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새 교황 탄생을 경축하며

새 교황 레오 14세의 탄생을 하느님 백성 모두와 함께 기뻐하며, 착한 목자를 교황으로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5월 8일,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소속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하느님께서 콘클라베에 참석한 모든 추기경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의 마음에 성령을 불어넣어 지혜로운 선택으로 이끄셨음을 믿는다. 너무나 사랑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던 2013년, 가톨릭교회는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서구 교회를 송두리째 뒤흔든 성직자 아동 성추행 문제와 교황청 재정을 둘러싼 여러 비리는 교회에 대한 신뢰를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종교에 대한 무관심, 세속주의와 상대주의, 완고하고 경직된 교회 사목과 행정 등은 교회를 위기에 빠뜨렸다. 그런 와중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다. 그는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얼굴로서의 교회, 변방으로 나아가고 가난한 이들을 품에 안는 야전병원으로서의 교회, 복음의 기쁨이 흘러넘치는 선교적 교회의 모습을 제시했다. 교회는 새로운 희망에 부풀기 시작했고, 저항과 반발 속에서도 성령 안에서의 대화와 경청, 식별을 통해 이뤄지는 시노드 교회의 전망을 보여주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이후, 교회는 중대한 역사의 갈림길에 섰다. 미래 교회의 새로운 전망을 보여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노선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시노달리타스로 불리는 새로운 교회의 모습에서 한 발 물러설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리고 미국 출신의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소속 수사이자, 페루에서 가난한 이들 속에서 사목 활동을 해온 프레보스트 추기경을 새 교황으로 선출함으로써 교회의 방향성을 결정했다. 추기경들과 성령께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을 이어가고 세상에 평화를 실현하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투명한 교회의 지도자로서 레오 14세 교황을 선택했다.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자신의 교황명을 레오 14세로 정했다. 이는 최초의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통해 산업혁명 시기의 노동자들의 권리와 사회 정의 문제에 응답하고자 했던 레오 13세 교황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인공지능(AI)의 발전이 또 다른 산업혁명으로 받아들여지는 현대 세계 속에서, 레오 14세 교황은 교회의 사회교리를 오늘날의 시대와 사회에 적용해 사회 발전과 정의 문제에 응답하려는 것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을 ‘복음적 원칙’으로 여기며, “이 귀중한 유산을 받아들여 믿음에서 태어나는 희망으로 이 여정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천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위 기간 내내 교회 개혁 시도에 대한 저항과 반발은 끊임없이 있었고, 때로는 매우 노골적이고 공식적으로까지 이 개혁이 교회의 가르침을 훼손하고 하느님 백성을 혼란에 빠뜨린다고 비난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러한 모든 비판을 거슬러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선출 직후 첫 축복 메시지에서 “두려움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 충실한 남녀 신자들이 되어 복음을 선포하고 선교하는 하나의 교회로 함께 걷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교하는 교회’, ‘다리를 놓고 대화를 여는 교회’, ‘늘 환영하며 품어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년 동안 이어진 세계주교시노드를 통해 우리는 시노달리타스에 바탕을 둔 선교하는 교회의 전망을 모색했다.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작한 이 위대한 개혁, 시노드 교회의 건설을 레오 14세 교황과 함께 완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교세 통계가 제시하는 사목적 과제들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4」는 현재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목적 과제들을 드러낸다. 이번 통계 조사 결과는 교회 운영과 신자 생활, 사목 환경 등에 있어서 다소의 긍정적인 면이 발견되긴 하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는 해묵은 사목적 과제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통계는 우선 사회 전반의 저출생 고령화 현상을 넘어서는 연령별 신자 구성을 보여준다. 19세 이하가 6.3%에 불과한 반면 65세 이상 고령층 신자 비율이 27.5%에 달하는데 이 차이는 해마다 더 벌어지는 추세다. 젊은이와 노인들에 대한 각별한 사목적 대책 마련이 여전히 시급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구 구조는 1인 가구의 증가를 불러오는바 이에 대한 대책도 긴급하게 요청된다. 전례와 성사생활에 있어서는 다소간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즉 전년도인 2023년 통계에 비해서는 영세자 수와 주일 미사 참례자 수 등이 미미하게 증가세를 보임으로써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으로 사목 환경과 신자 생활 지표가 회복되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포함해 신자 공동체 구성 현황과 교회 운영, 신자 생활 등에서 나타나는 모든 사목적 과제들에 대처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여전히 본당 사목의 쇄신과 강화다. 빈번한 거주지 이동과 도시화 등으로 인해 본당 사목구의 의미가 과소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본당은 관계와 환영, 식별과 선교를 위한 특권적 장소로서, 신자들을 지속적으로 동반, 양성함으로써 그들이 부여받은 소명을 실천하도록 도와야 한다.

독자마당

[독자마당] 영화 <콘클라베>를 보고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전 세계가 사랑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였다. 지금 새 교황의 탄생을 기다리며, 최근에 상영된 영화 <콘클라베>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교황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시작된 콘클라베 3일간의 과정을 다루었다. 짧은 시간의 이야기이지만 여기에 우리 교회의 모습이 잘 담겨있다. 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거룩함이 드러나고 콘클라베의 주체가 바로 성령임이 밝혀진다. 첫째, 교회의 고뇌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회의를 주재하는 수석 추기경 ‘토마스 로렌스’가 주인공 역할을 하며 회의를 이끌고 가는데, 그 이름이 의미하듯 의심하고 질문하며 진리의 길을 찾아간다. 그는 첫날 강론에서 “확신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죄”라고 하며 추기경들에게 경고하는데, 교회는 결코 자기도취나 편안함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둘째, 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모습이다. 최다 득표를 이어가고 있는 아프리카 추기경의 성추문이 드러나고, 교황직 선출을 위해 미리 추기경들을 매수하는 성직 매매의 추악함과 자신의 탐욕을 위해 상대의 과거사를 들추어내는 불의와 부정직한 인간성이 드러난다. 셋째, 교회의 거룩함이다. 교회는 인간이 이끌어가지 않고, 바람이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것처럼 거룩한 성령께서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심을 말한다. 회의 전날 갑자기 명단에도 없는 추기경이 등장한다. 이분이 성령의 바람을 일으키며 마지막에 새 교황으로 선출된다. 마지막으로 교회 여성의 역할을 볼 수 있다. 콘클라베 회의 동안 수녀들은 회의를 위해 요리를 하고 세탁하는 가정부의 역할을 하지만, 성추문과 성직 매매의 진실을 밝힌다. 여성이 교회의 리더 역할에서 배제되지만, 진실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있다. 마지막에 놀랄만한 반전이 있는데, 이 신선한 충격이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을 스포일러하지 않기 위해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고, 이것을 통해 내다본 전망만 밝힌다. 가톨릭교회의 여성 사제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부터 그 필요성과 요구가 빗발치지만, 지금까지 아직 유보된 상태이다. 그 이유로 제시되는 것은 이는 교회 전통에 어긋나며, 예수님이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사제)의 인격 안에서 예수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참조: 「직무 사제직에 대한 여성 수용의 문제에 대한 선언」(Inter Insigniores, 1976)) 그렇다면 여성의 인격 안에는 예수님께서 현존하시지 않을까?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바로 그 의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존경한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 사회의 소외된 자인 성소수자들까지도 껴안았다. 또 역사상 첫 교황청 여성 장관까지 임명한 진보주의 성향을 보였지만, 여성 사제직에 대해서는 문을 열어놓지 않았다. 지금 새로운 ‘교황 선출을 위한 기도’를 바치면서, 이번 교황은 누가 되더라도 그 개혁의 문을 활짝 열어놓을 수 있는 분이기를 열망한다. 또 그렇게 되기를 믿는다. 콘클라베의 주체는 그때마다 놀라운 반전을 일으키시는 성령이시니까. 글 _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26면
사설

새 교황 탄생을 경축하며

새 교황 레오 14세의 탄생을 하느님 백성 모두와 함께 기뻐하며, 착한 목자를 교황으로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5월 8일,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소속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하느님께서 콘클라베에 참석한 모든 추기경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의 마음에 성령을 불어넣어 지혜로운 선택으로 이끄셨음을 믿는다. 너무나 사랑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던 2013년, 가톨릭교회는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서구 교회를 송두리째 뒤흔든 성직자 아동 성추행 문제와 교황청 재정을 둘러싼 여러 비리는 교회에 대한 신뢰를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종교에 대한 무관심, 세속주의와 상대주의, 완고하고 경직된 교회 사목과 행정 등은 교회를 위기에 빠뜨렸다. 그런 와중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다. 그는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얼굴로서의 교회, 변방으로 나아가고 가난한 이들을 품에 안는 야전병원으로서의 교회, 복음의 기쁨이 흘러넘치는 선교적 교회의 모습을 제시했다. 교회는 새로운 희망에 부풀기 시작했고, 저항과 반발 속에서도 성령 안에서의 대화와 경청, 식별을 통해 이뤄지는 시노드 교회의 전망을 보여주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이후, 교회는 중대한 역사의 갈림길에 섰다. 미래 교회의 새로운 전망을 보여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노선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시노달리타스로 불리는 새로운 교회의 모습에서 한 발 물러설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리고 미국 출신의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소속 수사이자, 페루에서 가난한 이들 속에서 사목 활동을 해온 프레보스트 추기경을 새 교황으로 선출함으로써 교회의 방향성을 결정했다. 추기경들과 성령께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을 이어가고 세상에 평화를 실현하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투명한 교회의 지도자로서 레오 14세 교황을 선택했다.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자신의 교황명을 레오 14세로 정했다. 이는 최초의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통해 산업혁명 시기의 노동자들의 권리와 사회 정의 문제에 응답하고자 했던 레오 13세 교황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인공지능(AI)의 발전이 또 다른 산업혁명으로 받아들여지는 현대 세계 속에서, 레오 14세 교황은 교회의 사회교리를 오늘날의 시대와 사회에 적용해 사회 발전과 정의 문제에 응답하려는 것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을 ‘복음적 원칙’으로 여기며, “이 귀중한 유산을 받아들여 믿음에서 태어나는 희망으로 이 여정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천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위 기간 내내 교회 개혁 시도에 대한 저항과 반발은 끊임없이 있었고, 때로는 매우 노골적이고 공식적으로까지 이 개혁이 교회의 가르침을 훼손하고 하느님 백성을 혼란에 빠뜨린다고 비난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러한 모든 비판을 거슬러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선출 직후 첫 축복 메시지에서 “두려움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 충실한 남녀 신자들이 되어 복음을 선포하고 선교하는 하나의 교회로 함께 걷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교하는 교회’, ‘다리를 놓고 대화를 여는 교회’, ‘늘 환영하며 품어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년 동안 이어진 세계주교시노드를 통해 우리는 시노달리타스에 바탕을 둔 선교하는 교회의 전망을 모색했다.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작한 이 위대한 개혁, 시노드 교회의 건설을 레오 14세 교황과 함께 완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27면
현장에서

부대낌의 미학

까리따스 이주민 초월센터는 5월 11일 마을 어르신을 초대해 어버이날 행사를 열었다. 그동안 자신들에게 경로당 등을 내어준 어르신들의 따뜻함에 대한 보답이었다. 물론 처음 외국인들이 동네에 늘어날 때는 낯설고 생소해 서로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이 어색함을 해소하고자 센터는 지난해 처음 어버이날 행사를 기획했고, 성공리에 친교의 시간을 보냈다. 화합을 강조한 백 번의 강연보다, 한자리에 앉아 밥 한 끼 같이 먹고, 공연 보며 웃고 즐긴 ‘부대낌’ 한 번이 벽을 허물게 했다. 나와 다른 줄 알았던 존재가 나와 똑같은 걸 먹고 마시고, 하나의 큰 공감대 안에서 울고 웃는 한 인류임을 체감한 것이다. 이러한 동질감은 미사 중에도 경험할 수 있다. 한 분이신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눠 먹고 마시고, 서로 마주 보며 평화의 인사를 하며, 함께 손잡고 성가를 부를 때 우리는 성령 안의 한 형제임을 깨닫는다. ‘남’, 이주민에 대한 이질감의 해소 방법은 바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선에서의 이 ‘부대낌’에 있지 않을까. 유럽 출신 이주민의 자손인 레오 14세 교황은 페루에서 사목하는 동안 페루에 온 베네수엘라 이주민들에게 관심이 컸다고 한다. 또한 추기경 시절 자신의 SNS에 반 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게시글을 여러 번 공유하기도 했다. 이러한 교황의 이주민 포용 뜻을 우리도 새기며 마음을 여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너희는 이방인을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신명 10,19)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27면
방주의 창

레오 14세 교황 탐구

새들은 하늘의 메신저일까? 2013년 콘클라베 때는 비둘기가, 이번에는 갈매기들이 굴뚝 주변을 서성일 무렵 기쁜 소식이 왔다. 새벽에 교황 선출 소식을 듣고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어느 분이 나타나실지 궁금했는데 이윽고 등장한 새 교황은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었고 교황명은 ‘레오 14세’였다. 콘클라베 참여 추기경의 80%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분들이니 교황의 뜻을 잘 이어갈 분이 뽑힐 것으로 믿었고, 가까이 불러 중책을 맡긴 교황청 장관 중에 한 분일 것으로 추측했다. 유흥식 라자로 성직자부 장관의 교황 선출도 기대했는데 주교부 장관을 맡으셨던 분이 뽑혔다. 새 교황은 어떤 분일까? 미국인 첫 교황,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출신 첫 교황이라며 언론들이 소개했지만 충분치 않아 하루 종일 레오 14세 새 교황을 탐구했다. 교황이 되기 전 프레보스트 추기경의 70여 년 삶을 함축하는 키워드는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와 ‘페루 선교사’일 것 같다.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두 형들과 미사 놀이를 할 만큼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에 입회해 사제 서품을 받은 뒤 페루에 파견되어 30대의 10년은 선교사로, 60대의 10년은 교구장으로 20여 년을 페루에서 살았다. 라틴아메리카의 어려운 여건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긴 세월이 그분의 삶에 깊이 배어 있을 것이다. 40대 이후 15년은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관구장과 총장으로 살았다. 총장 재직 시절에 한국에 있는 수도회를 다섯 번 방문하실 만큼 전 세계 아우구스띠노 수도회를 돌보는 일에 열심이셨다.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인연을 다 알 수는 없지만, 2014년 말 수도회 총장 임기 12년을 마친 프레보스트 신부를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교로 서품한 뒤 페루 치클라요교구장 소임을 맡겼고, 2023년에는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영성은 ‘일치’를 강조한다고 알고 있다. 자신과 일치, 이웃과 일치, 하느님과 일치를 통해 한마음 한뜻의 공동체를 꿈꾼다. 이런 영성으로 페루에서 선교사로 살아온 분이 교황이 되셨다. ‘레오’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했는데 아마도 교황 레오 13세를 따르려는 뜻 같다. 1891년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발표해 가정과 노동과 인권이 위협받던 격동기에 국가, 고용주, 성직자가 할 일을 제시하고 ‘사회교리’의 토대를 마련한 레오 13세의 업적은 컸다. 가톨릭교회가 사회문제를 보듬어 안고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세기 말의 레오 13세처럼, 21세기 초 ‘인공지능(AI)’으로 상징되는 격동기의 또 다른 ‘새로운 사태’를 풀어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 같다. 교황 선출 직후 첫 인사 말씀 중에 ‘모두의 평화’, ‘무장이 해제된 평화’, ‘하느님과 세상의 다리와 같은 그리스도’, ‘대화와 만남으로 건설하는 다리’란 표현도 눈길을 끈다. 짧고 얕은 교황 탐구를 요약하자면, 레오 14세 교황은 ‘다리를 놓는 교황’이 될 것 같다. 필요한 때에 좋은 분이 뽑혀 큰 일을 하실 것 같다. 그분 홀로 일하게 하지 말고 우리도 함께 다리를 놓는 사람이 되자. 젊은 날 즐겨 불렀던 젠노래 ‘다리’의 가사를 떠올리며 새 교황을 위해 기도를 드린다. 필요한 곳마다 다리를 놓아주시라고. 남과 북 사이에도. “온 세상 곳곳에 수많은 강이 흐른다. 길고 깊게 흐르는 강 우리를 가른다. 서로 물 건너 마주 바라보지만 아, 만나지 못한 채 그 눈길은 불신으로 가득 차. 어찌 강 위로 다리를 우리 놓지 않는가. 강은 장벽을 쌓는다. 노인과 젊은이 사이에 양편 언덕을 갈라선 부자와 가난한 이들. 흑인들은 건너편 둑 위에 있는, 아- 백인 형제들을 멀리서 바라다본다. 어찌 강 위로 다리를 우리 놓지 않는가.” 글 _ 정석 예로니모(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27면
일요한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나는 다큐멘터리 작가다. 글로도 쓰고 영상으로도 쓴다. 내 직업을 밝히면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느냐 또 묻는다. “오래 살피고 깊이 질문합니다.” 별로 친절하지 못한 답이지만 실상이 그렇다. 질문하는 자, 그것이 나의 업이다. 하여 나는 이름난 의사에게도 묻고, 남부군 마지막 전사에게도 묻고, 대통령에게도 물었다. 그것이 나의 일이었으므로 나는 질문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세상의 깊이를 쟀다. 의학 다큐멘터리 작가로 17년간 일하면서 수많은 환자들을 만났다. 이름난 의사를 찾아온 이들이니 중한 병을 앓는 환자가 대부분이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다시 수술장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이들이었다. 생과 사, 그 갈림길에 선 이들이라고 하면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도 물었다.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살아서 수술장 문을 나온다면, 다시 살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정해진 시간을 사는 유한한 인간이기에 누군가를 통해 인생을 배워야 했다. 그러니 질문은 늘 같았으며 놀랍게도 누구의 대답이든 늘 비슷했다. “다시 살수 있다면, 몇 년 만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가족들과 여행을 하고 싶어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그들의 소망은 살아서 가족들과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여행일까? 느닷없이 유물 유적이 보고 싶다거나 이름난 건축물이나 절경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삶의 벼랑 끝에서 여행을 떠올리는 이유는 하나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영원히 기억될 추억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여행이라는 말 앞에 달린 전제, 사랑하는 이들 혹은 가족들과 ‘함께’다. 사랑하는 이들과 같이 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여행은 무엇인가? 나를 일로부터 해방하게 해 주고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시간이다. 그리하여 나를 나로서 살게 하는 시간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은 순수한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일에 좇기고 버스 시간에 허덕이고 성적이나 성과에 눈치 보지 않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 하고 맛있게 먹고 ‘아, 좋다’ 하며 온전한 시간을 보내길 원하는 것이다. 진정한 나, 진정한 당신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의 최상의 표현이 ‘여행’인 것이다. 그 다음 많은 답은 “사랑한다” 였다. 아내에게 혹은 남편에게 딸과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다. 쉽다면 쉬운 그 말을 왜 하지 못 했을까? 후회를 하는 이들이 많았다. 쉬운 말을 쉽게 하지 못했다면 그 사랑에 조건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네가 어떤 사람이든 네가 어떤 상황이든 너를 무조건 지지하고 추앙하며 환대한다는 것이다.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는 이들은 아프게 깨우친다. 아프게 깨우친 이들을 통해 우리는 또 배운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천애고아처럼 떨어진 한 생명, 가장 가깝게 살았던 이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상대가 가진 생명에 대한 최대의 찬사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일로써 또 배움의 방편으로써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듣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답을 들고 나는 세상에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 나는 오늘 당신에게 묻는다. 유한한 당신의 시간 동안, 무엇을 꼭 하고 싶으냐고. 글 _ 양희 아녜스(다큐멘터리 작가·감독)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26면
나의 하느님 공부

한사람

몇 해 전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기 우리 성당에는 미사가 없는 날이 많아서, 나는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의 반경 안에 있는 다른 시골 성당들을 찾아다녔다. 대개는 미사 시간이 비슷해서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지만, 평일 미사를 드릴 수 있어 좋았다. 그러다가 어느 성당에 갔는데, 초로의 신부님 포스가 예사롭지 않으셨다. 한 달 후 쯤 다시 그곳에 가니 신자들이 다 같이 본당 신부님의 완쾌를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보다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신부님의 안색이 아주 좋지 않았다. 강론 시간에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여러분의 기도 덕에 좀 나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아직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밤에 아파서 자꾸 깨는데 그럴 때마다 주님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밤에 깨면 생각해요. 참 좋다, 주님의 기도를 바칠 수 있어서.” 저간의 사정을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이 말씀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이후 나도 밤에 깨어나면 뒤척이다가 그분 말씀이 떠올라 주님의 기도를 바쳤다. 가끔은 ‘왜 자꾸 깨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나도 생각했다. “참 좋다, 주님의 기도를 바칠 수 있어서” 하고. 그 신부님은 그 이후로는 보이지 않으셨다. 어딘가에서 건강하게 잘 계시기를 빈다. 조금 다른 말 같지만 내게 몇 가지 특이한 은총이 있었다. 그건 성지나 순례지에 가면 이상하게도 눈물이, 흑흑 흐느끼는 눈물 말고 줄줄 흘러내리는 맨 눈물이 나오는 은총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성지를 몇 시간 순례하고 나면 사람들이 내 얼굴에서 빛 같은 것이 난다고 했다. 순교 성지의 은총이었다. 그리고 우리 본당에 새 신부님이 오셨다.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그분의 얼굴을 멀리서 보는 순간 내 눈에서 바로 그 맨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미사 내내 그랬다. 마음은 끝없이 여러 가지 추리를 시작했는데 , 뜻밖에도 실마리는 강론 시간에 풀렸다. “제가 여기 부임하기 전에 안식년이었어요. 그래서 자전거로 우리나라 전국 성지를 다 순례했습니다. 여기 성지마다 찍힌 스탬프도 다 있어요.” 신부님은 주교회의에서 발간한 책과 스탬프 책을 들어 보이시며 장난스럽게 웃으셨다. 신기했다. 억지로 비유해서 말하자면, 어떤 꽃가루 비슷한 것이 순례지마다 잔뜩 쌓여 있다가, 내 눈에 눈물을 흐르게 했고 또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어딘가에 묻어 있다가, 그 사람이 내게 다가오자 또 눈물을 흐르게 만들었다는 말이 되는 게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까 무언가가 거기에 분명히 있다는 말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순례하고 돌아오신 우리 본당 신부님은 겨우 백여 명이 미사에 참례하는 평균 나이 70이 되는 이 작은 시골본당에 엄청난 활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지난 부활 제3주일 미사의 강론은 얼마나 좋았는지, 나는 그것을 통째로 외워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다 들려주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이 작은 시골 성당들 짓는데, 나는 벽돌 한 장 보탠 일이 없다. 내가 젊을 때 다른 교구의 신학생이셨을 저분들 양성하는데도 빵 한 조각 보탠 일이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깊은 시골, 작은 고을에도 누군가가 봉헌한 성당이 서 있고 저렇게 훌륭한 신부님들이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봉사하고 계심을 생각하면 성지라도 순례하는 것처럼 눈물이 난다. 우리 레오 14세 교황님도 그렇게 작고 가난한 성당에서 사도직을 시작하셨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여기가 순례성지이고, 어쩌면 저분들이 이 시골마을의 교황님들이 아닐까. 이 부활시기 저 신부님들 한 분 또 한 분들 덕에 내 마음은 진정 부활의 기쁨으로 넘친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26면
방주의 창

‘삶의 질(quality of life)’ 평가에 대한 성찰

최근 ‘삶의 질’이라는 표현을 자주 접한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의미는 무엇이며 어떤 기준으로 판단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삶의 질’ 개념이 물질적 풍요와 소비주의, 쾌락주의를 정당화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때로는 안락사나 우생학의 확산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여 년간 ‘국민 삶의 질 보고서’를 매년 발표하는데, 지난 5년간 문제의식은 매년 다음과 같다. “한국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 달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나 행복수준은 그리 높지 않으며, 다양한 사회문제에 직면해 있다. 유례없이 낮은 출산율과 급속한 고령화, 높은 자살률 등 사회전반의 활력이 약화되고 있으며, 빈부격차 … 등 다양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에 기존 경제 성장 중심의 정책에서 삶의 질 제고로의 정책적 대응과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이 보고서에서 삶의 질을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요소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객관적인 생활 조건과 이에 대한 국민들의 주관적 인지 및 평가로 구성된다”고 정의한다. 동시에 “한 사회의 경제 및 사회 발전 수준과 구성원의 가치 및 규범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우리가 속한 사회가 무엇을 ‘바람직한 상태’로 인식하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2000년대에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문구가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경제적 부를 삶의 바람직한 상태로 인식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에 따라 경제적 효율성과 유용성, 개인의 경제적 상태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며, 건강 악화로 인한 생산성 저하나 사회 기여도의 감소, 실업 등은 삶의 질 저하로 해석된다. 이는 우리 사회의 높은 자살률과도 관련이 있다. 즉, 사회적 외적 조건과 개인의 주관적·임의적 가치관에 의한 삶의 질 판단이 생명을 경시하거나 생명을 포기하게 만드는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삶의 질에 대한 문제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진정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제고하려면, ‘삶의 질’이라는 개념이 현실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 개념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문제는 ‘삶의 질’ 개념이 점점 인간 생명의 서열화를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은연중에 오랜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들, 장애가 있는 사람들, 고령의 만성질환자들을 부담으로 간주하거나 ‘비생산적인 생명’으로 낙인찍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 생명 사이에 불평등이 존재함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의사조력자살의 법제화를 통해 그러한 불평등을 정당화하여,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 할 생명에 대한 사회적 의무를 져버리는 것이다. 물론 의료자살이나 안락사는 표면적으로 그것이 개인의 자율적 선택임을 강조하며, 존엄성의 표현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삶의 의미를 매우 축소하고, 왜곡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우리가 이러한 삶의 질 개념에 둘러싸일 때, “인간 상호 간의 영적 종교적 차원과 같은 실존의 더 심오한 차원들이 무시된다”고 경고한다.(회칙 「생명의 복음」 23항) 우리에게 ‘삶의 질’에서 삶이란 불가침성과 존엄성 위에 기초한 삶이다. 그렇기에 ‘삶의 질’ 개념 역시 이 전제 위에서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삶의 질로 생명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단호히 거부하면서, 무엇보다 인간 생명 그 자체가 지닌 고유한 가치를 인식하고, 생명에 대한 존중과 생명권에 기초할 때만 삶의 질을 논의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겠다. 글 _ 최진일 마리아 교수(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연구조교수)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23면
일요한담

꽃이 찬란한 이유

이번 봄도 찬란했다. 꽃 덕분 이었고 신록 덕택이었다. 겨울이 너무 길다 싶을 때, 무채색을 못 견딜 것 같을 때 느닷없이 꽃들이 핀다. 봄꽃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도무지 생명이라곤 없는 것 같은 마르고 앙상한 가지에서 첫 꽃들이 터져 나온다. ‘설마 여기서 꽃이 피겠어?’,‘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어?’ 싶은데 꽃이 핀다. 꽃이 피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감사한데 꽃이 피면 비로소 그 나무를 알게 된다. 그러니까 꽃이 피고 나서야 비로소 벚나무구나, 목련이구나, 산당화구나 그렇게 이름을 부르게 된다. 지난 삼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있었다. 그때 그곳은 온통 꽃밭 이었다. 색을 가진 모든 꽃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거기서 흰빛이라 할지 연한 분홍이라 할지 안개처럼 몽글한 꽃을 보았다. 노오란 꽃이 핀 초록 들판 위로 줄맞춰 심어진 끝없는 꽃나무들. 벚꽃보다는 꽃잎이 크고 꽃술이 짙었다. 가까이 가면 연연한 향기가 피어났다. 온갖 지식을 동원해 봐도 무슨 꽃인지 답을 낼 수 없었다. 꾀를 내어 나무 아래에서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연초록 들풀이 피어나는 나무아래 조개처럼 생긴 갈색의 단단한 껍질이 보였다. 혹시 아몬드 나무? 그럼 이 꽃이 아몬드 꽃인가? 고흐의 그림 한점이 떠올랐다. 그의 그림 중 가장 환하고 빛나는 푸른빛을 띤 작품. 동생 테오의 아들이 태어나자 선물로 그린 꽃이 바로 ‘꽃피는 아몬드 나무’다. 1888년 2월, 고흐는 파리에서 아를로 떠났다. 어둡고 숨 막히는 파리의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떠났던 프랑스 남부의 도시 아를은 봄꽃이 피어나는 시절이었다. 긴 겨울을 이기고 스스로의 존재를 감출 수 없어 터져 나오는 환한 빛이 바로 아몬드 나무였다. 고흐는 그 찬란한 꽃을 보고 강렬한 생명을 느꼈고 이때부터 ‘아몬드꽃 연작’을 그리기 시작한다. 다시 잘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아몬드 꽃에서 느낀 것이다. 동생 테오로부터 조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1890년 1월, 고흐는 조카를 위해 ‘꽃피는 아몬드 나무’를 그려 선물하며 이런 편지를 덧붙인다. ‘너희 부부 소식에 나는 다시 희망을 느꼈어. 희망이란 별게 아니야. 풀처럼 꽃처럼 흙처럼 자연을 느끼는 일이지.’ 테오는 자신의 첫 아이에게 형의 이름인 ‘빈센트’를 붙여주었고 훗날 그 아이는 자라서 ‘고흐 뮤지엄’의 설립자가 된다. 우울했던 고흐를 일으킨 것은 아몬드 꽃이었다. 꽃 스스로가 펼쳐내는 빛나는 존재에 대한 감동, 자신을 가장 자신답게 드러내는 그 찬란 때문이었다. 애써 다른 것들과 닮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빛과 모양과 크기와 향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그러니까 꽃은 자신의 고유성을 찾은 존재의 환호 혹은 신호 같은 것. 나무가 부를 수 있는 최고의 절창이다. 그러니 하루하루 꽃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나만의 색으로 나만의 모양으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도록 말이다. 당신이 오늘 꽃피면 좋겠다. 당신의 것으로 온전히 추앙 받으며 빛나면 좋겠다. 그러면 일 년 내내 봄날일테니 말이다. 글 _ 양희 아녜스(다큐멘터리 작가·감독)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22면
나의 하느님 공부

수비아코

산골에 집을 짓고 살기로 마음 먹었을 때,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왔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설렘은 내 정원과 내 텃밭을 가꾸며 사는 것이었고, 두려움은 고립과 어둠 때문이었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이탈리아 수비아코다. 수비아코. 베네딕토 성인이 로마로 유학을 왔다가, 당시 로마의 타락과 세속화, 부패, 이민족들의 방탕한 분위기에 환멸을 느끼고 혼자 떠난 곳이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이 대목을 설명할 때, ‘평양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베네딕토가 서울로 공부하러 왔다가 환멸을 느끼고 하느님을 찾아 강원도 정선의 어느 동굴로 떠났다’ 쯤으로 설명한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신부님께 여쭈어보니 대충 비슷하다고 하셨다. 나는 오래도록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에 하느님 공부를 하러 왔던 베네딕토는 왜 그리로 갔을까. 아름답고 웅장한 성당들이 제일 많은 곳이 로마인데. 누가 ‘하느님이 많이 계신 곳(?) 이 어디지’ 하고 물으면, 세상 천지에 로마가 그 대답이 아닌가 말이다. 젊은 날의 나였다면 유럽 문화 재건협의회나 기독교 문화 되살리기 운동 본부 같은 데 가입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십여 년 전 나도 수비아코로 갔다. 로마에서 동쪽으로 73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수도원기행2」에도 썼지만, 그곳은 산세가 만만치 않아 가는 길이 약간 험했다. 지금도 그러할진대, 베네딕토 성인이 살았던 당시는 어떨까 싶었다. 아름답고 웅장한 몬테 카시노를 보고 오는 길이라, ‘굳이 가야 할까’ 생각도 있었다. 게다가 가을 저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저녁은 빨리 내렸고, 수비아코는 스산했다. 나는 베네딕토 성인이 살았던 동굴을 돌아보며 그 어둠을 상상했다. 지금 방문해도 어둡고 춥고 스산한 곳, 베네딕토는 대체 왜?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내가 산골로 가기로 마음먹고 집이 완성되었을 때 폭풍우 치거나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밤, 나는 베네딕토를 생각했다. 그 어두운 동굴 속에서 혼자 시편을 외우며 하느님을 만나려고 기도하는 그를 …. 신기하게도 그러면 이 어둠이 두렵지 않았고 비바람 치는 밤이 안온했다. 조금 다른 이야기 같지만 내 주변의 개신교인들을 바라보며 ‘대체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을 하는 때가 많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뭐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인 성녀가 안 계시니 그렇구나’ 싶었던 것이다. 비바람 치는 산골에서 나는 수비아코의 베네딕토를 생각한다. 교회에 실망할 때는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를 생각한다. 죽음이 두려울 때는 십자가의 성 요한을, 늙음과 쇠약을 두려워할 때는 성 프란치스코를 …. 그들은 가까운 곳에 사는 우리의 맏형 누나들같이 구체적인 등불이 되어 주신다. 늘 생각하지만, 인간은 밥 한 그릇 때문에 동료를 적에게 밀고할 수도 있고, ‘안 믿겠다’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그리하지 않겠다며 목숨을 내놓는 엄청난 존재이다. 우리 안의 그 엄청난 신성을 늘 일깨워 주시는 성인 성녀가 계심에 오늘도 감사한다. 참 그리하여 1500년 후 베네딕토 성인은 유럽 문화의 수호자로 선포된다. 무슨 무슨 운동 본부에 가입하지 않고도 결국 로마를 타락으로부터 지켜내고 마는 것이다. 이 무슨 기발하고 멋진 결과란 말일까. 지난밤 이곳은 비바람이 거셌다. 나는 시편 127편을 읽었다.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 주님께서 성읍을 지켜 주지 않으시면 그 지키는 이의 파수가 헛되리라. 일찍 일어남도 늦게 자리에 듦도 … 헛되리라.”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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