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처가에 왔다!”
제주도 서귀포 정난주 마리아 묘지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 말했다. 황사영순교순례지 담당 민형기(안셀모) 신부다. 일행이 거들었다. “1801년에 헤어졌던 부부가 이백 년 만에 다시 만났네요.”
황사영(알렉시오)은 중국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밀서를 보내려다 발각돼 능지처참형을 당했고 아내 정난주와 아들 황경한은 제주의 관비로 유배당했다. 아들까지 관비로 살게 할 수 없었던 정난주는 추자도에 두 살배기 젖먹이 아들을 떼어놓는다. 37년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신앙의 모범을 보였고 ‘한양 할망’이라며 칭송을 받았던 정난주. 그래설까. 증거자 정난주의 묘는 일찍이 성지로 조성되었고 이름을 딴 순례길과 성당도 있다. 반면 순교자 황사영은 1980년에야 묘를 발견했으며 의정부교구가 성역화를 시작하는 단계다.
입구조차 찾기 힘든 황사영 묘와 다르게 정난주 묘는 공원처럼 잘 정비돼 있다. 진입로에 야자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커다란 십자가 너머로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모습은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성지에서 미사를 드린 후 모슬포성당까지 약 4km를 걸었다. 제주교구 순례길 중 고통의 길이라 불리는 ‘정난주길’의 일부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훈련장과 4·3 사건 때 주민을 가두었던 고구마 저장창고 등 아픈 역사를 간직한 장소도 만났다.
순교지를 순례하는 것은 고통의 발자취를 더듬는 여정이다. 가뜩이나 고달픈 인생인데 일부러 순교지를 찾아가 선조들의 고통과 희생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곳에 가면 희망의 뿌리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순교는 희망을 가장 설득력 있게 증언하는 사건이다.
정난주는 낯선 유배지에서 선행과 친절을 베풀며 신앙의 씨앗을 심었다. 지난한 삶을, 주님을 뵈러 가는 관문으로 알고 희망 속에 살았다. 그러자 신앙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제주에 복음화의 빛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200여 년이 지난 어느 봄날 그 빛을 되새기는 여정에도 하느님 사랑이 가득했다. 제주에서 만난 따뜻한 마음마다 우정과 환대가 빛나고 있던 것이다.
제주교구 평협 임원들에게, 방문객과 동행하는 이 시간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 보였다. 늘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지 않나,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안달하질 않나. 3일 여정이 끝나고 공항에서 헤어지는데, 꼭 친정 식구들과 이별하는 것처럼 서운했다. 9월에 의정부교구 황사영 순교순례지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 없다면 발걸음을 돌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금 삶이 고단하다 느껴질 때면 나는 친정과도 같은 제주를 떠올릴 테다. 교우들과의 만남과 순례지의 추억 안에서 기어이 희망을 건져 올릴 것이다. 그렇게 친정을 하나둘 늘려가는 것도 좋겠다. 제주에는 ‘한양할망’ 정난주가, 의정부에는 ‘신앙만이 세상을 구하는 약’이라 믿은 황사영이 있다. 그들을 만나러 길을 떠나자고 재촉하는 희망이 우리 안에 있다.
글 _ 정신후 블라시아(작가·의정부교구 파주 목동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