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자 당선자들에게 기대한다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우리는 유례없는 아픔과 어려운 과제들에 직면해 있다. 전 세계는 가까스로 팬데믹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지만 전쟁과 폭력으로 고통받고 있고, 인간이 오염시킨 지구는 기후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에서는 어려운 나라 살림에 가난한 이들은 더 곤궁해졌다. 연이은 사회적 참사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하고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계와 정부는 환자를 볼모로 대치를 이어간다. 그 와중에 정치인들은 당리당략과 개인적 영달 추구에 여념이 없고, 표를 얻기 위해 국민들을 갈라치기한다. 제22대 총선을 지켜본 국민들은 때로는 절망, 때로는 분노로 가득 찼다.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정부와 여당을 심판하자는 것이 유일한 구호였다. 국민들은 지혜로웠다. 실망과 혐오에도 불구하고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고, 모두에 대한 기대와 경고를 담은 결과를 선사했다. 모든 당선자들이 이제는 공동선을 위해 일하기를 호소한다. 특별히 신자 당선자들에게 기대한다. 우리나라에서 천주교 신자는 국민 10명 중 1명꼴이지만 신자 국회의원은 4명 중 1명꼴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치가 ‘사랑의 가장 고결한 형태’라며 “사회 상황과 국민과 가난한 이들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정치인들을 더 많이 보내 주시도록 기도한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205항)고 말했다. 신자 당선자들은 고결한 사랑을 실천하고 공동선에 봉사하도록 불린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정치 활동을 신앙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주님은 이들이 정치 활동에서도 하느님과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새로 선출된 22대 국회의 신자 당선자들이 하느님 뜻에 충실하기를 간절하게 기대한다.

각자의 성소 찾으며 희망의 순례 나서자

올해로 제61차 성소 주일을 맞이했다. 교회는 매년 부활 제4주일을 성소 주일로 기념한다. 성소 주일은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아버지께 거룩한 성소의 선물을 청하며 기도하는 날이다. 한국교회는 특별히 사제·수도 성소 증진에 보다 집중하며 성소 주일을 지낸다. 갈수록 사제·수도 성소가 감소하는 현실에서 이는 중요하고도 꼭 필요한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하느님 백성의 일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은사에 따라 고유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성소 주일 담화를 통해 밝히고 있듯, 우리 모두는 “다양한 생활 신분 안에서 복음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교황은 특별히 2025년 희년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강조하며 ‘희망의 순례자’, ‘평화의 건설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당부하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전쟁과 갈등,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고향 땅을 떠나는 많은 이주민과 난민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이 시대를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서 희망의 순례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요청을 되새기자. “저마다 교회와 세상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성소를 찾고 희망의 순례자이며 평화의 건설자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일에 투신합시다.” 우리 각자가 용기를 낼 때 ‘우리 모두는 고유한 생활 신분에서 나름대로 작은 방식으로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희망과 평화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

사설

신자 당선자들에게 기대한다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우리는 유례없는 아픔과 어려운 과제들에 직면해 있다. 전 세계는 가까스로 팬데믹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지만 전쟁과 폭력으로 고통받고 있고, 인간이 오염시킨 지구는 기후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에서는 어려운 나라 살림에 가난한 이들은 더 곤궁해졌다. 연이은 사회적 참사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하고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계와 정부는 환자를 볼모로 대치를 이어간다. 그 와중에 정치인들은 당리당략과 개인적 영달 추구에 여념이 없고, 표를 얻기 위해 국민들을 갈라치기한다. 제22대 총선을 지켜본 국민들은 때로는 절망, 때로는 분노로 가득 찼다.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정부와 여당을 심판하자는 것이 유일한 구호였다. 국민들은 지혜로웠다. 실망과 혐오에도 불구하고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고, 모두에 대한 기대와 경고를 담은 결과를 선사했다. 모든 당선자들이 이제는 공동선을 위해 일하기를 호소한다. 특별히 신자 당선자들에게 기대한다. 우리나라에서 천주교 신자는 국민 10명 중 1명꼴이지만 신자 국회의원은 4명 중 1명꼴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치가 ‘사랑의 가장 고결한 형태’라며 “사회 상황과 국민과 가난한 이들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정치인들을 더 많이 보내 주시도록 기도한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205항)고 말했다. 신자 당선자들은 고결한 사랑을 실천하고 공동선에 봉사하도록 불린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정치 활동을 신앙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주님은 이들이 정치 활동에서도 하느님과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새로 선출된 22대 국회의 신자 당선자들이 하느님 뜻에 충실하기를 간절하게 기대한다.

2024-04-21
사설

각자의 성소 찾으며 희망의 순례 나서자

올해로 제61차 성소 주일을 맞이했다. 교회는 매년 부활 제4주일을 성소 주일로 기념한다. 성소 주일은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아버지께 거룩한 성소의 선물을 청하며 기도하는 날이다. 한국교회는 특별히 사제·수도 성소 증진에 보다 집중하며 성소 주일을 지낸다. 갈수록 사제·수도 성소가 감소하는 현실에서 이는 중요하고도 꼭 필요한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하느님 백성의 일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은사에 따라 고유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성소 주일 담화를 통해 밝히고 있듯, 우리 모두는 “다양한 생활 신분 안에서 복음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교황은 특별히 2025년 희년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강조하며 ‘희망의 순례자’, ‘평화의 건설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당부하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전쟁과 갈등,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고향 땅을 떠나는 많은 이주민과 난민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이 시대를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서 희망의 순례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요청을 되새기자. “저마다 교회와 세상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성소를 찾고 희망의 순례자이며 평화의 건설자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일에 투신합시다.” 우리 각자가 용기를 낼 때 ‘우리 모두는 고유한 생활 신분에서 나름대로 작은 방식으로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희망과 평화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

2024-04-21
현장에서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분들이 왜 이렇게 많지?’ 수원교구의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 미사 취재를 위해 안산 화랑유원지에 다다를 때쯤이었다. 삼삼오오 모인 검은 정장의 남성들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곧 앳된 얼굴의 수원교구 신학생들이었다. 또래라면 또래일 수 있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추모 미사에 참례한 신학생들의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경건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와 교구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추모 미사가 거행됐다. 이용훈 주교의 강론과 보편지향기도를 통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생존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깊은 위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예비신학생이었던 세월호 희생자 고(故) 박성호(임마누엘)군의 친구 심기윤(요한 사도) 부제가 추모 편지를 읽을 땐, 신학생과 신자들 사이에서 훌쩍이거나 눈물을 닦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끝내 떨리는 목소리로 울음을 참던 심 부제의 낭독을 들으며 내 눈시울도 붉어졌다. ‘집안의 활력소이자 엔도르핀, 엄마가 기분이 안 좋을 때 귀를 움직여 웃게 하는 아들, 재외교포를 돕는 최고 외교관을 꿈꾸는 서재능(6반)’, ‘기타도 잘 치고 손재주가 좋아 프라모델도 능숙하게 조립하고, 자동차 공학박사를 꿈꾸는 안주현(8반)’ 등 희생자 각각에 대한 메시지가 붙은 세월호 리본 봉도 사람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도 해명도 한 번 받지 못했다는 희생자 가족들. “우리는 평범한 부모들이었다”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애통한 발언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2024-04-21
신한열 수사의 다리 놓기

잊지 않겠습니다

10년 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가장 슬프고 가장 아픈 주님 부활 대축일을 보냈다.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어떤 글도 쓰지 못한 보름의 시간이 지난 뒤에 뜰에 핀 금낭화가 눈에 들어왔다. 금낭화의 불어 이름은 ‘마리아의 심장’(Coeur de Marie)이다. 꽃 모양이 심장에서 피나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아서 ‘피 흘리는 심장’(영어), ‘눈물 흘리는 심장’(독어)이라 명명했을 것이다.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모습을 본 어머니 마리아의 심장에서 어찌 피눈물이 흐르지 않았을까. 세월호 참사 때 많은 사람이 제 자식을 잃은 것처럼 함께 울었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수많은 약속이 있었고, ‘잊지 않겠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의 한편에서는 유족들의 피맺힌 목소리에 귀를 닫고 노란 리본에조차 적대감을 표시한다. 불편한 기억들을 자꾸만 지우려는 사람들과 세력에 거슬러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저 피해자로 남아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재난을 사회화했다. 다수의 유가족이 국가의 보상금을 거부하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벌여 국가의 책임을 인정받았다. 그 배상금을 출연해 재단을 세웠고 지난해 11월에는 다른 여러 재난 참사의 피해자들과 연결망을 만들었다. 녹슨 세월호는 진작 인양되었지만 새로운 ‘한국호’는 아직도 진수되지 않았다. 공동체는 점점 파편화되고 개인들은 각자도생의 길로 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명확해졌지만, 우리 사회는 거기서도 배우지 못했다. 일상의 회복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극도의 경쟁과 효율 추구, 소비와 과시의 시대로 되돌아갔다. 누군가는 세월호의 기억을 지우려 했을 때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고 해병대 채상병의 죽음이 있었다. 기후 위기와 결합된 재난 참사도 계속된다. 그래도 높은 사람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가장 많이 환기된 말은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이다. 그리스도인은 기억의 백성이다. 부활의 증인인 제자들은 스승 예수의 참혹한 죽음을 기억에서 지우지 않았다. 2000년 동안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을 함께 기억하고 경축한다. 성경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등장은 십자가 아래에서 눈물 흘리는 장면이 마지막이 아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시작된 예루살렘의 교회, 그 새로운 공동체에 함께 계셨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깊은 아픔과 상처를 딛고 일어나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며 새로운 한국 공동체의 초석을 놓고 있다. 1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오열하는 그분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늘은 함께 울어야겠다. 금낭화의 서양말 이름처럼 눈물 흘리는 마리아의 마음으로.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2024-04-21
방주의 창

지정환 신부와 무지개가족을 기억하며

지정환 신부(池正煥, Didier t’Serstevens)는 1931년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뱅상 레브 신부(Vincent Lebbe, 1877~1940)가 세운 벨기에 선교협조회(La Société des Auxiliaires des Missions)에 들어간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가서 민중의 형제로서 그들과 함께 살기를 원했고, 그들에게 배워서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을 통해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그들과 함께하기를 바랐다. 지정환 신부는 1958년에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12월 8일 부산에 도착한 이래 전주교구 전동·부안·임실본당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하면서 특히 가난한 농민들과 동반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부안에서는 쓸개를 잃었고, 임실에서는 다발성 신경경화증을 얻었는데, 이것들은 이 땅의 가난한 민중들에게 ‘하느님의 빛’으로, 하느님이 보내 주신 ‘카리타스의 무지개’로 살면서 그가 받은 훈장이었다. 그는 임실 치즈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1976년대 초에 벌써 몸에서 마비 증상을 감지하곤 했다. 그러다가 1976년에 오른쪽 다리가 마비돼 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불편한 몸으로 임실 치즈 조합 활동을 정리하고 1981년에 벨기에 고향으로 가서 치료받았지만, 결국에는 완치가 불가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의사가 퇴원을 권유하면서 “일을 그만두면 더 악화될 것”이라고 조언했는데, 이 말을 희망의 메시지로 받아들인 그는 조금 나아진 몸 상태로 1983년 10월 13일 휠체어를 타고 다시 한국, 전주교구로 돌아왔다. “이곳이 내 고향이다.” 전주교구로 돌아와서 자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정환 신부 입에서 저절로 터져 나온 말이다. “그래, 이제 여기에 뼈를 묻자!” 그는 자기가 하느님 안에서 살다가 어디에서 그분께로 돌아갈 것인가를 결단했다. 지 신부는 박정일(미카엘) 주교에게 장애인사목을 권유받았을 때 즉시 답하였다. “예.” 1984년 2월 그는 교구에서 장애인사목 지도신부 소임을 맡게 됐다. 그해 7월에 김영자(마르타) 등의 협력 속에서 지정환 신부는 박남숙(루치아)과 함께 첫 장애인 공동체를 동반해 갔다. 이들은 다음 해 3월에 공동체를 확장해 옮겼고, 이후 이 공동체는 ‘무지개가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1989년에 하느님 희망의 증거자 지 신부는 ‘무지개가족’과 함께 오늘의 완주 ‘소양면’(所陽面), 볕 따스한 마을로 옮겨 와서 삶의 기쁨과 희망을 일구어 갔다. 거의 20년 동안 무지개가족을 동반한 지 신부는 2002년 5월에 사회봉사 부문에서 호암상을 받았고, 다음 해인 2003년 7월에 은퇴해 무지개가족을 떠난다. 그는 호암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장애인들과 이들의 가족들의 교육을 위해 무지개장학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은퇴 후에도 무지개가족에서 멀지 않은 소양면 ‘별아래’ 집에서 살면서, 무지개장학재단 일과 19세기와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이 남긴 자료들을 복원하는 작업 등을 하면서 하느님의 사제로 살다가 2019년 4월 13일 하느님께로 돌아갔다. 올해는 그의 선종 5주기이자 무지개가족이 탄생한 지 40년이 되는 해다. 그는 이 땅의 민중에게 하느님의 희망을 전하는 과정에서 장애를 얻었고, 자신의 장애를 장애인들을 섬기는 거룩한 기회로 삼아서 수많은 장애인들이 새 삶을 살도록 매개했다. 그의 장애인 동반 사목의 밑바닥에는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이고, 장애인이기 이전에 있는 그대로 ‘하느님에게서 온 한 사람’이라는 존재 중심 인간 이해가 자리잡고 있었다. 지 신부가 자신의 전 존재로 증거한 ‘존재 중심’ 장애인 동반의 전통이 오늘의 무지개가족과 모든 장애인 동반 기관들에서 참으로 아름답게 육화되고 승화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선물’ 지 신부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초빙교수)

2024-04-21
독자마당

[독자마당] 노크 소리

똑!똑!똑! 누군가의 노크 소리에 밝고 큰 소리로 반갑게 대꾸하였습니다. 본당 빈첸시오회 자매님이었습니다. 오십견이 와서 불편하다 하시면서도 오늘도 어김없이 도시락과 샌드위치 등을 가져오셨습니다. 마트에서 팔다 남은 걸 가져오십니다. 그 덕분에 생활비 30~40만 원이나 절약됩니다. 사랑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알기 쉽게 말하자면 주님의 이름으로 받는 사랑 덕분에 요즘 웃음을 도로 찾았습니다. 처음에 본당 빈첸시오회에서 사전 조사를 나왔을 때, 병을 앓거나 가정 경제가 파탄 난 것을 말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빌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하느님 은총’이라는 말에 힘입어 자존심을 내려 놓았습니다. 그 결과 물품과 현금을 빈첸시오회에서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노크 소리에 문을 연 결과입니다. 형편이 좀 웬만해지고 정신적으로도 안정을 취하고 나면 알바라도 할 생각입니다. 그때까지 감사해하자, 지원을 받자고 생각하며 고맙게 도움의 손길에 손을 내밀고 글을 쓰며 생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저도 도와주시는 여러분 생각하며 제 재주, 글쓰는 능력을 봉헌하고 싶습니다. 이런 여유까지 생겼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좋았던 건 아닙니다. 전에 살던 곳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겨 누가 문을 두들기면 겁부터 났습니다. 한번은 인천도시가스공사에서 남자 직원들이 나왔는데, 겁에 질려 진땀을 흘렸습니다. 지난 부활 대축일에 근처 교회 목사님께서 오셨을 때도 사실 남자 목소리라 문 열기가 좀 그렇더라구요. 하지만 문을 열자 부활 축하 선물로 오렌지와 떡, 달걀 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전날 간식거리가 생각나 화살기도를 했거든요. 주님께서는 목사님을 통해 응답하신 겁니다. 그렇게 믿기로 했습니다. 주님께서 제 맘에 노크를 하십니다. 과거의 슬픔과 어둠에서 벗어나 게으름과 안주에서 벗어나 문을 엽니다. 도시락이나 샌드위치 등이 생기듯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주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얼마나 좋은 걸 주시겠느냐는 말씀에 의지한 결과입니다. 평화와 함께 기쁨이 찾아옵니다. 강건하고 담대해 집니다. 지난 부활 대축일, 봄날이라 문 다 열어놓고 이불 빨래하고 청소를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제 맘에 기쁨의 등불이 켜졌습니다. 미소 지으며 지나가는 이웃에게 인사하였습니다. 아멘! 글 _ 이선희(수산나·인천 십정동본당)

2024-04-21
일요한담

신앙에 대한 사유

“나는 대리석 안에 있는 천사를 보았고, 천사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 냈다.” 다비드상을 조각한 미켈란젤로의 신앙고백이다. 그는 이미 대리석 안에 있는 천사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조각상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 들어있는 천사를 발견한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우리 안의 그리스도를 볼 줄 아는 눈을 갖는 것이다. 신앙은 곧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을 발견하고 믿는 것이다. 신앙은 성스러운 절대자를 믿고 절대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 내지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인간의 신뢰와 순종이라는 인격적 관계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신앙이란 하느님과 그분이 보이신 계시에 대한 인간의 긍정적인 반응 즉, 신앙의 대상인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계시를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전적으로 하느님의 증거와 언약에 의존한다. 즉 신앙은 하느님의 언약인 ‘말씀’에 전 존재를 걸고 신뢰하는 것이다. 신앙은 구원의 필수 조건이다. 하느님의 창조와 섭리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재림과 최후 심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부활 신앙이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끝’이 아니라 한 방식의 삶이 끝나고 다른 방식의 삶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썩어질 육체를 위하여 삶을 소진할 것이 아니라 부활의 신앙으로 영생한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러고는 눈을 들어 바라보니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것은 매우 큰 돌이었다.”(마르 16,4) 성경은 이 짧은 한 문장으로 무덤 안과 무덤 밖을 연결한다. 참으로 놀랍고 엄청난 변화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르 16,6) 그렇게 성경은 단호하고 분명히 예수님의 부활을 알린다. 무덤 안의 어둠과 두려움이 무덤 밖의 빛과 희망으로 연결된 것이다. 무덤 안의 죽음과 무덤 밖의 생명이 연결됐다.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돌이 치워진 것이다.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은 치워졌고, 창으로 찔려 벌어진 그 옆구리 사이가 보고 믿은 이의 손으로 메워졌다. 그리고 믿지 못한 토마스는 벌어진 상처를 넣어 보고 나서야 신앙고백을 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부활을 통해 열어 주신 생명의 문, 그분께서 당신을 믿고 당신의 뜻을 끝까지 충실하게 지켜 온 사람들을 하늘의 영광에 참여시키기 위해 열어 주신 천국의 문,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발걸음이 우리 신앙의 전부일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요한 20,25) 그 생생한 기억이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펼치신 구원의 손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고립과 절망으로부터 꺼내 주며, 지금 우리 안에 희망의 기쁨을 움트게 하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여기에서 양팔을 벌려 신앙으로 다져진 우리를 맞이하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신 능력은 성령이었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 성령을 받아 부활의 신앙으로 각자에게 내려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며 작은 예수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세가 신앙인의 진정한 삶이 아닐까. 글 _ 윤여환 요한 사도(충남대 회화과 명예교수)

2024-04-21
사설

과거 아픔 넘어 함께 연대해야

지난 4월 2일 광주에 제주 4·3 희생자를 기억하는 ‘4월걸상’이 놓였다. 제주 외 지역 최초의 4·3 조형물이며, 아픈 과거를 안은 두 지역의 연대를 드러낸 조형물로 의미가 깊다. 제막식에는 광주대교구와 제주교구장을 지낸 김희중 대주교와 강우일 주교가 참석해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는 걸상이 인간 존중과 평화의 연대를 강화하는 상징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4월과 5월은 우리에게는 민족의 아픈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때다. 제주의 4·3, 광주의 5·18이 그렇고 가까이는 참사 10주기를 맞은 세월호의 슬픔이 고통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상징하는 총구 모양의 걸상을 일상 공간에 놓은 것은 여전히 고통 받는 피해자 곁에 함께하는 이들이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하기 위함이다. 강우일 주교가 4월걸상 제막식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가 어제와 오늘을 기억함으로써 내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폭 1.1m의 걸상은 두 사람이 몸을 부대껴야만 겨우 앉을 수 있다. 의자 받침은 거칠고 큰 바위가 바다에 이르기까지 구르고 굴러 둥글고 매끈한 모습으로 탈바꿈한 제주 몽돌의 형상이다. 역사 안에 깊숙이 자리한 아픔의 매듭을 풀기 위해서 우리는 의자에 부대껴 앉아야 한다. 거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기보다는 만남으로 부대끼고 폭력이 아닌 대화로 다가서야 한다. 그럼으로써 날 선 오해를 몽돌의 부드러움으로 바꿔가야 한다. 4월걸상이 끊임없이 이어져 온 폭력의 반복을 끊고, 광주와 제주를 넘어 한민족이 하나로 마음을 모으는 연대의 주춧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4-04-14
사설

기억은 힘이 세다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는 날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이들의 고통까지 망각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고통과 연민, 공감과 연대를 잊을 때 불합리한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실제로 기억과 교훈이 힘을 잃을 때 스텔라 데이지호 침몰사고, 10·29 이태원 참사, 오송지하차도 참사가 이어졌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들은 수수방관을 넘어선 방해를 일삼았다. 많은 이들이 참사에 대한 피로감을 빌미로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조롱하고 비난했다. 당사자의 고통, 더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깊은 책임감을, 보상금을 더 받으려는 파렴치한 이들의 행태로 몰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거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무능했을 뿐만 아니라 거짓으로 일관했던 국가는 철저한 진상 규명보다는 억압과 모욕과 무시로 희생자들을 대함으로써 기억을 덮으려고만 했다. 세 차례의 공식 조사 기구 활동이 있었지만 여전히 진실은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참사를 기억하면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기 위한 노력은 온갖 어려움에도 계속됐다. 희생자들은 서로 위로하고 연대해 다시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인간 생명이 최고 가치임을 잊지 않도록 노력했다. 선의의 시민들은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보냄으로써 고통에 동참했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하지만 기억은 힘이 세다. 우리가 고통을 기억하는 한 진실은 밝혀지고 잘못한 이들은 책임을 질 것이며, 더 안전한 사회를 향한 의지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2024-04-14
현장에서

열매 하나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내 마음이 얼마나 변화될 수 있는지 체험하고 나면, 그 사랑이 넘쳐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아요.” 4월 5일 서울 예수회센터에서 열린 교황님 기도 네트워크 첫 금요일 예수 성심 신심 미사 후 마련된 청년 회원들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과자는 ‘그리스도의 몸’, 와인은 ‘그리스도의 피’라며 농담하는 청년들 중, 자칭 ‘고인물’이라며 웃던 유스티노씨의 나눔이었다. 평온한 어조였지만 큰 여운으로 다가왔다. 핵심은 “인격적 예수님 체험의 열매는 열매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열매를 맺어 과수원처럼 커져 간다”는 것이었다. 그의 고백에 청년 개개인의 영신수련을 동반하는 부책임자 신부님 공로가 크게 느껴졌다. 사제 한 사람이 전체 50명 넘는 청년 회원들을 한 사람씩 개인 면담하는 많은 시간을 희생한다는 게 상상되지 않았다. 사제가 이미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있고 그로써 내면에 사랑이 가득 차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됐다. 그와 달리 다른 사람을 향할 줄 모르는, 사랑이 메말라 붙은 내 내면을 들여다보게 됐다. 인간 예수를 만나지 못한 것, 어쩌면 만날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늘 자신을 성찰한다고는 하지만 그 자리에는 예수가 빠져 있고 늘 나로 채워져 있었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의 뜻에 맡기기보다 내가 생각의 흐름을 주도하고 판단했다. 늘 과수원이 되길 꿈꾸지만, 정작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황량한 나를 반성하게 됐다. 꼭 언젠가는 열매가 열리고 사랑이 차오르길 바랄 따름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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