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H

우리의 기도가 분열된 사회 속 ‘희망의 꽃’ 되길

박주현
입력일 2025-04-09 08:53:46 수정일 2025-04-09 08:53:46 발행일 2025-04-13 제 343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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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H 르포]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꽃숨’ 청년모임
매월 사회 참여 주제 선정해 복음 통독과 묵상 후 나눔…기도하며 실천 활동도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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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꽃숨 청년모임 로고

“위기에 몰린 민주주의, 임박한 기후위기, 만연한 불평등과 폭력…. 부조리에 질식해 가는 이 세상에 우리부터 작은 씨앗(기도)을 모아 꽃을 피우자. 그렇게 이 세상에 꽃처럼 향긋한 숨을 불어넣자.”
이러한 마음으로 매달 사회 참여적 주제로 함께 기도하고, 작은 실천과 연대활동에 나서 세상을 숨 쉬게 하는 청년들의 모임이 있다.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의 ‘꽃숨’ 청년모임(담당 한효주 효주 아녜스 수녀, 이하 꽃숨)이다.
만져지지도 보이지도 않아 그 힘이 평가절하되기도 하는 기도는 악의 냄새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어떤 방향제 같은 역할을 할까. 꽃숨 대면 기도모임 현장에서 답을 찾았다. “사랑의 행위, 자비 행위를 통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자기 이웃의 실재적이고 절박한 필요에 응하는”(「간추린 사회교리」 208항) 선의지였다.

■ 훈풍을 기다리는 이른 봄

3월 20일 저녁 7시, 겨울이 지나도 해가 길어지지 않은 초봄. 경기도 부천 원미동 주택가는 저물녘 어스름이 감치고 있었다. 일과를 마친 시민들은 겨울과 차이 없는 스산한 공기를 뚫고 쫓기는 듯한 잰걸음으로 귀가 행렬을 이뤘다. 한참 탄핵 이슈로 전국이 불안을 호소하던 때였다.

도로변 2층짜리 가정집은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열린분원. 그곳으로 11명의 꽃숨 청년이 하나하나 모여들었다. 퇴근 직후 이곳에 온 청년들은 간단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한 잔씩 차를 내려 강당에 둥글게 앉았다. 저녁 8시 렉시오디비나 대면 기도모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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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부천 원미동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열린분원에서 열린 꽃숨 청년모임 렉시오디비나 대면 기도모임에서 꽃숨 청년들이 복음을 읽은 후 서로 나눌 묵상을 쓰고 있다. 박주현 기자

‘양극화하는 정치, 위기의 민주주의’를 주제로 청년들은 루카복음 6장 37절부터 49장까지 읽고 묵상했다. 주제는 3월 대면 기도모임 주도자 청년이 정했다.

“일본 식민지배에 맞서 독립을 외쳤던 1919년 3월에서 106년이 지난 지금, 국민은 두 집단으로 나뉘어 탄핵 찬성과 반대를 외치고 있습니다. 극단으로 치단는 혐오정치 분위기를 틈타, 정치 유튜버들과 SNS는 어느 한쪽의 신념에 일치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확증편향’을 증폭하고만 있습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42절)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은 지금의 인류를 보며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이날 주도자인 조안나(안나) 씨는 “언젠가부터 사회에서 사라져 버린 ‘양심’에 대해서 하느님과 청년들과 수녀님과 대화하고 싶어서 이 주제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 안의 양심을 소외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하고, 비양심적인 일을 하면 저절로 불편함을 느끼는 세상이 돌아오길 기원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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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부천 원미동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열린분원에서 열린 꽃숨 청년모임 대면 기도모임 후 꽃숨 청년들과 담당 한효주 수녀(왼쪽에서 네 번째)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주현 기자

■ 향기로운 숨결을 이 세상에

“복음과 인간의 구체적인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이 서로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복음화는 완성될 수 없다.”(「간추린 사회교리」 66항)

복음 통독을 마친 청년들은 각자 와닿은 구절을 골라 30분가량 묵상하고 서로 통찰과 생각을 나눴다. 밤 10시까지 이어진 나눔은 청년들이 복음에서부터 찾을 수 있는 사랑과 정의의 실천을 밀도 있게 나누는 자리가 됐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38절) 그런데 정작 주기보다 받을 생각만 하니까 싸우게 되는 것 같아요.”

김효화(파우스티나) 씨는 “남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을 때 ‘저자는 반대파고 그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며 독선에 빠지는 건 받으려고만 하는 이기심 때문”이라고 나눴다. 이어 “초등학교 때 다들 삼권분립, 소수 의견 존중, 다수결의 원칙을 배웠을 텐데도 ‘나’의 이익에 눈이 멀어 권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드는 것”이라며 “나부터 경청의 태도를 갖추고,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를 자주 바쳐야겠다”고 덧붙였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45절) 순전한 혐오를 동기로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세력에 더욱 주의하게 됐어요.”

조영지(루치아) 씨는 “인간은 처리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정보에 압도됐을 때 음모론에 빠지는데, 고립된 사람들일수록 알고리즘이 무작위로 퍼붓는 편향된 기사와 영상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부조리들 때문에 인류가 예수님을 고통받게 했잖아요. 무엇보다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형준(프란치스코) 씨는 “응급실에서 사람을 온 순서대로 치료하는 것이 공평이라면, 늦게 왔지만 위중한 사람이 있을 때 그를 먼저 치료해 주는 것이 공정”이라며 “공평이 양심을 가져야 공정이 된다”고 역설했다. 또 “양심 없는 사회에는 공정이 상실되게 마련이고, 예수님도 공정이 사라진 유다 사회에서 군중의 확증편향으로 죽임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순 시기,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회개를 염원하며 십자가의 길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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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부천 원미동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열린분원에서 열린 꽃숨 청년모임 대면 기도모임에서 꽃숨 청년이 정의와 평화를 염원하는 의미로 꾸며진 공간에 자신의 기도 지향을 적은 쪽지를 봉헌하고 있다. 박주현 기자

■ 꽃으로 뒤덮인 세상을 꿈꾸며

“저희들의 기도가 작은 씨앗이 되어 소외와 가난으로 그늘진 자리, 질병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자리, 오해와 불신으로 어두워진 자리, 절망과 두려움으로 넋이 꺾인 자리에 평화와 희망이 자라나게 하소서.”(꽃숨 기도문 중)

꽃숨은 2009년 수녀회 인천관구 성소담당자가 동반하던 남녀 청년들이 고통받는 세상을 위해 기도·실천하기 위해 시작한 모임이다.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매달 주제를 정해 복음의 시각으로 고통받는 세상을 읽는 렉시오디비나 대면·비대면 기도모임 ▲일상 안에서의 실천뿐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사회 연대현장 방문 ▲줍깅이나 생태환경 강의 청강 ▲노동영화제 패널 참석 등 참여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또 수녀회에서 실시하는 청년 활동가 강의 및 생태교육 청강, 자원순환활동, 줍깅, 수녀회 ‘지구의 날’ 미사 참례 등 비정기적 활동도 펼쳐진다. 올해도 6월 성지순례 및 청년 활동가 방문, 11월 제주 해양쓰레기 줍기 활동이 계획됐다.

꽃숨 담당 한효주 수녀는 “꽃숨 회원이 되어 매일 기도하고 실천하고자 결의를 다질 청년들 누구나 환영”이라고 전했다. 이어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는 말씀대로 수녀회 강생의 영성을 세상에 더욱 널리 꽃피우는 청년 사도가 될 수 있게, 우리(수녀)들도 꾸준히 동반하겠다”고 덧붙였다.

※ 문의 010-2841-0745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성소자담당 한효주 수녀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