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제2대리구 청소년1국(국장 윤성민 그레고리오 7세 신부)은 지난 4월 28일 제2대리구 교육관에서 ‘주님께 바라라, 그분께서 너를 도와주신다’(잠언 20,22)를 주제로 주일마다 9주간 이어지는 교구 첫 청장년 신앙 아카데미 ‘바라봄’의 오리엔테이션을 열었다. ‘바라봄’은 ‘신앙 안에서 바르게 나(라)를 바라봄’의 준말이다. 이날은 몸풀기 퀴즈와 ‘바라봄’ 강의 소개, 생활성가 찬양팀의 찬양 그리고 주일미사로 이어졌다. 몸풀기 퀴즈에서는 청장년들을 위한 ‘추억 소환’ 퀴즈와 신앙 상식 퀴즈로 어색한 분위기를 풀었다. 특히 ‘추억 소환’ 퀴즈에서 80~90년대 출생한 청장년들이 알 법한 만화 캐릭터와 2000년대 초중반 나온 TV 광고를 맞히며 참가자들은 긴장을 풀고 점차 열기를 띠었다. 또 생활성가 찬양팀의 찬양 공연은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돼 청장년들이 공감할 만한 생활성가를 부르며 중간마다 노래 주제와 연관된 대화로 참가자들과 소통했다. 찬양팀은 잘 알려진 생활성가 미사곡은 물론이고 청장년들이 일상에서 겪을 만한 우여곡절을 신앙적으로 푼 노래도 선보였다. 생활성가크루 ‘열일곱이다’의 추준호(예레미야)씨가 보컬로 참여했다. 오리엔테이션은 참가자들과 찬양팀이 함께 주일미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제2대리구 청소년1국 국장 윤성민 신부는 강론에서 “교구에서 청년을 담당하고 처음 들은 말이 ‘30세에서 45세 정도의 청장년들은 본당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며 “일각에서는 이들을 본당 청년단체와 성인단체 사이에 ‘끼어버린’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구 차원에서 청장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렇게 첫 청장년 신앙 아카데미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본당에서 교사회 교감으로 활동하는 참가자 이지선(아가타·제2대리구 철산본당·33)씨는 “청년회에 나이가 많은 분들은 적응을 힘들어하는 게 사실”이라며 “본당에 청년 프로그램이 없어 신청했는데 첫날이라 분위기가 자칫 어색할 수도 있었지만 재밌게 잘 구성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바라봄’ 과정은 이날 오리엔테이션을 제외하고 ▲2·3주차: 신앙의 발견 ▲4·5주차: 삶의 의미의 발견 ▲6·8주차: 전례의 발견 ▲7주차: 초 공예 ▲9주차: 봉사의 발견 및 수료식·파견미사로 진행된다. 주제별로 성직자와 평신도·일반 전문가가 강의한다. 사전 모집은 끝났지만 청강 형식으로 추가신청이 가능하다.

주요뉴스

가족 간 대화·소통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가족 구성원들이 하느님 자녀로서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고 신앙 안에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돕는 피정을 마련됐다. 수원교구 조원솔대본당(주임 유해원 다니엘 신부)은 4월 27~28일 갓등이 피정의 집에서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루카 22, 32)를 주제로 가족피정을 실시했다. 이번 가족피정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점점 개인화되고 있는 가족 구성원들이 가정교회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마련한 피정이다. 특히 과열되고 있는 입시 교육, 가족의 소통을 방해하는 미디어 등에 관해 돌아보고 가족 구성원들이 올바르게 신앙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더품다’(대표 엄기홍 제랄도)와 본당 봉사자들이 주관한 피정에는 본당 내 초등부 자녀를 둔 24가족 총 80명이 참여했다. 특히 아빠 참가자들이 많이 참가하는 등 호응이 높았다. 이번 피정 중에는 참가 가족들이 심리검사를 통해 가족 구성원 각자의 심리를 살피고 각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왔다. 이어 가족 간의 관계를 점검하고, 의사소통을 증진하는 대화와 관계의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집단 놀이 프로그램, 심리극적 역할 놀이 프로그램, 포스트게임 등을 진행했다. 또 스마트폰, 미디어 등 관계를 방해하는 요소를 살피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 프로그램인 원예작업 프로그램을 통해 정서적 정화를 경험하고 단순 작업과 협업을 통해서 가족 간의 관계를 증진시키면서 피정 이후 가족 안에서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유해원 신부는 “진실로 만나고, 진심으로 나누고, 진정 받아들이고, 오롯이 다가가기 위해 자신으로부터 나가고, 참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피정을 마련했다”면서 “이번 피정이 자신을 내어주고, 용서하며, 인내심을 잃지 않고 상대방을 기다리고, 서로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피정 참가자 김민철(미카엘)씨는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하느님 사랑 등 이해되지 않았던 믿음에 대한 것에 대해서 조금은 더 생각하게 됐다”며 “피정 동안 막연하게 사랑한다고 했던 나의 말이 점점 진심이 되어 가는 과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부모님과 함께 피정에 참가한 윤정은(글라라·11)양은 “가족과 친구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좋은 경험을 했다”며 “기대하지 않았는데 행복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소감을 밝혔다.

‘말씀과 함께하는 아트 테라피’ 열어

교구 홍보국(국장 이철구 요셉 신부)과 성바오로딸수도회 수원분원(분원장 최태희 체칠리아 수녀)가 마련하는 ‘말씀과 함께하는 아트 테라피’가 4월 26일 교구청 지하 4회의실에서 열렸다. 말씀과 함께하는 아트 테라피는 미술활동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며 나 자신과 이웃을 만나 내면의 치유를 이루고, 나아가 그 힘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미술치료 기법인 ‘자유연상기법’을 성경 말씀과 접목해 미술치료에서 관상기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이끈다. 이 프로그램은 1단계로 8주간 ‘나 바라보기’를, 2단계로 7주간 ‘주님 바라보기’를 주제로 진행된다. 박향숙(파치스) 수녀가 진행한 이날 강의에는 10명의 수강생들이 참석했다. 수강생들은 박 수녀의 인도로 도구 없이 흰 종이와 손만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색연필로 나만의 씨앗을 표현하는 등의 활동을 하며 아트 테라피에 참여했다. 이번 1단계 아트 테라피는 앞으로 ▲희망 나무 심기 ▲어둠 속의 나 바라보기 ▲하느님 마음 알기 ▲색으로 나를 만나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고통 그 인간적인 것 ▲고통, 넌 누구? 등을 주제로 펼쳐질 예정이다. 박 수녀는 “아트 테라피에서는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그림에 의미를 담고 마음을 담아 스토리텔링을 하면서 나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깊숙한 내적 침묵으로 들어가 나를 발견하고 성령께 나를 맡기게 되는 8주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구에서 만난 한국교회사] 남양성모성지: 박해시기 성모신심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성지로 112. 단아하게 머리를 묶고 치맛자락을 끌어안은 아기예수와 함께 서있는 성모상이 순례자들을 맞는다. 남양에 성모발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성모님에 관한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양에 ‘성모성지’가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박해시기 순교자들이 지녔던 깊은 성모신심을 기억하고 본받기 위해서다. ■ 성모님을 본받으려던 신자들 한국교회의 성모신심은 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 교회 신자들은 서적을 통해 성모신심을 배우고 키워나갔다. 아직 조선에 선교사가 오지 않았던 시절인 1791년 신해박해 당시 경기 감영에서 하느님의 종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집을 수색했을 당시 「매괴경」이 발견됐다. 이미 초기 신자들은 성모님에 관한 교리뿐 아니라 묵주기도도 접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초기 교회 지도자였던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는 「주교요지」에서 성모님의 동정 잉태와 원죄 없이 잉태되심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는 정약종이 이끌었던 명도회원을 비롯해 그들에게 배운 초기 신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자 윤지충(바오로)과 복자 권상연(야고보)는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순교했고, 여러 순교자들이 죽음을 앞두고 성모님을 통해 기도했다. 한국교회에 처음으로 파견된 선교사인 복자 주문모(야고보) 신부는 명도회의 주보를 성모 마리아로 정하고, 신자들에게 성모신심을 가르쳤다. 초기 신자들 사이에 성모신심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복자 윤점혜(아가타)는 기도 중 성모님 위로 성령이 내려오는 모습의 환시를 보기도 했다. 또 주문모 신부는 동정부부를 맺어주고, 동정녀들의 모임을 축복하며 지도했는데, 이들은 특별히 성모님의 동정을 본받으려하는 의지를 보였다. 신자들은 성모님에 관한 다양한 신심서적을 읽고, 또 묵주기도에도 열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유박해 당시 신자들의 집안에서 압수된 물품 중에도 묵주, 성모님의 상본, 성모님에 관련된 다양한 서적들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프랑스 선교사들을 통한 성모신심 확산 성 앵베르 주교를 비롯한 프랑스 선교사들의 활동은 성모신심을 더욱 확산시켰다. 앵베르 주교는 특히 성모신심이 돈독했다. 그는 편지를 통해 조선 입국과정을 설명하면서 “우리의 착하신 예수님의 어머님의 축일인 12월 18일 밤, 사랑하올 동정녀의 보호 아래서 사고 없이 중국의 국경을 넘었다”면서 “우리는 원죄 없으신 마리아와 성스러운 천사들의 보호 아래 조선의 수도에 도착했다”고 전한다. 자신의 선교가 원죄 없으신 성모님의 도움으로 이뤄졌다고 여겼던 것이다. 앵베르 주교는 입국한지 1년 만인 1838년 12월 1일 조선교구의 주보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로 정하고 교황청에 허가를 요청했고,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1841년 이를 승인했다. 1846년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페레올 주교와 성 다블뤼 신부는 성모님의 도움 아래 활동하고자 수리치골에 ‘성모성심회’를 설립했다. 성모성심회는 1836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돼, 성모님을 공경하고 성모님의 전구로 하느님께 죄인들의 회개를 청하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신심단체였다. 성모성심회를 설립한 두 선교사는 곧바로 파리 본부에 편지를 보내 조선교회 성모성심회 회원들의 명단을 보냈다. 사실 이 단체는 이미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가 신학생 시절에 가입했던 단체다. 성모성심회 회원들은 ‘기적의 패’를 몸에 지니고 매일 성모송을 바치며,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기도를 바치는 활동을 이어 나갔다. 박해에도 불구하고 성모성심회의 활동은 적어도 병인박해가 발생한 1866년까지도 이어져 왔던 것으로 보인다. 1865년과 1866년 첨례표에는 성모성심회와 관련된 날이 표기돼 있을 뿐 아니라 성모성심회 회원들이 전대사를 얻을 수 있는 방법도 수록돼 있다. ■ 묵주기도를 바치다 박해시대 신자들은 성모님에 관한 교리를 공부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묵주기도를 바쳤다. 달레 신부는 「한국천주교회사」를 통해 다블뤼 주교가 교우촌 순방 때마다 “신자들을 매괴회와 성의회에 입회시키는 일을 한다”고 기록한다. 성모성심회가 설립되기 이전부터 조선의 신자들은 매괴회 등의 신심단체를 통해서 묵주기도를 바쳐온 것이다. 1850년대 후반 신자들 사이에서 묵주기도는 가장 대중적인 기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는 1857년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에 “작은 십자가와 성패 등을 보내주시되 묵주는 보내지 말라”며 “묵주는 조선 교우들도 아주 잘 만든다”고 전하고 묵주를 만들 때 사용하는 집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최양업 신부가 신자들에게 묵주 만드는 법을 가르친 것은 무엇보다 묵주기도를 가르치고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였다. 병인박해 당시 순교자들의 기록에서는 묵주기도에 관련된 일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성 최형(베드로)는 묵주를 만들어 보급하는데 앞장섰고, 1869년 죽산에서 순교한 유 베드로는 포졸들에게 체포되고 나서도 “묵주를 꺼내 목에 건 다음 십자고상을 앞에 모시고 기도를 드렸다”고 전해진다.

2024-05-05

양지 영성교육원, 다양한 피정으로 신자 초대

양지 영성교육원(원장 임익수 베드로 신부)이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 효소절식피정, 음악피정, 수지에니어그램, 예수마음기도피정 등 다양한 피정 프로그램으로 신자들을 초대하고 있다. 거룩한 독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며 말씀 안에서 매일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피정이다. 월 1회 오전 10시30분~오후 5시 진행되는 이 피정은 5월 25일, 6월 8일, 7월 13일 열린다. 피정비는 5만 원. 효소절식피정은 효소를 활용해 몸과 마음을 비우는 3일 과정의 피정이다. 매월 4째주 금~주일 진행된다. 피정비는 효소값 포함 27만 원. 음악피정은 떼제예식과 음악, 나눔을 통해 마음을 치유해나가는 시간이다. 매월 4째주 토요일 오전 11시~오후 5시 실시된다. 피정비는 점심식사비 포함 4만 원. 수지에니어그램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관계성을 증진시키고 가치 선택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매월 첫째, 셋째 토요일 오전 10시30분~오후 4시30분 열린다. 피정비는 점심식사비 포함 6만 원. 예수마음기도피정은 기도의 참맛을 알고 하느님이 더 깊이 만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피정이다. 1박2일 피정은 5월 25~26일, 8박9일 피정은 6월 23~7월1일, 40일 피정은 6월 20일~7월 29일 진행된다. 피정비는 1박2일 10만 원, 8박9일 56만 원, 40일 280만 원. ※문의 031-321-9054, 9060 양지 영성교육원

2024-05-05

보정본당, 부활 맞아 베트남 선교지에 성물 전달

제1대리구 보정본당(주임 양태영 스테파노 신부)이 부활을 맞아 각 가정에서 모은 성물을 베트남 선교지에 전달했다. 본당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김인숙 레아)는 공산화로 선교에 어려움을 겪는 베트남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사순 시기 동안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지만, 깨끗한 성물을 모았다. 우리에겐 흔하고 잘 사용하지 않는 성물이 베트남 선교지에서는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눔의 장을 기획한 것이었다. 본당 사회복지위원회는 3월 31일까지 신자들이 모은 성물을 수거해 깨끗하고 잘 깨지지 않는 성물을 위주로 선별해 예수 마리아 성심 전교 수녀회에 전달했다. 이번 전달된 성물은 약 11박스 분량이다. 본당이 전달한 성물들은 수녀들이 베트남 방문할 때 인편으로 선교지에 전달될 예정이다. 본당 사회복지위원회는 지난해에도 묵주 100개가량을 베트남 선교지에 전달한 바 있다. 본당이 설립된 2004년부터 활동해온 위원회는 12명의 위원들과 함께 앞으로도 본당 관할 안팎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예수님의 사랑으로 정서적·물질적 나눔을 실천해나갈 방침이다. 본당 주임 양태영 신부는 “공산화로 선교의 불모지가 된 베트남에 본당 신자들이 함께 성물을 모아 전달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선교에 동참하고자 마련한 이번 행사는 작은 나눔의 실천 운동이기도 하다”고 취지를 밝혔다.

2024-04-21

[교구에서 만난 한국교회사] 부엉골 : 신학교의 설립

경기 여주 강천면 부평리 581. 부엉이가 많았다고 해서 부엉골이라 불리던 이곳에는 박해 시기 조선인 사제를 양성하려던 선교사들의 열망이 가득했다. 전국 구석구석 교통이 발달한 지금도 포장되지 않은 산길을 걸어야 닿을 수 있는 외진 이곳은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아직 박해가 끝나지 않은 1885년 신학교가 세워진 곳이다. ■ 신학교 설립을 위한 노력 파리 외방 전교회는 조선대목구가 설정된 이래 꾸준히 조선인 성직자 양성을 첫 번째 목적으로 삼고 활동했다. 조선인 성직자를 양성해 조선인의 힘으로 교회가 유지되는 것이 파리 외방 전교회의 선교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836년 첫 번째 선교사가 조선에 입국하자마자 성 김대건(안드레아)·가경자 최양업(토마스)·최방제(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선발해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다. 이후로도 신학생 양성을 위한 노력은 이어졌다. 페레올 주교는 1850년 병으로 사목 순방을 다니기 어려운 성 다블뤼 신부에게 신학생을 가르치도록 했다. 그리고 1854년에는 이렇게 국내에서 기초 교육을 받은 3명의 신학생을 말레이시아의 페낭 신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유학을 통해 사제를 양성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조선인 사제를 양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여러모로 어려움이 컸다. 어린 신학생들이 유학길을 견뎌야 했을 뿐 아니라 현지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병에 걸리거나 최방제의 경우처럼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선교사들은 조선에서 신학생을 양성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조선에서 신학생을 양성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박해 때문이었다. 성 앵베르 주교도 성 정하상(바오로) 등을 비롯한 신학생을 국내에서 양성했지만, 1839년 기해박해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박해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신학생을 양성하려는 노력은 끊이지 않았다. ■ 성 요셉 신학교 설립 마침내 1855년 메스트르 신부는 배론에 성 요셉 신학교를 설립했다. 성 장주기(요셉)가 배론 교우촌의 3칸짜리 초가집을 봉헌해 신학교 건물로 사용했고, 1856년 입국한 푸르티에 신부가 교장으로 임명됐다. 초기 성 요셉 신학교는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이었다. 박해를 피하기 위해 일부 신학생들은 다른 마을에 거주하면서 학교를 오가기도 했고, 비신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소리 내서 글을 읽는 것도 조심해야 했다. 신학생들이 박해를 피해 안전하도록 밤낮으로 좁은 방안에서 문을 닫아걸고 공부하다 보니 면역력이 약해져 병에 걸리기 일쑤였다. 1865년 푸르티에 신부는 서한을 통해 “빈약하기 짝이 없는 이 신학교의 학생들은 거의 환자로, 이러한 병의 원인은 장소의 협소함보다는 운동과 활동의 부족에 있다”면서 “우리는 가능한 한 가장 작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나의 불쌍한 학생들은 낮이나 밤이나 문을 굳게 닫고, 병에 걸린 상태에서 공부한다”고 전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성 요셉 신학교는 점차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1861년에는 프티니콜라 신부가 신학교 교사로 합류해 교육체계를 다져나갔다. 신학교육은 라틴어과와 신학과로 나뉘어 있었고, 신학과에서는 수사학, 철학, 신학을 가르쳤다. 신학교 교사를 맡은 두 신부는 신학생들을 교육하면서도 교리서를 번역하고, 또 라틴어-한국어-한문 사전을 편찬하기도 했다. 페낭에서 유학하던 신학생들도 1861년과 1863년에 귀국해 성 요셉 신학교로 편입하면서, 10여 명의 신학생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1864년에는 배론 교우촌을 방문한 베르뇌 주교가 신학생들에게 삭발례, 소품(小品)을 주는 성과도 있었다. 대품(大品)을 통해, 또 한 명의 조선인 성직자가 탄생하는 것도 머지않은 일처럼 보였지만,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신학교는 10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문을 닫게 된다. 당시 성 남종삼(요한)을 체포하기 위해 제천에 왔던 서울의 포졸들이 서양 선교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성 요셉 신학교를 급습했던 것이다.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는 이때 체포돼 3월 11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 신학교의 부활 병인박해의 피해는 컸지만, 선교사들은 여전히 조선인 사제 양성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제7대 조선대목구장 블랑 주교는 로베르 신부에게 신학교 설립을 지시했고, 마땅한 자리로 찾은 곳이 부엉골이었다. 배론의 신학교처럼 박해로 신학교가 와해되지 않기 위해 안전한 곳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후에 부엉골본당 주임을 맡았던 가밀로(Camile Bouilon) 신부는 “로베르 신부는 오직 호랑이와 부엉이들만이 살고 있는 이 험난한 산속의 마을 부엉골보다 더 나은 장소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1885년 부엉골 교우촌의 신자들이 숲에서 통나무를 베고 진흙 벽돌을 쌓아 초가집을 짓고 신학교를 세웠다. 20년 만에 다시 신학교가 세워진 것이다. 부엉골에 다시 세워진 신학교 교장을 맡은 마라발 신부는 신학교를 ‘예수 성심 신학교’라 명명했다. 페낭 신학교에서 귀국한 신학생 4명과 국내에서 입학한 신학생 3명이 예수 성심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부엉골에 자리했던 신학교는 2년 만에 용산으로 이전했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박해가 종식되면서 더 이상 깊은 산골에 숨어있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신학교는 1945년 다시 서울 혜화동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금의 가톨릭대학교로 이어오기까지 수많은 한국인 사제를 탄생시키고 있다.

2024-04-21

[우리 이웃 이야기] 최양업 신부 다큐멘터리 제작 박정미 감독

“100년의 박해 동안 뿔뿔이 흩어진 신자들에게 한줄기 등불이 되어 보이지 않는 가치를 실현한 진정한 한국인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기원하면서 제작했습니다.” 4월 15일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시사회를 연 다큐멘터리 ‘한국인 최양업-사랑으로 길을 걷다’를 연출한 박정미 감독(체칠리아·67·제1대리구 동천동본당)은 “최양업 신부님의 삶과 마음가짐은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롤모델이 아닐까 한다”고 밝혔다. “최양업 신부님의 생애를 따라가면서 한국인의 ‘정’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치명으로 족적을 남기시는 분도 훌륭하지만, 1년 365일을 12년 동안 매일 신자들과 정을 나누며 살아간 최양업 신부님을 조명하고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박 감독이 이번에 제작한 다큐는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서한을 따라서 최양업 신부의 생애와 사목을 심도 있게 파고든 작품이다. 특별히 2021년 ‘한국인 김대건’을 연출한 바 있는 박 감독은 이번 다큐에서도 최양업 신부를 통해 한국인만의 고유한 특성을 발견했다.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삶이 ‘열정’이었다면, 최양업 신부의 삶은 한국인의 따듯한 ‘정’(情)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박 감독은 “최양업 신부님은 단 한 사람을 위해서 며칠을 걸어가서 영성체를 주면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보이셨다”면서 “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지만, 이 보이지 않는 가치로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 그게 예수님의 마음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박 감독에게 이번 작품은 여느 작품보다도 특별하다. 제작기간 3년이라는 시간도 그렇고, 전국 곳곳의 최양업 신부의 흔적을 찾아다닌 것도 그렇고, 수많은 신부, 수녀, 신자들을 만나며 인터뷰를 한 것도 그렇지만, 함께 다큐를 제작하다 선종한 남편 최중설(안드레아)씨의 유작인 점이 가장 그렇다. 박 감독은 “다큐를 준비하면서 남편과 최양업 신부님의 심성이 정말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꼈고, 남편을 통해서 최양업 신부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서 “남편의 선종으로 한동안 가라앉아 있었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믿으며 이 작품을 통해서 선물을 받았다”고 전했다. “최양업 신부님은 사목에서부터 순교자 행적 번역, 한글 사용, 천주가사 등 이렇게 많은 일을 해놓고도 내세우지 않고 드러내지 않으셨어요. ‘한국교회가 박해 시기 동안 명맥을 잇게 해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했을 때, 최양업 신부님의 업적이 신자들 가슴 속에 박혀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최양업 신부님을 통해 ‘일상의 순교가 일상의 기적을 낳는다’고 느낍니다.”

2024-04-21

수원교구 연령회연합회 1차 상장례 실무교육

교구 연령회연합회(회장 김태은 안셀모·영성지도 심재형 예로니모 신부. 이하 연령회연합회)는 4월 6일 양지 영성교육원에서 ‘1차 상장례 실무 교육’을 실시했다. 이날 교육은 주교회의 전례위원회가 편찬한 「상장예식」을 기반으로 연령회 회원들이 상장례 실무를 진행할 수 있도록 실무 중심 교육으로 진행됐다. 제1강의는 ‘장례예식 및 장례미사’에 관해 강대원 신부(즈카르야·대전교구 홍보국장, 한국천주교 연도보존회 영성지도)가, 제2강의는 ‘연령회 활동과 연도’에 관해 김태은 회장이 강의했다. 교육에는 교구 내 221개 본당 연령회 회장과 연합회 임원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강대원 신부는 출관, 장례미사, 고별식 등 장례 예식을 진행하며 혼동하기 쉬운 사항에 대해 문답 형식으로 연령회원들과 소통하며 강의를 진행했다. 강 신부는 “장례는 고인을 가족과 신자들의 공동체에서 떠나보내는 예식”이라며 “고인이 하늘나라에 들고, 남아 있는 이들에게 마지막 날에 부활하게 되리라는 희망의 위로로 복음 정신을 함양하게 하는 일을 한다”면서 장례 예식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또 “주교회의에서 발간한 「상장예식」은 모든 예식마다 예식에 앞서 각 예식의 절차 및 방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매우 자세하게 해설하고 있다”면서 “연령회원들이 「상장예식」의 해설을 주의 깊게 읽고 이해해 연령회 활동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태은 회장은 연령회장이 취해야 할 자세와 위령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 지에 관해 설명했다. 김 회장은 “연령회장은 권위를 버리고 낮은 자세로, 예의를 갖춘 행동, 언어, 복장과 헌신적인 봉사로 임해야 한다”면서 “연령회장의 삶을 통해 선포되는 모습이 선교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또 위령기도에 관해서는 “노래로서의 위령기도가 아니라 기도로서의 위령기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재형 신부는 교육을 마치며 “우리가 하는 연령회 봉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교회에만 있는 활동으로, 한국교회에서는 위령기도를 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연령회 활동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임해 달라”고 말했다.

2024-04-21

「더 높은 기도」 전삼용 신부 북 콘서트

제1대리구 조원동주교좌본당(주임 전삼용 요셉 신부)은 4월 10일 성당에서 「더 높은 기도」 북 콘서트를 열었다. 이날 북 콘서트는 지난 2월 출간한 전삼용 신부의 신간 「더 높은 기도」(전삼용 신부 지음/288쪽/하상출판사/1만4000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마련됐다. 「더 높은 기도」는 기도 방법을 단계별로 정리해 하느님의 본성인 ‘사랑’에 도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소리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또 전통적인 영성의 단계인 정화, 조명, 일치를 어떻게 따라야하는 지를 알기 쉽게 정리했다. 북 콘서트 중에는 전 신부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외에도 이미 책을 읽은 독자들의 소감들을 들으며 소통하는 시간도 보냈다. 또 찬미도 곁들여 함께 노래로 기도하기도 했다. 전 신부는 이날 북 콘서트를 통해 “믿음이 자라면 기도의 방법도 나아가야 하는데, 해오던 기도가 전부인 것처럼 바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예를 들어 초등학생 때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는 기도문을 보면서 읽었다면, 커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만으로도 1시간 동안 거기에 잠겨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묵상기도를 하다가 새로운 것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다”면서 “무엇보다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랑이신 하느님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가르치는 기도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이 책을 많은 분들이 읽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4-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