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모기 무늬 붉은 염색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8-09 수정일 2016-08-10 발행일 2016-08-14 제 300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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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교우촌 답사를 가던 날, 실제 구교우촌 출신 신부님께서 당신이 어린 시절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 공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대축일이 되면, 읍내 본당에 가서 모든 신자들이 함께 미사를 드리곤 했답니다.

특히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이 되면, 그 축일을 지내기 위해 공소 신자 분들은 정성스럽게 모시옷을 꺼내어 몇 날 며칠 깨끗하게 장만을 했답니다.

“우리 공소 식구들이 읍내 본당에 대축일 미사를 드리러 가면, 그 전날 본당에 가서 묵었어요. 그러면 본당 신부님은 여기 공소, 저기 공소 식구들이 어느 신자 집에서 묵을 수 있는지를 다 알려주었어요. 공소 식구도, 본당 식구도 그날이 되면 모두가 다 정겹고 들뜬 마음으로 하루를 즐겁게 묵었답니다.”

“정말로요? 와 … 옛날에는 우리 신자들끼리 친목이 대단했겠어요.”

“맞아요. 우리를 맞이하는 본당 신자들도 그렇고, 그 집을 찾아가는 공소 식구들도 그렇고 모두가 다 한 형제자매라는 생각이 컸지요. 그렇게 하룻밤 잠을 잔 후, 아침에 미사 시간이 되어 본당 마당으로 다 모였는데, 푸하하아!”

“왜요 신부님?”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날, 하느님 앞에 멋있고 예쁘게 차려 입으려고 몇 날 며칠 풀 먹이고 정성스레 관리했던 하얀 모시옷이 다 구겨진 거예요. 게다가 옷 마다 여기 저기 붉은 물감이 들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신자 분들이 더운 여름 밤, 잠자는 동안 모기가 물자 무의식적으로 옷에 붙은 모기를 찰싹 - 하며 잡은 거예요.

신부님의 그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감고 상상을 해 보니, 너무나도 정겨운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하얀색에 핏빛 물감이 든 모시옷! 이것은 그 당시를 살고, 경험했던 분들의 정겨움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어서 신부님은 대축일 미사를 마치고 다시 시골로 돌아오는 모습을 들려주었습니다.

“여름 날, 대축일 미사를 마친 후, 읍내를 지나 논두렁, 밭두렁을 끼고 한나절을 걸어서 집으로 오는 길에 논두렁 가에 개구리가 울면 다 같이 개골개골 거렸고, 잠자리가 날면 잠자리랑 푸른 하늘 뭉게구름 위로 날아다녔지요. 길옆에 나물이 있으면 어머니들은 하느님이 주신 일용할 양식이라면서 나물을 캤어요. 그렇게 구겨지고 붉게 물든 모시옷을 입고, 오후 내내 걸어서 저녁 즈음 마을에 도착하면, 공소에 모여 감사 기도를 드린 후 집으로 돌아갔답니다. 그 시절, 잊을 수 없는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지요.”

하느님께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우들끼리 형제애로 살아가는 기쁨을 마음속에 담아 주셨습니다. 눈을 감고 묵상해봅니다.

모두가 다 하얀 모시옷 입고 읍내 성당을 가고, 오는 그 길! 아마도 그 분들은 지금, 천상에서 하얀 모시옷을 입고 주님께 영원히 찬미영광을 드리고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음에 진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