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본당 민족화해분과와 거리에서 ‘평화 캠페인’을 진행하는데 어느 행인에게서 들려온 말이다. 소리를 낸 중년 남성은 화난 얼굴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전쟁을 선호할 이유가 없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실현하자는 취지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마 ‘거짓 평화’를 추구하다가 ‘적’에게 공격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에는 전쟁 준비를 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이 만연해 있다. 보수 정부뿐 아니라 진보 정부에서도 군사력을 통한 안보는 늘 강조돼 왔다. 힘을 통한 평화를 맹신하는 분위기에서 ‘평화적인 수단의 평화’는 어리석게 보이거나 너무 ‘친북적’이라고 치부되기가 쉽다. 전쟁을 끝내지 못한 국가에서 ‘평화주의’는 환영받기 어렵다.
그런데 북한 역시 ‘평화주의’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다. 북한 「철학사전」은 평화주의를 ‘제국주의에 대한 아부굴종’으로 평가한다. ‘혁명적 원칙’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갈등이 불가피하고 ‘정의로운 전쟁’, ‘정의를 위한 전쟁’이 필요한데, 이런 관점에서 전쟁 일반을 반대하고 무원칙한 평화를 주장하는 것은 반동적으로 여겨진다.(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세계평화개념사」 255쪽)
북한 헌법에서도 “총(銃)대 위에 평화와 사회주의도 있으며 군사는 국사(國事) 중의 국사”라고 주장한다. 군대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서도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인민 대중 가운데서도 가장 우수한 핵심 분자들로 조직되며 그것으로 하여 혁명에서 중요한 정치적 역량으로 된다”고 설명한다.(김병로 「북한, 조선으로 다시 읽다」 336쪽)
지난 6월 16일 해군 부산기지에는 미국 핵추진 잠수함인 미시건호(SSGN 727)가 입항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잠수함 중 하나인 미시건호는 2000㎞ 떨어진 목표물을 요격할 수 있는 토마호크 미사일 150여 기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등으로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됐던 2017년 10월 이후, 5년 8개월 만에 한국에 들어온 것인데, 전문가들은 ‘미국 전략 자산의 정례적 가시성을 한층 증진시킬 것’이라는 ‘워싱턴 선언’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엄청난 위력을 지닌 첨단 무기가 아무리 많아도 평화는 보장될 수 없을 것이다. 멀고 험하더라도 평화의 길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