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환 신부와 무지개가족을 기억하며

지정환 신부(池正煥, Didier t’Serstevens)는 1931년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뱅상 레브 신부(Vincent Lebbe, 1877~1940)가 세운 벨기에 선교협조회(La Société des Auxiliaires des Missions)에 들어간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가서 민중의 형제로서 그들과 함께 살기를 원했고, 그들에게 배워서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을 통해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그들과 함께하기를 바랐다. 지정환 신부는 1958년에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12월 8일 부산에 도착한 이래 전주교구 전동·부안·임실본당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하면서 특히 가난한 농민들과 동반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부안에서는 쓸개를 잃었고, 임실에서는 다발성 신경경화증을 얻었는데, 이것들은 이 땅의 가난한 민중들에게 ‘하느님의 빛’으로, 하느님이 보내 주신 ‘카리타스의 무지개’로 살면서 그가 받은 훈장이었다. 그는 임실 치즈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1976년대 초에 벌써 몸에서 마비 증상을 감지하곤 했다. 그러다가 1976년에 오른쪽 다리가 마비돼 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불편한 몸으로 임실 치즈 조합 활동을 정리하고 1981년에 벨기에 고향으로 가서 치료받았지만, 결국에는 완치가 불가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의사가 퇴원을 권유하면서 “일을 그만두면 더 악화될 것”이라고 조언했는데, 이 말을 희망의 메시지로 받아들인 그는 조금 나아진 몸 상태로 1983년 10월 13일 휠체어를 타고 다시 한국, 전주교구로 돌아왔다. “이곳이 내 고향이다.” 전주교구로 돌아와서 자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정환 신부 입에서 저절로 터져 나온 말이다. “그래, 이제 여기에 뼈를 묻자!” 그는 자기가 하느님 안에서 살다가 어디에서 그분께로 돌아갈 것인가를 결단했다. 지 신부는 박정일(미카엘) 주교에게 장애인사목을 권유받았을 때 즉시 답하였다. “예.” 1984년 2월 그는 교구에서 장애인사목 지도신부 소임을 맡게 됐다. 그해 7월에 김영자(마르타) 등의 협력 속에서 지정환 신부는 박남숙(루치아)과 함께 첫 장애인 공동체를 동반해 갔다. 이들은 다음 해 3월에 공동체를 확장해 옮겼고, 이후 이 공동체는 ‘무지개가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1989년에 하느님 희망의 증거자 지 신부는 ‘무지개가족’과 함께 오늘의 완주 ‘소양면’(所陽面), 볕 따스한 마을로 옮겨 와서 삶의 기쁨과 희망을 일구어 갔다. 거의 20년 동안 무지개가족을 동반한 지 신부는 2002년 5월에 사회봉사 부문에서 호암상을 받았고, 다음 해인 2003년 7월에 은퇴해 무지개가족을 떠난다. 그는 호암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장애인들과 이들의 가족들의 교육을 위해 무지개장학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은퇴 후에도 무지개가족에서 멀지 않은 소양면 ‘별아래’ 집에서 살면서, 무지개장학재단 일과 19세기와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이 남긴 자료들을 복원하는 작업 등을 하면서 하느님의 사제로 살다가 2019년 4월 13일 하느님께로 돌아갔다. 올해는 그의 선종 5주기이자 무지개가족이 탄생한 지 40년이 되는 해다. 그는 이 땅의 민중에게 하느님의 희망을 전하는 과정에서 장애를 얻었고, 자신의 장애를 장애인들을 섬기는 거룩한 기회로 삼아서 수많은 장애인들이 새 삶을 살도록 매개했다. 그의 장애인 동반 사목의 밑바닥에는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이고, 장애인이기 이전에 있는 그대로 ‘하느님에게서 온 한 사람’이라는 존재 중심 인간 이해가 자리잡고 있었다. 지 신부가 자신의 전 존재로 증거한 ‘존재 중심’ 장애인 동반의 전통이 오늘의 무지개가족과 모든 장애인 동반 기관들에서 참으로 아름답게 육화되고 승화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선물’ 지 신부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초빙교수)

2024-04-21

중도입국 청소년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최근 10년간 다문화 학생 현황을 살펴보면, 다문화 학생수는 2012년 4만6954명에서 2022년 16만56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다. 전체 학생 중 다문화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 또한 2012년 0.7%에서 2022년 3.0%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유형별 다문화 학생 비율을 살펴보면, 국내출생(국제결혼가정)이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가장 높으나 점차 감소하는 반면, 최근 들어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중도입국) 및 외국인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한국교육개발원(2012-2021), 연도별 교육통계연보) 한국 사회는 빠르게 다인종 다문화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분석한 ‘2022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1월1일 기준, 국내 거주 외국인주민 수는 225만8248명이다. 이주배경 인구가 전체 인구의 5% 이상이면 다인종 다문화 국가로 분류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기준에 따르면, 국내거주 외국인 수가 총인구 대비 4.4%인 한국은 이미 다인종 다문화 국가의 문턱에 다다른 셈이다. 이 중 한국으로 입국한 이주배경 학생들을 중도입국 청소년이라 부른다. 이 아동·청소년들은 한국에서 출생한 다문화가정 자녀와는 매우 다른 배경적 특성을 보인다. 본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던 중 입국하게 된 청소년들이기 때문에 입국 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중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 장벽이다. 언어로 인해 겪는 학업의 어려움, 준비 없이 마주하게 된 문화적 충격, 외모 비하 놀림 등은 이 청소년들이 감수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다. 게다가 이들 중에는 관광 비자로 입국해 불법체류자로 분류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국 국적의 유무를 떠나 아동·청소년은 보호받고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기본권 보장 차원에서의 이주배경 청소년, 특히 중도입국 청소년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우리에겐 중도입국 아동·청소년들에게 한국어 및 기초학습을 제공해 언어능력과 학습수준 향상시키고, 한국 생활을 위한 정보를 제공해 새로운 사회의 기준을 이해하도록 도와야 하는 사회적 숙제가 있다. 중도입국 아동·청소년들이 또래 간의 집단활동으로 서로에게 정서적 지지가 되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 초기 적응에서 겪는 스트레스나 위기상황 등을 극복해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교회도 사회도, 이웃 모두 관심을 가져야겠다. 특히 중도입국 아동·청소년들은 한국에서 엄마와 살고는 있지만, 소외감을 느낀다. 여러 사정으로 외국인 자격으로 체류하고 있는 경우에는 심리적, 정서적 불안감을 안고 살고 있기에 모든 일에 위축되고 미래가 어두운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줄 수 있는 품이 필요하다. 품이 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은 모두가 다인종 국가로 들어서는 지금의 사회를 받아들이고 우리 곁 가까이에 있는 이웃으로 맞이하는 실천이 있어야겠다.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가족들과 이웃과 공유해 보자. 내 자녀의 친구로 잘 맞이해 이웃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안정적 관계 맺음을 할 수 있도록 하자. 어른과 친구와 대화할 때 소통 방법을 알려주고, 인사하는 방법을 알려주자. “친구들이 말투를 따라 하고 놀렸다며 학교생활이 심적으로 힘들었음을 내비치는”(주간조선, 2011) 일이 없도록 그들을 돕자.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중도입국 아동·청소년들이 천천히 우리 마을에 스며들도록 품을 내어 주자. 글 _ 강성숙 레지나 수녀(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2024-04-14

찾아가는 서비스와 가톨릭교회

여행을 다닐 때 주일미사는 늘 부담이 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행지의 성당을 찾아 현지인들과 미사에 참례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운 체험이 됐다. 현지 문화를 체험하면서도 여행 중 도난이나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 심신의 피로, 긴장감을 내려놓고 평화와 위안을 받는 소중한 시간이다. 지난해 10월 도쿄로 자유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중 성당을 방문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하철에 적응하지 못해 공항에서 호텔로 도착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많이 지쳐 있었다. 여행의 시작부터 너무 힘들어 성당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도쿄 세키구치 주교좌성당 12시 주일미사는 한인성당 미사로 거행되고 있었다. 주교좌성당 미사지만, 코로나19 여파인지 모르겠지만 신자가 많지 않았고 다들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다. 미사 시작 전 간신히 도착한지라 거리두기의 원칙을 모르고 노인 여성 신자 옆에 앉았다. 내가 거리를 많이 두지 않아 그분을 불편하게 했던 것 같아 미안하다. 한편 장궤틀이 설치돼 있지만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가 너무 넓어, 어떻게 저기에 장궤를 하고 기도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봉헌할 때 신자들은 제대 앞에 나가지 않고 유럽 성당과 마찬가지로 긴 막대기에 들린 천 바구니에 헌금을 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신자들이 영성체 때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좌석과 뒷좌석이 넓은 이유는 사제가 성체를 분배하기 위해 신자들을 직접 찾아가기 때문이었다. 신자들은 제자리에서 서서 영성체를 했다. 코로나19 시기에 생긴 방식인지 알 수 없으나 신선했다. 한국 성당뿐 아니라 다른 나라 성당에서도 주로 신자들이 영성체를 하기 위해 움직인다. 신자들은 영성체를 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제대 앞으로 다가가며 하느님 앞에서 낮아지는 체험을 한다. 수도원 피정 미사나 소규모 미사에서 동그랗게 서서 영성체를 했던 기억은 있다. 그래도 작지 않은 성당에서 사제가 신자들 자리로 옮겨다니며 일일이 성체를 분배하는 방식은 낯설지만 신선했다.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느끼고 겸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겸손은 현 세대의 미덕이 아니고, 플렉스와 자기과시를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가치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여유 없는 세상이 됐다. 이러한 세상에서 겸손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피로감을 느끼던 차였다. 우리 사회에서 경쟁과 성취는 주요한 덕목이 됐고, 자신의 부와 권력을 자랑하는 사람, 자신감 있는 사람이 매력적이고 긍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일본 성당에서의 체험은 내 삶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는 한편 교회의 ‘찾아가는 서비스’를 생각하게 했다. 가족의 장례식장에 찾아와 신자들이 바쳐주던 위령기도는 사별로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진심 어린 위로가 됐다. 최근 지병으로 누워 계신 어머니를 위해 봉성체를 신청했을 때, 신부님과 구역장님을 비롯한 신자들이 집을 방문해 주셨고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신부님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하셨다. 사제나 수도자들, 신자들에게 친절과 봉사를 요구한다면 이들은 판매직, 서비스직 종사자들처럼 감정노동으로 고통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가톨릭교회가 ‘찾아가는 서비스’ 정신으로 소외된 자들, 교회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위안이 필요한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함께 사는 공동체보다는 복지의 축소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노인, 장애인, 여성 등에 대한 혐오가 정당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교회가 좀 더 낮은 곳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하고 사회적 차별이나 편견들을 시정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적극적으로 탐색했으면 한다. 글 _ 이동옥 헬레나(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교수)

2024-04-07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찾기 / 이종원 신부

‘나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란 주제를 화면에 띄워 놓고 멍하니 바라본다. 기쁨이라⋯. 기쁨이 무엇일까 먼저 생각해 본다. 아스라이, 학부 시절 은사님께서 해주셨던 ‘joy’와 ‘pleasure’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배고픈 사람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주면 기쁘게 먹는다. 두 그릇까지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세 그릇, 네 그릇 계속 주다 보면 그때부터는 먹는 게 기쁨이 아니라 공포가 된다. 이게 pleasure다. 그런데 책을 읽는 기쁨을 생각해 봐라. 한 권을 읽어도 백 권을 읽어도 그 기쁨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게 joy다. 너희가 말 배우고 문학 배우는 애들이거든 joy와 pleasure는 꼭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벌써 15년도 더 전에 들은, 선생님은 그저 우리가 먹고 노는 것보다는 읽는 것을 선택하길 바라며 해주신 이야기이지만, 그날 이후로 내가 뭔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기준점이 된 참 소중한 이야기이다. 금세 질릴 pleasure가 아닌 언제고 남아 있을 joy를 좇는 것, 그건 예수님을 좇는 일뿐 아니라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해당할 테니 말이다. 요즘 내가 느끼는 즐거움은 joy일까 pleasure일까. 부끄럽게도 내 생활은 joy보다는 pleasure에 더 빠져 있는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보고 싶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물론 시간기도도 드리고 성체조배도 하지만, 기도 생활 틈틈이 여가를 쓰는 게 아니라 여가생활 틈틈이 기도를 끼워 넣는 듯한, 중심축이 흔들린 느낌이다. 사제이든 수도자이든 동양의 관점에서 보면 ‘출가’한 사람들이다. 단어의 음절이 반대일 뿐이지만, 출가와 가출은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번뇌에 얽매인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성자(聖者)의 수행 생활에 들어감’이란 의미라면, 후자는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감’을 의미한다. 나는 분명 전자를 선택했는데, 지금의 내 삶은 후자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어 맘이 살짝 아리다. 출가자로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joy는 사실 하느님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미국 예수회원인 제임스 마틴 신부가 쓴 책 제목처럼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찾기’를 해야 하는 사람이고 삶이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모든 것 안에서 다른 것을 찾을 때가 있다. 언제는 하느님 대신 ‘돈’을 찾기도 하고, 언제는 ‘명예’를 찾기도 하고, 언제는 ‘권력’을 찾기도 한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필부필부가 이것을 좇고 찾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 무겁게 다가올 뿐이다. 하느님의 자리에 하느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놓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에 푹 빠져 있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가슴 아프게 다가와야 할 현실일 것이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찾기’. 참 꿈 같은 소리로 들리기도 하는 이 책의 제목이 내게 가슴 깊이 박힌 이유는, 아마도, 아니 분명히, 나의 이런 현실 때문일 것이다. 하느님이 좋다고 하느님과 함께 살겠다고 선택한 삶에서조차도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을 좇으면서 매일 강론 시간에 입바른 소리를 해야 하는 내 삶의 궤적이 피곤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나의 흠결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의 불완전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당신의 이름(=그리스도)을 달고 사는 사람(=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시는 그분의 한량없는 사랑과 자비와 아량에 나는 그저 기댈 뿐이다. 내가 하늘을 째려보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한번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새를 추스릴 수 있는 까닭은, 하느님의 이 한량없는 사랑과 자비와 아량 덕분일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이 시간에, 다시 한번 다짐한다. 새로이 열어 주신 이번 한 주 동안은 열심히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을 찾겠노라”고.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2024-03-31

우리는 지금 하느님 안에서 살고 있는가? / 황종렬 교수

인간의 뇌 작용은 ‘시냅스’(synapse)를 통해 이뤄진다. 뇌신경세포는 그물처럼 하나로 이어져서 작용하지 않고, 서로 분리되어 있으면서 인접해 가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시냅스는 ‘함께’를 뜻하는 그리스어 ‘syn’과 ‘연결하다’ 혹은 ‘움켜쥐다’를 뜻하는 ‘haptein’이 결합된 말이다. 이것은 정보를 전하는 뉴런과 받는 뉴런이 화학적 작용이나 전기적 작용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부분을 말한다.(매튜 코브 지음, 이한나 역 「뇌과학의 모든 역사」 194~212쪽) 신경세포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때 떨어져 있는 간격을 ‘시냅스 틈’이라고 한다. 그 간격은 20~50nm(나노미터) 정도다. 시냅스가 떨어져 있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틈 내지는 간격이 있으므로 사고의 흐름은 ‘저절로’, ‘자동적으로’, ‘그냥’ 이뤄지지 않게 된다. 이 정보 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이 산소와 에너지다. 사고와 의식의 흐름을 위해 건강한 식사와 숨쉬기가 필요하다. 생각이 많으면 영양과 산소가 그만큼 많이 필요하므로 맥박이 빨라지고, 너무 허기지거나 호흡이 약해지면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켈란젤로(1475~1564)가 16세기 초에 그린 시스티나 성당 천장 그림에 시냅스 현상이 예술적으로 표현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하느님이 아담을 창조하시는 장면을 하느님이 하와를 안고 천사들과 함께 아담에게 날아가셔서 밑으로 처져 있는 아담의 손가락에 당신의 손가락을 뻗어 생명의 기운이 전해지게 하시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가 뇌의 신경세포들이 떨어진 상태에서 신호를 전달하고 전달받아서 작용하는 것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장면은 현대 뇌과학자들도 경탄할 만큼 시냅스 작용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이때 하와를 안고 계신 하느님과 주위에 있는 존재들이 원형 비슷한 형태 안에 그려져 있는데, 이 형태가 뇌를 옆에서 본 것과 유사하다. 아담을 창조하실 때 하느님은 이미 하와를 계획하고 계셨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는 하느님의 창조 신비를 뇌와 연결해 그려낼 만큼 인간과 하느님의 소통에 대해 깊게 통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통할 때 저렇게 건너야 하는 틈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어떤 것부터 먼저 건너게 할까? 경험에 의하면, 친근하고 도움이 되는 것부터 먼저 건너게 할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께 창조돼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살면서도 그분과 ‘저절로’, ‘언제나’, ‘당연히’ 이어지지 않고 다른 존재들과 이어져서 심지어는 의식과 행동으로 그분 밖에서 살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기에게 익숙하고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은 선택하고 낯설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은 기피한다. 하와와 아담은 자기의 욕망에 불을 지른 뱀과 시냅스한다. 그리하여 선악과를 따먹고는 두렁이를 만들어 몸을 가리고 하느님을 피해 나무 사이에 숨었다.(창세 3, 7-8) 이들이 비록 하느님의 명을 어겼어도 존재로는 여전히 하느님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으로는 하느님 밖에 있고 싶어한 것이고, 그 결과 행동으로 하느님 밖에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시냅스 틈은 인간의 존재 구조다. 이 구조를 모르고는 인간의 선입견과 폭력을 이해하기 어렵다. 도덕적으로 접근해서는 한계가 있다. 이 틈을 있는 대로 보고 이것을 넘어설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잇는 것. 무엇과? 하느님과! 이것이 ‘re-ligio’, ‘종교’다. 하느님에게서 와서 하느님 안에서 살도록 이어주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 사회에서 우리 교회가 할 거룩한 사명이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가 하느님 안에서 살아야 하는데, 우리 교회는 지금 존재와 의식과 행동으로 그분 안에서 살고 있는가?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초빙교수)

2024-03-24

[방주의 창] 할배쉐프의 비밀 레시피 / 강성숙 수녀

“맛 좀 볼텨? 간이 맞는가 모르것네 그려….” 할아버지 요리사(할배쉐프)들이 음식을 만들며 나누는 대화이다. ‘할배쉐프’는 독거 남성 어르신들의 정서 지지 및 일상생활 기능 향상을 위한 역량 강화 프로그램이다. 할배쉐프! 낯설지는 않지만 익숙하지도 않는 이름. 월 1회 할아버지 요리사로 변신하여 스스로에게 대접할 음식을 배우는 시간이다. 대부분 어두컴컴하고 습기 가득한 지하 단칸방에서 날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지내시는 분들, 우리가 정겹게 부르는 이름 할아버지이다. 우리나라 문화에는 지금까지 잘 맞지 않는 풍경이기도 했다. “무슨 남자들이, 할아버지들이 음식을 배우느냐고. 그냥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으면 되지, 안 그래요?”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셨던 프로그램이다. 적어도 처음에는…. 어느덧, 하얀 요리사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시는 모습이 멋있어졌다. 화려한 요리 거창한 메뉴는 아니지만, 우리 어르신들의 삶의 역사인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지혜와 청춘, 어쩌면 그 시절엔 다 차려진 밥상에서나 마주했던 그 요리를 직접 만들고 있다는 것에 만족도가 아주 높았다. 행복한 모습과 함께 웃음꽃이 피어났다. “오늘 배운 이것과 지난번 메뉴로 또 한 달은 살 수가 있으니까 이젠 걱정 없어요.” 이렇게 일 년의 추억을 기록해 「할배쉐프의 비밀레시피」 요리책을 발간했다. 소박하지만 출판 기념회도 열어서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직접 만드신 반미 샌드위치를 대접하시고 어깨를 으쓱으쓱하시며 함박웃음을 얼굴에 담으셨다. 지금 우리 사회 고령화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예전과 달리 노년기가 늘어나고 있는 이 시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욕구는 증대되고 있지만, 가정과 사회는 노인을 의존적 존재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늙어서 혼자 살면, “남성이 더 외롭고 우울해”(서울대학교 간호학과 연구팀-박연환·고하나). 지난 2018년 8~10월 경기도에 사는 65세 이상 독거노인 1023명을 대상으로 남녀별 전반적인 삶의 질에 대해 심층 인터뷰한 보고서 제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 독거노인이 여성 독거노인보다 더 우울해했다. 아마도 문화적 배경 아래 긴 세월을 살아온 남성들이 혼자가 됐을 때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이에 노년의 주체적인 삶과 노년의 사회통합을 지향하기 위한 사회적 환경 구축은 필요하다. 건강하신 분들도 사회적인 직업 역할을 상실하게 되면서 갑자기 밀려드는 여가시간을 고민한다. 특히 남성 독거노인들은 그 간절함이 배가 된다. 인구 사회학적 특성상 활발한 상호교류를 통해 관계를 맺는 여성에 비해 훨씬 취약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가족 및 이웃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치매나 우울증 등 정신적 질병이나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에 고립되기 쉬운 독거노인, 특히 남성 독거노인에 대한 사회적, 종교적 안전망을 갖추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할배쉐프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먹거리 준비를 넘어 지역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며 나눔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 축제에 매년 초대받아 음식 부스를 운영하고 얻어진 수익금으로 지역 안에서 나눔을 실천하며 교류하고 만남의 장을 통해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어르신들이 존재감을 높이고 일상에서 정서적 관계를 쌓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작게라도 뒤늦게 얻은 솜씨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노령사회 속으로 로켓처럼 달려 들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 아직은 그 단계에 속하지 않는 이들도 다가올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 이미 늦은 감이 있다. 이참에 우리 사회 안에 노인을 위한 복지는 무엇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2024-03-17

[방주의 창] 여성의 안전, 모두의 안전을 위한 사회 / 이동옥 교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여성친화도시 프로젝트는 성평등 관점에서 여성의 일자리, 돌봄, 안전, 역량강화 등을 지향한다. 여성의 일자리를 지역사회에서 창출해 경제적 독립을 돕고, 여성의 역할로 해석돼 왔던 돌봄을 지역사회 차원에서 함께 해결하고 남성의 참여를 격려, 지원한다. 돌봄의 사회화와 제도화는 돌봄이 여성의 역할로 당연시되는 것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한다. 돌봄의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여성이 지역사회에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고 민주시민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이나 모임 등을 지원한다. 성폭력, 아내 폭력, 성매매, 인신매매 등 성별화된 폭력에서 여성 인권을 보호하는 장치도 마련한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운영되기에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으로 해석돼 사회적 반발도 있다. 그럼에도 여성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다른 구성원에게 불이익이 된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성찰이 필요하다. 내가 피해를 당하지 않아도 내가 사는 지역에서 성폭력이 발생한다면 행복한 것일까 하는 질문과 연관된다. 성폭력을 비롯한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건 특정 구성원의 인권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 구성원의 삶과 관련된 문제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에 비해 고등교육, 대학입학률에서 성차별이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통계는 보고한다. 하지만 출발점이 다름에도 사람들은 공정한 경쟁으로 제한된 조건을 넘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여성들의 역사적, 사회문화적 차별과 가족 내 성역할,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변화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작동한다. 남성이 생계부양자라는 인식하에 여성들은 취업, 경력 유지, 승진 과정에서 성차별을 경험한다. 더욱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안전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여성혐오 범죄와 스토킹, 가정폭력으로 여성들은 길을 가다가, 일터나 집에서, 데이트 과정에서 피해와 죽임을 당한다. 피해자가 적다고 해서 간과할 수 없고 가해자의 도덕적 일탈로만 축소 해석할 수도 없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격받고 피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가해자 처벌 강화, 주민 대상의 젠더폭력 예방교육, 피해자 상담, 치유, 법률 지원이 필요하나 2024년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을 위한 정부 예산은 삭감됐고 관련 단체들은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화 ‘69세’(임선애 감독, 2020)의 피해자 효정(예수정 분)은 나이가 많아 성폭력 피해를 당할 리 없다는 사회에 상처받으면서도 저항한다.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면서 주체적 성적 자기결정권을 확보하기 위한 행위다.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에머럴드 페넬 감독, 2021)에서 캐시(케리 멀리건 분)는 명문대 의대생이었지만 동급생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해 자살한 친구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는 부유하고 전도유망한 청년 의대생이라는 이유로 법적 처벌이 되지 않은 가해자에 대해 친구를 위한 복수를 감행한다. 생존이 어려운 상황에서 여성 인권을 논할 만큼 여유가 없다고, 이러한 예들은 극단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자기계발 담론이 팽배한 사회에서 이러한 논의를 하는 사람들은 할 일 없는 사람들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성폭력 피해로부터 보호받지 못해 고통받고 살해되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제도·구조적 차원에서 피해 경험에 공감하고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처벌 강화도 필요하지만 사회 전반에서 젠더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성폭력, 성차별, 성역할 고정관념에 관한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성인지교육, 젠더폭력 예방교육이나 여성을 성적 대상이 아닌 동등한 존재로 해석하는 미디어의 역할 등이 요청된다. 교회도 젠더폭력에서 자유로운 공간은 아니다. 교회 내부에서 폭력예방 장치를 마련하고 지역사회 차원에서 젠더폭력 피해자를 위한 구조, 상담, 폭력예방 교육 등으로 성평등에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2024-03-10

[방주의 창] 공동체의 힘/ 이종원 신부

새해 첫 주부터 본당 공동체에 슬픈 소식이 찾아왔다. 2012년 ‘동두천 국제 가톨릭 공동체’(Dongducheon International Catholic Community, 약칭 DICC) 설립 초기부터 활발하게 활동해 온 형제 한 분이 산행 중 갑자기 선종한 것이다. DICC 가족들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난 11년여 동안 본당 행사에서 함께 부대껴 온 본당 가족들의 슬픔도 대단히 컸다. 지병인 당뇨로 인해 살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떠날 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슬퍼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이 많기 때문이다. 통상 이주민의 장례라고 하여 선주민의 장례와 다르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산행 중 갑자기 쓰러져 선종했더라도 주변에 CCTV가 없어 선종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기에 부검을 해야 했고, 부검 결과가 나오기까지 속절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게다가 본국의 가족들이 시신을 고향으로 데려오기를 고집해 방부 처리 후 본국으로 보내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너무나 큰 짐이 한국에 홀로 남겨진 아내의 어깨 위에 얹혀 버렸다. 일단 DICC가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주일미사 때 장례 비용을 위한 2차 헌금을 걷기로 한 것이다. 좋은 생각인 것 같아 사목회와 상의해 본당 가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주일미사 때 2차 헌금을 걷기로 결정했다. 소식을 들은 교구 이주사목위원회에서도 교구청과 사회복지법인을 통해 지원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형제의 본국 대사관에서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및 관련 관청에 공문을 보내 유가족이 처한 상황을 공유하고 선처를 호소했다. 덕분에 2개월 가까이 예상했던 모든 장례 일정은 3주 만에 끝났고, 무사히 형제의 시신을 본국으로 보낼 수 있었다. 사실 장례 과정 전체를 돌이켜 볼 때, 기억에 남는 모습은 따로 있다. 빈소조차 차리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함께 모여 기도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DICC 구성원들의 이야기가 전해졌을 때, 본당 공동체가 보여준 모습이다. 겨울 추위에 바깥에서 기도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소성전을 내어주자던 모습, 영정 사진만 놓는 게 마음 아프다며 꽃을 꽂던 모습, 아침 미사가 끝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성전으로 내려와 연도를 바치던 모습, 빈소에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며 낮에도 몇 번이고 찾아와 기도를 해주고 가던 모습. 그 모습들은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속담의 실현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분명한 표징이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공동체’가 ‘생활이나 행동 또는 목적 따위를 같이하는 집단’이라고 정의돼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더불어 살아가는 한마음 한 몸’. 단순히 몸만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심지어 영혼까지도 함께 모여 있는, 그런 한마음 한 몸.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더 중시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전체주의적 독재 정권 치하를 겪은 후유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가의 영달에 늘 밀렸던 개인의 행복을, 이제는 더 미루지 않고 지금 여기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마음, 그 마음이 개인주의적 분위기로 나타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개인주의가 팽배한다 하더라도, 오롯이 개인으로서만 살아갈 수는 없다. 오히려 때로는 가족에게서, 친구에게서, 그 누군가에게서 사랑받고 위로받고도 싶은 것이 사람이며, 그 욕구는 오로지 공동체를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형제의 시신이 본국을 향해 떠나가던 날, 서품 10주년을 맞아 성지순례 중이던 선배 사제가 급작스레 선종했다. 서로 기도하고 위로하며 시신이 돌아오길 기다렸던 일주일은 슬픔의 시간이었지만 교구 공동체의 힘을 느끼는 은총의 시간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공동체의 힘을 느끼는 순간들을 더욱 많이 만나면 좋겠다.

2024-03-03

[방주의 창] ‘갑진년(甲辰年) 기억’ / 황종열 교수

2024년 올해는 갑진년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다섯 번째 갑진년을 맞았다. 240년 전 1784년에 맞은 첫 갑진년 봄에 한국교회가 이 땅에서 탄생했다. 이벽(요한 세례자)의 권고로 이승훈(베드로)이 베이징 교회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서 선교사들에게 선물받은 서학서들과 성물들의 일부를 먼저 이벽과 공유했다. 이벽은 서학서들을 정교하게 연구한 후에 다시 이승훈과 정약전과 정약용 등을 만나서 복음을 토론하며 전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최창현(요한)과 최인길(마티아), 김종교(프란치스코),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등이 세례를 받도록 매개했다. 이 위대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일들이 발생한 해가 240년 전 갑진년이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가 탄생할 수 있도록 바닥이 되어주면서 이벽은 말했다. “우리는 천주의 부르심에 귀를 막고 있을 수가 없소. 천주교를 전파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오.” 그는 또 말했다. “이것은 천주의 명령이오.”(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상」 308쪽) 이벽은 ‘복음’,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을 말했는데, 당시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을 받아들여서 산다는 것은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이벽이 복음을 전파하고 있을 때, 이 소식을 접한 사대부들은 이것이 당대 조선의 신앙 관습과 사회 질서를 ‘밑뿌리부터 뒤집어엎는 것임’을 직감하고, 이벽이 다시 유교의 도리로 돌아오게 하려 했다. 이 일을 떠맡은 인물로 이가환이 있었다. 그는 이익의 실학을 정통으로 잇는 학자이자 형조판서를 지낸 인물이다. 그는 이익의 종손이기도 했고, 이승훈은 그에게 생질이었다. 그가 이벽을 설득하기 위해 찾아가서 토론을 벌였다. 사흘에 걸쳐 토론을 했어도 이벽을 설득하지 못했다. 도리어 그가 천주교의 새로운 가르침에 설득됐다. 하지만 이가환은 하느님 안에서가 아니라, 이것과 분리된 당대 사회 패러다임 속에서 살면서 이 가르침을 공적으로 받아들일 뜻이 없었다. 그는 떠나면서 말했다. “이 도리는 훌륭하고 참되다. 그러나 이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불행을 갖다 줄 것이다.”(309쪽) 이가환은 옳았다. 한 세기 동안은. 그러나 이벽은 그 자신이 바로 저 불행의 난국에서 죽음을 맞은 한 희생양이었으나, 영원에 이르기까지 옳았다. 이 갑진년에 그의 값진 복음 선포를 기억한다. 눈물로. 복음이 무엇인가? 마르코가 전한 예수님의 첫 선포는 이렇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ἤγγικεν 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 μετανοεῖτε καὶ πιστεύετε ἐν τῷ εὐαγγελίῳ)”(마르 1,15) 미국 가톨릭교회가 공유하는 영어 성경은 ἤγγικεν의 원뜻에 따라 앞부분을 “하느님의 나라가 손안에(at hand) 있다”고 번역했다. 하느님 나라가 ‘우리 손안에’ 있든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든,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 안에 있고, 하느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은 하느님이 우리의 아버지고 어머니시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그분의 나라 안에서 그분의 딸과 아들로 존재한다는 것. 이 복된 소식을 존재로 맞아들여서, 곧 ‘아버지를 찾은 아들’이 기쁨으로 차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저 이벽을 상상해 보라. 이 기쁨으로 저 ‘복음’, 저 ‘기쁜 소식’이 이 땅에 뿌리 내리도록 자기의 목숨을 내준 믿음의 선조 이벽을 이 갑진년에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준 ‘방주의 창’이 참으로 고맙다. 갑진년에 값진 이벽을 만나면서 올라오는 물음을 공유하며 첫 나눔을 마치고 싶다. “우리 교회는 하느님 안에서 사는가? 그분의 자녀로?” ※황종열 교수는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겸임교수를 지냈고,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와 대전가톨릭대학교, 가톨릭꽃동네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2024-02-25

[방주의 창] 가난한 이웃의 행복한 삶에서 만나는 예수 / 강성숙 수녀

필리핀 파야타스(Payatas)는 쓰레기 산이라 불린다. 마닐라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쓰레기 매립지로 1995년 ‘스모키 마운틴’(Smoky Mountain) 쓰레기 매립지에 이어서 거대한 쓰레기 산으로 형성됐다. 이후 스모키 마운틴은 점차 폐쇄됐다. 이 두 쓰레기 매립지는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가난의 상징이 됐고, 쓰레기는 모두 파야타스로 버려지면서 거대한 쓰레기 산이 자리를 잡게 됐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매일 이 쓰레기 산에서 쓰레기를 주워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밥을 먹고 걸을 수만 있다면 아이들이든 노인이든 생계에 도움이 되고자 모두 쓰레기 산으로 출동해 쓰레기를 줍는다. 아이들은 학업을 포기하고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이 일에 뛰어든다. 이렇게 온 가족이 쓰레기를 주워 팔면 하루 한화 4000~5000원을 벌어 평균 6~7명의 가족들이 하루를 살아간다. 짐작건대 아이들의 영양실조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몇 해 전 복지관 직원들과 파야타스에서 현장 체험을 했다. 가족들과 쓰레기를 줍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그들과 생활 체험을 했다. 우리는 모두 홈스테이처럼 1인 1가족에게 초대받아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먹을 것은 부족하고, 씻을 물도 넉넉하지 않았다. 잠자리는 더더욱 그러했다. 9가족이 모여 사는 이 가족에겐 방 하나가 전부였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산에서 주워 수리한 초라한 침대(할머니를 위한) 하나와 비닐 깔개가 전부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정말 놀라운 것은 가족들의 꾸밈없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 손님을 맞이하는 행복한 웃음소리였다. 하루 종일 쓰레기를 뒤지느라 온몸에 먼지를 덮어쓰고 물이 부족하니 잘 씻지 못한 땀으로 얼룩진 손과 얼굴이었지만, 그 손을 내밀어 환영해 주는 가족들의 미소와 웃음소리는 그 순간 세상 것을 다 얻은 듯이 무지갯빛 행복을 느끼게 해줬다. 구멍 뚫린 티셔츠를 입고 구멍 난 조리를 신고 배고픈 것도 잊을 만큼 아이들과 가족들은 하하 호호, 까르륵 까르륵~ 떠나지 않는 그 웃음소리로 부족한 모든 것을 채워주는 현존하는 행복을 알게 해줬다. 다음날, 지붕만 가려진(현재는 많이 좋아진 상태) 성당의 미사 시간은 그야말로 ‘즐겁게 노는 어린이처럼’이란 성가가 절로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아이들로 가득 채운 미사 시간, 신부님의 질문에 “저요, 저요”를 외치는 아이들의 신명나는 참여의 소리, 아이들의 쉼 없는 목소리의 질주로 박자, 음정은 서로 달라도 마음껏 소리 내어 부르는 성가, 그 소리는 마치 은방울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축복의 소리로 들렸다. 예수님을 만났다. 가난한 이 어린아이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났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싶은 마음, 어쩌면 다 가졌을 마음, 그러나 우리는 욕심의 십분의 일도 채우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행복이 다소곳하게 옆에 와 있어도 느끼지 못하고 행복을 갈구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파야타스의 어린이들이, 행복은 많이 가지고 많이 배웠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그만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 그 사람, 그대가 행복한 사람임을 일깨워 주는 순간의 찰나를 내게 선물로 줬다. 비로소 내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행복을 알아보게 됐다. 자신의 속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그것이 행복이었음을…. 언제쯤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게 할 수 있을까? 아직 큰 숙제로 남아있다. 생각난 김에 회의 차 필리핀에 가게 되는 날, 내게 행복은 어디서 오고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 아이들을 보러 갈 계획을 세워야겠다. 그때 만났던 그 아이들은 아닐 테지만….

2024-02-18
기사 더보기더보기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