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정의로 세상 읽기’…청년 신앙인들에게 삶의 방향성 제시
우리는 불의한 사회를 살아간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약자들은 오래전부터 차별당해 왔고, 위안부 문제와 같이 오랜 시간 현재진행형인 폭력의 상처도 많다. 그래서 가톨릭 사회교리는 교회가 세상에 목소리를 내도록 가르친다. “복음화 되어야 할 인간은 추상적 존재가 아니고 사회적 경제적 문제와 관련된 존재”이며, “부정과 싸우고 정의를 구체적으로 수립해야 하는 구원의 계획과 창조 계획을 분리시킬 수 없기”(「간추린 사회교리」 66항) 때문이다.
이렇듯 하느님의 정의를 부르짖는 사회교리는, 인권과 공정에 있어서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현세대 청년들에게 어떤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까. 착한목자수녀회(관구장 이희윤 스텔라 수녀)의 ‘청년 사회교리학교’ 현장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교회만이 가진 ‘보편적 인간관’이었다.
■ 하느님의 정의를 스스로 찾아 배우다
토요일인 2월 15일 한낮, 서울 자양동·화양동 일원의 대학로 ‘건대거리’는 여느 때처럼 행인으로 붐볐다. 그 인파를 헤치고 자양동 주택가 골목 사이로 20명가량 청년의 발길이 이어졌다. 착한목자수녀회가 서울수녀원에서 1월부터 매달 토요일 하루 여는 ‘청년 사회교리학교’ 수강생들이었다.
피정과 기도 모임 등 꾸준히 청년들을 동반해 온 착한목자수녀회는 청년들의 요청으로 사회교리학교를 열었다. 청년들이 “부조리한 사회에서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읽고, 그로써 더 선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해온 것에 대한 화답이었다. 담당 박은희(효주 아녜스) 수녀는 “마음을 편하게 하는 종교의식으로서의 신앙을 넘어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나와 모두를 위한 공동선에 기여하는지 알고 싶다’며 청년들이 사회교리에 깊은 관심을 표현해 왔다”고 말했다.
이에 춘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권오준(베네딕토 루치아노) 신부를 강사로 모시고 인간과 노동에 대한 가톨릭 사회론부터 생태환경, 국제 공동체, 평화 등 다양한 주제로 7회기에 걸친 강의를 마련했다. 교육 자료는 프란치스코 교황 문헌 「우리 어머니인 지구」와 성 바오로 6세 교황 회칙 「민족들의 발전」, 성 요한 23세 교황 회칙 「지상의 평화」 등 역대 교황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했다. 2회차 강의인 이날은 ▲인간존엄성의 원리 ▲공동선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 4가지로 정리되는 사회교리 원리·원칙을 다뤘다.
■ 길잡이가 되어주는 ‘보편적 인간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방한하셨을 때 ‘고통 앞에는 중립이 없다’면서 우리에게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편이 되어줄 것을 강조하셨죠. 어째서일까요?” 권 신부가 화두를 던지자 청년들은 술렁거렸다. “단순한 연민 때문은 아닐텐데 딱 짚어서 말이 나오지는 않아요.”
이에 권 신부의 답이 이어졌다.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인간존엄성의 원리’ 때문이에요. 인종, 국가, 성별, 출신, 문화, 계급 등 모든 조건을 떠나 모든 사람이 근본적으로 평등하죠. 흉악 범죄자도 배제되지 않아요. 교회가 사형제도 폐지를 결연히 외쳐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답니다.”
그러면서 권 신부는 인간 존엄을 해치는 원인으로 편견, 왜곡, 차별을 들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 대한 편견은 혐오표현(헤이트스피치)을 낳고, 그렇게 차별의 분위기가 사회에 팽배하게 해 증오 범죄를 일으킨다. 그러면 끝내 유다인 홀로코스트와 같은 집단 학살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권 신부는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집단 사고에 끌려다닐 만큼 인간이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생각 없이 살면 평범한 사람도 500만 명을 죽일 수 있는 ‘악의 평범성’(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참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와 양심이라는 식별 능력을 심어주신 거예요. 그 식별을 바탕으로 우리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요?”
그러면서 권 신부는 ‘공동선의 원리’대로 움직일 것을 강조했다. 이는 “인간의 기본권을 포함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아무도 제외되지 않은 채 더욱 쉽고 충만하게 자기완성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사회생활 조건들의 총화”(「사목헌장」 26항 참조)를 말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좇는 공리주의와는 어떻게 다를까. 권 신부는 역설했다. “더 많은 양을 위해 양 한 마리쯤 잃어도 된다는 계산과 달리 단 한 마리 양마저 빼놓지 않는 마음”이라고.
그러면서 권 신부는 모든 사람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기에 상호 의존하고 책임지며 공동선 실현에 헌신해야 한다는 ‘연대성의 원리’를 설명했다. 교회적 연대는 만인의 인간적 성숙과 구원이라는 당위를 위해 연대하는 것이기에 목적에 따라 선별적이고 일시적으로 단결하는 사회적 연대와 다르다.
끝으로 권 신부는 ‘보조성의 원리’를 들며 수업을 마쳤다. 국가 등 상위 집단은 시민 단체와 같은 하위 기구와 그 구성원의 권익을 보호하며 역할을 수행하도록 보조하고, 그들이 공동선을 침해할 때 적절하게 개입해야 한다는 원리다. 권 신부는 “보조성의 원리가 없으면 어디까지 도와줘야 하는지 선을 긋게 되고 대가를 기대하게 마련”이라며 조건 없는 도움을 강조했다.
“이렇듯 사회교리는 ‘보편적 인간관’을 제시함으로써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생각하고 실천할지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그럼, 그를 따라 각자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지 나눠 볼까요?”
■ 가장 가까운 답부터
강의 후 청년들은 수녀원 경당에서 권 신부 주례로 미사를 봉헌하고 소감을 나눴다. 청년들은 “언제나 인간에서 출발해 인간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교리를 따라, 자기 삶 속의 가장 가까운 가치들부터 실천할 수 있겠다”는 데 한목소리가 됐다.
“사랑은 모든 사회관계 안에 현존하면서 그 관계 안에 스며들어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581항)
이승문(요한 사도) 씨는 “교회적 연대는 사회적 연대와 달리 서로 인간으로서 완덕을 향해 가는 ‘자기반성’의 연대라는 것이 감명 깊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간적 목표 달성에 국한된 사회적 연대로는 지속할 길 없는 사랑, 포용 등 깊이 있는 가치들을 당장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뚜렷하게 실현해 갈 수 있을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박주희(마리안나) 씨는 “연대성의 원리를 통해 작은 생물, 또 물체들 또한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이웃이라는 걸 알게 돼 감동이었다”며 “모든 피조물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권 신부는 “교회가 길잡이 역할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걸 청년들이 사회교리를 통해 확실하게 확인한 것 같아 오늘 강의는 대성공”이라며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청년들에게 “여과 없이 받아들이지 말고, 무엇이든 자기 안에서 계속 질문을 던지며 사회교리 가르침을 통해 답을 찾아 나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