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노드 제2회기에 거는 기대와 희망

교황청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가 발표한 제2회기 의안집은 우리에게 시노드 교회 건설을 향한 희망을 던져준다. 10월 2~27일 로마에서 열리는 제2회기는 2021년부터 시작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여정의 절정이자 마무리 단계다. 이 의안집을 바탕으로 하는 제2회기의 논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후속 문헌들에 담겨 시노드 교회 건설을 위한 실천 지침이 될 것이다. 제2회기 의안집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실망감을 표시한다.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됐던 뜨거운 주제들에 대해서 제2회기 논의의 주제로 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부제, 기혼 사제, 성 소수자, 가정과 생명 윤리 등은 이번 회의의 공식 의제에서 제외됐고 일부에서는 좀 더 가시적이고 선명한 결정들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실망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안집은 시노드 교회 건설을 위한 거시적일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교회 쇄신과 개혁의 요체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의안집은 교회 안 여성의 역할에 대해 인식과 실천의 전면적인 전환을 제기한다. 이는 평신도 직무 강화의 맥락 안에서 추구된다. 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점검하고 성령 안에서 이뤄지는 공동 식별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직무자들의 투명성과 책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구조와 제도를 제안한다. 시노드의 열매가 가시적이지 않을 때 시노드 교회는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수많은 논의가 구체적인 실천의 구조와 제도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는 시노드 여정에 모든 신자들이 함께해야 한다.

농민은 우리 형제들이다

한국교회는 주교회의 1995년 추계 정기총회의 결정에 따라 매년 7월 셋째 주일을 농민 주일로 지내고 있다. 이날 교회와 모든 신자들은 농민들의 노력과 수고를 기억하고 모두가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올해로 제29회를 맞는 농민 주일은 우리가 생명을 살리는 농업을 위해 헌신하는 농민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배워나가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산업화되어가는 농업의 문제를 인식하고 지구와 모든 피조물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도시와 농촌이 함께 노력하도록 이끄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소명을 부여받은 농민들의 삶이 고통스러운 처지로 떨어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규모 기업농의 상업적 행태는 농촌 공동체를 해체했고, 온갖 오염과 해로운 화학 약품으로 생산량만을 늘리는 농사는 우리 모두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고 있다. 결국 농민과 농업의 문제는 단지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교회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 등을 통해서 우리 농민들의 어려움에 동참하고 생명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전히 농민들의 삶은 척박하고 생명농업의 길은 외롭고 고단하다. 농업과 농촌 문제는 이제 농민들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도시민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우리농촌살리기에 관심을 두고 직접적인 참여와 실천의 노력을 보태야 할 때다. 건강한 먹거리 생산을 위한 소비자 운동에 참여하고, 스스로 생태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적극 노력할 때 농촌과 농민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방주의 창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

교회가 요한 세례자 성인의 탄생을 축하하던 지난 6월 24일, 경기도 화성시 한 공장에서는 참담한 죽음이 발생했다. 일차 리튬 전지 업체인 아리셀에서 이주노동자 18명을 포함 23명이 사망하는 중대재해 화재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정직원이 아닌 인력 파견 업체 소속이었기에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위험한 유해물질을 다루는 공장이고 이번 참사 며칠 전에도 화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안전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결국, 중국인 17명, 한국인 5명, 라오스인 1명이 화마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화재 사고 열흘 뒤인 지난 7월 2일 오후 7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행동이 열렸다. 추모행동 소식을 듣고 교구 이주민, 난민 활동가들과 함께 그 행사에 함께하기로 했다. 행사 장소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현수막 속 글귀였다.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는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는 그말이 마음에 박혔다. 그들 모두 좀 더 나은 여건에서 가족들과 함께 할 날만을 위해 낯선 이곳에 온 것인데, 누군가의 무성의와 부주의와 안일함 때문에 이제는 영영 가족과 함께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경위나 책임 소재를 밝히는 일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참사 전에 일어났던 화재 때 제대로 된 안전 대책만 마련했다면, 아니, 노동자들에게 비상 탈출구 위치 및 탈출 방법 교육만 제대로 했더라면 스무 명이 넘는 귀한 생명이 사라지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뒤늦은 후회로 마음을 채울 뿐이었다. 이런 유의 비극이 처음은 아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김군 사망사고(2016년),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 사망사고(2018년), 평택항 이선호씨 사망사고(2021년) 등 몇 년마다 비극이 반복돼 일어나고 있다. 특히 김용균씨 사고를 계기로, 과도한 하청 및 재하청으로 제대로 된 교육이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성하는 분위기가 생겨나면서 ‘죽음의 외주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고, 결국 ‘김용균 법’으로도 불리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법을 적용한 첫 판결 결과가 집행유예로 나오면서 실효성 논란이 일어나기도 하고 현 정권에서는 이 법이 기업의 사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개정할 뜻을 비추기도 하는 등,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번 참사는 이제 죽음이 외주화를 넘어 ‘이주화’되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중국 국적 희생자 17명 중 대다수는 흔히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동포 여성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재외동포 신분이기에 엄밀히 말해 이주민이라고 부를 수 없지만, 대한민국이 아닌 국가 출신으로 대한민국 국적자들이 기피하는 업종에 외주 인력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상황이 타 국적의 이주민들 상황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외려 언어 장벽이 없기 때문에 소위 ‘가성비 좋은 이주노동자’로 취급되고 있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총 812명이며, 그중 이주노동자는 85명으로 10.4%에 달했다. 올해 1분기 기준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자 비율은 11.2%(213명 중 24명)로 벌써 지난해 비율을 넘어섰다. 지난해 이주노동자 수가 총 92만3000명으로 전체 취업자 수(2841만6000명)의 3.2%를 넘겨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통계청의 발표를 고려할 때, 이런 유의 참사가 반복될 경우 희생되는 이주민의 수는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는 그들의 외침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2024-07-21
열린마당

[내 눈의 들보] 젊은이들이 없는 텅 빈 성당을 바라보며 - 젊은이들에게

젊은이들이 없는 텅 빈 성당을 바라볼 때면 여러 상념이 들곤 한다. 젊은이들을 성당으로 부르거나, 이탈하지 않게 하려는 많은 사목적 배려와 노력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군종교구에서 훈련병, 특기병, 기간병, 간부와 군인 가족들을 대상으로 15년째 예비신자 교리교육 또는 교우 재교육을 해 오면서 느낀 소회를 바탕으로 몇 가지를 제언한다. 혹자는 요즘 청년들을 ‘파편화 개인주의, 실속과 향락만 찾는 세대’로 지칭하며 그들에게 ‘탈종교 현상’이 심각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군종교구 한밭성당 가까이에는 개신교 교회, 불교 법당이 나란히 붙어 있다. 훈련병의 경우, 주일 종교 시간에 개신교 교회에는 120명 넘게, 법당에는 80여 명이, 성당에는 20여 명이 참석한다. 15년 전, 필자가 군선교사 활동을 시작할 때와 비교해 보면, 개신교와 불교는 참석 인원에 큰 차이가 없는 반면, 성당 미사 참례 인원은 크게 감소했다. 왜 그럴까? 요즘 젊은이들은 기회균등과 불평등에 대한 사회질서의 변혁, 기후위기와 지속 가능한 미래 공동체, 공동선에도 관심이 많다. 엄연히 종교심을 잃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성당에만 적게 나오는 것일까? 드물게 미사의 엄숙함과 경건함을 느껴 스스로 세례를 받겠다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많은 청년들은 미사가 지루하고 불편하며 종교 의식행사일 뿐, 자신들의 삶과 무관하다고 느낀다. 미사 전례에서 함께 울고, 웃고, 기뻐하며 주님께 구원받는 체험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부활 신앙의 핵심은 날마다 모든 것이 ‘새로워짐’이다.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 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 저는 중심이 되려고 노심초사하다가 집착과 절차의 거미줄에 사로잡히고 마는 교회를 원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우리의 양심을 괴롭히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수많은 우리 형제자매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맺는 친교에서 위로와 빛을 받지 못하고 힘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복음의 기쁨」 49항) 프란치스코 교황이 10년 전 우리에게 던진 ‘새 포도주’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기복적 자기중심, 자기만족을 위한 카페테리아 신앙, 주일이면 의무적으로 미사에 참례하는 시계추 신앙, 즉 ‘헌 부대’에 머물고 있다. ‘해오던 대로’의 신앙에서 벗어나 충만한 은총을 체험하지 못하고, 교회가 쇠락을 반전시켜 역동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응당, 새 포도주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적잖은 청년들은 자신들이 항상 교회 뒷전에서 찬밥 신세이고, 교회가 자신들의 문제에 귀 기울여 들으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등을 돌린다고 말한다. 가르치고 요구하기보다 배우고 수용하는 자세, 길을 내어주고, 함께할 공간을 만드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청년들에게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제언을 하지는 못하는가? 자신들의 공간을 요구하지는 못하는가? 해 보기는 한 것인가? 해 보고 안 되면, 그때 떠나도 되지 않을까? 교회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스스로 찾아가는 젊은이들이 보고 싶다. 젊은이 여러분! 조금이라도 갖춘 뒤에 나눔도, 배려도, 희생도 하겠다고 생각하면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3%의 소금이 바닷물 전체를 짜게 하듯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교회 안에서 소금이 되라! 글 _ 백인기(요한 사도) 군선교사

2024-07-21
현장에서

보이지 않아도 그 별은 있네

7월 10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맞춤형 돌봄 지원방안’ 제도개선 공개토론회. 많은 발달장애인 가족·보호자를 자살 위기까지 내몰 만큼 막중한 ‘독박 돌봄’ 앞에 교회·사회가 머리를 맞댄 토론회에서 한 참가자의 발표가 깊은 울림을 줬다. “장애 때문에 제약이 있을지는 몰라도,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들도 해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13살에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은 기타리스트 김지희씨는 2013년 평창동계 스페셜 올림픽 세계대회 폐막식에서 기타 독주를 펼쳤다. 또 대전특수교육원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강사로서 2018년부터 매해 여러 학교에서 스토리텔링 콘서트를 열며 장애인 학생들에게 희망을 북돋아 주고 있다. 소수 수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발달장애 예술인 전문 에이전시 ‘디스에이블드’, 한국발달장애인문화예술협회 ‘아트위캔’ 발달장애 작가들도 여러 브랜드·기관과 협업해 예술혼을 펼치고 있다. 이렇듯 그들의 특별함을 배려한 교육과 보살핌이 이뤄지자 발달장애인들은 가능성을 펼쳐낸다. 지켜보는 모두를 가슴 뛰게 하는 감동…. 사실 장애라는 꺼풀만 벗기면 누구나 ‘특별하다’는 걸 알아서가 아닐까. 좁게는 피부색, 외모가 남다르거나 감수성이 유별나거나 등, 사회가 개성을 헤아려만 주면 누구나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하느님은 누구나를 있는 그대로 완전하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울려 퍼진 ‘내 마음 속 반짝이는’이라는 노래에서, “보이지 않아도 그 별은 있네”라는 가사에서 눈물이 났었다. 발달장애인을 비롯해 ‘특별하게’ 태어난 우리 모두가 타고난 텃밭에서 별보다도 반짝이는 꽃을 피우게 배려하는 사회가 되길 바랄 따름이다.

2024-07-21
사설

시노드 제2회기에 거는 기대와 희망

교황청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가 발표한 제2회기 의안집은 우리에게 시노드 교회 건설을 향한 희망을 던져준다. 10월 2~27일 로마에서 열리는 제2회기는 2021년부터 시작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여정의 절정이자 마무리 단계다. 이 의안집을 바탕으로 하는 제2회기의 논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후속 문헌들에 담겨 시노드 교회 건설을 위한 실천 지침이 될 것이다. 제2회기 의안집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실망감을 표시한다.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됐던 뜨거운 주제들에 대해서 제2회기 논의의 주제로 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부제, 기혼 사제, 성 소수자, 가정과 생명 윤리 등은 이번 회의의 공식 의제에서 제외됐고 일부에서는 좀 더 가시적이고 선명한 결정들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실망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안집은 시노드 교회 건설을 위한 거시적일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교회 쇄신과 개혁의 요체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의안집은 교회 안 여성의 역할에 대해 인식과 실천의 전면적인 전환을 제기한다. 이는 평신도 직무 강화의 맥락 안에서 추구된다. 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점검하고 성령 안에서 이뤄지는 공동 식별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직무자들의 투명성과 책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구조와 제도를 제안한다. 시노드의 열매가 가시적이지 않을 때 시노드 교회는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수많은 논의가 구체적인 실천의 구조와 제도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는 시노드 여정에 모든 신자들이 함께해야 한다.

2024-07-21
사설

농민은 우리 형제들이다

한국교회는 주교회의 1995년 추계 정기총회의 결정에 따라 매년 7월 셋째 주일을 농민 주일로 지내고 있다. 이날 교회와 모든 신자들은 농민들의 노력과 수고를 기억하고 모두가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올해로 제29회를 맞는 농민 주일은 우리가 생명을 살리는 농업을 위해 헌신하는 농민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배워나가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산업화되어가는 농업의 문제를 인식하고 지구와 모든 피조물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도시와 농촌이 함께 노력하도록 이끄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소명을 부여받은 농민들의 삶이 고통스러운 처지로 떨어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규모 기업농의 상업적 행태는 농촌 공동체를 해체했고, 온갖 오염과 해로운 화학 약품으로 생산량만을 늘리는 농사는 우리 모두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고 있다. 결국 농민과 농업의 문제는 단지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교회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 등을 통해서 우리 농민들의 어려움에 동참하고 생명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전히 농민들의 삶은 척박하고 생명농업의 길은 외롭고 고단하다. 농업과 농촌 문제는 이제 농민들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도시민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우리농촌살리기에 관심을 두고 직접적인 참여와 실천의 노력을 보태야 할 때다. 건강한 먹거리 생산을 위한 소비자 운동에 참여하고, 스스로 생태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적극 노력할 때 농촌과 농민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2024-07-21
일요한담

부르심과 응답

나에게 초등부주일학교 여름 캠프는 20대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 중 하나이다. 강의가 끝나면 대부분의 친구들이 학회실이나 동아리방에 남아 수다를 떨거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보냈지만 나는 좀 달랐다. “인혜야, 오늘 강의 끝나고 술 한잔하러 갈까?” “미안, 나 오늘 성당 교사 회의라서 가야 해.” “그럼 내일은? 단체 미팅하는데 낄래?” “미안해, 나 내일은 레크리에이션 교육받으러 가야 해.” 특히 여름 캠프와 주님 성탄 대축일, 은총시장 등 초등부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는 준비를 위해 매일 성당으로 출근하기 일쑤였다. 간혹 어떤 친구는 나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진지하게 이런 질문을 하기도 했다. “너 혹시 수녀님 되고 싶은 마음 있어?” 다양한 의혹 속에서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학 생활의 절반을 성당에서 바쁘게 보냈다. 그땐 성당에서의 활동이 마냥 신나게 느껴졌다. 아이들과 미사를 드리는 것도 즐겁고 미사 후 교리를 가르치는 것도 뿌듯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재미나게 신앙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도 좋았다. 아이들이 연기자인 선생님을 반가워하고, 학부모들이 나를 믿고 캠프를 보내주거나 모금에 참여해 주실 때의 보람은 연기자 활동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큰 보람으로 다가왔다. 당시 나의 교사 활동은 진심으로 적극적이었다. 평교사로 시작해 부교감, 교감까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교사 활동을 했고 연기자로 가장 이름을 알린 ‘쾌걸춘향’ 드라마를 촬영하면서도 본당 대표로 주님 성탄 대축일 행사 교육을 받으러 다닐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나에게 신앙심이 대단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에게 그 시절은 빈약했던 내 신앙심이 단단하게 뿌리내리던 시기로 기억된다. 성경에 익숙하지 않았던 내가 말씀에 눈을 뜨고 기도하는 방법도 터득했기 때문이다. 토요일 초등부 미사가 끝나고 뒷정리를 마치면 나는 늘 맨 마지막으로 성당을 나왔다. 불 꺼진 성당 맨 앞줄에 홀로 앉아 기도하면 그 시간만큼은 솔직한 내 안의 모습으로 하느님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한 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쭉 늘어놓다 보면 억울하고 불만투성이였던 감정들이 사라지고 감사한 한 주로 마무리되곤 했다. 불투명한 내 미래 또한 더 이상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주어진 기회마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하느님께서 진정한 길로 인도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교사를 하면서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내게 주신 여러 탈렌트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고민하게 되었고 연기자와 교수라는 두 가지 직업을 가진, 남들과는 다른 길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동안 봉사라고 여겨졌던 일들이 사실은 하느님의 남다른 ‘자녀 교육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초등부 교사 활동을 통해서 나의 말랑말랑한 신앙심을 단단하게 키우시고 나약하고 위태로웠던 마음을 단련시키는 기도 방법도 스스로 터득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직업과 잘할 수 있는 직업을 직접 찾게 해주시기도 했다. 여유 있을 때 하는 봉사가 아닌, 나를 필요로 하실 때 적극적으로 응한 덕분에 지금의 내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날이다. 글 _ 이인혜 데레사(배우)

2024-07-21
사설

‘하느님의 종’ 김수환 추기경

교황청 시성부가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시복 추진에 ‘장애 없음’(Nihil Obstat)을 승인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장애 없음’ 승인은 교황청 시성부가 검토한 결과 지역교회가 시복 대상자를 시복 추진하는 데 아무런 이의가 없다는 선언이다. 이에 따라 김수환 추기경은 ‘하느님의 종’으로 불리게 된다. ‘장애 없음’ 승인으로 하느님의 종 김수환 추기경의 시복 추진은 더욱 활기를 띨 전망이다. 순교자가 아닌 김수환 추기경이 시복되기 위해서는 그의 영웅적 성덕을 인정받아 ‘가경자’가 돼야 한다. 서울대교구는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와 영웅적 덕행, 성덕의 명성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시복 추진은 교회법적 절차를 따르는 것이지만, 교회 전문가들은 평신도들의 시복 운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시복시성이 그 대상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현세에 있는 신자들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황청 시성부도 ‘시성절차법’이 정한 절차의 이행 여부뿐만 아니라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교회 공동체의 열의도 시복시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에서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을 실천하고 널리 확산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고 사랑으로 용서하며 가장 가난한 이웃을 돌봤던 김수환 추기경. 그가 한 일은 교회의 사명이자 우리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나서야 할 일이었다. 우리는 김수환 추기경이 보여준 성덕과 영성을 우리의 구체적인 삶으로 보여주고 끊임없는 기도로 그의 시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24-07-14
일요한담

오늘도 하느님 감사합니다

“넌 연기자로 안 돼. 다른 일을 선택해 봐.” 11살에 MBC 어린이 합창단을 시작으로 단역부터 차근차근 올라가 20살에 KBS 드라마 ‘학교3’의 주인공을 맡을 때까지 내가 꾸준하게 듣던 말이다. “예술가는 술도 마시고 놀아보기도 하는 경험이 많아야 하는데, 넌 너무 모범생 마인드야.” “네가 엄청 이쁜 얼굴도 아니잖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하느님 도와주세요’라고 외칠 뿐이었다. 나는 연기가 좋았다. 한없이 못나 보이는 실제 내 모습을 숨기고 또 다른 내 안의 모습을 연기로 당당히 표현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다들 내게 연기자는 안 된다고 하니 늘 속상하고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생각과 고민을 안고 꾸역꾸역 버티며 연기자 활동을 이어오던 어느 날, cpbc 라디오에서 연락이 왔다. “인혜씨,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낮 12시부터 1시까지 시간 어떠세요? 어려운 이웃의 사연을 소개하고 청취자분들께 기부받는 프로그램 진행을 부탁드리려고요.” 지금 내 마음도 힘든데 힘든 이웃을 도와주는 프로그램 진행자라니…. 너무도 거절하고 싶었다. 그런데 불현듯 내 마음속 외침이 생각났다. ‘하느님 도와주세요.’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했던 내 괴로운 마음을 달래주시려는 하느님의 사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아름다운 사랑 아름다운 나눔’은 토·일요일 이틀 꼬박 진행해도 총 기부액이 몇백만 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이 나에게는 부담이 없게 다가왔다. 덕분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주어지는 사연에 진심만을 담아 내 방식대로 프로그램 진행을 할 수 있었다. 제작진들은 연기자라는 나의 장점을 살려 사연자의 감정을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내레이션 파트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사연을 읽다 보면 때때로 목이 메이고 울먹거리는 소리가 그대로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기부액이 2배, 3배, 5배까지 크게 늘어난 것이다. 다들 그만하라고 했던 내 연기를 이 프로그램에서 유일하게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나는 하느님께서 내게 연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하신 이유가 여기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연기자로서 적합한 성격도, 뛰어난 외모도, 다양한 경험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하느님은 내게 타인의 상황과 감정을 더 많이 이해하고 잘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을 특별하게 내려주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보람과 감사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시작한 지도 벌써 6년이 흘렀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어려운 이웃들의 사연이 너무 기구하다 보니 진행하면서 우울해질 텐데 왜 임신해서도, 9개월된 갓난아기를 키우면서도 이 프로그램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는지 말이다. 가정폭력, 심각한 화상 환자, 미혼모. 기구한 이들의 삶의 이야기가 내게 전혀 우울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 말 한마디, 내 내레이션 한번이 이들에게 또 다른 희망의 날을 불러오게 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보이기 때문이다. 연기자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이제 더는 없다. 내 연기가 이렇게 좋은 일에 쓰일 수 있음에도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재능을 직업으로 주신 하느님께 오늘도 감사드린다. 글 _ 이인혜 데레사(배우)

202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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