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H

외딴 공소 뜨겁게 채우는 ‘찬양 하모니’

박주현
입력일 2025-01-16 09:59:35 수정일 2025-01-23 15:31:05 발행일 2025-01-26 제 342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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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H] 광주대교구 청년 공소성가봉사단 ‘주사위’

우리는 하느님을 향해 샘솟는 사랑을 표출하고자 미사곡을 부른다. 그래서 성가대가 없고 노래하지 않는 미사는 허전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공소들 경우 성가대가 있는 곳은 찾기 어렵다. 이렇듯 더 뜨거워지고 싶어도 뜨거워지지 못하는 미사는 공소 신자들에게는 일상과 같다. 그런 공소 신자들이 풍요로운 전례를 열 수 있도록 교구 내 공소들을 두루 다니며 일일 성가대로 활약하는 청년 단체가 있다. 광주대교구 사목국 공소사목 소속의 청년 공소성가봉사단 ‘주사위’(단장 최유정 스테파노, 지도 진우섭 폰시아노 신부)다. 청춘만이 지닌 활력과 순수한 섬김으로 산골짜기까지도 찾아가 노래하는, 이름대로 ‘주님을 사랑하기 위한’ 열정을 간직한 찬양 사도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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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10월 광주대교구 무안군 일로본당 환학동공소에서 열린 주일미사에서 주사위 단원들이 성가를 부르고 있다. 광주대교구 청년 공소성가봉사단 ‘주사위’ 제공

주님을 사랑하기 위한 청년들

“노래는 두 배의 기도라는 말이 있죠. 그만큼 노래는 신앙심을 키우는 데 가장 효과적인 역할을 해요.”

이런 취지로 주사위 단원들은 매달 셋째 주일 성가대가 없는 교구 내 공소들을 찾아다니며 성가 봉사를 하고 있다. 2015년 교구 사목국 봉사단체로 시작해 현재까지 교구 내 많은 공소를 다니며 노래 찬양을 펼쳤다. 소프라노, 테너, 알토, 베이스, 반주자와 지휘자 등 16명의 단원은 성가와 미사곡 없이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이 더 풍성한 전례를 봉헌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단원들은 ‘불금’(불타는 금요일)마저 봉헌해 왔다. 허투루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진심 어린 찬양이 될 수 있도록 매주 금요일 저녁 모여 연습한다. 전례 시기에 맞춰 특송도 선정해 연습한다. 성가 봉사 직후에는 노래에 개선점을 찾는 평가회를 항상 연다.

열정 때문이다. 가깝게는 40여 분 걸리는 공소부터 2시간 이상 걸리는 먼 곳까지 찾아간다. 주말 하루를 온전히 내어놓아야 하는 봉사다. 이른 아침에 시작해 미사를 마치고, 더 잘 부르기 위해 자체 평가회를 가지며 늦은 오후에 마무리한다.

외딴 공소에 방문할 때면 어스름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에 모이기도 한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 “차질이 생겨 제때 닿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하지만 단원들은 아침 일찍 출발한 봉고차 안에서부터 차오르는 설렘과 기대감이 있다며 한 달에 한 번뿐인 봉사 날을 기다린다. 단원 김가은(데레사) 씨는 “미사가 시작하기 1시간도 전부터 자리를 가득 채운 신자들을 보며 울컥한다”고 전했다. 김 씨는 “미사 후 함박웃음으로 두 손을 맞잡아 주며 고마워하는 신자들의 따뜻한 마음에서, ‘작은 봉헌이 큰 위로로 반향하는’ 미사의 의미를 매번 실감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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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8월 광주대교구 장흥본당 장평공소 주일미사 후 주사위 단원들과 지도사제 진우섭 신부가 공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광주대교구 청년 공소성가봉사단 ‘주사위’ 제공

성가대 없는 공소 찾아다니며 주일 성가 봉사
산간벽지 곳곳 누비는 강행군 “작은 보탬이라도 큰 보람 느껴”

공소, 신앙에 울림을 주는 곳

주님을 사랑하기 위한 여러 봉사 중에, 공소를 찾아다니며 노래하는 건 어떤 의미에서 각별한 봉헌이 될까. 단원들은 “내 이웃을 향한 사랑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다수 사람은 노래 없이 건조한 미사만 봉헌하게 되는 공소 신자들에게 큰 관심을 지니지 않는다. 알더라도 산간벽지 먼 거리를 감내하고 찾아갈 엄두를 차마 내지 않는다.

하지만 단원들은 그런 교우들을 특별히 기억하고 섬긴다. 노래를 좋아할 뿐인 작은 마음일지는 몰라도, 그를 살려서 무언가 작은 보탬이 돼주고 싶다는 소박한 진심이다. 메말랐던 미사가 음률을 띤 육성으로 비로소 촉촉해지면서 공소 신자들은 평소 주일미사보다 더 깊은 묵상으로 잠겨 든다. 그렇게 단원들의 봉사는 이웃 신자들 또한 ‘주님을 사랑하게 하기 위한’ 의미 있는 봉헌이 된다.

한국 교회사에서 공소가 가지는 의미만큼 단원들도 내면에 울림을 받는다. 공소는 박해를 피해 모였던 옛 신자들이 교우촌을 형성하고 미사를 드리며 시작한 터전이다. 즉 단원들은 단순한 노래 찬양을 넘어 오랜 믿음의 현장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교우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했던 봉사는 이렇듯 단원들을 자연스럽게 깊이 있는 신앙으로 이끈다.

단원 최기혁(그라토) 씨는 “공소 한곳 한곳은 작은 공동체지만 그 안에 단단하고 싶은 신앙의 뿌리가 있음을 항상 느낀다”고 말했다. “미사라는 게 단순히 의무를 다하는 행위가 아니라, 매 순간 주님을 통해 감사와 희망을 찾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주변 환경을 탓하지 않는 공소 신자들의 믿음에서도 단원들은 배운다. 신부가 상주하는 본당과 달리 공동체 활동을 하기 어려운 공소지만, 신자들은 그러한 환경에서도 자체적 행사도 열고 서로 연대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알아가고자 했던 신앙 선조들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2년차 단원 문용(안드레아) 씨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던 초기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실을 살다 보면 ‘오늘은 이것 때문에, 내일은 저 일 때문에’ 하고 갖은 핑계를 대며 미사도 봉사도 고민할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공소 신자들이 지켜온 믿음의 초심(初心)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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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11월 광주대교구 해남본당 남창공소 주일미사에 성가 봉사를 하러 찾은 주사위 단원들이 신자석을 채우고 앉아 있다. 광주대교구 청년 공소성가봉사단 ‘주사위’ 제공

감사함에 드높아지는 찬양의 목소리

여느 봉사가 그렇듯, 단원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을 베푸는 쪽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자신들이 더 많이 받고 있었다. 찬양할 수 있는 목소리, 함께하는 신부님과 단원들, 우리가 갈 수 있는 공소들, 환영해 주시는 공소 신자들 모두가 주님이 당신과 함께일 수 있도록 베푸신 은총이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단원들은 감사 때문에 더욱 열정을 얻는다. “단원들 덕에 청년들이 가득 차서 미사가 생기 넘쳤다”며 방문만으로도 고마워하는 공소 신자들을 보면 ‘섬길 기회를 주셔서 고마운 건 우리’라고, ‘그만큼 우리의 에너지를 더 잘 전달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고.

이렇게 뜨거운 진심만큼 주사위의 꿈도 열기를 띠었다. 활동 목표는 교구 모든 공소를 방문해 봉사하는 것, 나아가 공소사목연수회 등 공소 신자들과 소통하고 찬양 봉사를 이어가는 것이다.

최유정 단장은 “기회가 된다면 공소 신자들을 모시고 주사위의 작은 음악회를 진행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단원들과 오랜 시간 연습해 와서 서로 합이 잘 맞아 매달 선보이는 특송들이 곧 잊히는 게 아쉬웠다”며 “주사위의 지난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찬양이 주는 행복을 단원들도 신자들도 함께 느끼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며 웃었다.

담당 진우섭 신부는 “불금에 화려한 곳을 찾아가기보다, 외적으로 낡은 공소를 위해 매주 연습한다는 것만으로도 단원들은 특이한 친구들”이라며 “그 특이함을 듬뿍 칭찬해 주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봉사 후 평가회에서도 서로에게 힘과 사랑이 되는 이야기를 나누는 두터운 우정은 사목자에게 너무도 흐뭇한 모습”이라며 엄지손을 추켜세웠다.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