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세 통계가 제시하는 사목적 과제들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4」는 현재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목적 과제들을 드러낸다. 이번 통계 조사 결과는 교회 운영과 신자 생활, 사목 환경 등에 있어서 다소의 긍정적인 면이 발견되긴 하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는 해묵은 사목적 과제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통계는 우선 사회 전반의 저출생 고령화 현상을 넘어서는 연령별 신자 구성을 보여준다. 19세 이하가 6.3%에 불과한 반면 65세 이상 고령층 신자 비율이 27.5%에 달하는데 이 차이는 해마다 더 벌어지는 추세다. 젊은이와 노인들에 대한 각별한 사목적 대책 마련이 여전히 시급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구 구조는 1인 가구의 증가를 불러오는바 이에 대한 대책도 긴급하게 요청된다. 전례와 성사생활에 있어서는 다소간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즉 전년도인 2023년 통계에 비해서는 영세자 수와 주일 미사 참례자 수 등이 미미하게 증가세를 보임으로써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으로 사목 환경과 신자 생활 지표가 회복되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포함해 신자 공동체 구성 현황과 교회 운영, 신자 생활 등에서 나타나는 모든 사목적 과제들에 대처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여전히 본당 사목의 쇄신과 강화다. 빈번한 거주지 이동과 도시화 등으로 인해 본당 사목구의 의미가 과소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본당은 관계와 환영, 식별과 선교를 위한 특권적 장소로서, 신자들을 지속적으로 동반, 양성함으로써 그들이 부여받은 소명을 실천하도록 도와야 한다.

시대 변화 발맞춘 성소 계발 더욱 힘써야

교회는 부활 제4주일을 성소 주일로 지낸다. 성소에는 여러 형태가 있지만 특별히 성소 주일에는 사제와 수도자 성소의 증진을 위해 더욱 노력한다. 갈수록 사제·수도 성소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성소 계발은 교회의 가장 시급한 현안 중 하나다. 매년 성소 주일이면 각 교구와 신학교마다 행사를 마련해 성소를 위한 여러 노력들을 펼친다.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대규모 행사만으로는 청년들이 성소를 식별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행사들이 성소의 씨앗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 씨앗을 싹틔우게 하는 개별적 관심과 동반이 뒤따라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종하기 전인 지난 3월 19일 로마 제멜리병원에서 발표한 성소 주일 담화를 통해 “성소는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에 씨를 뿌려 주신 귀중한 선물이며 자기 밖으로 나가 사랑과 봉사의 여정에 나서라는 부르심”이라면서 “인간의 삶과 활동의 다양한 영역에서 성소를 증진하고 저마다 주님 목소리에 영적으로 열려 있도록 돕는 데에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권고”했다. 다행히 최근 여러 수도회와 신학교에서도 시대 흐름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성소자 발굴과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청년들이 친근함을 느끼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콘텐츠와 프로그램들을 마련해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성소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함께함으로써 청년들이 그 여정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많은 청년들이 성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주님께 추수할 새 일꾼들을 청하며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방주의 창

‘삶의 질(quality of life)’ 평가에 대한 성찰

최근 ‘삶의 질’이라는 표현을 자주 접한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의미는 무엇이며 어떤 기준으로 판단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삶의 질’ 개념이 물질적 풍요와 소비주의, 쾌락주의를 정당화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때로는 안락사나 우생학의 확산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여 년간 ‘국민 삶의 질 보고서’를 매년 발표하는데, 지난 5년간 문제의식은 매년 다음과 같다. “한국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 달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나 행복수준은 그리 높지 않으며, 다양한 사회문제에 직면해 있다. 유례없이 낮은 출산율과 급속한 고령화, 높은 자살률 등 사회전반의 활력이 약화되고 있으며, 빈부격차 … 등 다양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에 기존 경제 성장 중심의 정책에서 삶의 질 제고로의 정책적 대응과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이 보고서에서 삶의 질을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요소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객관적인 생활 조건과 이에 대한 국민들의 주관적 인지 및 평가로 구성된다”고 정의한다. 동시에 “한 사회의 경제 및 사회 발전 수준과 구성원의 가치 및 규범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우리가 속한 사회가 무엇을 ‘바람직한 상태’로 인식하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2000년대에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문구가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경제적 부를 삶의 바람직한 상태로 인식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에 따라 경제적 효율성과 유용성, 개인의 경제적 상태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며, 건강 악화로 인한 생산성 저하나 사회 기여도의 감소, 실업 등은 삶의 질 저하로 해석된다. 이는 우리 사회의 높은 자살률과도 관련이 있다. 즉, 사회적 외적 조건과 개인의 주관적·임의적 가치관에 의한 삶의 질 판단이 생명을 경시하거나 생명을 포기하게 만드는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삶의 질에 대한 문제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진정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제고하려면, ‘삶의 질’이라는 개념이 현실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 개념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문제는 ‘삶의 질’ 개념이 점점 인간 생명의 서열화를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은연중에 오랜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들, 장애가 있는 사람들, 고령의 만성질환자들을 부담으로 간주하거나 ‘비생산적인 생명’으로 낙인찍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 생명 사이에 불평등이 존재함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의사조력자살의 법제화를 통해 그러한 불평등을 정당화하여,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 할 생명에 대한 사회적 의무를 져버리는 것이다. 물론 의료자살이나 안락사는 표면적으로 그것이 개인의 자율적 선택임을 강조하며, 존엄성의 표현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삶의 의미를 매우 축소하고, 왜곡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우리가 이러한 삶의 질 개념에 둘러싸일 때, “인간 상호 간의 영적 종교적 차원과 같은 실존의 더 심오한 차원들이 무시된다”고 경고한다.(회칙 「생명의 복음」 23항) 우리에게 ‘삶의 질’에서 삶이란 불가침성과 존엄성 위에 기초한 삶이다. 그렇기에 ‘삶의 질’ 개념 역시 이 전제 위에서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삶의 질로 생명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단호히 거부하면서, 무엇보다 인간 생명 그 자체가 지닌 고유한 가치를 인식하고, 생명에 대한 존중과 생명권에 기초할 때만 삶의 질을 논의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겠다. 글 _ 최진일 마리아 교수(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연구조교수)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23면
일요한담

꽃이 찬란한 이유

이번 봄도 찬란했다. 꽃 덕분 이었고 신록 덕택이었다. 겨울이 너무 길다 싶을 때, 무채색을 못 견딜 것 같을 때 느닷없이 꽃들이 핀다. 봄꽃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도무지 생명이라곤 없는 것 같은 마르고 앙상한 가지에서 첫 꽃들이 터져 나온다. ‘설마 여기서 꽃이 피겠어?’,‘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어?’ 싶은데 꽃이 핀다. 꽃이 피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감사한데 꽃이 피면 비로소 그 나무를 알게 된다. 그러니까 꽃이 피고 나서야 비로소 벚나무구나, 목련이구나, 산당화구나 그렇게 이름을 부르게 된다. 지난 삼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있었다. 그때 그곳은 온통 꽃밭 이었다. 색을 가진 모든 꽃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거기서 흰빛이라 할지 연한 분홍이라 할지 안개처럼 몽글한 꽃을 보았다. 노오란 꽃이 핀 초록 들판 위로 줄맞춰 심어진 끝없는 꽃나무들. 벚꽃보다는 꽃잎이 크고 꽃술이 짙었다. 가까이 가면 연연한 향기가 피어났다. 온갖 지식을 동원해 봐도 무슨 꽃인지 답을 낼 수 없었다. 꾀를 내어 나무 아래에서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연초록 들풀이 피어나는 나무아래 조개처럼 생긴 갈색의 단단한 껍질이 보였다. 혹시 아몬드 나무? 그럼 이 꽃이 아몬드 꽃인가? 고흐의 그림 한점이 떠올랐다. 그의 그림 중 가장 환하고 빛나는 푸른빛을 띤 작품. 동생 테오의 아들이 태어나자 선물로 그린 꽃이 바로 ‘꽃피는 아몬드 나무’다. 1888년 2월, 고흐는 파리에서 아를로 떠났다. 어둡고 숨 막히는 파리의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떠났던 프랑스 남부의 도시 아를은 봄꽃이 피어나는 시절이었다. 긴 겨울을 이기고 스스로의 존재를 감출 수 없어 터져 나오는 환한 빛이 바로 아몬드 나무였다. 고흐는 그 찬란한 꽃을 보고 강렬한 생명을 느꼈고 이때부터 ‘아몬드꽃 연작’을 그리기 시작한다. 다시 잘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아몬드 꽃에서 느낀 것이다. 동생 테오로부터 조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1890년 1월, 고흐는 조카를 위해 ‘꽃피는 아몬드 나무’를 그려 선물하며 이런 편지를 덧붙인다. ‘너희 부부 소식에 나는 다시 희망을 느꼈어. 희망이란 별게 아니야. 풀처럼 꽃처럼 흙처럼 자연을 느끼는 일이지.’ 테오는 자신의 첫 아이에게 형의 이름인 ‘빈센트’를 붙여주었고 훗날 그 아이는 자라서 ‘고흐 뮤지엄’의 설립자가 된다. 우울했던 고흐를 일으킨 것은 아몬드 꽃이었다. 꽃 스스로가 펼쳐내는 빛나는 존재에 대한 감동, 자신을 가장 자신답게 드러내는 그 찬란 때문이었다. 애써 다른 것들과 닮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빛과 모양과 크기와 향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그러니까 꽃은 자신의 고유성을 찾은 존재의 환호 혹은 신호 같은 것. 나무가 부를 수 있는 최고의 절창이다. 그러니 하루하루 꽃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나만의 색으로 나만의 모양으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도록 말이다. 당신이 오늘 꽃피면 좋겠다. 당신의 것으로 온전히 추앙 받으며 빛나면 좋겠다. 그러면 일 년 내내 봄날일테니 말이다. 글 _ 양희 아녜스(다큐멘터리 작가·감독)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22면
나의 하느님 공부

수비아코

산골에 집을 짓고 살기로 마음 먹었을 때,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왔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설렘은 내 정원과 내 텃밭을 가꾸며 사는 것이었고, 두려움은 고립과 어둠 때문이었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이탈리아 수비아코다. 수비아코. 베네딕토 성인이 로마로 유학을 왔다가, 당시 로마의 타락과 세속화, 부패, 이민족들의 방탕한 분위기에 환멸을 느끼고 혼자 떠난 곳이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이 대목을 설명할 때, ‘평양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베네딕토가 서울로 공부하러 왔다가 환멸을 느끼고 하느님을 찾아 강원도 정선의 어느 동굴로 떠났다’ 쯤으로 설명한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신부님께 여쭈어보니 대충 비슷하다고 하셨다. 나는 오래도록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에 하느님 공부를 하러 왔던 베네딕토는 왜 그리로 갔을까. 아름답고 웅장한 성당들이 제일 많은 곳이 로마인데. 누가 ‘하느님이 많이 계신 곳(?) 이 어디지’ 하고 물으면, 세상 천지에 로마가 그 대답이 아닌가 말이다. 젊은 날의 나였다면 유럽 문화 재건협의회나 기독교 문화 되살리기 운동 본부 같은 데 가입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십여 년 전 나도 수비아코로 갔다. 로마에서 동쪽으로 73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수도원기행2」에도 썼지만, 그곳은 산세가 만만치 않아 가는 길이 약간 험했다. 지금도 그러할진대, 베네딕토 성인이 살았던 당시는 어떨까 싶었다. 아름답고 웅장한 몬테 카시노를 보고 오는 길이라, ‘굳이 가야 할까’ 생각도 있었다. 게다가 가을 저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저녁은 빨리 내렸고, 수비아코는 스산했다. 나는 베네딕토 성인이 살았던 동굴을 돌아보며 그 어둠을 상상했다. 지금 방문해도 어둡고 춥고 스산한 곳, 베네딕토는 대체 왜?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내가 산골로 가기로 마음먹고 집이 완성되었을 때 폭풍우 치거나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밤, 나는 베네딕토를 생각했다. 그 어두운 동굴 속에서 혼자 시편을 외우며 하느님을 만나려고 기도하는 그를 …. 신기하게도 그러면 이 어둠이 두렵지 않았고 비바람 치는 밤이 안온했다. 조금 다른 이야기 같지만 내 주변의 개신교인들을 바라보며 ‘대체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을 하는 때가 많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뭐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인 성녀가 안 계시니 그렇구나’ 싶었던 것이다. 비바람 치는 산골에서 나는 수비아코의 베네딕토를 생각한다. 교회에 실망할 때는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를 생각한다. 죽음이 두려울 때는 십자가의 성 요한을, 늙음과 쇠약을 두려워할 때는 성 프란치스코를 …. 그들은 가까운 곳에 사는 우리의 맏형 누나들같이 구체적인 등불이 되어 주신다. 늘 생각하지만, 인간은 밥 한 그릇 때문에 동료를 적에게 밀고할 수도 있고, ‘안 믿겠다’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그리하지 않겠다며 목숨을 내놓는 엄청난 존재이다. 우리 안의 그 엄청난 신성을 늘 일깨워 주시는 성인 성녀가 계심에 오늘도 감사한다. 참 그리하여 1500년 후 베네딕토 성인은 유럽 문화의 수호자로 선포된다. 무슨 무슨 운동 본부에 가입하지 않고도 결국 로마를 타락으로부터 지켜내고 마는 것이다. 이 무슨 기발하고 멋진 결과란 말일까. 지난밤 이곳은 비바람이 거셌다. 나는 시편 127편을 읽었다.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 주님께서 성읍을 지켜 주지 않으시면 그 지키는 이의 파수가 헛되리라. 일찍 일어남도 늦게 자리에 듦도 … 헛되리라.”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22면
사설

시대 변화 발맞춘 성소 계발 더욱 힘써야

교회는 부활 제4주일을 성소 주일로 지낸다. 성소에는 여러 형태가 있지만 특별히 성소 주일에는 사제와 수도자 성소의 증진을 위해 더욱 노력한다. 갈수록 사제·수도 성소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성소 계발은 교회의 가장 시급한 현안 중 하나다. 매년 성소 주일이면 각 교구와 신학교마다 행사를 마련해 성소를 위한 여러 노력들을 펼친다.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대규모 행사만으로는 청년들이 성소를 식별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행사들이 성소의 씨앗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 씨앗을 싹틔우게 하는 개별적 관심과 동반이 뒤따라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종하기 전인 지난 3월 19일 로마 제멜리병원에서 발표한 성소 주일 담화를 통해 “성소는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에 씨를 뿌려 주신 귀중한 선물이며 자기 밖으로 나가 사랑과 봉사의 여정에 나서라는 부르심”이라면서 “인간의 삶과 활동의 다양한 영역에서 성소를 증진하고 저마다 주님 목소리에 영적으로 열려 있도록 돕는 데에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권고”했다. 다행히 최근 여러 수도회와 신학교에서도 시대 흐름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성소자 발굴과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청년들이 친근함을 느끼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콘텐츠와 프로그램들을 마련해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성소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함께함으로써 청년들이 그 여정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많은 청년들이 성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주님께 추수할 새 일꾼들을 청하며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23면
사설

교세 통계가 제시하는 사목적 과제들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4」는 현재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목적 과제들을 드러낸다. 이번 통계 조사 결과는 교회 운영과 신자 생활, 사목 환경 등에 있어서 다소의 긍정적인 면이 발견되긴 하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는 해묵은 사목적 과제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통계는 우선 사회 전반의 저출생 고령화 현상을 넘어서는 연령별 신자 구성을 보여준다. 19세 이하가 6.3%에 불과한 반면 65세 이상 고령층 신자 비율이 27.5%에 달하는데 이 차이는 해마다 더 벌어지는 추세다. 젊은이와 노인들에 대한 각별한 사목적 대책 마련이 여전히 시급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구 구조는 1인 가구의 증가를 불러오는바 이에 대한 대책도 긴급하게 요청된다. 전례와 성사생활에 있어서는 다소간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즉 전년도인 2023년 통계에 비해서는 영세자 수와 주일 미사 참례자 수 등이 미미하게 증가세를 보임으로써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으로 사목 환경과 신자 생활 지표가 회복되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포함해 신자 공동체 구성 현황과 교회 운영, 신자 생활 등에서 나타나는 모든 사목적 과제들에 대처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여전히 본당 사목의 쇄신과 강화다. 빈번한 거주지 이동과 도시화 등으로 인해 본당 사목구의 의미가 과소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본당은 관계와 환영, 식별과 선교를 위한 특권적 장소로서, 신자들을 지속적으로 동반, 양성함으로써 그들이 부여받은 소명을 실천하도록 도와야 한다.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23면
현장에서

용감한 사랑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네오콘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일컬으며 군사적 선제공격으로 제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오콘 중 하나인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 개입했고, 회담은 결렬됐다. 북녘에 평화의 겨자씨를 심으려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프로세스도 중단됐다. 이백만(요셉)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의 책 「나는 갈 것이다, 소노 디스포니빌레」를 읽으며 자초지종을 알게 됐다. 국제가톨릭평화운동 단체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가 4월 29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이 대사를 초청해 연 북토크에서 책을 받았다. 2019년 기자회견에서 “장벽을 건설하는 사람들은 그 장벽 안에 갇힐 것”이라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 생각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취임 후 “이주민의 침입을 막겠다”며 미국과 멕시코 사이 장벽을 건설한 데 대한 일침이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욕심쟁이 거인」에서 같은 교훈을 찾았다. 아름다운 정원의 주인이었던 거인은 아이들더러 “내 정원을 망치지 마!”라며 내쫓고 정원을 장벽으로 ‘가뒀다’. 그 후 정원은 이상하게도 혹독한 겨울뿐이었다. 어느 날 장벽에 난 틈으로 아이들이 들어와 뛰놀자 그곳에만 봄이 찾아와 있었다. 거인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도끼로 담을 부숴 아이들이 마음껏 들어오게 해 봄을 회복했다. 이처럼 장벽을 무너뜨리는 용기만이, 원초적인 대응으로 깊어지기만 했던 분단의 상처에 특효약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기도하게 됐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황의 용감한 사랑을 목격한 우리가 순수함을 되찾게 되길.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23면
방주의 창

우리를 통하여 우리를 구하소서

12년, 우리 모두에게 당신을 알렸던 그때로부터 한 해 한 해를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오셨던 교종께서 하느님 집으로 돌아가셨다. 많은 이에게 참된 제자 됨의 삶을 보여주셨던, 그렇기에 참으로 고단하고 힘들었을 12년이었다. 참 많이도 닮았다. 3년 공생활을 하신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길과 만난 사람들은, 12년 종들의 종으로 살아오신 교종의 그것과 참으로 많이 닮았다. 아무도 돌보지 않았고 자신도 포기했던 병자들, 세상의 탐욕과 권력에 지배당해 제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던 이른바 마귀 들린 사람들, 사람 취급받지 못했던 이방인들, 집도 일자리도 빼앗겨 갈 곳 없는 버림받은 사람들, 더럽고 천하다고 홀대받는 사람들…. 예수님이 만난 사람들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을 빼앗긴 사람들, 그래서 더 많이 돌보아주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내민 예수님의 손은 다시금 그들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살기에 충분한 지지이며 연대였다. 작은 쪽배에 몸을 맡겨 지중해 바다를 건넌 사람들, 견뎌내지 못해 끝내 숨져간 동료와 자식들을 채 묻지도 못하고 앞길이 막막했던 이들을 즉위하자마자 찾아간 교종이었다. ‘이기는 편이 내 편’이라며 힘의 논리로 일관하는 강대국들의 얍삽한 처신에, ‘사람의 생명과 피조물의 안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앞세웠던 수많은 메시지였다. 그렇게 프란치스코 교종은 어떤 이들에게는 밉상이었다. ‘거리에서 노숙자가 죽어가는 것을 외면하는 언론이 주가의 변동에는 그처럼 예민한 뉴스로 다룬다’는 일침에, 배제하는 사회에 대한 비난에, ‘노동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말씀에, ‘가난한 나라에 대한 책임이 그들을 침탈했던 강대국에 있다’는 선언에 얼마나 많은 정치인과 경제인이 흠칫했는지 모른다. ‘교회는 야전병원이 되어 거리로 나가야 한다’는 말씀에, ‘당신이 앉아 있는 교종의 자리부터 시작하여 교회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고언에,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키지 말고, 그들의 신념을 존중해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에 또 얼마나 많은 종교인이 곤혹스러웠는지 모른다. 끊임없이 편을 가르는 와중에, ‘고통받는 이들 앞에서 중립은 없다’는 엄중한 가르침은 길 위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이에게 이정표였다. 그러니 분위기 파악하지 못하는 밉상일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이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 등 당대의 지배층에 밉상이었던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밉상스러웠던 그 말과 행위가, 어떤 이들 특히 삶의 나날이 고통으로 이어진 이들에게는 젖과 같은 고소함이요, 꿀과 같은 달콤함이었다. 그로써 고통스러운 하루를 견딜 수 있었고, 그 위로로 꺾인 무릎을 펼 수 있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던 순례자들에게는 내비게이션이었고, 젊은이들에게는 빼앗겼던 희망이었으며, 이주민들에게는 안식처가 될 수 있었다.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가신 분께 ‘시대의 성인’, ‘가난한 이의 성자’ 등 수많은 찬양과 숭배에 가까운 서술이 부여된다. 하나같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 이분을 크게 현양하고 영웅시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그저 옆집에 사는 맘 좋은 아저씨로 남기고 싶다. 우리와는 다른 부류의 존재라고 여기며 격벽을 세울 것 같아서, 그래서 우리가 그와 같이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로 삼을 것 같아서 오히려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남긴 두 가지 말씀, “우리를 통하여 우리를 구하소서”와 “옆집의 성인이 되어주십시오”를 기억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제 각 세대의 언어로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가시는 분께 인사드리고 싶다. 안녕, 호르헤 할아버지! 평안하세요, 프란치스코 아저씨! 잘 가시게! 곧 봄세!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우리 모두의 친구! 글 _ 나승구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제6 도봉-강북지구장)

발행일 2025-05-04 제3440호 23면
일요한담

올인(all in)과 해노비듣

좀 과분한 비유지만, 사도 바오로의 회심과 비슷한 인생전환은 내게도 있었다. 1980년대 한국수묵운동의 일원으로 서울 인사동을 누비고 다니던 먹 냄새 절은 화공이 지금은 한가한 산골에서 세상의 흐름과 비껴나 있으니, 그 먼 간극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에 대한 일종의 해명은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이리라. 그게 지금의 내 좌표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삼십 대 중반, NGO 단체의 국제회의가 있어서 한 달 정도 유럽에 갔다. 여정 중, 독일의 ‘비스 순례 성당’(바이에른 지방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모셔졌던 눈물 흘리는 목각 예수성상과의 대면은 나를 단숨에 교회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때 마주한 예수님의 눈물이 내 감각증폭기에 윤활유가 되었고, 현재도 멎지 않는 눈물에서 알지 못할 주님의 고통이 내 마음으로 전해져 오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신비로운 천장화와 조각품들, 마음이 흐르는 대로 형상이 된 건축의 유려한 선들을 보며, 내게 주신 미술적 탈렌트로 주님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리라고 다짐하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그 일방적 약속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내 안의 예수를 따라나섰던 그 사건은 글자 그대로 올인(all in)이었다. 처자식이 있는 몸이면서도 성경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고민은 무시한 채, 교회라는 광야(?)로 나섰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데, 잘 근무하던 교사직에도 사표를 썼다. 그와 동시에 뛰어든 성당신축 공사장에서 전례미술과 관련된 미술장식을 힘닿는 데까지 작업했다. 하느님이 나를 끝까지 책임져 주시겠지,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볼 수야 없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틈틈이 성체조배를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켜켜이 얽힌 인간관계와 그에 맞선 나의 열정은 불협화음을 만들어내었고, 나를 좌절의 벼랑으로 몰았다. 혼자의 외로움은 참으로 깊었고, 주님과의 동행은 날마다 서러웠다. 마음도 몸도 병들었고 살림살이도 거덜 났다. 그로부터 삼십여 년, 풀잎에 매달렸던 한 방울의 이슬이 구르고 굴러 바다에 이르듯이, 나는 길을 거슬러 산촌에다 터를 잡았다. 선행도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고, 고독한 자기정화마저도 단죄하려고 덤비는 세상을 살다 보니, 모났던 고집도 조약돌만큼 닳았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사는 산마을에서는 누군가가 허세를 부리면 당장 들통이 난다. ‘생태계는 확장 없는 생존이 지속되는 곳’이라고 했던 백남준 화백의 말처럼, 원형적 생존본능들이 매 순간 올인하며 서로의 높낮이를 조율하는 곳이다. 이사를 오던 날, 울타리에는 새들이 수시로 다녀갔고, 소나기가 내리자, 제비들이 전깃줄에 어깨를 붙이고 모였다. 속 깃털이 젖지 않게 목을 움츠려 교회의 첨탑 모양처럼 주둥이를 하늘로 향하고 눈을 감는다. ‘걱정하지 마라. 하늘의 새들을 보라’는 성경의 비유가 바로 연상되었다. 그 자체로 그림이고 노래였다. 모든 걸 하늘에 맡기고, 해가 뜨면 노래하고 비가 오면 듣기를 하는구나! 그래서 작업장의 당호를 ‘해노비듣’으로 지었다. 하루를 닫으며, 애비의 고민을 아는 자식처럼, 하느님의 고민을 넘겨 짚는 아들이고 싶어 그 현판을 올려다본다. 글 _ 하삼두 스테파노(명상그림 작가)

발행일 2025-05-04 제344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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