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마다 자신들만이 아는 비표가 있어요. 신앙선조들이 만든 옹기예요. 여기 이렇게, 넝쿨에 십자가가 보이시나요?”
옹기는 선조들의 신앙을 말해주고 있었다. 얼핏 보면 보통 옹기와 같은데, 자세히 보면 신자라는 표시를 해두어 참으로 담담하게 신앙을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 바오로(66)·정 율리안나 씨 부부는 한국 천주교회사 유물을 모으는데 반평생을 쏟았다. 30여 년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며 모아온 교회사 유물이 1000여 점을 넘는다. 교회사 유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화물차를 끌고 달린 터라, 도로에서 타이어가 찢어져 큰 사고를 당할 뻔하기도 했다. 길바닥에 내던진 피땀의 노력과 추억을 잊지 못해 부부는 그 타이어마저도 아직 버리지 못했다.
“나중에 전시관을 열 수 있게 되거나 하면, 타이어도 전시해놓으려고요. 농담이고, 그만큼 팔도를 누비고 다닌 저희 부부의 추억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가 모아온 한국 천주교회사 유적은 다양하지만, 신앙선조들이 교우촌에 숨어들어가 생계를 잇기 위해 만든 옹기가 주를 이룬다. 옹기들은 이미 천주교 유물이라는 사실이 판명됐고, 그 가운데 울산국제옹기공모전과 같은 대회에서 인정받은 것들도 있다.
“신앙선조들은 옹기를 만들어도 멋스럽고 예쁘게 만들었어요. 천주교 박해를 피해 자신들의 신앙의 표시로 조그마한 십자가도 새겨 넣었지요. 포졸한테 잡히면 죽는데, 당시 서슬 퍼런 박해 속에서도 그렇게 표시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예요.”
김장철 새우젓 운반을 용도로 하는 한 옹기에는 누가 보아도 알아볼 만큼의 큰 십자가 문양이 힘찬 획을 그으며 새겨져 있다. 성체 안에 작은 십자가가 들어있는 경우도, 어지럽게 그려진 넝쿨문양에 한 획을 그어 십자가의 형태를 드러낸 옹기도, 성모자상을 조각해 넣어놓은 등잔도 있다. 유약을 발라 굳어지기 전 손으로 직접 문양을 새겨 신앙의 옹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교우촌에서 교우들이 보초를 서다 위험신호를 알리는 옹기로 된 호각, 1840년 밤나무로 만들어진 성모상, 서적, 도기, 박해시대 궤짝 등 평생에 걸쳐 그가 수집한 한국 천주교회사 유적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옹기 엑스포에서 특별상을 받을 때도 직접 출품하지는 않았어요. 언젠가 이 유물이 천주교의 보물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보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껴야겠다는 마음에 사진으로만 찍어서 보냈죠.”
그가 모은 유물은 한국 천주교회사의 유물뿐만은 아니다. 1000년에 비유하는 불교 유적과 겨루기 위해서는 더 긴 세월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선사시대 유적부터 수집을 시작했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를 거쳐 근대사회에 이르기까지 그가 수집한 유적은 셀 수 없을 정도다.
평생을 바쳐 피땀을 흘리며 수집한 유적을 공개하는 이유는 하나다. 뜻을 가진 교우와 교구, 단체들이 이 유적들을 토대로 박물관으로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부부는 나이가 들면서 건강문제와, 혼자 힘으로는 많은 유물을 관리하는 것도 힘에 부치고, 골동품상에게 유물들을 넘기려니 여생을 후회하며 살 것 같다고 했다.
“오래 전 교리문답을 보면 ‘사람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느뇨’라는 말이 있었어요. 하느님을 알고 섬기며, 신앙인처럼 살다 가기 위해 태어났지요. 정말 밭에 묻힌 보물이라는 마음으로 자식처럼 아낀 물건들입니다. 한국 천주교회사에 큰 뜻을 지니신 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