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베네수엘라 지진 피해 복구에 기도와 관심을

베네수엘라 강진으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잇따른 강진과 여진으로 약 3000여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국제구조위원회에 따르면 실종자 수는 최대 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수십 채의 건물이 종잇장처럼 무너져 내린 모습은 이번 지진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로 참담한 비극 앞에서 국제사회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교황청 애덕봉사부를 통해 긴급 구호금 10만 유로를 전달하며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베네수엘라와 연대의 뜻을 밝혔다. 한국교회 역시 긴급 지원에 나섰다. 한국 천주교 공식 해외원조 기구인 (재)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은 미화 10만 달러를 긴급 구호 기금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특별모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도 긴급 구호 기금으로 미화 5만 달러를 지원했다. 기금은 베네수엘라 카리타스를 통해 대피소 운영과 식수·식량, 의약품과 생필품 지원 등 현지 이재민 긴급 구호 사업에 사용된다. 우리는 거대한 자연재해를 겪을 때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들이 얼마나 미약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류가 위대한 것은 재난에 굴복하지 않고 서로 연대하며 다시 일어설 용기와 희망을 함께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재난 앞에서 인류는 정치적 이해관계나 분쟁 등을 떠나 서로 돕고 마음을 모아야 한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은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을 나누는 데 적극 앞장서야 한다. 베네수엘라 지진 피해 복구에 기도와 관심을 모으자.

신천지 대응, 온 교회가 적극 나서야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에 빠져드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최근 열린 한국천주교유사종교대책위원회(대책위) 세미나 내용과 본지가 취재한 피해 가정 사례를 종합하면, 신천지는 치밀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청년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최근에는 포교 방식도 위장 접근을 넘어 유튜브와 SNS, 상담, 문화 활동, 중고거래 등 일상 전반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신천지의 포섭으로 가정이 흔들리고 있지만, 교회는 아직 이들에게 충분한 사목적 지원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 가정은 먼저 본당을 찾지만, 본당 차원에서 이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교회는 이미 대책위를 중심으로 대응 매뉴얼과 치유 프로그램, 강사 양성 등을 논의해 왔다. 하지만 구체적인 대응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신천지는 청년들의 외로움과 불안, 관계의 결핍을 파고든다. 부모가 다그칠수록 자녀는 더 마음을 닫고, 가족은 죄책감과 분노 속에 고립된다. 신천지에 빠진 청년을 비난하거나 그 책임을 가족에게 돌리는 태도는 상처를 키울 뿐이다. 교회가 이들에게 “알아서 조심하라”고 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피해자와 가족을 감싸안기 위해서는 전 교회 차원의 전문 상담 체계가 필요하다. 각 교구에 유사종교 상담 담당자를 두고, 상담사를 양성하며, 피해 가족이 즉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본당 사제들에게도 기본 대응 지침과 연계 체계를 제공해야 한다. 청년 사목 역시 교리 교육에 머물지 않고 경청과 동행의 공동체로 나가야 한다.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참된 위로와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신천지를 막는 가장 근본적인 대응일 것이다.

일요한담

처음으로, ‘스승’을 만나다

학창 시절, 매해 다가오는 스승의 날이면 뭔가 학급에서 행사를 기획하거나 선물을 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는 스승의 날에 특별히 챙기고 싶은 선생님이 없었다. 딱 한 명 평생 찾아뵐 교사로 여겼던 초등학교 때 담임은 당시 무슨 행동인지 인식도 못 하던 어린 나에게 성추행을 했었고, 내가 경험한 대한민국의 학교는 위계로 가득했다. 주어진 지식을 넘어선 질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질문이 닿지 않으니 진정한 소통과 존중이 생겨날 틈도 없었다. 그렇기에 안정된 직업으로 교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던 그 시절에도, 난 교사가 될 꿈은 단 한 번도 꾸지 않았다. 그렇게 ‘스승’이란 그저 사전 속에 묻혀있던 단어이던 그때, 내가 당연하다고 믿던 평화가 깨어졌다. 아니 도대체 왜 이런 세상인지. 내가 어릴 때부터 믿어 온 하느님은 뭘 하는 건지. 이런 세상과 개인의 우여곡절을 통해 무엇을 전하는 것인지. 가슴이 미어터지도록 답답함과 궁금함이 끓어올랐다. 그렇게 나는 평화를 찾아서, 평화의 인사를 나누던 교회로 갔다. 불합리한 삶에 관해 물으러, 아니 하느님에게 따지러 갔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매일미사에 가는 것이었다. 나의 절실함과 세상의 불합리함을 따지러 간 곳은, 집에서 15분 남짓 개천을 따라 걸으면 닿는 자그마한 동네 성당이었다. 마침 막 부임한 새 신부님은 첫 본당 사제 소임에 열정이 가득했다. 직접 잼을 만들어 이웃들과 나누었고, 신자들에게 매일 묵상 글을 문자로 나누어 주며 홀로 하루에 3번씩 미사를 집전하셨다. 그 덕분에 젖먹이를 키우던 나는 온갖 불규칙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매일미사를 거르지 않을 수 있었다. 차가운 겨울에는 담요로 꽁꽁 싸맨 아이를 노오란 유모차에 태워 눈발을 헤치며 성전에 들어섰고, 유아실에서 젖을 먹이면서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단어 하나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열중했다. 보통 30분이면 끝나는 평일 미사에서 강론은 10분도 채 되지 않지만, 무한한 깊이의 의미를 찾으려 열중하다 보면 3시간 강의를 들은 것보다 더 큰 피로감이 밀려오곤 했다. 차곡차곡 쌓인 나날은 하느님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었고, 매일미사는 아이와 소풍 가는 행복한 일상이 되었다. 신자들에게 보내주던 신부님의 묵상 글은 어떤 날은 너무 어려워 빙빙 돌기만 할 때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영혼이 깊이 꿰뚫리는 배움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나에게 첫 스승이 생겼다. 교회 안의 아버지였던 신부님을 첫 스승으로 만났고, 처음으로 스승의 날에 드릴 양말을 샀다. 그런데 첫 스승을 발견하자, 스승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마을버스 안 중년 부부의 수다 속에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말에서도 가르침이 들렸다. 어느 순간, 지난 삶의 단편 속에 나누었던 말 한마디에 담긴 의미, 상념을 통해 문득 다가온 섭리, 무심코 지나쳤고 몇십 년 동안 묵혀 있던 파편들이 진리로 연결되었다. 정말, 스승은 준비된 자에게만 나타나는 것이었다. 나의 깨어짐이 스승을 만나는 통로가 되었고, 그 통로에서 만난 모든 스승은 주님의 원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안간힘을 다해 답을 찾아보겠다는 간절한 질문이 내가 그토록 되지 않으려던 선생님의 위치에도 놓이게 했고, 유일한 스승이신 주님을 온 세상 안에서 발견하게 했다. 그렇게 오늘도 난 매일의 스승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글 _ 손서정 베아트릭스(삶을 살리는 평화 교육 연구소 소장)

발행일 2026-07-12 제3499호 22면
독자마당

[독자마당] 치유의 하느님

이십 년 전, 시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 만에 집에 왔는데, 긴장이 풀려서일까 머리가 아프고 가슴에 통증이 오면서 커다란 물체가 나를 덮쳤다. 그대로 어디론가 헤매고 있는데 누가 나를 부른다. “엄마 살았어. 깨어났어. 깨어났다고.” 3일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중환자실에서 의식 없이 사경을 헤매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났단다. 말로만 듣고 뉴스에서만 봤던 뇌졸중, 무서움과 두려움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한 달 만에 집으로 왔다. 병원에서는 편하게 울지 못했던 울음을 집에 와서 가슴 찢어지게 울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싫었다. 입은 비뚤어졌고 양쪽 팔은 감각이 없었으며 다리 또한 절름발이가 되었다. 걷는 것도 불편했지만 손을 쓸 수가 없으니 밥 먹을 때가 정말 싫었다. 남편과 딸이 내가 먹을 수 있게 그릇에 덜어 놓으면 겨우 왼손으로 집어서 먹었다. 일그러진 입 모양의 나를 슬프게 비추는 거울도 치워버렸다. 둘이서 나를 웃게 하려고 아기 다루듯 애쓰는 모습에, 끝까지 곁을 지켜줄 가족이라 감사했다. 한 달 전의 내 모습은 어디로 가고 다른 사람이 내게 들어와서 이렇듯 야생의 한 송이 들꽃으로 살게 하나. 한동안 두문불출하며 집 안에서만 생활했다. 그러던 중 성당에서 다음 주부터 개강하는 성경통독에 나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하고 싶었지만 발음이 부정확해 자신이 없었다. 며칠을 생각하고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 남들처럼 성경을 또박또박 읽지는 못하겠지만 한 자라도 입에서 내뱉게 해 주세요.’ 4주 차까지는 한 글자도 뱉지 못하고 눈으로 읽고 마음속으로 말씀을 되새겼다.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날, 지도하는 자매가 “오늘부터는 모니카도 통독을 해볼게요. 모두 신경 써 주세요”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나서 울었다.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사랑으로 격려해 주던 자매들이 고마웠다. 주님 말씀을 읽다 보니 일 년이 지났고 우리는 성경을 완독했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멈추지 않던 그날 신부님께서 완독 수료증을 주시며 “모니카 자매는 통독을 다시 한번 해서 이번에는 자신 있게 주님 말씀을 또렷하게 읽으세요”라고 하셨다. 그렇게 성경통독을 다시 시작했다. 어눌했던 말은 조금씩 안정을 찾았지만, 팔은 여전히 감각이 없었다. 새벽이면 매일 성체조배를 갔다. 성체조배실에 들어서면 눈물부터 나왔다. ‘손이 있어도 밥도 스스로 못 먹고 사는데 이런 제 모습을 언제까지 보고만 계실 건가요. 주님, 이런 모습으로 살아온 날이 십 년이 됐어요. 성경필사도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어요.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하나요.’ 성경통독 과정을 끝낸 어느 날, 성경필사 노트를 구입했다.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기도한 뒤 연필을 잡으려는데 무딘 손가락은 거부했다. 첫날에 몇 시간을 노력했지만 결국 안 됐다. 그 뒤로 매일 몇 시간씩 무딘 손으로 연필을 잡아보려 울면서 주님께 매달렸다. 무딘 손으로 성경필사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나 자신도 믿기 어려운 성경 완필을 해냈다. 15권의 성경 노트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내 몸을 살린 것은 의료진이었지만, 내 마음의 고통과 아픔은 나를 사랑하시는 영원한 치유의 하느님께서 낫게 하셨다고 믿는다. 긴 세월 속에서 분명 잃은 것도 있지만, 나는 오늘도 우리 주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살아있음에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살아간다. 아멘. 글_ 손명숙 모니카(인천교구 구월동본당) ※ 독자마당은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따뜻한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일상 속 은총의 순간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미담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 (A4 ⅔장 이내) 보내실 곳 서울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2층 이메일 jebo@catimes.kr

발행일 2026-07-12 제3499호 22면
현장에서

바벨탑

“물리학, 화학이 우리 산업과 생활을 완전히 바꾼 것처럼, 생명과학이 여러분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7월 4일 열린 WYD 수퍼클래스에서 구본경 박사는 생명과학이 바꿔 놓을 세상의 모습을 과학자의 눈으로 그렸다. 예전에는 10년이 넘게 걸리던 인간 DNA 전체 분석은 이제 하루면 가능하다고 한다. 최근 유전자 편집 기술은 염기 단위 조작까지도 넘보고 있고, 얼마 전에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인공 세포’가 공개되기도 했다. 생명을 마치 ‘데이터’처럼 가장 작은 단위까지 뜯어 분석한 인류는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시 조립하려 하고 있다. 생명과학 발달은 질병 치료에 큰 희망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어쩐지 희망보다는 ‘바벨탑’처럼 느껴진다. 레오 14세 교황은 회칙 「고귀한 인류」에서 “‘바벨 증후군’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벨 증후군이란 이윤의 우상숭배, 획일화, 그리고 인격(인간)의 신비까지도 ‘데이터’로 번역할 수 있다는 허상이다. 물론 생명과학 기술 자체는 악이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도 아니다. 그 기술을 고안한 것도, 사용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선이 될 수 있을까? 같은 날 열린 ‘청년들의 성·생명·사랑 이야기’ 취재에서 그 힌트를 얻은 듯했다. 참가자들은 교육에서 “나를 왜 여성으로 창조하셨는가” 하는 물음을 통해 받은 감동을 표현했다. 생명 창조의 이유에 사랑이 빠질 수 없다. 생명의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명과 사랑을 떼어 놓을 때 선에서 멀어져 바벨탑을 쌓게 된다. 생명과학의 발전이 이웃 사랑과 하느님 사랑의 길을 향하도록 우리의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하다.

발행일 2026-07-12 제3499호 23면
방주의 창

서울 마포구 주민들의 소각장 반대 다시 보기

2021년 환경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고시한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에 따르면, 2026년부터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생활폐기물은 직매립이 금지된다. 즉, 소각재만 매립하는 방식으로 변경되는데, 이는 수도권 매립지 공간이 부족한 까닭이다. 폐기물을 소각 후 매립하면, 배출량도 100분의 1 규모로 줄어든다. 이에 따라 수도권 지자체에는 올해부터 광역소각장을 설치·운영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하지만 주민들이 소각장을 기피 시설로 여기는 경향 때문에 부지 선정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도심 한복판에 지어진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이다. 1987년 화재 이후 1992년에 새로 세워진 곳으로, 환경 예술가 훈데르트바서가 디자인했다. 쓰레기 소각장의 개념을 뛰어넘은 독특한 외관을 지니고 있어 관광객들이 붐빈다. 유해 물질을 굴뚝으로 내보내기 전, 특수 개발한 필터에 의해 모두 걸러지고 수증기만 약간 배출된다. 또한 소각 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하여 인근 6만 가구에 난방도 공급하고 있다. 빈에서 쓰레기를 묻을 땅이 부족해지자 관계 부처는 소각 후 매립하는 것만이 대안임을 결정하고 주민들을 설득하여 이러한 결과를 이뤄낸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아마게르 바케 쓰레기 소각장도 창의적인 대안이 된 곳이다. 여왕이 사는 궁전도 소각장에서 불과 2㎞ 거리에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에서 신규 소각장을 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사례가 나타났다. 2022년 8월 서울시가 마포구 상암동에 앞서 말한 외국의 모델들을 참고하여 광역소각장을 짓겠다고 발표하였다. 한동안 마포구 아파트들에 ‘소각장 결사반대’ 현수막이 펄럭였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늘 일어나는 님비현상(Nimby, Not in my back yard)이려니 했었다. 수도권매립지를 끌어안고 사는 인천 사람 쪽에서 보면 ‘서울 쓰레기를 인천에 버리는 것 결사반대’라는 현수막을 내걸 것 같았다. 그러나 마포구 주민들은 단순히 님비를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의 내용을 분석하고 철저한 분리배출을 유도하면 소각할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음을 데이터로 증명하였고, 기존 소각장의 현대화와 효율적 이용이라는 대안을 동시에 제시하였다. 이러한 해법에 결국 법원도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4년간의 법적 다툼 끝에 올해 3월 마침내 신규 쓰레기 소각장 건설 계획이 백지화되었다. 현명한 주민들의 승리로 보인다. 박강수 전 마포구청장의 각오는 한층 더 희망적이다. “발생지 처리 원칙에 기반한 폐기물 감량과 재활용 극대화 정책이 서울시 전역으로 확산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이제 서울시는 행정에서의 섬세한 정책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당연히 마포구 주민들은 협조에 앞장설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 대란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6월 14일자 방주의 창에 소개했던 ‘자원순환가게’와 같은 제도를 서울시가 서둘러 도입하고 마을마다 거점을 마련한다면, 버리는 문화에서 자원순환 문화를 선도하는 이상적인 사례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따르면, “버리는 문화는 물건을 쉽게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소외된 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회칙 「찬미받으소서」 22항) 아울러 생산과 소비 과정 끝에 나오는 쓰레기와 부산물의 처리·재사용 능력을 개발하지 못한 우리 산업 체계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된다. 현재와 미래 세대들을 위하여 재생 불가능한 자원 사용의 최소화, 소비 절제, 개발 효율의 극대화, 재사용·재활용 등을 논의하는 것이, 지구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버리는 문화에 맞서는 한 가지 방법임이 더 깊은 영성으로의 초대로 느껴진다. 글 _ 문점숙 마리루치아 수녀(노틀담 수녀회,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발행일 2026-07-12 제3499호 23면
그분이 계셨다

이제 저는 조금만 돌봐주세요

“신입 요원을요? 절대 안 됩니다.” 아프가니스탄 전후 복구 본부장에게 단호한 답장이 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입사 몇 달 차, 현장 경험 전혀 없는 햇병아리에게 그런 중차대한 현장 파견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월드비전 한국은 나를 보내야 했다. 한국 정부의 첫 긴급구호 자금이 투입되는 곳이고 여행가에서 긴급구호 팀장으로 변신한 내 첫 파견에 언론의 관심도 커서, 현장을 알리고 국민적 모금을 이끌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48시간 이내에 꾸려지는 선발대에 반드시 합류해야 한다. “한비야 팀장을 위해 집중기도 부탁합니다.” 거절 메일을 받자마자 월드비전 회장은 전 직원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이어 이례적으로 국제 월드비전 총재에게 직접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재검토를 부탁했다. 나 역시, 개신교 신자가 대부분인 월드비전에서 우려와 반발에도 가톨릭 신자인 나를 발탁한 회장님의 선택이 옳았음을 이번 파견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솔직히 두려웠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새내기 소방관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심정이었다. 급하면 기도밖에 없다던가? 파견 논의가 오가던 며칠간 내 평생 가장 뜨겁게 기도했다. 시간만 나면 화살기도를 쏘아 올렸다. “하느님, 저를 보내주세요. 꼭이요.” 밤이면 고상 앞에 촛불을 켜고 무릎 꿇고는 떼쓰듯 기도하는 ‘떼쟁이 기도’를 드렸다. “보내만 주세요. 젖 먹던 힘까지 다하겠습니다.” 가까운 분들에게 부지런히 기도 부탁도 했다. 이웃 교우에게도 알렸더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5살 지영이가 뜻밖의 말을 했다. “저도 하느님께 기도할게요. 이제 저는 조금만 돌봐주시고,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을 많이 돌봐주세요.” 앗살라무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 2002년 2월, 마침내 아프가니스탄 땅을 밟았다. 놀랍게도 파견지는 난민촌 여자아이가 빵을 건넸던 헤라트였다. 약식 안전교육 후 식량 지원팀에 배치되어 처음 찾은 산악 마을은 참혹했다. 전쟁과 가뭄으로 7년째 농사를 짓지 못해 주민들은 풀로 연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즉각 2000가구에 식량을 배분하는 한편 극심한 영양실조에 걸린 20여 명의 아이들을 데려와 두 시간마다 치료용 죽을 먹였다. 2주쯤 지나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아이들 얼굴에 생기가 돌면서 눈이 마주치면 웃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살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먹은 죽을 번번이 토하는 압둘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헤라트 본부로 돌아가는 날 아침, 압둘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바르르 떠는 손은 ‘제발 우리 아이를 살려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게 그럴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출발 직전, 압둘을 안고 마지막 죽을 떠먹이며 말했다. “압둘, 넌 살 수 있어. 아니, 꼭 살아야 해.” 그러자 아이는 내 엄지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더니 작은 앞니로 힘껏 깨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 이렇게 힘세요. 꼭 살아날게요”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 하느님은 옆집 꼬마 천사의 기도를 기억하고 계셨다. “저는 조금만 돌봐주시고, 아프간 아이들을 많이 돌봐주세요!” 글 _ 한비야 비아(국제구호전문가, 작가)

발행일 2026-07-12 제3499호 22면
사설

베네수엘라 지진 피해 복구에 기도와 관심을

베네수엘라 강진으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잇따른 강진과 여진으로 약 3000여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국제구조위원회에 따르면 실종자 수는 최대 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수십 채의 건물이 종잇장처럼 무너져 내린 모습은 이번 지진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로 참담한 비극 앞에서 국제사회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교황청 애덕봉사부를 통해 긴급 구호금 10만 유로를 전달하며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베네수엘라와 연대의 뜻을 밝혔다. 한국교회 역시 긴급 지원에 나섰다. 한국 천주교 공식 해외원조 기구인 (재)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은 미화 10만 달러를 긴급 구호 기금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특별모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도 긴급 구호 기금으로 미화 5만 달러를 지원했다. 기금은 베네수엘라 카리타스를 통해 대피소 운영과 식수·식량, 의약품과 생필품 지원 등 현지 이재민 긴급 구호 사업에 사용된다. 우리는 거대한 자연재해를 겪을 때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들이 얼마나 미약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류가 위대한 것은 재난에 굴복하지 않고 서로 연대하며 다시 일어설 용기와 희망을 함께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재난 앞에서 인류는 정치적 이해관계나 분쟁 등을 떠나 서로 돕고 마음을 모아야 한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은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을 나누는 데 적극 앞장서야 한다. 베네수엘라 지진 피해 복구에 기도와 관심을 모으자.

발행일 2026-07-12 제3499호 23면
사설

신천지 대응, 온 교회가 적극 나서야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에 빠져드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최근 열린 한국천주교유사종교대책위원회(대책위) 세미나 내용과 본지가 취재한 피해 가정 사례를 종합하면, 신천지는 치밀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청년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최근에는 포교 방식도 위장 접근을 넘어 유튜브와 SNS, 상담, 문화 활동, 중고거래 등 일상 전반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신천지의 포섭으로 가정이 흔들리고 있지만, 교회는 아직 이들에게 충분한 사목적 지원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 가정은 먼저 본당을 찾지만, 본당 차원에서 이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교회는 이미 대책위를 중심으로 대응 매뉴얼과 치유 프로그램, 강사 양성 등을 논의해 왔다. 하지만 구체적인 대응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신천지는 청년들의 외로움과 불안, 관계의 결핍을 파고든다. 부모가 다그칠수록 자녀는 더 마음을 닫고, 가족은 죄책감과 분노 속에 고립된다. 신천지에 빠진 청년을 비난하거나 그 책임을 가족에게 돌리는 태도는 상처를 키울 뿐이다. 교회가 이들에게 “알아서 조심하라”고 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피해자와 가족을 감싸안기 위해서는 전 교회 차원의 전문 상담 체계가 필요하다. 각 교구에 유사종교 상담 담당자를 두고, 상담사를 양성하며, 피해 가족이 즉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본당 사제들에게도 기본 대응 지침과 연계 체계를 제공해야 한다. 청년 사목 역시 교리 교육에 머물지 않고 경청과 동행의 공동체로 나가야 한다.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참된 위로와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신천지를 막는 가장 근본적인 대응일 것이다.

발행일 2026-07-12 제3499호 23면
사설

핵발전 확대보다 생명과 공동선이 먼저다

한국수력원자력이 경북 영덕과 부산 기장을 신규 핵발전소와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 후보 부지로 선정했다. 그러나 이 결정이 주민들의 충분한 공론과 동의를 거쳐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역 공동체의 삶과 미래 세대의 안전이 걸린 사안임에도, 논의는 여전히 중앙의 필요와 산업 논리에 기울어 있다. 정부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의 전력 수요 증가를 핵발전 확대의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새 핵발전소가 실제로 가동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장의 전력 수요 증가와 신규 핵발전소 건설은 시간표부터 맞지 않는다. 전기를 많이 쓰는 곳은 수도권인데, 위험과 부담은 다시 지역이 떠안게 된다는 점은 또다른 갈등을 낳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핵폐기물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수만 년 동안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폐기물을 어디에, 어떻게, 누구의 책임으로 맡길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성과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SMR까지 서두르는 것은 미래 세대에 부담을 넘기는 일이다. 교회가 핵발전소 건설에 우려를 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방사성 폐기물을 포함한 폐기물 문제를 지적하고, 공동선은 미래 세대에게까지 확장되며 세대 간 연대는 정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창조 세계를 돌보라는 교회의 요청은 에너지 정책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전이 아니다. 생명과 공동선,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우선한 신중한 에너지 정책이다. 정부는 부지 선정을 재고하고, 숙의와 참여를 바탕으로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다시 세워야 한다.

발행일 2026-07-05 제3498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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