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역 노숙인 급식 봉사 현장]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고된 일정에도 ‘미소’ 5년째 매주 금요일 무료 급식 나눔…많은 사람 정성·관심으로 한 끼 대접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마태 25,35)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먹을 것을 나누는 사람들. 자기의 모든 것을 내준 사람들의 표정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천주의 섭리 수녀회 ‘섭리 나눔의 집’(책임자 김향순 소화 데레사 수녀)의 수원역 노숙인 급식 나눔 현장을 찾았다.
노숙인 위해 정성으로 만든 한 끼
7월 11일 오전 11시, 수원역 노숙인급식소인 ‘정나눔터’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양손 가득 무거운 짐을 들고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노숙인들. 매일 다른 단체에서 무료 급식을 하지만 금요일 식사는 특히 인기가 많다.
천주교 수도자들이 준비한 음식이 정성스럽고 맛있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11시 30분이 되자 트럭 한 대가 정나눔터 앞에 들어선다. 로만 칼라를 한 신부, 수도복을 입은 수녀, 7명의 봉사자가 분주하게 짐을 내린다. 이날 급식 메뉴는 콩국수다. 평소에 제철 음식을 먹기 어려운 노숙인들을 배려해 특별식으로 준비한 것이다.
전날 콩을 불리고 아침에 방앗간에서 갈아온 뽀얀 콩물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고명으로 올라가는 달걀과 오이, 토마토는 색도 예쁘고 건강에도 좋다. 반찬으로 제공되는 마늘종 장아찌와 김치도 모두 직접 만든 것이다. 정오가 되자 노숙인들은 차례로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무더위에 맛보는 시원한 콩국수는 사라졌던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금세 한 그릇을 비운 몇몇 노숙인들은 면과 국물을 더 받아 돌아간다. 이날 준비한 음식은 180인분. 163명의 노숙인이 시원한 한 끼를 선물로 받았다.
길 위에서 만난 예수님
‘섭리 나눔의 집’은 2021년부터 정나눔터에서 급식 나눔을 하고 있다. 수원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정나눔터는 매일 다른 단체가 급식 봉사를 하는데, 섭리 나눔의 집은 금요일에 이곳을 찾는다. 급식 당일에는 7~8명의 봉사자가 오전에 음식을 준비하고 배식을 돕는다. 음식을 대량으로 준비하기 때문에 전날도 7~8명의 준비팀이 재료 손질에 손을 보탠다.
수많은 봉사자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한 끼. 점심을 먹고 나온 노숙인은 “수녀회에서 해주시는 음식은 항상 맛있어서 금요일에는 꼭 정나눔터에 온다”고 말했다. 콩국수를 처음 먹어봤다는 한 여성 노숙인은 소화가 되지 않아 음식을 다 먹지 못했다며 김 수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김 수녀는 “콩국수를 못 먹는 분들이 있는 줄 알았으면 밥이나 라면도 따로 준비해 드릴 것 그랬다”며 배불리 먹지 못한 노숙인을 먼저 걱정했다.
이곳에서 먹는 소박한 한 끼가 누군가가 자신에게 쏟는 정성과 관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정나눔터를 찾은 노숙인들은 봉사자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침 9시부터 음식 준비를 하고 수원역까지 짐을 옮기고, 배식하고 돌아와 뒷정리하기까지. 급식 봉사는 오후 3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고된 일정에도 봉사자들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봉사자 서한숙(소화데레사·수원교구 제1대리구 서둔동본당) 씨는 “급식 봉사를 하기 전날부터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나눔의 집을 찾는다”며 “봉사를 끝내고 나면 몸은 고되지만 오늘 하루 길 위에 나그네로 오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후원 계좌: 신협 137-005-427067 (재)천주교천주의섭리수녀회 섭리나눔의집
[인터뷰] ‘섭리 나눔의 집’ 책임자 김향순 수녀 - “넉넉하지 않아도 하느님 섭리 믿고 나아요”
‘섭리 나눔의 집’ 책임자 김향순(소화 데레사) 수녀는 노숙인 급식 나눔을 하기 전에 “이분들을 축복해 달라”는 기도로 활동을 시작한다. 소임을 맡은 뒤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던 중에 김 수녀는 한 봉사자가 수원역에서 홀로 노숙인들에게 김밥을 나눠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나눔에 손을 보태고자 하나씩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5년 전이다.
“자매님이 혼자서 몇십 인분의 김밥을 싸서 노숙인들에게 나눠준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하자고 손을 내밀었어요. 그때는 김밥과 라면 등 간단한 음식으로 시작했는데 점점 봉사자들이 많아지면서 제대로 된 한 끼 음식을 대접하고자 마음을 모았죠.”
섭리 나눔의 집 급식은 맛있기로 유명하다.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겨울에 매주 오시던 노숙인들이 안 보여 여쭤보니 겨울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어요. 너무나 충격이 컸죠. 그 이후로는 매주 드리는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식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만들고 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다 보니 값비싼 재료를 사용해 푸짐하게 음식을 준비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딱 필요한 만큼의 재료가 후원 물품으로 들어온다. 농사지은 파를 가져다주는 농부, 매달 닭 60마리를 후원해 주는 업체 등 섭리 나눔의 집은 많은 이의 정성이 모여 한 끼 밥을 지어낸다. 그래서 김 수녀는 ‘이 일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믿는다.
“여름이라 시원한 냉커피를 드리고 싶어 고민하고 있는데 수녀원 옆 수원가톨릭대학교 신학생들이 축제 때 남은 얼음을 보내줬어요. 고명으로 들어간 오이도 농장을 하는 자매님이 보내주셨죠. 매번 딱 필요한 만큼 재료가 채워진 덕분에 한 번도 급식을 대접하지 못한 적이 없습니다.”
섭리 나눔의 집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깨달은 김 수녀는 아낌없이 자신을 봉헌하겠다는 사명을 되새겼다.
“하느님께서 저를 통해 노숙인 분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그들을 보살펴 주고 계신 것 같아요. 그래서 힘든 것보다 큰 기쁨으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