 은총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에 자신의 삶으로 응답한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은총을 입은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남 신부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라는 말씀에서 답을 찾는다. 그는 부모가 나를 사랑했기에 나도 부모를 사랑하고, 누군가가 나를 사랑했기에 그 사랑에 응답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고 설명한다. 십자가를 통해 전해 받은 사랑을 서로에게 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는 책의 여러 장면에서 ‘용서’에 대해 말한다. 사랑의 가장 어려운 실천이 용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의 잘못을 두고 ‘이번에는 용서하지만 다음에도 같은 잘못을 한다면 그때는 참지 않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남 신부는 이 같은 태도는 진정한 용서가 아니라 분노를 잠시 미뤄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짚는다. 그는 ‘만 탈렌트를 빚진 종’의 비유를 통해 용서받은 사람이 살아가야 할 모습을 설명한다.(마태 18,22-35 참조) 한 종은 자신이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주인으로부터 탕감받지만, 정작 자신에게 작은 빚을 진 동료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못한다. 이 장면은 하느님께 받은 용서와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남 신부는 세례성사와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받은 그리스도인은 ‘용서받은 사람의 삶’과 동시에 ‘용서의 은혜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느님께 받은 사랑은 다른 이에게 흘러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거창한 신앙 체험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삶의 한복판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그 사랑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 묻는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은총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깨닫는다면 설레어 저절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열매가 아니라 크신 사랑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도저히 선택될 수 없는 나임에도 씨앗에 담긴 생명으로 조건 없이 세상에 뿌려졌음을 기억하는 일, 이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이 먼저입니다.”(215쪽)

발행일 2026-09-06 제3506호 15면

오늘날 공의회가 열린다면…「제3차 바티칸 공의회를 향하여」

전례 개혁과 평신도 역할 확대, 세상과 대화하는 교회의 모습을 새롭게 제시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이하 공의회)가 폐막한 지도 60여 년이 흘렀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세속화와 신자 고령화, 성소 감소 등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다. 「제3차 바티칸 공의회를 향하여」는 2025년 우리신학연구소 월례 세미나에서 발표된 글들을 엮은 책이다. 8인의 평신도 신학자들은 ‘만약 오늘날 제3차 공의회가 열린다면 무엇을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질문 아래, 오늘의 교회가 마주한 과제와 미래 방향을 모색한다. 저자들은 공의회를 이미 지나간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이어지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으로 바라본다. 1부에서는 한국교회가 공의회 정신을 수용해 온 과정과 함께, 아직 풀어야 할 과제를 살핀다. 한국교회는 1970~1980년대 사회 참여와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이후 소공동체 운동 등을 통해 공의회 정신을 한국적 현실 안에서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교회 내 성직주의와 권위주의적 운영, 신앙과 삶의 분리 등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또한 저자들은 오늘날 교회가 신자유주의와 기후위기, 인공지능 등 새로운 시대적 도전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도 살핀다. 교회가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고 복음적으로 응답해야 하며, 공의회 정신이 살아 움직이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제도 변화와 함께 복음 중심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2부에서는 평신도의 역할, 시노달리타스, 생태 위기 등 구체적인 주제를 통해 미래 교회의 과제를 모색한다. 저자들은 공의회가 평신도를 교회의 수동적 구성원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복음을 실천하고, 세상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세상의 혼’으로 재발견했다고 설명한다. 시노달리타스는 모든 신자가 경청과 식별 과정에 참여하는 교회를 요청한다. 이에 따라 책은 평신도의 참여가 형식적 자문에 머무르지 않고, 교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실질적인 역할과 책임으로 이어질 때 시노달리타스가 구현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교회는 기후위기와 인공지능으로 인해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받으소서」와 「모든 형제들」을 통해 통합적 생태론과 형제애를 강조했듯, 교회가 인간 중심적 사고를 넘어 모든 피조물이 연결된 ‘공동의 집’을 돌보는 사명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운 권력 체계 속에서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고 최신 기술을 윤리적으로 인도해야 하는 교회의 역할을 강조한다. 평신도 신학자들이 공의회의 핵심 주제를 ‘지금 여기’의 시각에서 다시 짚으며 미래 교회를 향해 성찰한 이 기록은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교회는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복음의 본질을 전할 것인가?” 박문수(프란치스코) 우리신학연구소 소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서전 「나의 인생」(2025)에서 밝힌 미래 교회의 모습을 그 방향으로 제시한다. “우리 교회가 하느님의 속성을 지닌 온유하고 겸손하며 봉사하는 교회가 되는 미래, 그래서 부드럽고 친밀하며 자비로운 교회가 되는 꿈입니다. 우리는 참신한 것을 많이 찾아내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나감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발행일 2026-08-30 제3505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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