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다문화 가구 구성원은 2025년 기준 120만 명, 체류 외국인은 280만여 명(전체 인구의 5.5%)을 넘어섰다. 명실상부한 세계화 시대지만 이주민과 난민이 마주한 사회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2023년 입소스 글로벌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53%가 난민 수용 시 ‘범죄 수준 악화’를 우려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25년 5월 한국 내 미등록 이주민 단속 과정에서 무력 동원과 혐오 확산, 인권침해 가능성에 공식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은 이주민·난민 아동들이다. 아이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떤 동반을 해야 하는지 짚어 본다. 단속과 추방 사이에 놓인 아이들 정부는 2023년 ‘불법체류 감축 5개년 계획’을 수립·추진하며 미등록 이주민들 단속을 강화해 왔다. 2025년에는 기습 단속을 피해 도망치던 대구와 경남 사천 등지 공장 이주노동자들이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잇따랐고, 2024년에는 미등록 이주여성 단속·구금 과정에서 세 살 아동이 보호자 없이 방치당한 사례가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는 유엔 아동권리협약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2%로, OECD 평균 약 23%에 크게 못 미치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체포 기록이나 협박 증거 등 박해 사실을 난민 신청자 본인이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하고, 입증 기준도 엄격하다.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인도적 체류 허가(G-1-6 비자)를 통해 한국에 머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고문 등의 비인도적인 처우나 처벌 또는 그 밖의 상황으로 인해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 등이 현저히 침해될 수 있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본국의 위험 상황을 증명할 공식 문서와 증거를 갖추기 어려운 난민 신청자들의 현실을 고려하면, 심사 기준을 충족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이 같은 높은 장벽은 이주민·난민 성인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벼랑 끝으로 내몬다. 미얀마 출신 쿠알 응아이 망(37)·칭 쏜 훙(36) 씨 부부는 6월 4일이면 출국기한 유예 기간이 만료된다. 그 전에 난민 자격 승인을 받지 못하거나 기한 연장에 실패할 경우, 두 영유아 자녀와 함께 미얀마로 송환될 위험에 놓여 있다. 두 사람은 학생 비자 등 합법적인 체류 자격으로 입국했으며, 2020년 1월 결혼 후 미얀마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항공편이 끊기고,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내전, 경제난까지 겹치면서 비자 연장에 실패해 미등록 체류 상태가 됐다. 자녀 도 시안 카이(4살)·친 쏨 투앙(15개월)은 여권도, 신분증도, 시민권도 없는 무국적 상태로 교육·의료 등 기초 아동권 보장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부부는 한국에서 NUG(국민통합정부), PDF(미얀마 시민방위군) 등 미얀마의 민주화 세력을 지지하는 시위와 모금 등 활동에 참여해 군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미얀마로 추방될 경우 온 가족이 처형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쿠알 씨는 “난민 신청에 요구되는 공문서들을 준비하고 박해 사실을 입증하려면 모국의 공공 부문과 접촉해야 하는데, 모두 군부가 장악한 상황에 어찌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개신교 목회자인 그는 “어린이까지도 무차별 학살하는 사탄과 같은 군부로부터 카이와 투앙이라도 살릴 수 있도록, 한국의 호의와 형제, 자매들의 기도를 간절히 부탁드린다”며 눈물 흘렸다. 사각지대 비추는 사랑…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집’ 3월 28일 경기 부천 소사동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본원 내 ‘성가공부방.’ 꽃 새순을 구경하던 이주 배경 아동 윤민우(초3·페루) 군은 쌍둥이 친구 정시혜·시은(초3·중국) 양이 “민우야, 놀자” 하고 부르자 원장 김미숙(석문 가롤로) 수녀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달려갔다. 마당에는 몽골, 파키스탄 등 다양한 이주 배경을 지닌 아이들이 봄볕 아래에서 함께 뛰놀고 있었다. 성가공부방은 성가소비녀회가 2004년부터 운영해 온 무상 아동 돌봄·교육 시설이다. 국적 제한은 없지만, 원아 10명 중 8명이 이주 배경 아동일 만큼 이주민 가정 아이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가정은 맞벌이와 주말 근무가 잦아 방과 후나 주말에 돌봄 공백이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공부방은 방과 후 수업과 주말 체험학습을 통해 아이들에게 두 번째 집이 되어 주고 있다. 부모와의 접촉이 부족해 애정 표현에 서툴고 자존감이 낮던 아이들도 수녀와 교사들의 돌봄 속에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언제든 나라 밖으로 쫓겨날 수 있는 카이와 투앙 같은 난민 아이들, 방과 후 늘봄학교 등 공적 돌봄 체계에서도 비켜난 이주민 아이들에게 필요한 도움은 무엇일까. 성가소비녀회 별사랑이주민센터 센터장이자 난민 담당인 고윤숙(그라시아) 수녀와 이주민 담당 이창숙(루미네) 수녀는 “절박할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집’이 되어 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센터는 2010년 설립 이후 사각지대 이주민과 난민을 대상으로 상담과 법률 지원, 의료·교육·생계비 지원 등을 이어 오고 있다. 누구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지 않기 위해 줄곧 비인가 시설 형태로 운영을 이어 오고 있다. 말레이시아 내 혈족 불화로 고향에 머물 수 없어 한국에 온 하라판(가명·중2) 양과 가족도 센터의 도움 속에서 살아왔다. 난민 신청이 기각돼 10년 가까이 미등록 체류자로 지내면서도,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미취학 아동 때 입국해 공공 복지·교육에서 소외됐던 하라판과 동생은 센터의 장학금 지원으로 무사히 초중등 교육을 받고 성가공부방에 다니며 안정된 성장기를 보낼 수 있었다. 올해 초 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 자격 부여 방안으로 가족과 함께 비자를 받은 하라판 양은 “늘 초조해하던 부모님이 언젠가부터 웃기 시작했고, 나도 이제 많이 웃는다”며 “온 가족이 쫓겨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악몽을 아직도 가끔 꾸지만, 그런 일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한국의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더 어려운 처지의 이주민과 난민을 위한 도움도 함께 부탁했다. ※ 후원 계좌 우리 1005-904-306165 (재)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 문의 032-342-3936 별사랑이주민센터
발행일 2026-04-12 제3486호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